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49여관◆zAR16hM8he(52459695)2026-05-20 (수) 10:04:39
4막 —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선택의 바다

네 번째 바다는 좁았다.

무대 위의 푸른 천은 여전히 같은 천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넓은 바다가 아니라, 두 절벽 사이로 밀려드는 어두운 해협처럼 보였다.

왼쪽에는 높고 검은 바위가 세워졌다.

그 바위 위에는 여섯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완전히 보이지는 않았다. 긴 목처럼 휘어진 검은 천과, 손인지 발톱인지 알 수 없는 날카로운 그림자들이 조명 사이에서 움직였다.

오른쪽에는 둥근 소용돌이가 있었다.

무대 담당들이 커다란 원형 천을 천천히 돌렸고, 그 위로 푸리나의 신술이 얇게 겹치자, 그것은 정말로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바다처럼 보였다. 물은 없었다. 그러나 보는 사람의 발밑이 잠깐 가라앉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타카행 임시 극장선은 그 사이에 멈춰 있었다.

배 위에는 말이 없었다.

키르케의 섬에서 모두가 돌아왔다.

하지만 그 여운은 아직 몸에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담요를 어깨에 걸쳤고, 누군가는 손가락을 펴고 접으며 사람의 손이 돌아온 감각을 확인하고 있었다. 아스테르다스는 배 난간에 기대어 있었지만, 이번에는 난간 위에 올라가지 않았다. 그의 신발끈은 단단했고, 손은 차분했다.

그레이는 조용히 사람들의 상태를 보았다.

“물이 필요하신 분은 말씀해주십시오.”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물병을 한곳에 모아두었다.

말하지 않아도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죠니는 그 모습을 보고 낮게 말했다.

“이 배에서 제일 꾸준한 건 저 물병이네.”

그레이는 잠시 그를 보았다.

“필요할 때 가까이 있어야 합니다.”

“응. 사람도 그렇고.”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부정하지도 않았다.

푸리나는 배 앞머리에 서 있었다.

평소라면 새 막의 시작을 크게 외쳤을 것이다. “자, 이제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하고 탬버린이라도 흔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류트를 들고도 바로 연주하지 않았다.

그녀는 왼쪽 바위와 오른쪽 소용돌이를 번갈아 보았다.

“여기구나.”

죠니가 말했다.

“응. 여기네.”

“어느 쪽으로 가야 해?”

죠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하융을 보았다.

하융은 조타륜을 잡은 채, 두 길 사이의 바다를 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는 푸른 천보다 더 많은 것이 비치는 듯했다.

선택되지 않은 항로.

부서지는 돛.

떨어지는 이름표.

살아남는 배.

그러나 모두 살아남지는 못하는 길.

하융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왼쪽 길은 몸을 잃고, 오른쪽 길은 배를 잃소.”

푸리나의 손이 류트 위에서 굳었다.

하융은 이어 말했다.

“가운데는 길이 아니오.”

아무도 바로 말하지 않았다.

아스테르다스가 낮게 물었다.

“몸을 잃는다는 건?”

하융은 왼쪽 바위를 보았다.

“스킬라. 지나가는 배에서 사람을 낚아채는 그림자요.”

그레이가 오른쪽을 보았다.

“배를 잃는다는 것은…….”

“카리브디스. 가까이 가면 배 자체가 삼켜질 것이오.”

죠니는 한참 동안 두 길을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좋아. 이번엔 회의가 필요하네.”

푸리나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보았다.

“죠니가 회의하자고 했어.”

“여왕님, 나도 아무 때나 뛰어드는 쪽은 아니야.”

“가끔은?”

“가끔은 네가 먼저 뛰어들어서 내가 말릴 시간이 없는 거지.”

푸리나는 웃으려다 멈췄다.

이번에는 웃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

배 가운데에 작은 탁자가 놓였다.

지도는 없었다.

대신 왼쪽 바위와 오른쪽 소용돌이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선택지는 너무 분명했고, 그래서 더 잔인했다.

