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50여관◆zAR16hM8he(52459695)2026-05-20 (수) 10:05:42
3막 — 키르케의 섬과 돌아온 짐승들
개정본
세 번째 섬은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키클롭스의 동굴은 어둡고 좁았고, 세이렌의 바다는 보이지 않는 노래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번 섬은 달랐다. 무대 위에 깔린 푸른 천이 천천히 걷히자, 그 아래에서 따뜻한 금빛 조명이 올라왔다.
섬은 숲이었다.
하지만 셔우드 숲처럼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장난스러운 숲은 아니었다. 이 숲은 더 짙고, 더 향기로웠다. 나뭇가지에는 붉은 열매가 매달려 있었고, 낮은 연기가 풀숲 사이를 기어갔다. 무대 한쪽에는 작은 저택이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안쪽에서는 따뜻한 불빛과 식탁의 그림자가 보였다.
푸리나는 배 난간에서 그 광경을 보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번 섬은 좀 괜찮아 보이는데?”
죠니가 그녀 옆에서 섬을 바라보았다.
“여왕님, 그 말은 보통 괜찮지 않은 섬에 도착했을 때 나와.”
“하지만 봐봐. 동굴도 없고, 외눈 괴물도 없고, 노래하는 안개도 없잖아.”
“응. 대신 문이 열려 있고, 음식 냄새가 나고, 아무도 우릴 막지 않네. 그게 더 수상할 때도 있어.”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죠니는 좋은 걸 봐도 먼저 의심하네.”
“오디세우스가 좋은 걸 그냥 믿었으면, 이 이야기는 1막에서 끝났을걸.”
아스테르다스는 이미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발끈은 이번에도 제대로 묶었다. 그는 그것을 죠니에게 보여주듯 한 번 발을 들어 보였다.
“봐, 이번엔 완벽하지?”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늘은 네 신발끈이 제일 믿음직하다.”
“그건 칭찬이야?”
“반쯤. 나머지 반은 다른 부분이 아직 덜 믿음직하다는 뜻이고.”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그래도 내려가도 되지?”
죠니는 숲과 열린 문, 그리고 따뜻한 식탁을 다시 보았다.
“천천히. 뛰어가서 먼저 먹는 건 금지.”
“왜?”
“동화나 서사에서, 모르는 집의 음식은 보통 이야기 진행 장치거든.”
“먹으면 진행되는 거 아냐?”
“응. 문제는 진행 방향이야.”
그레이는 배에서 작은 가방을 들고 내렸다. 이번에도 기록판보다 먼저 물병과 얇은 천, 마른 옷을 챙겼다. 그녀는 섬의 따뜻한 공기를 느끼며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습기가 많습니다.”
푸리나가 물었다.
“또 담요?”
“이번에는 마른 옷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죠니가 그레이의 가방을 보았다.
“그레이, 너는 섬보다 먼저 사고의 종류를 맞히는 것 같네.”
“맞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맞을 것 같아서 무섭다.”
하융은 조타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낮게 말했다.
“저 섬은 길을 막지는 않소.”
죠니가 돌아보았다.
“그럼 괜찮은 건가?”
“아니오. 길을 바꾸오.”
“그게 더 안 괜찮게 들리는데.”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들어간 발자국과 나오는 발자국이 다를 것이오.”
그 말에 푸리나의 손이 류트 위에서 멈췄다.
아스테르다스도 더 이상 뛰려 하지 않았다.
레이튼은 섬의 숲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흥미롭군요. 돌아온다는 것은 같은 발로 돌아오는 일일까요, 아니면 달라진 발을 받아들이는 일일까요?”
죠니가 말했다.
“레이튼, 이번엔 그 질문이 꽤 필요해 보이네.”
“그런가요?”
“응. 보통은 배에 돌아가서 하자고 했을 텐데, 이번엔 섬에 들어가기 전에 들어두는 게 나을 것 같거든.”
레이튼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
저택의 문 앞에는 라플리가 서 있었다.
오늘의 그녀는 키르케였다.
화려한 마녀의 로브라기보다, 오래된 마탑의 주인 같은 옷차림이었다. 검은색과 깊은 보라색이 섞인 옷자락이 발밑까지 내려왔고, 손에는 은빛 잔이 들려 있었다. 눈은 차갑고,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있었다.
