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48여관◆zAR16hM8he(21d4b208)2026-05-19 (화) 17:12:18
2막 — 세이렌의 노래와 귀를 막는 이유
두 번째 바다는 조금 더 깊었다.
처음 출항할 때의 바다는 푸른 천과 은실이 만든 반짝임에 가까웠다. 누구나 그것이 극장 안의 바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키클롭스의 동굴을 지나온 뒤, 바다는 같은 천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푸른색이 짙어졌다.
은빛 물결은 조금 느려졌다.
갈매기 소리는 멀어졌고, 배 옆구리를 두드리는 파도 소리는 더 낮아졌다.
이타카행 임시 극장선 위의 사람들도 조금 조용해졌다.
아스테르다스는 난간에 걸터앉아 있다가, 그레이와 레플리카의 시선을 떠올리고 얌전히 갑판으로 내려왔다. 레이튼은 둥근 수수께끼판의 방향을 살폈고, 하융은 조타수 자리에서 물결 너머의 길을 보았다.
죠니는 배 앞쪽에 서 있었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망토를 한 손으로 여미고, 다른 손으로 난간을 짚었다. 얼굴은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은 첫 섬 이전보다 조금 더 깊어져 있었다.
푸리나는 그 옆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오늘의 그녀답지 않게, 발걸음이 아주 조금 낮았다.
“죠니.”
“응.”
“첫 섬, 괜찮았어?”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무대가 무너진 것도 아니고, 누가 진짜로 다친 것도 아니니까 괜찮았다고 할 수는 있지.”
“그 말투는 안 괜찮았다는 뜻 같은데.”
“여왕님 연극은 가끔 그래. 다친 사람은 없는데, 다들 뭔가 하나씩 맞고 내려와.”
푸리나는 류트 줄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너무 무거웠어?”
죠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배 옆의 바다를 보았다. 푸른 천이 흔들렸고, 그 위로 푸리나의 신술이 만들어낸 희미한 물비늘이 겹쳤다.
“아니. 첫 섬치고는 괜찮았어.”
“정말?”
“응. 다만 다음 섬부터는 여왕님도 조금 조심해. 네가 웃기려고 만든 장면이, 누군가한테는 생각보다 깊게 들어갈 수 있거든.”
푸리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알아.”
“알면 됐어. 모르는 척하면 그레이가 담요 세 장 더 꺼낼 테니까.”
푸리나는 그 말에 조금 웃었다.
“그레이 담요는 강하지.”
“응. 이 배에서 제일 믿을 만한 무기야.”
그레이는 그 말을 멀리서 들은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갑판 구석에 접어둔 담요가 젖지 않았는지 다시 확인했다.
---
그때 하융이 조타륜에 손을 얹었다.
“소리가 들려오오.”
죠니가 고개를 들었다.
“파도 소리 말고?”
“파도보다 가볍고, 바람보다 깊소. 노래요.”
푸리나의 손이 류트 위에서 멈췄다.
아스테르다스가 바로 눈을 빛냈다.
“노래?”
죠니가 그를 보았다.
“네가 그렇게 반응하면 보통 위험한 노래야.”
“그래도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잖아.”
“안 돼.”
“아직 어떤 노래인지도 모르는데?”
“바다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예쁜 노래는 대체로 가까이 가면 배가 부서져.”
아스테르다스는 조금 아쉬운 얼굴로 바다를 보았다.
“그건 너무 경험 많은 말투인데.”
“오디세우스 역할을 맡았으니까, 경험 많은 척이라도 해야지.”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세이렌의 섬이군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두 번째 막.”
그녀는 류트를 천천히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노래하는 게 아니야.”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의외네.”
“나도 세이렌 하고 싶긴 했는데.”
“그건 너무 잘 어울려서 문제야.”
“칭찬?”
“반쯤. 나머지는 경보.”
푸리나는 살짝 웃고, 무대 뒤쪽을 바라보았다.
푸른 장막 너머에서 은빛과 보랏빛 조명이 천천히 올라왔다.
---
세이렌의 섬은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바다 위에 안개가 깔렸다. 안개 뒤로 세 개의 그림자가 보였다.
하나는 밝고 화려한 실루엣이었다.
하나는 은빛 등불을 든 작은 그림자였다.
하나는 기록장처럼 보이는 얇은 판을 들고 있었다.
