[MTU/3차] 3차 연재판 -Reboot-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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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63 [MTU/3차] 3차 연재판 -Reboot- -2- (417)

#0◆c1sQbCxf4y(tXSE26fyzy)2025-10-29 (수) 14:05:41
1. 본 어장은 지마스터◆GSjz3/enQG 님의 마블 튜나틱 유니버스의 3차 창작 단편 연재어장입니다.
2. MTU 잡담판 메이킹 캐릭터를 다루는 단편들은 여기서 연재 해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
3. 본 어장에 연재된 스토리가 카논인지 논카논인지는 철저히 지마스터님◆o9m2/Ww6lU의 권한입니다.
4. 연재는 자유!
5. 논카논 작품은 따로 표기합니다.
6. 만약 다른 곳에 따로 3차 창작을 하신다면 링크만 가져오겠습니다.
7. 누락된 작품이 있으면 링크를 부탁드리겠습니다.
8. 수정 및 삭제 문의는 MTU 잡담판으로.

구 참치 마지막 어장(전 어장 링크들 포함): https://bbs.tunaground.net/trace.php/anchor/1597051426

신 참치 1어장 https://bbs2.tunaground.net/trace/anchor/1379
#397트루스콜로[모바일]◆dFZ.WlVUja(p/AGCGcKmS)2025-12-04 (목) 02:34:28
때는 1943년 가을 어느날.
슬로베니아에 자리한 어느 고성.
성벽은 밤의 어둠으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다.
허나, 오늘은 달랐다.

차가운 돌바닥 위를 소리 없이 기어간 스티브 로저스.
그가, 캡틴 아메리카가 손을 들어 신호를 보냈다.
뒤따르던 ‘실버 발키리’ 루살카와 하울링 코만더스 대원들이 즉시 그림자 속으로 몸을 숨겼다.

철창이 달린 환기구 너머, 아래층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세상에…’

지옥도였다.

“크아아악!”

수술대 위에 묶인 미군 포로가 허리가 꺾일 듯이 비명을 질렀다.
혈관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입에서는 허연 거품이 끓어 넘쳤다.
그의 팔에는 방금 주입된 정체불명의 보라색 약물이 꽂혀 있었다.

“실패야. 또 실패라고! 반응이 너무 빨라!”

흰 가운을 입은 여자가 신경질적으로 차트를 집어 던졌다.
그녀의 명찰에는 나디아라고 적혀져 있었다.

그녀는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가는데도, 그저 실험 데이터가 망가진 것에만 분노하고 있었다.
포로의 몸이 격렬하게 경련하더니, 이내 ‘툭’ 하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축 늘어졌다.
심정지였다.

“치워. 다음 재료 가져와.”

나디아의 목소리는 얼음장보다 차가웠다.
나치 병사가 질린 얼굴로 말했다.

“하, 하지만 박사님. 남은 포로가 얼마 없습니다. 이대로 가다간….”

짝! 채찍 소리가 공기를 갈랐다.

“누가 토를 달라고 했지?”

나디아의 옆, 독일군 장교복을 입은 사내가 싸늘하게 병사를 노려보았다.
루트비히 베커 대위, 그리고 그 옆에는 일본도를 허리에 찬 동양인, 아사쿠라 쥬죠가 팔짱을 낀 채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박사님이 부족하다면 부족한 것. 놈들의 목숨 따위가 대업보다 중요한가?”

베커의 일갈에 병사들이 벌벌 떨며 시체를 끌어내렸다.
쥬죠가 거들었다.

“무능하군. 재료가 없으면 민가라도 털어서 잡아 왔어야지. 위대한 연구에 쓰이는 걸 영광으로 알게 해라.”
“맞아요. 내 실험체는 신선해야 한다고 했잖아.”

나디아가 붉은 혀로 입술을 핥으며 다시 주사기를 들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스티브의 손에 핏줄이 섰다.
비브라늄 방패를 쥔 가죽 장갑이 찢어질 듯 팽팽해졌다.
옆에 있던 루살카의 눈에서도 시퍼런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저 쓰레기들을 지하로 옮겨. 당장!”

나디아의 표독스러운 외침에 나치 병사들이 주섬주섬 시체들을 들것에 실었다.
아사쿠라 쥬죠가 그 뒤를 따르며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환기구 틈으로 상황을 지켜보던 스티브가 수신호를 보냈다.

‘타깃 분산.’

그는 손가락 두 개로 루살카를 가리킨 뒤, 지하 쪽을 향했다.
루살카가 짧게 고개를 끄덕이곤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스티브는 버키에게 눈짓했다.
그녀가 저격 소총을 등 뒤로 돌려매며 비장하게 웃었다.
나머지 하울링 코만더스 대원들은 성의 기둥마다 폭약을 설치하기 위해 그림자처럼 흩어졌다.

**

**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루살카는 숨소리조차 내지 않고 병사들의 뒤를 밟았다.
지하 공동묘지처럼 넓은 공간에 병사들이 시체를 짐짝처럼 던져 놓았다.

