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39여관◆zAR16hM8he(ad220dd6)2026-05-15 (금) 20:34:24
《왕관들의 신곡》
3장. 거울과 갑주와 꽃의 지옥
거울의 궁정은 새벽이 없는 곳이었다.
천장은 높았다.
바닥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기둥마다 금이 입혀져 있었고, 벽마다 불가리아의 옛 영광을 흉내 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거울이었다.
왕좌도 거울.
기둥도 거울.
계단도 거울.
심지어 먼 곳에서 흔들리는 깃발조차, 실제 천이 아니라 반사된 빛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알렉산드리나 아센은 그 중앙에 섰다.
그녀가 한 걸음을 내딛자, 수백 명의 알렉산드리나가 동시에 움직였다.
그러나 거울 속의 그녀들은 모두 조금씩 달랐다.
한 명은 왕관이 없었다.
한 명은 왕관이 너무 커서 목이 꺾여 있었다.
한 명은 궁정복이 아니라 병사의 낡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한 명은 시메온 대제의 옷을 걸쳤지만, 얼굴은 텅 비어 있었다.
한 명은 왕좌 앞에서 무릎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두가 말했다.
> 가짜.
알렉산드리나는 멈추지 않았다.
> 흉내.
그녀는 한 걸음 더 걸었다.
> 부족한 피.
또 한 걸음.
> 빌린 왕관.
또 한 걸음.
> 새벽을 말하는 밤.
그녀의 손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가브리엘라 둘로스크룸은 그 옆에 섰다.
새벽의 주교.
그녀는 알렉산드리나보다 한 걸음 뒤에 있었다.
앞서지 않았다.
대신 넘어질 때 붙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걸었다.
“전하.”
알렉산드리나는 웃었다.
“괜찮습니다.”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거울들이 속삭였다.
> 괜찮은 척.
왕다운 척.
시메온 대제의 흉내.
결핍을 모르는 척.
모두에게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척.
알렉산드리나는 왕좌 앞에 도착했다.
왕좌는 비어 있었다.
거울로 만든 왕좌였다.
앉으면 자신만 보일 것 같은 왕좌.
그 앞에는 황금빛 글자가 떠올랐다.
왕의 피가 부족한 자가 왕의 길을 걸으면, 그것은 왕인가?
푸리나는 멀리서 그 글자를 보며 숨을 삼켰다.
스토얀카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잔인하네.”
레플리카는 낮게 말했다.
“좋은 질문일 수 있습니다.”
스토얀카가 그녀를 보았다.
“너도 꽤 아프게 말하네.”
“아프게 하려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아파.”
레플리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나는 거울 왕좌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미 들었던 질문입니다.”
거울들이 웃었다.
> 그러면 답도 이미 준비했겠지.
흉내낸 답.
외운 답.
주교가 가르친 답.
위대한 왕들의 무덤에서 훔쳐 온 답.
알렉산드리나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그녀의 뒤쪽에서 새벽빛이 아주 조금 피어났다.
해가 뜬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지옥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둠이 완전히 자신만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못할 정도의 빛.
알렉산드리나의 특성, 그녀가 자신에게 새긴 길이 반응했다.
결핍을 부정하지 않고, 결핍을 왕도로 삼는 힘.
시메온 대제의 흉내.
그러나 흉내로 끝나지 않기 위한 수행.
그녀는 자신이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위대해질 사람처럼 매일 걷는다.
처음에는 흉내였고, 그다음도 흉내였으며, 수없이 많은 날 동안 흉내였지만, 길은 흉내내는 발밑에도 생긴다.
알렉산드리나는 눈을 떴다.
“예. 저는 흉내냈습니다.”
거울들이 멈췄다.
그녀는 왕좌에 앉지 않았다.
대신 그 앞에 서서 말했다.
“왕의 말투를 흉내냈고, 왕의 걸음을 흉내냈고, 왕의 식탁과 왕의 침묵과 왕의 분노까지 흉내냈습니다.”
거울 하나가 금 갔다.
“처음부터 진짜였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또 하나.
“피가 충분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또 하나.
“결핍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거울들이 흔들렸다.
알렉산드리나는 가브리엘라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가브리엘라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왕의 혈통을 타고난 것이 왕이 아닙니다.”
알렉산드리나는 받아 말했다.
“왕도를 걷는 이가 왕입니다.”
그 순간, 새벽빛이 조금 더 길어졌다.
거울 속 수많은 알렉산드리나가 동시에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모든 거울이 깨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속삭임은 남았다.
> 그러면 언제 진짜가 되는가?
알렉산드리나는 미소 지었다.
“오늘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푸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저렇게 답한다고?”
죠니는 낮게 말했다.
“꽤 괜찮은 답인데.”
