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17익명의 참치 씨(83c9c67c)2026-05-14 (목) 19:57:01
《등불 아래의 학술제》

6막 — 왕관과 죄의 원탁

6막이 시작되기 전, 푸리나는 원탁 위의 장식을 모두 치웠다.

별도, 도시 지도도, 공방 도구도, 등불 이름표도 없었다.

남은 것은 왕관 모양의 작은 목패 일곱 개뿐이었다.

그 목패들은 모두 같은 크기였다.

그러나 그 위에 드리운 그림자는 같지 않았다.

민다우가스의 목패에는 북방 숲과 늪의 냉기가 있었다.
벨라 4세의 목패에는 불탄 왕국의 재 냄새와 새로 쌓은 성벽의 돌가루가 있었다.
미하일라의 목패에는 자주빛 화살의 긴장이 있었다.
요안나의 목패에는 아이가 두 손으로 붙든 흰 보좌의 온기가 있었다.
호흐마이스터의 목패에는 죄악의 갑주가 남긴 무거운 흠집이 있었다.
슈샤니크의 목패에는 잉크와 피가 섞인 장부의 무게가 있었다.
레이튼의 목패에는 아직 닫히지 않은 질문이 있었다.

푸리나는 그 앞에 서서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학술제였지만, 이 막은 학술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이번 막의 주제는.”

푸리나는 천천히 말했다.

“통치자는 죄를 어디까지 짊어져야 하는가.”

강당이 조용해졌다.

푸리나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죄를 짊어진다는 말은, 누구의 침묵 위에서 성립하는가.”

요안나의 손가락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미하일라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민다우가스는 원탁 위의 목패를 보다가, 천천히 입가를 올렸다.

그것은 따뜻한 웃음은 아니었다.

그러나 완전히 차가운 무표정도 아니었다.

마치 겨울 숲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도, 그 불이 어느 방향으로 번질지 이미 계산해둔 사람의 웃음이었다.

벨라 4세는 원탁 위 목패를 보고 있었다.

그녀의 침묵은 성채처럼 낮고 무거웠다.

레이튼은 모자를 벗었다.

“오늘은 질문이 날카롭습니다.”

푸리나는 낮게 답했다.

“그럴 수밖에 없잖아.”

그레이가 장부를 펼쳤다.

“6막 진행 원칙. 발언자는 상대의 통치권과 경험을 부정하지 않는다. 단, 윤리적 반론은 허용한다. 실제 모욕, 혈통 비하, 신앙 모독은 금지. 발언 후 기록 검토 가능.”

라플리가 관객석에서 중얼거렸다.

“토론 규칙이 전쟁 규칙보다 길어지는 것 같은데.”

레이튼이 부드럽게 말했다.

“말은 전쟁보다 오래 남을 때가 많으니까요.”

아카식은 기록대에서 펜을 잡았다.

“좋아. 오늘은 무겁게 간다.”

그레이가 그를 보았다.

“불필요한 주석은 삼가십시오.”

“오늘은 나도 알아.”

아카식은 드물게 가볍게 웃지 않았다.

원탁에 먼저 앉은 것은 민다우가스였다.

그는 왕좌에 앉듯 앉지 않았다.

사냥터의 지도를 펼치는 사람처럼 앉았다.

어디서 숨을지.
어디서 끌어들일지.
어디서 피를 내고, 어디서 멈출지.

그런 것들을 이미 생각하고 있는 사람의 자세였다.

민다우가스는 원탁을 둘러보더니 낮게 웃었다.

“죄를 어디까지 짊어지냐고?”

그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패를 가볍게 밀었다.

“좋은 질문이다. 왕관 쓴 자들이 좋아할 만한 말이군. 무겁고, 근사하고, 스스로를 비극으로 꾸미기 좋다.”

푸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민다우가스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그러나 눈은 차가웠다.

“하지만 숲은 그런 말을 듣고 길을 열어주지 않는다. 침략자는 왕의 죄책감이 깊다고 물러나지 않는다. 불탄 마을은 군주의 눈물이 많다고 다시 세워지지 않는다.”

그는 원탁 위에 손을 얹었다.

