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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A/잡담판]【천상으로 향하는 천마신교 9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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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07[AA/잡담판]【천상으로 향하는 천마신교 96F】종료

작성자 뇌정군림마제◆iH65mhCkiK작성일 2026-10-03 (토) 04:08:23갱신일 2026-10-11 (일) 10:4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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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비서실장의 머리가 돌아버린 모양이다.

이유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입 밖으로 내뱉으면 죄업이 쌓일까 굳이 말하지는 않았다.

세상은 잔혹한 것이지만, 생각만큼은 자유로운 법이겠지. 죄스러운 행위를 입에 담거나 움직이지만 않으면 대체로는 괜찮다는 행동 원리로 그는 살고 있었다.

"꺄악! 파스텔에서 봤던 그 분수다!"
"와...저건 무슨 7층까지 싹 애니로 도배가 되있냐?"
"야! 너 저런 거 좋아하지 않나?"
"뭐래...이 씨, 들어가볼까?"
'...이 잔악한 외화유출범놈들.'

그리고 그렇기에 일본, 아키하바라를 홀로 걷는 이유현은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한국어에 속으로만 혀를 찬 것이다.

이곳에서 바글바글 거리는 한국인들을 모아서 유출시킨 외화를 세게 만들면 과연 어느 정도 양이 될까.

감히 오성이 반도체를 통해 비승하여 천상에 이를 기계신을 만드는 지금, 그 돈을 일본 따위에 낭비하고 있는건가?

그들은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단 말인가?

'...내가 스카이넷을 만드는 데 성공하면 오성 주주를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대가를 치루게 만들어주지.'

물론 실제로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어디까지나 생각은 자유인 법이다.

수행인 하나 없이 일본에서 살 집을 꾸리기 위한 전자용품이나 생필품을 사러 나온 이유현은, 그저 이리 생각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이곳저곳 걸음을 옮겼다.

길가에 붙어있는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의 포스터를 보고 전생의 향수를 느끼기도 하고, 19금 포스터가 떡하니 붙어서 몸을 노출하거나, 수위 높은 피규어가 전시된 2층 건물의 창문을 노려보거나...

그런 식으로 걸어가며, 처음 느껴보는 일본 거리를 즐기기로 한 것이다.

— 지금보다 먼 곳으로, 당신을 데려다줄게. 다음 스테이지로 가자, 3, 2, 1 — 『Triad Primus』.

번쩍이는 전광판에서는 아이돌의 광고 영상같은 게 나오고.

— 우리의 꿈을 들어주세요! 『TwinBox』에서 단독 라이브 결정! 1월 17일 『Pastel*Palettes』가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아이돌...인지 뭔지 모르겠는, 미녀들의 목소리가 광고처럼 건물 한켠에서 흘러나온다던가.

"어이! 거기 서라 — !! 공공장소에서 거리 공연같은 건 금지라고!"
"으에에엑! 도망쳐!!"

아니면 버스킹이라도 하던 것 같은 여자들이 거리를 돌던 순경을 피해서 도망친다던가 하는...

그런 것을 흥미진진하게 보면서, 그는 걷고 있던 것이다.

사실 진실되게 말하자면 그는 혼자 살게 된 김에 집의 방 안을 꾸며볼 피규어나 2D 용품을 사볼까 하고, 전생의 기억을 살려서 찾아와본 거였지만 이런 광경을 보니 꽤 재밌다고 생각했다.

뭐가 재밌냐면, 바로 그거다.

— 아키하바라가, 원래 이런 식으로 아이돌이니 밴드니 뭐니 하는 것에 뒤덮여 있는 곳이었던가?

"응?"

아니, 실제로 아키하바라에는 그가 예상했던 데로 2D 애니메이션 용품이 넘쳐났기는 했지.

그가 전생에 보았던 『진격의 거인』이나 『귀멸의 칼날』이나, 전생의 지금 시기에 유행했었던 양산형 이세계 판타지 소설 같은 것의 상품이야 많았다.

그런데 그 비율이 50% 정도 수준에 그쳤고, 그것들과 어우러지는 게...

2D 오타쿠와는 상극인 것 같은 아이돌이나 밴드 용품들인 것이다.

"어서오세요!"
딸랑~

그는 길을 지나쳐가다가 피규어같은 게 전시되어 있는 샵에 들어가서 제 생각을 검증해보았다.

