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02익명의 참치 씨(f85ea685)2026-05-13 (수) 19:12:03
# 《칼끝은 웃음을 향하고》
## 2막 — 떨어지는 별과 멀리 돌아가는 길
박수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마당을 둘러싼 목책 위로, 관중들의 손뼉 소리가 잔물결처럼 번졌다. 아이들은 앞줄에서 발끝을 들고 경기장 안을 보려 했고, 병사들은 창대를 흙바닥에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다. 사절들은 아직 예의와 경계 사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푸리나 헤툼은 무대 중앙에 서 있었다.
그녀는 그 박수를 충분히 들었다.
아직 피가 흐르지 않은 칼들.
아직 죽음으로 굳지 않은 시선들.
아직 서로를 적이라 부르지 않은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박수 아래에 있었다.
푸리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한마디에 박수가 조금 더 커졌다.
“그럼, 킬리키아 친선 무력제의 첫 번째 개막전을 시작하겠다!”
그녀는 한 손을 높이 들었다.
무대의 조명이 움직였다.
아니, 실제 조명이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여관좌 사제들이 세워둔 등불은 그대로였고, 하늘의 태양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푸리나의 [여관:극장] 안에서 빛은 방향을 얻었다. 관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경기장 서쪽 입구로 모였다.
그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또각.
처음에는 한 필이었다.
그 뒤로 세 필, 다섯 필, 일곱 필.
킬리키아의 기사들이 경기장 바깥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창을 겨누지 않았다. 방패를 들어 위협하지도 않았다. 대신 관중석과 목책 사이를 일정한 간격으로 돌았다.
말들은 원을 그렸다.
처음에는 느린 원이었다.
두 번째 바퀴에서는 간격이 맞았다.
세 번째 바퀴에서는 서로의 말발굽 소리가 하나의 박자로 겹쳤다.
죠니 죠스타는 그 중심에 있었다.
말 위의 자세는 낮았다. 화려한 인사도, 과장된 제스처도 없었다. 그는 고삐를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창대를 가볍게 눌렀다. 눈은 관중을 보지 않았다. 목책, 등불, 아이들이 몰린 구석, 흙바닥의 파인 자국, 말이 미끄러질 만한 곳을 차례로 훑었다.
“관중석 바깥으로 한 바퀴.”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기사들은 정확히 들었다.
“목책에 붙지 마라. 저쪽 유성이 삐끗하면, 구경꾼이 먼저 날아간다.”
기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발굽의 원이 조금 더 넓어졌다.
그 원은 단순한 행진이 아니었다.
《순환교대: 끊이지 않는 행렬》.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앞선 말이 지나간 자리를 다음 말이 메웠다. 한 기수가 속도를 늦추면 다음 기수가 그 간격을 받았다. 관중석과 경기장 사이에, 살아 움직이는 안전선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행렬은 바깥으로 퍼지는 대신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윤회진: 나선행군》.
나선은 사람을 가두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지키기 위한 둘레였다.
그레이는 그 광경을 보고 장부에 빠르게 표시했다.
“죠니 경의 안전선 배치는 유효합니다. 서쪽 목책 뒤 인원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북쪽 목책에는 여관좌 사제 한 명 추가 배치해주세요.”
곁의 병사가 고개를 숙이고 달려갔다.
푸리나는 손을 입가에 모아 외쳤다.
“죠니! 의외로 성실해!”
죠니는 말 위에서 고개만 돌렸다.
“의외는 빼줘.”
“그럼 성실해!”
“그것도 좀 이상한데.”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푸리나는 그 웃음이 사라지기 전에, 두 팔을 크게 펼쳤다.
“자, 소개하겠다!”
그녀는 일부러 숨을 들이켰다.
죠니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하지 마.”
푸리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킬리키아의 나선! 말발굽 위의 찰나! 여관의 성좌 아래에서 회전과 윤회를 창끝에 싣는 기사단장!”
죠니는 낮게 중얼거렸다.
“소개가 길어.”
푸리나는 더 크게 외쳤다.
“《멀리 돌아가는 길》의 죠니 죠스타!”
박수가 터졌다.
죠니는 그 박수 속에서 말의 목을 가볍게 두드렸다.
“짧으면 안 되나?”
푸리나가 웃으며 답했다.
“짧으면 재미없잖아!”
“그건 폐하 기준이고.”
“오늘 기준은 내 기준이야!”
“그렇겠지.”
죠니는 포기했다.
그의 시선이 경기장 반대편으로 향했다.
박수 소리가 조금씩 낮아졌다.
동쪽 입구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아스테르다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달리지도 않았다.
자기 힘을 과시하듯 땅을 울리지도 않았다.
그저 한 걸음씩 걸었다.
하지만 그 걸음은 이상했다.
그가 땅을 밟는 순간마다, 흙바닥이 그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미 정해둔 지점에 내려앉는 것처럼 보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의 몸은 무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별의 핵처럼, 조용히 밀도를 얻고 있었다.
푸리나는 이번에도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의 상대!”
그녀의 손이 아스테르다스를 가리켰다.
“리투아니아의 청흑빛 유성! 민다우가스의 망치! 그러나 누구의 톱니바퀴도 아닌 자!”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조금 들었다.
“아스테르다스!”
그는 박수 속에서 짧게 말했다.
“망치라는 말은 맞아.”
잠깐 멈춤.
“톱니바퀴는 아니고.”
죠니가 피식 웃었다.
“그건 마음에 드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를 보았다.
“너도 말 위에서 도는 톱니바퀴는 아닌 것 같군.”
“아니지. 톱니바퀴면 좀 더 싸게 굴렀을 거야.”
“비싼가?”
“말값이 비싸.”
아스테르다스는 잠깐 생각했다.
“그건 그렇군.”
푸리나는 양손을 반짝이며 두 사람 사이로 걸어 나왔다.
“좋아. 벌써 친해졌네!”
죠니가 말했다.
“친해진 건 아니고.”
아스테르다스가 덧붙였다.
“서로 가격을 확인했을 뿐이다.”
“무슨 가격?!”
푸리나가 눈을 크게 뜨자, 관중석에서 다시 웃음이 번졌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레이가 심판석 옆에서 손을 들었다.
“두 참가자 모두 준비되었습니까?”
죠니는 창을 세웠다.
“준비됐어.”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떨어질 곳은 정했다.”
그레이는 눈썹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 표현은 안전상 불안합니다만.”
아스테르다스가 담담히 답했다.
“사람 위에는 떨어지지 않겠다.”
그레이는 장부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 부분은 반드시 지켜주세요.”
푸리나는 경기장 중앙에서 물러나며 손을 들었다.
“첫 번째 개막전!”
무대의 빛이 낮게 깔렸다.
“죠니 죠스타 대 아스테르다스!”
여관좌 사제들이 등불을 들어 올렸다.
목책 바깥의 기병들이 속도를 늦췄다.
