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19익명의 참치 씨(83c9c67c)2026-05-14 (목) 20:13:22
《등불 아래의 학술제》
최종막 — 하나의 도시, 여러 답
최종막의 원탁에는 도시 하나가 놓였다.
아르카다.
처음 2막에서 그것은 폐허였다.
성벽은 무너져 있었고, 우물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피난민 목패는 성문 앞에 쌓여 있었다. 병영에는 부상자가 넘쳤고, 사망자 명단은 비어 있었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주민들은 같은 광장에 서면서도 서로를 믿지 못했다.
그 뒤로 여러 답이 쌓였다.
요안나의 보호 선언.
슈샤니크의 임시 등록표와 시민 절차.
알렉산드리나의 배급선.
그레이의 사망자 명단과 재발 방지 장부.
아스테리아의 교역로와 정보망.
알토의 조건부 보증 계약.
라이자와 라플리, 카를로타와 소피아의 《재건용 응급 공방 상자》.
아레와 타마르, 레플리카와 여관좌가 세운 등불과 치료소.
게오르기아의 임시 학교 시간표.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아직 따로 놓인 답이었다.
오늘의 문제는 그것들을 하나의 도시로 묶는 일이었다.
푸리나는 원탁 앞에 섰다.
이번에는 화려한 개막 대사를 바로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도시를 보았다.
아르카다의 작은 성벽.
작은 우물.
작은 광장.
작은 병영.
작은 학교.
작은 등불.
작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나라란, 결국 그 작은 것들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일일지도 몰랐다.
푸리나는 천천히 말했다.
“최종막의 주제.”
그녀는 원탁 위 도시를 가리켰다.
“몽골 공세 이후 폐허가 된 다민족 변경 도시를 어떻게 다시 살릴 것인가.”
그레이가 장부를 들었다.
“최종 과제 조건을 고지하겠습니다.”
강당이 조용해졌다.
“아르카다는 전쟁 피해를 입은 변경 도시입니다. 성벽 일부 붕괴, 우물 일부 오염, 식량 부족, 교역로 단절, 피난민 유입, 사망자 명단 미완성, 부상자 다수, 학령 아동 분산, 상인 공동체 불신, 종교별 장례 갈등, 병력 피로 누적, 장기 방어 계획 부재.”
라플리가 낮게 말했다.
“욕심 많네, 이 도시.”
소피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라는 게 원래 손댈 곳이 많으니까요.”
그레이는 계속했다.
“목표. 첫째, 30일 생존. 둘째, 1년 내 기능 회복. 셋째, 5년 내 재건 및 방어 지속 가능성 확보. 넷째, 주민 간 내전 또는 대규모 이탈 방지.”
푸리나는 덧붙였다.
“그리고 다섯째.”
그녀는 원탁을 둘러보았다.
“이 도시가 단순히 버티는 곳이 아니라, 다시 살고 싶은 곳이 되게 할 것.”
벨라 4세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살고 싶은 곳.”
그녀는 짧게 말했다.
“좋다. 그러나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오늘은 모두가 필요해요.”
그녀가 손을 펼쳤다.
[여관:극장]이 열렸다.
그러나 이번 극장은 전장도, 교실도, 공방도 아니었다.
도시였다.
원탁 위의 아르카다는 커졌고, 강당 전체가 도시의 축소 세계가 되었다.
성벽은 강당 외곽을 따라 솟았고, 우물은 중앙 광장에 놓였고, 여관과 학교와 공방과 병영과 시장이 각자의 자리를 얻었다.
각 참가자는 도시의 어느 한 장소 앞에 섰다.
푸리나는 그 모든 것을 보았다.
《무대 위의 극작가》.
그녀는 이제 전력이나 지식만 보지 않았다.
소망을 보았다.
요안나는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시민으로 부르길 바랐다.
슈샤니크는 선언이 무너지지 않도록 장부와 법으로 뼈대를 세우려 했다.
그레이는 이름이 빠지지 않게 하려 했다.
알렉산드리나는 첫 달의 배급이 끊기지 않게 하려 했다.
벨라는 도시가 다시 불타지 않는 구조를 세우려 했다.
라이자는 회로와 자재와 사람을 부드럽게 이어주려 했다.
라플리는 하늘과 마력의 경보망을 세우려 했다.
카를로타는 실제 손이 쓸 수 있는 도구를 만들려 했다.
소피아는 망가진 것들에서 새 쓸모를 찾으려 했다.
아레와 타마르는 죽은 자가 전쟁의 먼지 속에 남지 않게 하려 했다.
레플리카는 살아남은 자가 계속 고통만 견디지 않게 하려 했다.
게오르기아는 이 도시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만들려 했다.
아스테리아는 길과 편지와 상단과 소문을 다시 잇고 싶어 했다.
알토는 계약과 기록이 책임을 남기게 하려 했다.
민다우가스는 이 도시가 다음 전쟁에서도 살아남을 판을 보려 했다.
미하일라는 전쟁이 다시 이 도시를 삼키지 않도록 방위 질서를 세우려 했다.
요안나는 그 질서가 사람의 목소리를 누르지 않게 하려 했다.
그리고 푸리나는.
그 모든 답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하나의 도시가 되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손을 들었다.
“세상은 무대요.”
강당의 도시가 숨을 쉬기 시작했다.
“모든 이는 주인공일지니.”
《세상은 무대요, 모든 이는 주인공일지니!》
도시의 각 구역에 작은 조명이 켜졌다.
배급소.
성문.
우물.
공방.
치료소.
장례 등불.
학교.
시장.
성벽.
여관.
푸리나는 크게 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명령이 아니라 호명이어야 했다.
《신은 적절히 준비된 자를 부른다》.
“요안나 폐하.”
요안나가 광장 앞으로 나섰다.
“슈샤니크 경.”
슈샤니크가 그녀 옆에 섰다.
“알렉산드리나.”
배급 수레가 움직였다.
“그레이.”
장부가 펼쳐졌다.
푸리나는 먼저 30일 생존의 축을 세웠다.
요안나가 광장 중앙에 섰다.
그녀의 손에는 선언문이 있었다.
“오늘 이 도시의 빵을 받는 자는, 오늘 이 도시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광장을 통과했다.
“혈통과 언어와 신앙이 다르더라도, 이 도시의 빵을 함께 받고 이 도시의 우물을 함께 지키는 이들은 서로를 적으로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완성된 시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임시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슈샤니크가 그 선언 옆에 문서를 놓았다.
“임시 시민 보호령. 배급, 치료, 치안, 장례, 노동 배치의 기준을 출신이 아니라 필요와 역할로 둡니다. 단, 모든 수령과 배치는 기록합니다. 선언은 장부 없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요안나는 조용히 말했다.
“장부는 선언 없이 사랑받지 못합니다.”
슈샤니크는 그녀를 보았다.
“그러므로 둘 다 필요합니다.”
알렉산드리나는 배급 수레를 네 구역으로 나누었다.
“첫 3일은 생존입니다. 병사와 시민 대표가 같은 줄에서 빵을 받습니다. 부상자는 이동 배급. 수습반은 별도 배급 우선권. 병영과 광장 사이에 보급선을 둡니다. 수레는 지키되, 수레만 지키다 사람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레이는 그 옆에서 이름표를 정렬했다.
“임시 등록표 발행. 신원 미상자도 배급 대상. 단, 추후 확인 의무. 사망자 명단과 생존자 명단을 분리하되, 가족 찾기 게시판과 연결합니다.”
그녀는 펜을 움직였다.
