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37여관◆zAR16hM8he(83c9c67c)2026-05-15 (금) 13:27:20
《거리의 왕관》
여관의 소문은 늘 문보다 먼저 들어왔다.
길 위의 먼지를 뒤집어쓴 상인이 문을 밀기 전에,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동전 주머니가 먼저 소리를 냈다.
비를 맞은 병사가 난롯가에 앉기 전에, 그의 젖은 망토 끝에서 떨어진 물이 먼저 바닥을 두드렸다.
피난민의 아이가 뜨거운 수프 냄새에 고개를 들기 전에, 그 아이의 굶주린 배가 먼저 낮게 울었다.
그래서 여관 주인은 사람을 맞이할 때 얼굴보다 먼저 소리를 들었다.
동전 소리.
젖은 신발 소리.
검집이 의자에 부딪히는 소리.
아이의 숨소리.
누군가 오래 참고 있던 한숨.
그 모든 소리가 문가에 쌓이면, 여관 주인은 늘 같은 말을 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잠깐 쉬어 가시죠.”
그날 밤, 여관의 이름은 따로 중요하지 않았다.
킬리키아의 항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여관이었다.
벽에는 여행자의 지팡이 자국이 남아 있었고, 천장에는 오래된 등불이 낮게 걸려 있었다. 부엌에서는 양고기 스튜가 끓었고, 구석에서는 누군가 젖은 장화를 말리고 있었다.
여관에는 여러 나라 사람이 모였다.
킬리키아의 상인.
니케아의 전직 병사.
불가리아에서 온 순례자.
헝가리의 석공.
리투아니아의 사냥꾼.
세르비아의 베 짜는 여인.
폴란드의 필경사.
튜튼 영지에서 온 마부.
리보니아의 신참 기사.
처음에는 모두 말이 없었다.
길 위의 사람들은 처음 만난 이들에게 쉽게 속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욱 그랬다. 어느 길이 전쟁으로 막힐지 모르고, 어느 영주가 세금을 새로 붙일지 모르고, 어느 성좌의 이름이 어느 나라에서는 축복이고 어느 나라에서는 의심이 될지 몰랐다.
그런데 술이 한 잔 돌고, 스튜가 두 그릇 비워지고, 장작이 한 번 더 타오르자,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말이야.”
킬리키아 상인이었다. 그는 빵을 스튜에 찍으며 말했다.
“우리 여왕님은 이상하긴 해도 나쁜 분은 아니야.”
그 말에 니케아 병사가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긴 하다는 건 인정하는군.”
“인정하지. 그걸 부정하면 거짓말이지.”
상인은 진심으로 말했다.
“항구 광장에서 갑자기 상자 위에 올라가더니, ‘오늘의 무대는 생선 시장이다!’라고 외치시는 군주를 뭐라고 설명하겠어?”
폴란드 필경사가 잠시 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건 기록할 가치가 있군요.”
상인이 손을 저었다.
“하지 마. 우리도 체면이 있어.”
여관 안에서 낮은 웃음이 번졌다.
상인은 조금 더 빵을 찢었다.
“그런데 그날 말이야. 전쟁 때문에 울던 애들이 있었어. 집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아이들. 여왕님이 생선 장수랑 빵집 할머니까지 끌어다가 즉흥극을 시켰지. 생선 왕국이 빵 제국을 침공하고, 결국 둘이 같이 수프가 되는 이상한 극이었어.”
“그게 뭔 이야기요?”
헝가리 석공이 물었다.
상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몰라. 그런데 애들이 웃었어.”
그는 술잔을 한 번 돌렸다.
“그럼 된 거지.”
여관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웃음은 가벼웠지만, 그 뒤에 남은 말은 가볍지 않았다.
세르비아 여인이 천천히 실타래를 감으며 말했다.
“웃게 하는 군주라.”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우리 쪽에서는 조금 드문 일이지.”
킬리키아 상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세르비아는 어떤데?”
여인은 손 안의 실을 내려다보았다.
“아레 님은 크게 웃는 분은 아니야.”
그녀는 그것을 흉보듯 말하지 않았다.
“처음 보면 무섭지. 조용하고, 눈이 깊고, 말이 짧아.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들이 그분 앞에 서면, 괜히 자세를 바로잡아. 아이들도 처음에는 숨지.”
“그럼 백성들이 두려워하나?”
“두려워하지.”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워하진 않아.”
그녀는 실을 조금 더 감았다.
“내 동생이 전쟁에서 죽었어. 아주 작은 부대였고, 이름이 장부에 잘못 올라갈 뻔했지. 집안에서는 그 아이가 어디서 죽었는지도 몰랐어. 그런데 어느 날, 군청에서 사람이 왔다. 아레 님의 명으로 확인했다고 하더군. 어느 언덕에서, 누구와 함께 있었고, 마지막에 무엇을 지키다 죽었는지.”
여인은 한동안 말을 멈췄다.
장작이 탁, 하고 터졌다.
“그분은 내 동생을 본 적도 없었을 거야. 그래도 이름을 알고 계셨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실 끝을 눌렀다.
“우리 군주는 아이들을 웃게 하는 분은 아니야. 하지만 울어도 된다고 해주시는 분이지.”
아무도 웃지 않았다.
킬리키아 상인은 잔을 조금 들어 보였다.
“그것도 좋은 군주네.”
세르비아 여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은 군주야.”
---
다음에 말을 꺼낸 것은 헝가리 석공이었다.
그는 손이 컸고, 손톱 밑에는 돌가루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잔을 쥐는 손에 힘이 있었다.
“벨라 폐하는 웃는 분이 아니오.”
그는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
“그분은 성벽을 보시고, 들판을 보시고, 불탄 마을터를 보시지. 사람을 볼 때도 아마 그 사람이 어느 성벽 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먼저 보실 거요.”
“차갑게 들리네요.”
리보니아 신참 기사가 말했다.
석공은 고개를 저었다.
“차갑다기보다…… 무겁지.”
그는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모히 이후에 우리 마을에는 집보다 무덤이 많았소. 살아남은 사람들도 살아남았다는 말을 쉽게 못 했지. 누가 돌아오지 않았는지 세는 것이 하루 일이었으니까.”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때 폐하는 성을 세우라고 했소. 또 성, 또 성, 또 성. 사람들은 투덜댔지. 돌도 없고, 손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성이라니. 어떤 이는 말했소. 폐하께서는 웃는 법을 잊으셨다고.”