레이튼은 관람석 한쪽에서 모자챙을 가볍게 만졌다.
“흥미롭군요.”
하융이 그의 곁에서 회색빛 시선으로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수많은 창이 열렸다.
말이 미끄러지는 창.
창끝이 목책을 부수는 창.
청흑빛 낙하가 관중석으로 튀는 창.
죠니가 너무 빨리 돌아 말의 앞다리가 접히는 창.
아스테르다스가 멈추지 못해 친선전이 아니게 되는 창.
그리고 그 사이에, 온화한 창 하나.
둘 모두 멈추는 결말.
하융은 낮게 말했다.
“둘 중 하나가 반 박자만 늦어도, 친선이 아니게 되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오늘의 질문은 단순하군요.”
그는 미소 지었다.
“속도와 회전 중 어느 쪽이 빠른가가 아니라, 어느 쪽이 먼저 멈출 수 있는가.”
푸리나가 손을 내렸다.
“시작!”
처음 움직인 것은 아스테르다스였다.
그는 달리지 않았다.
그의 내력은 먼저 식었다.
불꽃처럼 타오르지 않았다.
함성처럼 터지지 않았다.
오히려 밤하늘처럼 깊어졌다. 그의 안쪽에서 어둡고 차가운 별의 핵이 생겨나는 듯했다.
《흐르는 별이라 하여》.
별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흘러야 할 무게가 있었다.
아스테르다스의 몸 안에서 그 무게가 천천히, 그러나 피할 수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다음 순간.
《낙하하는 별이라 하여》.
그는 죠니를 향해 떨어졌다.
앞으로 움직였지만, 그것은 전진이 아니었다.
옆으로 꺾였지만, 그것은 회피가 아니었다.
흙바닥을 박차고 약간 떠올랐지만, 그것은 도약도 아니었다.
그가 정한 곳이 아래였다.
그러므로 모든 방향은 아래가 되었다.
청흑빛이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관중석의 아이 하나가 숨을 삼켰다.
죠니의 말은 정면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말은 도망치지 않았다.
겁먹고 뒷걸음질 치지도 않았다.
죠니는 고삐를 당기지 않았다.
그저 손목을 아주 조금 틀었다.
말머리가 돌아갔다.
《윤회기승: 순환의 궤도》.
첫 번째 원에서는 말의 보폭이 맞았다.
청흑빛 낙하가 말의 앞가슴을 찢고 지나갈 위치를, 죠니는 반 걸음 바깥으로 흘렸다. 피한 것이 아니었다. 정면이라는 이름을 비켜 원을 그은 것이다.
두 번째 원에서는 죠니의 호흡이 말의 숨과 겹쳤다.
말의 갈기가 바람에 휘날렸다. 죠니의 창끝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허리, 어깨, 손목, 무릎, 등자 위의 발끝이 모두 같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세 번째 원에서는 창끝의 흔들림이 줄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충돌은 없었다.
그저 바람이 갈라졌다.
박수도, 탄성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관중들은 방금 무엇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레이튼만이 조용히 말했다.
“한쪽은 모든 방향을 아래로 만들고, 다른 한쪽은 모든 회피를 원으로 바꾸는군요.”
푸리나가 눈을 빛냈다.
“좋아. 칼끝보다 궤적이 먼저 대사를 하고 있어.”
죠니가 멀리서 외쳤다.
“해설은 나중에 해줘. 지금 좀 바쁘거든.”
“들렸어?!”
“목소리가 크잖아.”
아스테르다스는 이미 두 번째 낙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죠니의 원을 보았다.
도망치는 원이 아니었다.
빙빙 도는 회피도 아니었다.
그 원은 같은 곳으로 돌아오기 위한 원이었다.
그리고 매번 돌아올 때마다 더 위험한 위치를 품고 있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짧게 말했다.
“저건 도망치는 게 아니야.”
죠니가 창을 비스듬히 들었다.
“알아봤어?”
“돌아서 같은 순간에 오는 거군.”
죠니는 피식 웃었다.
“그쪽도 돌진은 아니네.”
아스테르다스가 자세를 낮췄다.
“그럼?”
“떨어지는 거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스테르다스가 다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죠니의 창끝이 그어둔 허공 위에 발을 디뎠다.
《발을 디디다》.
말발굽이 일으킨 흙먼지.
창끝이 막 지나간 궤적.
목책 아래 드리운 짧은 그림자.
일반적인 전사라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길 그것들이, 아스테르다스에게는 낙점이 되었다.
죠니가 창을 찔렀다.
첫 찌름은 어깨를 스쳤다.
아스테르다스는 그 스친 궤적을 밟고 몸을 돌렸다.
죠니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내 창을 발판으로 썼다고?”
아스테르다스가 낮게 답했다.
“네가 내 앞에 길을 그었다.”
“그럼 다음 건 좀 비싸게 받아야겠네.”
두 번째 찌름은 허공을 찔렀다.
아스테르다스는 그 허공 아래로 떨어지며 죠니의 말 안쪽으로 들어왔다.
죠니는 안장에서 몸을 반쯤 빼냈다. 등자 위의 발끝이 말의 옆구리, 흙바닥, 다시 안장으로 흐름을 이었다.
《윤회보: 흐름의 보법》.
그는 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말 위에만 있지도 않았다.
흐름 위에 있었다.
세 번째 찌름은 아스테르다스가 지나간 뒤의 빛을 갈랐다.
관중들은 빗나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이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빗나간 것이 아니군요.”
푸리나가 물었다.
“왜?”
“매번 조금씩 좁아지고 있습니다.”
죠니의 창끝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첫 번째 원은 컸다.
두 번째 원은 조금 작았다.
세 번째 원은 더 작았다.
《윤회창: 나선수렴》.
창끝은 매번 조금씩 더 좁은 나선을 그리며, 아직 오지 않은 한순간을 향해 모이고 있었다.
아스테르다스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움직일 길이 줄어들고 있다.
죠니는 그를 쫓아오지 않았다.
그를 몰고 있었다.
가장 빠른 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가 도착할 수 있는 모든 낙점을 조금씩 한 지점으로 모으고 있었다.
아스테르다스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재밌군.”
죠니가 낮게 말했다.
“그 말은 보통 위험하던데.”
“맞아.”
아스테르다스의 몸이 낮아졌다.
경기장 위의 공기가 바뀌었다.
푸른빛이 흙먼지 사이로 길게 그어졌다.
《하늘을 가르는 스파킹 메테오》.
아스테르다스가 지나간 자리마다 청흑빛과 푸른빛이 섞인 궤적이 남았다. 그것은 단순한 잔상이 아니었다. 이미 밟은 길이었고, 다시 밟을 수 있는 길이었다. 아직 그리지 않은 궤적조차 그가 곧 도착할 장소를 향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경기장 바깥으로 빠지는 듯했다.
죠니의 말이 원을 넓혔다.
