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5여관◆zAR16hM8he(55e5d5d9)2026-05-08 (금) 17:29:18
. 이번에는 민다우가스 × 알토 × 푸리나로,
주제는 **“국가는 무엇으로 움직이는가”**로 잡아볼게.

푸리나는 사람의 삶과 소망을 본다.
알토는 선택과 기록을 본다.
민다우가스는 구조와 생존을 본다.

셋 다 몽골을 막아야 한다는 결론은 같지만, 무엇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가가 다르다.


---

엽편 — 세 개의 지도

탁자 위에는 세 장의 지도가 펼쳐져 있었다.

첫 번째 지도는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산맥과 길, 여관망과 피난로, 마을과 성채가 색실로 표시되어 있었다. 길마다 작은 극장 표식이 그려져 있었고, 몇몇 도시 옆에는 푸리나 헤툼의 손글씨로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여기서는 사람들이 아직 노래한다.”
“이 마을은 아이들이 많다.”
“이 길은 반드시 열어둘 것.”

두 번째 지도는 폴란드 대공국의 것이었다.

정교했다.
마을 이름, 병력 수, 수레 이동량, 전투 기록, 패배한 지점, 승리한 지점, 후퇴한 부대의 경로가 모두 적혀 있었다. 지도 가장자리에는 날짜와 증언자 이름, 기록관의 서명이 남아 있었다.

세 번째 지도는 리투아니아의 것이었다.

가장 거칠었다.

숲.
늪.
강.
밤에 움직일 수 있는 길.
기사를 끌어들일 수 있는 빈터.
말이 빠지는 진흙.
시체를 숨길 수 있는 골짜기.
불태우면 안 되는 마을.
불태워도 되는 가짜 창고.

그 지도에는 장식이 없었다.

필요한 것만 있었다.

세 군주는 그 세 장의 지도 앞에 앉아 있었다.

푸리나 헤툼은 팔짱을 낀 채 지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좋아!”로 시작했을 그녀였지만,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알토는 조용히 서류를 넘겼다. 그의 곁에는 기록교단의 서기관 하나가 있었지만, 펜은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알토가 아직 쓰라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민다우가스는 의자에 등을 기대지 않았다.
그는 마치 회의가 아니라 해부를 하듯, 세 지도를 차례로 보았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민다우가스였다.

“몽골은 세 방향으로 압박할 것이다.”

그는 손가락으로 지도를 짚었다.

“하나는 북쪽. 리투아니아와 루테니아를 흔든다. 하나는 중앙. 폴란드와 헝가리를 시험한다. 하나는 남쪽. 코카서스와 아르메니아의 통로를 끊는다.”

그는 짧게 말을 끊었다.

“각자 막으면 각자 죽는다.”

푸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꽤 상냥한 회의 시작이네.”

“상냥할 필요가 없다.”

민다우가스는 그녀를 보았다.

“필요한 것은 명확성이다.”

알토가 조용히 말했다.

“명확성은 기록하기 좋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사람은 움직이지 않는다.”

민다우가스의 시선이 알토에게 향했다.

“움직인다. 식량, 명령, 보상, 공포, 필요가 있으면 움직인다.”

푸리나가 작게 웃었다.

“그건 사람이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움직이게 되는 거야.”

“차이가 있나?”

“있지.”

푸리나는 자기 지도 위의 작은 마을 표식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사람은 짐짝처럼 이동하지 않아. 피난민에게 ‘동쪽으로 가라’고 하면, 그들은 먼저 묻지. 왜? 누구와? 무엇을 두고? 돌아올 수 있나? 내 아버지의 무덤은? 내 집은? 내 아이는?”

민다우가스는 바로 대답했다.

“그 질문에 모두 답하려다가는 죽는다.”

“답하지 않아도 죽어.”

푸리나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물러서지 않았다.

“사람은 이유 없이 버티지 않아. 이유 없이 도망치지도 않고. 자기가 무엇을 지키는지 모르면, 성벽 위에서 오래 서 있지 못해.”