“이름이 없어서 빵을 못 받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름이 없다는 사실도 사라지면 안 됩니다.”
푸리나는 광장 위의 빛이 안정되는 것을 보았다.
첫 3일.
사람들이 굶지 않는 도시.
아직 부족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다음 그녀는 성벽을 보았다.
“벨라 여왕.”
벨라 4세가 성벽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화려한 설계도를 펼치지 않았다.
무너진 돌 하나를 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돌은 작았다.
그러나 그 돌에는 불탄 왕국의 기억이 있었다.
“도시는 위로만 세우지 않는다.”
벨라는 말했다.
“먼저 버틸 곳을 세운다.”
그녀는 성벽의 무너진 동남부를 가리켰다.
“첫해에는 완전한 성벽을 꿈꾸지 마라. 피난처가 되는 탑, 식량을 보관할 석조 곡창, 오염되지 않는 우물, 닫히는 성문. 네 가지가 먼저다.”
민다우가스가 성벽 옆으로 다가왔다.
“좋군. 방어 거점이 있어야 협상도 가능하다.”
벨라는 그를 보았다.
“방어만으로는 도시가 아니다.”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당연하지. 하지만 방어가 없으면 도시가 아니라 좋은 약탈지다.”
그는 성문 밖 도로를 짚었다.
“외곽에 감시소 셋. 늪지 쪽 길은 버린다. 숲길은 유인로로 둔다. 강가의 얕은 여울에는 작은 목책과 경보를 둔다. 도시는 모든 문을 열어 살지 않는다. 어떤 문을 닫을지 알아야 산다.”
미하일라가 그 옆에 섰다.
“그리고 어떤 문을 열어둘지도 알아야 합니다.”
자주빛 황제는 성벽과 광장을 함께 보았다.
“방위 질서는 시민 공동체를 질식시켜서는 안 됩니다. 병력은 우물과 배급소를 지키되, 광장을 점령하지 않습니다. 도시 내부의 무력은 보호의 형식을 가져야 합니다.”
민다우가스가 그녀를 보았다.
“제국답군.”
미하일라는 담담히 답했다.
“제국은 오래 버텨야 하니까요.”
벨라는 짧게 말했다.
“성벽, 우물, 곡창, 길. 그 옆에 병력. 그 안에 사람.”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대는?”
벨라가 푸리나를 보았다.
“성벽이 먼저다.”
“네.”
잠깐.
벨라는 덧붙였다.
“그다음 무대다. 머물게 한다면.”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머물게 할게요.”
성벽에 두 번째 빛이 켜졌다.
첫해.
사람들이 도망만 치지 않아도 되는 도시.
아직 아름답지는 않지만, 버틸 수 있었다.
푸리나는 공방 쪽으로 손을 뻗었다.
“라이자, 라플리, 카를로타, 소피아.”
네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라이자는 성은 실을 도시의 곡창과 공방 사이에 걸었다.
“복구 자재는 그냥 튼튼하면 안 돼요. 사람이 만지고, 다시 쓰고, 고칠 수 있어야 해요.”
그녀는 성은으로 작은 보강재를 조형했다.
문틀.
손잡이.
우물 덮개.
수레축 보강띠.
치료소 침대의 연결부.
“은의 심장은 너무 큰 기적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고장나는 것들을 덜 다치게 해야 해요.”
라플리는 성벽 위에 작은 뇌광 경보핵을 설치했다.
“천율학파식 방어망. 접근 신호를 세 단계로 나눈다. 짐승, 사람, 기병. 그리고 폭주 방지. 지난번처럼 장치가 자기 장렬함에 취해서 타죽지 않게.”
그레이가 바로 물었다.
“소리 수치.”
라플리는 이미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 적었다.”
그레이는 조금 놀란 듯 받아들였다.
“확인했습니다.”
라플리는 승리한 얼굴이 되었다.
“나도 배운다고.”
카를로타는 공방에서 나온 도구들을 실제 손에 맞췄다.
“이 손잡이는 젖은 손에서 미끄럽습니다. 이 수레축 클램프는 오른손잡이만 생각했습니다. 이 경보핵은 설치 높이가 너무 높습니다. 지친 병사가 사다리를 세 번 오르게 하면 장치는 실패합니다.”
라이자는 바로 조정했다.
라플리는 투덜거리면서도 높이를 낮췄다.
소피아는 파손품 더미를 새 칸으로 나누었다.
“완전 수리. 임시 수리. 재료 전환. 교육용 실패품. 폐기.”
푸리나가 물었다.
“폐기도 있어?”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부 살리려 하면 오히려 위험해요. 망가진 걸 쓸 수 있게 하는 것과, 위험한 걸 억지로 쓰는 건 달라요.”
카를로타가 조용히 말했다.
“좋은 장인의 판단입니다.”
소피아는 밝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들의 공방에서 《재건용 응급 공방 상자》가 여러 개 만들어졌다.
그 상자들은 영웅적인 무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도시 둘째 날, 셋째 날, 서른째 날을 버티게 하는 도구였다.
공방에 세 번째 빛이 켜졌다.
망가진 것을 그냥 버리지 않는 도시.
그러나 위험한 것을 억지로 붙들지도 않는 도시.
푸리나는 치료소와 등불 구역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레, 타마르, 레플리카, 여관좌.”
그곳은 가장 조용했다.
아레는 신원 미상자 등불을 정렬했다.
“번호는 붙이되, 번호가 이름을 대신하지 않게 하겠단다.”
그녀의 검은 실은 등불들을 묶지 않았다.
길을 잃지 않게 이어줄 뿐이었다.
“이름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약속. 그것이 임시 등불의 의미겠지.”
타마르는 장례 구역을 우물과 떨어진 곳, 그러나 도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거리 안에 놓았다.
“나누되 갈라놓지 않습니다.”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각자의 기도는 존중하고, 전체 추도 등불은 하나로 둡니다. 죽은 자들이 서로 적으로 눕지 않도록.”
레플리카는 치료소를 병영 안과 민간 구역에 둘로 나누었다.
“아픈 사람이 치료소에 오지 못하면 치료소는 실패다.”
그녀는 통증 기록표와 수면 기록표를 붙였다.
“아프다고 말해도 배급에서 밀리지 않는다. 손이 떨린다고 말해도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다. 악몽을 꾼다고 해서 약한 것이 아니다. 먼저 이렇게 적어둬야 한다.”
여관좌는 여관 한쪽에 이름 없는 자리를 마련했다.
간판은 없었다.
상담소도 아니었다.
그저 차가 있고, 낮은 의자가 있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모두가 자기 상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찻잔을 하나 내려놓았다.
“설명하지 못해도 머물 수 있는 곳이 있어야겠지요.”
푸리나는 이 구역에서 크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만 숙였다.
등불이 네 번째 빛을 밝혔다.
죽은 자가 길을 막지 않고, 산 자의 길가에 조용히 앉는 도시.
아픈 사람이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쉬어갈 수 있는 도시.
그다음은 학교였다.
“게오르기아.”
게오르기아는 무너진 학교 앞에 섰다.
그녀는 먼저 건물을 보지 않았다.
아이 목패들을 보았다.
“첫 학교는 건물이 아니라 시간표입니다.”
그녀는 세 줄을 그었다.
“아침. 생존 교육. 낮. 공동 작업. 저녁. 이야기와 질문.”
푸리나는 그 옆으로 갔다.
“저녁 이야기는 내가 도울게.”
게오르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연극은 학교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웃음이 끝난 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도 남겨야 합니다.”
레이튼은 학교 창문을 열었다.
“질문 시간도 필요합니다.”
