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38여관◆zAR16hM8he(83c9c67c)2026-05-15 (금) 13:39:49
《왕관들의 신곡》

2장. 왕관이 먹어치운 것들이 말하는 문

검은 문 안쪽은 하나의 공간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옥이라기보다, 여러 왕관의 그림자가 서로 겹친 거대한 극장이었다.

한쪽에는 숲이 있었다.
나무마다 베인 흔적이 있었고, 그루터기마다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다른 한쪽에는 성벽이 있었다.
쌓아 올리면 무너지고, 무너지면 다시 쌓아야 하는 성벽.

그 너머에는 자주빛 홀이 있었다.
천장에서 칙령들이 눈처럼 떨어졌고, 바닥에 닿은 종이는 피를 머금었다.

더 깊은 곳에는 거울의 궁정, 죄악의 갑주가 걸린 성채, 흰 꽃이 가득한 가시밭, 끝난 전장의 문, 황혼의 포도밭이 이어져 있었다.

푸리나는 문턱을 넘자마자 숨을 삼켰다.

“이거…… 내가 만든 무대보다 훨씬 커.”

죠니가 곁에서 낮게 말했다.

“네가 대형극 하자고 했잖아.”

“그래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

“항상 그렇지.”

푸리나는 조금 억울하게 그를 보았다.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큰 걸 열면, 네가 생각한 것보다 커져.”

그레이는 이미 장부를 들고 있었지만, 아무것도 적지 않았다.

지옥의 첫 규칙.

타인의 지옥을 평가하지 말 것.

그레이는 그 문구를 스스로에게도 적용하고 있었다.

여관의 성좌는 모두보다 조금 뒤에 걸었다.

그의 손에는 작은 등불이 있었다.

그 등불은 지옥을 몰아내지 않았다.

다만 발밑을 비추었다.

“부디 기억하십시오.”

여관의 성좌가 말했다.

“이곳은 벌을 받는 장소가 아닙니다. 하지만 부정하는 이에게는 벌보다 무겁습니다.”

민다우가스가 웃었다.

“하하. 왕에게 가장 무거운 것은 패배가 아니라 인정일 때가 있지.”

아스테르다스가 그를 보았다.

“대공, 벌써 웃음이 조금 낮아졌어.”

“그래?”

“응.”

민다우가스는 숲 쪽을 보았다.

“그럼 저 숲은 나를 제대로 부르고 있는 모양이군.”


---

복수의 숲

리투아니아의 숲은 살아 있었다.

아니, 살아 있기 때문에 더 끔찍했다.

나무들은 뿌리내리고 있었지만, 줄기마다 베인 흔적이 있었다.
어떤 나무는 반쯤 잘렸고, 어떤 나무는 불에 그슬렸다.
그리고 그 모든 상처 위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적의 이름.

배신자의 이름.

동맹이었으나 버려진 자의 이름.

협상에 쓰인 인질의 이름.

복수의 이유가 된 이름.

그리고 복수를 위해 다시 소모된 이름.

민다우가스는 도끼를 들고 있었다.

그 도끼는 언제 그의 손에 들어왔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너무 자연스러워서, 처음부터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숲이 말했다.

목소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잎사귀가 떨리는 소리, 나무껍질이 갈라지는 소리, 장작이 타는 소리, 멀리서 늑대가 낮게 우는 소리가 겹쳐져 말이 되었다.

> 네가 살아남기 위해 벤 것은 모두 적이었는가?



민다우가스는 웃었다.

“좋은 질문이군. 하지만 왕이 살아남으려면, 적이 아닌 것도 적의 길목에서 치워야 할 때가 있다.”

> 그러면 치워진 자들은 무엇인가?



“비용이다.”

말은 차가웠다.

그러나 민다우가스의 웃음은 더 차가웠다.

그는 자기 말을 스스로도 계산하고 있었다.

“국가라는 짐승은 먹지 않으면 죽는다. 죽지 않으려면, 먹어야 한다. 나는 그 사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숲이 다시 물었다.

> 먹은 것을 이름 없이 삼키는 자는 왕인가, 짐승인가?



민다우가스의 손이 도끼 자루를 세게 쥐었다.

아스테르다스가 그 옆에 섰다.

그는 별빛처럼 푸른 검은 기운을 두르고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푸른 검은 유성.

떨어지는 별.

민다우가스의 망치.

그가 낮게 말했다.