그 순간, 아스테르다스는 자신이 이미 그어둔 푸른 궤적을 다시 밟았다.
그의 몸이 원 바깥에서 안쪽으로 떨어졌다.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죠니 경.”
하융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는 경기장 밖에 있었지만, 창문 너머의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한 창에서는 죠니가 지금 말머리를 틀었다.
말의 앞다리가 접혔다.
죠니는 땅에 떨어졌고, 아스테르다스의 낙하는 멈추지 못했다.
하융은 그 창을 닫았다.
“반 박자 늦게 도시오. 지금 돌면 말의 앞다리가 접히오.”
죠니는 보지 않고 답했다.
“들었어.”
그는 본능보다 반 박자 늦게 돌았다.
말의 앞발이 흙을 찍었다.
아스테르다스의 낙하가 말의 갈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박자 빨랐다면 부러졌을 다리가, 반 박자 늦은 회전 속에서 살아남았다.
죠니는 짧게 숨을 뱉었다.
“괜찮아.”
말발굽이 다시 원을 그렸다.
“아직 돈다.”
《생과 사를 반복하여 기지의 결과를 보다》.
소모된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말발굽이 흙을 찍고, 창끝이 원을 그을 때마다, 죠니의 차력은 죽은 흐름처럼 흩어지지 않고 다시 돌아왔다. 호흡은 거칠어졌지만 끊기지 않았다. 손목의 피로는 원을 한 번 더 돌 때마다 다른 박자로 재배치되었다.
반복은 저주가 아니었다.
반복은 아직 달릴 수 있다는 증거였다.
아스테르다스의 눈이 번뜩였다.
죠니의 나선은 이제 더 좁아지고 있었다.
다음 세 번.
아니, 어쩌면 두 번.
그 안에 자신의 낙점은 죠니의 창끝으로 몰릴 것이다.
그러면 길을 바꿔야 한다.
아스테르다스는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좋아.”
푸른 궤적 위에서 그의 몸이 낮아졌다.
“그럼 예열은 생략하지.”
죠니의 눈이 가늘어졌다.
경기장 위의 청흑빛이 한순간 흰빛으로 뒤집혔다.
그것은 불꽃이 아니었다.
아니, 불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용했다.
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아스테르다스의 몸이 영묘한 백광으로 타올랐다.
《영묘한 광채의 초신성》.
그는 빨라지지 않았다.
빨라지는 과정이 없었다.
점화되는 순간, 이미 최대속이었다.
아까까지 쌓였던 피로가 사라졌다.
흔들리던 호흡이 정렬되었다.
근육의 지연이 지워졌고, 관절의 미세한 어긋남이 최대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에 맞춰 되돌아갔다.
그것은 회복이라기보다 존재의 조정이었다.
아스테르다스라는 별이, 지금 이 10분 동안 가장 빠르게 떨어질 수 있는 상태로 다시 쓰였다.
그는 낮게 선언했다.
“빛을 이끄는 길이 되리라.”
그 순간, 관중들은 착각했다.
아스테르다스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빛이 그의 뒤를 따라 끌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늘을 가르는 푸른 궤적이 백광으로 번졌다.
청흑빛 유성은 더 이상 단순히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길을 만들었다.
빛을 끌고 가는 초신성처럼.
죠니의 말이 크게 숨을 뿜었다.
죠니는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
“빨라졌네.”
백광이 시야를 갈랐다.
“아니.”
그는 창대를 고쳐 쥐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건가.”
아스테르다스가 죠니의 원 안쪽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
죠니는 창을 회수하지 않았다.
말을 억지로 꺾지도 않았다.
충격이 흉갑 앞에 닿았다.
청흑빛과 백광이 뒤섞인 압력.
죠니의 몸은 밀려나야 했다.
말의 앞다리는 꺾여야 했고, 창끝은 흐트러져야 했다.
관중석 쪽 목책은 부서져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붕괴가 한 겹의 얇은 외피 위에서 멈췄다.
《정지된 외피: 찰나의 갑주》.
단단한 갑옷이 아니었다.
무너지는 순간을 잠시 붙잡은 찰나였다.
갑옷의 표면 위에서 빛이 미끄러졌다. 죠니의 어깨가 흔들렸고, 말이 한 걸음 밀렸다. 하지만 중심은 무너지지 않았다.
죠니는 이를 악물었다가, 낮게 말했다.
“위험했네. 방금 건 농담으로 맞을 게 아니야.”
아스테르다스가 답했다.
“농담으로 친 것도 아니야.”
“그건 알겠어.”
그레이가 즉시 손을 들었다.
“북쪽 안전선 뒤로 물러나세요. 사제 두 명, 대기.”
여관좌 사제들이 등불을 들어 올렸다.
푸리나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두 사람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이제는 단순히 멋진 장면이 아니었다.
칼끝이 정말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
이 무대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둘 중 하나가 강한 것보다 둘 모두 멈출 줄 알아야 했다.
죠니는 숨을 들이켰다.
아스테르다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것은 인정해야 했다.
예열 없는 최대속.
점화된 순간 이미 도착하는 초신성.
그 빛을 뒤쫓아서는 늦는다.
죠니는 고삐를 느슨하게 잡았다.
“그럼 나는 더 멀리 돌아야겠네.”
그의 발밑에서, 말발굽의 소리가 멀어졌다.
아니, 가까워졌다.
둘 다 아니었다.
그 순간 죠니의 여관은 방이 아니었다.
벽난로도 없었다.
침대도 없었다.
문패도 없었다.
말발굽이 땅을 치는 소리.
창끝이 마지막으로 떨리는 각도.
숨이 끊기기 직전의 금빛 한 박자.
생과 사 사이에서, 모든 움직임이 단 한순간으로 수렴하는 자리.
그것이 죠니의 [여관:찰나]였다.
《영원할 찰나》.
아주 얇게, 경기장 일부가 그 여관에 닿았다.
죠니의 눈에 아스테르다스의 궤적이 겹쳐 보였다.
《황금의 동경》.
생과 사 사이의 모든 움직임이 무한한 회전으로 보였다. 그러나 아스테르다스는 바퀴가 아니었다. 그는 회전 안에 얌전히 들어오는 별이 아니었다. 매번 다른 곳으로 떨어지고, 매번 자신이 정한 곳에 도착하는 초신성이었다.
하지만 그 빛에도 오차는 있었다.
오차라기보다, 닿기 전의 틈.
죽이지 않기 위해 멈추어야 하는 한 치.
죠니는 그 한 치를 보았다.
말발굽이 한 번 더 돌았다.
창끝이 마지막 나선을 그렸다.
《윤회창: 나선수렴》.
첫 번째 원.
두 번째 원.
세 번째 원.
그리고 더 멀리 돌아온 길.
《멀리 돌아가는 길》.
그는 가장 빠른 길을 택하지 않았다.
가장 빠른 길로는 이미 늦었다.
그러므로 멀리 돌았다.