푸리나가 낮게 말했다.
“오늘의 세이렌은 무대 위에 완전히 오르지 않아. 보이지 않는 쪽이 더 무서울 때도 있으니까.”
죠니는 그녀를 흘끗 보았다.
“오늘은 정말 분위기 읽네.”
“그 말 세 번 이상 하면 진짜 화낼 거야.”
“그럼 두 번 반쯤으로 해둘게.”
첫 번째 노래가 들렸다.
처음에는 맑았다.
봄날 축제에서 들을 법한 음이었다. 파도가 흔들리고, 등불이 물결 위에 떠다니는 듯했다. 세이렌들의 노래는 사람을 붙잡아 끄는 명령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목소리처럼 다가왔다.
> 돌아오라, 이름 불리는 자여.
네 활은 아직 벽에 걸려 있고,
네 잔은 아직 식탁 위에 있다.
돌아오라, 바다를 넘은 자여.
네 이야기를 들을 이들이
아직 잠들지 않았다.
아스테르다스가 난간에 손을 올렸다.
“좋은 노래네.”
죠니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래서 위험한 거야.”
“왜? 나쁜 말은 안 하잖아.”
“사람은 나쁜 말보다 듣고 싶은 말에 더 잘 끌려가.”
아스테르다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레이는 이미 작은 천 뭉치들을 꺼내고 있었다.
푸리나가 물었다.
“귀마개?”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만 억지로 막지는 않겠습니다.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
죠니가 그레이를 보았다.
“좋네. 귀를 막는 것도 이유를 알아야 덜 답답하지.”
그레이는 선원들 앞에 섰다.
“이 노래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을 건드립니다. 듣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항해 중입니다. 배 밖으로 몸을 기울이면 위험합니다.”
그녀는 천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듣고 싶다면,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합니다. 혼자 듣지 마십시오.”
죠니가 작게 말했다.
“그게 핵심이네.”
푸리나가 그를 보았다.
“뭐가?”
“귀를 막는 게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혼자 끌려가지 않으려고 하는 거.”
그레이는 그 말을 듣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
아스테르다스는 천을 받아들고도 망설였다.
“조금만 들으면 안 될까?”
죠니는 그를 정면으로 보았다.
“네가 말하는 ‘조금만’은 보통 한 발짝으로 시작해서, 다음 장면에서는 내가 밧줄 던지고 있더라.”
“그 정도야?”
“너는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추진력이 너무 좋아. 그러니까 이번엔 귀를 막고 있어. 나중에 여왕님한테 안전한 버전으로 다시 불러달라고 하면 되잖아.”
푸리나가 바로 반응했다.
“안전한 세이렌의 노래라니, 그거 괜찮은데?”
죠니가 그녀를 보지 않고 말했다.
“지금 만들지 마.”
“왜?”
“방금 안전하다고 했지, 즉흥으로 만들라고는 안 했어.”
아스테르다스는 결국 귀를 막았다.
“알겠어. 나중에 안전한 버전으로.”
“그래. 살아서 듣자.”
그 말은 가볍게 들렸지만, 가볍지만은 않았다.
레플리카는 객석 쪽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혹에 저항하는 것이 항상 강한 척을 뜻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귀를 막고 옆 사람의 손을 잡는 것이 더 바른 선택이다.”
스토얀카가 그녀를 보았다.
“세이렌에게도 고통교의 해석을 붙이는가?”
“노래가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해석할 필요가 있다.”
스토얀카는 입가를 올렸다.
“그대답군.”
---
하지만 모든 이가 귀를 막지는 않았다.
죠니는 귀마개를 손에 들고 있었지만, 아직 끼지 않았다.
푸리나가 그를 보았다.
“죠니?”
“응.”
“안 막아?”
죠니는 세이렌의 안개를 보았다.
“오디세우스는 들어야 하잖아.”
“묶어줄까?”
“그 말, 네가 하니까 이상하게 연출처럼 들리는데.”
“실제로 연출이기도 해.”
죠니는 피식 웃었다.
“그럼 난간에 묶어. 너무 멋있게 묶지는 말고.”
푸리나는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부드러운 밧줄을 가져왔다. 무대용 밧줄이었지만, 손목이 쓸리지 않도록 천을 덧댄 것이었다.