“대공.”

“말해라.”

“이 숲을 다 장작으로 만들면, 야영지는 하루밖에 못 버텨.”

민다우가스는 아스테르다스를 보지 않고 말했다.

“너는 요즘 그 말을 자주 하는군.”

“필요해서.”

“그레이에게 배웠나?”

“조금.”

그 말에 민다우가스는 작게 웃었다.

하지만 곧 다시 숲을 보았다.

그의 앞에 길이 열렸다.

그 길 양옆의 나무들은 베어야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빽빽했다.

민다우가스는 도끼를 들었다.

그리고 첫 번째 나무를 베었다.

나무가 쓰러졌다.

그루터기에는 적의 이름이 있었다.

그는 두 번째 나무 앞에 섰다.

거기에는 배신자의 이름이 있었다.

그것도 베었다.

세 번째 나무.

그루터기에는 이름이 없었다.

아니, 지워져 있었다.

이름 없는 자.

숲은 조용했다.

민다우가스는 도끼를 들었다.

그러나 휘두르지 않았다.

아스테르다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민다우가스는 나무껍질 위의 지워진 흔적을 보았다.

“이건 누구냐.”

숲이 대답했다.

> 네가 비용이라 부른 자.



민다우가스는 웃지 않았다.

도끼는 여전히 손에 있었다.

왕은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나무를 베지 않고 옆으로 비켜섰다.

아스테르다스가 작게 숨을 내쉬었다.

민다우가스는 낮게 말했다.

“전술적으로는 비효율적이다.”

아스테르다스가 답했다.

“그래도 길은 있어.”

“좁다.”

“그래도 있어.”

민다우가스는 도끼를 어깨에 걸쳤다.

“좋다. 오늘은 좁은 길을 쓰지.”

숲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러나 베지 않은 나무 하나가, 그들의 등 뒤에서 조용히 남았다.

레이튼은 멀리서 그 장면을 보고 중얼거렸다.

“때때로 답은 베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길에 있지요.”

죠니는 그 말을 듣고 작게 말했다.

“멀리 돌아가는 길 말이지.”

푸리나는 죠니를 보았다.

죠니는 더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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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성벽

다음으로 성벽이 무너졌다.

돌이 떨어지고, 먼지가 피어올랐다.

성벽 아래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안쪽에도 있었고, 바깥쪽에도 있었다.

안쪽 사람들은 문을 닫아달라고 외쳤다.
바깥쪽 사람들은 문을 열어달라고 외쳤다.

불길이 멀리서 다가오고 있었다.

말발굽 소리.

비명.

얼어붙은 겨울의 바람.

벨라 4세는 성벽 위에 서 있었다.

그녀는 왕관을 쓰고 있지 않았다.

대신 손에 돌 하나를 들고 있었다.

성벽은 묻고 있었다.

> 너는 누구를 안에 두었는가?
너는 누구를 밖에 남겼는가?



벨라는 짧게 답했다.

“둘 다 기억한다.”

> 기억한다고 해서 문이 열리는가?



“아니다.”

> 기억한다고 해서 죽은 자가 돌아오는가?



“아니다.”

> 그러면 왜 기억하는가?



벨라는 돌을 들어 무너진 틈에 끼워 넣었다.

“다시 세우기 위해서다.”

성벽은 다시 흔들렸다.

벨라는 떨어지는 돌을 받았다.

손바닥이 찢어졌다.

소피아가 아래에서 외쳤다.

“어머니!”

벨라는 돌아보지 않았다.

“올라오지 마라.”

소피아는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돌을 하나 들었다.

무거웠다.

그러나 들었다.

“저도 하겠습니다.”

벨라는 딸을 보았다.

“무겁다.”

“알아요.”

“손이 다친다.”

“알아요.”

벨라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러면 두 손으로 들어라.”

소피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무너진 틈에 돌을 놓았다.

하나.

둘.

셋.

성벽은 완전히 복구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이곳은 지옥이었다.

무너진 것을 끝없이 보여주는 장소.

그러나 이상하게도, 두 사람이 놓은 돌은 다시 떨어지지 않았다.

성벽은 다시 물었다.

> 문을 닫아 지킨 자와, 문 밖에 남긴 자 중 누구를 기억할 것인가?



벨라는 대답했다.

“둘 다.”

> 둘 다 기억하면, 왕은 어떻게 서 있는가?