애니메이션 캐릭터와 함께 전시되어 있는 뭔지 모를 캐릭터. 아직 읽는 게 아리까리하지만 미나토...아쿠아? 유키나? 암튼 그리 적혀 있는 피규어를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전시 상자 안의 그걸 꺼내서, 치마 아래를 들여다본 것이다.

" — 에엣!? 손님, 그러시면 안 되요!"
"이거 하나 삽시다."
"네, 네...? 그건 전시용이고, 비매품이라...그그그 내려놓으세요!"
"비슷한 상품의 10배나 20배면 됩니까?"
"에."

치마 아래에 팬티가 있을지를 의심해보았지만 딱히 그런 건 없었다.

2D랑은 생긴 게 다르다 싶더니 역시나 현실 여성을 모티브로 한 느낌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팬티 같은 건 구현이 안 되고 검게 칠해진 페인트만 있는거고.

전시장 뒤나 가게 안을 보면, 역시나 이곳에도 현실 여성인 것 같은 아이돌 용품이나 밴드 용품이 많고...이것의 모티브가 된 여자도 『Roselia』니 뭐니 하며 입간판이 한쪽에 붙어져 있었다.

그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그의 옆에서 뭐라 쫑알거리는 알바생에게 카드를 쥐어주었다.

"20만엔. 긁어서 퉁칩시다. 어차피 내가 잡아서 전시용으로 하기도 뭐할 테니까."
"에, 에에..."

...뭔가를 알 듯 말 듯하다.

뭔가가 기억날 듯 말듯 하다가...
그는 사장한테 전화해보겠다며 사라진 알바생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도대체 그가 무엇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인지를.




***




"또, 또 오세요...?"

결과적으로 이유현은 뭐가 문제인지 기억해내지도 못했고, 그에게 주어진 롯폰기의 펜트하우스를 꾸밀 피규어만 잔뜩 사게 됐다.

아마 지금쯤이면 그가 쓸 컴퓨커나 냉장고, 가전제품 같은 걸 전 일본지사장이 설치하고 있을까.

설마 간이 크게 도청장치나 그런 걸 깔아두지는 않을거라 생각하며, 그는 또 다시 태평스레 걸었다.

도대체 이렇게 자유롭게 걸어다닌 게 얼마만인지 떠올리다가, 고개를 들고, 하늘을 보며 생각한 것이다.

의문점 하나.

'일본이 이런 식으로 밴드나 아이돌이 넘쳐흐르는 곳이었나?'

그런 이미지는 Kpop같은 쪽에 오히려 어울리는 게 아니었나.

아니, 애니메이션에나 관심이 있고 일본 문화 시장에는 반도체가 엮이거나 진출할 일도 없어서 관심을 아무리 안 줬다지만...

이 세계 일본은 뭔가...
뭔가 이상하지 않나?

"음..."

뭔가 기이했다.

건물 표면에 붙어있는 『스쿨 아이돌』의 광고 포스터, 『프로젝트 크로네』니 뭐니 하는 프로덕션의 홍보도, 곳곳에 붙은 『다이아몬드 더스트』니 여러 밴드 이름같은 것들도.

그가 아는 일본의 분위기와는 달라서, 일본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았지만 이유현의 눈이 약간 가라앉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와중에도 또 떠올리는 것이다.

"...일본을 와봤어야 아는 거긴 한가?"

전생, 현생 포함해서 그는 일본에 와본 적이 없다.

그러다보니 비교하는 분위기라고 할게 그의 머릿속 일본이었는데, 지금은 기억도 흐릿한 애니메이션발 일본이라...

그냥 이게 맞는 것도 같고 아니기도 하고.

애매했다.
정말로.

"음?"
띠리리링...

그리고 그러던 와중에, 그에게 전화가 걸려왔고 말이다.

저장해둔 적 없는 번호기는 했지만 누구 전화인지는 알았다. 알려준 적도 없는 번호로 전화를 걸어올 수 있는 쪽이라면, 뻔하니까.

삑,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연결되고.

— 이, 이사님.
"뭔데."
— 그, 초대가 들어왔습니다.
"...초대?"

귓가로 들려오는 목소리는, 일본지사장의 것.

