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7인의 프라에펙투스가 추가로 합류했다.
단순 계산만이라면 족히 칠천의 이족을 베어낼 수 있을만한 전력이었다.
전쟁신의 계율(戒律)만 아니었다면 칠만을 베어도 이상치 않은 전력이었겠지.
그를 포함한다면 녹귀족(綠鬼族) 중 하나 투귀족(鬪鬼族)의 투선(鬪仙)조차 상대할 수 있을 터였다.
서적으로만 본 존재들이나 상상으로 전력을 비교할 수는 있다.
녹색 피부의 거대한 장한과는 어울리지 않는 천 옷을 걸친 존재들.
짐승의 거죽이 섞이지 않은 의복을 걸친 채로, 세상에 대한 무개입을 부르짖었다는 존재들을 떠올리다 그는 웃었다.
5구의 특색 이상 전력 중 많은 비중이 단숨에 몰렸기 때문인가. 허둥지둥하는 차원문의 접대원이 그의 눈치를 보다 흠칫하나.
그는 그것을 신경쓰지 않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 대신에 5구 격벽의 차원문을 넘어갈 적에 떠올리는 것은 다른 것일 뿐.
군사 행동이 아니기 때문에 민간용으로 차원문에 출입해야 할 적.
13구에 위치한 문에서 연락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접대원의 말에 손을 흔들어 접대원을 밀어내면서 생각했다.
품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군령관의 패에 접대원이 고개를 숙이고, 그는 안전선이랍시고 그려진 하등 의미없는 선을 넘어간다.
...투귀족의 투선은 단신으로 도시를 파괴하는 『전장 붕괴 주문』에 대항했다지.
'야수족의 『황금씨족』도 그 정도인가 ? '
기이한 일이다.
기이한 감상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떠오르는 그 감흥을 부정하지 않은 채 검을 잡아당겼을 뿐이었다.
길게 베이는 손바닥과 그 안에서 떨어지는 핏방울.
혈액 속에 짙게 녹아내린 마력이 있다. 그 마력을 과분할 정도로 공급하며 6위계의 주문 『차원문Dimension Door』을 강제로 가동시켰다.
우우우우웅 ㅡ 하고 떠는 차원문의 너머에서 혈향이 한껏 퍼져올 때.
그는 그것이 기꺼웠다.
"씹어먹을 이족이 잘도 눈치챘나 봅니다."
"우리가 가장 빠르겠군. 그렇지 않나 앙겔로스후 ? "
"글쎄요. 뭐, 변경백들끼리 알아서 조력이라도 불렀다면 또 다르지 않겠습니까 ? "
"흥. 그것들이 과연 그리 알아채기는 했을까."
아마도, 그것이야말로 그도 제국민의 피를 가졌다는 증거겠지.
제국의 피에는 광기가 흐른다.
손 안에 파고들며 핏물에 점칠된 손에, 어릴 적 보던 서사를 읊듯이 그는 중얼거렸고.
"...『쾌락과 광기의 신』이시여, 그대가 내린 광기를 거두소서."
그리고.
그렇게 차원문 너머로 지옥이 펼쳐졌다.
*
광원이 존재하지 않는 어둠 속에서 피비린내가 풍겨온다.
광녕호검(光寧豪劍)의 몸이 차원문을 넘어서는 그 순간에 제 지각을 퍼뜨렸다.
빛의 확산.
망가져버린 차원문 너머로 검호의 기감이 스쳐지나갈 적 드러난 세상이 붉다.
온통 피바다였다는 말이 옳다는 이야기였다.
사람이 조각나며 터져나간 모습, 핏물이 넘쳐흐르며 흩뿌려진 광경과 그 안의 살점.
차원문이 위치하고 있는 최중요지대인 관저가 터무니없이 박살난 풍경 속에서.
검호들의 정신이 진동했다.
[터무니없이 많이 죽었군.]
[관저까지 밀렸다. 이건 첩자를 침투하는 정도가 아닌데.]
[...전면전인가 ? 24년만에 저 치들이 제도에 도전할 준비라도 마쳤다는 얘기란 말인가 ? ]
그것은 의지를 심어(心語)로서 가공하는 인간의 한계에 도달한 무인들의 소통이다.
[그건 모를 일이지. 하지만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그것도 그렇군.]
[성곽요새를 둘러싼 마력 장벽을 넘어서고 침투해온 존재라 이건가.]