“그대는 어떻게 생각했소?”
리투아니아 사냥꾼이 물었다.
석공은 짧게 웃었다.
“웃을 시간이 있었으면 성 하나 더 세우셨겠지.”
그는 잔을 들었다.
“그 성 덕분에 우리 마을은 두 번째 약탈을 피했소. 내 아들은 성벽 위에서 태어났고, 내 딸은 그 성문 아래 시장에서 빵을 팔지. 그러면 됐소.”
킬리키아 상인이 말했다.
“웃음보다 성벽이 낫다는 건가?”
석공은 잠시 생각했다.
“아니. 웃음도 필요하지.”
그의 눈가에 희미한 주름이 잡혔다.
“하지만 웃으려면 먼저 살아남아야 하지 않소.”
소피아 베아트리체에 관한 소문은 그 뒤에 나왔다.
석공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피아 님은…… 뭐라고 해야 하나. 돌을 보면서 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오.”
“그게 무슨 뜻이지?”
“나도 모르오.”
석공은 진심으로 말했다.
“한 번은 공방에 오셔서 석재의 가치와 용도를 재정의할 수 있다고 하셨소. 장인들이 다 긴장했지. 돌이 금이 되나 싶어서.”
“됐소?”
“아니. 대신 폐석이 성벽 보수재가 되었소.”
“좋은 일 아닌가?”
“좋은 일이지. 하지만 옆에 있던 내 친구가 물었소. ‘세금 고지서도 빵으로 재정의해주실 수 있습니까?’”
여관 안에 웃음이 퍼졌다.
석공은 진지하게 덧붙였다.
“소피아 님은 안 된다고 하셨소. 왕국 경제가 무너진다고.”
“이미 우리 집 경제는 무너졌는데.”
킬리키아 상인이 중얼거렸다.
석공은 그를 보았다.
“내 친구도 그렇게 말했소.”
이번에는 더 크게 웃음이 터졌다.
---
니케아의 전직 병사는 오래 말하지 않았다.
그는 술잔을 한참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니케아에서는 군주 이야기를 쉽게 하면 안 돼.”
그는 손가락으로 잔 가장자리를 천천히 문질렀다.
“황제가 둘이니까.”
“둘이면 좋은 것 아닌가?”
불가리아 순례자가 물었다.
병사는 피식 웃었다.
“두 배로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는 미하일라를 먼저 말했다.
“미하일 황제가 활을 들면, 사람들은 숨을 죽여. 적도 숨을 죽이고, 아군도 숨을 죽이지. 그분의 화살은 그냥 화살이 아니야. 명령이지. ‘저 전쟁은 여기서 끝난다’는 명령.”
그의 눈빛이 잠시 멀어졌다.
“전장에서는 믿음직하지. 무섭도록 믿음직해.”
“그럼 백성들이 좋아하나?”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분이 서 있으면 뒤로 물러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살아남는 데는 도움이 돼.”
요안나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은 조금 달라졌다.
“요안나 폐하는 이상한 분이야.”
킬리키아 상인이 웃었다.
“우리 여왕님과 비슷한가?”
“다른 방향으로 이상하지.”
병사는 잔을 내려놓았다.
“정말로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줄 수 있다고 믿으셔.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라틴인, 튀르크인, 상인, 병사, 포로, 아이…… 누구든. 처음 들으면 예쁘기만 한 말이지. 전장에서 구른 사람들은 그런 말을 잘 안 믿어.”
“그대도 안 믿었나?”
병사는 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에야 말했다.
“우리 부대에 루스 출신 용병이 있었어. 늘 자신은 로마인이 아니라고 했지. 돈을 받으니 싸울 뿐이라고. 그런데 요안나 폐하의 연설을 듣고 나서, 그 사람이 술에 취해 말하더군. ‘내가 로마인이 아니라면, 왜 저 아이가 나까지 세고 있냐’고.”
그는 웃었다.
“그 다음 날 그 친구는 도망치지 않았어.”
여관 안이 조용해졌다.
병사는 잔을 다시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말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힘이 없다고는 못 하겠어.”
슈샤니크에 대해서는 모두가 먼저 묻지 않았다.
그 이름을 꺼낸 것은 병사 자신이었다.
“슈샤니크 님은…… 백성들이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무서운가?”
“무섭지.”
병사는 즉답했다.
“그분은 장부를 들고 오는데, 장부가 칼보다 무섭다는 걸 알게 해줘. 세금이 왜 필요한지, 곡물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느 마을을 먼저 복구해야 하는지, 누가 거짓 보고를 했는지. 전부 알아.”
“미워하나?”
“미워하기도 해.”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홍수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도착한 것도 그분의 명령서였어. 병사보다 먼저, 사제보다 먼저, 장부가 왔지. 누가 살았고, 누가 죽었고, 누가 보상받아야 하는지 적은 장부.”
그는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 제국은 이제 기도만으로 굴러가지 않아. 누군가는 장부를 봐야 해. 슈샤니크 님은 그걸 너무 잘하시지.”
폴란드 필경사가 작게 중얼거렸다.
“좋은 장부는 칼보다 오래 남지요.”
니케아 병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 무섭고.”
---
불가리아 순례자는 오래 기다린 뒤에야 말했다.
“우리 나라는 지금, 누구를 차르라 불러야 하는지도 사람마다 다르오.”
그 말에 여관 안의 공기가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불가리아의 내전은 농담으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였다.
하지만 순례자는 담담했다.
“레플리카 차르를 따르는 사람들은 말하오. 고통을 줄여주는 사람이 왕이어도 되지 않느냐고.”
그는 자기 손목의 낡은 붕대를 만졌다.
“그분의 검은 성법은 비명을 크게 만들지 않는다고 들었소. 오히려 비명이 사람을 찢기 전에 조금 둥글게 만든다고. 우리 마을의 노파 하나가 그랬지. ‘그 아이가 왕이면, 적어도 우리 손자의 밤은 조금 덜 아플 것이다’라고.”
“그 아이?”
“그렇게 부르는 이들도 있소. 차르라 부르는 이들도 있고.”
순례자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알렉산드리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다르게 말하지. 그분은 사생아라더라. 왕의 피가 부족하다더라. 흉내 내는 자라더라.”