“수고했다. 이제 다들 나가 봐.”

쥬죠가 칼자루에 손을 올리며 낄낄거렸다.

“나는 여기서… 즐길 게 좀 남았으니까. 시체라도 온기가 남아있으면 쓸 만하지.”

병사들은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젓으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육중한 철문이 닫히고, 넓은 공간엔 쥬죠와 시체 더미뿐이었다.
놈이 허리춤을 푸는 시늉을 하려던 찰나.

팟—!

루살카가 어둠을 찢고 튀어나갔다.
섬광처럼 쥬죠가 반응할 새도 없이 그의 목을 팔로 감아 조르고, 무릎으로 놈의 오금을 찍어 눌렀다.

“크윽…!”

순식간에 제압당한 쥬죠가 바닥에 처박혔다.
루살카의 단검이 그의 목젖 바로 앞에 멈췄다.

“쿠소…! 어떤 쥐새끼가…!”

쥬죠가 일본어로 욕설을 내뱉으며 발버둥 쳤다.
하지만 루살카의 악력은 강철 바이스나 다를 바 없었다.

“유감이네. 우리 팀에도 일본인 친구가 있어서, 그 정도 욕은 알아듣거든.”

그녀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상대는 변태 성욕자이자 학살자.
살려둘 가치도 없다.
그녀가 망설임 없이 수도로 놈의 목을 내리꽂으려던 순간이었다.

“쿨럭…!”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쥬죠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니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시체 중 하나가 몸을 뒤틀며 기침을 토한 것!

“?!”

루살카의 손이 허공에서 멈칫했다.
그 틈을 타, 지하 안쪽의 숨겨진 벽이 드르륵 열리더니 작은 그림자가 뛰쳐나왔다.
꾀죄죄한 몰골의 소년이었다.

“안 돼요! 쥬죠 아저씨를 죽이지 마세요!”

소년이 루살카의 팔을 매달리듯 붙잡았다.
그 사이, 죽은 줄 알았던 미군 포로들이 하나둘씩 눈을 뜨고 비틀거리며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들의 안색은 창백했지만, 분명 살아 있었다.

“이게 무슨…….”

루살카가 당황하여 힘을 풀자, 쥬죠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젠장, 타이밍 한번 더럽게 못 맞추는군. 연합군 나리들은.”

그는 목을 문지르며 일어났다.

“죽은 게 아니야. 가사 상태로 만드는 약이지. 나디아 박사가 개발한 특제 ‘탈출용’ 혈청이다.”

목을 풀며 쥬죠가, 아까와는 다르게 정상적인 언동을 보였다.

“아사쿠라 쥬죠, 대좌지. 너희 쪽에서는 대위.”
“루살카, 실버 발키리.”
“?! 그 유명한 하울링 코만더스 멤버라고?! 하하! 이거 다행이군.”

쥬죠는 일단 포로들에게 얼른 저 소년을 따라가라고 말한다.
소년은 유태인이고, 근방에 몰래 빠져나갈 통로가 쭉 있다고 자상하게 말이다.
포로들은 영문도 몰랐지만, 이내 어느 정도 이성이 뚜렷한 이가 알아차리고는 바로 소년을 따라 동료를 인솔하기 시작했다.

“아니, 뭐야? 그러면 지금 하고 있는 짓은?”
“나름 우리로서는 이게 최선이라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너무한 거 알지? 이놈의 전쟁은.”

과연, 루살카는 바로 이해했다.

“그래서 나디아 말고는?”
“루트비히도 마찬가지. 우리 셋하고, 루트비히 휘하 20명은 아군이다.”
“오, 이런.”

캡틴과 버키가 그쪽으로 갔다는 것이 문제였다.
잘못하다가는 루트비히 대위가 두 친구에게 목숨을 잃을 상황.

“오해를 빨리 풀어야 하겠어.”
“… 설마, 그 캡틴 아메리카가?!”

루살카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



**
성벽 난간. 칼날 같은 밤바람이 나디아의 흰 가운과 루트비히의 코트 자락을 흔들었다.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저 깊은 침묵 속에 지독한 피로를 흘려보낼 뿐.
살리기 위해 죽은 척 위장해야 하는 위험이 그들의 어깨를 짓누르는 상황이니…

이윽고 루트비히가 군모를 고쳐 쓰고 돌아섰다.
복도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무거웠고, 등 뒤는 무방비했다.

‘지금이다.’

어둠 속에 웅크리고 있던 버키가 낮게 속삭였다.

“박사는 내가 맡을게. 넌 장교를 처리해.”
“조심해.”

스티브는 짧게 답하고, 그림자처럼 복도를 질주했다.
그의 목표는 루트비히 베커.
겉으로 보기엔 하이드라의 앞잡이이자 이 지옥의 관리자.

스티브의 손에서 비브라늄 방패가 묵직한 살기를 뿜었다.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루트비히가 인기척을 느끼고 놀라 고개를 돌리는 찰나, 스티브의 방패가 그의 턱을 향해 쇄도했다.

팟—!