혜광심어(慧光心語).
그리 불러야 할 것이 순식간에 서로의 인지와 이해를 교류한다.
그리고 이내, 결론이 나왔다.
[최소한으로 잡아도 만군적(萬軍敵)급이다.]
[생포가 무의미하군.]
[상격(上格)이다. 그리고 아마도 상대를 보조하고 있을 휘하도 존재할 터.]
[그러면 해야 할 일은 간단한가.]
그가 명령하지 않아도 스스로 생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역시, 이토록이나 훌륭한 것이다.
[휘하부터 모조리 죽인다. 상위 개체를 찾으면 주변을 죽인다. 주변을 죽이고 나서 고립시킨 뒤 상위 개체도 죽인다.
완벽하군.]
하여 한 순간에, 허공에 칠흑빛의 광채가 일렁이듯 퍼졌다.
순식간에 검은 선이 어둠 속에 그어지고 있었다.
그 선은 건물 내벽 전체에 그어지고 있었고, 이내 내벽을 뛰어넘어 바깥에 이른다.
절단, 검강(劍罡)이 건물 하나를 가로로 토막친다.
세상이 느릿하게 흘러갈 적.
그리 부숴진 건물의 벽 너머에서는 감지했다는 듯 붉은 불빛이 형형히 타오르고 있었으나, 그것이 무용했다.
극순의 시간 속에서 의지를 관철하는 검호들.
느려진 세계 속에서 발걸음을 내딛을 때 그들의 신형이 분산됨이 그것을 증명했다.
벌천요성검(伐天要星劍), 중획대라검장(重劃大羅劍長), 염양수전(炎陽粹轉), 열광절(列光切), 호조살도(虎嘲煞刀), 무구진마경(無懼進魔勁), 패회성창(覇廻聖槍), 절신구례(切身九例), 용륭(龍隆), 마적팔세(魔寂八勢).
한 걸음이 뻗어지는 그 순간에 펼쳐지는 절예는 열개.
그리고 그렇게 열개의 신형이 각기 뻗어지는 그 순간에 건물의 벽이 쪼개졌다.
움직임의 동력에 대기가 기류 째로 찢어지며 일대를 초토화시킨다.
그리고 그렇게, 혈향의 근원지가 훤히 드러나고 있었다.
그것이 증명하고 있었다.
지옥과도 같은 모습이라는 것은 은유가 아님을.
" ㅡ 바타르 ! "
그곳에는 수도 없이 많은 인간의 얼굴과 거죽을 뒤집어쓴 채 하나가 된 듯한 짐승들이 있었다.
세상의 형체가 일그러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그 모습만은 뚜렷했다.
형형히 울려퍼지고 있는 원념(怨念). 거대하게 뭉친 채 뒤섞이며 일대에 범람하는 주력(呪力).
주력이란 무언가를 바라는 힘이리라.
그리고 그 때문에, 전장에서 더없이 많은 양민을 취한 그것들의 몸에서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삶으로 향하던 갈망이 고스란히 나타나는, 사자(死子)의 육신과 공포가 뒤섞인 갑주가.
그의 걸음이 한 순간 뒤로 물러날 적, 가장 가까이 있던 짐승이 조소했다.
"마흐 ! 우네테이 마흐 ㅡ ! "
" ㅡ 마흐 ! "
"우네 첸테이 마흐 바이나 ㅡ ! "
어둠 속에서 분간되지 않는, 검은 갈기의 늑대가 울부짖을 때 하울링이 화답한다.
천추검인의 칼이 그 몸에 꽂히는 것은 울음소리의 도중이다.
그러나, 짐승이 그것에 개의치 않는다.
꽂힌 그 순간에 제 육신이 십수갈래로 찢어졌음에도 그 안광이 오롯이 빛나고 있다.
사자들의 저주(詛呪).
"추글라르 ㅡㅡㅡ !
수데르 아리스니 우르 사드 아 ! "
"짐승 놈들이 문자 같은 걸 배우더니 이제는 갑옷을 따라 하는가."
"어디까지 잘라내도 이어붙을지가 궁금하군. 천추, 협력하라."
그것이 그들을 이어붙이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불사(不死)의 공능이 펼쳐지는 양상.
집결령과 같은 하울링에 기척이 미친듯이 부풀어오른다.
