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18 [AA/잡담판]【천상으로 향하는 천마신교 70F】 (5000)
종료
작성자:天子魔◆lMF.VqjaE.
작성일:2026-04-19 (일) 13:56:49
갱신일:2026-04-26 (일) 12:06:37
#0天子魔◆lMF.VqjaE.(ae668881)2026-04-19 (일) 13:5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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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검 수집가 및 무림백서,블랙 소울의 연재 잡담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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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그 이외는 딱히 없고 나메 및 AA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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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하루 1회 검 수집가를 읽고 잡담판에서 떠드는 의무를 수행하시오.
2.그러면 언젠가 영마공永魔功을 가질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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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61천마◆lMF.VqjaE.(ee977e35)2026-04-22 (수) 04:18:41
대기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리고 길었다 해도, 그것이 그렇게까지 긴지를 그는 체감할 수 없었다.
두 눈을 감고 있든, 뜨고 있든, 시간 감각이라는 것이 박살난 것처럼 쏜살같이 흐르는 듯 하였기에.
감정이 드러나고, 사라지는 것이 그런 것에도 영향을 미치겠거니 했을 뿐인 것이다.
"...성녀..."
그리고 그의 옆에서 라스카리스는 그리 중얼거리고 있었고, 그는 생각했다.
라스카리스는 아직도 양민의 태를 크게 벗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지울 수 있을 만큼 성장시켜야겠노라고.
저 백마(百魔)의 천경만으로도 왠만한 마도술(魔道術)과, 마력을 이용해 펼치는 무공인 마공(魔功)을 수양할 수 있을 터이니.
조합을 궁구해야겠노라고.
그리 생각하고, 후보를 몇 뽑아내고 있으면 금새 시간이 흐른 것이다.
"각하."
"음."
그에게 바르카의 기사는 고개를 숙이며 물러서고, 무너진 요새 도시의 장벽 너머로 길이 열렸다.
안내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너머에 성녀가 있는 것이다.
'과연...어떨까.'
대성전 이후 이백여년 동안 봉문한 채로, 성인을 제외한 사제를 교회 바깥에 들이지 않던 교단이.
성인과 함께 사제를 숱하게 대동하며 찾아왔다.
그 의미.
그녀나 교단을 움직이게 했을 수 밖에 없는 계시.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그의 눈이 가늘어진 채, 그는 앞서 걸어갔다.
*
라스카리스의 발걸음에 맞춰서 걷기를 십분.
넘어가는 순간에 보이는 건 벽 너머, 저 멀리에서 밀려들어오는 듯한 검은 파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저것을 어둠과 분간할 수 없을 터였다.
아직 그 육체가 단련되지 않은 라스카리스가 그러했다.
하여, 걷는 도중 라스카리스의 등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그의 마력을 불어넣으면.
그제서야 라스카리스의 안력이 상승하기 시작하며, 일류 이상의 수준까지 끌어올려진다.
그로서, 라스카리스도 그와 같은 것을 보게 되었다.
"저게, 무슨...? "
"병기들이지. 통제할 권리를 잃어버린."
그곳에는 초월체(超越體)가 존재하고 있었다.
검게 물들어 있는, 수없이 많은 것이 뒤얽힌, 마치 파도와도 같이 흐물거리는 부정형의 군체(群體).
그것의 꿈틀거리는 모습은 인외의 괴물과 같다 말해야 할 듯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는 성스러운 광휘가 침잠하고 있다.
그에 상응하는 광기(狂氣)가 흘러넘치는 것을 신성(神聖) 위에 박혀 있는 말뚝이 가리면서 그것의 형체를 일말이나마 고정하고 있던 것이다.
설령 그러한 고정점이 그것의 몸 안에 존재하는 8개의 신성 중 절반만을 처리할 수 있다 해도.
그것조차도 해낼 수 있음이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네 가치가 떨어질 일은 크게 없다.]
그의 눈 안에 담긴 것이야말로 지모신교 최후의 승천자가 남긴 시체이니.
[저것은 이 요새도시의 정령핵이 무너졌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을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 된다면 이곳은 멸망한다.]
"네 ? "
[반문할 것 없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저것은 정말로 초월체라고 불려 마땅한 것이다.
『녹쇠(祿衰)』.
마주한 모든 것을 녹여서 제 몸 안에 용융시키는, 제국이 만들어낸 괴물은 13구의 드넓은 부지 속에서 그 시체를 거닐고 있으니.
이미 죽어있는 그것이 죽이지 못할 것은 없다.
저것이야말로 지모신교의 상위신이었던 무언가.