레이튼이 먼저 말했다.

“선택지를 정리해보지요. 왼쪽은 일부를 잃을 가능성, 오른쪽은 전부를 잃을 가능성입니다.”

그레이는 조용히 물었다.

“왼쪽으로 갈 경우, 피해를 줄일 방법은 있습니까?”

하융이 대답했다.

“배를 바위에서 최대한 멀리 붙이고, 돛을 낮추며, 갑판 위 인원을 묶어야 하오. 그래도 완전하지는 않소.”

아스테르다스가 말했다.

“내가 왼쪽을 막으면?”

죠니가 그를 보았다.

아스테르다스는 이번엔 충동적으로 말한 게 아니었다. 눈이 맑았다. 그는 자신의 힘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자신의 몸을 어디에 던질지 계산하고 있었다.

“스킬라가 낚아채려는 순간, 내가 먼저 떨어져서 그 손을 끊으면 돼.”

그레이가 작게 숨을 들이켰다.

죠니는 바로 말리지 않았다.

대신 천천히 말했다.

“형씨, 네가 그럴 수 있다는 건 알아. 문제는 한 번 떨어지고 끝날 상황이 아니라는 거야. 저쪽 그림자, 하나가 아니잖아.”

왼쪽 바위 위의 여섯 그림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아스테르다스는 그걸 보았다.

“여섯.”

“응. 네가 하나를 쳐도, 다섯은 남아. 그리고 네가 너무 멀리 떨어지면, 이 배는 네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릴 수 없을지도 몰라.”

아스테르다스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그 말은 그를 낮게 본 말이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죠니는 그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정말로 떨어져서, 한 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었다.

아스테르다스는 낮게 웃었다.

“좋아. 그러면 내가 혼자 해결하는 길은 아니네.”

“응. 이번엔 영웅 하나로 끝나는 장면이 아니야.”

푸리나는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 오른쪽은?”

하융은 카리브디스 쪽을 보았다.

“오른쪽은 배가 사라지오. 빠져나올 가능성은 있으나, 그 가능성은 죽은 세계에 더 많소.”

“죽은 세계?”

하융의 눈이 아주 잠깐 흐려졌다.

“우리가 선택하지 말아야 할 바다요.”

그 말에 더 이상 묻는 사람은 없었다.

그레이는 탁자 위에 담요를 올렸다.

죠니가 물었다.

“담요?”

“왼쪽으로 가면 갑판 위에서 버텨야 합니다. 손이 미끄러지거나 몸이 차가워질 수 있습니다.”

“아직 선택 안 했는데.”

“그래서 준비합니다.”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 방식이지.”

그레이는 담요를 접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평소보다 손이 조금 느렸다.

푸리나는 그걸 보았다.

“그레이?”

그레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죠니가 조용히 말했다.

“괜찮다는 말은 아껴도 돼. 이 배에서 그 말 너무 빨리 쓰면 그레이한테도 혼나.”

그레이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무섭습니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레이는 낮게 이어 말했다.

“다칠 사람을 예상하고 준비하는 일은…… 익숙합니다. 하지만 익숙하다고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건 그렇지.”

레이튼은 조용히 물었다.

“그렇다면 이 선택은 누구의 것입니까? 선장의 것입니까, 선원들의 것입니까, 아니면 항해 자체의 것입니까?”

죠니는 탁자 위의 담요를 보았다.

왼쪽의 그림자.

오른쪽의 소용돌이.

그리고 배 위의 사람들.

“내가 정해야겠지.”

푸리나가 그를 보았다.

“혼자?”

“혼자 정하는 척은 할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까지 봤잖아. 이 배에서 내가 혼자 뭘 정하면, 대체로 누가 옆에서 담요를 놓고, 누가 노래하고, 누가 질문하고, 누가 뛰어내릴 준비를 해.”

아스테르다스가 씩 웃었다.

“그건 나네.”

“응. 너무 자랑스럽게 말하진 말고.”