죠니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역시 그레이답네. 묶는 것도 덜 아프게 묶어.”
그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아프게 묶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 오늘 계속 기억하게 될 것 같아.”
그레이는 죠니의 손목을 난간에 고정했다.
너무 단단하지 않게.
그러나 풀리지 않게.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괜찮아?”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여왕님, 내가 괜찮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 수는 있어. 그래도 지금은 해야 하는 장면이잖아.”
“연극이니까 안 해도 돼.”
죠니는 잠시 웃었다.
“연극이라서 하는 거지. 현실이면 안 듣고 도망쳤어.”
푸리나는 말문이 막혔다.
죠니는 이어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바다로 뛰어들려고 하면 아스테르다스가 너무 신나서 먼저 뛰려고 할 테니까, 네가 둘 다 말리면 돼.”
아스테르다스가 귀를 막은 채 멀리서 말했다.
“나 들었어!”
죠니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귀마개 제대로 안 꼈네.”
그레이가 바로 다가가 귀마개 위치를 고쳐주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
두 번째 노래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낮았다.
처음에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안에 조금씩 다른 것이 섞였다.
> 돌아오라, 이름 불리는 자여.
그러나 네 집은 예전과 같을까.
네가 두고 간 불은 아직 타오를까.
네가 앉던 자리는
다른 이의 침묵이 되었을까.
돌아오라, 바다를 넘은 자여.
하지만 네 뒤에 남은 자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불릴까.
죠니의 손가락이 난간을 붙잡았다.
그의 얼굴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푸리나는 보았다.
그가 잠시 눈을 감았다는 것을.
그레이는 밧줄 매듭을 확인하려다 멈췄다.
레이튼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하융은 조타수 자리에서 낮게 말했다.
“저 노래는 목적지를 부르는 것이 아니오. 뒤에 남긴 그림자를 부르는 것이오.”
죠니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세이렌의 노래는 그를 찢어내듯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돌아갈 집.
기다리는 사람.
돌아왔을 때 마주해야 할 빈자리.
그리고 자신만 돌아왔다는 사실.
죠니는 낮게 말했다.
“나쁘네.”
푸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래가?”
“응. 너무 예뻐서 더 나빠.”
그의 손목을 묶은 밧줄이 조금 팽팽해졌다.
아스테르다스가 귀마개를 낀 채 그를 보았다.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죠니가 눈짓으로 막았다.
푸리나는 류트를 품에 안았다.
그녀도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쟁심이 들었다. 노래로 사람을 붙잡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너무나도 무대의 힘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곧 알았다.
세이렌의 노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우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을 자신의 상처 속에 홀로 세웠다.
푸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내 무대랑 달라.”
죠니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응. 여왕님 무대는 보통 너무 시끄러워서 사람을 혼자 두진 않지.”
“그거 칭찬이야?”
“꽤 큰 칭찬.”
푸리나는 잠시 숨을 삼켰다.
“그럼 내가 좀 시끄럽게 해도 돼?”
죠니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번엔 허락할게. 너무 세게 말고.”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그녀는 류트를 들었다.
세이렌의 노래 위로 푸리나의 현이 올라갔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다.
세이렌의 노래를 이기려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을 덮어버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다만, 혼자 듣고 있는 사람의 옆에 누군가 앉는 소리였다.
푸리나는 노래했다.
> 바다가 네 이름을 부르거든,
혼자 대답하지 마라.
돌아갈 집이 멀어 보이면,
옆 사람의 숨을 먼저 들어라.
네가 잃은 것이 너를 부르더라도,
네가 아직 붙잡은 손도 있다.
그러니 돌아오라.
노래 속으로가 아니라,
배 위로.
세이렌의 노래가 흔들렸다.
푸리나의 목소리는 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달랐다.
세이렌은 혼자 남은 마음을 불렀고, 푸리나는 그 마음 옆에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아스테르다스가 귀마개를 낀 채도 박자를 느낀 듯 난간을 두드렸다.
그레이는 조용히 다른 선원의 손에 물병을 쥐여주었다.
레이튼은 미소를 지었다.
하융은 조타륜을 조금 돌렸다.
죠니는 밧줄에 묶인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여왕님.”
“응?”
“이번엔 세게 불러도 괜찮았네.”