알렉산드리나는 계속했다.
“내일도 아닐지 모릅니다. 왕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녀는 왕좌 옆에 놓인 낡은 깃발을 들었다.
거울이 아닌 천이었다.
그것은 낡고 찢어졌고, 완벽하게 위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였다.
“그러나 저는 멈추지 않습니다.”
새벽빛이 깃발 끝에 맺혔다.
“저를 가짜라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걷겠습니다.
그 질문이 사라지면, 저는 너무 쉽게 왕인 척하게 될 테니까요.”
거울의 궁정이 갈라졌다.
왕좌는 깨지지 않았다.
그녀도 왕좌에 앉지 않았다.
대신 왕좌 뒤쪽에 문이 열렸다.
알렉산드리나는 그 문을 향해 걸었다.
스토얀카가 작게 말했다.
“가짜치고는 멋있네.”
레플리카가 그녀를 보았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오늘은 좋은 뜻이야.”
알렉산드리나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만 받아들이겠습니다.”
가브리엘라는 아주 작게 고개를 숙였다.
거울의 궁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알렉산드리나가 지나갈 만큼의 길을 내주었다.
---
거울의 궁정 다음에는 성채가 있었다.
튜튼의 성채였다.
그러나 동시에 초원의 밤이었다.
돌로 쌓은 벽과 끝없는 풀밭이 서로 겹쳐 있었다.
성채의 첨탑 위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고, 그 뒤편의 하늘에는 황금빛 늑대의 눈이 떠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는 그 풍경을 보자마자 멈췄다.
그녀의 갑주가 무거워졌다.
단순한 철갑이 아니었다.
죄악의 갑주.
Frevel Panzer.
성스러운 이름으로 지은 죄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갑옷처럼 입어 변경을 지키겠다는 맹세.
그 갑주가 지금 안쪽에서 그녀를 누르고 있었다.
라이자는 곁에서 작은 은꽃을 손에 쥐고 있었다.
“괜찮아?”
호흐마이스터는 답했다.
“기능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건 괜찮다는 말이 아니야.”
“현재 전투 지속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도 괜찮다는 말 아니야.”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무겁습니다.”
라이자는 더 말하지 않았다.
성채의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갑주 보관대가 줄지어 있었다.
기사들의 갑주.
성인의 갑주.
용을 밟은 갑주.
이름 없는 형제기사들의 갑주.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비어 있는 보관대 하나가 있었다.
황금빛이 흐르는 보관대.
갑주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너는 누구의 아이인가?
호흐마이스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 질문을 알고 있었다.
너무 오래 알고 있었다.
눈 속에 숨어 있던 황금.
천양금안.
몽골의 위대한 왕이 남긴 마지막 씨앗.
기사단이 거둔 아이.
헤르만 폰 잘차가 가르친 기사.
그리고 언젠가 그 아버지 같은 사람을 자신이 끌어내린 총장.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 너는 누구의 피인가?
호흐마이스터는 말했다.
“동방의 피입니다.”
라이자는 숨을 멈췄다.
호흐마이스터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 그러면 너는 누구의 기사인가?
“내가 사랑하기로 한 땅의 기사입니다.”
성채가 흔들렸다.
초원의 풀들이 바람에 눕고, 첨탑의 십자가가 삐걱였다.
> 그 땅을 지키기 위해 네가 저지른 죄는 누구의 것인가?
호흐마이스터는 한 걸음 나아갔다.
갑주가 더 무거워졌다.
“나의 것입니다.”
> 성스러운 이름으로?
“예.”
> 기사도의 이름으로?
“예.”
> 사랑의 이름으로?
호흐마이스터는 침묵했다.
라이자가 그녀를 보았다.
그 질문이 가장 무거운 질문이었다.
죄를 짓는 이유가 증오라면, 사람은 차라리 단순해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랑 때문에 죄를 짓는 사람은, 자기 사랑이 아직 사랑인지 계속 물어야 한다.
호흐마이스터는 천천히 답했다.
“예.”
갑주가 그녀의 무릎을 꺾으려 했다.
라이자가 손을 뻗었다.
그러나 호흐마이스터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녀는 성 게오르기우스의 그림자를 보았다.
용을 짓밟는 성인.
하지만 그 용은 멀리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초원에서 달려오는 황금 늑대이기도 했고, 자기 눈동자 안의 피이기도 했고, 기사단의 깃발 아래 감춰진 죄이기도 했다.
용을 죽인다는 것은, 단순히 외부의 괴물을 찌르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 안의 피가 용이 될 때, 그것을 밟고도 사람의 편에 서는 일.
호흐마이스터는 투구를 벗지 않았다.
아직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갑주 틈에 꽂힌 작은 은꽃을 빼지도 않았다.