아카식은 작은 실패 기록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실패 기록장. 같은 곳에서 덜 넘어지려면 필요하지.”
라이자는 아이들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작은 수리 키트를 놓았다.
“실패품도 버리지 말고 다음 수업 재료로 써요.”
게오르기아는 마지막으로 칠판에 적었다.
《평화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교육으로 습관이 된다.》
학교에 다섯 번째 빛이 켜졌다.
자기 도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자라는 도시.
푸리나는 시장과 길로 시선을 돌렸다.
“아스테리아, 알토.”
아스테리아는 세 갈래 실을 꺼냈다.
상단로.
우편로.
구원군의 길.
“도시는 혼자 살아나지 않아요. 길이 있어야 합니다. 식량을 들여오고, 소문을 내보내고, 신용을 회복해야 해요.”
그녀는 남쪽 상단로에 작은 깃발을 꽂았다.
“상단에는 이 도시가 단순 폐허가 아니라 보호 선언, 배급표, 성벽 계획, 학교를 가진 도시라는 걸 보여줘야 해요. 그러면 약탈 가격이 아니라 장기 거래 가격으로 협상할 수 있습니다.”
알토는 계약서를 놓았다.
《조건부 보증 계약》
“계약은 책임을 남겨야 합니다.”
그는 짧게 말했다.
“상단에는 이익을 보장하되, 지연과 재협상에는 기록 공표 조항을 둡니다. 도시도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은 다음 거래에서 가격이 됩니다.”
아스테리아는 웃었다.
“역시 기록의 대공답군요.”
알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기록은 신용의 뼈입니다.”
아카식이 멀리서 말했다.
“그 문장 좋아.”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적어도 됩니다.”
아카식이 웃었다.
“오늘은 허가가 많네.”
길에 여섯 번째 빛이 켜졌다.
밖과 다시 이어지는 도시.
하지만 무방비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약속했는지 기록하는 도시.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원탁 중앙에 섰다.
답들이 모였다.
배급.
시민 보호령.
성벽.
곡창.
우물.
치료소.
장례 등불.
공방 상자.
학교.
상단 계약.
경보망.
시민 토론.
기록장.
하지만 푸리나는 곧 알았다.
아직 하나가 부족했다.
이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도시는 제도만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것을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했다.
푸리나는 숨을 들이켰다.
《군상극:아르메니아의 노래》.
아르카다의 각 구역에서 작은 목소리들이 올라왔다.
배급소의 목소리.
우물가의 목소리.
성벽 위의 목소리.
치료소의 목소리.
학교의 목소리.
시장과 여관과 장례 등불 아래의 목소리.
처음에는 불협화음이었다.
“나는 이 도시 사람이 아니다.”
“저들은 우리 빵을 가져간다.”
“병사들이 먼저 먹을 것이다.”
“이름이 없으면 쫓겨날 것이다.”
“죽은 이가 묻히지 않았다.”
“상인들은 우리를 속일 것이다.”
“학교는 배부른 뒤에나 하는 일이다.”
“성벽이 없으면 다 소용없다.”
“성벽만 있으면 감옥이다.”
소망들이 서로 부딪쳤다.
푸리나는 그것을 억지로 지우지 않았다.
극작가는 갈등을 없애는 사람이 아니다.
갈등이 어디로 흘러야 이야기로 남을지 조율하는 사람이다.
《전지적 작가시점》.
푸리나는 수많은 초안을 보았다.
배급표가 폭동으로 찢기는 초안.
보호 선언이 법적 모호함으로 무너지는 초안.
성벽이 감옥이 되는 초안.
치료소가 병영의 연장으로 여겨지는 초안.
장례 등불이 종교 갈등의 불씨가 되는 초안.
학교가 사치라고 비난받는 초안.
상단 계약이 도시를 빚으로 묶는 초안.
완벽한 초안은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었다.
서로의 답이 서로를 보완하는 흐름.
푸리나는 그 흐름을 선택했다.
“좋아.”
그녀가 웃었다.
“그럼 이 도시에 첫 축제를 열자.”
그레이가 즉시 고개를 들었다.
“폐하. 재건 초기 축제는 자원 낭비—”
“큰 축제 말고.”
푸리나는 손가락을 세웠다.
“배급식, 추도식, 학교 개교식, 공방 시연, 성벽 첫 돌 놓기를 하루에 묶는 거야.”
슈샤니크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정치적 의례군요.”
“응.”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합니다.”
벨라가 말했다.
“성벽 첫 돌은 가볍게 다루면 안 된다.”
“그래서 여왕님이 놓아주세요.”
벨라는 푸리나를 보았다.
“모의 도시다.”
“그래도요.”
벨라는 잠시 침묵했다.
“좋다.”
알렉산드리나는 말했다.
“배급식은 실제 배급과 동시에 해야 합니다. 상징만 있으면 불만이 생깁니다.”
그레이가 적었다.
“의례와 실무 동시 진행.”
타마르는 말했다.
“추도식은 배급식보다 앞서거나 뒤서야 합니다. 섞으면 죽은 자가 장식이 됩니다.”
푸리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침에는 추도. 낮에는 성벽 첫 돌과 공방 시연. 저녁에는 배급과 학교 이야기.”
게오르기아가 말했다.
“저녁 이야기에서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쓰게 합시다.”
아카식이 웃었다.
“좋아. 이름 쓰기와 첫 기록.”
레플리카는 덧붙였다.
“그리고 치료소는 축제 밖에 두지 마라. 아픈 사람이 소외된다.”
여관좌가 말했다.
“여관 쪽에서 차를 나누겠습니다. 말하고 싶은 사람도, 말하지 않을 사람도 같이 앉을 수 있게.”
라이자는 말했다.
“공방 시연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손목 보호구를 만져보게 할게요.”
카를로타가 즉시 덧붙였다.
“제대로 착용하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라플리는 성벽 위 경보핵을 가리켰다.
“경보음 시연도 하자. 너무 크지 않게.”
그레이가 말했다.
“사전 고지 필요.”
“알았어.”
소피아는 파손품을 들었다.
“망가진 걸 가져오면 어떤 칸으로 나누는지 보여줄게요. 완전 수리, 임시 수리, 재료 전환, 교육용 실패품, 폐기.”
민다우가스는 그 모든 것을 보다가 낮게 웃었다.
“축제라기보다 통합 훈련이군.”
푸리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좋은 축제는 원래 훈련이야.”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 그 말은 쓸 만하다.”
미하일라는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이 같은 순서로 같은 것을 보면, 같은 기억이 생깁니다.”
요안나는 그녀를 보았다.
둘의 시선은 짧게 부딪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요안나가 말했다.
“그 기억이 평화 쪽으로 남아야 합니다.”
미하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말은 작았지만, 학술제의 여러 막이 쌓인 뒤라 가능한 말이었다.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손을 높이 들었다.
《세기극:아르메니아 대서사시》가 아니라, 이번에는 그보다 더 작고 더 복합적인 극이었다.
아르메니아의 노래가, 다른 나라의 답들을 초대했다.
하나의 국가 대서사시가 아니라, 여러 나라가 함께 쓰는 도시 재건극.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곳에서 이루어진 선택들이 기도가 되었다.
장부를 쓰는 것도.
돌을 놓는 것도.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것도.
망가진 활대를 손목 보호구로 바꾸는 것도.
아픈 사람 곁에 앉는 것도.
상단 계약서에 책임 조항을 넣는 것도.
죽은 자의 이름을 찾겠다고 등불에 적는 것도.
모두 작은 기도였다.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도시야.”
강당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도시는 한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아.”
