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여관◆zAR16hM8he(046ff5c8)2026-05-08 (금) 11:53:24
엽편 — 조커는 누구의 손에 있는가
왕궁의 작은 여관방에는 그날 밤, 다섯 사람이 모여 있었다.
벽난로에는 불이 타고 있었고, 탁자 위에는 차와 말린 과일, 작은 과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푸리나 헤툼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카드 한 벌을 꺼냈다.
“좋아.”
그레이는 찻잔을 들다가 멈췄다.
“군주님.”
“오늘은 정말 안전해.”
“그 말을 하시는 순간부터 불안합니다.”
“오늘은 전쟁도, 회의도, 신술 실험도, 분수대도 없어.”
죠니가 의자에 기대 말했다.
“분수대는 왜 빠져야 하는데?”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필수 항목입니다.”
레이튼은 카드 뒷면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카드 놀이입니까?”
푸리나는 기다렸다는 듯 카드를 탁자 위에 펼쳤다.
“조커뽑기!”
하융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조커뽑기라.”
“응. 규칙은 간단해. 같은 숫자 짝을 버리고, 옆 사람 카드 한 장을 뽑아. 마지막까지 조커를 들고 있는 사람이 패배!”
죠니가 말했다.
“간단해서 좋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간단한 규칙일수록 인간의 본성이 잘 드러나지요.”
그레이는 카드 더미를 보며 말했다.
“먼저 규칙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도 알아. 그래서 그레이가 싫어할 만한 조항을 미리 적어왔어.”
그레이는 경계했다.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양피지를 펼쳤다.
조커뽑기 특별 규칙
1. 신술 사용 금지.
2. 가능성 관측 금지.
3. 상대의 표정 분석은 허용.
4. 레이튼의 유도 질문은 1턴 1회까지.
5. 죠니의 “그냥 감”은 허용.
6. 그레이의 규칙 추가는 시작 전까지만 허용.
7. 푸리나의 극적 연출은 게임 진행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허용.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7번이 가장 위험합니다.”
“왜?!”
“‘방해하지 않는 선’의 기준이 불분명합니다.”
레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지적입니다. ‘방해’란 무엇인가부터 정의해야겠군요.”
죠니가 말했다.
“시작 전에 끝나겠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다른 가능성에서는 규칙 논의만으로 새벽이 되었소.”
푸리나는 급히 말했다.
“좋아! 그러면 규칙 논의 금지!”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안 됩니다.”
“그레이!”
“규칙 논의 금지는 규칙이므로, 그 규칙 자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푸리나는 카드를 끌어안았다.
“카드 놀이 하나 하기가 이렇게 어려워?!”
죠니가 건조하게 말했다.
“네 가신들이잖아.”
푸리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
어쨌든 게임은 시작되었다.
첫 판.
카드는 공평하게 나뉘었다.
하융은 자기 손패를 보자마자 눈을 감았다.
푸리나가 바로 외쳤다.
“하융! 가능성 관측 금지!”
하융은 조용히 눈을 떴다.
“관측하지 않았소.”
“그럼 왜 눈 감았어?”
“내 손에 조커가 들어온 가능성을 마음에서 받아들이고 있었소.”
죠니가 말했다.
“들어왔네.”
하융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그 침묵을 기록하듯 바라보았다.
“하융 님, 표정 관리가 필요합니다.”
“표정을 숨기는 것은 익숙하지 않소.”
죠니가 피식 웃었다.
“너는 말 안 하면 더 티 나.”
레이튼은 자기 카드를 정리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수수께끼군요. 조커를 가진 사람은 조커를 숨기는가, 아니면 숨기려는 마음을 숨기는가?”
그레이가 말했다.
“레이튼 님, 유도 질문 1회 사용하셨습니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게임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푸리나는 자기 손패를 보며 활짝 웃었다.
“후후후.”
죠니가 말했다.
“푸리나도 있네.”
“없어!”
“너무 빨라.”
“진짜 없어!”
그레이는 푸리나의 손패를 보지 않고 말했다.
“군주님께 조커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푸리나는 충격받았다.
“왜?!”
“조커가 없을 때의 군주님은 보통 ‘좋아, 내가 이겼다!’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웃음으로 넘기셨습니다.”
죠니가 감탄했다.
“그레이 무섭네.”
레이튼도 고개를 끄덕였다.
“관찰력이 훌륭합니다.”
푸리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이건 카드 게임이 아니라 심문이잖아.”
하융이 조용히 말했다.
“조커뽑기란 본래 심문에 가까운 놀이였던 것이오?”
“아니야!”
---
첫 번째로 죠니가 푸리나의 카드를 뽑았다.
푸리나는 카드들을 부채처럼 펼치고, 아주 극적으로 말했다.
“자, 죠니 경. 선택하라. 그대의 운명을!”
죠니는 한 장을 뽑았다.
조커였다.
푸리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죠니는 조커를 보더니 조용히 자기 손패에 섞었다.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레이가 중얼거렸다.
