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를 갈무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고갈의 엄청난 장점이다.
[매력 능력치가 1 상승 • • • ]
고갈이 으적, 으적하면서 그 검신이 갈라진 채 시체를 씹어삼킨다. 전투 중에는 빠르게 흡수하던 것과 달리 왠 일인가 느릿하게 먹고 있었다.
아마도 이곳에서는 그닥 급박한 전투가 없다 여기기 때문인가 보지.
그도 별반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기감으로 주변을 훑었다.
'중요한 건 감을 잡는 쪽으로 해둘까.'
중요한 것은 인지.
청천기공이 습합되면서 그의 기감이 기이한 곡선을 그리듯 세상을 파악했고, 한층 더 유연하게 2층은 위까지의 상세를 읽어내린다.
사람이 있었다. 열댓명 정도다.
잠든 이들도, 깨어있는 이들도 있다. 워커를 죽이기 위해 무기라도 만드는 듯한 이들도 눈에 띄었고, 개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하나였다.
2층의 계단참에서 윗층에서 무언가가 내려오지 않나 경계하고 있는 한 남자.
어찌 된 일인지 승화 1단계의 사용자는 열댓명 중에 절반 가까이 있었으나, 그 자는 개중에서도 별격(別格)이었다.
확실히 지명연이 경계할만한 수준이라는 게 느껴지는 단련이 엿보인다.
'칼잡이 셋이라 했지 않았나.'
하지만 문득 생각해보면 우르스 사검류를 가진 사용자였던 워커도 셋이었다.
지명연이 말한 칼잡이 셋은 사실 그 놈들이기라도 했나.
그러면, 지명연이 진짜로 죽이고 싶던 건 셋이 아니라 저 하나였던건가.
어느 쪽일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곳에 신경쓸 만한 칼잡이가 셋 있지 않다는 건 확실한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이야기는 간단해진다.
순식간에 그의 머릿속에서 경로가 정해졌고, 동시에 경로를 거치며 움직일 때 중요시할 것을 다시금 되새겼다.
'투법(鬪法)을 올곧게 하나로 세운다.'
그의 손이 탁탁 털어지고, 화장실 세면대의 수도꼭지가 돌아갔다.
주르륵, 하고 물이 흘러나온다. 그리 생각했는데, 냄새가 혈향이길래 보니까 물 대신에 피와 지방낀 머리카락이 흘러나오길래 수도꼭지를 잠궜다.
문을 연다.
'고갈로 먹어치울 무기술이 습합될 때,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필요없는지의 기준을 오롯세운다.'
내딛은 발이 지면에 진파를 울렸다.
잠든 이들이 깨어날 것이다. 눈 뜬 자들은 더욱이 쉽게 느꼈을 것이었다.
그의 단전 안에서부터 마기가 울려퍼지고 실선처럼 그것은 투사됐다. 건물 안에 기가 흐르는 경로대로 균열이 일어난다.
그것을 보면서.
그는 살인기예라는 것에 맞는, 가장 적합한 파지를 취했다.
'죽인다는 것에 가장 적합한 검술(劍術)의 식을 일궈낸다는 것.'
그것을 생각해내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지.
빠르고, 강하고, 예상할 수 없으면 충분하다. 사람의 피륙은 생각 이상으로 무르다. 그와 같은 호신기공을 자아낼 수 있는 존재는 드물었다...
그러나, 그런 발상이 실제로 그리한지를 파악하는 건 다른 이야기일 것이다.
무릇, 사람이 머릿속으로 떠올린 것과 실제는 달라지기 마련이기에.
우웅...우우우웅...
그의 발걸음이 전등 하나 없는 1층과 복도를 녹이면서, 그 진파를 법학관 건물 안에 흘려넣을 적에.
사람들의 인기척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그는 그들이 나오는 걸 기다리지 않았다.
걸음이 옮겨지고, 호흡은 육체의 움직임과 상응한다.
정적 속에서 소리없는 그의 발걸음이 복도를 지나칠 때.
"으아아아 ㅡ !!! "
문 너머에서 찔러오는 철근을 고갈로 흘려내면서.
수련은 시작됐다.
*
지금까지 사람을 죽이는 방법에 대해 그리 큰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은.
실제로 사람이 죽는 것이 찰나기 때문이다.
고갈의 검면 위로 철근이 스치면서 불씨를 튀긴다.