푸리나는 웃으려다가, 조금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게 무슨 칭찬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쪽에서는 제법 좋은 칭찬이야.”
“그럼 받아둘게.”
---
세이렌의 안개가 조금씩 멀어졌다.
그림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배와의 거리가 벌어졌다.
마지막 노래가 희미하게 들렸다.
> 돌아오라, 이름 불리는 자여.
우리는 네가 잃은 것을 알고 있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아니.”
푸리나가 그를 보았다.
죠니는 난간을 붙잡은 채, 바다 너머를 보았다.
“아는 척하는 거겠지. 잃은 걸 정말 아는 사람은, 그렇게 예쁘게만 부르진 않아.”
그 말은 아주 조용했다.
그레이는 밧줄을 풀었다.
천으로 덧댄 부분 덕분에 죠니의 손목에는 자국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손목을 잠시 살폈다.
“아프십니까?”
죠니는 손목을 돌려보았다.
“괜찮아. 잘 묶었네.”
“풀기 어렵지는 않았습니까?”
“살면서 묶인 것 중에 가장 배려 있는 밧줄이었어.”
그레이는 그 말에 조금 난처해했다.
푸리나는 그걸 듣고 웃었다.
“그레이의 배려 있는 밧줄!”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 표현은 이상합니다.”
죠니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맞는 말이야.”
그레이는 반박하지 못했다.
---
세이렌의 섬을 지난 뒤, 배 위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첫 섬을 지난 뒤의 침묵과는 달랐다.
이번 침묵은 조금 덜 차가웠다.
아스테르다스는 귀마개를 빼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와.”
죠니가 물었다.
“많이 들었어?”
“조금.”
“그 ‘조금’이 진짜 조금이었길 바란다.”
“진짜 조금이었어. 그런데도 이상하더라.”
“뭐가?”
아스테르다스는 바다를 보았다.
“좋은 말만 하는데, 이상하게 발이 앞으로 가려고 했어.”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노래였지.”
아스테르다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죠니는 더 많이 들었잖아. 괜찮아?”
죠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뒤, 아주 낮게 말했다.
“괜찮다고 해두자. 아직 배 위니까.”
아스테르다스는 그 말이 완전한 대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 묻지 않았다.
그레이가 죠니 앞에 따뜻한 물을 놓았다.
“목이 마를 수 있습니다.”
죠니는 잔을 받았다.
“고마워.”
그레이는 이번에도 묻지 않았다.
무엇을 들었는지.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어떤 집을 떠올렸는지.
그녀는 그냥 따뜻한 물을 주었다.
그리고 배의 흔들림이 잦아들 때까지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며 류트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이번 막을 밝은 박수로 끝낼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두 번째 섬을 지났습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세이렌은 우리를 부르려 했고, 우리는 서로의 소리를 붙잡았습니다.”
죠니는 잔을 든 채 말했다.
“좋은 정리네. 오늘은 진짜로.”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고마워.”
하융은 조타륜을 돌렸다.
“바람이 바뀌오.”
레이튼이 물었다.
“다음 길은 보입니까?”
하융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오. 허나 이 배는 방금, 노래 속으로 가라앉지 않았소. 그것만으로도 길 하나는 닫히고, 다른 길 하나는 열렸구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 뒤 간판이 천천히 내려왔다.
3막 — 키르케의 섬과 돌아온 짐승들
아스테르다스가 그 제목을 보고 눈을 깜박였다.
“돌아온 짐승들?”
죠니는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제목부터 벌써 귀찮네.”
푸리나는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보았다.
세이렌의 노래는 멀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는 아직 작게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레이는 담요를 다시 접어두었다.
이번에는 난간 가까이에.
혹시 누군가, 말없이 떨게 될지도 모르니까.
두 번째 바다는 조금 더 깊었다.
처음 출항할 때의 바다는 푸른 천과 은실이 만든 반짝임에 가까웠다. 누구나 그것이 극장 안의 바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키클롭스의 동굴을 지나온 뒤, 바다는 같은 천으로 만들어졌음에도 어딘가 달라져 있었다.
푸른색이 짙어졌다.
은빛 물결은 조금 느려졌다.
갈매기 소리는 멀어졌고, 배 옆구리를 두드리는 파도 소리는 더 낮아졌다.
이타카행 임시 극장선 위의 사람들도 조금 조용해졌다.