“그런데도 따르나?”
“그래서 따르는 사람도 있소.”
순례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결핍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니까. 왕으로 태어나지 못했으면서 왕의 길을 걷겠다고 하는 사람이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가끔 그런 사람을 믿고 싶어지오.”
킬리키아 상인이 말했다.
“부족해서 가까운 군주인가.”
순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완성되어 있어서 높은 왕도 있고, 부족해서 우리 쪽으로 손을 뻗는 왕도 있지.”
가브리엘라 이야기가 나오자, 순례자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새벽의 주교님은 물을 많이 마시라 하시오.”
“갑자기?”
“정말이오.”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기도 전에도 물, 훈련 후에도 물, 울고 난 뒤에도 물, 술 마신 다음 날에도 물. 처음엔 사람들이 웃었지. 그런데 어느 날 누가 말했소. ‘새벽은 수분에서 온다’고.”
헝가리 석공이 크게 웃었다.
“그건 좋은 신학이군.”
“실용적인 신학이지.”
스토얀카의 이름은, 순례자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꺼냈다.
“그리고 스토얀카 쪽 사람들은…… 음.”
“무섭나?”
리보니아 신참 기사가 물었다.
“무섭소.”
순례자는 바로 말했다.
“그쪽 사람들은 웃으면서 등을 펴라고 하오.”
“그게 왜 무섭지?”
순례자는 그를 보았다.
“들어보면 알게 되오.”
신참 기사는 더 묻지 않았다.
---
리투아니아 사냥꾼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벽 쪽에 앉아 있었고, 등 뒤에 빈 공간을 두지 않았다. 숲에서 자란 사람들의 습관이었다.
“민다우가스 대공은 무섭다.”
그는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도 안다.”
“백성에게도?”
“백성에게도.”
그는 술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하지만 침략자에게는 더 무섭다. 그럼 됐다.”
그 말은 단순했다.
하지만 그 단순함 안에는 불탄 마을과 늪으로 숨어든 아이들과, 밤새 활을 들고 기다린 어머니들이 있었다.
사냥꾼은 말을 이었다.
“우리 숲은 오래 짓밟혔다. 외부 사람들은 우리가 복수만 한다고 하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복수만 하려고 아이를 키우지는 않는다. 복수만 하려고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그는 창밖의 어둠을 보았다.
“민다우가스 대공은 그걸 아신다. 그래서 더 무섭다. 살아남으려면 무서운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아신다.”
아스테르다스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뚜렷한 웃음이 생겼다.
“유성 공작님은 다르지.”
킬리키아 상인이 눈을 반짝였다.
“어떻게?”
“아이들이 형이라고 부른다.”
“공작을?”
“그분이 그렇게 하라 했겠지.”
사냥꾼은 짧게 웃었다.
“처음에는 어른들이 말렸어. 귀족에게 무례하다고. 그런데 공작님이 아이들 앞에 쪼그려 앉아서 말했지.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 다만 내가 떨어질 때는 조금 떨어져 있어라.’”
여관 안에 웃음이 퍼졌다.
“전장에서는 정말 별처럼 떨어진다더라.”
리보니아 신참 기사가 말했다.
사냥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좋다.”
“무서운 것 아닌가?”
“우리 쪽으로 떨어지니까.”
사냥꾼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하늘의 별은 멀지만, 유성은 가까이 떨어지지. 그분은 우리 쪽으로 떨어지기로 정한 별이다.”
그 말에 아무도 바로 농담하지 않았다.
리투아니아식 칭찬은 짧았지만, 무거웠다.
---
폴란드 필경사는 그동안 다른 이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는 젊었지만, 손가락에는 잉크가 깊이 배어 있었다. 여관의 등불 아래에서도 그는 습관적으로 글자를 정렬하듯 말을 골랐다.
“기록의 성좌님에 관한 소문은 대체로 믿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아카식을 직접 본 적 있는 이라면 웃었겠지만, 이 여관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킬리키아 상인이 물었다.
“왜? 거짓말이 많나?”
“진실이 너무 이상하게 전달됩니다.”
필경사는 진지하게 말했다.
“어떤 이는 성좌께서 빛나는 서고에서 내려왔다고 하고, 어떤 이는 술집에서 음유시인 흉내를 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성좌께서 자신의 실패담을 듣고 웃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그 실패담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 맞지?”
필경사는 잠시 생각했다.
“전부 조금씩 맞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관 안에 다시 웃음이 흘렀다.
“그럼 알토 교단장은?”
이번에는 니케아 병사가 물었다.
필경사의 자세가 조금 바로 섰다.
“알토 님은 조용한 분입니다. 말이 길지 않고, 웃음도 드뭅니다.”
“무서운가?”
“조금.”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분 앞에서는 이상하게 거짓말을 줄이게 됩니다. 혼날까 봐서가 아니라, 거짓말로 남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는 잉크 묻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알토 님은 기록을 사람에게 씌우는 쇠사슬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기록은 남겨야 하고, 어떤 순간은 남기지 않아야 사람을 살린다고 생각하시지요.”
세르비아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구분이네.”
“어렵습니다.”
필경사는 작게 웃었다.
“한 번은 어떤 장돌뱅이가 말했습니다. ‘알토 님이 웃으신 걸 봤다’고. 사람들이 그걸 기록해야 한다고 했지요.”
“했나?”
“아니요.”
필경사는 단호히 말했다.
“그러면 다시 안 웃으실 테니까요.”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필경사도 조금 웃었다.
“그러니 우리 폴란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될 가치가 있는 것과, 기록하지 않아야 지켜지는 것이 있다. 그리고 알토 님은 그 둘 사이에서 늘 피곤해 보이신다.”
킬리키아 상인이 잔을 들었다.
“그건 어느 나라 관리나 다 그렇지.”
그레이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있었다면 아마 동의했을 것이다.
---
튜튼 영지에서 온 마부는 자기 차례가 오자 잠시 망설였다.
“호흐마이스터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 않는 편이 좋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왜?”
리투아니아 사냥꾼이 물었다.
“이름도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우리 대부분은 그냥 호흐마이스터라고 부르오. 이름보다 갑옷이 먼저 오는 사람이지.”
마부는 손가락으로 술잔을 두드렸다.