— 현 총리 일파에 속해있는 대신(大臣) 중 하나가, 아마 반도체 관련 기업체와 엮여 있는 듯한데...이사님이 최근 일본에 입국한 걸 눈치챈 듯 하여...
"아니, 그야 눈치야 채겠지. 총리든 내각대신이든 눈치를 못채면 그 놈들이 무능한거니까. 그래서 뭔 초대인데?"
— ...그, 본인의 딸의 생일 자리를 맞아 여러 가문이 초청될 예정인데, 그 자리를 빛내주시길 바란다 합니다.
"생일...?"

그가 이곳에 왔을 때보다 더 창백하게 질린 것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이다.

물론 그는 그런 목소리의 염려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았고, 애시당초에 생일잔치 초대 따위도 그냥 무시하고 있었다.

대강 생각하기에는 그 늙은 대신이 노망이 왔다고 여길 뿐인 것이다.

그가 미국의 신진 AI 기업가들의 정신을 주식과 반도체 거래로 마인드 브레이크 시키는 게 취미였었다는 사실을 모르기라도 하는걸까.

한국에서는 그와 사적으로 접하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물을 건너오니 고작 이런 작은 판 따위로 그를 엮어보려는 모양이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가 코웃음을 치면, 그걸 뭐라 이해했는지 일본지사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 하지만 제가 알아보기로는 일반적인 자리가 아닙니다...! 현 내각대신 중 가장 세가 두드러진 『후지와라』가의 초청인만큼 일본의 4대 재벌인 『시노미야』, 『사이온지』, 『츠루마키』, 『미나세』 중 둘이나...
"옛날에 오성이 상대했던 곳들로 이름은 들어봤던 이류 그룹들이군."
— 예?
"지금은 네곳을 다 합쳐야 오성과 비슷해지는 정도의 수준이고."

그렇게 다급하게 말할만한...
그런 이유는 있어 보였기는 하지만 말이다.

시노미야, 일본 내 재계(財界)를 독점한 재벌일가. 사이온지, 일본 내 유통, 식품 산업을 차지한 승자. 츠루마키, 항공, 레저, 관광 산업을 맡은 곳에...미나세, 에너지, 건설, 전자기기 등의 사업을 운용하며 그와도 한번 각이 설 뻔 했던 곳.

이름은 들어본 곳들이었다.

오성이 반도체 및 AI 업계의 호황을 전부 먹어치우기 전에는, 오성과 아시아 최대 기업을 겨루며 승부해왔던 곳이기도 했고.

언젠가...아주 먼 옛날에는 그 기업들의 자제를 봤던 적도 있던가, 없었던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그랬었던 것도 같았다.

그런데, 그런 곳들 중 두 곳이 온다고 하면 그가 찾아가기에는 충분한 곳이 될까.

— .........거, 거절해두면 되겠습니까?
"잠시."

오성에서 AI관련 업무로 미국한테 두들겨 맞는 걸 버티고, 동시에 그 화풀이를 미국 회사에게 향하던 걸 낙으로 삼던 그였으나, 지금은 이빨 빠진 개 신세다.

올려다본 하늘에는 먹구름이 끼어있고, 곧 비가 올 것도 같아서.

그는 우산 하나 없고, 수행인도 없는 그의 신세를 생각하다가...이왕 이리 된 거 좀 내려놓고 살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거, 이름이 뭐지?"
— 이름이요?
"생일파티 열린다는 거."
— 아, 후지와라가의 여식 말씀이면...

어차피 도쿄대까지 나와야 하고, 시장 점유율도 낮은 일본에 오성전자의 물품을 알려야 하면 어디 발로 뛰어보자.

전문적인 기업 운영 교육을 받은 그의 형과 달리 할 줄 아는 건 미래 지식으로 반도체를 독점하고, AI에 몰린 거품을 들이마시던 것 같은 삶에서도 벗어날 때가 됐다.

그저 그렇기에.
그가 이전에 쓰던 짐이 들어와 있을 집으로 돌아가며, 그는 마지막으로 들은 이름을 머릿속에 기억해두었다.

— 후지와라 치카. 예, 후지와라 치카라고 합니다. 17세이니, 이사님보다는 1살 나이가 많...
"끊는다."

어떻게 사람 이름이 치카지?

일본인들의 미적 감각이란 건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서울에 비하면 한없이 미개하게 돌아가는 열차를 타고...

그렇게, 롯폰기로 되돌아간 것이다.

관광이야 뭐, 차근차근 하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