죠니는 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마지막 말은 내가 해야 해. 그래야 누가 원망할 곳이 생기거든.”

푸리나의 얼굴이 굳었다.

“죠니.”

“여왕님, 이건 멋있는 말이 아니야. 그냥 선장이 그렇게 생겨먹은 자리라는 거지.”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책임을 위한 이름이군요.”

죠니는 작게 웃었다.

“이번엔 아무도 아닌 선장으로는 못 지나가겠네.”


---

결정은 왼쪽이었다.

스킬라의 바위.

일부의 손실을 감수하는 길.

카리브디스의 소용돌이에 배 전체를 맡길 수는 없었다.

푸리나는 그 결정을 듣고도 바로 음악을 시작하지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물었다.

“이 장면, 그냥 넘기면 안 되겠지?”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넘기고 싶어?”

“응.”

“나도.”

푸리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죠니는 이어 말했다.

“근데 넘기면, 이 극이 거짓말을 하게 될 것 같네.”

푸리나는 류트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알아.”

그녀는 천천히 배 앞머리로 걸어갔다.

“그러면 이번 노래는 길을 여는 노래가 아니야.”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붙잡는 노래야.”

그 말에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푸리나는 선원들을 보았다.

“지금부터 모두 서로를 묶어. 하지만 억지로 끌지 마. 떨어지려는 사람을 짓누르는 게 아니라, 돌아올 손잡이를 만드는 거야.”

그레이는 바로 움직였다.

그녀는 밧줄과 천을 나누어주었다. 세이렌의 막에서 죠니를 묶었던 것처럼, 손목이 쓸리지 않게 천을 먼저 감았다. 선원들은 서로의 허리와 팔을 연결했다. 너무 단단하지 않게. 하지만 끊어지지 않게.

아스테르다스는 자기 허리에 밧줄을 묶으며 물었다.

“죠니, 나도 묶어?”

죠니는 그를 보았다.

“응. 형씨가 약해서가 아니라, 돌아올 곳을 정해두려고.”

아스테르다스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웃었다.

“그 말은 좋네.”

그는 밧줄 끝을 죠니에게 건넸다.

“그럼 잡아.”

죠니는 밧줄을 받았다.

“이거, 내가 감당 못 하면?”

아스테르다스는 씩 웃었다.

“그럼 내가 감당할게. 밧줄은 양쪽에서 잡는 거잖아.”

죠니는 잠깐 그를 보다가 웃었다.

“그래. 그쪽이 훨씬 낫네.”

그레이는 마지막으로 어린 선원 역 배우의 손목을 묶어주었다.

배우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진짜 떨어지는 건 아니죠?”

그레이는 잠시 그를 보았다.

“네. 진짜로 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에 덧붙였다.

“그래도 무서우면 말해도 됩니다.”

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는 그 옆에 무릎을 꿇었다.

“무서우면, 이 천을 잡으세요. 제가 여기 있습니다.”

그 말에 배우는 천을 꼭 잡았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연출한 바다와 괴물보다, 그레이가 무릎을 꿇고 천을 내미는 장면이 더 오래 남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

배가 움직였다.

정확히는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무대 양쪽의 푸른 천이 거세게 흔들렸다. 조명이 왼쪽 바위를 크게 비추었다. 스킬라의 여섯 그림자가 바위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들은 괴물이라기보다, 손실의 형태 같았다.

한 그림자는 긴 손을 가졌다.
한 그림자는 갈라진 목소리를 가졌다.
한 그림자는 사람의 이름표를 쥐고 있었다.
한 그림자는 빈 의자를 끌고 있었다.
한 그림자는 젖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마지막 그림자는 얼굴이 없었다.

푸리나는 류트를 치기 시작했다.

노래는 짧은 박자였다.

> 붙잡아라.
그러나 부수지 말고.

끌어당겨라.
그러나 숨 막히게 하지 말고.

돌아오라.
그러나 돌아오지 못한 이름을
밟고 오지는 말고.