지저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신성(神聖)을 재생시킬 지경에 이른 것을 재앙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달리 재앙이라 부를 것도 없으리라.
[내가 상대했던 사자가 용자인 것은, 저런 것을 보고도 제도 안에 침입해올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존재라면 저것을 상대할 수 없지. 우리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다.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도시에 존재하는 것이 정령핵인 법.]
".........그건."
[저것은 신성이 불완전하고 뇌나 자아가 존재치 않는 시체다.
그렇기 때문에 지모신의 일부와 지모신 자체를 구분하지 못하고, 정령핵이 있다면 저것은 침입해오지 않는다.
그만큼이나 귀하다는 이야기지. 정령핵이라는 건.
인공 태양의 역할을 하는 것 이상으로 귀하여, 중앙은 본래라면 정령핵을 쉬이 내놓지 않을 터였다.
차라리 난민들이 피해를 보는 걸 감수하면서 다른 구에 분배하기를 택하려 할 뿐.]
"제가 있다면 다른, 건가요 ? "
[그래.]
그리고 그런 재앙과도 같은 것을 보는 이들 둘이, 그의 시야에 담겼을 때.
그는 침묵했고, 라스카리스는 눈을 크게 떴다.
기가 죽은 듯 침묵하는 아크리오티스 영애...아니 변경백의 모습이 보였고, 죽은 신의 시체를 감상하는 듯한 여인의 모습도 보였다.
회색빛의 머리카락이 인상 깊은 여인이었다.
기시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 옆얼굴에 그의 눈이 찡그려질 때 소리가 들렸다.
"황족이 있다고 한다면 도시와 난민을 버릴 수 없다는 이야기지요.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가 발한 전음을 엿들었음을 드러내는 옥음.
붉은 눈에, 차려입은 갑주.
그 위에 새겨진 전쟁신의 흉포한 인장이 신분을 증명라는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그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것이, 이곳까지 걸음을 옮긴 이유인가 ? "
"글쎄요."
그 무표정한 표정에 담긴 의중을 알기가 어렵다.
『전쟁과 살육의 신』을 모시는 성녀 답지 않게 냉철하다.
차가운 검과 같은 표정과 몸짓.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는 듯 하다가 다시 고개를 내렸다.
"제가 누구를 만나러 왔는지가 당신에게는 중요한가 보군요, 『네메아누스』."
"당연히 그렇다고 해야 하지 않겠나 ?
무려 이백년이다.
이백년만에 교단이 봉쇄를 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리고 더하여 그리 선택된 곳이 이곳일 줄도 몰랐는데 말이야.
그리고, 네메아누스라는 말은..."
"당신을 부르는 코그노멘(別號)입니다.
교단이 당신에게 내리기로 결정한 위명이기도 하며, 침공의 기세를 꺾고 제도 불패의 위업을 유지한 당신을 칭송하는 시민들의 총의이지요.
어디까지나."
그 말 속에 담긴 아주 사수한 어조와 어투에서 그는 읽어낼 수 있었다.
"전장에 직접 발을 들이밀지 않은 이들의 칭송이지만 말입니다."
"...흐."
그녀는 자기 자신을 그런 시민들의 총의와 분리하고 있었다.
나누고 있었고, 다르다고 아주 광고라도 하는 듯 했다.
그녀는, 그리 칭송하는 이들과는 일련의 이 흐름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리 할 이유는 무엇일까.
"확신하냐는 말은 의미가 없겠군."
"흐응."
고작해야, 저주를 흩뿌린 근원지가 누구인지 따위로는 저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자의 시체가 어디에, 어떤 처지로 놓여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파괴의 상흔만 봐도 알 터였을 터이니까.
테무르는 그런 저주 하나 없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그래...그 분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셨지 ? "
"인간이 천상에 계신 이의 뜻을 알고자 합니까 ? "
"뜻을 밝히시지 않으셨을 거라면 그대가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내 옆에 있을 라스카리스가 황실의 혈통을 타고 났음을 그대는 듣지 않고도 알았지."
아크리오티스는 침묵했고, 라스카리스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그 눈을 떨었다.
오로지 그와 성녀만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판을 짜낸 뒤 제국에 그 위명을 널리 하고자 했던 그와, 그런 판에 대해 천상에서 내려진 계시를 얻은 채 찾아왔을 성녀.
둘 모두 서로가 바라는 것과 추구하는 것을 감각하고 있었다.
그는 성녀가 일의 전말을 정도 이상 알고 있을 듯 함에도 쉬이 입을 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성녀는.
"네메아누스."
기이한 일이지만.