하지만 멀리 돌아온 길은, 가장 정확한 순간에 도착했다.
아스테르다스는 마지막 낙점을 정했다.
그의 주먹은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유성추무》.
낙하.
마찰.
발화.
충돌.
진동.
그 모든 과정이 몸 안에서 한 번에 겹쳐졌다.
그리고 마지막.
《유성진천》.
그 일격은 사람의 살을 찢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죠니와 말의 중심, 자세, 균형, 내력의 축, 전장 내 위치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위치를 향했다.
친선전이 아니었다면.
그 위치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아스테르다스는 점화된 순간 이미 도착해 있었다.
죠니는 멀리 돌아, 그 도착점에 늦지 않게 와 있었다.
먼지가 솟았다.
말이 앞발을 들었다.
백광이 창끝 위에서 갈라졌다.
그레이가 숨을 삼켰다.
하융은 온화한 창 하나가 아직 닫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레이튼은 모자챙 아래에서 조용히 눈을 떴다.
푸리나는 손을 쥐었다.
그 순간.
여관좌 사제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갈랐다.
“정지!”
모든 것이 멈췄다.
아스테르다스의 주먹은 죠니와 말의 중심을 무너뜨릴 한 치 앞에서 멈춰 있었다.
죠니의 창끝은 아스테르다스의 갑옷 틈 아래, 목으로 이어지는 선의 한 치 앞에서 멈춰 있었다.
말은 거칠게 숨을 뿜었다.
죠니의 손목은 떨렸다.
아스테르다스의 백광은 천천히 청흑빛으로 가라앉았다.
경기장 위에 길게 남은 빛의 궤적들이, 마치 밤하늘에 잘못 내려앉은 별자리처럼 흔들렸다.
아무도 바로 박수치지 못했다.
모두가 방금 본 것이 친선전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레이가 먼저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양측 치명타 성립. 정지 판정. 부상 없음.”
그녀는 그제야 작게 숨을 내쉬었다.
“무승부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관중석에서 뒤늦게 소리가 터졌다.
처음에는 탄성이었다.
그다음은 박수였다.
목책 바깥의 기병들이 창대를 들어 올렸다. 아이들이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병사들이 말발굽 박자에 맞춰 창대를 두드렸다.
푸리나는 양손을 번쩍 들었다.
“좋아! 개막전 무승부! 완벽해!”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무승부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폐하.”
푸리나는 돌아보았다.
“둘 다 살아 있고, 둘 다 멋있었잖아. 완벽해!”
“평가 기준이 너무 감상적입니다.”
“오늘은 감상도 규칙이야!”
“그런 규칙은 없습니다.”
“지금 만들었어!”
죠니는 말 위에서 창을 내렸다.
“저럴 줄 알았다.”
아스테르다스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손끝에 빛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죠니가 그를 보며 말했다.
“맞았으면 많이 아팠겠네.”
아스테르다스가 답했다.
“찔렸으면 나도 아팠을 거다.”
“친선전이라 다행이네.”
아스테르다스는 경기장 위의 궤적을 보았다.
아직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전장에서는 저기서 멈추지 못하겠지.”
죠니는 잠시 조용해졌다.
그의 말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러니까 오늘 멈춘 거겠지.”
아스테르다스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았다.”
그는 남은 빛을 바라보았다.
“빛을 이끄는 길이,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남을 수 있다면.”
죠니는 창대를 어깨에 얹었다.
“그럼 오늘은 좋은 길이었네.”
하융이 경기장 밖에서 조용히 말했다.
“비껴간 창들 중, 이 결말이 가장 온화하였소.”
죠니가 고개를 돌렸다.
“온화했다기엔 목숨줄이 좀 가까웠는데.”
아스테르다스가 답했다.
“가까웠으니까 온화한 거다. 닿지는 않았으니까.”
죠니는 잠깐 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리투아니아식 농담은 무겁네.”
“농담은 아니었다.”
“그럼 더 무겁고.”
레이튼은 박수 속에서 천천히 말했다.
“오늘의 질문에는 적절한 답이었습니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오, 레이튼! 해설!”
“해설이라기보다 정리입니다.”
레이튼은 경기장에 남은 원과 빛의 궤적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죽이지 않고도 자신의 길을 증명했습니다. 한쪽은 회전을 완성했고, 다른 한쪽은 빛의 길을 남겼습니다.”
푸리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첫 경기부터 완벽했네!”
그레이는 작게 말했다.
“폐하, 다음 경기 전 경기장 보수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북쪽 목책 일부가 흔들렸고, 흙바닥 중앙이 패였습니다. 등불 두 개도 위치를 조정해야 합니다.”
푸리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좋아! 막간이다!”
죠니가 중얼거렸다.
“결국 쉬는 시간도 연극이네.”
아스테르다스는 경기장을 나서며 짧게 말했다.
“나쁘지 않은 무대였다.”
푸리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그치?!”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돌렸다.
“떨어질 곳을 정해도, 누군가 다치지 않을 수 있는 무대라면.”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가끔은 필요하겠지.”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좋아. 그 말, 오늘의 첫 번째 호평으로 기록!”
그레이가 장부를 들었다.
“정말 기록합니까?”
“응!”
그레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장부 한쪽에 작게 적었다.
《제1경기 종료. 무승부. 부상 없음. 경기장 일부 보수 필요.》
그리고 그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아스테르다스 경: 무대에 대해 긍정적 발언.》
죠니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그런 것도 적어?”
그레이는 장부를 닫았다.
“기록해두면, 나중에 같은 이유로 싸우지 않아도 될 때가 있습니다.”
죠니는 잠깐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네.”
박수는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
그 박수 아래에서, 초신성은 사람을 불태우지 않고 궤적만을 남겼다.
회전은 상대를 꿰뚫지 않고 하나의 찰나로 완성되었다.
첫 번째 친선전은 승자를 남기지 않았다.
대신 두 개의 길을 남겼다.
하나는 빛을 이끄는 초신성의 길.
하나는 멀리 돌아, 가장 정확한 순간에 도착하는 길.
그리고 그 두 길은, 푸리나의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서로를 죽이지 않고 교차했다.
## 2막 — 떨어지는 별과 멀리 돌아가는 길
박수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마당을 둘러싼 목책 위로, 관중들의 손뼉 소리가 잔물결처럼 번졌다. 아이들은 앞줄에서 발끝을 들고 경기장 안을 보려 했고, 병사들은 창대를 흙바닥에 두드리며 박자를 맞췄다. 사절들은 아직 예의와 경계 사이의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푸리나 헤툼은 무대 중앙에 서 있었다.
그녀는 그 박수를 충분히 들었다.
아직 피가 흐르지 않은 칼들.
아직 죽음으로 굳지 않은 시선들.
아직 서로를 적이라 부르지 않은 사람들.
그 모든 것이 박수 아래에 있었다.
푸리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 한마디에 박수가 조금 더 커졌다.