그녀는 원탁을 둘러보았다.
“왕이 있어야 해. 장부도 있어야 해. 빵도 있어야 하고, 성벽도 있어야 하고, 우물도 있어야 해. 공방도, 학교도, 치료소도, 장례 등불도, 길도, 계약도 있어야 해.”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 가끔은 무대도.”
벨라가 짧게 말했다.
“머물게 한다면.”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물게 할게요.”
그녀는 손을 내렸다.
[여관:극장]의 조명이 아르카다 전체에 내려앉았다.
도시는 완벽하지 않았다.
성벽은 아직 낮았다.
우물 하나는 여전히 정화 중이었다.
배급표에는 오류가 있었다.
치료소에는 약이 부족했다.
학교 지붕은 천막이었다.
상단 계약에는 위험 조항이 많았다.
피난민 중 일부는 여전히 불신했다.
사망자 명단에는 빈칸이 있었다.
하지만 도시에는 이제 답들이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그리고 그 답들이 서로를 향해 등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그레이가 최종 판정표를 읽었다.
“아르카다 재건 종합안.”
그녀의 목소리가 강당을 채웠다.
“초기 생존 단계. 배급표, 임시 시민 보호령, 우물 봉쇄, 부상자 분류, 사망자 수습반. 채택.”
“방어 및 재건 단계. 성벽 응급 보수, 석조 곡창, 성문 복구, 경보망, 감시소, 방위 질서. 채택.”
“공방 및 자재 단계. 재건용 응급 공방 상자, 파손품 분류, 성은 보강재, 뇌광 경보핵, 사용성 검토. 채택.”
“기억 및 회복 단계. 신원 미상자 등불, 공동 추도, 종교별 장례 보장, 민간 치료소, 통증·수면 기록, 말하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자리. 채택.”
“교육 및 공동체 단계. 임시 학교 시간표, 생존 문해, 제작 실습, 이야기와 질문, 실패 기록장, 성인 시민 토론. 채택.”
“외부 연결 단계. 상단 협상, 조건부 보증 계약, 우편망, 정보망, 교역로 회복. 채택.”
그레이는 마지막 줄을 보았다.
“종합 판정.”
푸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그레이는 읽었다.
“도시 재건극, 공동 해답 채택.”
순간 강당은 조용했다.
그러다 푸리나가 손뼉을 쳤다.
짝.
이번 박수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씩 이어졌다.
라이자가 쳤고, 레이튼이 모자를 들어 올렸고, 아카식이 펜을 내려놓으며 박수를 보탰다.
아스테르다스는 즐겁게 웃으며 손뼉을 쳤고, 죠니도 마지못한 듯하다가 곧 같이 쳤다.
요안나는 조용히 박수를 쳤고, 미하일라는 한 박자 늦게 손을 움직였다.
벨라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살 수 있다.”
푸리나는 그녀를 보았다.
벨라는 아르카다를 내려다보았다.
“다만 기억해야 한다. 재건은 축제가 아니다. 매일 돌을 옮기는 일이다.”
푸리나는 웃었다.
“그래도 축제가 조금 있으면 더 잘 옮기지 않을까요?”
벨라는 잠시 푸리나를 보았다.
“있어도 된다.”
잠깐.
“다만 성벽을 먼저 세워라.”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벽을 세우고, 그 옆에 무대도 세울게요.”
“무대가 사람을 머물게 한다면.”
“머물게 할게요.”
“그럼 세워라.”
그 말은 허락처럼 들렸다.
푸리나는 아주 깊게 고개를 숙였다.
아카식은 마지막 기록을 적었다.
《최종막 결론.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답들이, 한 도시의 내일을 함께 적었다. 도시는 장부만으로 살지 않고, 선언만으로 살지 않고, 성벽만으로 살지 않고, 박수만으로 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놓일 때, 폐허는 첫 아침을 맞을 수 있다.》
그레이가 그 기록을 보았다.
“공식 기록에 반영하겠습니다.”
아카식이 웃었다.
“이번 학술제에서 나 꽤 많이 반영됐네.”
알토가 말했다.
“좋은 기록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카식은 잠깐 멈췄다.
“오늘 알토가 칭찬이 많네.”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게 칭찬이야.”
푸리나는 원탁 위의 아르카다를 보았다.
처음에는 폐허였던 도시.
이제는 아직 불완전한 도시.
그러나 불완전하다는 것은, 더 세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 도시에는 아직 문제가 많네.”
그레이가 즉시 답했다.
“예.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처음보다 덜 무서워.”
레이튼이 부드럽게 말했다.
“질문이 답들 사이에서 자리를 얻었기 때문일 겁니다.”
게오르기아가 덧붙였다.
“그리고 그 답들을 다음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레플리카는 말했다.
“아픈 사람이 혼자 참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레는 조용히 말했다.
“이름 없는 등불이 길을 잃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타마르는 미소 지었다.
“죽은 어린양들이 너무 오래 성문 밖에 서 있지 않아도 되니까요.”
아스테리아는 실을 정리했다.
“길도 다시 열릴 거예요.”
알토는 기록책을 닫았다.
“그리고 약속은 남을 겁니다.”
민다우가스가 크게 웃었다.
“좋다. 이 정도면 폐허라기보다 문제 많은 요새다.”
벨라는 짧게 말했다.
“문제 많은 도시는 살 수 있다. 문제가 없다고 믿는 도시가 더 위험하다.”
슈샤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푸리나는 결국 웃었다.
“좋아. 그럼 이 학술제의 최종 결론은 이거야.”
그녀는 원탁 위에 작은 등불 하나를 놓았다.
“책상도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
그 말에 모두가 도시를 보았다.
서로 다른 왕관과 깃발과 기도.
무력제에서는 그들의 칼끝이 같은 방향을 향했다.
학술제에서는 그들의 답이 같은 도시를 향했다.
푸리나는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등불 아래의 학술제》, 폐막.”
이번에는 박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박수는 승리의 박수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이긴 박수도 아니었다.
각자의 답이 홀로 남지 않고, 하나의 도시 안에서 서로의 곁에 놓인 것에 보내는 박수였다.
아르카다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 도시는 아직 모의 도시였다.
그러나 이제 그 모의 도시는 단순한 과제가 아니었다.
다가올 전쟁 이후, 정말로 누군가가 세워야 할 도시의 초안이었다.
그리고 그 초안 위에는 여러 글씨가 겹쳐 있었다.
로마의 법.
헝가리의 성벽.
리투아니아의 생존 계산.
보헤미아의 성은.
니케아의 교육.
불가리아의 고통 완화.
세르비아의 침묵.
킬리키아의 극장.
폴란드의 기록.
북방의 별과 길.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답들이, 한 도시의 내일을 함께 적었다.
그리고 그 내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살아 있었다.
최종막 — 하나의 도시, 여러 답
최종막의 원탁에는 도시 하나가 놓였다.
아르카다.
처음 2막에서 그것은 폐허였다.
성벽은 무너져 있었고, 우물은 검게 물들어 있었고, 피난민 목패는 성문 앞에 쌓여 있었다. 병영에는 부상자가 넘쳤고, 사망자 명단은 비어 있었고, 서로 다른 언어를 쓰는 주민들은 같은 광장에 서면서도 서로를 믿지 못했다.
그 뒤로 여러 답이 쌓였다.
요안나의 보호 선언.
슈샤니크의 임시 등록표와 시민 절차.
알렉산드리나의 배급선.
그레이의 사망자 명단과 재발 방지 장부.
아스테리아의 교역로와 정보망.
알토의 조건부 보증 계약.