그의 사람됨을 경계하는 듯 했다.
"당신은 이 전투에서 전력을 다한 것이 맞습니까 ? "
"맞다."
그리고 다행이었다.
그녀가 타협할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을, 그가 만족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무감각한 눈이 찡그려진다.
그것에, 그는 거짓 한 점 없이 말했다.
"내가 낼 수 있는 전력은 모조리 취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강운이 없었다면 내가 졌겠지."
"흐음..."
"네가 나보다 먼저 만났을 아크리오티스백에게 들었다면 알텐데."
정말로, 어떤 거짓도 담기지 않은, 그런 말을 끄집어냈다.
스스로를 직시하듯이.
당시의 상황과 그 자신의 전력을 비교하고 있었다.
그는 부족했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내가 갖춘 고유한 마도술은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내 마도술을 목격한 이를 남겨두지도 않았을테고."
"........."
"아크리오티스 변경백은 그런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몰랐습니다만, 과연 그렇군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사자는 강했고, 사자는 자신의 강함에 대해 오만할만한 적이었으며.
천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목이 베여나갔을 것은 사자가 아니라 그였을 터였다.
그렇기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 뿐이다.
그것에, 성녀의 눈이 가라앉은 듯 했고, 약간의 한숨을 내쉬다가.
말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다행일 듯 합니다."
"다행이다 ? "
"아크리오티스 변경백에게 도시 바깥으로 원정을 나갈 것을 강권하고 있었는데.
그게 딱히 틀리지 않은 선택인 듯 하니 말입니다."
거진 붕괴나 다름 없는 상태일 도시의 실권자를 도시 바깥으로 내몰려 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그는 그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들었다.
듣고 생각한다. 생각하고 들은 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라스카리스의 입이 벌어지고, 아크리오티스 영애의 표정이 처참하게 굳어 있을 적에, 성녀는 첨언했다.
"신께서 그것을 바라시고 계십니다."
당당한 얼굴로 무슨 말을 하는거냐 싶을 때, 잔잔하게 덧붙여졌다.
"그것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 "
" ㅡ 이상하군."
아크리오티스 영애의 찡그려진 눈이 그를 향하고, 무술도, 마법도 배우지 못해 아직 정련된 투사가 아닌 라스카리스가 기세에 눌린다.
그러나 그와 성녀는 그런 기세를 벗어나 있었다.
아니, 성녀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하잘 것 없는 인간의 발버둥이 아닌가 ? "
"그조차도 전쟁인 법이지요.
그리고 그 분께서는 우리에게 내린 영광을 통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싸우고, 또 싸우며 바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그 모든 것을."
"하."
마치 그를 처음 만날 적의 사자를 보는 것만 같이, 기세를 빗겨가고 있었다.
그것이 존재도 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런 성녀가 하는 말을 이해한다. 그것의 암시를 알았다.
그의 의도라는 것을 읽어내릴 수 있었지만 ㅡ 『전쟁과 살육의 신』은 그의 계획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
혹은 이 세상의 주신(主神)이 그리 판단될 수 있는 계시를 아래에 내렸음을 읽을 수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왜인가.
"그것이 대의(大儀)적으로는 더 옳은 길이라는 것인가 ? "
"대의(大意)라면 모르겠습니다만, 대의(大儀)로 따지자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과연, 『전쟁과 살육의 신』이시다 이건가. 오늘날의 주신 다우시군."
그것을 상대는 우회적으로 돌려서 전하고 있었다.
그의 계획과 발버둥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제국에 이로울 것이라 여겼기 때문임을.
이백만명 정도의 인구수가 희생되는 것 정도는 필요한 손해로 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후에 제국의 관점으로 보자면, 그가 손해본 것 이상으로 제국을 부강하게 하리라 믿었다.
혹은, 그리 만들 것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아크리오티스백을 제 영지에서 축출하는 식으로 돌아간다는 건가 ? "
"........."
그 시선이야말로, 저 드높은 천상의 십이주신궁(十二主神宮)의 제일신(第一神)에게 허용된 것일 터이니.
성녀가 이리 나서는 것의 기저에 깔리는 전제라는 것은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이리 아크리오티스 영애를 압박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줄이야.
표정이 좋지 않은 듯한 아크리오티스가 고개를 돌리고, 무덤덤하게 성녀가 그걸 보다 말했다.
"첫번째 제안이 거절되었기 때문일 뿐입니다."
"첫번째 제안 ? "
"예. 결국 당신이 운신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터가 필요할 테고.