“그럼, 킬리키아 친선 무력제의 첫 번째 개막전을 시작하겠다!”
그녀는 한 손을 높이 들었다.
무대의 조명이 움직였다.
아니, 실제 조명이 움직인 것은 아니었다. 여관좌 사제들이 세워둔 등불은 그대로였고, 하늘의 태양도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푸리나의 [여관:극장] 안에서 빛은 방향을 얻었다. 관객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경기장 서쪽 입구로 모였다.
그곳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또각.
처음에는 한 필이었다.
그 뒤로 세 필, 다섯 필, 일곱 필.
킬리키아의 기사들이 경기장 바깥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은 창을 겨누지 않았다. 방패를 들어 위협하지도 않았다. 대신 관중석과 목책 사이를 일정한 간격으로 돌았다.
말들은 원을 그렸다.
처음에는 느린 원이었다.
두 번째 바퀴에서는 간격이 맞았다.
세 번째 바퀴에서는 서로의 말발굽 소리가 하나의 박자로 겹쳤다.
죠니 죠스타는 그 중심에 있었다.
말 위의 자세는 낮았다. 화려한 인사도, 과장된 제스처도 없었다. 그는 고삐를 한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 창대를 가볍게 눌렀다. 눈은 관중을 보지 않았다. 목책, 등불, 아이들이 몰린 구석, 흙바닥의 파인 자국, 말이 미끄러질 만한 곳을 차례로 훑었다.
“관중석 바깥으로 한 바퀴.”
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기사들은 정확히 들었다.
“목책에 붙지 마라. 저쪽 유성이 삐끗하면, 구경꾼이 먼저 날아간다.”
기병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발굽의 원이 조금 더 넓어졌다.
그 원은 단순한 행진이 아니었다.
《순환교대: 끊이지 않는 행렬》.
흐름이 끊기지 않도록, 앞선 말이 지나간 자리를 다음 말이 메웠다. 한 기수가 속도를 늦추면 다음 기수가 그 간격을 받았다. 관중석과 경기장 사이에, 살아 움직이는 안전선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행렬은 바깥으로 퍼지는 대신 안쪽으로 말려 들어갔다.
《윤회진: 나선행군》.
나선은 사람을 가두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지키기 위한 둘레였다.
그레이는 그 광경을 보고 장부에 빠르게 표시했다.
“죠니 경의 안전선 배치는 유효합니다. 서쪽 목책 뒤 인원은 그대로 두겠습니다. 북쪽 목책에는 여관좌 사제 한 명 추가 배치해주세요.”
곁의 병사가 고개를 숙이고 달려갔다.
푸리나는 손을 입가에 모아 외쳤다.
“죠니! 의외로 성실해!”
죠니는 말 위에서 고개만 돌렸다.
“의외는 빼줘.”
“그럼 성실해!”
“그것도 좀 이상한데.”
관중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푸리나는 그 웃음이 사라지기 전에, 두 팔을 크게 펼쳤다.
“자, 소개하겠다!”
그녀는 일부러 숨을 들이켰다.
죠니의 표정이 미묘하게 굳었다.
“하지 마.”
푸리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킬리키아의 나선! 말발굽 위의 찰나! 여관의 성좌 아래에서 회전과 윤회를 창끝에 싣는 기사단장!”
죠니는 낮게 중얼거렸다.
“소개가 길어.”
푸리나는 더 크게 외쳤다.
“《멀리 돌아가는 길》의 죠니 죠스타!”
박수가 터졌다.
죠니는 그 박수 속에서 말의 목을 가볍게 두드렸다.
“짧으면 안 되나?”
푸리나가 웃으며 답했다.
“짧으면 재미없잖아!”
“그건 폐하 기준이고.”
“오늘 기준은 내 기준이야!”
“그렇겠지.”
죠니는 포기했다.
그의 시선이 경기장 반대편으로 향했다.
박수 소리가 조금씩 낮아졌다.
동쪽 입구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아스테르다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달리지도 않았다.
자기 힘을 과시하듯 땅을 울리지도 않았다.
그저 한 걸음씩 걸었다.
하지만 그 걸음은 이상했다.
그가 땅을 밟는 순간마다, 흙바닥이 그를 받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이미 정해둔 지점에 내려앉는 것처럼 보였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의 몸은 무게를 잃지 않았다. 오히려 별의 핵처럼, 조용히 밀도를 얻고 있었다.
푸리나는 이번에도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그의 상대!”
그녀의 손이 아스테르다스를 가리켰다.
“리투아니아의 청흑빛 유성! 민다우가스의 망치! 그러나 누구의 톱니바퀴도 아닌 자!”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조금 들었다.
“아스테르다스!”
그는 박수 속에서 짧게 말했다.
“망치라는 말은 맞아.”
잠깐 멈춤.
“톱니바퀴는 아니고.”
죠니가 피식 웃었다.
“그건 마음에 드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를 보았다.
“너도 말 위에서 도는 톱니바퀴는 아닌 것 같군.”
“아니지. 톱니바퀴면 좀 더 싸게 굴렀을 거야.”
“비싼가?”
“말값이 비싸.”
아스테르다스는 잠깐 생각했다.
“그건 그렇군.”
푸리나는 양손을 반짝이며 두 사람 사이로 걸어 나왔다.
“좋아. 벌써 친해졌네!”
죠니가 말했다.
“친해진 건 아니고.”
아스테르다스가 덧붙였다.
“서로 가격을 확인했을 뿐이다.”
“무슨 가격?!”
푸리나가 눈을 크게 뜨자, 관중석에서 다시 웃음이 번졌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레이가 심판석 옆에서 손을 들었다.
“두 참가자 모두 준비되었습니까?”
죠니는 창을 세웠다.
“준비됐어.”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떨어질 곳은 정했다.”
그레이는 눈썹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 표현은 안전상 불안합니다만.”
아스테르다스가 담담히 답했다.
“사람 위에는 떨어지지 않겠다.”
그레이는 장부에 무언가를 적었다.
“그 부분은 반드시 지켜주세요.”
푸리나는 경기장 중앙에서 물러나며 손을 들었다.
“첫 번째 개막전!”
무대의 빛이 낮게 깔렸다.
“죠니 죠스타 대 아스테르다스!”
여관좌 사제들이 등불을 들어 올렸다.
목책 바깥의 기병들이 속도를 늦췄다.
레이튼은 관람석 한쪽에서 모자챙을 가볍게 만졌다.
“흥미롭군요.”
하융이 그의 곁에서 회색빛 시선으로 경기장을 보고 있었다.
수많은 창이 열렸다.
말이 미끄러지는 창.
창끝이 목책을 부수는 창.
청흑빛 낙하가 관중석으로 튀는 창.
죠니가 너무 빨리 돌아 말의 앞다리가 접히는 창.
아스테르다스가 멈추지 못해 친선전이 아니게 되는 창.