“가장 위험한 유형입니다.”
레이튼이 말했다.
“실제로 조커를 뽑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군요.”
하융은 죠니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다른 가능성에서도 그대 표정은 똑같았소.”
죠니가 말했다.
“그럼 쓸모없네.”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다음은 하융 차례였다.
하융은 죠니의 카드를 뽑아야 했다.
죠니는 손패를 내밀었다.
아무 표정도 없었다.
하융은 손을 뻗다가 멈췄다.
그의 눈앞에 가능성이 열리려 했다.
오른쪽 끝 카드. 조커.
왼쪽 두 번째 카드. 숫자 7.
가운데 카드. 조커였던 세계.
죠니가 카드를 섞는 세계.
하융이 실수로 조커를 뽑고 침묵하는 세계.
하융은 눈을 질끈 감았다.
푸리나가 외쳤다.
“하융!”
“보지 않았소.”
“방금 봤지?!”
“보이려는 것을 보지 않으려 애썼소.”
그레이가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노력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뽑으십시오. 눈을 감으면 다른 의미로 위험합니다.”
하융은 눈을 뜨고 아무 카드나 뽑았다.
조커였다.
죠니가 피식 웃었다.
“왔네.”
하융은 조커를 들고 한참 바라보았다.
“이 카드는 참으로 많은 세계를 거쳐 내게 오는구려.”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하융, 지금 굉장히 패배자 같아!”
“아직 패배하지 않았소.”
그레이가 말했다.
“그러나 현재 조커 보유자이긴 합니다.”
하융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은 가혹하오.”
---
다음은 레이튼이 하융에게서 카드를 뽑을 차례였다.
하융은 손패를 펼쳤다.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런데 너무 평온해서 오히려 수상했다.
레이튼은 턱에 손을 얹었다.
“하융 경.”
“말하시오.”
“지금 가장 뽑히고 싶지 않은 카드는 무엇입니까?”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유도 질문입니다. 이번 턴 1회 사용.”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내가 가장 뽑히고 싶지 않은 카드는, 그대가 뽑으면 나의 조커가 사라지는 카드요.”
푸리나가 멈췄다.
“어?”
죠니가 말했다.
“그럼 조커 아니잖아?”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조커가 뽑히면 내 손에서 사라지니, 나에게는 가장 뽑히고 싶은 카드이기도 하오.”
레이튼의 눈이 빛났다.
“흥미롭군요.”
그레이가 낮게 말했다.
“카드 한 장 뽑는 데 철학을 넣지 마십시오.”
레이튼은 웃으며 카드를 뽑았다.
조커였다.
하융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현실이 조금 가벼워졌소.”
레이튼은 조커를 보더니 미소 지었다.
“아, 이런.”
그레이가 그를 보았다.
“조커입니까?”
레이튼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레이 양.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아니요.”
“아직 묻지도 않았습니다.”
“레이튼 님이 ‘질문을 하나’라고 말하는 순간 대체로 심리전입니다.”
죠니가 말했다.
“그레이도 무섭네.”
푸리나는 억울한 얼굴이었다.
“왜 나만 심리전 못 해?”
죠니가 바로 말했다.
“너는 얼굴에 다 나와.”
“너무해!”
---
이제 그레이의 차례였다.
그레이는 레이튼에게서 카드를 뽑아야 했다.
레이튼은 손패를 펼쳤다.
“자, 그레이 양. 어느 카드가 답일까요?”
그레이는 카드를 보았다.
그리고 레이튼의 얼굴을 보았다.
다시 카드를 보았다.
“레이튼 님.”
“예.”
“가운데 카드를 조금 더 앞으로 내미셨습니다.”
“그랬습니까?”
“오른쪽 끝 카드는 일부러 손가락에 힘을 주셨고, 왼쪽 두 번째 카드는 지나치게 무심하게 들고 계십니다.”
레이튼은 즐겁게 웃었다.
“훌륭합니다.”
“따라서 셋 다 미끼입니다.”
푸리나가 감탄했다.
“오오.”
그레이는 아주 평온하게 가장 평범해 보이는 카드를 뽑았다.
조커였다.
정적.
죠니가 작게 말했다.
“레이튼이 이겼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레이는 조커를 자기 손패에 넣었다.
표정이 차가워졌다.
푸리나는 그레이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
“그레이.”
“예.”
“조커 있어?”
“없습니다.”
“방금 봤는데?”
“없습니다.”
죠니가 말했다.
“현실 부정이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다른 가능성에서도 그레이 양은 똑같이 없다고 했소.”
그레이는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조커는 행정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레이튼은 손뼉을 쳤다.
“놀랍군요. 카드 한 장이 문서상 말소되었습니다.”
푸리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
그레이는 푸리나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이제 푸리나가 뽑을 차례였다.
푸리나는 그레이의 손패를 보았다.
그레이의 표정은 완벽했다.
너무 완벽했다.
푸리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레이가 이렇게 무표정이면 더 무서워.”
그레이는 차분히 말했다.