그것은 이미 수많은 이권이 얽혀있는 중앙이 아니라, 외부로 뻗어나갈 수 있는 변경이 아닙니까."
머리가 괜찮은건가 싶은 그런 말이, 그의 귓가에 흘러들 때, 그는 아크리오티스 영애가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제안했을 뿐입니다.
결국 요새도시의 방위에 성공한 것은 자력이 아니라 외부의 조력에 의한 것.
그렇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이 또한 존재할 터이니, 종군(從軍)하여 전쟁교단과 함께 제도 바깥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당신과 결혼하여 변경백령의 이권을 어느 정도 분할할 것인지."
"허 ? "
이게 무슨 밑도 끝도 없는 극론이란 말인가.
정신이 나간 거 아닌가 싶어 바라보지만 성녀는 흔들림이 없다.
이 여자, 진심이다.
".........나는 약혼녀가 있는데 ? "
"압니다. 그래서 약혼녀보다 먼저 결혼하되, 첩이 되라 했지요."
".........? "
진심으로 이 정도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던건가 ?
성녀, 한 교단의 성인(聖人)이라 해야 할 존재.
아무리 그녀가 성흔(聖痕)을 갖춤으로서 교단의 실권을 가진 존재이며, 『전쟁과 살육의 신』이야말로 만신전의 필두교회라고 해도.
요새도시의 변경백을 저리 가볍게 위압할 수 있는 것인가 ?
아니라면, 그녀도 그에게 향할 조력이라는 것에 그만큼의 공을 기울이는 것인가 ?
그도 아니면.
"...배반할 수 없을만한 대가를 동반하라는 것이군."
"결혼동맹의 파기는 파멸입니다. 『결혼과 가정의 여신』께서 공증해주실 테지요."
"과연."
그것의 목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 다변적이라는 이야기인가.
그는 아크리오티스 영애를 본다.
긴 금발에 벽안, 미색이 출중하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결혼이라는 인생의 무덤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차갑게 일그러진 그 표정만 보아도 만일 결혼이라도 한다면 어떤 결말이 날지는 알 법 하니까. 그리고 더해서 레티시아가 신나서 춤이라도 추는 광경을 볼 수도 없는 일이지.
비록, 그에게는 제안이라는 것이 들어오지 않았다지만, 아크리오티스 영애에게만 저 문제가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떠올려내는 데 성공한다.
"...어쩔 수 없군. 하지, 결혼 동맹."
"무슨 ? "
"어쩔 수 없지 않나, 아크리오티스백.
파문을 당하거나, 종군하여 쫓겨나는 것보다, 그나마 나은 선택지가 결혼인 게 당연할텐데."
"아니, 하지만, 그런 건..."
"특히 지금 상황만으로는 이 영지에 답이 없기도 하고, 자치령으로서의 존재 능력을 상실한 것 같기도 하지.
그러니, 필요할 것 아닌가.
내가 이 영지에서 발견했던 황실의 피가 이 도시에서 실권자가 되는 것도."
"읏..."
지금 상황을 해결할 타개책을 떠올린 그가 내민 발언에, 좌중의 모두의 표정이 가릴 수 없이 변할 뿐.
라스카리스가 경악하고, 아크리오티스가 멍해졌다.
"그러니 라스카리스 영애와 결혼하게, 아크리오티스백.
『결혼과 가정의 여신』의 이름 앞에, 그대들의 결혼에 내가 주례를 서주지.
이 결혼이 망가지거나, 불화로 무너진다면, 주례를 선 내게도 화가 돌아오게끔 말이야."
그리고 성녀의 무감각한 표정이,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금이 갔을 때.
그는 꽤나 희석되어 있는 감정의 발현으로도 확연히 두드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것이 바로 그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 "
그는 성녀의 의향을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모두가 원치 않을 선택을 내리면서 즐거움을 느꼈고.
그리고.
그 말 이후 대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진 채 그는 걸음을 옮겼다.
분노한 아크리오티스백의 발광과 포효, 기타 잡다한 반응들은 대화가 아니다.
더해서 끝내 이어진 인정마저도 대화라고 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인정.
ㅡ 하면...하면 되잖아요...!! 할게요 !! 하겠습니다 그 결혼 ㅡ !!!!
그 비명같은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그는 성녀에게 라스카리스를 남겨둔 채로.
그가 가야 할 곳을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 길었다 해도, 그것이 그렇게까지 긴지를 그는 체감할 수 없었다.
두 눈을 감고 있든, 뜨고 있든, 시간 감각이라는 것이 박살난 것처럼 쏜살같이 흐르는 듯 하였기에.