라이자와 라플리, 카를로타와 소피아의 《재건용 응급 공방 상자》.
아레와 타마르, 레플리카와 여관좌가 세운 등불과 치료소.
게오르기아의 임시 학교 시간표.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아직 따로 놓인 답이었다.
오늘의 문제는 그것들을 하나의 도시로 묶는 일이었다.
푸리나는 원탁 앞에 섰다.
이번에는 화려한 개막 대사를 바로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먼저 도시를 보았다.
아르카다의 작은 성벽.
작은 우물.
작은 광장.
작은 병영.
작은 학교.
작은 등불.
작은 것들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나라란, 결국 그 작은 것들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일일지도 몰랐다.
푸리나는 천천히 말했다.
“최종막의 주제.”
그녀는 원탁 위 도시를 가리켰다.
“몽골 공세 이후 폐허가 된 다민족 변경 도시를 어떻게 다시 살릴 것인가.”
그레이가 장부를 들었다.
“최종 과제 조건을 고지하겠습니다.”
강당이 조용해졌다.
“아르카다는 전쟁 피해를 입은 변경 도시입니다. 성벽 일부 붕괴, 우물 일부 오염, 식량 부족, 교역로 단절, 피난민 유입, 사망자 명단 미완성, 부상자 다수, 학령 아동 분산, 상인 공동체 불신, 종교별 장례 갈등, 병력 피로 누적, 장기 방어 계획 부재.”
라플리가 낮게 말했다.
“욕심 많네, 이 도시.”
소피아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시라는 게 원래 손댈 곳이 많으니까요.”
그레이는 계속했다.
“목표. 첫째, 30일 생존. 둘째, 1년 내 기능 회복. 셋째, 5년 내 재건 및 방어 지속 가능성 확보. 넷째, 주민 간 내전 또는 대규모 이탈 방지.”
푸리나는 덧붙였다.
“그리고 다섯째.”
그녀는 원탁을 둘러보았다.
“이 도시가 단순히 버티는 곳이 아니라, 다시 살고 싶은 곳이 되게 할 것.”
벨라 4세가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살고 싶은 곳.”
그녀는 짧게 말했다.
“좋다. 그러나 먼저 살아남아야 한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오늘은 모두가 필요해요.”
그녀가 손을 펼쳤다.
[여관:극장]이 열렸다.
그러나 이번 극장은 전장도, 교실도, 공방도 아니었다.
도시였다.
원탁 위의 아르카다는 커졌고, 강당 전체가 도시의 축소 세계가 되었다.
성벽은 강당 외곽을 따라 솟았고, 우물은 중앙 광장에 놓였고, 여관과 학교와 공방과 병영과 시장이 각자의 자리를 얻었다.
각 참가자는 도시의 어느 한 장소 앞에 섰다.
푸리나는 그 모든 것을 보았다.
《무대 위의 극작가》.
그녀는 이제 전력이나 지식만 보지 않았다.
소망을 보았다.
요안나는 사람들이 다시 서로를 시민으로 부르길 바랐다.
슈샤니크는 선언이 무너지지 않도록 장부와 법으로 뼈대를 세우려 했다.
그레이는 이름이 빠지지 않게 하려 했다.
알렉산드리나는 첫 달의 배급이 끊기지 않게 하려 했다.
벨라는 도시가 다시 불타지 않는 구조를 세우려 했다.
라이자는 회로와 자재와 사람을 부드럽게 이어주려 했다.
라플리는 하늘과 마력의 경보망을 세우려 했다.
카를로타는 실제 손이 쓸 수 있는 도구를 만들려 했다.
소피아는 망가진 것들에서 새 쓸모를 찾으려 했다.
아레와 타마르는 죽은 자가 전쟁의 먼지 속에 남지 않게 하려 했다.
레플리카는 살아남은 자가 계속 고통만 견디지 않게 하려 했다.
게오르기아는 이 도시가 자기 자신을 이해하게 만들려 했다.
아스테리아는 길과 편지와 상단과 소문을 다시 잇고 싶어 했다.
알토는 계약과 기록이 책임을 남기게 하려 했다.
민다우가스는 이 도시가 다음 전쟁에서도 살아남을 판을 보려 했다.
미하일라는 전쟁이 다시 이 도시를 삼키지 않도록 방위 질서를 세우려 했다.
요안나는 그 질서가 사람의 목소리를 누르지 않게 하려 했다.
그리고 푸리나는.
그 모든 답이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하나의 도시가 되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손을 들었다.
“세상은 무대요.”
강당의 도시가 숨을 쉬기 시작했다.
“모든 이는 주인공일지니.”
《세상은 무대요, 모든 이는 주인공일지니!》
도시의 각 구역에 작은 조명이 켜졌다.
배급소.
성문.
우물.
공방.
치료소.
장례 등불.
학교.
시장.
성벽.
여관.
푸리나는 크게 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명령이 아니라 호명이어야 했다.
《신은 적절히 준비된 자를 부른다》.
“요안나 폐하.”
요안나가 광장 앞으로 나섰다.
“슈샤니크 경.”
슈샤니크가 그녀 옆에 섰다.
“알렉산드리나.”
배급 수레가 움직였다.
“그레이.”
장부가 펼쳐졌다.
푸리나는 먼저 30일 생존의 축을 세웠다.
요안나가 광장 중앙에 섰다.
그녀의 손에는 선언문이 있었다.
“오늘 이 도시의 빵을 받는 자는, 오늘 이 도시의 보호 아래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광장을 통과했다.
“혈통과 언어와 신앙이 다르더라도, 이 도시의 빵을 함께 받고 이 도시의 우물을 함께 지키는 이들은 서로를 적으로 부르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완성된 시민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임시 시민이 될 수 있습니다.”
슈샤니크가 그 선언 옆에 문서를 놓았다.
“임시 시민 보호령. 배급, 치료, 치안, 장례, 노동 배치의 기준을 출신이 아니라 필요와 역할로 둡니다. 단, 모든 수령과 배치는 기록합니다. 선언은 장부 없이 유지되지 않습니다.”
요안나는 조용히 말했다.
“장부는 선언 없이 사랑받지 못합니다.”
슈샤니크는 그녀를 보았다.
“그러므로 둘 다 필요합니다.”
알렉산드리나는 배급 수레를 네 구역으로 나누었다.
“첫 3일은 생존입니다. 병사와 시민 대표가 같은 줄에서 빵을 받습니다. 부상자는 이동 배급. 수습반은 별도 배급 우선권. 병영과 광장 사이에 보급선을 둡니다. 수레는 지키되, 수레만 지키다 사람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레이는 그 옆에서 이름표를 정렬했다.
“임시 등록표 발행. 신원 미상자도 배급 대상. 단, 추후 확인 의무. 사망자 명단과 생존자 명단을 분리하되, 가족 찾기 게시판과 연결합니다.”
그녀는 펜을 움직였다.
“이름이 없어서 빵을 못 받는 사람은 없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름이 없다는 사실도 사라지면 안 됩니다.”
푸리나는 광장 위의 빛이 안정되는 것을 보았다.
첫 3일.
사람들이 굶지 않는 도시.
아직 부족하지만, 무너지지 않았다.
그다음 그녀는 성벽을 보았다.
“벨라 여왕.”
벨라 4세가 성벽 앞으로 걸어갔다.
그녀는 화려한 설계도를 펼치지 않았다.
무너진 돌 하나를 들었다.
그녀의 손에 들린 돌은 작았다.
그러나 그 돌에는 불탄 왕국의 기억이 있었다.