“통치자는 죄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다. 먼저 계산한다. 무엇을 잃었고, 무엇을 살렸고, 누구에게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지. 그 계산이 끝나면 결과를 남긴다. 그 결과가 틀렸다면, 왕이 먼저 그 값을 치른다.”

요안나가 그를 보았다.

민다우가스는 그녀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감상은 그다음이다.”

벨라 4세가 낮게 말했다.

“계산은 필요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짧고 무거웠다.

“하지만 계산한 뒤에는 묻어야 한다.”

민다우가스가 벨라를 보았다.

벨라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왕국은 불탔다.”

그 한 문장만으로도 원탁 위에 재가 내려앉는 듯했다.

“그 뒤에도 왕관은 남았다.”

벨라의 시선은 목패가 아니라, 목패 너머의 무너진 헝가리를 보고 있었다.

“남았기에, 다시 세워야 했다.”

그녀는 원탁 위에 손을 얹었다.

“죄를 짊어진다는 말은 쉽다.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는 데에는 돌과 사람과 시간이 든다.”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 맞는 말이다, 마자르의 여왕.”

그 웃음은 호방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칼끝 같은 구분이 있었다.

“돌과 사람과 시간. 결국 왕국은 그 셋을 먹고 버틴다. 차이는 이거겠지. 나는 그 셋을 먼저 세고, 그다음 묻는다. 누가 울었는지.”

벨라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너무 늦게 묻는군.”

민다우가스는 어깨를 크게 폈다.

“늦게라도 물을 나라가 남아야 하지 않겠나.”

강당의 공기가 팽팽해졌다.

벨라는 흔들리지 않았다.

“희생은 계산될 수 있다.”

그녀는 천천히 말했다.

“그러나 이름 없이 묻으면, 왕국은 다시 무너진다.”

민다우가스는 웃음을 거두었다.

“그 점은 부정하지 않는다.”

짧은 침묵.

그는 덧붙였다.

“이름이 남아야 다음 계산이 정확해진다.”

그레이의 펜끝이 멈칫했다.

벨라는 그 답을 마음에 들어하지도, 거부하지도 않았다.

다만 말했다.

“정확함만으로 애도가 되지는 않는다.”

“애도만으로 방책이 되지도 않는다.”

민다우가스의 답은 빨랐다.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녀의 눈은 여전히 무거웠다.

“그래서 둘 다 필요하다.”

미하일라가 그때 입을 열었다.

“짐은 죄를 회계 항목으로만 두지 않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우아했고, 절제되어 있었다.

황제의 목소리였다.

“황제가 쏘는 화살은 개인의 선택이 아닙니다. 제국의 다음 백 년을 향한 칙령입니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피를 흘릴 때, 그 피는 계산만으로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녀의 손가락이 보이지 않는 활시위를 잡듯 아주 작게 움직였다.

“그렇기에 짐은 그 업을 왕관 아래에 묶습니다. 누군가에게 넘기지 않기 위해서.”

민다우가스가 미하일라를 보았다.

“왕관 아래라.”

그는 웃지 않았다.

“좋은 금고군. 문제는 금고가 무거워질수록 왕이 백성의 목소리를 듣기 싫어진다는 점이다.”

미하일라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녀가 답하기 전, 요안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그 왕관 아래에서 울던 사람들의 목소리는 어디에 둡니까, 폐하.”

그 말은 칼보다 조용했다.

그래서 더 깊게 들어갔다.

미하일라는 요안나를 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는 예법이 있었다.

동시에 예법으로 다 덮이지 않는 상처가 있었다.

요안나는 천천히 말했다.

“폐하들께서는 죄를 짊어진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묻겠습니다.”

그녀의 손이 원탁 위에 놓였다.

작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그 죄를 짊어진다는 말은, 상처 입은 이들에게 조용히 있으라는 뜻입니까?”

강당이 얼어붙었다.

미하일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황제였다.

황제는 말해야 할 때를 안다.

그리고 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도 안다.

“아닙니다, 폐하.”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죄는 왕관 아래 숨겨져서는 안 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아직 부드러웠다.

하지만 그 안에는 어린 이상만이 아니라, 이미 상처를 입고도 평화를 말해야 하는 사람의 단단함이 있었다.

“왕관은 무거워야 합니다. 그러나 그 무게가 사람들의 목소리를 누르는 데 쓰여서는 안 됩니다.”