그리고 그 사이에, 온화한 창 하나.
둘 모두 멈추는 결말.
하융은 낮게 말했다.
“둘 중 하나가 반 박자만 늦어도, 친선이 아니게 되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오늘의 질문은 단순하군요.”
그는 미소 지었다.
“속도와 회전 중 어느 쪽이 빠른가가 아니라, 어느 쪽이 먼저 멈출 수 있는가.”
푸리나가 손을 내렸다.
“시작!”
처음 움직인 것은 아스테르다스였다.
그는 달리지 않았다.
그의 내력은 먼저 식었다.
불꽃처럼 타오르지 않았다.
함성처럼 터지지 않았다.
오히려 밤하늘처럼 깊어졌다. 그의 안쪽에서 어둡고 차가운 별의 핵이 생겨나는 듯했다.
《흐르는 별이라 하여》.
별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안에는 흘러야 할 무게가 있었다.
아스테르다스의 몸 안에서 그 무게가 천천히, 그러나 피할 수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다음 순간.
《낙하하는 별이라 하여》.
그는 죠니를 향해 떨어졌다.
앞으로 움직였지만, 그것은 전진이 아니었다.
옆으로 꺾였지만, 그것은 회피가 아니었다.
흙바닥을 박차고 약간 떠올랐지만, 그것은 도약도 아니었다.
그가 정한 곳이 아래였다.
그러므로 모든 방향은 아래가 되었다.
청흑빛이 경기장을 가로질렀다.
관중석의 아이 하나가 숨을 삼켰다.
죠니의 말은 정면으로 물러서지 않았다.
말은 도망치지 않았다.
겁먹고 뒷걸음질 치지도 않았다.
죠니는 고삐를 당기지 않았다.
그저 손목을 아주 조금 틀었다.
말머리가 돌아갔다.
《윤회기승: 순환의 궤도》.
첫 번째 원에서는 말의 보폭이 맞았다.
청흑빛 낙하가 말의 앞가슴을 찢고 지나갈 위치를, 죠니는 반 걸음 바깥으로 흘렸다. 피한 것이 아니었다. 정면이라는 이름을 비켜 원을 그은 것이다.
두 번째 원에서는 죠니의 호흡이 말의 숨과 겹쳤다.
말의 갈기가 바람에 휘날렸다. 죠니의 창끝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허리, 어깨, 손목, 무릎, 등자 위의 발끝이 모두 같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세 번째 원에서는 창끝의 흔들림이 줄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의 옆을 스치고 지나갔다.
충돌은 없었다.
그저 바람이 갈라졌다.
박수도, 탄성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관중들은 방금 무엇이 일어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레이튼만이 조용히 말했다.
“한쪽은 모든 방향을 아래로 만들고, 다른 한쪽은 모든 회피를 원으로 바꾸는군요.”
푸리나가 눈을 빛냈다.
“좋아. 칼끝보다 궤적이 먼저 대사를 하고 있어.”
죠니가 멀리서 외쳤다.
“해설은 나중에 해줘. 지금 좀 바쁘거든.”
“들렸어?!”
“목소리가 크잖아.”
아스테르다스는 이미 두 번째 낙하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죠니의 원을 보았다.
도망치는 원이 아니었다.
빙빙 도는 회피도 아니었다.
그 원은 같은 곳으로 돌아오기 위한 원이었다.
그리고 매번 돌아올 때마다 더 위험한 위치를 품고 있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짧게 말했다.
“저건 도망치는 게 아니야.”
죠니가 창을 비스듬히 들었다.
“알아봤어?”
“돌아서 같은 순간에 오는 거군.”
죠니는 피식 웃었다.
“그쪽도 돌진은 아니네.”
아스테르다스가 자세를 낮췄다.
“그럼?”
“떨어지는 거다.”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스테르다스가 다시 사라졌다.
아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그는 죠니의 창끝이 그어둔 허공 위에 발을 디뎠다.
《발을 디디다》.
말발굽이 일으킨 흙먼지.
창끝이 막 지나간 궤적.
목책 아래 드리운 짧은 그림자.
일반적인 전사라면 아무것도 없다고 여길 그것들이, 아스테르다스에게는 낙점이 되었다.
죠니가 창을 찔렀다.
첫 찌름은 어깨를 스쳤다.
아스테르다스는 그 스친 궤적을 밟고 몸을 돌렸다.
죠니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내 창을 발판으로 썼다고?”
아스테르다스가 낮게 답했다.
“네가 내 앞에 길을 그었다.”
“그럼 다음 건 좀 비싸게 받아야겠네.”
두 번째 찌름은 허공을 찔렀다.
아스테르다스는 그 허공 아래로 떨어지며 죠니의 말 안쪽으로 들어왔다.
죠니는 안장에서 몸을 반쯤 빼냈다. 등자 위의 발끝이 말의 옆구리, 흙바닥, 다시 안장으로 흐름을 이었다.
《윤회보: 흐름의 보법》.
그는 말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말 위에만 있지도 않았다.
흐름 위에 있었다.
세 번째 찌름은 아스테르다스가 지나간 뒤의 빛을 갈랐다.
관중들은 빗나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레이튼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빗나간 것이 아니군요.”
푸리나가 물었다.
“왜?”
“매번 조금씩 좁아지고 있습니다.”
죠니의 창끝은 원을 그리고 있었다.
첫 번째 원은 컸다.
두 번째 원은 조금 작았다.
세 번째 원은 더 작았다.
《윤회창: 나선수렴》.
창끝은 매번 조금씩 더 좁은 나선을 그리며, 아직 오지 않은 한순간을 향해 모이고 있었다.
아스테르다스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움직일 길이 줄어들고 있다.
죠니는 그를 쫓아오지 않았다.
그를 몰고 있었다.
가장 빠른 길을 막는 것이 아니라, 그가 도착할 수 있는 모든 낙점을 조금씩 한 지점으로 모으고 있었다.
아스테르다스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다.
“재밌군.”
죠니가 낮게 말했다.
“그 말은 보통 위험하던데.”
“맞아.”
아스테르다스의 몸이 낮아졌다.
경기장 위의 공기가 바뀌었다.
푸른빛이 흙먼지 사이로 길게 그어졌다.
《하늘을 가르는 스파킹 메테오》.
아스테르다스가 지나간 자리마다 청흑빛과 푸른빛이 섞인 궤적이 남았다. 그것은 단순한 잔상이 아니었다. 이미 밟은 길이었고, 다시 밟을 수 있는 길이었다. 아직 그리지 않은 궤적조차 그가 곧 도착할 장소를 향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는 경기장 바깥으로 빠지는 듯했다.
죠니의 말이 원을 넓혔다.
그 순간, 아스테르다스는 자신이 이미 그어둔 푸른 궤적을 다시 밟았다.
그의 몸이 원 바깥에서 안쪽으로 떨어졌다.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죠니 경.”
하융의 목소리가 날아왔다.