감정이 드러나고, 사라지는 것이 그런 것에도 영향을 미치겠거니 했을 뿐인 것이다.
"...성녀..."
그리고 그의 옆에서 라스카리스는 그리 중얼거리고 있었고, 그는 생각했다.
라스카리스는 아직도 양민의 태를 크게 벗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러한 것을 지울 수 있을 만큼 성장시켜야겠노라고.
저 백마(百魔)의 천경만으로도 왠만한 마도술(魔道術)과, 마력을 이용해 펼치는 무공인 마공(魔功)을 수양할 수 있을 터이니.
조합을 궁구해야겠노라고.
그리 생각하고, 후보를 몇 뽑아내고 있으면 금새 시간이 흐른 것이다.
"각하."
"음."
그에게 바르카의 기사는 고개를 숙이며 물러서고, 무너진 요새 도시의 장벽 너머로 길이 열렸다.
안내해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저 너머에 성녀가 있는 것이다.
'과연...어떨까.'
대성전 이후 이백여년 동안 봉문한 채로, 성인을 제외한 사제를 교회 바깥에 들이지 않던 교단이.
성인과 함께 사제를 숱하게 대동하며 찾아왔다.
그 의미.
그녀나 교단을 움직이게 했을 수 밖에 없는 계시.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그의 눈이 가늘어진 채, 그는 앞서 걸어갔다.
*
라스카리스의 발걸음에 맞춰서 걷기를 십분.
넘어가는 순간에 보이는 건 벽 너머, 저 멀리에서 밀려들어오는 듯한 검은 파도.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저것을 어둠과 분간할 수 없을 터였다.
아직 그 육체가 단련되지 않은 라스카리스가 그러했다.
하여, 걷는 도중 라스카리스의 등 위에 손을 올려놓은 채 그의 마력을 불어넣으면.
그제서야 라스카리스의 안력이 상승하기 시작하며, 일류 이상의 수준까지 끌어올려진다.
그로서, 라스카리스도 그와 같은 것을 보게 되었다.
"저게, 무슨...? "
"병기들이지. 통제할 권리를 잃어버린."
그곳에는 초월체(超越體)가 존재하고 있었다.
검게 물들어 있는, 수없이 많은 것이 뒤얽힌, 마치 파도와도 같이 흐물거리는 부정형의 군체(群體).
그것의 꿈틀거리는 모습은 인외의 괴물과 같다 말해야 할 듯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는 성스러운 광휘가 침잠하고 있다.
그에 상응하는 광기(狂氣)가 흘러넘치는 것을 신성(神聖) 위에 박혀 있는 말뚝이 가리면서 그것의 형체를 일말이나마 고정하고 있던 것이다.
설령 그러한 고정점이 그것의 몸 안에 존재하는 8개의 신성 중 절반만을 처리할 수 있다 해도.
그것조차도 해낼 수 있음이 기적이라 할 수 있었다.
[사실 네 가치가 떨어질 일은 크게 없다.]
그의 눈 안에 담긴 것이야말로 지모신교 최후의 승천자가 남긴 시체이니.
[저것은 이 요새도시의 정령핵이 무너졌기 때문에 얼마 지나지 않아 이곳을 인식할 것이다.
그리고 그리 된다면 이곳은 멸망한다.]
"네 ? "
[반문할 것 없다. 이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니까.]
저것은 정말로 초월체라고 불려 마땅한 것이다.
『녹쇠(祿衰)』.
마주한 모든 것을 녹여서 제 몸 안에 용융시키는, 제국이 만들어낸 괴물은 13구의 드넓은 부지 속에서 그 시체를 거닐고 있으니.
이미 죽어있는 그것이 죽이지 못할 것은 없다.
저것이야말로 지모신교의 상위신이었던 무언가.
지저에서 존재하지도 않는 신성(神聖)을 재생시킬 지경에 이른 것을 재앙이라 부르지 않는다면, 달리 재앙이라 부를 것도 없으리라.
[내가 상대했던 사자가 용자인 것은, 저런 것을 보고도 제도 안에 침입해올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보통의 존재라면 저것을 상대할 수 없지. 우리도 그렇고, 상대도 그렇다.
...상대할 수 없기 때문에 도시에 존재하는 것이 정령핵인 법.]
".........그건."
[저것은 신성이 불완전하고 뇌나 자아가 존재치 않는 시체다.
그렇기 때문에 지모신의 일부와 지모신 자체를 구분하지 못하고, 정령핵이 있다면 저것은 침입해오지 않는다.
그만큼이나 귀하다는 이야기지. 정령핵이라는 건.