민다우가스는 요안나를 보며 짧게 웃었다.

“평화의 황제답군.”

요안나는 흔들리지 않았다.

“평화는 조용히 있으라는 명령이 아닙니다.”

“그건 맞다.”

민다우가스는 예상보다 쉽게 인정했다.

“입을 막은 백성은 조용한 것이 아니다. 나중에 더 비싸게 터질 뿐이지.”

요안나의 눈빛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그 답은 냉정했지만, 틀리지는 않았다.

호흐마이스터가 조용히 말했다.

“요안나 폐하의 말은 옳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호흐마이스터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전투장에서 가장 먼저 서던 손.

죄악의 갑주를 입은 손.

“저는 먼저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그녀의 말은 고백에 가까웠다.

“성벽 앞에서, 관중석 앞에서, 약한 이들 앞에서. 더러운 것을 막기 위해 먼저 나설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제가 더러워졌다는 이유로, 뒤에 선 모두가 깨끗하다고 믿게 만든다면, 그것 또한 거짓입니다.”

레이튼의 눈이 조용히 빛났다.

호흐마이스터는 이어 말했다.

“죄를 입는 것이 미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죄는 죄입니다. 먼저 입는 자가 필요할 수는 있으나, 그 일을 칭송만 한다면 다음 세대는 더러워지는 일을 의무로 배우게 됩니다.”

요안나는 그 말을 조용히 받아들였다.

미하일라도 마찬가지였다.

슈샤니크는 그때까지 침묵하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빈 문서가 놓여 있었다.

문서가 비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에게는 불편해 보였다.

마침내 슈샤니크가 말했다.

“죄를 감정으로만 다루면 아무도 살리지 못합니다.”

그 문장은 차가웠다.

하지만 무심하지는 않았다.

“통치자가 죄를 느끼는 것, 슬퍼하는 것, 밤에 잠들지 못하는 것. 그것들은 사적인 결과입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그 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화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빈 문서에 선을 그었다.

“누가 명령했는가. 어떤 조건에서 그 명령이 나왔는가. 누가 반대했는가. 어떤 보급과 정보가 부족했는가. 누가 이익을 얻었는가. 누가 죽었는가.”

그녀의 목소리는 조금 낮아졌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떤 절차가 그 죽음을 막을 수 있는가.”

푸리나는 슈샤니크를 보았다.

그녀는 한때 사람을 살리기 위해 행정을 배운 사람이다.

그리고 한때 사람을 착취하기 위해 행정을 써버린 사람이다.

그 둘이 슈샤니크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슈샤니크는 말했다.

“죄를 기억하지 않는 제도는 다시 같은 일을 저지릅니다. 하지만 죄책감만 있고 장부가 없다면, 그 또한 아무도 살리지 못합니다.”

민다우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마음에 드는군.”

슈샤니크는 그를 보았다.

민다우가스는 넓게 웃었다.

“죄책감은 연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엔진은 못 된다. 국가를 움직이려면 구조가 필요하지.”

슈샤니크는 잠시 침묵했다.

“표현은 다르지만, 의미는 일부 동의합니다.”

“일부면 충분하다.”

민다우가스는 손을 내저었다.

“전부 동의하는 원탁은 대개 쓸모없다.”

레이튼은 모자를 원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오늘의 질문을 조금 바꿔도 되겠습니까?”

푸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레이튼은 원탁을 둘러보았다.

“통치자가 죄를 짊어진다는 말은, 백성들이 그 죄를 잊어도 된다는 뜻입니까?”

침묵.

이번 침묵은 길었다.

민다우가스가 먼저 답했다.

“아니다.”

그의 목소리는 호방하지 않았다.

짧고 차가웠다.

“잊으면 같은 값을 다시 낸다.”

요안나가 조용히 말했다.

“값이 아니라 상처입니다.”

민다우가스는 요안나를 보았다.

“상처도 값이 있다.”

요안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민다우가스는 이어 말했다.

“그 말이 싫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상처를 값으로 보지 않으면, 통치자는 그것을 줄이는 방법도 모른다. 다만.”

그는 손가락으로 원탁을 두드렸다.