하지만 타격감은 없었다.
대신 뱀처럼 날아든 황금빛 밧줄이 스티브의 손목을 휘감았다.

“?!”

상식을 벗어난 악력.
슈퍼 솔저인 그의 몸이 마치 종이 인형처럼 뒤로 확 끌려갔다.
그가 버틸 새도 없이 시야가 뒤집혔다.

동시에 난간 쪽에서도 날카로운 금속음이 터졌다.

카앙—!

나디아의 목을 노리고 낙하한 버키의 단검이 허공에서 가로막혔다.
투박한 군용 대검이 아니었다.
달빛을 받아 서늘하게 빛나는, 고대 양식의 검.

“크윽!”

버키는 검에 막힌 충격을 채 수습하기도 전에, 묵직한 발차기에 복부를 가격당했다.
숨이 턱 막히는 고통과 함께 그녀의 몸이 포탄처럼 튕겨 나갔다.
공교롭게도 밧줄에 끌려오던 스티브와 동선이 겹쳐, 두 사람은 서로 엉키며 바닥을 굴렀다.

“젠장…….”

스티브와 버키는 본능적으로 낙법을 치며 동시에 몸을 일으켰다.
특유의 감각이 경고음을 울려댔다.
그리고…

보았다.

공포에 질린 나디아와 멍하니 서 있는 루트비히, 그들을 보호하며 서 있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칠흑 같은 흑발이 밤바람에 흩날렸다.
세련된 고대의 의복.
그리고 스티브와 마찬가지로 한 손에는 검을, 다른 한 손에는 방패를 든 여전사.

테미스키라의 다이애나 공주.

그녀의 눈동자는 전장의 투기로 이글거리고 있었다.
마치 신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인간의 범주를 넘어선 위압감.
1차 대전의 전설을 모르는 이들에게, 그녀는 그저 정체를 알 수 없는 괴물일 뿐이었다.

스티브는 마른침을 삼켰다.
방패를 든 팔이 미세하게 저렸다.
단순한 힘 싸움에서 밀린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방패를 고쳐 잡으며, 등 뒤에 매달려 있던 또 하나의 무기,
루살카에게서 받은, 이전에 성검과 비슷한 기능을 쓸 수 있도록 적용된 무기.
양날검의 자루를 움켜쥐었다.

이 여자는 위험하다고.

검이 웅웅거리며 포효했다.
스티브가 검을 휘두르자 은색 궤적이 공간을 갈랐다.
수많은 전장을 거치며 다듬어진, 극한의 효율성을 담은 일격.

깡—!

다이애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유려한 손목 놀림으로 검을 쳐내고, 팽이처럼 회전하며 스티브의 사각을 파고들었다.
아마존의 검술은 거칠면서도 우아했다.
마치 전쟁의 여신이 추는 무곡이나 진배없었다.

방패와 방패가 맞부딪칠 때마다 굉음과 함께 스파크가 폭죽처럼 튀었다.
스티브의 정교한 계산과 다이애나의 야성적인 직감이 충돌했다.

찌르면 막고, 베면 흘린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나디아와 루트비히의 눈에는 그저 푸른색과 붉은색 잔상이 엉키는 것으로만 보였다.

그것은 폭력이라기엔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두 전사가 빚어내는, 숨 막히도록 찬란한 투쟁의 예술이었으니.

둘이 검을 교차하며 서로를 마주 본다.
용사와 전사의 눈빛은 사뭇 다르지만, 안에 가진 의의는 비슷했다.

“그대는 누구지?”
“들려줄 이름은 없다만.”

챙―! 하고 서로 물러선다.

“미국인인가.”

다이애나가 바로 말한다.
그녀의 목소리엔 의구심이 짙게 깔려 있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미국은, 그리고 연합군은 이런 존재가 아니었다.

함께 전장을 누비고, 피를 흘리고, 그녀의 ‘진실의 올가미’를 목격했던 전우들.
그녀의 활약은 전설이 되었어야 했다.
신화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역사에는 남았어야 했다.

하지만 눈앞의 남자는 그녀를 모른다.
낯선 이방인을 대하는 경계심.

“고작 30년이다. 인간의 시간으로도 그리 긴 세월이 아닐 터!”
“무슨 소리지?!”

다이애나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가 세상을 위해 검을 들었던 그 맹세와 헌신이, 고작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잊혔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 없다.
트레버와 함께했던 그 시절의 사람들이 그녀를 지웠을 리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

“연합군의 탈을 쓰고 잠입한 가짜들인가. 그러면 하이드라의 첩자로군!”

다이애나의 투기가 더욱 흉폭하게 끓어올랐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우리는 미 육군 소속….”
“거짓말!”

스티브가 해명하려 했지만, 다이애나는 듣지 않았다.
그녀가 바닥을 박차고 쏘아져 나갔다.
쾅!

그녀의 방패가 스티브를 강타했다.
스티브는 비브라늄 방패로 충격을 흘려내며 뒤로 밀려났다.

“진짜 연합군이라면 나를 모를 리 없다! 내 검과 방패를, 내가 흘린 피를 기억 못 할 리가 없어!”