인공 태양의 역할을 하는 것 이상으로 귀하여, 중앙은 본래라면 정령핵을 쉬이 내놓지 않을 터였다.
차라리 난민들이 피해를 보는 걸 감수하면서 다른 구에 분배하기를 택하려 할 뿐.]
"제가 있다면 다른, 건가요 ? "
[그래.]
그리고 그런 재앙과도 같은 것을 보는 이들 둘이, 그의 시야에 담겼을 때.
그는 침묵했고, 라스카리스는 눈을 크게 떴다.
기가 죽은 듯 침묵하는 아크리오티스 영애...아니 변경백의 모습이 보였고, 죽은 신의 시체를 감상하는 듯한 여인의 모습도 보였다.
회색빛의 머리카락이 인상 깊은 여인이었다.
기시감.
어디선가 본 것 같은 그 옆얼굴에 그의 눈이 찡그려질 때 소리가 들렸다.
"황족이 있다고 한다면 도시와 난민을 버릴 수 없다는 이야기지요.
알고 있습니다."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그가 발한 전음을 엿들었음을 드러내는 옥음.
붉은 눈에, 차려입은 갑주.
그 위에 새겨진 전쟁신의 흉포한 인장이 신분을 증명라는 그녀가 고개를 돌리고.
그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그것이, 이곳까지 걸음을 옮긴 이유인가 ? "
"글쎄요."
그 무표정한 표정에 담긴 의중을 알기가 어렵다.
『전쟁과 살육의 신』을 모시는 성녀 답지 않게 냉철하다.
차가운 검과 같은 표정과 몸짓. 그녀는 천장을 바라보는 듯 하다가 다시 고개를 내렸다.
"제가 누구를 만나러 왔는지가 당신에게는 중요한가 보군요, 『네메아누스』."
"당연히 그렇다고 해야 하지 않겠나 ?
무려 이백년이다.
이백년만에 교단이 봉쇄를 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고, 그리고 더하여 그리 선택된 곳이 이곳일 줄도 몰랐는데 말이야.
그리고, 네메아누스라는 말은..."
"당신을 부르는 코그노멘(別號)입니다.
교단이 당신에게 내리기로 결정한 위명이기도 하며, 침공의 기세를 꺾고 제도 불패의 위업을 유지한 당신을 칭송하는 시민들의 총의이지요.
어디까지나."
그 말 속에 담긴 아주 사수한 어조와 어투에서 그는 읽어낼 수 있었다.
"전장에 직접 발을 들이밀지 않은 이들의 칭송이지만 말입니다."
"...흐."
그녀는 자기 자신을 그런 시민들의 총의와 분리하고 있었다.
나누고 있었고, 다르다고 아주 광고라도 하는 듯 했다.
그녀는, 그리 칭송하는 이들과는 일련의 이 흐름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면 그리 할 이유는 무엇일까.
"확신하냐는 말은 의미가 없겠군."
"흐응."
고작해야, 저주를 흩뿌린 근원지가 누구인지 따위로는 저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사자의 시체가 어디에, 어떤 처지로 놓여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파괴의 상흔만 봐도 알 터였을 터이니까.
테무르는 그런 저주 하나 없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걸.
"그래...그 분께서는 무어라 말씀하셨지 ? "
"인간이 천상에 계신 이의 뜻을 알고자 합니까 ? "
"뜻을 밝히시지 않으셨을 거라면 그대가 이곳에 오지도 않았을 것임을 믿는다.
그리고, 내 옆에 있을 라스카리스가 황실의 혈통을 타고 났음을 그대는 듣지 않고도 알았지."
아크리오티스는 침묵했고, 라스카리스는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듯 그 눈을 떨었다.
오로지 그와 성녀만이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판을 짜낸 뒤 제국에 그 위명을 널리 하고자 했던 그와, 그런 판에 대해 천상에서 내려진 계시를 얻은 채 찾아왔을 성녀.
둘 모두 서로가 바라는 것과 추구하는 것을 감각하고 있었다.
그는 성녀가 일의 전말을 정도 이상 알고 있을 듯 함에도 쉬이 입을 열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리고, 성녀는.
"네메아누스."
기이한 일이지만.
그의 사람됨을 경계하는 듯 했다.
"당신은 이 전투에서 전력을 다한 것이 맞습니까 ? "
"맞다."
그리고 다행이었다.
그녀가 타협할 수 있는 한계라는 것을, 그가 만족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
무감각한 눈이 찡그려진다.
그것에, 그는 거짓 한 점 없이 말했다.
"내가 낼 수 있는 전력은 모조리 취했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강운이 없었다면 내가 졌겠지."