스킬라가 움직였다.

첫 번째 그림자가 배 위로 손을 뻗었다.

아스테르다스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몸이 낮아졌다. 청흑빛 기운이 발끝에서 일어났다. 이번에는 키르케의 마법이 밀어붙이는 충동이 아니었다. 자신이 고른 낙하지점이었다.

그는 떨어지듯 뛰었다.

그러나 배를 떠나지 않았다.

밧줄이 그의 허리에서 팽팽해졌고, 그는 그 긴장을 이용해 궤도를 바꾸었다. 청흑빛 유성이 바위와 배 사이를 스치며, 스킬라의 첫 손을 밀어냈다.

그림자가 찢어졌다.

객석에서 낮은 탄성이 났다.

죠니는 밧줄을 잡고 이를 악물었다.

“형씨, 너무 멀리 가면 내가 진짜로 욕할 거야.”

아스테르다스가 공중에서 웃었다.

“그건 좀 듣고 싶네!”

“돌아와서 들어. 바다 위에서 들으면 집중 안 되잖아.”

아스테르다스는 밧줄의 힘을 받아 배 쪽으로 돌아왔다.

두 번째 그림자가 그 틈을 노렸다.

이번에는 아스트리트가 나섰다.

그녀는 지팡이를 들어 배 옆의 선원들을 보호했다.

“낮추세요!”

이번에는 긴 구령이 아니었다.

짧고 정확했다.

선원들이 몸을 낮추자, 스킬라의 손이 허공을 갈랐다.

죠니가 말했다.

“좋아. 그 구령은 살았다.”

아스트리트는 숨을 고르며 대답했다.

“연습했습니다.”

“효과 있네.”

그러나 세 번째 그림자는 이름표를 쥐고 있었다.

그것은 배 위를 직접 낚아채지 않았다.

대신 갑판 위에 있던 작은 나무패 하나를 끌어당겼다. 무대용 선원 이름표였다. 엑스트라 배우 하나가 맡고 있던, 극중 선원의 이름.

그레이가 그것을 보았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안 됩니다.”

그녀가 손을 뻗었다.

죠니가 바로 말했다.

“그레이!”

그레이는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무모하게 뛰어들지도 않았다.

그녀는 바닥의 밧줄을 잡고, 몸을 낮춘 채 이름표에 손을 뻗었다. 손끝이 닿았다. 하지만 스킬라의 그림자가 더 빨랐다.

나무패가 그녀의 손끝을 스치고, 바위 쪽으로 끌려갔다.

그레이는 그 자리에 멈췄다.

이름표는 사라졌다.

무대 위에서, 아주 작은 물체 하나가 어둠 속으로 넘어갔을 뿐이었다.

하지만 배 위의 모두가 그것을 보았다.

푸리나의 노래가 잠시 흔들렸다.

그레이는 빈 손을 내려다보았다.

죠니가 다가왔다.

“그레이.”

그레이는 작게 말했다.

“잡지 못했습니다.”

죠니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응.”

그레이는 다시 말했다.

“잡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더 작았다.

죠니는 무리하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름은?”

그레이는 눈을 감았다.

“니코스.”

짧은 이름이었다.

극중 선원.

실제 사람은 아니었다.

하지만 푸리나의 신술 위에서, 그 이름은 잠깐 배 위에 살고 있었다.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기억하자. 지금은 배를 지나가게 하고.”

그레이는 눈을 떴다.

“네.”

그녀는 다시 일어섰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병이 아니라, 작은 천 조각을 꺼냈다. 그리고 갑판 한쪽, 이름표가 있던 자리에 묶어두었다.

빈 자리 표시.

푸리나는 그것을 보며 노래를 이어갔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멈추지 않았다.

> 하나가 사라져도
자리는 지우지 마라.

파도가 삼켜도
이름을 바다의 일로만 두지 마라.



스킬라의 네 번째, 다섯 번째 그림자가 동시에 움직였다.