“무섭소. 아주 무섭지. 웃는 얼굴을 본 사람은 거의 없고, 명령은 짧고, 죄라는 말을 마치 옷처럼 걸치고 다니오.”
“백성들이 싫어하나?”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싫어한다고 말하기도 어렵소.”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몽골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그분을 찾소.”
여관 안이 조용해졌다.
“왜?”
“그분은 그들을 알아보는 눈을 하고 있거든.”
마부는 창밖의 어둠을 보았다.
“우리 같은 사람은 동쪽에서 오는 말발굽 소리를 멀리서 들으면 그냥 무섭소. 그런데 호흐마이스터는 그 공포를 더 깊이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오. 그래서 더 무섭고, 그래서 더 앞에 서야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리보니아 신참 기사는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자기 잔을 내려놓았다.
“우리 단장님은 조금 다릅니다.”
“아스트리트 단장?”
“예.”
신참 기사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처음 오셨을 때, 모두 들었습니다. ‘네? 저보고 이제 이곳의 기사단장을 하라고요? 아니 잠깐, 편지랑 내용이 다르잖아요!?’라고.”
킬리키아 상인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정말 그렇게 말했나?”
“정말입니다.”
신참 기사는 진지했다.
“그 순간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아, 이분도 속아서 오셨구나.”
여관 안이 웃음으로 흔들렸다.
신참 기사도 결국 웃었다.
“하지만 전보다 낫습니다.”
그 말은 짧았지만, 웃음 뒤에 남았다.
“이전 기사단은 성전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썼습니다. 검을 들면 다 신앙이 되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아스트리트 단장님은 매번 묻습니다. 이 검이 생명을 긍정하는가. 이 명령이 살아 있는 것을 지키는가. 이 싸움이 정말 필요한가.”
“기사단장에게는 귀찮은 질문이군.”
죠니가 없었지만, 누군가 그처럼 말했을 법했다.
신참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습니다. 그래서 필요합니다.”
그는 잔을 들었다.
“편지에 속아 오신 분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
그날 밤, 여관의 불은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군주를 말했다.
이상한 군주.
무서운 군주.
웃지 않는 군주.
부족해서 가까운 군주.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믿기 어려운 군주.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지막에는 각자 같은 말을 조금씩 다르게 했다.
“그래도 우리 여왕님이 제일 낫지.”
킬리키아 상인이 말했다.
“우리 폐하가 없었으면 성벽도 없었소.”
헝가리 석공이 말했다.
“우리 황제들은…… 복잡하지만, 그래도 로마는 아직 서 있지.”
니케아 병사가 말했다.
“아레 님은 이름을 잊지 않으셔.”
세르비아 여인이 말했다.
“민다우가스 대공은 무섭지만, 우리 숲의 무서움이오.”
리투아니아 사냥꾼이 말했다.
“알렉산드리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소. 그래서 누군가는 그 새벽을 보고 싶어 하오.”
불가리아 순례자가 말했다.
“알토 님은 기록하지 않는 법도 아십니다.”
폴란드 필경사가 말했다.
“호흐마이스터는 앞에 서고, 아스트리트 단장님은 묻습니다. 둘 다 우리에게 필요하겠지요.”
마부와 신참 기사가 말했다.
그러자 다들 서로를 보았다.
한순간, 각자의 말이 서로 충돌할 뻔했다.
우리 군주가 더 낫다.
우리 왕국이 더 오래 버텼다.
우리 황제가 더 정통이다.
우리 상처가 더 깊다.
우리 성좌가 더 옳다.
그런 말들이 목까지 올라왔을 때, 여관 주인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모두 좋은 군주를 만나신 모양입니다.”
말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 한마디에 누구도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여관 주인은 다시 미소 지었다.
“길 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실 수 있다는 건, 아직 돌아갈 곳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장작이 다시 타올랐다.
사람들은 자기 잔을 보았다.
누군가는 술을 마셨고, 누군가는 차를 마셨고, 누군가는 식은 스튜를 다시 떠먹었다.
그날 밤, 누구도 자기 군주가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완벽한 왕관 같은 것은 없었다.
왕관은 멀리서 보면 금으로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흠집이 있다.
피가 묻어 있고, 먼지가 끼어 있고, 때로는 술자국도 남아 있다.
어떤 왕관은 너무 무겁고, 어떤 왕관은 아직 헐겁고, 어떤 왕관은 쓰는 이의 이마를 다치게 한다.
하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왕관을 궁정의 말로만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조금 다르게 부른다.
우리를 웃게 한 사람.
우리를 덜 아프게 한 사람.
우리 이름을 잊지 않은 사람.
성을 세워준 사람.
내일도 로마라고 말해준 사람.
숲의 밤에 우리 편으로 떨어진 별.
질문을 던져 검을 멈추게 한 사람.
무서워도 앞에 서는 사람.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래도 우리 군주님.”
이라고 부른다.
여관 주인은 마지막 잔을 닦고, 문가에 놓인 젖은 망토들을 보았다.
밤은 깊었고, 길은 아직 멀었다.
하지만 그날 여관 안에서만큼은, 여러 나라의 왕관들이 사람들의 입속에서 잠시 내려와 앉아 있었다.
금도 아니고, 보석도 아니고, 칙령도 아닌 모습으로.
조금 이상하고, 조금 무겁고, 조금 웃기고, 조금 슬픈.
사람들이 살아가며 부르는 이름으로.
여관의 소문은 늘 문보다 먼저 들어왔다.
길 위의 먼지를 뒤집어쓴 상인이 문을 밀기 전에, 그의 허리춤에 매달린 동전 주머니가 먼저 소리를 냈다.
비를 맞은 병사가 난롯가에 앉기 전에, 그의 젖은 망토 끝에서 떨어진 물이 먼저 바닥을 두드렸다.
피난민의 아이가 뜨거운 수프 냄새에 고개를 들기 전에, 그 아이의 굶주린 배가 먼저 낮게 울었다.
그래서 여관 주인은 사람을 맞이할 때 얼굴보다 먼저 소리를 들었다.
동전 소리.
젖은 신발 소리.
검집이 의자에 부딪히는 소리.
아이의 숨소리.
누군가 오래 참고 있던 한숨.
그 모든 소리가 문가에 쌓이면, 여관 주인은 늘 같은 말을 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잠깐 쉬어 가시죠.”