"흐음..."
"네가 나보다 먼저 만났을 아크리오티스백에게 들었다면 알텐데."
정말로, 어떤 거짓도 담기지 않은, 그런 말을 끄집어냈다.
스스로를 직시하듯이.
당시의 상황과 그 자신의 전력을 비교하고 있었다.
그는 부족했다.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면 내가 갖춘 고유한 마도술은 보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 내 마도술을 목격한 이를 남겨두지도 않았을테고."
"........."
"아크리오티스 변경백은 그런 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었기 때문에 몰랐습니다만, 과연 그렇군요."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사자는 강했고, 사자는 자신의 강함에 대해 오만할만한 적이었으며.
천운이 따르지 않았다면 목이 베여나갔을 것은 사자가 아니라 그였을 터였다.
그렇기에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진실 뿐이다.
그것에, 성녀의 눈이 가라앉은 듯 했고, 약간의 한숨을 내쉬다가.
말했다.
"그리고 그렇다면 다행일 듯 합니다."
"다행이다 ? "
"아크리오티스 변경백에게 도시 바깥으로 원정을 나갈 것을 강권하고 있었는데.
그게 딱히 틀리지 않은 선택인 듯 하니 말입니다."
거진 붕괴나 다름 없는 상태일 도시의 실권자를 도시 바깥으로 내몰려 했다는 그런 이야기를.
그는 그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들었다.
듣고 생각한다. 생각하고 들은 게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라스카리스의 입이 벌어지고, 아크리오티스 영애의 표정이 처참하게 굳어 있을 적에, 성녀는 첨언했다.
"신께서 그것을 바라시고 계십니다."
당당한 얼굴로 무슨 말을 하는거냐 싶을 때, 잔잔하게 덧붙여졌다.
"그것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 "
" ㅡ 이상하군."
아크리오티스 영애의 찡그려진 눈이 그를 향하고, 무술도, 마법도 배우지 못해 아직 정련된 투사가 아닌 라스카리스가 기세에 눌린다.
그러나 그와 성녀는 그런 기세를 벗어나 있었다.
아니, 성녀는.
"그럴만한 가치가 없는, 하잘 것 없는 인간의 발버둥이 아닌가 ? "
"그조차도 전쟁인 법이지요.
그리고 그 분께서는 우리에게 내린 영광을 통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싸우고, 또 싸우며 바치는 삶과 죽음에 대한 그 모든 것을."
"하."
마치 그를 처음 만날 적의 사자를 보는 것만 같이, 기세를 빗겨가고 있었다.
그것이 존재도 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런 성녀가 하는 말을 이해한다. 그것의 암시를 알았다.
그의 의도라는 것을 읽어내릴 수 있었지만 ㅡ 『전쟁과 살육의 신』은 그의 계획을 긍정하고 있다는 것.
혹은 이 세상의 주신(主神)이 그리 판단될 수 있는 계시를 아래에 내렸음을 읽을 수 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왜인가.
"그것이 대의(大儀)적으로는 더 옳은 길이라는 것인가 ? "
"대의(大意)라면 모르겠습니다만, 대의(大儀)로 따지자면 그럴지도 모르지요."
"과연, 『전쟁과 살육의 신』이시다 이건가. 오늘날의 주신 다우시군."
그것을 상대는 우회적으로 돌려서 전하고 있었다.
그의 계획과 발버둥이라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제국에 이로울 것이라 여겼기 때문임을.
이백만명 정도의 인구수가 희생되는 것 정도는 필요한 손해로 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후에 제국의 관점으로 보자면, 그가 손해본 것 이상으로 제국을 부강하게 하리라 믿었다.
혹은, 그리 만들 것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게 아크리오티스백을 제 영지에서 축출하는 식으로 돌아간다는 건가 ? "
"........."
그 시선이야말로, 저 드높은 천상의 십이주신궁(十二主神宮)의 제일신(第一神)에게 허용된 것일 터이니.
성녀가 이리 나서는 것의 기저에 깔리는 전제라는 것은 알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것이 이리 아크리오티스 영애를 압박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줄이야.
표정이 좋지 않은 듯한 아크리오티스가 고개를 돌리고, 무덤덤하게 성녀가 그걸 보다 말했다.
"첫번째 제안이 거절되었기 때문일 뿐입니다."
"첫번째 제안 ? "
"예. 결국 당신이 운신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는 터가 필요할 테고.
그것은 이미 수많은 이권이 얽혀있는 중앙이 아니라, 외부로 뻗어나갈 수 있는 변경이 아닙니까."