“값을 매긴다는 말이, 그 사람의 눈물을 싸게 산다는 뜻은 아니다.”

그 말은 민다우가스답게 거칠었다.

그러나 방금 전보다 더 정확했다.

레플리카가 관객석에서 입을 열었다.

“계산만으로는 부족하다.”

모두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레플리카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원탁까지 충분히 닿았다.

“필요한 희생이라는 말은 조심해야 한다. 희생당하는 사람에게는 필요가 아니라 고통으로 오니까.”

민다우가스는 그녀를 보았다.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서 통치자는 그 고통까지 계산해야 한다.”

레플리카는 고개를 저었다.

“계산한 뒤에도, 그 사람을 보러 가야 한다.”

그 말에 원탁의 공기가 달라졌다.

레플리카는 이어 말했다.

“살아남은 자가 통치자의 결정을 이해해줄 거라고 기대하지 마라. 아픈 사람은 논리로 먼저 낫지 않는다. 필요한 희생이었다고 설명하기 전에, 그 사람이 아직 숨 쉬는지 봐야 한다.”

벨라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그 한마디는 짧았지만 무거웠다.

민다우가스는 반박하지 않았다.

다만 말했다.

“그래. 그래서 살아남겨야 한다. 보러 갈 사람도, 원망할 사람도, 다시 세울 사람도.”

레플리카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살아남은 뒤에는 고통을 줄여야 한다.”

“그건 네 일이다.”

민다우가스는 건조하게 말했다.

“내 일은 그럴 수 있는 판을 남기는 것이다.”

레플리카는 그를 오래 보았다.

“그 판이 사람을 눌러 죽이지 않게 해라.”

민다우가스는 짧게 웃었다.

“좋은 경고군.”

이상한 합의였다.

차갑고 뜨거운 말들이 부딪쳤지만, 완전히 깨지지는 않았다.

그때 아스테르다스가 관객석에서 손을 들었다.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아스테르다스?”

아스테르다스는 평소처럼 부드럽게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 아래에는 리투아니아의 청흑빛 유성이 품은, 민다우가스와는 다른 온도가 있었다.

“잠깐만, 전하께 한마디 해도 될까?”

민다우가스는 그를 보았다.

“말해라.”

아스테르다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하. 검은 자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무엇을 자를지는 쥔 사람이 정하지.”

그는 원탁의 목패들을 보았다.

“사람도 부품처럼 쓸 수는 있겠지. 전쟁은 그런 식으로 사람을 놓고, 국가는 가끔 그런 식으로 사람을 세우니까.”

그의 목소리는 비난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동의도 아니었다.

“하지만 부품이라고 부르는 순간, 그 사람이 왜 그 자리에서 빛나려 했는지는 사라져.”

아스테르다스는 아주 작게 웃었다.

“나는 별이 떨어지는 자리도 결과라고 생각해. 하지만 별이 왜 빛났는지까지 지워버리면, 밤하늘은 그냥 계산표가 되어버리잖아.”

민다우가스는 아스테르다스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크게 웃었다.

“하! 역시 너답군, 아스테르다스.”

그 웃음은 진짜 웃음이었다.

하지만 그 안에는 차가운 평가도 있었다.

“좋다. 네 말도 맞다. 계산표만 보고 전쟁하면,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백성은 구조만으로 죽지 않고, 구조만으로 싸우지도 않는다.”

아스테르다스는 조금 놀란 듯했다.

민다우가스는 이어 말했다.

“그래서 네가 필요하다.”

강당이 조용해졌다.

“나는 리투아니아가 살아남는 구조를 만든다. 너는 그 구조 위에서 사람이 숨 쉴 자리를 본다. 둘 다 필요하다. 내가 그것을 모른다고 생각했나?”

아스테르다스는 잠시 말이 없다가, 부드럽게 웃었다.

“아니. 전하가 모른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어. 다만 말하지 않을 거라고는 생각했지.”

민다우가스는 코웃음을 쳤다.

“말해도 되는 자리니까 말했다. 자주 기대하지 마라.”

“응. 별똥별도 자주 떨어지면 별똥별이 아니니까.”

“앉아라.”

“네.”

아스테르다스는 웃으며 앉았다.

죠니가 옆에서 낮게 말했다.