다이애나는 분노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1차 세계 대전 당시, 그녀는 비미국인이었단 사실이기에 미 정부에서는 그것을 완전히 기록 말살했다는 것을.
정치적 이해관계(?)로 인해 그녀의 존재가 철저히 지워졌다는 잔혹한 진실을 모르는 상황!

다시금 검이 휘둘러진다.
두 개의 검이 다시 맞붙어지고, 이내 불꽃과 소리가 심하게 울린다.

금속과 금속의 충돌음 속에서, 두 전사는 기이한 감각을 느꼈다.
검을 통해 전해지는 진동이나, 그것이 자아내는 힘.
마치 상대가 비열한 악당이나 거짓말쟁이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었다.

―탁.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은 동시에 뒤로 물러섰다.
거친 호흡을 고르는 사이, 다이애나가 허리춤에서 황금빛 밧줄을 풀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밧줄의 한쪽 끝을 자기 손목에 감고, 반대쪽 끝을 스티브에게 던졌다.

“받아라.”

스티브는 날아오는 밧줄을 낚아챘다.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다이애나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물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고, 왜 저 나치들과 한통속인 거지?”

다이애나의 입술이 저절로 움직였다.
거짓을 말할 수 없는 강제력이 그녀를 지배했다.

“나는 다이애나. 이 성에서 주둔하는 루트비히와 나디아, 그리고 쥬죠가 목숨 걸고 구해낸 사람들을 보호하고 있다.”
“뭐?”

옆에 있던 버키가 코웃음을 쳤다.

“말도 안 돼. 저것들은 생체 실험을 하던 악마들이라고! 이건 속임수야!”

다이애나는 대꾸 없이 올가미를 풀어 버키에게 던졌다.
스티브가 버키의 팔에 밧줄을 감아달라고 낮게 말했다.

“버키, 네 이름을 속여 봐. 아무 이름이나 대. 네 이름은?”
“흥, 그따위 밧줄이 뭐라고. 내 이름은 스티븐 로저…… 윽! 제이미 뷰케넌 반즈!”

버키가 헙, 하고 입을 막았다.
혀가 제멋대로 굴러가는 것이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녀의 눈동자가 요동치며 밧줄을 살펴보았다.

“이, 이게 뭐야? 왜 거짓말이 안 나와?”

경악한 버키를 뒤로하고, 스티브는 밧줄을 나디아와 루트비히에게 차례대로 건네며 확인한다.
그들은 순순히 손목을 내밀었다.

“다이애나의 말이 사실입니까?”

나디아가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표독스러운 연기가 걷혔다.

“그래요. 우린 미친 총통의 눈을 피해 사람들을 빼돌리고 있었어요. 죽음을 위장해서.”
“그래. 총통은 미쳤고, 우리는 옹호하는 척해야 한다.”

둘 다 확실했다.
모든 것이 진실이었다.

마지막으로 밧줄을 묶은 건 스티브였다.
반대편을 쥔 다이애나가 날카롭게 물었다.

“그대는 정말 미 육군 소속인가? 하이드라의 첩자가 아니라?”

스티브는 올가미가 주는 압박감을 느끼지만,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진실만을 답했다.

“나는 미 육군 대위 스티브 로저스. 하울링 코만더스를 이끄는 지휘관이다.”

그제야 팽팽하던 밧줄이 느슨해졌다.
다이애나의 눈에서 투기가 사라졌다.
나디아와 루트비히는 다리가 풀린 듯 난간이나 벽에 기대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전원 대기. 폭탄 설치를 중단하라. 반복한다, 설치를 중단하라.”

스티브가 무전기에 대고 말했다.
치직거리는 잡음 너머로 대원들의 당황한 기색이 전해졌지만,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잠시 후, 루살카가 헐레벌떡 난간으로 뛰어 올라왔다.
그녀의 뒤에는 쥬죠 역시 똑같은 표정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캡틴! 그놈들 죽이면 안 돼! 사실은…… 어?”

루살카는 멍하니 입을 벌렸다.
피 튀기는 혈투를 예상했건만,
눈앞에는 스티브와 버키, 그리고 다이애나, 그리고 나치스로 생각되었던 이들이 둥그렇게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김빠지는군.”

쥬죠가 어깨를 으쓱하며 칼을 집어넣었다.
루살카 역시 맥이 탁 풀린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398트루스콜로[모바일]◆dFZ.WlVUja(p/AGCGcKmS)2025-12-04 (목) 02:36:32

**

성의 가장 깊숙한 곳, 나치 감시병들의 눈길이 닿지 않는 허름한 밀실.
역사상 가장 기묘한 회합이 열렸다.
루트비히 대위와 그를 따르는 병사들, 나디아 박사와 쥬죠.
하울링 코만더스 전원. 그리고 다이애나까지.

좁은 방 안은 열기와 땀 냄새, 그리고 묘한 안도감으로 가득 찼다.

“가사 상태라니, 천만다행이군.”