그녀는 배에서 내린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이타카로 간다더니, 길을 꽤 잘못 들었네.”
죠니가 대답했다.
“그 말은 첫 섬부터 계속 듣고 있어서, 이제 좀 익숙해졌어.”
라플리는 그를 보았다.
“오디세우스?”
“오늘은 그렇다네.”
“어울리진 않는데.”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여왕님이 이미 배까지 띄워서 늦었어.”
푸리나는 라플리 뒤의 식탁을 보았다.
그 위에는 빵과 과일, 따뜻한 수프, 붉은 술이 놓여 있었다. 모두 무대용 소품이거나 안전하게 준비된 음식일 터였다. 그래도 냄새는 이상하게 생생했다.
“키르케의 섬이네.”
라플리는 웃었다.
“잘 아네.”
“오디세이아니까.”
“그럼 알겠지. 여기서 함부로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아스테르다스가 손을 멈췄다.
이미 빵에 가까이 가 있던 손이었다.
죠니가 그를 보았다.
“봐. 내가 뭐랬어.”
아스테르다스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안 먹었어.”
“좋아. 드디어 ‘아직’을 빼는 법을 배웠네.”
라플리는 그 광경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먹겠지. 배고픈 사람은 항상 있고, 쉬고 싶은 사람도 항상 있으니까.”
그 말은 이상하게 부드러웠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그레이는 식탁을 보았다. 따뜻한 음식. 열린 문. 마른 의자. 바다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앉고 싶어질 자리였다.
“쉬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라플리가 그레이를 보았다.
“물론. 문제는 쉬는 순간, 자기가 무엇을 내려놓는지 모른다는 거지.”
푸리나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건 무슨 뜻이야?”
라플리는 잔을 흔들었다.
“앉아봐. 알게 될 테니까.”
죠니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여왕님, 이번엔 내가 먼저 볼게.”
“괜찮겠어?”
“괜찮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안 괜찮다고 빠지면 오디세우스 배역료를 못 받을 것 같네.”
“배역료는 없는데?”
“그럼 더 억울하네.”
푸리나는 잠깐 웃었다.
그 웃음은 짧았다.
죠니는 식탁 앞에 앉지 않았다. 대신 식탁을 지나쳐 라플리 앞에 섰다.
“뭘 보여주려는 거야?”
라플리는 그를 빤히 보았다.
“네가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사람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지금 보기엔 다 사람인데.”
“겉모양은 그렇지.”
라플리는 잔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바다는 사람을 깎아. 전쟁도 그렇고, 공포도 그렇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도 그렇지. 사람은 살아남으려고 많은 걸 삼킨다. 짐승처럼 뛰고, 짐승처럼 숨고, 짐승처럼 물어뜯고, 그런 다음 집에 돌아가서 사람 얼굴을 하지.”
그녀의 웃음이 희미해졌다.
“그게 정말 돌아온 걸까?”
죠니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조금 낮아졌다.
“그 질문을 하려고 남의 속을 뒤집어놓을 생각이면, 꽤 취미가 안 좋은데.”
라플리는 무심하게 말했다.
“상처는 안에 있다고 사라지지 않아.”
“그건 맞아.”
죠니는 식탁 위의 잔을 보았다.
“그런데 안에 있다고 해서, 남이 멋대로 꺼내 전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라플리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그럼 못 본 척 데려가게?”
“아니. 볼 거야.”
죠니는 천천히 말했다.
“다만 구경거리처럼 보진 않을 거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때까지 옆에 있을 거야. 적어도 그 정도는 선장이 해야 할 일 같거든.”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해졌다.
라플리는 한참 죠니를 보았다.
그러다 웃었다.
“좋아. 그럼 얼마나 잘 기다리는지 보자.”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식탁 위의 붉은 술잔들이 흔들렸다.
그리고 향이 퍼졌다.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흙냄새가 섞인 향.
무대 위의 조명이 낮아졌다.
---
처음 변화한 것은 엑스트라 선원들이었다.