하융이 조타륜을 돌렸다.

“지금이오!”

배가 왼쪽 바위에서 살짝 멀어졌다. 무대 천이 거칠게 흔들렸다. 아스테르다스가 다시 한 번 뛰어올라 그림자 하나를 밀어냈고, 아스트리트가 다른 그림자의 손을 막았다.

죠니는 밧줄을 잡고 선원들을 끌어당겼다.

“다들 낮게. 멋있게 서 있으면 괴물한테 잘 보일 뿐이야.”

아스테르다스가 돌아오며 말했다.

“나 방금 멋있었어?”

“응. 괴물한테도 잘 보였을걸.”

“그건 좀 문제네.”

“그래도 살아 돌아왔으니 괜찮아.”

마지막 그림자, 얼굴 없는 스킬라가 배 위로 내려왔다.

그것은 누구도 잡지 않았다.

대신 배 위에 걸린 불빛 하나를 꺼뜨렸다.

조명이 살짝 낮아졌다.

모두가 느꼈다.

무언가 지나갔다.

누군가가 없어진 것처럼.

그러나 누구인지 바로 알 수 없는 손실.

그레이는 숨을 들이켰다.

“불 하나가 꺼졌습니다.”

푸리나는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죠니가 말했다.

“다시 켜자. 지나간 뒤에.”

“지금은?”

“지금 켜러 가면, 꺼질 불이 더 늘어날 거야.”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차가웠지만, 맞았다.


---

마침내 배가 해협을 빠져나왔다.

스킬라의 그림자는 바위 위로 물러갔다.

오른쪽의 카리브디스는 여전히 돌고 있었다. 거대한 소용돌이는 마치 자신에게 오지 않은 배를 아쉬워하듯 천천히 낮아졌다. 무대 위의 푸른 천이 조금씩 잔잔해졌다.

배 위에는 아무도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스테르다스는 밧줄을 풀지 않은 채 숨을 골랐다.
아스트리트는 지팡이를 바닥에 짚고 있었다.
하융은 조타륜에서 손을 떼지 않았다.
푸리나는 류트 현 위에 손을 얹은 채, 마지막 음을 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레이는 이름표가 사라진 자리를 보고 있었다.

죠니가 천천히 밧줄을 풀었다.

“다들 있어?”

그레이는 사람들을 보았다.

하나.

둘.

셋.

모두 있었다.

하지만 모두 있다는 말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갑판 한쪽에 묶인 작은 천 조각을 보았다.

니코스.

극중 선원.

스킬라가 가져간 이름표.

“사람은 모두 있습니다.”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이름표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푸리나가 가까이 왔다.

“그레이.”

그레이는 작게 말했다.

“실제 사람은 아닙니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소품입니다. 극중 이름표입니다. 배우는 무사합니다.”

“응.”

그레이의 손이 천 조각 위에 머물렀다.

“그런데…… 그냥 넘어가면 안 될 것 같습니다.”

죠니가 말했다.

“그럼 넘어가지 말자.”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여기서 잠깐 멈추자.”

무대가 조용해졌다.

푸리나는 객석을 향해 돌아섰다.

“스킬라의 바위를 지났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배는 살아남았고, 선원들도 모두 배 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이름표가 바다로 갔습니다.”

그녀는 그레이가 묶어둔 천 조각을 보았다.

“이름은 니코스.”

객석도 조용해졌다.

로빈후드의 빈 잔 때와 비슷했지만,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때는 되찾은 뒤의 빈자리였다.

이번에는 지나가기 위해 받아들인 빈자리였다.

그레이는 작은 천 조각 옆에 물 한 잔을 놓았다.

담요도, 빵도 아니었다.

이번에는 물이었다.

바다 위에서 사라진 이름에게 어울리는 것처럼.

“나중에 다시 적겠습니다.”

그레이가 말했다.

“지금은…… 잊지 않겠습니다.”

죠니는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는 바다를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미안하다고 해서 달라지진 않겠지.”