루살카에게 자초지종을 전해 들은 스티브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깨어난 포로들은 내가 인근의 폐허로 옮겨 보호하고 있다.”

다이애나가 팔짱을 낀 채 덧붙였다.

“나는 주기적으로 이곳에 들러 루트비히 일행의 생존을 확인하고, 새로 빼돌린 사람들을 인계받았지. 그러다 너희를 본 것이다. 수상한 침입자들이 내 친구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했으니까.”

오해가 완전히 풀리자, 방 안의 공기가 한결 편해졌다.
하지만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스티브가 나디아를 바라보며 물었다.

“사람을 살리는 건 알겠습니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연구하고 있었길래 이런 위험한 연극을 한 겁니까?”

나디아는 안경을 고쳐 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뱀파이어.”

생뚱맞은 단어에 대원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나디아의 눈은 농담이 아니었다.

“총통이 오컬트에 미쳐있다는 건 알죠? 우린 그게 노망난 늙은이의 망상인 줄 알았어요. 하지만…… 진짜더군요.”

그녀가 책상 위에 놓인 자료를 펼쳤다.

“이곳에서 발견된 정체불명의 시체. 그건 뱀파이어 바이러스였어요. 놈들은 이걸로 죽지 않는 ‘초인 병사’ 군단을 만들 작정이에요.”
“미친…….”

버키가 경악하며 중얼거렸다.

“우린 연구하는 척하며 시간을 끌고, 실패작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빼돌리고 있었던 거예요. 하지만 이것도 한계예요. 본부에서 독촉이 심해지고 있거든요.”

나디아의 말에 루트비히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처리하지.”

스티브가 단호하게 나섰다.

“시설을 폭파하고, 그 끔찍한 ‘시체’도 태워버리면 그만 아닌가? 우리에겐 폭약이 충분히 있어.”

하지만 나디아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렇게 간단하면 좋겠지만…… ‘닥터 미드윈터(Dr. Midwinter)’가 오고 있어요. 내일 새벽에 도착한다는 통보가 왔거든요.”
“미드윈터?”

루살카가 낯선 이름에 의아했다.
루트비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SS 친위대의 오컬트 사냥개다. 이집트 원정에서 고대 저주를 건드려 한쪽 팔을 잃고 본국으로 송환된 미치광이지.”

그는 씁쓸하게 덧붙였다.

“놈은 ‘불멸’에 집착하고 있어. 이 성에 있는 뱀파이어의 시체를 확보해 자신의 잘린 팔을 복구하고, 자신과 총통에게 영생을 얻으려 할 거다. 놈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아.”

이야기를 듣던 버키가 의아한 듯 다이애나를 바라보았다.

“잠깐, 그렇다면 당신이 진작 처리할 수도 있었잖아? 당신 힘이라면 그 시체든, 박사든 한 방에 날려버릴 수 있었을 텐데.”

다이애나가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은 건, 이 성 지하 깊은 곳에 더 위험한 것이 잠들어 있기 때문이다.”
“더 위험한 것?”
“그 시체는 일종의 자물쇠일 뿐이야. 내 힘이 섣불리 충돌하면 그 밑의 봉인이 깨질 수도 있다. 게다가…….”

그녀의 눈동자가 스티브와 대원들을 훑었다.

“인간이 초래한 재앙은, 인간의 손으로 매듭지어야 하는 법. 신이 개입해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스티브가 침를 삼켰다.
그녀가 말하는 ‘지하의 위협’이 무엇인지 묻으려던 찰나였다.

쾅!

밀실의 문이 거칠게 열렸다.
수색을 나갔던 루트비히의 병사 둘이 헐떡이며 뛰어들어왔다.
둘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질려 있었다.

“대, 대위님! 큰일 났습니다!”
“진정해라. 무슨 일이지?”
“닥터 미드윈터가…… 놈들이 벌써 도착했습니다!”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루트비히가 벌떡 일어났다.

“뭐라고? 분명 내일 온다고 했을 텐데!”
“이미 성 외곽을 완전히 포위했습니다! 병력 규모가…… 장난이 아닙니다.”
“안에 있던 SS도 밖에 나온 상태겠군.”
“네, 그틈에 저희가 얼른 문을 잠궜지만, 아마도…”

중무장한 대대가 성문을 두들기고 있는 상황.

내일은 없었다.
저주받을 존재들이 예상보다 일찍, 이빨을 드러낸 채 문 앞에 당도해 있었다.
**
서치라이트의 불빛 아래, 한 사내가 오만하게 서 있었다.
매끄러운 대머리에 차가운 빛을 반사하는 둥근 안경.
그리고 코트 소매 아래로 기계 장치가 드러난 강철 의수까지.

닥터 미드윈터.

그는 닫힌 성문을 보며 이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짐작한 듯 비릿하게 웃었다.

“박사님, 안심하십시오.”

SS 장교 한 명이 다가와 경례를 붙였다.

“우리 돌격대가 즉시 진입하여 ‘시체’를 확보하겠습니다. 박사님께선 그저…….”

타앙―!