“뽑으십시오.”
“혹시 지금 조커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 생각은?”
“없습니다.”
“왕명으로도?”
“게임 중 왕명 남용은 금지입니다.”
“그런 규칙 없었어!”
“지금 추가하겠습니다.”
푸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규칙 추가는 시작 전까지만 가능하잖아!”
그레이는 잠시 멈췄다.
“……그렇군요.”
죠니가 말했다.
“푸리나가 규칙으로 이겼네.”
푸리나는 기세를 되찾았다.
“좋아. 나는 내 배우의 감으로 뽑겠어.”
그녀는 손을 뻗었다.
왼쪽 끝 카드.
그레이의 눈썹이 1밀리미터 움직였다.
푸리나는 손을 멈췄다.
“방금 움직였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움직였어! 왼쪽 끝이 조커구나!”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의기양양하게 오른쪽 끝 카드를 뽑았다.
조커였다.
푸리나는 얼어붙었다.
그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군주님은 너무 역방향으로 생각하십니다.”
죠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레이튼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가능성은 꽤 선명했소.”
푸리나는 조커를 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레이…… 너…… 연기했어?”
그레이는 아주 작게 말했다.
“군주님께 배웠습니다.”
푸리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배신! 이것은 제자의 배신이야!”
“저는 제자가 아닙니다.”
“아니, 지금부터 제자야!”
“안 됩니다.”
---
게임은 점점 이상해졌다.
죠니는 조커를 뽑아도 표정이 없었다.
하융은 조커를 뽑을 때마다 “이 가능성은 닫히지 않았구려”라고 말했다.
레이튼은 조커를 들고도 상대에게 “정말 그 카드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어 사람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레이는 점점 더 완벽한 무표정으로 모두를 압박했다.
푸리나는 조커가 손에 들어올 때마다 지나치게 극적인 절망을 표현했다.
“오, 운명이여! 어찌하여 이 광대의 얼굴을 내게 맡기는가!”
죠니가 말했다.
“시끄러워서 조커 있는 거 다 알아.”
“아차.”
그레이가 말했다.
“군주님, 표정과 대사를 줄이십시오.”
“그건 나 자신을 버리라는 말이야.”
“게임 승리를 위해 필요한 조치입니다.”
푸리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레이튼이 말했다.
“흥미롭군요. 승리하기 위해 자신다움을 버릴 것인가, 패배하더라도 자신답게 남을 것인가.”
죠니가 바로 말했다.
“그냥 조용히 하면 되잖아.”
레이튼은 웃었다.
“그 또한 하나의 답입니다.”
푸리나는 손패를 들고 중얼거렸다.
“좋아. 이제부터 완벽한 포커페이스.”
3초 뒤.
하융이 그녀의 카드를 뽑으려 하자, 푸리나의 눈동자가 조커를 따라갔다.
죠니가 말했다.
“실패.”
푸리나는 카드로 얼굴을 가렸다.
---
마지막 세 사람이 남았다.
푸리나, 그레이, 죠니.
레이튼은 탈락했지만, 탈락자라기보다 해설자가 되었다.
하융은 조커에서 해방된 뒤로 이상하게 평온해졌다. 그는 옆에서 차를 마시며 말했다.
“이제 조커의 흐름이 맑게 보이는구려.”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말하지 마십시오.”
“말하지 않겠소.”
푸리나는 의심했다.
“하융, 너 지금 누구 손에 있는지 알아?”
하융은 잠시 침묵했다.
“규칙상 말할 수 없소.”
“그 말은 안다는 뜻이잖아!”
“말할 수 없소.”
죠니는 무심하게 카드를 섞었다.
그레이는 그를 바라보았다.
“죠니 경.”
“응.”
“방금 카드 순서를 바꾸셨습니까?”
“손이 심심해서.”
“불필요한 움직임입니다.”
“하지만 재밌지.”
푸리나는 이마를 짚었다.
“둘 다 너무 읽기 어려워.”
그레이가 말했다.
“군주님은 너무 읽기 쉽습니다.”
“알아!”
죠니가 그레이에게서 카드를 뽑았다.
짝이 맞았다.
죠니는 조용히 카드를 버렸다.
그레이의 손패는 두 장.
푸리나의 손패도 두 장.
죠니의 손패 한 장.
죠니가 말했다.
“이제 거의 끝났네.”
푸리나가 죠니를 노려보았다.
“네 손에 조커야?”
죠니는 대답했다.
“아니.”
푸리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너는 거짓말을 너무 담담하게 해서 모르겠어.”
죠니가 말했다.
“진짜 아닌데.”
그레이가 죠니의 손에서 카드를 뽑았다.
짝이 맞았다.
그레이는 손패를 모두 버렸다.
탈출.
푸리나는 절망했다.
“그레이가 먼저 나갔어!”
그레이는 아주 작게 승리의 숨을 내쉬었다.
“규칙에 따른 정상적인 결과입니다.”
레이튼이 박수를 쳤다.