13구의 요새 도시가 하나 반파되는 수준이 아닌 것처럼, 어쩌면 일만에 가까울지도 모를 주력쇄갑(呪力鎖鉀)이 이어지자 그것들의 신형이 완전히 사라졌다.
오로지 일그러진 사람의 거죽들이 서로 이어붙은 채 나부끼는 이계(異界) 같은 광경만이 보일 뿐.
"주르히그 니 아브 ㅡ ㅡ ㅡ ! ! ! "
키이이잉 ㅡ !
크가각 ㅡ !
그 광경 속에 망설임없이 검호들이 칼 한 자루를 들고 뛰어든다.
그와 상반되게 홀로 부숴진 건물의 파편 뒤에 젖어들던 그는 수인(手印)을 맺었다.
사람의 거죽을 베면서 그 안에서 운신하는 뒤틀린 짐승을 찢어죽이는 검호들을 뒤로 한다.
정면에서 짐승들을 잡아 죽이며 저 치들이 새로 마련한 듯한 갑주를 시험하는 검호들과 달리.
그의 육신은 그대로 그림자 속에 동치된다.
구겁명락율(九劫冥落律)
천마군림(千魔君臨)
암정중좌(暗頂衆座)
' ㅡ 정말이지.'
저리 죽이는 것도 좋다면 좋을 일이겠지.
결국 쳐들어온 모든 야수족은 죽어야 한다는 걸 감안하면 그리 말할 수 있을 터였다.
허나, 그가 해야 할 일은 10명의 검호를 잘 다뤄내 야수족의 군세를 쳐죽이는 게 아니다.
그림자 속에 녹아내린 그의 육신에 이어지듯이 외부의 어둠이 일렁였다.
주력과 원념이 만들어낸 기괴한 세계 속에서도 존재하는 그림자의 포집.
그로서 그는 그림자 속에 몸을 담아 외부와 격리되었음에도, 외부와 연결되었다는 모순을 형상화한다.
'야수족을 보자마자 쓰잘데기없이 쳐죽일 뻔 했군.'
그리고 그렇게 그의 육신이 나즈막히 어둠을 호흡할 때 혈통에 맺어진 결속이 진동했다.
유제니아가 보내온 보고가.
하나의 장면에 가까운 형태로 그의 심상 속에 풀어 해쳐진다.
ㅡ 아, 아아아 ㅡ ! 어째서 ㅡ ! 어째서어어 ㅡ ! 나와 가문만은 살려준다고 하지 않았나 ㅡ !
ㅡ 그 말대로 살아있지 않나, 아크리오티스 변경백.
그대는 살아 숨쉴 것이다. 역사에, 제국의 방위를 실패한 버러지라는 이름으로서.
ㅡ 으아아아악 ㅡ !!
보이는 건 드미트리의 쌍검이 아크리오티스 변경백의 목을 베어넘기는 것.
처형을 위해 단련된 일대흉검(一代凶劍)이 암광(暗光)을 발한다.
변경백의 비명은 완전히 이어지지 못한 채 끊어졌다.
처형과 함께 생자의 모든 원한을 끊어내는 검의 움직임에, 변경백과 그가 맺었던 계약 또한 끊어진 것을 전하면서.
찰칵인다.
ㅡ 아크리오티스의 정령핵은 내성의 최정상에 있었나. 의외군. 군부에서 시간을 오래 보낸 이였으니
ㅡ 어쩌면 다른 사람의 예상을 뛰어넘으려 했던 걸지도 모르지요. 흐흐, 이것도 부술 겁니까 ?
지모신(地母神)의 시체를 부순다니, 반역도 이런 반역이 없을 텐데.
ㅡ 상관없다. 그 녀석에게는 파편만으로도 값질 테니까.
우득거리는 소리와 함께 반신(半神)이 갇혀 있던 정령핵이 유제니아의 손에 잡혔다.
그 손의 악력이 강화된다.
유제니아의 검은 동공이 밤빛을 품은 채로 빛나는 순간에, 회색의 불길이 신살(神殺)을 자행한다.
ㅡ 그리고 이 정도가 아니라면, 그것은 들어오지 않겠지.
찰칵이며.
정령핵 속에 갇혀서 잠들어 있던 반신의 비명이 세상에 얼룩처럼 남았다.
만승윤회궁의 외벽에 귀속되던 요새도시의 성채 결계는 그것으로 끊어졌다.
그리고, 다음.
ㅡ 함정이라.
그 다음이야말로,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