민다우가스는 잠시 푸리나를 보았다.

그 눈빛에는 감탄도, 분노도 없었다.

그저 평가가 있었다.

“너는 사람을 무대로 본다.”

푸리나는 턱을 괴었다.

“응. 그리고 너는 사람을 구조로 보지.”

“그렇다.”

“너무 빨리 인정하네.”

“부정할 이유가 없다.”

민다우가스는 리투아니아 지도를 툭 쳤다.

“구조가 없으면 국가는 죽는다. 감정은 오래가지 않는다. 충성도 흔들린다. 공포는 전염된다. 분노는 방향을 잃는다. 그래서 구조가 필요하다.”

알토가 말했다.

“하지만 구조도 기록된다.”

민다우가스는 눈썹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알토는 폴란드 지도의 가장자리를 짚었다.

“어느 마을을 비우고, 어느 마을을 버리고, 어느 부대를 희생시키고, 어느 피난로를 닫았는지. 모두 기록된다.”

“기록하라.”

민다우가스는 짧게 말했다.

“나는 숨기지 않는다.”

알토는 그를 보았다.

“기록은 숨기지 않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기록된 선택은 남는다. 남은 선택은 다음 세대의 전제가 된다. 너의 청사진은 네가 죽은 뒤에도 리투아니아를 움직이겠지.”

“그게 목적이다.”

“그렇다면 묻겠다.”

알토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그 기록이 리투아니아를 살리는가, 아니면 리투아니아가 그 기록을 반복하게 만드는가?”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푸리나는 알토를 보았다.

민다우가스도 알토를 보았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민다우가스가 입을 열었다.

“반복되어도 상관없다. 살아남는다면.”

알토는 대답했다.

“나는 그 대답을 기록할 수 있다.”

“해라.”

“하지만 기록은 판결이 아니다.”

알토는 천천히 서류를 덮었다.

“나는 네가 틀렸다고 말하지 않는다. 너의 방식은 나라를 살릴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그는 민다우가스를 똑바로 보았다.

“살아남은 나라가 더 나아지지 않는다면, 생존은 미완의 기록이다.”

민다우가스는 낮게 말했다.

“이상론이다.”

알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나는 이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방향을 말하는 것이다.”

그의 손이 폴란드 지도 위를 지나갔다.

“패배도 기록된다. 배신도 기록된다. 희생도 기록된다. 하지만 기록은 묻는다. 그 다음은 무엇인가.”

푸리나가 조용히 웃었다.

“좋네.”

민다우가스가 그녀를 보았다.

“너는 또 무엇을 말하려는 거지?”

푸리나는 자기 지도 위에 손을 올렸다.

“나는 어려운 말은 안 할래.”

“이미 충분히 했다.”

“아니, 이번엔 간단해.”

그녀는 세 지도를 차례로 보았다.

리투아니아의 숲.
폴란드의 기록.
아르메니아의 길.

“너는 국가가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해.”

민다우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알토는 그 살아남음이 기록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해.”

알토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푸리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회의실 창밖에서는 난민 수레가 지나가고 있었다.
멀리서 말 울음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아이를 달래는 소리도 들렸다.

푸리나는 그쪽을 보다가 말했다.

“나는 그 살아남은 사람들이 내일 자기 이야기를 계속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

민다우가스는 무표정했다.

알토는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손가락으로 자기 지도 위의 작은 길 하나를 따라갔다.

“국가는 성벽이 아니야. 지도도 아니고, 왕관도 아니고, 계약서도 아니야.”

그녀는 웃지 않았다.

“국가는 사람이야. 돌아갈 집을 기억하는 사람. 죽은 가족 이름을 잊지 못하는 사람. 그래도 아이에게 빵을 먹이는 사람. 성벽 위에 서면서도 사실은 무서운 사람. 그리고 무서워도 도망치지 않는 사람.”