“훌륭합니다. 행정의 승리군요.”
죠니와 푸리나만 남았다.
푸리나의 손패 두 장.
죠니의 손패 한 장.
죠니가 푸리나에게서 한 장을 뽑아야 했다.
푸리나는 두 장을 들고 있었다.
하나는 조커.
하나는 숫자 카드.
푸리나는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무표정을 하려 했다.
입술을 다물었다.
눈동자를 고정했다.
호흡도 줄였다.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왼쪽이네.”
푸리나가 움찔했다.
“아니야!”
“왼쪽이 조커네.”
“아니라고!”
죠니는 오른쪽을 뽑았다.
숫자 카드였다.
짝이 맞았다.
죠니는 카드를 버렸다.
푸리나의 손에는 조커만 남았다.
침묵.
푸리나는 조커를 들고 굳어 있었다.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패배입니다.”
푸리나는 조커를 바라보았다.
조커는 웃고 있었다.
마치 푸리나를 비웃는 것처럼.
푸리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커를 높이 들었다.
“좋아.”
그레이가 경계했다.
“군주님.”
“인정하겠다.”
죠니가 말했다.
“오.”
푸리나는 장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오늘의 조커는 나다!”
그레이가 말했다.
“그건 패배 선언입니다.”
“아니. 주인공 선언이야.”
레이튼은 웃었다.
“관점의 전환이군요.”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패배한 가능성을 극으로 바꾸는구려.”
죠니가 말했다.
“푸리나다운 정신승리네.”
푸리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패자는 벌칙을 받는 법. 말해라. 이 조커에게 어떤 시련을 내릴 것이냐!”
그레이가 기다렸다는 듯 양피지를 꺼냈다.
푸리나의 표정이 굳었다.
“왜 준비되어 있어?”
“군주님께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레이!”
그레이는 양피지를 읽었다.
“벌칙. 내일 오전 공식 일정 전까지 추가 업무 금지. 야간 외출 금지. 최소 수면 여덟 시간.”
푸리나는 조커보다 더 절망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건 벌칙이 아니라 감금이야!”
죠니가 말했다.
“패자는 조용히 받아들여야지.”
레이튼이 덧붙였다.
“좋은 게임에는 좋은 교훈이 따르는 법입니다.”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주님이 자는 가능성이 밝아졌소.”
푸리나는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 처음부터 이걸 노렸지?”
그레이는 아주 평온하게 말했다.
“게임은 공정했습니다.”
죠니는 말했다.
“네가 못한 거야.”
레이튼은 말했다.
“표정이 너무 훌륭한 단서였습니다.”
하융은 말했다.
“조커가 군주님을 좋아하더구려.”
푸리나는 조커 카드를 움켜쥐었다.
“좋아. 다음 판.”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안 됩니다.”
“왜?!”
“패자는 벌칙을 수행해야 합니다.”
푸리나는 카드 뭉치를 끌어안았다.
“한 판만 더!”
죠니가 말했다.
“그럼 또 질걸.”
“안 져!”
레이튼이 미소 지었다.
“그 말은 보통 조커를 부릅니다.”
하융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음 판에서도 군주님 손에 조커가 가는 가능성이……”
푸리나가 외쳤다.
“말하지 마!”
그레이는 카드를 정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푸리나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조커는 너무 잔인한 게임이야.”
죠니가 말했다.
“표정 관리 연습엔 좋네.”
레이튼은 말했다.
“인간 이해에도 훌륭하지요.”
하융은 말했다.
“가능성을 보지 않는 연습에도 좋았소.”
그레이는 카드를 상자에 넣으며 말했다.
“그리고 군주님을 재우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푸리나는 중얼거렸다.
“다시는 조커뽑기 안 해.”
죠니가 물었다.
“내일 또 하자고 할 거지?”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벽난로가 타닥였다.
작은 여관방에는 오랜만에 회의도, 전쟁도, 장례도 없는 웃음이 남았다.
그리고 탁자 한가운데에는 조커 카드가 한 장 놓여 있었다.
푸리나는 그 카드를 노려보다가, 결국 슬쩍 품에 넣었다.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군주님.”
푸리나는 움찔했다.
“왜?”
“카드 반출 금지입니다.”
푸리나는 조커를 품에서 꺼냈다.
“……안 됩니다.”
그레이는 아주 만족스럽게 카드를 회수했다.
죠니는 웃었다.
레이튼은 박수를 쳤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왕국에서 가장 강한 카드는 조커가 아니라 그레이 양이구려.”
그레이는 카드를 상자에 넣으며 대답했다.
“그런 카드가 있다면, 사용을 금지하겠습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웃었다.
왕궁의 작은 여관방에는 그날 밤, 다섯 사람이 모여 있었다.
벽난로에는 불이 타고 있었고, 탁자 위에는 차와 말린 과일, 작은 과자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푸리나 헤툼은 아주 진지한 얼굴로 카드 한 벌을 꺼냈다.
“좋아.”
그레이는 찻잔을 들다가 멈췄다.