“저게 감동적인 대화야?”

아스테르다스는 작게 답했다.

“리투아니아식으로는 꽤.”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렵네.”

원탁 위의 공기는 조금 달라졌다.

레이튼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렇다면 또 하나 묻겠습니다.”

그는 민다우가스와 벨라, 미하일라, 요안나를 차례로 보았다.

“통치자는 자신의 죄를 어디에 두어야 합니까? 마음속입니까, 장부입니까, 법입니까, 왕관입니까, 아니면 백성 앞입니까?”

슈샤니크가 답했다.

“장부와 법입니다.”

요안나가 말했다.

“백성 앞에도 두어야 합니다.”

미하일라가 말했다.

“왕관 아래에 두되, 숨기지 않아야 합니다.”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몸으로 막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몸으로 막았다는 이유로 끝났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벨라가 말했다.

“성벽에 남겨야 한다.”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벨라는 천천히 말했다.

“돌은 기억한다.”

그녀의 말은 짧았다.

“여왕이 잘못 세운 성벽은 무너진다. 여왕이 다시 세운 성벽은 묻는다. 다음에도 이렇게 세울 것인가.”

그녀는 원탁 위에 놓인 목패를 손끝으로 밀었다.

“죄를 어디에 두어야 하는가. 나는 성벽에도 둔다. 우물에도 둔다. 곡창에도 둔다. 길에도 둔다.”

푸리나는 조용히 물었다.

“왜요?”

벨라는 그녀를 보았다.

“다시 불타지 않게 하려고.”

그 말은 너무 단순했다.

그래서 누구도 가볍게 받을 수 없었다.

민다우가스는 짧게 말했다.

“동의한다.”

미하일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요새도 그렇게 세워져야 합니다.”

요안나는 부드럽지만 분명하게 말했다.

“그리고 그 성벽 안에 들어온 사람들의 목소리도 남아야 합니다.”

벨라는 요안나를 보았다.

잠시 침묵.

“그래.”

그녀가 말했다.

“성벽만 있으면 감옥이 된다.”

요안나는 아주 작게 미소 지었다.

“감사합니다.”

푸리나는 이 모든 말을 들으며 원탁을 바라보았다.

이건 승패를 낼 수 있는 논쟁이 아니었다.

민다우가스의 계산이 틀렸다고 할 수 없었다.
벨라의 재건이 부족하다고 할 수 없었다.
미하일라의 칙령이 단순 폭력이라고 할 수 없었다.
요안나의 평화가 어린 말뿐이라고 할 수 없었다.
호흐마이스터의 먼저 더러워지는 갑주도 필요했다.
슈샤니크의 장부도 필요했다.
레이튼의 질문도 필요했다.
레플리카의 고통도, 아스테르다스의 빛도 필요했다.

그렇다면 답은 어디에 있는가.

푸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물었다.

“그럼 왕은 어떻게 해야 해?”

그 질문은 사회자의 질문이 아니었다.

푸리나 헤툼의 질문이었다.

칼리키아 아르메니아의 군주.
극장주.
박수를 믿는 사람.
그러나 침묵을 배워가는 사람.

레이튼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원탁에 앉은 왕관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민다우가스가 먼저 크게 웃었다.

“살아남아라, 헤툼.”

그 말은 호방했다.

하지만 뒤따라온 말은 차가웠다.

“살아남은 왕만이 후회도, 애도도, 배상도 할 수 있다. 죽은 왕의 죄책감은 백성에게 아무 쓸모 없다.”

벨라가 말했다.

“그리고 다시 세워라.”

미하일라가 말했다.

“전쟁을 끝내라.”

요안나가 말했다.

“끝낸 뒤, 사람들의 손을 다시 잡아라.”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먼저 설 때는 서십시오. 하지만 혼자 선다고 믿지는 마십시오.”

슈샤니크가 말했다.

“기록하십시오. 기록하지 않은 죄는 반드시 돌아옵니다.”

레플리카가 말했다.

“아픈 사람을 보러 가라.”

아스테르다스가 말했다.

“그리고 잊지 마. 결과 위에도 사람이 숨 쉬어야 해.”

마지막으로 레이튼이 말했다.

“그리고 폐하. 결론을 너무 빨리 닫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눈을 감았다.