민다우가스가 말했다.

“감정론이다.”

“응.”

푸리나는 바로 인정했다.

“그런데 감정이 사람을 움직여.”

“감정은 사람을 잘못된 곳으로도 움직인다.”

“맞아.”

그녀는 민다우가스를 보았다.

“그래서 네 구조가 필요해.”

민다우가스의 눈빛이 아주 조금 변했다.

푸리나는 이번에는 알토를 보았다.

“그리고 알토의 기록도 필요하지. 사람이 뭘 선택했는지, 왜 울었는지, 무엇을 지켰는지 남아야 하니까.”

알토가 말했다.

“그러면 너의 극장은 무엇을 하는가?”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아주 푸리나다운 얼굴로 말했다.

“조명을 켜.”

알토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민다우가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계속 말했다.

“구조가 길을 만들고, 기록이 그 길을 남기고, 극장은 사람들이 그 길을 걸을 이유를 보여줘.”

그녀는 손을 펼쳤다.

“그래서 셋 다 필요해.”

민다우가스가 건조하게 말했다.

“결론이 너무 아름답다.”

“나한테는 칭찬이야.”

“칭찬으로 한 말이 아니다.”

“그래도 받을래.”

알토가 작게 웃었다.

민다우가스는 그 웃음을 보고 말했다.

“웃을 상황인가?”

알토는 대답했다.

“웃음도 기록된다.”

“쓸모 있나?”

푸리나가 대신 말했다.

“엄청.”


---

회의는 다시 지도로 돌아갔다.

민다우가스는 병력 배치를 다시 그렸다.

“리투아니아는 북쪽 숲길을 연다. 몽골 기병이 깊게 들어오면 끊는다. 우리는 성을 지키지 않는다. 길을 지킨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르메니아는 남쪽 여관망을 열게. 피난민, 부상병, 전령, 보급 수레를 통과시킬 수 있어. 대신 여관을 군사 거점으로만 쓰지는 않을 거야.”

민다우가스가 물었다.

“왜지?”

“여관은 여관이어야 하니까.”

민다우가스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그 고집 때문에 보급 효율이 떨어진다.”

“아마도.”

“그런데도?”

푸리나는 대답했다.

“피난민이 문을 열었을 때 병영만 보이면, 다음에는 그 문을 여관이라고 믿지 않아.”

알토가 조용히 말했다.

“신뢰는 장기적 병참이다.”

민다우가스는 알토를 보았다.

알토는 담담했다.

“기록상 그렇다. 한 번 무너진 신뢰는 다시 세우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민다우가스는 짧게 침묵했다.

“그 표현은 쓸 만하다.”

푸리나는 알토에게 속삭였다.

“방금 칭찬이야?”

알토도 낮게 말했다.

“아마도.”

민다우가스가 말했다.

“들린다.”

푸리나는 바로 자세를 고쳤다.

“좋아. 계속하자.”

알토는 폴란드 지도 위에 작은 검은 표식을 놓았다.

“폴란드는 기록관과 계약관을 파견한다. 동맹군의 보급, 피난민 이송, 군사 원조, 포로 교환, 철수 조건을 모두 문서화한다.”

민다우가스가 말했다.

“전쟁 중 문서가 너무 많으면 느려진다.”

“그래서 짧게 한다.”

알토는 민다우가스를 보았다.

“하지만 기록되지 않은 약속은 전쟁 후 배신의 씨앗이 된다.”

“배신자는 죽이면 된다.”

“죽여도 배신의 기록은 남는다.”

“그래서?”

알토는 조용히 말했다.

“다음 배신을 막기 위해서다.”

민다우가스는 이번에는 반박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이상하네.”

민다우가스가 물었다.

“무엇이?”

“둘 다 엄청 무서운 말을 하는데, 방향은 꽤 비슷해.”

알토가 말했다.

“어떤 점에서?”

푸리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민다우가스는 반복되는 피해를 막으려고 구조를 만들고.”