그날 밤, 여관의 이름은 따로 중요하지 않았다.
킬리키아의 항구로 가는 길목에 있는 작은 여관이었다.
벽에는 여행자의 지팡이 자국이 남아 있었고, 천장에는 오래된 등불이 낮게 걸려 있었다. 부엌에서는 양고기 스튜가 끓었고, 구석에서는 누군가 젖은 장화를 말리고 있었다.
여관에는 여러 나라 사람이 모였다.
킬리키아의 상인.
니케아의 전직 병사.
불가리아에서 온 순례자.
헝가리의 석공.
리투아니아의 사냥꾼.
세르비아의 베 짜는 여인.
폴란드의 필경사.
튜튼 영지에서 온 마부.
리보니아의 신참 기사.
처음에는 모두 말이 없었다.
길 위의 사람들은 처음 만난 이들에게 쉽게 속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요즘 같은 시대에는 더욱 그랬다. 어느 길이 전쟁으로 막힐지 모르고, 어느 영주가 세금을 새로 붙일지 모르고, 어느 성좌의 이름이 어느 나라에서는 축복이고 어느 나라에서는 의심이 될지 몰랐다.
그런데 술이 한 잔 돌고, 스튜가 두 그릇 비워지고, 장작이 한 번 더 타오르자, 누군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 말이야.”
킬리키아 상인이었다. 그는 빵을 스튜에 찍으며 말했다.
“우리 여왕님은 이상하긴 해도 나쁜 분은 아니야.”
그 말에 니케아 병사가 고개를 들었다.
“이상하긴 하다는 건 인정하는군.”
“인정하지. 그걸 부정하면 거짓말이지.”
상인은 진심으로 말했다.
“항구 광장에서 갑자기 상자 위에 올라가더니, ‘오늘의 무대는 생선 시장이다!’라고 외치시는 군주를 뭐라고 설명하겠어?”
폴란드 필경사가 잠시 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그건 기록할 가치가 있군요.”
상인이 손을 저었다.
“하지 마. 우리도 체면이 있어.”
여관 안에서 낮은 웃음이 번졌다.
상인은 조금 더 빵을 찢었다.
“그런데 그날 말이야. 전쟁 때문에 울던 애들이 있었어. 집을 잃고, 아버지를 잃고, 말도 제대로 못 하던 아이들. 여왕님이 생선 장수랑 빵집 할머니까지 끌어다가 즉흥극을 시켰지. 생선 왕국이 빵 제국을 침공하고, 결국 둘이 같이 수프가 되는 이상한 극이었어.”
“그게 뭔 이야기요?”
헝가리 석공이 물었다.
상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몰라. 그런데 애들이 웃었어.”
그는 술잔을 한 번 돌렸다.
“그럼 된 거지.”
여관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웃음은 가벼웠지만, 그 뒤에 남은 말은 가볍지 않았다.
세르비아 여인이 천천히 실타래를 감으며 말했다.
“웃게 하는 군주라.”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우리 쪽에서는 조금 드문 일이지.”
킬리키아 상인이 조심스레 물었다.
“세르비아는 어떤데?”
여인은 손 안의 실을 내려다보았다.
“아레 님은 크게 웃는 분은 아니야.”
그녀는 그것을 흉보듯 말하지 않았다.
“처음 보면 무섭지. 조용하고, 눈이 깊고, 말이 짧아. 전쟁터에서 돌아온 이들이 그분 앞에 서면, 괜히 자세를 바로잡아. 아이들도 처음에는 숨지.”
“그럼 백성들이 두려워하나?”
“두려워하지.”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미워하진 않아.”
그녀는 실을 조금 더 감았다.
“내 동생이 전쟁에서 죽었어. 아주 작은 부대였고, 이름이 장부에 잘못 올라갈 뻔했지. 집안에서는 그 아이가 어디서 죽었는지도 몰랐어. 그런데 어느 날, 군청에서 사람이 왔다. 아레 님의 명으로 확인했다고 하더군. 어느 언덕에서, 누구와 함께 있었고, 마지막에 무엇을 지키다 죽었는지.”
여인은 한동안 말을 멈췄다.
장작이 탁, 하고 터졌다.
“그분은 내 동생을 본 적도 없었을 거야. 그래도 이름을 알고 계셨다.”
그녀는 손가락으로 실 끝을 눌렀다.
“우리 군주는 아이들을 웃게 하는 분은 아니야. 하지만 울어도 된다고 해주시는 분이지.”
아무도 웃지 않았다.
킬리키아 상인은 잔을 조금 들어 보였다.
“그것도 좋은 군주네.”
세르비아 여인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은 군주야.”
---
다음에 말을 꺼낸 것은 헝가리 석공이었다.
그는 손이 컸고, 손톱 밑에는 돌가루가 아직도 남아 있었다. 그는 술을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잔을 쥐는 손에 힘이 있었다.
“벨라 폐하는 웃는 분이 아니오.”
그는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다.
“그분은 성벽을 보시고, 들판을 보시고, 불탄 마을터를 보시지. 사람을 볼 때도 아마 그 사람이 어느 성벽 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지를 먼저 보실 거요.”
“차갑게 들리네요.”
리보니아 신참 기사가 말했다.
석공은 고개를 저었다.
“차갑다기보다…… 무겁지.”
그는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모히 이후에 우리 마을에는 집보다 무덤이 많았소. 살아남은 사람들도 살아남았다는 말을 쉽게 못 했지. 누가 돌아오지 않았는지 세는 것이 하루 일이었으니까.”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때 폐하는 성을 세우라고 했소. 또 성, 또 성, 또 성. 사람들은 투덜댔지. 돌도 없고, 손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성이라니. 어떤 이는 말했소. 폐하께서는 웃는 법을 잊으셨다고.”
“그대는 어떻게 생각했소?”
리투아니아 사냥꾼이 물었다.
석공은 짧게 웃었다.
“웃을 시간이 있었으면 성 하나 더 세우셨겠지.”
그는 잔을 들었다.
“그 성 덕분에 우리 마을은 두 번째 약탈을 피했소. 내 아들은 성벽 위에서 태어났고, 내 딸은 그 성문 아래 시장에서 빵을 팔지. 그러면 됐소.”
킬리키아 상인이 말했다.
“웃음보다 성벽이 낫다는 건가?”