그 말들은 서로 모순되었다.

그런데 모두 필요했다.

왕관은 하나의 답으로 쓰기에는 너무 무거운 물건이었다.

그레이가 조용히 판정표를 정리했다.

“6막은 승패 판정이 불가능합니다.”

푸리나가 눈을 떴다.

그레이는 이어 말했다.

“대신 공동 명제를 채택합니다.”

그녀는 장부를 읽었다.

“통치자는 죄를 감정으로만 품어서는 안 된다. 장부와 법, 성벽과 제도, 백성 앞의 설명과 피해자의 목소리 속에 남겨야 한다. 필요한 희생이라는 표현은 고통을 숨기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며, 죄를 짊어진다는 말은 누구의 침묵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강당은 조용했다.

그레이는 마지막 문장을 읽었다.

“그리고 통치자는 결론을 닫은 뒤에도, 그 결론 때문에 아픈 사람을 보러 가야 한다.”

레플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안나는 조용히 눈을 내렸다.

미하일라는 긴 숨을 내쉬었다.

민다우가스는 손가락으로 원탁을 한 번 두드렸다.

“좋군. 쓸 수 있는 결론이다.”

그 말은 그다운 칭찬이었다.

벨라는 짧게 말했다.

“적어라.”

그레이는 이미 적고 있었다.

아카식도 적었다.

이번 기록에는 농담이 없었다.

《6막 결론. 왕관은 죄를 없애지 못한다. 다만 죄가 반복되지 않도록 무겁게 남기는 도구가 될 수 있다. 왕이 죄를 짊어진다는 말은 백성의 침묵을 뜻하지 않는다. 성벽, 장부, 법, 설명, 고통의 방문. 모두 필요.》

푸리나는 손을 들었다.

그러나 박수는 치지 않았다.

오늘은 박수보다 고개 숙임이 어울리는 막이었다.

그녀는 원탁의 모두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

그 말은 짧았다.

하지만 푸리나에게는 드문, 장식 없는 말이었다.

민다우가스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의제를 준비해라.”

푸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감상은 없어?”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감상? 좋다. 있다.”

푸리나의 눈이 조금 커졌다.

민다우가스는 원탁을 한 번 훑어보았다.

“이 원탁은 쓸 만하다. 서로 듣기 싫은 말을 했는데도 칼이 안 뽑혔으니까.”

그는 손을 내저었다.

“이 정도면 학술제치고는 대단한 성과다.”

아스테르다스가 뒤에서 웃었다.

“전하식 극찬이네.”

죠니가 중얼거렸다.

“드디어 조금 알아듣겠네.”

벨라 4세는 무너진 도시 모형 쪽을 잠깐 보았다.

“다음에는 재건을 말해야 한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곧 그럴 거야.”

벨라는 짧게 말했다.

“성벽을 먼저 세워라.”

푸리나는 아주 살짝 웃었다.

“그리고 그 옆에 무대도 세우면?”

벨라는 그녀를 보았다.

잠깐.

“무대가 사람을 머물게 한다면.”

푸리나의 얼굴이 밝아졌다.

“머물게 할게.”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세워라.”

요안나는 그 대화를 듣고 조용히 웃었다.

미하일라는 아무 말 없이 활이 없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슈샤니크는 이미 이 막의 결론을 제도화하려면 어떤 조항이 필요한지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호흐마이스터는 갑주 장갑을 다시 끼웠다.

레이튼은 모자를 썼다.

“좋은 질문이었습니다.”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좋은 질문은 왜 이렇게 아파?”

레이튼은 부드럽게 답했다.

“살아 있는 곳을 건드렸기 때문이지요.”

그레이는 그 말도 적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보고 웃지 않았다.

다만 원탁 위에 남은 왕관 목패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목패들은 여전히 같은 크기였다.

하지만 그 위의 그림자는 조금 달라져 있었다.

죄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다만 그 죄를 어디에 둘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이제 한 사람의 가슴 안에만 갇혀 있지 않았다.

장부에 남았고, 성벽에 남았고, 법에 남았고, 고통의 자리에도 남았다.

그리고 질문으로 남았다.

등불 아래에서, 왕관들은 처음으로 자신들의 무게를 서로에게 숨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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