“군주님.”
“오늘은 정말 안전해.”
“그 말을 하시는 순간부터 불안합니다.”
“오늘은 전쟁도, 회의도, 신술 실험도, 분수대도 없어.”
죠니가 의자에 기대 말했다.
“분수대는 왜 빠져야 하는데?”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필수 항목입니다.”
레이튼은 카드 뒷면을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카드 놀이입니까?”
푸리나는 기다렸다는 듯 카드를 탁자 위에 펼쳤다.
“조커뽑기!”
하융은 조용히 눈을 깜빡였다.
“조커뽑기라.”
“응. 규칙은 간단해. 같은 숫자 짝을 버리고, 옆 사람 카드 한 장을 뽑아. 마지막까지 조커를 들고 있는 사람이 패배!”
죠니가 말했다.
“간단해서 좋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간단한 규칙일수록 인간의 본성이 잘 드러나지요.”
그레이는 카드 더미를 보며 말했다.
“먼저 규칙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나도 알아. 그래서 그레이가 싫어할 만한 조항을 미리 적어왔어.”
그레이는 경계했다.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양피지를 펼쳤다.
조커뽑기 특별 규칙
1. 신술 사용 금지.
2. 가능성 관측 금지.
3. 상대의 표정 분석은 허용.
4. 레이튼의 유도 질문은 1턴 1회까지.
5. 죠니의 “그냥 감”은 허용.
6. 그레이의 규칙 추가는 시작 전까지만 허용.
7. 푸리나의 극적 연출은 게임 진행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허용.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7번이 가장 위험합니다.”
“왜?!”
“‘방해하지 않는 선’의 기준이 불분명합니다.”
레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지적입니다. ‘방해’란 무엇인가부터 정의해야겠군요.”
죠니가 말했다.
“시작 전에 끝나겠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다른 가능성에서는 규칙 논의만으로 새벽이 되었소.”
푸리나는 급히 말했다.
“좋아! 그러면 규칙 논의 금지!”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안 됩니다.”
“그레이!”
“규칙 논의 금지는 규칙이므로, 그 규칙 자체에 대한 논의가 필요합니다.”
푸리나는 카드를 끌어안았다.
“카드 놀이 하나 하기가 이렇게 어려워?!”
죠니가 건조하게 말했다.
“네 가신들이잖아.”
푸리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
어쨌든 게임은 시작되었다.
첫 판.
카드는 공평하게 나뉘었다.
하융은 자기 손패를 보자마자 눈을 감았다.
푸리나가 바로 외쳤다.
“하융! 가능성 관측 금지!”
하융은 조용히 눈을 떴다.
“관측하지 않았소.”
“그럼 왜 눈 감았어?”
“내 손에 조커가 들어온 가능성을 마음에서 받아들이고 있었소.”
죠니가 말했다.
“들어왔네.”
하융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그 침묵을 기록하듯 바라보았다.
“하융 님, 표정 관리가 필요합니다.”
“표정을 숨기는 것은 익숙하지 않소.”
죠니가 피식 웃었다.
“너는 말 안 하면 더 티 나.”
레이튼은 자기 카드를 정리하며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첫 번째 수수께끼군요. 조커를 가진 사람은 조커를 숨기는가, 아니면 숨기려는 마음을 숨기는가?”
그레이가 말했다.
“레이튼 님, 유도 질문 1회 사용하셨습니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게임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그래서 더 문제입니다.”
푸리나는 자기 손패를 보며 활짝 웃었다.
“후후후.”
죠니가 말했다.
“푸리나도 있네.”
“없어!”
“너무 빨라.”
“진짜 없어!”
그레이는 푸리나의 손패를 보지 않고 말했다.
“군주님께 조커가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푸리나는 충격받았다.
“왜?!”
“조커가 없을 때의 군주님은 보통 ‘좋아, 내가 이겼다!’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웃음으로 넘기셨습니다.”
죠니가 감탄했다.
“그레이 무섭네.”
레이튼도 고개를 끄덕였다.
“관찰력이 훌륭합니다.”
푸리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이건 카드 게임이 아니라 심문이잖아.”
하융이 조용히 말했다.
“조커뽑기란 본래 심문에 가까운 놀이였던 것이오?”
“아니야!”
---
첫 번째로 죠니가 푸리나의 카드를 뽑았다.
푸리나는 카드들을 부채처럼 펼치고, 아주 극적으로 말했다.
“자, 죠니 경. 선택하라. 그대의 운명을!”
죠니는 한 장을 뽑았다.
조커였다.
푸리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죠니는 조커를 보더니 조용히 자기 손패에 섞었다.
표정 변화가 없었다.
그레이가 중얼거렸다.
“가장 위험한 유형입니다.”
레이튼이 말했다.
“실제로 조커를 뽑았는지 아닌지 알 수 없군요.”
하융은 죠니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다른 가능성에서도 그대 표정은 똑같았소.”
죠니가 말했다.
“그럼 쓸모없네.”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다음은 하융 차례였다.