석공은 잠시 생각했다.
“아니. 웃음도 필요하지.”
그의 눈가에 희미한 주름이 잡혔다.
“하지만 웃으려면 먼저 살아남아야 하지 않소.”
소피아 베아트리체에 관한 소문은 그 뒤에 나왔다.
석공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소피아 님은…… 뭐라고 해야 하나. 돌을 보면서 돌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분이오.”
“그게 무슨 뜻이지?”
“나도 모르오.”
석공은 진심으로 말했다.
“한 번은 공방에 오셔서 석재의 가치와 용도를 재정의할 수 있다고 하셨소. 장인들이 다 긴장했지. 돌이 금이 되나 싶어서.”
“됐소?”
“아니. 대신 폐석이 성벽 보수재가 되었소.”
“좋은 일 아닌가?”
“좋은 일이지. 하지만 옆에 있던 내 친구가 물었소. ‘세금 고지서도 빵으로 재정의해주실 수 있습니까?’”
여관 안에 웃음이 퍼졌다.
석공은 진지하게 덧붙였다.
“소피아 님은 안 된다고 하셨소. 왕국 경제가 무너진다고.”
“이미 우리 집 경제는 무너졌는데.”
킬리키아 상인이 중얼거렸다.
석공은 그를 보았다.
“내 친구도 그렇게 말했소.”
이번에는 더 크게 웃음이 터졌다.
---
니케아의 전직 병사는 오래 말하지 않았다.
그는 술잔을 한참 바라보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니케아에서는 군주 이야기를 쉽게 하면 안 돼.”
그는 손가락으로 잔 가장자리를 천천히 문질렀다.
“황제가 둘이니까.”
“둘이면 좋은 것 아닌가?”
불가리아 순례자가 물었다.
병사는 피식 웃었다.
“두 배로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지.”
그는 미하일라를 먼저 말했다.
“미하일 황제가 활을 들면, 사람들은 숨을 죽여. 적도 숨을 죽이고, 아군도 숨을 죽이지. 그분의 화살은 그냥 화살이 아니야. 명령이지. ‘저 전쟁은 여기서 끝난다’는 명령.”
그의 눈빛이 잠시 멀어졌다.
“전장에서는 믿음직하지. 무섭도록 믿음직해.”
“그럼 백성들이 좋아하나?”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분이 서 있으면 뒤로 물러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아.”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좋은 건지 나쁜 건지는 모르겠다. 다만 살아남는 데는 도움이 돼.”
요안나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은 조금 달라졌다.
“요안나 폐하는 이상한 분이야.”
킬리키아 상인이 웃었다.
“우리 여왕님과 비슷한가?”
“다른 방향으로 이상하지.”
병사는 잔을 내려놓았다.
“정말로 모든 사람에게 평화를 줄 수 있다고 믿으셔. 그리스인, 아르메니아인, 라틴인, 튀르크인, 상인, 병사, 포로, 아이…… 누구든. 처음 들으면 예쁘기만 한 말이지. 전장에서 구른 사람들은 그런 말을 잘 안 믿어.”
“그대도 안 믿었나?”
병사는 답하지 않았다.
잠시 뒤에야 말했다.
“우리 부대에 루스 출신 용병이 있었어. 늘 자신은 로마인이 아니라고 했지. 돈을 받으니 싸울 뿐이라고. 그런데 요안나 폐하의 연설을 듣고 나서, 그 사람이 술에 취해 말하더군. ‘내가 로마인이 아니라면, 왜 저 아이가 나까지 세고 있냐’고.”
그는 웃었다.
“그 다음 날 그 친구는 도망치지 않았어.”
여관 안이 조용해졌다.
병사는 잔을 다시 들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그 말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모르겠지만, 힘이 없다고는 못 하겠어.”
슈샤니크에 대해서는 모두가 먼저 묻지 않았다.
그 이름을 꺼낸 것은 병사 자신이었다.
“슈샤니크 님은…… 백성들이 좋아한다고 말하기는 어렵지.”
“무서운가?”
“무섭지.”
병사는 즉답했다.
“그분은 장부를 들고 오는데, 장부가 칼보다 무섭다는 걸 알게 해줘. 세금이 왜 필요한지, 곡물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어느 마을을 먼저 복구해야 하는지, 누가 거짓 보고를 했는지. 전부 알아.”
“미워하나?”
“미워하기도 해.”
병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홍수가 났을 때, 가장 먼저 도착한 것도 그분의 명령서였어. 병사보다 먼저, 사제보다 먼저, 장부가 왔지. 누가 살았고, 누가 죽었고, 누가 보상받아야 하는지 적은 장부.”
그는 조금 씁쓸하게 웃었다.
“우리 제국은 이제 기도만으로 굴러가지 않아. 누군가는 장부를 봐야 해. 슈샤니크 님은 그걸 너무 잘하시지.”
폴란드 필경사가 작게 중얼거렸다.
“좋은 장부는 칼보다 오래 남지요.”
니케아 병사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 무섭고.”
---
불가리아 순례자는 오래 기다린 뒤에야 말했다.
“우리 나라는 지금, 누구를 차르라 불러야 하는지도 사람마다 다르오.”
그 말에 여관 안의 공기가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불가리아의 내전은 농담으로 다루기 어려운 주제였다.
하지만 순례자는 담담했다.
“레플리카 차르를 따르는 사람들은 말하오. 고통을 줄여주는 사람이 왕이어도 되지 않느냐고.”
그는 자기 손목의 낡은 붕대를 만졌다.
“그분의 검은 성법은 비명을 크게 만들지 않는다고 들었소. 오히려 비명이 사람을 찢기 전에 조금 둥글게 만든다고. 우리 마을의 노파 하나가 그랬지. ‘그 아이가 왕이면, 적어도 우리 손자의 밤은 조금 덜 아플 것이다’라고.”
“그 아이?”
“그렇게 부르는 이들도 있소. 차르라 부르는 이들도 있고.”
순례자는 술잔을 내려놓았다.
“알렉산드리나를 따르는 사람들은 다르게 말하지. 그분은 사생아라더라. 왕의 피가 부족하다더라. 흉내 내는 자라더라.”
“그런데도 따르나?”
“그래서 따르는 사람도 있소.”