그들의 어깨가 움츠러들고, 손이 바닥을 짚었다. 누군가는 낮은 울음소리를 냈고, 누군가는 겁먹은 짐승처럼 뒤로 물러났다. 물론 완전한 변신은 아니었다. 배우들은 가면과 망토, 몸짓으로 짐승이 되어갔다. 하지만 푸리나의 신술이 얇게 깔린 무대 위에서, 그 변화는 단순한 분장보다 더 생생하게 보였다.
다음 순간, 향이 아스테르다스에게 닿았다.
그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깨가 낮아지고, 발끝이 무대 바닥을 긁었다.
하지만 그것은 겁먹은 짐승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냥감을 향해 떨어지기 직전의 유성.
아직 하늘에 있으나, 이미 낙하지점을 정하려는 몸.
라플리의 마법은 그를 약하게 만들지 못했다. 다만, 그 안에 있던 가장 원초적인 운동성을 겉으로 끌어냈다.
달려라.
들이받아라.
생각보다 먼저 떨어져라.
그 충동은 단순한 야성이 아니었다. 아스테르다스가 원래부터 품고 있던 속도와 낙하와 돌파의 본능이었다. 전장에서 적진을 가르고, 공중에서 궤도를 바꾸고, 닿아야 할 곳에 떨어지는 무인의 몸이 먼저 깨어난 것이다.
죠니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붙잡지는 않았다.
붙잡아 멈출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씨.”
죠니가 낮게 말했다.
“내가 막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그러니까 네가 골라. 지금 저 마법이 미는 방향으로 떨어질 건지, 아니면 네가 정한 곳으로 떨어질 건지.”
아스테르다스의 눈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공포가 아니었다.
방향을 빼앗기기 직전의 분노였다.
다음 순간, 그의 발이 바닥을 눌렀다.
청흑빛 기운이 발끝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어깨로 감겨 올라갔다. 충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질 필요도 없었다.
돌진하려는 힘은 그 자체로 아스테르다스의 일부였다.
다만, 방향을 잃은 짐승의 선이 아니라, 낙하지점을 정한 유성의 궤도로 다시 묶였다.
아스테르다스는 이를 악문 채 웃었다.
“그래.”
그의 손이 바닥을 짚기 직전 멈췄다.
짐승이 되려던 자세는, 어느새 낮게 몸을 낮춘 무인의 준비 자세가 되어 있었다.
“이건 내 낙하지점이 아니야.”
라플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버티네.”
아스테르다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선명했다.
“고른 거야.”
그 말과 함께 청흑빛 기운이 한 번 더 그의 몸을 돌았다.
멧돼지처럼 들이받으려던 충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정렬되었다. 필요하다면 떨어질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돌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라플리의 향이 정한 방향이 아니라, 아스테르다스 자신이 고른 방향일 것이다.
죠니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다.
“그래. 그쪽이 훨씬 형씨답지.”
아스테르다스는 숨을 내쉬었다.
“위험했네.”
죠니가 물었다.
“너한테?”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떨어질 곳을 잘못 고르면, 옆 사람들까지 휩쓸릴 뻔했어.”
그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짐승이 되는 게 무서운 게 아니야. 방향을 남에게 맡기는 게 무서운 거지.”
죠니는 잠시 그를 보았다.
“좋은 말이네.”
“칭찬?”
“응. 이번엔 거의 온전히.”
아스테르다스는 짧게 웃었다.
---
그레이는 이미 다른 선원들 곁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누군가는 여우처럼 웅크렸고, 누군가는 새처럼 팔을 접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괜찮습니까?”도 바로 묻지 않았다. 괜찮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녀는 물병을 열어 가까운 곳에 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그레이의 목소리는 작았다.
“마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까이 두겠습니다.”
토끼처럼 떨고 있던 배우 하나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레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뚫어져라 보지도 않았다.
그저 옆에 있었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처음에는 입에서 거의 튀어나올 뻔했다.
귀엽다.
작고, 웅크리고, 가면을 쓴 모습들이 무대 위에서 잠깐은 귀엽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플리가 그녀를 보았다.
“말해봐.”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라플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귀엽지? 사람이 말 대신 울음으로 대답하는 게.”