아스테르다스는 난간에 걸터앉아 있다가, 그레이와 레플리카의 시선을 떠올리고 얌전히 갑판으로 내려왔다. 레이튼은 둥근 수수께끼판의 방향을 살폈고, 하융은 조타수 자리에서 물결 너머의 길을 보았다.
죠니는 배 앞쪽에 서 있었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망토를 한 손으로 여미고, 다른 손으로 난간을 짚었다. 얼굴은 여전히 크게 변하지 않았다. 그러나 눈은 첫 섬 이전보다 조금 더 깊어져 있었다.
푸리나는 그 옆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오늘의 그녀답지 않게, 발걸음이 아주 조금 낮았다.
“죠니.”
“응.”
“첫 섬, 괜찮았어?”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무대가 무너진 것도 아니고, 누가 진짜로 다친 것도 아니니까 괜찮았다고 할 수는 있지.”
“그 말투는 안 괜찮았다는 뜻 같은데.”
“여왕님 연극은 가끔 그래. 다친 사람은 없는데, 다들 뭔가 하나씩 맞고 내려와.”
푸리나는 류트 줄을 손끝으로 문질렀다.
“너무 무거웠어?”
죠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배 옆의 바다를 보았다. 푸른 천이 흔들렸고, 그 위로 푸리나의 신술이 만들어낸 희미한 물비늘이 겹쳤다.
“아니. 첫 섬치고는 괜찮았어.”
“정말?”
“응. 다만 다음 섬부터는 여왕님도 조금 조심해. 네가 웃기려고 만든 장면이, 누군가한테는 생각보다 깊게 들어갈 수 있거든.”
푸리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알아.”
“알면 됐어. 모르는 척하면 그레이가 담요 세 장 더 꺼낼 테니까.”
푸리나는 그 말에 조금 웃었다.
“그레이 담요는 강하지.”
“응. 이 배에서 제일 믿을 만한 무기야.”
그레이는 그 말을 멀리서 들은 듯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갑판 구석에 접어둔 담요가 젖지 않았는지 다시 확인했다.
---
그때 하융이 조타륜에 손을 얹었다.
“소리가 들려오오.”
죠니가 고개를 들었다.
“파도 소리 말고?”
“파도보다 가볍고, 바람보다 깊소. 노래요.”
푸리나의 손이 류트 위에서 멈췄다.
아스테르다스가 바로 눈을 빛냈다.
“노래?”
죠니가 그를 보았다.
“네가 그렇게 반응하면 보통 위험한 노래야.”
“그래도 한 번쯤은 들어보고 싶잖아.”
“안 돼.”
“아직 어떤 노래인지도 모르는데?”
“바다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예쁜 노래는 대체로 가까이 가면 배가 부서져.”
아스테르다스는 조금 아쉬운 얼굴로 바다를 보았다.
“그건 너무 경험 많은 말투인데.”
“오디세우스 역할을 맡았으니까, 경험 많은 척이라도 해야지.”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세이렌의 섬이군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두 번째 막.”
그녀는 류트를 천천히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노래하는 게 아니야.”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의외네.”
“나도 세이렌 하고 싶긴 했는데.”
“그건 너무 잘 어울려서 문제야.”
“칭찬?”
“반쯤. 나머지는 경보.”
푸리나는 살짝 웃고, 무대 뒤쪽을 바라보았다.
푸른 장막 너머에서 은빛과 보랏빛 조명이 천천히 올라왔다.
---
세이렌의 섬은 직접 나타나지 않았다.
대신 바다 위에 안개가 깔렸다. 안개 뒤로 세 개의 그림자가 보였다.
하나는 밝고 화려한 실루엣이었다.
하나는 은빛 등불을 든 작은 그림자였다.
하나는 기록장처럼 보이는 얇은 판을 들고 있었다.
푸리나가 낮게 말했다.
“오늘의 세이렌은 무대 위에 완전히 오르지 않아. 보이지 않는 쪽이 더 무서울 때도 있으니까.”
죠니는 그녀를 흘끗 보았다.
“오늘은 정말 분위기 읽네.”
“그 말 세 번 이상 하면 진짜 화낼 거야.”
“그럼 두 번 반쯤으로 해둘게.”
첫 번째 노래가 들렸다.