라이자가 예전에 말한 문장이 갑주 사이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무거운 갑주에도 꽃은 꽂힐 수 있어.
성채의 목소리가 웃었다.
> 꽃이 죄를 가볍게 하는가?
호흐마이스터는 답했다.
“아닙니다.”
> 그러면 왜 꽂아두는가?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녀는 은꽃을 손끝으로 눌렀다.
“제가 아직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라이자는 눈을 내리깔았다.
호흐마이스터는 비어 있는 갑주 보관대를 보았다.
언젠가 자기 갑주가 놓일 자리.
아직은 아니었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
“아직 보관하지 않습니다.”
> 왜인가?
“동쪽이 아직 옵니다.”
황금빛 늑대의 눈이 커졌다.
호흐마이스터는 고개를 들었다.
“내 혈육인 저자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는 압니다.”
그녀의 말은 조용했다.
존댓말도, 보고도, 기사단의 절제도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죽은 태양 같은 핵이 있었다.
“그러니 저는 돌아가야 합니다. 죄는 나중에 보관하겠습니다. 지금은 입겠습니다.”
갑주가 다시 몸에 맞았다.
무게는 줄지 않았다.
그러나 호흐마이스터의 무릎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라이자가 작게 말했다.
“은꽃도 같이?”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예.”
라이자는 웃었다.
“좋아.”
그 말에 성채 깊은 곳의 비어 있는 보관대가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그 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기다렸다.
호흐마이스터는 그것을 확인했다.
언젠가 돌아가 놓을 곳.
아직은 걸어가야 할 곳.
그녀는 성채 밖으로 걸었다.
초원의 바람과 성채의 돌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푸리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작게 말했다.
“저 사람도 언젠가 쉬고 싶을까?”
죠니가 대답했다.
“누구든 그렇겠지.”
“호흐마이스터도?”
“갑주가 무거운 사람일수록 더.”
그레이는 아무 말 없이 그 문장을 마음속에 적었다.
공식 기록에는 남기지 않았다.
---
다음 지옥은 꽃밭이었다.
하얀 꽃이 끝없이 피어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처음에는 지옥처럼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눈처럼 날렸고, 줄기들은 얇고 우아했다.
땅은 부드러웠고, 공기는 맑았다.
그러나 꽃에는 모두 가시가 있었다.
작은 가시가 아니었다.
손을 대면 피가 나는 정도도 아니었다.
그 가시는 사람의 손목과 팔, 갈비뼈와 척추를 찾아 찔렀다.
꽃밭 중앙에 스토얀카 아센이 섰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여긴 마음에 드네.”
그 말에 그레이가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
“만지지 마십시오.”
스토얀카는 고개를 돌렸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레플리카가 말했다.
“하려고 했습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맞아.”
알렉산드리나는 팔짱을 끼고 말했다.
“오늘은 지옥 안에서도 예절을 지키십시오.”
“지옥에서까지?”
“특히 지옥에서요.”
스토얀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조금만.”
그녀는 꽃 하나에 손을 뻗었다.
가시가 즉시 올라왔다.
스토얀카는 피하지 않았다.
가시가 손끝을 찔렀다.
피가 흘렀다.
꽃이 피었다.
더 하얗게.
스토얀카는 낮게 웃었다.
“봐. 피잖아.”
꽃밭이 말했다.
> 꽃은 왜 찌르는가?
스토얀카는 바로 답하려 했다.
“피우려고—”
레플리카가 그녀를 불렀다.
“스토얀카.”
목소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검은 하늘이 있었다.
레플리카의 흑진이 아주 얇게 퍼졌다.
비명을 키우지 않는 검은 먼지.
고통을 숭배하지 않고, 고통이 사람을 찢기 전에 그 모서리를 깎아내는 성법.
스토얀카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대답을 삼켰다.
레플리카는 말했다.
“그 답은 너무 쉽습니다.”
스토얀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는 늘 재미없는 답을 좋아해.”
“필요한 답을 좋아합니다.”
꽃밭이 다시 물었다.
> 꽃은 왜 찌르는가?
스토얀카는 꽃밭을 보았다.
그녀의 손은 피로 젖어 있었다.
그 순간, 꽃밭 저편에서 손들이 나타났다.
꽃을 꺾으러 온 손.
꽃을 소유하려는 손.
뿌리째 뽑으려는 손.
짓밟으려는 손.
그 손들을 찌르는 가시는 자연스러웠다.
스토얀카는 미소 지었다.
“저 손들은 찔러야지.”
그러나 곧 다른 손들이 나타났다.
물을 주러 온 손.
상처 입은 줄기를 묶어주려는 손.
흙을 덮어주는 손.
길 잃은 아이가 꽃을 보려 내민 손.
그 손들마저 가시가 찔렀다.