푸리나의 손이 류트 위에서 굳었다.
라플리는 계속 말했다.
“내가 짐승으로 만든 게 아니야. 바다가, 전쟁이, 공포가, 살아남기 위해 안쪽에 구겨 넣은 걸 겉으로 꺼냈을 뿐이지.”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라플리는 식탁을 가리켰다.
“사람은 배고프면 먹어. 무서우면 숨고, 궁지에 몰리면 물어뜯고, 다치면 웅크리지. 그걸 보기 싫어서 이름과 옷과 예절로 덮어두는 거야.”
그녀는 죠니를 보았다.
“자, 오디세우스. 이들을 데리고 집에 갈 수 있겠어?”
죠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웅크린 선원들을 보았다.
아스테르다스가 자기 힘의 방향을 다시 고른 모습을 보았다.
그레이가 물병을 놓고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집에 데려가는 건 해야지.”
라플리의 입가가 올라갔다.
“저 꼴로?”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저 꼴이라서.”
그 말에 푸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죠니는 이어 말했다.
“멀쩡한 사람만 데려갈 거면 선장이 필요 없잖아. 알아서 걸어가면 되지. 배가 필요한 건, 혼자서는 못 돌아가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야.”
라플리는 침묵했다.
죠니는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라플리, 이런 건 네가 꽤 그럴듯하게 말해도 마음에 안 들어. 남의 상처를 보여주는 게 치료는 아니거든.”
라플리는 웃지 않았다.
“그럼 치료해봐.”
죠니는 푸리나를 보았다.
“여왕님.”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응.”
“이번엔 웃기는 노래 말고. 돌아오게 하는 노래.”
푸리나는 잠시 류트를 내려다보았다.
세이렌의 섬에서, 그녀는 배웠다.
사람을 혼자 상처 속에 세우는 노래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다른 사람을 앉히는 노래도 있다.
이번에는 더 조심해야 했다.
짐승이 된 이들을 억지로 사람이라 부르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영 짐승이라 부르는 것도 폭력이었다.
푸리나는 숨을 고르고, 류트를 들었다.
---
첫 음은 낮았다.
섬의 숲에 깔린 향을 밀어내려 하지 않았다. 라플리의 마법을 부수려 하지도 않았다. 대신, 웅크린 이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음이었다.
푸리나는 노래했다.
> 돌아오라, 사람의 이름으로.
그러나 서두르지 마라.
손이 떨리면 손부터,
목이 막히면 숨부터,
말이 나오지 않으면
울음 옆에 앉아도 좋다.
발굽도, 깃도, 이빨도
잠시 내려놓을 곳이 여기 있다.
돌아오라.
명령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노래는 밝지 않았다.
하지만 따뜻했다.
그레이는 노래에 맞춰 움직였다.
그녀는 선원들에게 하나씩 천을 건넸다. 누구에게도 억지로 씌우지 않았다. 그저 가까운 곳에 놓았다. 물을 마시지 못하는 이에게는 잔을 더 가까이 밀어주었다. 손이 떨리는 이에게는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가, 상대가 원하지 않는 듯하면 바로 거두었다.
“바로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가 작게 말했다.
“사람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여우 가면을 쓴 선원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푸리나의 노래가 이어졌다.
> 네가 아직 네 이름을 듣기 어렵다면,
우리는 크게 부르지 않으리라.
네가 아직 식탁에 앉기 어렵다면,
그릇을 네 곁에 두리라.
돌아오라.
돌아오지 못하겠다면,
우리가 먼저 네 곁에 앉으리라.
아스테르다스는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끝은 아직 뜨거웠다.
짐승의 발톱처럼 느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또렷하게 자신의 손이었기 때문이다. 떨어질 곳을 정하고, 적을 치고, 동료를 지킬 수 있는 손. 동시에 방향을 잘못 고르면 너무 많은 것을 휩쓸 수 있는 손.
그는 작게 말했다.
“죠니.”
“응.”
“방금 내가 정말 떨어졌으면, 이 섬 반쯤은 부서졌겠지?”
죠니는 섬의 숲과 저택, 그리고 라플리를 번갈아 보았다.