처음에는 맑았다.
봄날 축제에서 들을 법한 음이었다. 파도가 흔들리고, 등불이 물결 위에 떠다니는 듯했다. 세이렌들의 노래는 사람을 붙잡아 끄는 명령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목소리처럼 다가왔다.
> 돌아오라, 이름 불리는 자여.
네 활은 아직 벽에 걸려 있고,
네 잔은 아직 식탁 위에 있다.
돌아오라, 바다를 넘은 자여.
네 이야기를 들을 이들이
아직 잠들지 않았다.
아스테르다스가 난간에 손을 올렸다.
“좋은 노래네.”
죠니가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래서 위험한 거야.”
“왜? 나쁜 말은 안 하잖아.”
“사람은 나쁜 말보다 듣고 싶은 말에 더 잘 끌려가.”
아스테르다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레이는 이미 작은 천 뭉치들을 꺼내고 있었다.
푸리나가 물었다.
“귀마개?”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다만 억지로 막지는 않겠습니다.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
죠니가 그레이를 보았다.
“좋네. 귀를 막는 것도 이유를 알아야 덜 답답하지.”
그레이는 선원들 앞에 섰다.
“이 노래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을 건드립니다. 듣는 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항해 중입니다. 배 밖으로 몸을 기울이면 위험합니다.”
그녀는 천을 하나씩 나누어주었다.
“듣고 싶다면, 누군가 옆에 있어야 합니다. 혼자 듣지 마십시오.”
죠니가 작게 말했다.
“그게 핵심이네.”
푸리나가 그를 보았다.
“뭐가?”
“귀를 막는 게 겁쟁이라서가 아니라, 혼자 끌려가지 않으려고 하는 거.”
그레이는 그 말을 듣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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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테르다스는 천을 받아들고도 망설였다.
“조금만 들으면 안 될까?”
죠니는 그를 정면으로 보았다.
“네가 말하는 ‘조금만’은 보통 한 발짝으로 시작해서, 다음 장면에서는 내가 밧줄 던지고 있더라.”
“그 정도야?”
“너는 좋은 쪽으로도 나쁜 쪽으로도 추진력이 너무 좋아. 그러니까 이번엔 귀를 막고 있어. 나중에 여왕님한테 안전한 버전으로 다시 불러달라고 하면 되잖아.”
푸리나가 바로 반응했다.
“안전한 세이렌의 노래라니, 그거 괜찮은데?”
죠니가 그녀를 보지 않고 말했다.
“지금 만들지 마.”
“왜?”
“방금 안전하다고 했지, 즉흥으로 만들라고는 안 했어.”
아스테르다스는 결국 귀를 막았다.
“알겠어. 나중에 안전한 버전으로.”
“그래. 살아서 듣자.”
그 말은 가볍게 들렸지만, 가볍지만은 않았다.
레플리카는 객석 쪽에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유혹에 저항하는 것이 항상 강한 척을 뜻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귀를 막고 옆 사람의 손을 잡는 것이 더 바른 선택이다.”
스토얀카가 그녀를 보았다.
“세이렌에게도 고통교의 해석을 붙이는가?”
“노래가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다면, 해석할 필요가 있다.”
스토얀카는 입가를 올렸다.
“그대답군.”
---
하지만 모든 이가 귀를 막지는 않았다.
죠니는 귀마개를 손에 들고 있었지만, 아직 끼지 않았다.
푸리나가 그를 보았다.
“죠니?”
“응.”
“안 막아?”
죠니는 세이렌의 안개를 보았다.
“오디세우스는 들어야 하잖아.”
“묶어줄까?”
“그 말, 네가 하니까 이상하게 연출처럼 들리는데.”
“실제로 연출이기도 해.”
죠니는 피식 웃었다.
“그럼 난간에 묶어. 너무 멋있게 묶지는 말고.”
푸리나는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부드러운 밧줄을 가져왔다. 무대용 밧줄이었지만, 손목이 쓸리지 않도록 천을 덧댄 것이었다.
죠니가 그것을 보고 말했다.
“역시 그레이답네. 묶는 것도 덜 아프게 묶어.”
그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아프게 묶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 말, 오늘 계속 기억하게 될 것 같아.”
그레이는 죠니의 손목을 난간에 고정했다.
너무 단단하지 않게.