피가 흘렀다.
꽃은 더 하얗게 피었다.
스토얀카의 웃음이 조금 얇아졌다.
레플리카가 말했다.
“물 주러 온 손까지 찌르면, 꽃은 자기 목마름으로 죽습니다.”
스토얀카는 레플리카를 보았다.
“네가 그 말 좋아하는 거 알아.”
“좋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럼?”
“당신이 들어야 해서 하는 말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조용히 덧붙였다.
“강한 꽃이 되는 것과, 모든 손을 적으로 보는 것은 다릅니다.”
스토얀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오늘은 둘이 번갈아 찌르네.”
레플리카는 대답했다.
“아프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래. 그래서 더 아프다고 했잖아.”
스토얀카는 다시 꽃을 보았다.
백화문주.
손의 무공.
결을 잡고, 척추를 정의하고, 세계의 중심을 뽑아내는 자.
그녀에게 꽃은 아름다운 폭력이었고, 가시는 수행이었고, 찌름은 증명이었다.
그러나 이 지옥은 그녀가 좋아하는 답을 그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꽃밭이 세 번째로 물었다.
> 꽃은 왜 찌르는가?
스토얀카는 이번에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뻗었다.
가시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찔러야 할 손이 아니었다.
물을 든 손.
그 손을 향해 가시가 달려들었다.
스토얀카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백화소수.
용의 손.
그녀는 가시를 부러뜨리지 않았다.
대신 결을 잡아, 방향을 비틀었다.
가시는 손을 찌르지 않고 옆으로 지나갔다.
꽃은 흔들렸다.
불쾌한 듯 떨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재미없네.”
레플리카가 보았다.
스토얀카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시드는 건 더 재미없지.”
그녀는 피 묻은 손으로 꽃줄기를 세웠다.
“찌를 손은 골라. 다 찌르면, 결국 아무도 물을 안 주러 와.”
꽃밭은 조용해졌다.
흰 꽃들은 여전히 가시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가시가 동시에 솟지는 않았다.
그 변화는 작았다.
그러나 지옥에서 작은 변화는 길이었다.
레플리카는 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충분합니다.”
스토얀카는 피 묻은 손을 털었다.
“칭찬이야?”
“예.”
“너한테 칭찬 들으니까 아직도 이상해.”
알렉산드리나는 말했다.
“익숙해지지는 마십시오. 자주 있는 일은 아닐 겁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꽃밭의 끝에 문이 열렸다.
하얀 꽃잎이 길 위에 떨어졌다.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꽃잎 반출 금지입니다.”
스토얀카는 시선을 피했다.
레플리카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놓고 가십시오.”
“하나만.”
“안 됩니다.”
“지옥 기념품인데.”
알렉산드리나가 말했다.
“내전성 기념품은 금지입니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불가리아는 기념품도 위험하네.”
푸리나는 웃으려다가 참았다.
지옥 안에서도 웃음은 필요했다.
다만 너무 크게 웃지는 않았다.
---
거울과 갑주와 꽃의 지옥을 지나자, 검은 길은 조금 더 깊어졌다.
앞쪽에는 소리가 없었다.
숲은 물었고, 성벽은 무너졌고, 자주빛 홀은 칙령을 쏟아냈고, 거울은 조롱했으며, 갑주는 무게를 물었고, 꽃은 찔렀다.
하지만 다음 공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가장 무거웠다.
아레 마가트로이드는 그 침묵을 가장 먼저 들었다.
그녀는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겠구나.”
타마르 여왕은 황혼빛 눈으로 길 너머를 보았다.
“그리고 아직 이름을 부르지 못한 이들도 있겠지요.”
여관의 성좌는 등불을 조금 낮췄다.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종을 내렸다.
이번 막은 종소리로 열면 안 될 것 같았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다음은 더 조용하겠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길 끝에 문이 있었다.
전장의 문.
그리고 그 옆에는 황혼의 포도밭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 있었다.
문 위에는 글자가 없었다.
그 대신 등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직 켜지지 않은 등불.
아레는 그 등불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이제는 우리가 들어야 할 차례란다.”
3장. 거울과 갑주와 꽃의 지옥
거울의 궁정은 새벽이 없는 곳이었다.
천장은 높았다.
바닥은 지나치게 깨끗했다.
기둥마다 금이 입혀져 있었고, 벽마다 불가리아의 옛 영광을 흉내 낸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거울이었다.
왕좌도 거울.
기둥도 거울.
계단도 거울.
심지어 먼 곳에서 흔들리는 깃발조차, 실제 천이 아니라 반사된 빛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알렉산드리나 아센은 그 중앙에 섰다.
그녀가 한 걸음을 내딛자, 수백 명의 알렉산드리나가 동시에 움직였다.