그는 경기장 밖에 있었지만, 창문 너머의 가능성을 보고 있었다.
한 창에서는 죠니가 지금 말머리를 틀었다.
말의 앞다리가 접혔다.
죠니는 땅에 떨어졌고, 아스테르다스의 낙하는 멈추지 못했다.
하융은 그 창을 닫았다.
“반 박자 늦게 도시오. 지금 돌면 말의 앞다리가 접히오.”
죠니는 보지 않고 답했다.
“들었어.”
그는 본능보다 반 박자 늦게 돌았다.
말의 앞발이 흙을 찍었다.
아스테르다스의 낙하가 말의 갈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한 박자 빨랐다면 부러졌을 다리가, 반 박자 늦은 회전 속에서 살아남았다.
죠니는 짧게 숨을 뱉었다.
“괜찮아.”
말발굽이 다시 원을 그렸다.
“아직 돈다.”
《생과 사를 반복하여 기지의 결과를 보다》.
소모된 힘은 사라지지 않았다.
말발굽이 흙을 찍고, 창끝이 원을 그을 때마다, 죠니의 차력은 죽은 흐름처럼 흩어지지 않고 다시 돌아왔다. 호흡은 거칠어졌지만 끊기지 않았다. 손목의 피로는 원을 한 번 더 돌 때마다 다른 박자로 재배치되었다.
반복은 저주가 아니었다.
반복은 아직 달릴 수 있다는 증거였다.
아스테르다스의 눈이 번뜩였다.
죠니의 나선은 이제 더 좁아지고 있었다.
다음 세 번.
아니, 어쩌면 두 번.
그 안에 자신의 낙점은 죠니의 창끝으로 몰릴 것이다.
그러면 길을 바꿔야 한다.
아스테르다스는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좋아.”
푸른 궤적 위에서 그의 몸이 낮아졌다.
“그럼 예열은 생략하지.”
죠니의 눈이 가늘어졌다.
경기장 위의 청흑빛이 한순간 흰빛으로 뒤집혔다.
그것은 불꽃이 아니었다.
아니, 불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용했다.
빛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무거웠다.
아스테르다스의 몸이 영묘한 백광으로 타올랐다.
《영묘한 광채의 초신성》.
그는 빨라지지 않았다.
빨라지는 과정이 없었다.
점화되는 순간, 이미 최대속이었다.
아까까지 쌓였던 피로가 사라졌다.
흔들리던 호흡이 정렬되었다.
근육의 지연이 지워졌고, 관절의 미세한 어긋남이 최대속으로 움직일 수 있는 상태에 맞춰 되돌아갔다.
그것은 회복이라기보다 존재의 조정이었다.
아스테르다스라는 별이, 지금 이 10분 동안 가장 빠르게 떨어질 수 있는 상태로 다시 쓰였다.
그는 낮게 선언했다.
“빛을 이끄는 길이 되리라.”
그 순간, 관중들은 착각했다.
아스테르다스가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빛이 그의 뒤를 따라 끌려가는 것처럼 보였다.
하늘을 가르는 푸른 궤적이 백광으로 번졌다.
청흑빛 유성은 더 이상 단순히 떨어지지 않았다.
그는 길을 만들었다.
빛을 끌고 가는 초신성처럼.
죠니의 말이 크게 숨을 뿜었다.
죠니는 눈을 깜박이지 않았다.
“빨라졌네.”
백광이 시야를 갈랐다.
“아니.”
그는 창대를 고쳐 쥐었다.
“처음부터 거기 있었던 건가.”
아스테르다스가 죠니의 원 안쪽으로 떨어졌다.
이번에는 완전히 피할 수 없었다.
죠니는 창을 회수하지 않았다.
말을 억지로 꺾지도 않았다.
충격이 흉갑 앞에 닿았다.
청흑빛과 백광이 뒤섞인 압력.
죠니의 몸은 밀려나야 했다.
말의 앞다리는 꺾여야 했고, 창끝은 흐트러져야 했다.
관중석 쪽 목책은 부서져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붕괴가 한 겹의 얇은 외피 위에서 멈췄다.
《정지된 외피: 찰나의 갑주》.
단단한 갑옷이 아니었다.
무너지는 순간을 잠시 붙잡은 찰나였다.
갑옷의 표면 위에서 빛이 미끄러졌다. 죠니의 어깨가 흔들렸고, 말이 한 걸음 밀렸다. 하지만 중심은 무너지지 않았다.
죠니는 이를 악물었다가, 낮게 말했다.
“위험했네. 방금 건 농담으로 맞을 게 아니야.”
아스테르다스가 답했다.
“농담으로 친 것도 아니야.”
“그건 알겠어.”
그레이가 즉시 손을 들었다.
“북쪽 안전선 뒤로 물러나세요. 사제 두 명, 대기.”
여관좌 사제들이 등불을 들어 올렸다.
푸리나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두 사람을 똑바로 보고 있었다.
이제는 단순히 멋진 장면이 아니었다.
칼끝이 정말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거리까지 왔다.
이 무대가 무너지지 않으려면, 둘 중 하나가 강한 것보다 둘 모두 멈출 줄 알아야 했다.
죠니는 숨을 들이켰다.
아스테르다스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것은 인정해야 했다.
예열 없는 최대속.
점화된 순간 이미 도착하는 초신성.
그 빛을 뒤쫓아서는 늦는다.
죠니는 고삐를 느슨하게 잡았다.
“그럼 나는 더 멀리 돌아야겠네.”
그의 발밑에서, 말발굽의 소리가 멀어졌다.
아니, 가까워졌다.
둘 다 아니었다.
그 순간 죠니의 여관은 방이 아니었다.
벽난로도 없었다.
침대도 없었다.
문패도 없었다.
말발굽이 땅을 치는 소리.
창끝이 마지막으로 떨리는 각도.
숨이 끊기기 직전의 금빛 한 박자.
생과 사 사이에서, 모든 움직임이 단 한순간으로 수렴하는 자리.
그것이 죠니의 [여관:찰나]였다.
《영원할 찰나》.
아주 얇게, 경기장 일부가 그 여관에 닿았다.
죠니의 눈에 아스테르다스의 궤적이 겹쳐 보였다.
《황금의 동경》.
생과 사 사이의 모든 움직임이 무한한 회전으로 보였다. 그러나 아스테르다스는 바퀴가 아니었다. 그는 회전 안에 얌전히 들어오는 별이 아니었다. 매번 다른 곳으로 떨어지고, 매번 자신이 정한 곳에 도착하는 초신성이었다.
하지만 그 빛에도 오차는 있었다.
오차라기보다, 닿기 전의 틈.
죽이지 않기 위해 멈추어야 하는 한 치.
죠니는 그 한 치를 보았다.
말발굽이 한 번 더 돌았다.
창끝이 마지막 나선을 그렸다.
《윤회창: 나선수렴》.
첫 번째 원.