두 번째 손가락.

“알토는 반복되는 배신과 실패를 막으려고 기록을 남기고.”

세 번째 손가락.

“나는 반복되는 절망을 막으려고 무대를 올려.”

그녀는 씩 웃었다.

“우린 전부 반복을 싫어하네.”

민다우가스가 말했다.

“나는 반복을 싫어하지 않는다. 통제되지 않는 반복이 문제다.”

알토가 말했다.

“기록되지 않는 반복이 문제다.”

푸리나가 말했다.

“나는 사람들이 자기 삶을 똑같은 비극이라고 믿는 게 싫어.”

셋은 잠깐 서로를 보았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세 지도가 하나의 지도처럼 보였다.

숲길은 피난로와 이어지고, 피난로는 기록된 보급선과 이어지고, 보급선은 다시 북쪽의 늪으로 이어졌다.

성벽과 여관과 문서.
복수와 기록과 극장.
생존과 개선과 소망.

각자 다른 언어였지만, 같은 적을 향해 있었다.


---

회의가 끝나갈 무렵, 민다우가스가 푸리나에게 물었다.

“너는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겠지. 모두가 자기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 말은 위험하다.”

“알아.”

“주인공이라 믿는 자는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있다.”

“그럴 수 있지.”

“희생해야 할 때, 희생을 거부할 수 있다.”

“응.”

“도망쳐야 할 때, 자기 장면을 지키겠다며 남을 수도 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서 어려워.”

민다우가스는 눈을 가늘게 떴다.

푸리나는 미소를 거두지 않았지만, 그 미소는 조금 옅어졌다.

“사람을 주인공으로 세운다는 건,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야. 오히려 반대지. 자기 선택을 하게 만드는 거야.”

“군주에게 불리하다.”

“응.”

“그래도 하나?”

“그래도 해.”

“왜?”

푸리나는 창밖을 보았다.

이번에는 피난민 수레가 아니라, 성벽 위에서 훈련하는 병사들이 보였다.

“몽골은 사람들에게 두 가지 역할만 줘. 복종하는 자. 죽는 자.”

그녀는 민다우가스를 돌아보았다.

“나는 그 배역표를 찢고 싶어.”

알토가 조용히 말했다.

“좋은 문장이다.”

푸리나는 바로 말했다.

“기록하지 마.”

알토는 이미 서기관을 보고 있었다.

서기관은 펜을 들었다가 멈췄다.

푸리나가 알토를 노려보았다.

“알토.”

알토는 담담하게 말했다.

“좋은 문장은 기록되어야 한다.”

“방금은 사적인 느낌이었어!”

“회의 중이다.”

“너무해.”

민다우가스가 말했다.

“기록해라.”

푸리나가 그를 보았다.

“너까지?”

“그 문장은 쓸 만하다. 병사들에게도 통한다.”

푸리나는 잠시 굳었다.

그리고 결국 웃었다.

“좋아. 그럼 기록해. 단, 내 이름도 같이.”

알토가 말했다.

“물론이다.”

민다우가스는 건조하게 덧붙였다.

“출처는 중요하다.”

푸리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둘 다 이상한 방식으로 성실하네.”


---

마지막 의제는 철수 조건이었다.

민다우가스는 분명하게 말했다.

“리투아니아는 정해진 선 이남으로 물러나지 않는다. 그 선을 넘으면, 북쪽 방어망은 무너진다.”

알토가 말했다.

“폴란드는 세 도시의 기록관을 철수시키지 않는다. 그 기록이 사라지면 전후 복구의 기준이 사라진다.”

푸리나는 말했다.

“아르메니아는 여관을 닫지 않아. 마지막 피난민이 들어올 때까지.”

민다우가스가 바로 보았다.

“마지막이라는 말은 위험하다.”

푸리나도 알고 있었다.