순례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결핍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니까. 왕으로 태어나지 못했으면서 왕의 길을 걷겠다고 하는 사람이니까.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가끔 그런 사람을 믿고 싶어지오.”
킬리키아 상인이 말했다.
“부족해서 가까운 군주인가.”
순례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완성되어 있어서 높은 왕도 있고, 부족해서 우리 쪽으로 손을 뻗는 왕도 있지.”
가브리엘라 이야기가 나오자, 순례자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
“새벽의 주교님은 물을 많이 마시라 하시오.”
“갑자기?”
“정말이오.”
그는 진지하게 말했다.
“기도 전에도 물, 훈련 후에도 물, 울고 난 뒤에도 물, 술 마신 다음 날에도 물. 처음엔 사람들이 웃었지. 그런데 어느 날 누가 말했소. ‘새벽은 수분에서 온다’고.”
헝가리 석공이 크게 웃었다.
“그건 좋은 신학이군.”
“실용적인 신학이지.”
스토얀카의 이름은, 순례자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꺼냈다.
“그리고 스토얀카 쪽 사람들은…… 음.”
“무섭나?”
리보니아 신참 기사가 물었다.
“무섭소.”
순례자는 바로 말했다.
“그쪽 사람들은 웃으면서 등을 펴라고 하오.”
“그게 왜 무섭지?”
순례자는 그를 보았다.
“들어보면 알게 되오.”
신참 기사는 더 묻지 않았다.
---
리투아니아 사냥꾼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벽 쪽에 앉아 있었고, 등 뒤에 빈 공간을 두지 않았다. 숲에서 자란 사람들의 습관이었다.
“민다우가스 대공은 무섭다.”
그는 이렇게 시작했다.
“우리도 안다.”
“백성에게도?”
“백성에게도.”
그는 술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하지만 침략자에게는 더 무섭다. 그럼 됐다.”
그 말은 단순했다.
하지만 그 단순함 안에는 불탄 마을과 늪으로 숨어든 아이들과, 밤새 활을 들고 기다린 어머니들이 있었다.
사냥꾼은 말을 이었다.
“우리 숲은 오래 짓밟혔다. 외부 사람들은 우리가 복수만 한다고 하지.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복수만 하려고 아이를 키우지는 않는다. 복수만 하려고 노래를 부르지도 않는다.”
그는 창밖의 어둠을 보았다.
“민다우가스 대공은 그걸 아신다. 그래서 더 무섭다. 살아남으려면 무서운 것이 필요하다는 것도 아신다.”
아스테르다스 이야기가 나오자, 그의 얼굴에 처음으로 뚜렷한 웃음이 생겼다.
“유성 공작님은 다르지.”
킬리키아 상인이 눈을 반짝였다.
“어떻게?”
“아이들이 형이라고 부른다.”
“공작을?”
“그분이 그렇게 하라 했겠지.”
사냥꾼은 짧게 웃었다.
“처음에는 어른들이 말렸어. 귀족에게 무례하다고. 그런데 공작님이 아이들 앞에 쪼그려 앉아서 말했지. ‘형이라고 불러도 된다. 다만 내가 떨어질 때는 조금 떨어져 있어라.’”
여관 안에 웃음이 퍼졌다.
“전장에서는 정말 별처럼 떨어진다더라.”
리보니아 신참 기사가 말했다.
사냥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좋다.”
“무서운 것 아닌가?”
“우리 쪽으로 떨어지니까.”
사냥꾼은 아주 담담하게 말했다.
“하늘의 별은 멀지만, 유성은 가까이 떨어지지. 그분은 우리 쪽으로 떨어지기로 정한 별이다.”
그 말에 아무도 바로 농담하지 않았다.
리투아니아식 칭찬은 짧았지만, 무거웠다.
---
폴란드 필경사는 그동안 다른 이들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었다.
그는 젊었지만, 손가락에는 잉크가 깊이 배어 있었다. 여관의 등불 아래에서도 그는 습관적으로 글자를 정렬하듯 말을 골랐다.
“기록의 성좌님에 관한 소문은 대체로 믿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아카식을 직접 본 적 있는 이라면 웃었겠지만, 이 여관에 그런 사람은 없었다.
킬리키아 상인이 물었다.
“왜? 거짓말이 많나?”
“진실이 너무 이상하게 전달됩니다.”
필경사는 진지하게 말했다.
“어떤 이는 성좌께서 빛나는 서고에서 내려왔다고 하고, 어떤 이는 술집에서 음유시인 흉내를 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이는 성좌께서 자신의 실패담을 듣고 웃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그 실패담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어느 쪽이 맞지?”
필경사는 잠시 생각했다.
“전부 조금씩 맞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관 안에 다시 웃음이 흘렀다.
“그럼 알토 교단장은?”
이번에는 니케아 병사가 물었다.
필경사의 자세가 조금 바로 섰다.
“알토 님은 조용한 분입니다. 말이 길지 않고, 웃음도 드뭅니다.”
“무서운가?”
“조금.”
그는 솔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분 앞에서는 이상하게 거짓말을 줄이게 됩니다. 혼날까 봐서가 아니라, 거짓말로 남으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그는 잉크 묻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알토 님은 기록을 사람에게 씌우는 쇠사슬처럼 여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떤 기록은 남겨야 하고, 어떤 순간은 남기지 않아야 사람을 살린다고 생각하시지요.”
세르비아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구분이네.”
“어렵습니다.”
필경사는 작게 웃었다.
“한 번은 어떤 장돌뱅이가 말했습니다. ‘알토 님이 웃으신 걸 봤다’고. 사람들이 그걸 기록해야 한다고 했지요.”
“했나?”
“아니요.”
필경사는 단호히 말했다.
“그러면 다시 안 웃으실 테니까요.”
그 말에 모두가 웃었다.
필경사도 조금 웃었다.
“그러니 우리 폴란드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기록될 가치가 있는 것과, 기록하지 않아야 지켜지는 것이 있다. 그리고 알토 님은 그 둘 사이에서 늘 피곤해 보이신다.”
킬리키아 상인이 잔을 들었다.
“그건 어느 나라 관리나 다 그렇지.”
그레이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있었다면 아마 동의했을 것이다.
---
튜튼 영지에서 온 마부는 자기 차례가 오자 잠시 망설였다.
“호흐마이스터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 않는 편이 좋소.”
그는 그렇게 말했다.
“왜?”