소피아가 벨라를 보았다.

벨라는 짧게 말했다.

“무너지면 다시 세운다.”

그녀는 찢어진 손으로 새 돌을 들었다.

“그리고 무너진 이름을 기록한다.”

그레이는 그 말을 듣고 장부를 조금 더 세게 쥐었다.

장부는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기록하지 않았다.

타인의 지옥을 평가하지 말 것.

대신 그녀는 마음속으로만 문장을 남겼다.

무너진 이름을 기록한다.

벨라는 성벽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혼자 서 있지 않았다.

소피아가 그 옆에 있었다.


---

자주빛 칙령의 홀

세 번째 공간은 조용했다.

그래서 더 무서웠다.

자주빛 홀.

높은 천장.
차가운 대리석.
황제의 깃발.
그리고 끝없이 떨어지는 칙령들.

칙령들은 처음에는 흰 종이였다.

그러나 바닥에 닿는 순간 붉어졌다.

피가 종이 결을 타고 번졌다.

미하일라는 홀 중앙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활이 있었다.

그 활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천궁.

궁제의 활.

전쟁의 원인과 핵심을 꿰뚫어, 전쟁 그 자체를 끝내려는 황제의 무.

그녀의 《성추여명식》은 밤하늘의 법을 끌어내렸다.

자주빛 혈통은 황제의 명령으로 이어졌고, 《천명》은 그녀의 화살에 전쟁 종결의 이유를 부여했다.

하지만 이 홀에서, 그 모든 것은 무겁게 돌아왔다.

홀의 목소리가 물었다.

> 평화를 위해 쏜 화살은, 누구의 피를 지나갔는가?



미하일라는 대답했다.

“짐이 쏜 것이다.”

칙령 하나가 떨어졌다.

그 위에는 전투 명령이 적혀 있었다.

바닥에 닿자 피가 번졌다.

“그러니 짐이 짊어진다.”

> 끝내기 위해 시작한 전쟁은, 전쟁이 아닌가?



“전쟁이다.”

> 평화를 위한 피는, 피가 아닌가?



“피다.”

> 그럼 그대는 평화의 황제인가, 전쟁의 황제인가?



미하일라는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없었다.

그럼에도 활은 당겨졌다.

“둘 다다.”

그 대답은 회피가 아니었다.

그래서 홀이 잠시 조용해졌다.

요안나는 그 곁에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백색의 서책이 있었다.

그녀의 이상.

Εἰρήνη πᾶσιν. 모든 이에게 평화를.

요안나의 힘은 칼이 아니라 대의였다.

지지 티켓.

로마 시민의 마음.

낮은 곳에 임하는 자주빛.

사람들이 그녀의 평화를 믿을 때, 그 믿음이 정치적 힘이 되고 기적의 형태를 얻는다.

그러나 이 지옥에서는 그 힘조차 시험받았다.

홀 바닥에 수많은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들은 요안나를 향해 말했다.

> 모두에게 평화를?
네가 궁 안에 갇혀 있을 때, 모두는 어디 있었는가?
네 평화는 네가 지키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닿는가?
네 이름을 내세운 이들은 피 흘리지 않았는가?



요안나의 손이 떨렸다.

미하일라는 그것을 보았다.

그러나 손을 뻗지 않았다.

뻗을 권리가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요안나는 서책을 품에 안았다.

“그래도 말하겠습니다.”

그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홀 안에 퍼졌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그림자들이 웃었다.

> 어린 이상.
닫힌 방의 황제.
백색 보좌의 인형.



요안나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 아주 작은 빛들이 그녀 주위에 떠올랐다.

지지 티켓.

누군가의 믿음.

어부의 손.
거리 아이의 웃음.
병사의 피곤한 눈.
빵을 받던 사람의 고개 끄덕임.
“외국인”이 아니라 아직 손을 잡지 못한 미래의 로마 시민들.

그 빛들은 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라지지 않았다.

요안나는 말했다.

“어린 이상이라면, 자라게 하겠습니다.”

그림자들은 다시 물었다.

> 네 평화는 너를 가둔 황제에게도 닿는가?



홀은 조용해졌다.

이제 질문은 요안나와 미하일라 사이에 놓였다.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미하일라는 요안나를 보았다.

요안나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닿아야 합니다.”

미하일라의 손가락이 활시위 위에서 멈췄다.

요안나는 그녀를 보았다.