그러나 풀리지 않게.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정말 괜찮아?”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여왕님, 내가 괜찮다고 해도 괜찮지 않을 수는 있어. 그래도 지금은 해야 하는 장면이잖아.”
“연극이니까 안 해도 돼.”
죠니는 잠시 웃었다.
“연극이라서 하는 거지. 현실이면 안 듣고 도망쳤어.”
푸리나는 말문이 막혔다.
죠니는 이어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바다로 뛰어들려고 하면 아스테르다스가 너무 신나서 먼저 뛰려고 할 테니까, 네가 둘 다 말리면 돼.”
아스테르다스가 귀를 막은 채 멀리서 말했다.
“나 들었어!”
죠니가 고개를 돌렸다.
“그럼 귀마개 제대로 안 꼈네.”
그레이가 바로 다가가 귀마개 위치를 고쳐주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
두 번째 노래가 시작되었다.
이번에는 첫 번째보다 낮았다.
처음에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 안에 조금씩 다른 것이 섞였다.
> 돌아오라, 이름 불리는 자여.
그러나 네 집은 예전과 같을까.
네가 두고 간 불은 아직 타오를까.
네가 앉던 자리는
다른 이의 침묵이 되었을까.
돌아오라, 바다를 넘은 자여.
하지만 네 뒤에 남은 자들은
누구의 이름으로 불릴까.
죠니의 손가락이 난간을 붙잡았다.
그의 얼굴은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푸리나는 보았다.
그가 잠시 눈을 감았다는 것을.
그레이는 밧줄 매듭을 확인하려다 멈췄다.
레이튼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하융은 조타수 자리에서 낮게 말했다.
“저 노래는 목적지를 부르는 것이 아니오. 뒤에 남긴 그림자를 부르는 것이오.”
죠니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세이렌의 노래는 그를 찢어내듯 부르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돌아갈 집.
기다리는 사람.
돌아왔을 때 마주해야 할 빈자리.
그리고 자신만 돌아왔다는 사실.
죠니는 낮게 말했다.
“나쁘네.”
푸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노래가?”
“응. 너무 예뻐서 더 나빠.”
그의 손목을 묶은 밧줄이 조금 팽팽해졌다.
아스테르다스가 귀마개를 낀 채 그를 보았다. 뭔가 말하고 싶었지만, 죠니가 눈짓으로 막았다.
푸리나는 류트를 품에 안았다.
그녀도 세이렌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처음에는 경쟁심이 들었다. 노래로 사람을 붙잡는다는 점에서, 그것은 너무나도 무대의 힘과 닮아 있었다.
하지만 곧 알았다.
세이렌의 노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우지 않았다.
그것은 사람을 자신의 상처 속에 홀로 세웠다.
푸리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건 내 무대랑 달라.”
죠니가 눈을 뜨지 않은 채 말했다.
“응. 여왕님 무대는 보통 너무 시끄러워서 사람을 혼자 두진 않지.”
“그거 칭찬이야?”
“꽤 큰 칭찬.”
푸리나는 잠시 숨을 삼켰다.
“그럼 내가 좀 시끄럽게 해도 돼?”
죠니는 천천히 눈을 떴다.
“이번엔 허락할게. 너무 세게 말고.”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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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류트를 들었다.
세이렌의 노래 위로 푸리나의 현이 올라갔다.
처음에는 아주 작았다.
세이렌의 노래를 이기려는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을 덮어버리는 소리도 아니었다.
다만, 혼자 듣고 있는 사람의 옆에 누군가 앉는 소리였다.
푸리나는 노래했다.
> 바다가 네 이름을 부르거든,
혼자 대답하지 마라.
돌아갈 집이 멀어 보이면,
옆 사람의 숨을 먼저 들어라.
네가 잃은 것이 너를 부르더라도,
네가 아직 붙잡은 손도 있다.
그러니 돌아오라.
노래 속으로가 아니라,
배 위로.
세이렌의 노래가 흔들렸다.
푸리나의 목소리는 더 크지 않았다.
하지만 달랐다.
세이렌은 혼자 남은 마음을 불렀고, 푸리나는 그 마음 옆에 다른 사람들을 불렀다.
아스테르다스가 귀마개를 낀 채도 박자를 느낀 듯 난간을 두드렸다.