손목이 아주 약간 비틀렸다. 그것만으로도 고갈이 철근을 짓누르며 그 손목까지 향했다.
당연하게도 상대는 그것에 대응한다.
상대의 팔이 한 순간에 급격하게 구부러지나, 겨우 그 뿐이었다.
더 짧은 각도의 움직임으로 더 큰 힘을 낼 수 있다면 그것이 곧 속도의 차이인 것이다.
상대의 몸에 흐르는 기의 속도와 그의 몸에 흐르는 기의 속도의 차이.
정공(正功)에 비해 족히 두배는 빠르게 움직이는 마공(魔功)이 번뜩였다.
프슉 !
"아, 끄르윽...!!"
그렇게 아주 짧은 찰나만에 승부는 결정됐다.
손목을 날리지는 않았다. 고작해야 피륙의 상처다.
그러나 겨우 그것만으로 상대는 스러진 채 바닥을 기었다.
고갈이 움직인 그 순간에 퍼진 마기의 요동.
고작 그 기척만으로도 내공이 부족한 상대는 중압을 느낀 모양이지.
힘줄이 아주 살짝 도려내졌을 뿐인 손목이지만 놈의 입가에서 흘러나오는 건 피였다.
침음과, 뚝뚝 떨어져 내리는 핏방울들. 내상에 의해 속이 진탕됐다는 증거.
고통이 거셀 터였으나, 놈은 참았다.
'하나.'
워커를 사냥해본 경험이 명확하게 있던 모양이다.
승화 1단계급이 아니었다고 해도, 명확하게 전투 경험이 있었다.
그것이 기꺼웠다.
'이전 사령술사의 놈들보다 낫고.'
끼이이익...
이 하나조차도 워커를 불러들이지 않기 위해 비명을 참는다는 것에서.
남은 것들의 수준을 생각해볼 수 있던 것이다.
머리가 돌아가는 존재들이라면, 그만큼 그가 자신을 갈고 닦기에는 적합한 것.
그 하나의 눈이 명확한 사람을 인지하고 동공이 커진다.
그는 그것을 무시하고서 몇 걸음을 더 옮겼다.
침묵과 정적.
워커가 아니라 사람이 침투해온 것에 경계하기라도 하는 건지 아무것도 오지 않다가.
불현듯이 그의 시야가 일그러졌다.
끼기기긱 !
세상이 붉게 물들었다.
그가 내딛는 발걸음이 어디를 디디는지 알 수 없게 한다.
마치 세상 전체가 핏물에 젖어버린 것처럼, 그의 오감 전부가 물 속에 파묻힌 듯 떨어졌다.
그가 처음으로 겪어보는 종류의 타격이다. 유시우가 쓰는 마력 같은 것인가 했지만 달랐다.
힘의 유동이나 마력이 가해지는 것이 느껴지지 않았기에.
그는 감각 전부가 마비된 순간 오로지 기감에 의지해서 고갈을 들어올렸고.
바로 그 움직임이 그의 목을 찔러 들어오던 검을 위로 걷어냈다.
사람의 신형은, 보이지 않았다. 말소리나 발소리 같은 것도 들리지 않는다.
손바닥에 맺힌 촉감도 불완전했고, 그저 힘이 뭉쳐 있는 것들 몇의 움직임이 어느 정도 보였다.
궁지에 몰린 것 같나.
하지만 그는 딱히 그리 생각하지 않았다.
'딱 좋군.'
적어도 그가 그의 무기술을 제련해내기에는 충분한 스케일링이라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고갈의 움직임이 제대로 이뤄내지지 않기 때문에 합이 성립한다.
ㅡ ! ! !
고갈을 휘젓듯이 움직이는 과정은 상대의 움직임과 병장기의 움직임을 추론한 끝에 이어지는 것.
본능적인 움직임이 그의 이성에 의해 교정됐다.
그는 그가 펼쳐내고 있는 살인기예를 우선적으로 파헤쳤다.
먹어치운 모든 것이 몇차례의 교차 속에서 헤아려졌다.
고갈이 다가오는 것을 모조리 쳐내서 격추할 적에 격검(擊劍)을.
멀리서 찔러들듯 하는 것을 눌러서 밀어낼 적에 사검(絲劍)을.
그 모든 이어지지 않는 움직임을 잇는 제식검술의 기본기(基本技)를.
도합 열일곱번의 교차 속에서 그는 읽어내고, 네번의 공격을 몸에 허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