미드윈터가 품에서 꺼낸 루거가 불을 뿜자, 장교의 머리가 수박처럼 터져 나갔다.
주변의 병사들이 경악하는 순간,

“주제넘게. 누가 누구에게 맡기라는 거지?”

미드윈터는 쓰러진 시체를 발로 툭 차며 의수로 된 오른손을 가볍게 까딱였다.
그것이 신호였다.

“키에에엑―!”

그가 대동하고 온 친위대 일부가 돌연 기괴한 비명을 질렀다.
섬유가 찢어지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이 부풀어 올랐다.
피부가 녹아내리고 붉은 근육과 뼈가 뒤엉킨 흉측한 살덩어리 괴물로 변모하더니….
놈들은 옆에 서 있던 멀쩡한 동료들을 덮쳤다.

“으아악! 살려줘!”
“이, 이게 무슨…… 끄아악!”

괴물에게 물어뜯긴 병사들은 피를 토하며 경련하더니, 이내 똑같은 괴물이 되어 일어났다.
순식간에 부대는 아비규환의 도가니가 되었다.
미드윈터는 그 참상을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감상했다.

“총통 각하? 흥, 그 콧수염 난 늙은이가 감히 ‘불멸’을 꿈꾸다니.”

그는 피 튀긴 안경을 닦아 다시 쓰며 성을 노려보았다.

“이곳은 내 성지 聖地가 될 것이다. 싹 다 쓸어버려.”

그가 손가락을 튕겼다.

“포격 개시.”

성벽 외곽 나무 위에 매복해 있던 하울링 코만더스의 대원, 게이브 존스는 망원경으로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했다.
어떻게든 놈들의 주파수를 잡고 다른 이들에게 들리게 하고 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더 어지러웠다.
그는 급히 무전기를 움켜쥐었다.

“캡틴! 놈들은 사람이 아니야! 그리고 지금……!”

쿠구구궁―!

게이브의 다급한 외침이 끝나기도 전, 밤하늘을 찢는 굉음이 고막을 강타했다.
#399트루스콜로[모바일]◆dFZ.WlVUja(p/AGCGcKmS)2025-12-04 (목) 02:37:07

**

“게이브! 괜찮아!”

무전기로 내는 다급한 외침.
그리고…

[으어어, 무사해! 겨우 살았어!]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쿠구구궁―!

성이 통째로 흔들렸다.
천장에서 회반죽 가루가 눈처럼 쏟아져 내렸다.
미드윈터의 포격이 시작된 것이다.

“상황 파악 끝.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스티브가 눈빛을 번뜩였다.

“지금부터 팀을 나눈다. 신속하게 움직이자고.”

그는 좌중을 훑었다.

“나, 다이애나, 그리고 루살카. 우리는 곧장 적진을 돌파해서 우두머리, 닥터 미드윈터를 친다.”

가장 강력한 무력을 지닌 셋이 선봉에 선다.
놈의 지휘 체계를 끊어놓지 않으면 이 물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 판단.

“버키.”
“알아. 그 빌어먹을 시체, 아주 가루로 만들어 버리면 되지?”

버키가 소총을 장전하며 씩 웃었다.

“그래. 티모사, 제이나, 모리타! 너희가 버키와 같이 가줘. 나디아 박사와 쥬죠가 길을 안내할 거야. 지하의 연구 시설을 완전히 소각해.”
“맡겨만 줘, 캡틴! ”

티모사가 샷건을 어깨에 걸치며 호쾌하게 대답했다.
옆에 있던 모리타와 제이나도 껌을 질겅 씹으며 거들었다.

“나디아, 뛰다가 넘어지면 두고 간다?”
“흥, 너나 내 뒤꽁무니 놓치지 마.”

나디아와 쥬죠가 장비를 챙기며 일어섰다.

“나머지 대원들은 루트비히 대위와 함께 성문을 사수한다. 저 괴물들이 성 안으로 한 발짝도 못 들어오게 막아.”
“라져!”

명령은 간결했고, 대원들의 대답은 망설임이 없었다.
그때, 다이애나가 심각한 얼굴로 스티브의 말을 잡았다.

“잠깐, 스티브. 폐허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거지? 그가 이 일대를 초토화시킬 작정이라면, 그곳도 안전하지 않아.”

그녀가 보호하던 수십 명의 포로들.
그들은 성 밖, 숲속의 낡은 폐허에 숨어 있었다.
포격이 쏟아진다면 그곳은 무덤이 될 게 뻔했다.

“구하러 가야 하겠군. 하지만 다른 안전한 곳이라면….”

스티브가 심히 고민할 찰나, 루트비히가 끼어들었다.

“아니, 오히려 이 성 안으로 데려와야 해!”
“아니, 지금 성이 공격받고 있는데?”

다이애나의 반론에 그가 다시 반박한다.

“방금 당신 동료가 보내준 통신이라면, 놈은 이 성을 ‘성지’로 삼겠다고 했소. 즉, 성 자체를 완전히 무너뜨리진 않을 거란 말이오.”

놈들이 원하는 건 성 그 자체.
루트비히가 창밖의 불길을 가리켰다.