하융은 죠니의 카드를 뽑아야 했다.
죠니는 손패를 내밀었다.
아무 표정도 없었다.
하융은 손을 뻗다가 멈췄다.
그의 눈앞에 가능성이 열리려 했다.
오른쪽 끝 카드. 조커.
왼쪽 두 번째 카드. 숫자 7.
가운데 카드. 조커였던 세계.
죠니가 카드를 섞는 세계.
하융이 실수로 조커를 뽑고 침묵하는 세계.
하융은 눈을 질끈 감았다.
푸리나가 외쳤다.
“하융!”
“보지 않았소.”
“방금 봤지?!”
“보이려는 것을 보지 않으려 애썼소.”
그레이가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노력은 인정하겠습니다. 하지만 눈을 뜨고 뽑으십시오. 눈을 감으면 다른 의미로 위험합니다.”
하융은 눈을 뜨고 아무 카드나 뽑았다.
조커였다.
죠니가 피식 웃었다.
“왔네.”
하융은 조커를 들고 한참 바라보았다.
“이 카드는 참으로 많은 세계를 거쳐 내게 오는구려.”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하융, 지금 굉장히 패배자 같아!”
“아직 패배하지 않았소.”
그레이가 말했다.
“그러나 현재 조커 보유자이긴 합니다.”
하융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현실은 가혹하오.”
---
다음은 레이튼이 하융에게서 카드를 뽑을 차례였다.
하융은 손패를 펼쳤다.
그의 표정은 평온했다.
그런데 너무 평온해서 오히려 수상했다.
레이튼은 턱에 손을 얹었다.
“하융 경.”
“말하시오.”
“지금 가장 뽑히고 싶지 않은 카드는 무엇입니까?”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유도 질문입니다. 이번 턴 1회 사용.”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내가 가장 뽑히고 싶지 않은 카드는, 그대가 뽑으면 나의 조커가 사라지는 카드요.”
푸리나가 멈췄다.
“어?”
죠니가 말했다.
“그럼 조커 아니잖아?”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조커가 뽑히면 내 손에서 사라지니, 나에게는 가장 뽑히고 싶은 카드이기도 하오.”
레이튼의 눈이 빛났다.
“흥미롭군요.”
그레이가 낮게 말했다.
“카드 한 장 뽑는 데 철학을 넣지 마십시오.”
레이튼은 웃으며 카드를 뽑았다.
조커였다.
하융은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현실이 조금 가벼워졌소.”
레이튼은 조커를 보더니 미소 지었다.
“아, 이런.”
그레이가 그를 보았다.
“조커입니까?”
레이튼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레이 양. 질문을 하나 해도 되겠습니까?”
“아니요.”
“아직 묻지도 않았습니다.”
“레이튼 님이 ‘질문을 하나’라고 말하는 순간 대체로 심리전입니다.”
죠니가 말했다.
“그레이도 무섭네.”
푸리나는 억울한 얼굴이었다.
“왜 나만 심리전 못 해?”
죠니가 바로 말했다.
“너는 얼굴에 다 나와.”
“너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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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레이의 차례였다.
그레이는 레이튼에게서 카드를 뽑아야 했다.
레이튼은 손패를 펼쳤다.
“자, 그레이 양. 어느 카드가 답일까요?”
그레이는 카드를 보았다.
그리고 레이튼의 얼굴을 보았다.
다시 카드를 보았다.
“레이튼 님.”
“예.”
“가운데 카드를 조금 더 앞으로 내미셨습니다.”
“그랬습니까?”
“오른쪽 끝 카드는 일부러 손가락에 힘을 주셨고, 왼쪽 두 번째 카드는 지나치게 무심하게 들고 계십니다.”
레이튼은 즐겁게 웃었다.
“훌륭합니다.”
“따라서 셋 다 미끼입니다.”
푸리나가 감탄했다.
“오오.”
그레이는 아주 평온하게 가장 평범해 보이는 카드를 뽑았다.
조커였다.
정적.
죠니가 작게 말했다.
“레이튼이 이겼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아닙니다. 아직 게임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레이는 조커를 자기 손패에 넣었다.
표정이 차가워졌다.
푸리나는 그레이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
“그레이.”
“예.”
“조커 있어?”
“없습니다.”
“방금 봤는데?”
“없습니다.”
죠니가 말했다.
“현실 부정이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다른 가능성에서도 그레이 양은 똑같이 없다고 했소.”
그레이는 아주 침착하게 말했다.
“조커는 행정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레이튼은 손뼉을 쳤다.
“놀랍군요. 카드 한 장이 문서상 말소되었습니다.”
푸리나는 배를 잡고 웃었다.
---
그레이는 푸리나에게 카드를 내밀었다.
이제 푸리나가 뽑을 차례였다.
푸리나는 그레이의 손패를 보았다.
그레이의 표정은 완벽했다.
너무 완벽했다.
푸리나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레이가 이렇게 무표정이면 더 무서워.”
그레이는 차분히 말했다.