그러나 거울 속의 그녀들은 모두 조금씩 달랐다.
한 명은 왕관이 없었다.
한 명은 왕관이 너무 커서 목이 꺾여 있었다.
한 명은 궁정복이 아니라 병사의 낡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한 명은 시메온 대제의 옷을 걸쳤지만, 얼굴은 텅 비어 있었다.
한 명은 왕좌 앞에서 무릎 꿇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두가 말했다.
> 가짜.
알렉산드리나는 멈추지 않았다.
> 흉내.
그녀는 한 걸음 더 걸었다.
> 부족한 피.
또 한 걸음.
> 빌린 왕관.
또 한 걸음.
> 새벽을 말하는 밤.
그녀의 손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가브리엘라 둘로스크룸은 그 옆에 섰다.
새벽의 주교.
그녀는 알렉산드리나보다 한 걸음 뒤에 있었다.
앞서지 않았다.
대신 넘어질 때 붙잡을 수 있는 거리에서 걸었다.
“전하.”
알렉산드리나는 웃었다.
“괜찮습니다.”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한 진실도 아니었다.
거울들이 속삭였다.
> 괜찮은 척.
왕다운 척.
시메온 대제의 흉내.
결핍을 모르는 척.
모두에게 길을 보여줄 수 있는 척.
알렉산드리나는 왕좌 앞에 도착했다.
왕좌는 비어 있었다.
거울로 만든 왕좌였다.
앉으면 자신만 보일 것 같은 왕좌.
그 앞에는 황금빛 글자가 떠올랐다.
왕의 피가 부족한 자가 왕의 길을 걸으면, 그것은 왕인가?
푸리나는 멀리서 그 글자를 보며 숨을 삼켰다.
스토얀카는 팔짱을 끼고 있었다.
“잔인하네.”
레플리카는 낮게 말했다.
“좋은 질문일 수 있습니다.”
스토얀카가 그녀를 보았다.
“너도 꽤 아프게 말하네.”
“아프게 하려는 말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아파.”
레플리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나는 거울 왕좌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좋은 질문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이미 들었던 질문입니다.”
거울들이 웃었다.
> 그러면 답도 이미 준비했겠지.
흉내낸 답.
외운 답.
주교가 가르친 답.
위대한 왕들의 무덤에서 훔쳐 온 답.
알렉산드리나는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그녀의 뒤쪽에서 새벽빛이 아주 조금 피어났다.
해가 뜬 것은 아니었다.
이곳은 지옥이었으니까.
그러나 어둠이 완전히 자신만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못할 정도의 빛.
알렉산드리나의 특성, 그녀가 자신에게 새긴 길이 반응했다.
결핍을 부정하지 않고, 결핍을 왕도로 삼는 힘.
시메온 대제의 흉내.
그러나 흉내로 끝나지 않기 위한 수행.
그녀는 자신이 위대하지 않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위대해질 사람처럼 매일 걷는다.
처음에는 흉내였고, 그다음도 흉내였으며, 수없이 많은 날 동안 흉내였지만, 길은 흉내내는 발밑에도 생긴다.
알렉산드리나는 눈을 떴다.
“예. 저는 흉내냈습니다.”
거울들이 멈췄다.
그녀는 왕좌에 앉지 않았다.
대신 그 앞에 서서 말했다.
“왕의 말투를 흉내냈고, 왕의 걸음을 흉내냈고, 왕의 식탁과 왕의 침묵과 왕의 분노까지 흉내냈습니다.”
거울 하나가 금 갔다.
“처음부터 진짜였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또 하나.
“피가 충분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또 하나.
“결핍이 없었다고 말하지 않겠습니다.”
거울들이 흔들렸다.
알렉산드리나는 가브리엘라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가브리엘라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왕의 혈통을 타고난 것이 왕이 아닙니다.”
알렉산드리나는 받아 말했다.
“왕도를 걷는 이가 왕입니다.”
그 순간, 새벽빛이 조금 더 길어졌다.
거울 속 수많은 알렉산드리나가 동시에 한 걸음 물러났다.
그러나 모든 거울이 깨지지는 않았다.
여전히 속삭임은 남았다.
> 그러면 언제 진짜가 되는가?
알렉산드리나는 미소 지었다.
“오늘은 아닐지도 모릅니다.”
푸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저렇게 답한다고?”
죠니는 낮게 말했다.
“꽤 괜찮은 답인데.”
알렉산드리나는 계속했다.
“내일도 아닐지 모릅니다. 왕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녀는 왕좌 옆에 놓인 낡은 깃발을 들었다.
거울이 아닌 천이었다.
그것은 낡고 찢어졌고, 완벽하게 위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였다.
“그러나 저는 멈추지 않습니다.”
새벽빛이 깃발 끝에 맺혔다.