“반쯤으로 끝났으면 다행이었을걸.”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그 웃음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기 힘을 다시 확인한 무인의 웃음이었다.
“다음엔 더 조심해야겠네.”
“네가 그렇게 말하면, 조심이라는 단어도 꽤 빠르게 들려.”
“그래도 할 거야.”
“알아. 그래서 형씨가 여기 있는 거겠지.”
그레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아스테르다스 앞에 물잔을 놓았다.
“물을 드시겠습니까?”
아스테르다스는 물잔을 받았다.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손이 뜨거우시면, 천을 감아드릴 수 있습니다.”
아스테르다스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아. 이 열은 내가 가져갈게.”
그레이는 잠시 그를 보았다.
“그럼 옆에 두겠습니다. 필요하면 말씀해주십시오.”
“응.”
아스테르다스는 낮게 웃었다.
“고마워. 기다려주는 건 꽤 도움이 되네.”
그레이는 조금 난처해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
레이튼은 라플리 곁에 서 있었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혹은, 변했더라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라플리가 그를 보았다.
“당신은 안 변하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이미 질문이라는 꽤 번거로운 짐승을 안에 기르고 있어서일지도 모르지요.”
라플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농담?”
“절반쯤은요.”
레이튼은 웅크린 선원들과, 스스로 궤도를 되찾은 아스테르다스를 보았다.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꺼낸 것은 본질입니까, 아니면 상처가 취한 임시 형태입니까?”
라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레이튼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사람이 공포 속에서 짐승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을 그 사람의 본질로 고정해버리면, 당신은 상처를 본 것이 아니라 결론을 너무 빨리 붙인 셈이 되겠지요.”
라플리는 오래 침묵했다.
그러다 낮게 웃었다.
“역시 귀찮은 질문을 하는군.”
“좋은 질문은 대체로 조금 귀찮습니다.”
“그럼 저 선장의 답은?”
라플리는 죠니를 보았다.
죠니는 지금도 아스테르다스와 선원들 사이에 서 있었다. 선장이라기보다, 피곤한 동료처럼 보였다.
레이튼은 말했다.
“아직 답하는 중이겠지요.”
---
푸리나의 노래가 끝나갈 무렵, 선원들은 하나둘 사람의 자세를 되찾았다.
누군가는 가면을 벗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벗지 못했지만, 더 이상 바닥에 엎드려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울었다.
그레이는 그 울음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그저 가까이에 마른 천을 놓았다.
라플리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처음보다 덜 비웃는 얼굴이었다.
푸리나는 류트를 천천히 내렸다.
“이제 됐어?”
라플리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죠니를 보았다.
“좋아. 데려가 봐.”
죠니는 일어섰다.
“보내주는 건가?”
“시험은 끝났어.”
“친절하진 않았네.”
“친절한 섬을 원했다면 키르케에게 오면 안 되지.”
죠니는 피식 웃었다.
“그건 맞는 말이네.”
라플리는 식탁 위의 잔을 정리했다.
“하지만 기억해. 집에 도착한다고 다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죠니는 그 말을 받아넘기지 않았다.
“알아.”
“정말?”
“응.”
죠니는 그레이가 접어둔 담요와 물병, 푸리나의 류트, 아스테르다스의 아직 열이 남은 손을 보았다.
“그래서 배에 물이랑 담요가 있는 거겠지.”
라플리는 눈을 가늘게 했다.
“그런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죠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충분하지 않지. 그런데 그런 것부터 없으면, 더 큰 말은 다 빈소리야.”
라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이상하게 이 섬의 향기보다 오래 남았다.
---
그들이 배로 돌아올 때, 섬의 금빛 조명은 조금씩 낮아졌다.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저택을 돌아보았다.
“라플리.”
라플리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왜?”
“아까 내가…… 귀엽다고 말할 뻔했어.”
라플리는 조용히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류트를 품에 안았다.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라플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 정도면 배웠네.”
“칭찬이야?”
“절반쯤.”
죠니가 옆에서 말했다.
“오늘 다들 절반짜리 칭찬이 많네.”
라플리는 그를 보았다.
“나머지 절반은 경고니까.”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익숙해.”
그들은 배에 올랐다.
하융은 조타륜을 잡고 있었다.