“놈은 진입로를 확보할 예정이니, 지금 빨리 데리고 와야 하오.”

루트비히의 말을 들은 스티브가 빠르게 판단을 내렸다.

“좋아. 다이애나, 당신은 어떻게든 그들을 성 안으로 대피시켜 줘. 당신 속도라면 가능할 거야. 우리는 먼저 나가서 시선을 끌겠어.”
“알겠어. 금방 돌아오지.”

다이애나가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꽉 쥐었다.

“하울링 코만더스! 지옥을 보여줄 준비 됐나?”
“언제든지!”

스티브의 외침과 함께, 성문이 열린다.

끼이익— 쾅!

육중한 성문이 열리자마자 붉은 살덩어리의 파도가 들이닥쳤다.
이성이 마비된 괴물들의 포효가 마구 울린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은색 유성이 적진 한가운데로 꽂혔다.

“발할라―!!”

루살카였다.
그녀는 어느새 평소의 복장이 아닌, 전신을 감싸는 은빛 갑주를 두르고 있었다.

마치 맹금류의 부리와 기계적인 근육이 융합된 듯한, 이질적이면서도 아름다운 형상.

얼굴까지 완전히 덮은 바이저 너머로 투기가 뿜어져 나왔다.
그녀의 양팔에 달린 블레이드가 춤을 출 때마다 괴물들의 사지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물러서지 마! 밀어붙여!”

스티브가 그 뒤를 따랐다.
방패로 괴물의 턱을 으깨고, 검을 휘둘렀다.

검이 내뿜는 푸른 빛이 닿자, 재생력을 믿고 날뛰던 살덩어리들이 검은 재가 되어 바스러졌다.

용사와 발키리.
두 초인이 만드는 길은 그야말로 폭풍이나 마찬가지!

“이, 이 건방진 쥐새끼들이!”

언덕 위에서 망원경으로 전황을 지켜보던 미드윈터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고작 몇 명에게 자신이 만든 군단이 유린당하고 있으니 당연할 터.

“포위해! 한 놈도 남기지 말고 씹어 먹으란 말이다!”

그의 고함에 괴물들이 방향을 틀어 성벽을 타오르려 했다.
하지만 그곳에는 또 다른 벽이 있었다.

“사격 개시! 한 발도 빗나가게 하지 마라!”

루트비히가 권총을 뽑아 들며 포효했다.
그의 지휘 아래 독일 병사들과 하울링 코만더스의 잔류 병력이 일제히 불을 뿜었다.
기관총과 소총 탄막이 십자포화를 이루며 기어오르는 괴물들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전우가 되어, 완벽한 호흡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었다.

10분.
고작 10분이었지만 체감 시간은 한없이 길었다.
괴물들의 시체가 산을 이뤘지만, 놈들은 끝도 없이 밀려왔다.

“크윽!”

스티브가 방패로 공격을 막아낸 직후, 사각지대에서 튀어나온 괴물이 그의 목을 노렸다.
검으로 막기에는 늦은 타이밍.

그때였다.

콰직―!

강렬한 검기가 공간을 가르며 괴물을 두 조각냈다.
스티브의 옆에, 흩날리는 흑발의 여전사가 착지했다.

“늦지 않았군.”

다이애나였다.
그녀가 검을 털어내며 씩 웃었다.
그리고 그녀의 등장과 동시에, 성벽 위에서 와아아―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리를 지켜준 사람들을 돕자!”
“괴물 놈들을 몰아내!”

놀랍게도 루트비히 쪽이 몰래 빼돌렸던 포로들과 유대인들이었다.
다이애나의 인도로 성 안으로 피신한 그들이, 숨는 대신 싸우기를 택한 것이다.
누군가는 독일 병사가 건네준 여분의 총을, 누군가는 성벽의 돌덩이를 들고 괴물들을 향해 던지고 있었다.

“하! 이거 지원군이 든든한데?”

스티브가 검과 방패를 고쳐 쥐며 미소 지었다.

**
성의 지하.
곰팡내와 오래된 피비린내가 뒤섞인 악취.
나디아와 쥬죠를 선두로 한 별동대는 드디어 성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그곳에는 거대한 석관이 놓여 있었다.
관 뚜껑의 정중앙, 심장이 위치할 자리에는 팔뚝만 한 굵기의 참나무 말뚝이 깊숙이 박혀 있는 상황.

“……저건가.”

티모사 듀간이 샷건을 고쳐 쥐며 마른침을 삼켰다.
압도적인 위압감.
관은 그저 놓여 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공기가 무거웠다.

“네, 저거예요.”

나디아가 안경을 추켜올리며 숨을 골랐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계기판을 확인했다.

“안심해요. 말뚝이 심장을 정확히 관통하고 있어요. 생명 반응은 멈춘 상태…….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불태우는 것 뿐.

“생각보다 싱겁게 끝나겠군.”

버키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소총을 등 뒤로 돌렸다.
제이나와 모리타가 석유 통을 들고 조심스럽게 관으로 다가갔다.