“저를 가짜라 부르는 목소리와 함께 걷겠습니다.
그 질문이 사라지면, 저는 너무 쉽게 왕인 척하게 될 테니까요.”
거울의 궁정이 갈라졌다.
왕좌는 깨지지 않았다.
그녀도 왕좌에 앉지 않았다.
대신 왕좌 뒤쪽에 문이 열렸다.
알렉산드리나는 그 문을 향해 걸었다.
스토얀카가 작게 말했다.
“가짜치고는 멋있네.”
레플리카가 그녀를 보았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오늘은 좋은 뜻이야.”
알렉산드리나는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만 받아들이겠습니다.”
가브리엘라는 아주 작게 고개를 숙였다.
거울의 궁정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알렉산드리나가 지나갈 만큼의 길을 내주었다.
---
거울의 궁정 다음에는 성채가 있었다.
튜튼의 성채였다.
그러나 동시에 초원의 밤이었다.
돌로 쌓은 벽과 끝없는 풀밭이 서로 겹쳐 있었다.
성채의 첨탑 위에는 십자가가 걸려 있었고, 그 뒤편의 하늘에는 황금빛 늑대의 눈이 떠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는 그 풍경을 보자마자 멈췄다.
그녀의 갑주가 무거워졌다.
단순한 철갑이 아니었다.
죄악의 갑주.
Frevel Panzer.
성스러운 이름으로 지은 죄를 숨기지 않고, 오히려 갑옷처럼 입어 변경을 지키겠다는 맹세.
그 갑주가 지금 안쪽에서 그녀를 누르고 있었다.
라이자는 곁에서 작은 은꽃을 손에 쥐고 있었다.
“괜찮아?”
호흐마이스터는 답했다.
“기능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건 괜찮다는 말이 아니야.”
“현재 전투 지속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것도 괜찮다는 말 아니야.”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무겁습니다.”
라이자는 더 말하지 않았다.
성채의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갑주 보관대가 줄지어 있었다.
기사들의 갑주.
성인의 갑주.
용을 밟은 갑주.
이름 없는 형제기사들의 갑주.
그리고 가장 안쪽에는 비어 있는 보관대 하나가 있었다.
황금빛이 흐르는 보관대.
갑주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너는 누구의 아이인가?
호흐마이스터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 질문을 알고 있었다.
너무 오래 알고 있었다.
눈 속에 숨어 있던 황금.
천양금안.
몽골의 위대한 왕이 남긴 마지막 씨앗.
기사단이 거둔 아이.
헤르만 폰 잘차가 가르친 기사.
그리고 언젠가 그 아버지 같은 사람을 자신이 끌어내린 총장.
목소리가 다시 물었다.
> 너는 누구의 피인가?
호흐마이스터는 말했다.
“동방의 피입니다.”
라이자는 숨을 멈췄다.
호흐마이스터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럴 수 없었다.
> 그러면 너는 누구의 기사인가?
“내가 사랑하기로 한 땅의 기사입니다.”
성채가 흔들렸다.
초원의 풀들이 바람에 눕고, 첨탑의 십자가가 삐걱였다.
> 그 땅을 지키기 위해 네가 저지른 죄는 누구의 것인가?
호흐마이스터는 한 걸음 나아갔다.
갑주가 더 무거워졌다.
“나의 것입니다.”
> 성스러운 이름으로?
“예.”
> 기사도의 이름으로?
“예.”
> 사랑의 이름으로?
호흐마이스터는 침묵했다.
라이자가 그녀를 보았다.
그 질문이 가장 무거운 질문이었다.
죄를 짓는 이유가 증오라면, 사람은 차라리 단순해질 수 있다.
하지만 사랑 때문에 죄를 짓는 사람은, 자기 사랑이 아직 사랑인지 계속 물어야 한다.
호흐마이스터는 천천히 답했다.
“예.”
갑주가 그녀의 무릎을 꺾으려 했다.
라이자가 손을 뻗었다.
그러나 호흐마이스터는 쓰러지지 않았다.
그녀는 성 게오르기우스의 그림자를 보았다.
용을 짓밟는 성인.
하지만 그 용은 멀리 있는 괴물이 아니었다.
초원에서 달려오는 황금 늑대이기도 했고, 자기 눈동자 안의 피이기도 했고, 기사단의 깃발 아래 감춰진 죄이기도 했다.
용을 죽인다는 것은, 단순히 외부의 괴물을 찌르는 일이 아니었다.
자기 안의 피가 용이 될 때, 그것을 밟고도 사람의 편에 서는 일.
호흐마이스터는 투구를 벗지 않았다.
아직 그럴 수 없었다.
그러나 갑주 틈에 꽂힌 작은 은꽃을 빼지도 않았다.