레이튼이 조용히 말했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 것과는 다르겠지요.”

죠니는 작게 웃었다.

“그 말, 전에 들은 것 같은데.”

“좋은 질문과 좋은 말은 돌아옵니다.”

죠니는 천 조각을 보았다.

“그래. 미안하다, 니코스. 그래도 배는 가야 해.”

푸리나는 류트를 다시 들었다.

이번 노래는 아주 짧았다.

> 바위는 지나갔고,
배는 남았다.

그러나 이름 하나가
물결 아래로 갔다.

우리는 간다.
간다는 말로
잊지는 않겠다.



노래가 끝났을 때, 꺼졌던 불 하나가 다시 켜졌다.

그레이가 켰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배 위의 모두가 그 불을 보았다.


---

해협을 지나자, 바다가 조금 넓어졌다.

그러나 안도는 오지 않았다.

푸리나는 배 앞머리에 앉아 있었다. 평소처럼 “자, 다음 막!” 하고 외치지 않았다. 그녀는 류트를 무릎 위에 내려놓고, 손끝으로 현을 가볍게 눌렀다.

죠니가 옆에 섰다.

“여왕님.”

“응.”

“방금은 잘했어.”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어떤 걸?”

“멈춘 거.”

푸리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계속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극이니까. 흐름이 끊기면 안 된다고.”

“끊겨야 하는 흐름도 있지.”

“죠니가 그런 말도 하네.”

“나도 배가 부서지지만 않으면 꽤 많은 걸 배워.”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그럼 지금 배는?”

죠니는 갑판을 보았다.

밧줄 자국.

물잔.

작은 천 조각.

다시 켜진 불.

“부서지진 않았어.”

“그럼 괜찮아?”

죠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그냥 계속 갈 수는 있어.”

푸리나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괜찮지는 않다.

하지만 계속 갈 수는 있다.

그것이 네 번째 바다의 답이었다.

아스테르다스가 다가왔다.

그는 허리의 밧줄을 풀어 죠니에게 건넸다.

“덕분에 돌아왔어.”

죠니가 받았다.

“네가 잡아준 덕도 있지. 밧줄은 양쪽에서 잡는 거라며.”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그 말 내가 했지.”

“응. 나쁘지 않았어.”

“거의 온전히 칭찬?”

“오늘은 그래. 거의.”

아스테르다스는 그 말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레이 쪽을 보았다.

그녀는 니코스의 천 조각 옆에 앉아 있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조금 망설이다가 그 옆에 물잔 하나를 더 놓았다.

그레이가 그를 보았다.

“왜 하나 더……?”

“모르겠어.”

아스테르다스는 바다를 보았다.

“그냥 하나만 있으면 외로워 보였어.”

그레이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아주 작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아스테르다스는 멋쩍게 웃었다.

“이런 건 아직 잘 모르겠네.”

그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충분합니다.”


---

하융은 조타륜 앞에서 조용히 말했다.

“다음 길은 아래로 향하오.”

푸리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래?”

레이튼의 표정이 조금 진지해졌다.

“저승 방문이군요.”

배 위의 공기가 다시 바뀌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를 지나, 이제 오디세우스는 죽은 자들의 세계로 향한다.

그레이의 손이 작게 굳었다.

죠니는 그것을 보았다.

“그레이.”

“네.”

“이번엔 물이랑 담요 말고, 뭐가 필요해?”

그레이는 조금 오래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마른 천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젖은 사람들?”

그레이는 고개를 저었다.

“젖은 신발이 있을 것 같아서요.”

죠니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곧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챙기자.”

푸리나는 류트를 품에 안았다.

무대 뒤 간판이 천천히 내려왔다.

5막 — 저승의 여관과 젖은 신발

이번에는 아무도 제목을 보고 농담하지 않았다.

배는 다시 움직였다.

바다는 넓어졌지만, 빛은 점점 낮아졌다.

그리고 이타카행 임시 극장선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될 항구를 향해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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