그레이는 조용히 다른 선원의 손에 물병을 쥐여주었다.
레이튼은 미소를 지었다.
하융은 조타륜을 조금 돌렸다.
죠니는 밧줄에 묶인 채, 천천히 숨을 골랐다.
“여왕님.”
“응?”
“이번엔 세게 불러도 괜찮았네.”
푸리나는 웃으려다가, 조금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게 무슨 칭찬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쪽에서는 제법 좋은 칭찬이야.”
“그럼 받아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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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의 안개가 조금씩 멀어졌다.
그림자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배와의 거리가 벌어졌다.
마지막 노래가 희미하게 들렸다.
> 돌아오라, 이름 불리는 자여.
우리는 네가 잃은 것을 알고 있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아니.”
푸리나가 그를 보았다.
죠니는 난간을 붙잡은 채, 바다 너머를 보았다.
“아는 척하는 거겠지. 잃은 걸 정말 아는 사람은, 그렇게 예쁘게만 부르진 않아.”
그 말은 아주 조용했다.
그레이는 밧줄을 풀었다.
천으로 덧댄 부분 덕분에 죠니의 손목에는 자국이 거의 남지 않았다.
그래도 그녀는 손목을 잠시 살폈다.
“아프십니까?”
죠니는 손목을 돌려보았다.
“괜찮아. 잘 묶었네.”
“풀기 어렵지는 않았습니까?”
“살면서 묶인 것 중에 가장 배려 있는 밧줄이었어.”
그레이는 그 말에 조금 난처해했다.
푸리나는 그걸 듣고 웃었다.
“그레이의 배려 있는 밧줄!”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 표현은 이상합니다.”
죠니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맞는 말이야.”
그레이는 반박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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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렌의 섬을 지난 뒤, 배 위에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하지만 첫 섬을 지난 뒤의 침묵과는 달랐다.
이번 침묵은 조금 덜 차가웠다.
아스테르다스는 귀마개를 빼고 크게 숨을 내쉬었다.
“와.”
죠니가 물었다.
“많이 들었어?”
“조금.”
“그 ‘조금’이 진짜 조금이었길 바란다.”
“진짜 조금이었어. 그런데도 이상하더라.”
“뭐가?”
아스테르다스는 바다를 보았다.
“좋은 말만 하는데, 이상하게 발이 앞으로 가려고 했어.”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노래였지.”
아스테르다스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죠니는 더 많이 들었잖아. 괜찮아?”
죠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리고 조금 뒤, 아주 낮게 말했다.
“괜찮다고 해두자. 아직 배 위니까.”
아스테르다스는 그 말이 완전한 대답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더 묻지 않았다.
그레이가 죠니 앞에 따뜻한 물을 놓았다.
“목이 마를 수 있습니다.”
죠니는 잔을 받았다.
“고마워.”
그레이는 이번에도 묻지 않았다.
무엇을 들었는지.
누구의 목소리였는지.
어떤 집을 떠올렸는지.
그녀는 그냥 따뜻한 물을 주었다.
그리고 배의 흔들림이 잦아들 때까지 가까운 곳에 서 있었다.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며 류트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이번 막을 밝은 박수로 끝낼까 잠시 고민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두 번째 섬을 지났습니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세이렌은 우리를 부르려 했고, 우리는 서로의 소리를 붙잡았습니다.”
죠니는 잔을 든 채 말했다.
“좋은 정리네. 오늘은 진짜로.”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고마워.”
하융은 조타륜을 돌렸다.
“바람이 바뀌오.”
레이튼이 물었다.
“다음 길은 보입니까?”
하융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아니오. 허나 이 배는 방금, 노래 속으로 가라앉지 않았소. 그것만으로도 길 하나는 닫히고, 다른 길 하나는 열렸구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 뒤 간판이 천천히 내려왔다.
3막 — 키르케의 섬과 돌아온 짐승들
아스테르다스가 그 제목을 보고 눈을 깜박였다.
“돌아온 짐승들?”
죠니는 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제목부터 벌써 귀찮네.”
푸리나는 아무 말 없이 바다를 보았다.
세이렌의 노래는 멀어졌지만,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누군가의 마음속에서는 아직 작게 울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레이는 담요를 다시 접어두었다.
이번에는 난간 가까이에.
혹시 누군가, 말없이 떨게 될지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