라이자가 예전에 말한 문장이 갑주 사이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무거운 갑주에도 꽃은 꽂힐 수 있어.
성채의 목소리가 웃었다.
> 꽃이 죄를 가볍게 하는가?
호흐마이스터는 답했다.
“아닙니다.”
> 그러면 왜 꽂아두는가?
“죄를 가볍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녀는 은꽃을 손끝으로 눌렀다.
“제가 아직 지키려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라이자는 눈을 내리깔았다.
호흐마이스터는 비어 있는 갑주 보관대를 보았다.
언젠가 자기 갑주가 놓일 자리.
아직은 아니었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
“아직 보관하지 않습니다.”
> 왜인가?
“동쪽이 아직 옵니다.”
황금빛 늑대의 눈이 커졌다.
호흐마이스터는 고개를 들었다.
“내 혈육인 저자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나는 압니다.”
그녀의 말은 조용했다.
존댓말도, 보고도, 기사단의 절제도 무너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죽은 태양 같은 핵이 있었다.
“그러니 저는 돌아가야 합니다. 죄는 나중에 보관하겠습니다. 지금은 입겠습니다.”
갑주가 다시 몸에 맞았다.
무게는 줄지 않았다.
그러나 호흐마이스터의 무릎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라이자가 작게 말했다.
“은꽃도 같이?”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예.”
라이자는 웃었다.
“좋아.”
그 말에 성채 깊은 곳의 비어 있는 보관대가 조금 뒤로 물러났다.
그 자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기다렸다.
호흐마이스터는 그것을 확인했다.
언젠가 돌아가 놓을 곳.
아직은 걸어가야 할 곳.
그녀는 성채 밖으로 걸었다.
초원의 바람과 성채의 돌냄새가 뒤섞여 있었다.
푸리나는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작게 말했다.
“저 사람도 언젠가 쉬고 싶을까?”
죠니가 대답했다.
“누구든 그렇겠지.”
“호흐마이스터도?”
“갑주가 무거운 사람일수록 더.”
그레이는 아무 말 없이 그 문장을 마음속에 적었다.
공식 기록에는 남기지 않았다.
---
다음 지옥은 꽃밭이었다.
하얀 꽃이 끝없이 피어 있었다.
너무 아름다워서 처음에는 지옥처럼 보이지 않았다.
바람이 불면 꽃잎이 눈처럼 날렸고, 줄기들은 얇고 우아했다.
땅은 부드러웠고, 공기는 맑았다.
그러나 꽃에는 모두 가시가 있었다.
작은 가시가 아니었다.
손을 대면 피가 나는 정도도 아니었다.
그 가시는 사람의 손목과 팔, 갈비뼈와 척추를 찾아 찔렀다.
꽃밭 중앙에 스토얀카 아센이 섰다.
그녀는 웃고 있었다.
진심으로.
“여긴 마음에 드네.”
그 말에 그레이가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
“만지지 마십시오.”
스토얀카는 고개를 돌렸다.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레플리카가 말했다.
“하려고 했습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맞아.”
알렉산드리나는 팔짱을 끼고 말했다.
“오늘은 지옥 안에서도 예절을 지키십시오.”
“지옥에서까지?”
“특히 지옥에서요.”
스토얀카는 어깨를 으쓱했다.
“좋아. 조금만.”
그녀는 꽃 하나에 손을 뻗었다.
가시가 즉시 올라왔다.
스토얀카는 피하지 않았다.
가시가 손끝을 찔렀다.
피가 흘렀다.
꽃이 피었다.
더 하얗게.
스토얀카는 낮게 웃었다.
“봐. 피잖아.”
꽃밭이 말했다.
> 꽃은 왜 찌르는가?
스토얀카는 바로 답하려 했다.
“피우려고—”
레플리카가 그녀를 불렀다.
“스토얀카.”
목소리는 조용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검은 하늘이 있었다.
레플리카의 흑진이 아주 얇게 퍼졌다.
비명을 키우지 않는 검은 먼지.
고통을 숭배하지 않고, 고통이 사람을 찢기 전에 그 모서리를 깎아내는 성법.
스토얀카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지만, 대답을 삼켰다.
레플리카는 말했다.
“그 답은 너무 쉽습니다.”
스토얀카는 눈을 가늘게 떴다.
“너는 늘 재미없는 답을 좋아해.”
“필요한 답을 좋아합니다.”
꽃밭이 다시 물었다.
> 꽃은 왜 찌르는가?
스토얀카는 꽃밭을 보았다.
그녀의 손은 피로 젖어 있었다.
그 순간, 꽃밭 저편에서 손들이 나타났다.
꽃을 꺾으러 온 손.
꽃을 소유하려는 손.
뿌리째 뽑으려는 손.