두 번째 원.
세 번째 원.
그리고 더 멀리 돌아온 길.
《멀리 돌아가는 길》.
그는 가장 빠른 길을 택하지 않았다.
가장 빠른 길로는 이미 늦었다.
그러므로 멀리 돌았다.
하지만 멀리 돌아온 길은, 가장 정확한 순간에 도착했다.
아스테르다스는 마지막 낙점을 정했다.
그의 주먹은 단순한 타격이 아니었다.
《유성추무》.
낙하.
마찰.
발화.
충돌.
진동.
그 모든 과정이 몸 안에서 한 번에 겹쳐졌다.
그리고 마지막.
《유성진천》.
그 일격은 사람의 살을 찢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죠니와 말의 중심, 자세, 균형, 내력의 축, 전장 내 위치를 한꺼번에 무너뜨릴 위치를 향했다.
친선전이 아니었다면.
그 위치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아스테르다스는 점화된 순간 이미 도착해 있었다.
죠니는 멀리 돌아, 그 도착점에 늦지 않게 와 있었다.
먼지가 솟았다.
말이 앞발을 들었다.
백광이 창끝 위에서 갈라졌다.
그레이가 숨을 삼켰다.
하융은 온화한 창 하나가 아직 닫히지 않은 것을 보았다.
레이튼은 모자챙 아래에서 조용히 눈을 떴다.
푸리나는 손을 쥐었다.
그 순간.
여관좌 사제의 목소리가 경기장을 갈랐다.
“정지!”
모든 것이 멈췄다.
아스테르다스의 주먹은 죠니와 말의 중심을 무너뜨릴 한 치 앞에서 멈춰 있었다.
죠니의 창끝은 아스테르다스의 갑옷 틈 아래, 목으로 이어지는 선의 한 치 앞에서 멈춰 있었다.
말은 거칠게 숨을 뿜었다.
죠니의 손목은 떨렸다.
아스테르다스의 백광은 천천히 청흑빛으로 가라앉았다.
경기장 위에 길게 남은 빛의 궤적들이, 마치 밤하늘에 잘못 내려앉은 별자리처럼 흔들렸다.
아무도 바로 박수치지 못했다.
모두가 방금 본 것이 친선전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레이가 먼저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양측 치명타 성립. 정지 판정. 부상 없음.”
그녀는 그제야 작게 숨을 내쉬었다.
“무승부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자, 관중석에서 뒤늦게 소리가 터졌다.
처음에는 탄성이었다.
그다음은 박수였다.
목책 바깥의 기병들이 창대를 들어 올렸다. 아이들이 자리에서 뛰어올랐다. 병사들이 말발굽 박자에 맞춰 창대를 두드렸다.
푸리나는 양손을 번쩍 들었다.
“좋아! 개막전 무승부! 완벽해!”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무승부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폐하.”
푸리나는 돌아보았다.
“둘 다 살아 있고, 둘 다 멋있었잖아. 완벽해!”
“평가 기준이 너무 감상적입니다.”
“오늘은 감상도 규칙이야!”
“그런 규칙은 없습니다.”
“지금 만들었어!”
죠니는 말 위에서 창을 내렸다.
“저럴 줄 알았다.”
아스테르다스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직 손끝에 빛의 잔향이 남아 있었다.
죠니가 그를 보며 말했다.
“맞았으면 많이 아팠겠네.”
아스테르다스가 답했다.
“찔렸으면 나도 아팠을 거다.”
“친선전이라 다행이네.”
아스테르다스는 경기장 위의 궤적을 보았다.
아직 빛이 사라지지 않았다.
“전장에서는 저기서 멈추지 못하겠지.”
죠니는 잠시 조용해졌다.
그의 말이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러니까 오늘 멈춘 거겠지.”
아스테르다스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았다.”
그는 남은 빛을 바라보았다.
“빛을 이끄는 길이,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남을 수 있다면.”
죠니는 창대를 어깨에 얹었다.
“그럼 오늘은 좋은 길이었네.”
하융이 경기장 밖에서 조용히 말했다.
“비껴간 창들 중, 이 결말이 가장 온화하였소.”
죠니가 고개를 돌렸다.
“온화했다기엔 목숨줄이 좀 가까웠는데.”
아스테르다스가 답했다.
“가까웠으니까 온화한 거다. 닿지는 않았으니까.”
죠니는 잠깐 그를 보다가 피식 웃었다.
“리투아니아식 농담은 무겁네.”
“농담은 아니었다.”
“그럼 더 무겁고.”
레이튼은 박수 속에서 천천히 말했다.
“오늘의 질문에는 적절한 답이었습니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오, 레이튼! 해설!”
“해설이라기보다 정리입니다.”
레이튼은 경기장에 남은 원과 빛의 궤적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 모두, 상대를 죽이지 않고도 자신의 길을 증명했습니다. 한쪽은 회전을 완성했고, 다른 한쪽은 빛의 길을 남겼습니다.”
푸리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첫 경기부터 완벽했네!”
그레이는 작게 말했다.
“폐하, 다음 경기 전 경기장 보수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북쪽 목책 일부가 흔들렸고, 흙바닥 중앙이 패였습니다. 등불 두 개도 위치를 조정해야 합니다.”
푸리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좋아! 막간이다!”
죠니가 중얼거렸다.
“결국 쉬는 시간도 연극이네.”
아스테르다스는 경기장을 나서며 짧게 말했다.
“나쁘지 않은 무대였다.”
푸리나는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
“그치?!”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돌렸다.
“떨어질 곳을 정해도, 누군가 다치지 않을 수 있는 무대라면.”
그는 잠깐 말을 멈췄다.
“가끔은 필요하겠지.”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좋아. 그 말, 오늘의 첫 번째 호평으로 기록!”
그레이가 장부를 들었다.
“정말 기록합니까?”
“응!”
그레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장부 한쪽에 작게 적었다.
《제1경기 종료. 무승부. 부상 없음. 경기장 일부 보수 필요.》
그리고 그 아래, 아주 작은 글씨로 덧붙였다.
《아스테르다스 경: 무대에 대해 긍정적 발언.》
죠니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그런 것도 적어?”
그레이는 장부를 닫았다.
“기록해두면, 나중에 같은 이유로 싸우지 않아도 될 때가 있습니다.”
죠니는 잠깐 말이 없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네.”
박수는 아직 이어지고 있었다.
그 박수 아래에서, 초신성은 사람을 불태우지 않고 궤적만을 남겼다.
회전은 상대를 꿰뚫지 않고 하나의 찰나로 완성되었다.
첫 번째 친선전은 승자를 남기지 않았다.
대신 두 개의 길을 남겼다.
하나는 빛을 이끄는 초신성의 길.
하나는 멀리 돌아, 가장 정확한 순간에 도착하는 길.
그리고 그 두 길은, 푸리나의 무대 위에서 처음으로 서로를 죽이지 않고 교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