“도시는 위로만 세우지 않는다.”
벨라는 말했다.
“먼저 버틸 곳을 세운다.”
그녀는 성벽의 무너진 동남부를 가리켰다.
“첫해에는 완전한 성벽을 꿈꾸지 마라. 피난처가 되는 탑, 식량을 보관할 석조 곡창, 오염되지 않는 우물, 닫히는 성문. 네 가지가 먼저다.”
민다우가스가 성벽 옆으로 다가왔다.
“좋군. 방어 거점이 있어야 협상도 가능하다.”
벨라는 그를 보았다.
“방어만으로는 도시가 아니다.”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당연하지. 하지만 방어가 없으면 도시가 아니라 좋은 약탈지다.”
그는 성문 밖 도로를 짚었다.
“외곽에 감시소 셋. 늪지 쪽 길은 버린다. 숲길은 유인로로 둔다. 강가의 얕은 여울에는 작은 목책과 경보를 둔다. 도시는 모든 문을 열어 살지 않는다. 어떤 문을 닫을지 알아야 산다.”
미하일라가 그 옆에 섰다.
“그리고 어떤 문을 열어둘지도 알아야 합니다.”
자주빛 황제는 성벽과 광장을 함께 보았다.
“방위 질서는 시민 공동체를 질식시켜서는 안 됩니다. 병력은 우물과 배급소를 지키되, 광장을 점령하지 않습니다. 도시 내부의 무력은 보호의 형식을 가져야 합니다.”
민다우가스가 그녀를 보았다.
“제국답군.”
미하일라는 담담히 답했다.
“제국은 오래 버텨야 하니까요.”
벨라는 짧게 말했다.
“성벽, 우물, 곡창, 길. 그 옆에 병력. 그 안에 사람.”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무대는?”
벨라가 푸리나를 보았다.
“성벽이 먼저다.”
“네.”
잠깐.
벨라는 덧붙였다.
“그다음 무대다. 머물게 한다면.”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머물게 할게요.”
성벽에 두 번째 빛이 켜졌다.
첫해.
사람들이 도망만 치지 않아도 되는 도시.
아직 아름답지는 않지만, 버틸 수 있었다.
푸리나는 공방 쪽으로 손을 뻗었다.
“라이자, 라플리, 카를로타, 소피아.”
네 사람이 동시에 움직였다.
라이자는 성은 실을 도시의 곡창과 공방 사이에 걸었다.
“복구 자재는 그냥 튼튼하면 안 돼요. 사람이 만지고, 다시 쓰고, 고칠 수 있어야 해요.”
그녀는 성은으로 작은 보강재를 조형했다.
문틀.
손잡이.
우물 덮개.
수레축 보강띠.
치료소 침대의 연결부.
“은의 심장은 너무 큰 기적이 아니라, 매일 조금씩 고장나는 것들을 덜 다치게 해야 해요.”
라플리는 성벽 위에 작은 뇌광 경보핵을 설치했다.
“천율학파식 방어망. 접근 신호를 세 단계로 나눈다. 짐승, 사람, 기병. 그리고 폭주 방지. 지난번처럼 장치가 자기 장렬함에 취해서 타죽지 않게.”
그레이가 바로 물었다.
“소리 수치.”
라플리는 이미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 적었다.”
그레이는 조금 놀란 듯 받아들였다.
“확인했습니다.”
라플리는 승리한 얼굴이 되었다.
“나도 배운다고.”
카를로타는 공방에서 나온 도구들을 실제 손에 맞췄다.
“이 손잡이는 젖은 손에서 미끄럽습니다. 이 수레축 클램프는 오른손잡이만 생각했습니다. 이 경보핵은 설치 높이가 너무 높습니다. 지친 병사가 사다리를 세 번 오르게 하면 장치는 실패합니다.”
라이자는 바로 조정했다.
라플리는 투덜거리면서도 높이를 낮췄다.
소피아는 파손품 더미를 새 칸으로 나누었다.
“완전 수리. 임시 수리. 재료 전환. 교육용 실패품. 폐기.”
푸리나가 물었다.
“폐기도 있어?”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전부 살리려 하면 오히려 위험해요. 망가진 걸 쓸 수 있게 하는 것과, 위험한 걸 억지로 쓰는 건 달라요.”
카를로타가 조용히 말했다.
“좋은 장인의 판단입니다.”
소피아는 밝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들의 공방에서 《재건용 응급 공방 상자》가 여러 개 만들어졌다.
그 상자들은 영웅적인 무기가 아니었다.
하지만 도시 둘째 날, 셋째 날, 서른째 날을 버티게 하는 도구였다.
공방에 세 번째 빛이 켜졌다.
망가진 것을 그냥 버리지 않는 도시.
그러나 위험한 것을 억지로 붙들지도 않는 도시.
푸리나는 치료소와 등불 구역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레, 타마르, 레플리카, 여관좌.”
그곳은 가장 조용했다.
아레는 신원 미상자 등불을 정렬했다.
“번호는 붙이되, 번호가 이름을 대신하지 않게 하겠단다.”
그녀의 검은 실은 등불들을 묶지 않았다.
길을 잃지 않게 이어줄 뿐이었다.
“이름을 찾는 일을 멈추지 않는다는 약속. 그것이 임시 등불의 의미겠지.”
타마르는 장례 구역을 우물과 떨어진 곳, 그러나 도시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는 거리 안에 놓았다.
“나누되 갈라놓지 않습니다.”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각자의 기도는 존중하고, 전체 추도 등불은 하나로 둡니다. 죽은 자들이 서로 적으로 눕지 않도록.”
레플리카는 치료소를 병영 안과 민간 구역에 둘로 나누었다.
“아픈 사람이 치료소에 오지 못하면 치료소는 실패다.”
그녀는 통증 기록표와 수면 기록표를 붙였다.
“아프다고 말해도 배급에서 밀리지 않는다. 손이 떨린다고 말해도 쓸모없는 사람이 아니다. 악몽을 꾼다고 해서 약한 것이 아니다. 먼저 이렇게 적어둬야 한다.”
여관좌는 여관 한쪽에 이름 없는 자리를 마련했다.
간판은 없었다.
상담소도 아니었다.
그저 차가 있고, 낮은 의자가 있고, 말을 하지 않아도 앉아 있을 수 있는 곳이었다.
“모두가 자기 상처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찻잔을 하나 내려놓았다.
“설명하지 못해도 머물 수 있는 곳이 있어야겠지요.”
푸리나는 이 구역에서 크게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개만 숙였다.
등불이 네 번째 빛을 밝혔다.
죽은 자가 길을 막지 않고, 산 자의 길가에 조용히 앉는 도시.
아픈 사람이 자신을 증명하지 않아도 쉬어갈 수 있는 도시.
그다음은 학교였다.
“게오르기아.”
게오르기아는 무너진 학교 앞에 섰다.
그녀는 먼저 건물을 보지 않았다.
아이 목패들을 보았다.
“첫 학교는 건물이 아니라 시간표입니다.”
그녀는 세 줄을 그었다.
“아침. 생존 교육. 낮. 공동 작업. 저녁. 이야기와 질문.”
푸리나는 그 옆으로 갔다.
“저녁 이야기는 내가 도울게.”
게오르기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연극은 학교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웃음이 끝난 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도 남겨야 합니다.”
레이튼은 학교 창문을 열었다.
“질문 시간도 필요합니다.”
아카식은 작은 실패 기록장을 만들었다.
“그리고 실패 기록장. 같은 곳에서 덜 넘어지려면 필요하지.”
라이자는 아이들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작은 수리 키트를 놓았다.