전쟁에서 마지막은 오지 않는다.
항상 한 명이 더 있다.
한 가족이 더 있다.
한 수레가 더 있다.
한 아이가 더 늦는다.

그레이가 있었다면 분명히 말했을 것이다.

군주님, 그 약속은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죠니라면 말했을 것이다.

전부 구할 수는 없어.

하융이라면 조용히 다른 가능성을 보았을 것이다.

레이튼이라면 물었을 것이다.

마지막이라는 이름은 누가 정합니까?

푸리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수정했다.

“가능한 한 오래.”

민다우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표현이 낫다.”

알토도 말했다.

“기록 가능한 약속이다.”

푸리나는 웃었다.

“방금 그레이가 없는데도 그레이한테 혼난 기분이야.”

알토가 물었다.

“그레이가 누구지?”

“내 양심이자 장부이자 제동장치.”

민다우가스가 말했다.

“좋은 신하군.”

푸리나는 조금 놀란 듯 그를 보았다.

“그 말, 진심?”

“그렇다. 그런 신하는 군주를 오래 살린다.”

푸리나는 잠깐 말이 없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웃었다.

“응. 맞아.”


---

회의가 끝났을 때, 세 지도는 하나로 겹쳐져 있었다.

위에는 민다우가스의 검은 표시.
그 옆에는 알토의 붉은 기록선.
그 사이에는 푸리나의 푸른 여관 표식.

완벽한 작전은 아니었다.

완벽한 동맹도 아니었다.

민다우가스는 여전히 푸리나를 지나치게 감정적인 군주로 보았다.
푸리나는 여전히 민다우가스를 사람을 톱니처럼 보는 위험한 군주로 보았다.
알토는 두 사람 모두를 기록될 가치가 있는, 그러나 반드시 지켜봐야 할 선택으로 보았다.

그래도 그날, 세 사람은 같은 지도 위에 손을 올렸다.

민다우가스가 말했다.

“생존이 우선이다.”

알토가 말했다.

“그 생존은 기록되어야 한다.”

푸리나가 말했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음 막으로 가야 해.”

세 문장은 서로 닮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같은 방향을 가리켰다.

창밖에서는 저녁 종이 울렸다.

멀리 동쪽에서는 아직 몽골의 말발굽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 알고 있었다.

그 소리는 곧 온다.

민다우가스는 지도를 접지 않았다.

“회의는 끝났다. 이제 실행한다.”

알토는 서기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펜이 움직였다.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지도 위의 작은 마을 표식을 하나 더했다.

민다우가스가 물었다.

“그 표식은 뭐지?”

푸리나는 웃었다.

“축제 예정지.”

“전쟁 중이다.”

“그래서.”

민다우가스는 그녀를 보았다.

“불필요하다.”

알토가 조용히 말했다.

“아니다.”

민다우가스의 시선이 알토에게 향했다.

알토는 기록서를 덮으며 말했다.

“전쟁 중에도 사람들이 모여 노래했다는 기록은 필요하다. 그것은 사기 기록이자, 공동체 지속성의 증거다.”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봤지?”

민다우가스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건조하게 말했다.

“병력 이동을 방해하지 않는다면 허가한다.”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좋아!”

그 외침은 회의실에 너무 밝게 울렸다.

민다우가스는 작게 눈을 찌푸렸다.

알토는 그 장면을 기록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

서기관의 펜은 조용히 움직였다.

동맹 회의 말미, 킬리키아의 군주가 전시 축제 예정지를 표시함.
리투아니아 대공은 조건부 허가.
폴란드 대공은 공동체 지속성의 증거로 기록 가치 인정.

그리고 그 아래, 알토는 직접 한 줄을 덧붙였다.

이 세계는 아직 더 나아질 수 있다.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았다.

민다우가스도 보았다.

아무도 지우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날 세 장의 지도는 하나의 작전도가 되었다.

살아남기 위한 지도.
기록되기 위한 지도.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시 노래하기 위한 지도였다.
(최대 5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