“하지만 닿는다는 말이, 잊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 말은 칼처럼 정확했다.

미하일라는 낮게 말했다.

“그대가 잊지 않는 것은 정당합니다.”

요안나는 물었다.

“폐하께서는 기억하십니까?”

미하일라는 활을 내리지 않았다.

“짐은 잊을 수 없습니다.”

“죄책감으로요?”

“아닙니다.”

미하일라는 자주빛 홀을 보았다.

칙령이 계속 떨어지고 있었다.

“황제의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요안나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미하일라는 이어 말했다.

“짐은 그날의 피를 사적인 후회로만 축소하지 않겠습니다. 그건 짐의 죄이자, 짐의 정치였고, 짐의 왕위였습니다.”

그녀는 요안나를 보았다.

“그러니 그대가 짐을 용서하지 않아도, 짐은 그 사실을 황제의 기록에서 지우지 않습니다.”

요안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래.

정말 오래.

그리고 낮게 말했다.

“그럼 저는 그 기록 위에서, 다른 문장을 쓰겠습니다.”

그녀의 백색 서책이 열렸다.

빛들이 모였다.

로마 시민과 원로원의 권고.

마지막 라스카리스의 이름.

부활하는 로마의 문장.

그녀는 칙령 위에 새 문장을 덧썼다.

> 피 위에도 시민은 선다.
피를 지우지 않고도, 다음 법을 쓴다.
평화는 무죄의 땅에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홀의 그림자들이 흔들렸다.

미하일라는 활을 들었다.

“요안나 폐하.”

요안나는 고개를 들었다.

미하일라는 공식적으로 말했다.

“그 문장은 위험합니다.”

요안나도 공식적으로 답했다.

“미하일라 폐하, 위험하지 않은 평화는 이미 죽은 평화입니다.”

두 공동황제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그것은 화해가 아니었다.

서로의 손을 잡는 장면도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두 문장이 같은 홀에 남았다.

미하일라의 화살은 전쟁을 끝내기 위해 원인을 꿰뚫는다.

요안나의 문장은 피 위에 시민의 대의를 세운다.

둘은 서로를 지우지 않았다.

미하일라가 활시위를 놓았다.

보이지 않는 화살이 날아갔다.

그 화살은 칙령들을 꿰뚫었다.

피 묻은 종이들이 찢겨 사라지지는 않았다.

대신 천장에서 떨어지던 칙령의 비가 멈췄다.

요안나의 서책에서 작은 빛들이 올라와, 찢기지 않은 종이들을 조용히 접었다.

기록으로.

판결이 아니라, 보류된 기록으로.

슈샤니크는 그 광경을 보며 눈을 내리깔았다.

그녀의 《까마귀의 연대기》가 반응하듯, 검은 기록의 깃털이 아주 잠깐 주변에 떠올랐다.

피를 지우지 않는 기록.

그러나 피만으로 나라를 쓰지 않으려는 기록.

게오르기아는 조용히 말했다.

“수업은 계속되겠군요.”

미하일라는 활을 내렸다.

요안나는 서책을 닫았다.

둘 사이의 거리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하지만 자주빛 홀의 문은 열렸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고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죠니가 말했다.

“좋은 장면이었네.”

푸리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응.”

“근데 아직 지옥 초반이야.”

“알아.”

그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현재까지 즉흥 지옥 추가 없음.”

푸리나는 그레이를 보았다.

“그걸 지금 확인해?”

“필요합니다.”

죠니가 낮게 웃었다.

지옥의 첫 풍경들이 뒤로 물러났다.

숲은 아직 남아 있었다.
성벽도 아직 무너진 채였다.
자주빛 홀의 바닥에는 피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길은 열렸다.

그들은 죄를 버리지 않았다.

그저 보았다.

그리고 보았기 때문에, 다음 풍경으로 걸어갈 수 있었다.

검은 문 안쪽 깊은 곳에서 거울들이 빛났다.

새벽빛 하나 없는 궁정.

그곳에서 수많은 알렉산드리나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 가짜.
흉내.
부족한 피.
빌린 왕관.



알렉산드리나 아센은 그 소리를 들었다.

그녀는 아주 조용히 웃었다.

“이제 제 차례군요.”

가브리엘라는 그녀 곁에 섰다.

“전하께서 걸어오신 길이 있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오늘도 걸어야겠지요.”

거울의 궁정이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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