“실패품도 버리지 말고 다음 수업 재료로 써요.”
게오르기아는 마지막으로 칠판에 적었다.
《평화는 선언으로 시작하고, 교육으로 습관이 된다.》
학교에 다섯 번째 빛이 켜졌다.
자기 도시를 이해하는 사람들이 자라는 도시.
푸리나는 시장과 길로 시선을 돌렸다.
“아스테리아, 알토.”
아스테리아는 세 갈래 실을 꺼냈다.
상단로.
우편로.
구원군의 길.
“도시는 혼자 살아나지 않아요. 길이 있어야 합니다. 식량을 들여오고, 소문을 내보내고, 신용을 회복해야 해요.”
그녀는 남쪽 상단로에 작은 깃발을 꽂았다.
“상단에는 이 도시가 단순 폐허가 아니라 보호 선언, 배급표, 성벽 계획, 학교를 가진 도시라는 걸 보여줘야 해요. 그러면 약탈 가격이 아니라 장기 거래 가격으로 협상할 수 있습니다.”
알토는 계약서를 놓았다.
《조건부 보증 계약》
“계약은 책임을 남겨야 합니다.”
그는 짧게 말했다.
“상단에는 이익을 보장하되, 지연과 재협상에는 기록 공표 조항을 둡니다. 도시도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지키지 못한 약속은 다음 거래에서 가격이 됩니다.”
아스테리아는 웃었다.
“역시 기록의 대공답군요.”
알토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기록은 신용의 뼈입니다.”
아카식이 멀리서 말했다.
“그 문장 좋아.”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적어도 됩니다.”
아카식이 웃었다.
“오늘은 허가가 많네.”
길에 여섯 번째 빛이 켜졌다.
밖과 다시 이어지는 도시.
하지만 무방비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약속했는지 기록하는 도시.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원탁 중앙에 섰다.
답들이 모였다.
배급.
시민 보호령.
성벽.
곡창.
우물.
치료소.
장례 등불.
공방 상자.
학교.
상단 계약.
경보망.
시민 토론.
기록장.
하지만 푸리나는 곧 알았다.
아직 하나가 부족했다.
이 모든 것을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
도시는 제도만으로 살아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이것을 자기 이야기로 받아들여야 했다.
푸리나는 숨을 들이켰다.
《군상극:아르메니아의 노래》.
아르카다의 각 구역에서 작은 목소리들이 올라왔다.
배급소의 목소리.
우물가의 목소리.
성벽 위의 목소리.
치료소의 목소리.
학교의 목소리.
시장과 여관과 장례 등불 아래의 목소리.
처음에는 불협화음이었다.
“나는 이 도시 사람이 아니다.”
“저들은 우리 빵을 가져간다.”
“병사들이 먼저 먹을 것이다.”
“이름이 없으면 쫓겨날 것이다.”
“죽은 이가 묻히지 않았다.”
“상인들은 우리를 속일 것이다.”
“학교는 배부른 뒤에나 하는 일이다.”
“성벽이 없으면 다 소용없다.”
“성벽만 있으면 감옥이다.”
소망들이 서로 부딪쳤다.
푸리나는 그것을 억지로 지우지 않았다.
극작가는 갈등을 없애는 사람이 아니다.
갈등이 어디로 흘러야 이야기로 남을지 조율하는 사람이다.
《전지적 작가시점》.
푸리나는 수많은 초안을 보았다.
배급표가 폭동으로 찢기는 초안.
보호 선언이 법적 모호함으로 무너지는 초안.
성벽이 감옥이 되는 초안.
치료소가 병영의 연장으로 여겨지는 초안.
장례 등불이 종교 갈등의 불씨가 되는 초안.
학교가 사치라고 비난받는 초안.
상단 계약이 도시를 빚으로 묶는 초안.
완벽한 초안은 없었다.
하지만 가능성이 있었다.
서로의 답이 서로를 보완하는 흐름.
푸리나는 그 흐름을 선택했다.
“좋아.”
그녀가 웃었다.
“그럼 이 도시에 첫 축제를 열자.”
그레이가 즉시 고개를 들었다.
“폐하. 재건 초기 축제는 자원 낭비—”
“큰 축제 말고.”
푸리나는 손가락을 세웠다.
“배급식, 추도식, 학교 개교식, 공방 시연, 성벽 첫 돌 놓기를 하루에 묶는 거야.”
슈샤니크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정치적 의례군요.”
“응.”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요합니다.”
벨라가 말했다.
“성벽 첫 돌은 가볍게 다루면 안 된다.”
“그래서 여왕님이 놓아주세요.”
벨라는 푸리나를 보았다.
“모의 도시다.”
“그래도요.”
벨라는 잠시 침묵했다.
“좋다.”
알렉산드리나는 말했다.
“배급식은 실제 배급과 동시에 해야 합니다. 상징만 있으면 불만이 생깁니다.”
그레이가 적었다.
“의례와 실무 동시 진행.”
타마르는 말했다.
“추도식은 배급식보다 앞서거나 뒤서야 합니다. 섞으면 죽은 자가 장식이 됩니다.”
푸리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아침에는 추도. 낮에는 성벽 첫 돌과 공방 시연. 저녁에는 배급과 학교 이야기.”
게오르기아가 말했다.
“저녁 이야기에서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쓰게 합시다.”
아카식이 웃었다.
“좋아. 이름 쓰기와 첫 기록.”
레플리카는 덧붙였다.
“그리고 치료소는 축제 밖에 두지 마라. 아픈 사람이 소외된다.”
여관좌가 말했다.
“여관 쪽에서 차를 나누겠습니다. 말하고 싶은 사람도, 말하지 않을 사람도 같이 앉을 수 있게.”
라이자는 말했다.
“공방 시연에서는 아이들이 직접 손목 보호구를 만져보게 할게요.”
카를로타가 즉시 덧붙였다.
“제대로 착용하는 법도 가르쳐야 합니다.”
라플리는 성벽 위 경보핵을 가리켰다.
“경보음 시연도 하자. 너무 크지 않게.”
그레이가 말했다.
“사전 고지 필요.”
“알았어.”
소피아는 파손품을 들었다.
“망가진 걸 가져오면 어떤 칸으로 나누는지 보여줄게요. 완전 수리, 임시 수리, 재료 전환, 교육용 실패품, 폐기.”
민다우가스는 그 모든 것을 보다가 낮게 웃었다.
“축제라기보다 통합 훈련이군.”
푸리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좋은 축제는 원래 훈련이야.”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 그 말은 쓸 만하다.”
미하일라는 조용히 말했다.
“사람들이 같은 순서로 같은 것을 보면, 같은 기억이 생깁니다.”
요안나는 그녀를 보았다.
둘의 시선은 짧게 부딪혔다.
그리고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요안나가 말했다.
“그 기억이 평화 쪽으로 남아야 합니다.”
미하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 말은 작았지만, 학술제의 여러 막이 쌓인 뒤라 가능한 말이었다.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손을 높이 들었다.
《세기극:아르메니아 대서사시》가 아니라, 이번에는 그보다 더 작고 더 복합적인 극이었다.
아르메니아의 노래가, 다른 나라의 답들을 초대했다.
하나의 국가 대서사시가 아니라, 여러 나라가 함께 쓰는 도시 재건극.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이곳에서 이루어진 선택들이 기도가 되었다.
장부를 쓰는 것도.
돌을 놓는 것도.
아이에게 글자를 가르치는 것도.
망가진 활대를 손목 보호구로 바꾸는 것도.
아픈 사람 곁에 앉는 것도.