짓밟으려는 손.
그 손들을 찌르는 가시는 자연스러웠다.
스토얀카는 미소 지었다.
“저 손들은 찔러야지.”
그러나 곧 다른 손들이 나타났다.
물을 주러 온 손.
상처 입은 줄기를 묶어주려는 손.
흙을 덮어주는 손.
길 잃은 아이가 꽃을 보려 내민 손.
그 손들마저 가시가 찔렀다.
피가 흘렀다.
꽃은 더 하얗게 피었다.
스토얀카의 웃음이 조금 얇아졌다.
레플리카가 말했다.
“물 주러 온 손까지 찌르면, 꽃은 자기 목마름으로 죽습니다.”
스토얀카는 레플리카를 보았다.
“네가 그 말 좋아하는 거 알아.”
“좋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럼?”
“당신이 들어야 해서 하는 말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조용히 덧붙였다.
“강한 꽃이 되는 것과, 모든 손을 적으로 보는 것은 다릅니다.”
스토얀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오늘은 둘이 번갈아 찌르네.”
레플리카는 대답했다.
“아프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그래. 그래서 더 아프다고 했잖아.”
스토얀카는 다시 꽃을 보았다.
백화문주.
손의 무공.
결을 잡고, 척추를 정의하고, 세계의 중심을 뽑아내는 자.
그녀에게 꽃은 아름다운 폭력이었고, 가시는 수행이었고, 찌름은 증명이었다.
그러나 이 지옥은 그녀가 좋아하는 답을 그대로 허락하지 않았다.
꽃밭이 세 번째로 물었다.
> 꽃은 왜 찌르는가?
스토얀카는 이번에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을 뻗었다.
가시가 올라왔다.
이번에는 찔러야 할 손이 아니었다.
물을 든 손.
그 손을 향해 가시가 달려들었다.
스토얀카의 손가락이 움직였다.
백화소수.
용의 손.
그녀는 가시를 부러뜨리지 않았다.
대신 결을 잡아, 방향을 비틀었다.
가시는 손을 찌르지 않고 옆으로 지나갔다.
꽃은 흔들렸다.
불쾌한 듯 떨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재미없네.”
레플리카가 보았다.
스토얀카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시드는 건 더 재미없지.”
그녀는 피 묻은 손으로 꽃줄기를 세웠다.
“찌를 손은 골라. 다 찌르면, 결국 아무도 물을 안 주러 와.”
꽃밭은 조용해졌다.
흰 꽃들은 여전히 가시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가시가 동시에 솟지는 않았다.
그 변화는 작았다.
그러나 지옥에서 작은 변화는 길이었다.
레플리카는 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충분합니다.”
스토얀카는 피 묻은 손을 털었다.
“칭찬이야?”
“예.”
“너한테 칭찬 들으니까 아직도 이상해.”
알렉산드리나는 말했다.
“익숙해지지는 마십시오. 자주 있는 일은 아닐 겁니다.”
스토얀카는 웃었다.
꽃밭의 끝에 문이 열렸다.
하얀 꽃잎이 길 위에 떨어졌다.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꽃잎 반출 금지입니다.”
스토얀카는 시선을 피했다.
레플리카가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놓고 가십시오.”
“하나만.”
“안 됩니다.”
“지옥 기념품인데.”
알렉산드리나가 말했다.
“내전성 기념품은 금지입니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불가리아는 기념품도 위험하네.”
푸리나는 웃으려다가 참았다.
지옥 안에서도 웃음은 필요했다.
다만 너무 크게 웃지는 않았다.
---
거울과 갑주와 꽃의 지옥을 지나자, 검은 길은 조금 더 깊어졌다.
앞쪽에는 소리가 없었다.
숲은 물었고, 성벽은 무너졌고, 자주빛 홀은 칙령을 쏟아냈고, 거울은 조롱했으며, 갑주는 무게를 물었고, 꽃은 찔렀다.
하지만 다음 공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가장 무거웠다.
아레 마가트로이드는 그 침묵을 가장 먼저 들었다.
그녀는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돌아오지 못한 이들이 있겠구나.”
타마르 여왕은 황혼빛 눈으로 길 너머를 보았다.
“그리고 아직 이름을 부르지 못한 이들도 있겠지요.”
여관의 성좌는 등불을 조금 낮췄다.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자연스럽게 종을 내렸다.
이번 막은 종소리로 열면 안 될 것 같았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다음은 더 조용하겠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길 끝에 문이 있었다.
전장의 문.
그리고 그 옆에는 황혼의 포도밭으로 이어지는 좁은 길이 있었다.
문 위에는 글자가 없었다.
그 대신 등불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아직 켜지지 않은 등불.
아레는 그 등불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이제는 우리가 들어야 할 차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