리투아니아 사냥꾼이 물었다.
“이름도 잘 알려져 있지 않으니까. 우리 대부분은 그냥 호흐마이스터라고 부르오. 이름보다 갑옷이 먼저 오는 사람이지.”
마부는 손가락으로 술잔을 두드렸다.
“무섭소. 아주 무섭지. 웃는 얼굴을 본 사람은 거의 없고, 명령은 짧고, 죄라는 말을 마치 옷처럼 걸치고 다니오.”
“백성들이 싫어하나?”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어렵고, 싫어한다고 말하기도 어렵소.”
그는 잠시 뜸을 들였다.
“하지만 몽골 이야기가 나오면 다들 그분을 찾소.”
여관 안이 조용해졌다.
“왜?”
“그분은 그들을 알아보는 눈을 하고 있거든.”
마부는 창밖의 어둠을 보았다.
“우리 같은 사람은 동쪽에서 오는 말발굽 소리를 멀리서 들으면 그냥 무섭소. 그런데 호흐마이스터는 그 공포를 더 깊이 알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오. 그래서 더 무섭고, 그래서 더 앞에 서야 하는 사람처럼 보이지.”
리보니아 신참 기사는 그 말을 듣고 있다가 자기 잔을 내려놓았다.
“우리 단장님은 조금 다릅니다.”
“아스트리트 단장?”
“예.”
신참 기사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처음 오셨을 때, 모두 들었습니다. ‘네? 저보고 이제 이곳의 기사단장을 하라고요? 아니 잠깐, 편지랑 내용이 다르잖아요!?’라고.”
킬리키아 상인이 웃음을 참지 못했다.
“정말 그렇게 말했나?”
“정말입니다.”
신참 기사는 진지했다.
“그 순간 우리는 생각했습니다. 아, 이분도 속아서 오셨구나.”
여관 안이 웃음으로 흔들렸다.
신참 기사도 결국 웃었다.
“하지만 전보다 낫습니다.”
그 말은 짧았지만, 웃음 뒤에 남았다.
“이전 기사단은 성전이라는 말을 너무 쉽게 썼습니다. 검을 들면 다 신앙이 되는 줄 알았지요. 그런데 아스트리트 단장님은 매번 묻습니다. 이 검이 생명을 긍정하는가. 이 명령이 살아 있는 것을 지키는가. 이 싸움이 정말 필요한가.”
“기사단장에게는 귀찮은 질문이군.”
죠니가 없었지만, 누군가 그처럼 말했을 법했다.
신참 기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귀찮습니다. 그래서 필요합니다.”
그는 잔을 들었다.
“편지에 속아 오신 분이지만, 적어도 지금은 우리를 속이지 않습니다.”
---
그날 밤, 여관의 불은 늦게까지 꺼지지 않았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 나라의 군주를 말했다.
이상한 군주.
무서운 군주.
웃지 않는 군주.
부족해서 가까운 군주.
너무 높은 곳에 있어서 믿기 어려운 군주.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지막에는 각자 같은 말을 조금씩 다르게 했다.
“그래도 우리 여왕님이 제일 낫지.”
킬리키아 상인이 말했다.
“우리 폐하가 없었으면 성벽도 없었소.”
헝가리 석공이 말했다.
“우리 황제들은…… 복잡하지만, 그래도 로마는 아직 서 있지.”
니케아 병사가 말했다.
“아레 님은 이름을 잊지 않으셔.”
세르비아 여인이 말했다.
“민다우가스 대공은 무섭지만, 우리 숲의 무서움이오.”
리투아니아 사냥꾼이 말했다.
“알렉산드리나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소. 그래서 누군가는 그 새벽을 보고 싶어 하오.”
불가리아 순례자가 말했다.
“알토 님은 기록하지 않는 법도 아십니다.”
폴란드 필경사가 말했다.
“호흐마이스터는 앞에 서고, 아스트리트 단장님은 묻습니다. 둘 다 우리에게 필요하겠지요.”
마부와 신참 기사가 말했다.
그러자 다들 서로를 보았다.
한순간, 각자의 말이 서로 충돌할 뻔했다.
우리 군주가 더 낫다.
우리 왕국이 더 오래 버텼다.
우리 황제가 더 정통이다.
우리 상처가 더 깊다.
우리 성좌가 더 옳다.
그런 말들이 목까지 올라왔을 때, 여관 주인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모두 좋은 군주를 만나신 모양입니다.”
말은 부드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 한마디에 누구도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여관 주인은 다시 미소 지었다.
“길 위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실 수 있다는 건, 아직 돌아갈 곳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장작이 다시 타올랐다.
사람들은 자기 잔을 보았다.
누군가는 술을 마셨고, 누군가는 차를 마셨고, 누군가는 식은 스튜를 다시 떠먹었다.
그날 밤, 누구도 자기 군주가 완벽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완벽한 왕관 같은 것은 없었다.
왕관은 멀리서 보면 금으로 보인다.
가까이서 보면 흠집이 있다.
피가 묻어 있고, 먼지가 끼어 있고, 때로는 술자국도 남아 있다.
어떤 왕관은 너무 무겁고, 어떤 왕관은 아직 헐겁고, 어떤 왕관은 쓰는 이의 이마를 다치게 한다.
하지만 거리의 사람들은 왕관을 궁정의 말로만 부르지 않는다.
그들은 조금 다르게 부른다.
우리를 웃게 한 사람.
우리를 덜 아프게 한 사람.
우리 이름을 잊지 않은 사람.
성을 세워준 사람.
내일도 로마라고 말해준 사람.
숲의 밤에 우리 편으로 떨어진 별.
질문을 던져 검을 멈추게 한 사람.
무서워도 앞에 서는 사람.
그리고 아주 가끔은,
“그래도 우리 군주님.”
이라고 부른다.
여관 주인은 마지막 잔을 닦고, 문가에 놓인 젖은 망토들을 보았다.
밤은 깊었고, 길은 아직 멀었다.
하지만 그날 여관 안에서만큼은, 여러 나라의 왕관들이 사람들의 입속에서 잠시 내려와 앉아 있었다.
금도 아니고, 보석도 아니고, 칙령도 아닌 모습으로.
조금 이상하고, 조금 무겁고, 조금 웃기고, 조금 슬픈.
사람들이 살아가며 부르는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