상단 계약서에 책임 조항을 넣는 것도.
죽은 자의 이름을 찾겠다고 등불에 적는 것도.
모두 작은 기도였다.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의 주인공은 도시야.”
강당이 조용해졌다.
“그리고 도시는 한 사람으로 만들어지지 않아.”
그녀는 원탁을 둘러보았다.
“왕이 있어야 해. 장부도 있어야 해. 빵도 있어야 하고, 성벽도 있어야 하고, 우물도 있어야 해. 공방도, 학교도, 치료소도, 장례 등불도, 길도, 계약도 있어야 해.”
그녀는 웃었다.
“그리고 가끔은 무대도.”
벨라가 짧게 말했다.
“머물게 한다면.”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머물게 할게요.”
그녀는 손을 내렸다.
[여관:극장]의 조명이 아르카다 전체에 내려앉았다.
도시는 완벽하지 않았다.
성벽은 아직 낮았다.
우물 하나는 여전히 정화 중이었다.
배급표에는 오류가 있었다.
치료소에는 약이 부족했다.
학교 지붕은 천막이었다.
상단 계약에는 위험 조항이 많았다.
피난민 중 일부는 여전히 불신했다.
사망자 명단에는 빈칸이 있었다.
하지만 도시에는 이제 답들이 있었다.
하나가 아니라 여러 개.
그리고 그 답들이 서로를 향해 등을 돌리지 않고 있었다.
그레이가 최종 판정표를 읽었다.
“아르카다 재건 종합안.”
그녀의 목소리가 강당을 채웠다.
“초기 생존 단계. 배급표, 임시 시민 보호령, 우물 봉쇄, 부상자 분류, 사망자 수습반. 채택.”
“방어 및 재건 단계. 성벽 응급 보수, 석조 곡창, 성문 복구, 경보망, 감시소, 방위 질서. 채택.”
“공방 및 자재 단계. 재건용 응급 공방 상자, 파손품 분류, 성은 보강재, 뇌광 경보핵, 사용성 검토. 채택.”
“기억 및 회복 단계. 신원 미상자 등불, 공동 추도, 종교별 장례 보장, 민간 치료소, 통증·수면 기록, 말하지 않아도 머물 수 있는 자리. 채택.”
“교육 및 공동체 단계. 임시 학교 시간표, 생존 문해, 제작 실습, 이야기와 질문, 실패 기록장, 성인 시민 토론. 채택.”
“외부 연결 단계. 상단 협상, 조건부 보증 계약, 우편망, 정보망, 교역로 회복. 채택.”
그레이는 마지막 줄을 보았다.
“종합 판정.”
푸리나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멈췄다.
그레이는 읽었다.
“도시 재건극, 공동 해답 채택.”
순간 강당은 조용했다.
그러다 푸리나가 손뼉을 쳤다.
짝.
이번 박수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하나씩 이어졌다.
라이자가 쳤고, 레이튼이 모자를 들어 올렸고, 아카식이 펜을 내려놓으며 박수를 보탰다.
아스테르다스는 즐겁게 웃으며 손뼉을 쳤고, 죠니도 마지못한 듯하다가 곧 같이 쳤다.
요안나는 조용히 박수를 쳤고, 미하일라는 한 박자 늦게 손을 움직였다.
벨라는 박수를 치지 않았다.
대신 말했다.
“살 수 있다.”
푸리나는 그녀를 보았다.
벨라는 아르카다를 내려다보았다.
“다만 기억해야 한다. 재건은 축제가 아니다. 매일 돌을 옮기는 일이다.”
푸리나는 웃었다.
“그래도 축제가 조금 있으면 더 잘 옮기지 않을까요?”
벨라는 잠시 푸리나를 보았다.
“있어도 된다.”
잠깐.
“다만 성벽을 먼저 세워라.”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벽을 세우고, 그 옆에 무대도 세울게요.”
“무대가 사람을 머물게 한다면.”
“머물게 할게요.”
“그럼 세워라.”
그 말은 허락처럼 들렸다.
푸리나는 아주 깊게 고개를 숙였다.
아카식은 마지막 기록을 적었다.
《최종막 결론.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답들이, 한 도시의 내일을 함께 적었다. 도시는 장부만으로 살지 않고, 선언만으로 살지 않고, 성벽만으로 살지 않고, 박수만으로 살지 않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서로를 부정하지 않고 놓일 때, 폐허는 첫 아침을 맞을 수 있다.》
그레이가 그 기록을 보았다.
“공식 기록에 반영하겠습니다.”
아카식이 웃었다.
“이번 학술제에서 나 꽤 많이 반영됐네.”
알토가 말했다.
“좋은 기록이었기 때문입니다.”
아카식은 잠깐 멈췄다.
“오늘 알토가 칭찬이 많네.”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그게 칭찬이야.”
푸리나는 원탁 위의 아르카다를 보았다.
처음에는 폐허였던 도시.
이제는 아직 불완전한 도시.
그러나 불완전하다는 것은, 더 세울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 도시에는 아직 문제가 많네.”
그레이가 즉시 답했다.
“예. 많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처음보다 덜 무서워.”
레이튼이 부드럽게 말했다.
“질문이 답들 사이에서 자리를 얻었기 때문일 겁니다.”
게오르기아가 덧붙였다.
“그리고 그 답들을 다음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레플리카는 말했다.
“아픈 사람이 혼자 참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레는 조용히 말했다.
“이름 없는 등불이 길을 잃지 않게 되었기 때문이겠지.”
타마르는 미소 지었다.
“죽은 어린양들이 너무 오래 성문 밖에 서 있지 않아도 되니까요.”
아스테리아는 실을 정리했다.
“길도 다시 열릴 거예요.”
알토는 기록책을 닫았다.
“그리고 약속은 남을 겁니다.”
민다우가스가 크게 웃었다.
“좋다. 이 정도면 폐허라기보다 문제 많은 요새다.”
벨라는 짧게 말했다.
“문제 많은 도시는 살 수 있다. 문제가 없다고 믿는 도시가 더 위험하다.”
슈샤니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합니다.”
푸리나는 결국 웃었다.
“좋아. 그럼 이 학술제의 최종 결론은 이거야.”
그녀는 원탁 위에 작은 등불 하나를 놓았다.
“책상도 하나로 이어질 수 있다.”
그 말에 모두가 도시를 보았다.
서로 다른 왕관과 깃발과 기도.
무력제에서는 그들의 칼끝이 같은 방향을 향했다.
학술제에서는 그들의 답이 같은 도시를 향했다.
푸리나는 손을 가슴 앞에 모았다.
“《등불 아래의 학술제》, 폐막.”
이번에는 박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 박수는 승리의 박수가 아니었다.
누군가를 이긴 박수도 아니었다.
각자의 답이 홀로 남지 않고, 하나의 도시 안에서 서로의 곁에 놓인 것에 보내는 박수였다.
아르카다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 도시는 아직 모의 도시였다.
그러나 이제 그 모의 도시는 단순한 과제가 아니었다.
다가올 전쟁 이후, 정말로 누군가가 세워야 할 도시의 초안이었다.
그리고 그 초안 위에는 여러 글씨가 겹쳐 있었다.
로마의 법.
헝가리의 성벽.
리투아니아의 생존 계산.
보헤미아의 성은.
니케아의 교육.
불가리아의 고통 완화.
세르비아의 침묵.
킬리키아의 극장.
폴란드의 기록.
북방의 별과 길.
서로 다른 언어로 쓰인 답들이, 한 도시의 내일을 함께 적었다.
그리고 그 내일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살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