“뽑으십시오.”
“혹시 지금 조커가 어디 있는지 알려줄 생각은?”
“없습니다.”
“왕명으로도?”
“게임 중 왕명 남용은 금지입니다.”
“그런 규칙 없었어!”
“지금 추가하겠습니다.”
푸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규칙 추가는 시작 전까지만 가능하잖아!”
그레이는 잠시 멈췄다.
“……그렇군요.”
죠니가 말했다.
“푸리나가 규칙으로 이겼네.”
푸리나는 기세를 되찾았다.
“좋아. 나는 내 배우의 감으로 뽑겠어.”
그녀는 손을 뻗었다.
왼쪽 끝 카드.
그레이의 눈썹이 1밀리미터 움직였다.
푸리나는 손을 멈췄다.
“방금 움직였어!”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움직였어! 왼쪽 끝이 조커구나!”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의기양양하게 오른쪽 끝 카드를 뽑았다.
조커였다.
푸리나는 얼어붙었다.
그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군주님은 너무 역방향으로 생각하십니다.”
죠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레이튼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가능성은 꽤 선명했소.”
푸리나는 조커를 들고 부들부들 떨었다.
“그레이…… 너…… 연기했어?”
그레이는 아주 작게 말했다.
“군주님께 배웠습니다.”
푸리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배신! 이것은 제자의 배신이야!”
“저는 제자가 아닙니다.”
“아니, 지금부터 제자야!”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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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점점 이상해졌다.
죠니는 조커를 뽑아도 표정이 없었다.
하융은 조커를 뽑을 때마다 “이 가능성은 닫히지 않았구려”라고 말했다.
레이튼은 조커를 들고도 상대에게 “정말 그 카드를 원하십니까?”라고 물어 사람을 혼란에 빠뜨렸다.
그레이는 점점 더 완벽한 무표정으로 모두를 압박했다.
푸리나는 조커가 손에 들어올 때마다 지나치게 극적인 절망을 표현했다.
“오, 운명이여! 어찌하여 이 광대의 얼굴을 내게 맡기는가!”
죠니가 말했다.
“시끄러워서 조커 있는 거 다 알아.”
“아차.”
그레이가 말했다.
“군주님, 표정과 대사를 줄이십시오.”
“그건 나 자신을 버리라는 말이야.”
“게임 승리를 위해 필요한 조치입니다.”
푸리나는 심각하게 고민했다.
레이튼이 말했다.
“흥미롭군요. 승리하기 위해 자신다움을 버릴 것인가, 패배하더라도 자신답게 남을 것인가.”
죠니가 바로 말했다.
“그냥 조용히 하면 되잖아.”
레이튼은 웃었다.
“그 또한 하나의 답입니다.”
푸리나는 손패를 들고 중얼거렸다.
“좋아. 이제부터 완벽한 포커페이스.”
3초 뒤.
하융이 그녀의 카드를 뽑으려 하자, 푸리나의 눈동자가 조커를 따라갔다.
죠니가 말했다.
“실패.”
푸리나는 카드로 얼굴을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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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세 사람이 남았다.
푸리나, 그레이, 죠니.
레이튼은 탈락했지만, 탈락자라기보다 해설자가 되었다.
하융은 조커에서 해방된 뒤로 이상하게 평온해졌다. 그는 옆에서 차를 마시며 말했다.
“이제 조커의 흐름이 맑게 보이는구려.”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말하지 마십시오.”
“말하지 않겠소.”
푸리나는 의심했다.
“하융, 너 지금 누구 손에 있는지 알아?”
하융은 잠시 침묵했다.
“규칙상 말할 수 없소.”
“그 말은 안다는 뜻이잖아!”
“말할 수 없소.”
죠니는 무심하게 카드를 섞었다.
그레이는 그를 바라보았다.
“죠니 경.”
“응.”
“방금 카드 순서를 바꾸셨습니까?”
“손이 심심해서.”
“불필요한 움직임입니다.”
“하지만 재밌지.”
푸리나는 이마를 짚었다.
“둘 다 너무 읽기 어려워.”
그레이가 말했다.
“군주님은 너무 읽기 쉽습니다.”
“알아!”
죠니가 그레이에게서 카드를 뽑았다.
짝이 맞았다.
죠니는 조용히 카드를 버렸다.
그레이의 손패는 두 장.
푸리나의 손패도 두 장.
죠니의 손패 한 장.
죠니가 말했다.
“이제 거의 끝났네.”
푸리나가 죠니를 노려보았다.
“네 손에 조커야?”
죠니는 대답했다.
“아니.”
푸리나는 더 혼란스러워졌다.
“너는 거짓말을 너무 담담하게 해서 모르겠어.”
죠니가 말했다.
“진짜 아닌데.”
그레이가 죠니의 손에서 카드를 뽑았다.
짝이 맞았다.
그레이는 손패를 모두 버렸다.
탈출.
푸리나는 절망했다.
“그레이가 먼저 나갔어!”