머리가 괜찮은건가 싶은 그런 말이, 그의 귓가에 흘러들 때, 그는 아크리오티스 영애가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그러니 제안했을 뿐입니다.
결국 요새도시의 방위에 성공한 것은 자력이 아니라 외부의 조력에 의한 것.
그렇다면 그 책임을 물어야 할 이 또한 존재할 터이니, 종군(從軍)하여 전쟁교단과 함께 제도 바깥으로 나갈 것인가.
아니면, 당신과 결혼하여 변경백령의 이권을 어느 정도 분할할 것인지."
"허 ? "
이게 무슨 밑도 끝도 없는 극론이란 말인가.
정신이 나간 거 아닌가 싶어 바라보지만 성녀는 흔들림이 없다.
이 여자, 진심이다.
".........나는 약혼녀가 있는데 ? "
"압니다. 그래서 약혼녀보다 먼저 결혼하되, 첩이 되라 했지요."
".........? "
진심으로 이 정도로 압력을 행사하고 있던건가 ?
성녀, 한 교단의 성인(聖人)이라 해야 할 존재.
아무리 그녀가 성흔(聖痕)을 갖춤으로서 교단의 실권을 가진 존재이며, 『전쟁과 살육의 신』이야말로 만신전의 필두교회라고 해도.
요새도시의 변경백을 저리 가볍게 위압할 수 있는 것인가 ?
아니라면, 그녀도 그에게 향할 조력이라는 것에 그만큼의 공을 기울이는 것인가 ?
그도 아니면.
"...배반할 수 없을만한 대가를 동반하라는 것이군."
"결혼동맹의 파기는 파멸입니다. 『결혼과 가정의 여신』께서 공증해주실 테지요."
"과연."
그것의 목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 다변적이라는 이야기인가.
그는 아크리오티스 영애를 본다.
긴 금발에 벽안, 미색이 출중하다.
그러나, 그렇다 해서 결혼이라는 인생의 무덤에 아무렇지 않게 들어가고 싶은 것은 아니었다.
차갑게 일그러진 그 표정만 보아도 만일 결혼이라도 한다면 어떤 결말이 날지는 알 법 하니까. 그리고 더해서 레티시아가 신나서 춤이라도 추는 광경을 볼 수도 없는 일이지.
비록, 그에게는 제안이라는 것이 들어오지 않았다지만, 아크리오티스 영애에게만 저 문제가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떠올려내는 데 성공한다.
"...어쩔 수 없군. 하지, 결혼 동맹."
"무슨 ? "
"어쩔 수 없지 않나, 아크리오티스백.
파문을 당하거나, 종군하여 쫓겨나는 것보다, 그나마 나은 선택지가 결혼인 게 당연할텐데."
"아니, 하지만, 그런 건..."
"특히 지금 상황만으로는 이 영지에 답이 없기도 하고, 자치령으로서의 존재 능력을 상실한 것 같기도 하지.
그러니, 필요할 것 아닌가.
내가 이 영지에서 발견했던 황실의 피가 이 도시에서 실권자가 되는 것도."
"읏..."
지금 상황을 해결할 타개책을 떠올린 그가 내민 발언에, 좌중의 모두의 표정이 가릴 수 없이 변할 뿐.
라스카리스가 경악하고, 아크리오티스가 멍해졌다.
"그러니 라스카리스 영애와 결혼하게, 아크리오티스백.
『결혼과 가정의 여신』의 이름 앞에, 그대들의 결혼에 내가 주례를 서주지.
이 결혼이 망가지거나, 불화로 무너진다면, 주례를 선 내게도 화가 돌아오게끔 말이야."
그리고 성녀의 무감각한 표정이, 그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금이 갔을 때.
그는 꽤나 희석되어 있는 감정의 발현으로도 확연히 두드러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이것이 바로 그가 살아가는 이유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나 ? "
그는 성녀의 의향을 충분히 존중하면서도 모두가 원치 않을 선택을 내리면서 즐거움을 느꼈고.
그리고.
그 말 이후 대화는 얼마 지나지 않아 끊어진 채 그는 걸음을 옮겼다.
분노한 아크리오티스백의 발광과 포효, 기타 잡다한 반응들은 대화가 아니다.
더해서 끝내 이어진 인정마저도 대화라고 할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그 인정.
ㅡ 하면...하면 되잖아요...!! 할게요 !! 하겠습니다 그 결혼 ㅡ !!!!
그 비명같은 목소리를 떠올리면서, 그는 성녀에게 라스카리스를 남겨둔 채로.
그가 가야 할 곳을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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