바로 그때…

두군―.

심장 박동 소리?
아니, 착각이 아니었다.
땅바닥을 타고 진동이 전해져 왔다.

“잠깐, 멈춰!”

쥬죠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하지만 늦었다.

끼기긱―.

박혀 있던 말뚝이 스스로 비틀리기 시작했다.
마치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뽑아 올리는 것처럼. 나디아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말도 안 돼…… 수치상으로는 분명 죽어 있었는데!”

콰앙―!

폭음과 함께 거대한 말뚝이 총알처럼 솟구쳐 올랐다.
말뚝은 천장의 콘크리트벽에 깊숙이 처박혔다.
돌가루가 비처럼 쏟아지는 동시에, 석관 전체가 내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산산조각 났다.

“크아아아―!”

폭발하듯 터져 나온 붉은 기운 속에서, 누군가가 몸을 일으켰다.
핏빛보다 붉은 장발이 중력을 거스르며 허공에서 춤을 췄다.
창백하다 못해 투명한 피부, 그리고 시리도록 아름다운 이목구비.
시대의 감각을 초월한, 마성의 미녀였다.

그녀, 아니 ‘그것’은 멍하니 서 있는 대원들을 벌레 보듯 일별하더니, 그대로 무릎을 굽혔다.

“막아! 쏘라고!”

티모사가 소리치며 방아쇠를 당겼다.
하지만 탄환이 닿기도 전에, 그것은 이미 바닥을 박차고 솟아오른 뒤였다.
지하 천장을 종잇장처럼 뚫고 지나간 그것은 전장이 펼쳐진 성 위로 날아올랐다.

“아니, 어째서?!”
“바이러스 활성화…”

나디아가 비통하게 말했다.

“저희는 바이러스를 최대한 빼지 않기 위해서 열악한 환경을 만들었어요. 하지만 그게…”
“바이러스를 오히려 더 안정적으로 유지했다는 건가?!”

다들 할 말을 잃었지만,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저 시체를 쫓아가야 하는 것이었다.

**
성벽 위, 루트비히는 몰려오는 괴물들을 향해 권총을 난사하고 있었다.
탄창이 비어 찰칵 소리가 난 순간, 그의 등 뒤로 서늘한 바람이 불었다.
인기척도 살기도 없었다.

“대위님! 뒤에!”

병사가 소리쳤지만, 붉은 머리의 시체는 이미 루트비히의 머리통을 감싸 쥐고 있었다.

우두둑.

그녀의 창백한 검지 손가락이 루트비히의 오른쪽 눈을 파고들었다.

“크아아악―!”

루트비히의 처절한 비명이 성벽을 울렸다.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그 끔찍한 광경에 얼어붙어 있던 사람들 중, 한 늙은 포로가 몽둥이를 들고 시체에게 달려들었다.

“이 악마야! 떨어져!”

시체는 귀찮다는 듯 루트비히를 내동댕이쳤다.
그리고 포로의 목을 낚아채려던 찰나.

치이익―!

“키에에엑?!”

시체가 기괴한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섰다.
손바닥이 불에 덴 듯 검게 타들어가는 괴이한 상황.
늙은 포로의 목에 걸려 있던 낡은 나무 십자가 묵주가 닿은 곳이었다.

한쪽 눈을 감싸 쥔 채 바닥을 기던 루트비히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중얼거렸다.

“육체의…… 기억인가.”

그는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든 주변에 널린 잔해로 십자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뇌는 죽었어도, 생전의 독실했던 신앙심이…… 육체에 각인되어 본능적으로 거부 반응을 일으키는 건가…!”

시체는 고통스러운 듯 팔을 휘젓더니, 이내 굶주린 눈빛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이내 루트비히를 따라 살아있는 사람들이 십자가를 들고 경계하고 있었다.

이내 시체의 시선은 그들 대신, 성벽을 기어오르던 살덩이 괴물들에게 꽂혔다.

콰직!

시체는 망설임 없이 괴물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검붉은 오물 같은 피가 그녀의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피를 빨린 괴물 하나가 비틀거리더니, 입이 찢어질 듯 벌어지며 거대한 송곳니가 솟아났다.

“크르르르…….”

단순한 좀비 같았던 괴물이, ‘흡혈귀(Vampire)’로 다시 태어났다.
허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시체가 문 것 중 일부가 뒤틀리기 시작했다.

전신의 뼈가 부러지고 다시 맞춰지며, 어떤 건 주둥이가 길어지고, 또 어떤 건 온몸에 털이 숭숭 돋아났다.

“아우우우―!”

늑대였다.
이족 보행을 하는 거대한 늑대인간에 가깝게 변한 것들.
지하에서 뒤늦게 올라온 나디아와 별동대는 그 아수라장을 보고 경악했다.

“맙소사…….”

나디아가 머리를 감싸 쥐며 소리쳤다.

“석관에 있던 건 단순한 뱀파이어가 아니었어! 뱀파이어와 웨어울프(Werewolf)의 바이러스를 동시에 가진 ‘혼종’이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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