그레이는 아주 작게 승리의 숨을 내쉬었다.
“규칙에 따른 정상적인 결과입니다.”
레이튼이 박수를 쳤다.
“훌륭합니다. 행정의 승리군요.”
죠니와 푸리나만 남았다.
푸리나의 손패 두 장.
죠니의 손패 한 장.
죠니가 푸리나에게서 한 장을 뽑아야 했다.
푸리나는 두 장을 들고 있었다.
하나는 조커.
하나는 숫자 카드.
푸리나는 이번에야말로 완벽한 무표정을 하려 했다.
입술을 다물었다.
눈동자를 고정했다.
호흡도 줄였다.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왼쪽이네.”
푸리나가 움찔했다.
“아니야!”
“왼쪽이 조커네.”
“아니라고!”
죠니는 오른쪽을 뽑았다.
숫자 카드였다.
짝이 맞았다.
죠니는 카드를 버렸다.
푸리나의 손에는 조커만 남았다.
침묵.
푸리나는 조커를 들고 굳어 있었다.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패배입니다.”
푸리나는 조커를 바라보았다.
조커는 웃고 있었다.
마치 푸리나를 비웃는 것처럼.
푸리나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커를 높이 들었다.
“좋아.”
그레이가 경계했다.
“군주님.”
“인정하겠다.”
죠니가 말했다.
“오.”
푸리나는 장엄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오늘의 조커는 나다!”
그레이가 말했다.
“그건 패배 선언입니다.”
“아니. 주인공 선언이야.”
레이튼은 웃었다.
“관점의 전환이군요.”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패배한 가능성을 극으로 바꾸는구려.”
죠니가 말했다.
“푸리나다운 정신승리네.”
푸리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패자는 벌칙을 받는 법. 말해라. 이 조커에게 어떤 시련을 내릴 것이냐!”
그레이가 기다렸다는 듯 양피지를 꺼냈다.
푸리나의 표정이 굳었다.
“왜 준비되어 있어?”
“군주님께서 패배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레이!”
그레이는 양피지를 읽었다.
“벌칙. 내일 오전 공식 일정 전까지 추가 업무 금지. 야간 외출 금지. 최소 수면 여덟 시간.”
푸리나는 조커보다 더 절망적인 얼굴이 되었다.
“그건 벌칙이 아니라 감금이야!”
죠니가 말했다.
“패자는 조용히 받아들여야지.”
레이튼이 덧붙였다.
“좋은 게임에는 좋은 교훈이 따르는 법입니다.”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주님이 자는 가능성이 밝아졌소.”
푸리나는 네 사람을 바라보았다.
“너희…… 처음부터 이걸 노렸지?”
그레이는 아주 평온하게 말했다.
“게임은 공정했습니다.”
죠니는 말했다.
“네가 못한 거야.”
레이튼은 말했다.
“표정이 너무 훌륭한 단서였습니다.”
하융은 말했다.
“조커가 군주님을 좋아하더구려.”
푸리나는 조커 카드를 움켜쥐었다.
“좋아. 다음 판.”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안 됩니다.”
“왜?!”
“패자는 벌칙을 수행해야 합니다.”
푸리나는 카드 뭉치를 끌어안았다.
“한 판만 더!”
죠니가 말했다.
“그럼 또 질걸.”
“안 져!”
레이튼이 미소 지었다.
“그 말은 보통 조커를 부릅니다.”
하융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다음 판에서도 군주님 손에 조커가 가는 가능성이……”
푸리나가 외쳤다.
“말하지 마!”
그레이는 카드를 정리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푸리나는 의자에 주저앉았다.
“조커는 너무 잔인한 게임이야.”
죠니가 말했다.
“표정 관리 연습엔 좋네.”
레이튼은 말했다.
“인간 이해에도 훌륭하지요.”
하융은 말했다.
“가능성을 보지 않는 연습에도 좋았소.”
그레이는 카드를 상자에 넣으며 말했다.
“그리고 군주님을 재우는 데도 효과적입니다.”
푸리나는 중얼거렸다.
“다시는 조커뽑기 안 해.”
죠니가 물었다.
“내일 또 하자고 할 거지?”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벽난로가 타닥였다.
작은 여관방에는 오랜만에 회의도, 전쟁도, 장례도 없는 웃음이 남았다.
그리고 탁자 한가운데에는 조커 카드가 한 장 놓여 있었다.
푸리나는 그 카드를 노려보다가, 결국 슬쩍 품에 넣었다.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군주님.”
푸리나는 움찔했다.
“왜?”
“카드 반출 금지입니다.”
푸리나는 조커를 품에서 꺼냈다.
“……안 됩니다.”
그레이는 아주 만족스럽게 카드를 회수했다.
죠니는 웃었다.
레이튼은 박수를 쳤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왕국에서 가장 강한 카드는 조커가 아니라 그레이 양이구려.”
그레이는 카드를 상자에 넣으며 대답했다.
“그런 카드가 있다면, 사용을 금지하겠습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다시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