“돌아오는 발자국이 달라졌구려.”
죠니가 말했다.
“그래도 돌아왔어.”
“그것이 중요하오.”
하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다음 바다는 더 좁을 것이오. 길이 둘로 갈라지고, 어느 쪽도 온전하지 않소.”
푸리나는 무대 뒤쪽을 보았다.
바다는 다시 어두워지고 있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레이튼이 낮게 말했다.
“선택의 바다군요.”
아스테르다스는 물잔을 쥔 채 말했다.
“이번엔 모두 돌아왔지?”
그레이는 대답하기 전에 선원들을 한 명씩 보았다.
누군가는 아직 말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담요를 쥔 손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 배 위에 있었다.
“네.”
그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이번에는 모두 돌아왔습니다.”
그 말에 푸리나는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죠니는 난간에 기대어 섬이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말, 다음 막에서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네.”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무대 뒤 간판이 천천히 내려왔다.
4막 —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선택의 바다
바다는 흔들렸다.
이번에는 파도 소리가 조금 더 낮았다.
그리고 배 위에는, 방금 사람으로 돌아온 이들의 숨소리가 오래 남았다.
개정본
세 번째 섬은 이상할 만큼 평온했다.
키클롭스의 동굴은 어둡고 좁았고, 세이렌의 바다는 보이지 않는 노래로 가득했다. 그런데 이번 섬은 달랐다. 무대 위에 깔린 푸른 천이 천천히 걷히자, 그 아래에서 따뜻한 금빛 조명이 올라왔다.
섬은 숲이었다.
하지만 셔우드 숲처럼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장난스러운 숲은 아니었다. 이 숲은 더 짙고, 더 향기로웠다. 나뭇가지에는 붉은 열매가 매달려 있었고, 낮은 연기가 풀숲 사이를 기어갔다. 무대 한쪽에는 작은 저택이 있었다. 문은 열려 있었고, 그 안쪽에서는 따뜻한 불빛과 식탁의 그림자가 보였다.
푸리나는 배 난간에서 그 광경을 보며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번 섬은 좀 괜찮아 보이는데?”
죠니가 그녀 옆에서 섬을 바라보았다.
“여왕님, 그 말은 보통 괜찮지 않은 섬에 도착했을 때 나와.”
“하지만 봐봐. 동굴도 없고, 외눈 괴물도 없고, 노래하는 안개도 없잖아.”
“응. 대신 문이 열려 있고, 음식 냄새가 나고, 아무도 우릴 막지 않네. 그게 더 수상할 때도 있어.”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죠니는 좋은 걸 봐도 먼저 의심하네.”
“오디세우스가 좋은 걸 그냥 믿었으면, 이 이야기는 1막에서 끝났을걸.”
아스테르다스는 이미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신발끈은 이번에도 제대로 묶었다. 그는 그것을 죠니에게 보여주듯 한 번 발을 들어 보였다.
“봐, 이번엔 완벽하지?”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늘은 네 신발끈이 제일 믿음직하다.”
“그건 칭찬이야?”
“반쯤. 나머지 반은 다른 부분이 아직 덜 믿음직하다는 뜻이고.”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그래도 내려가도 되지?”
죠니는 숲과 열린 문, 그리고 따뜻한 식탁을 다시 보았다.
“천천히. 뛰어가서 먼저 먹는 건 금지.”
“왜?”
“동화나 서사에서, 모르는 집의 음식은 보통 이야기 진행 장치거든.”
“먹으면 진행되는 거 아냐?”
“응. 문제는 진행 방향이야.”
그레이는 배에서 작은 가방을 들고 내렸다. 이번에도 기록판보다 먼저 물병과 얇은 천, 마른 옷을 챙겼다. 그녀는 섬의 따뜻한 공기를 느끼며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
“습기가 많습니다.”
푸리나가 물었다.
“또 담요?”
“이번에는 마른 옷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죠니가 그레이의 가방을 보았다.
“그레이, 너는 섬보다 먼저 사고의 종류를 맞히는 것 같네.”
“맞히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맞을 것 같아서 무섭다.”
하융은 조타수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섬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말이 없다가, 낮게 말했다.
“저 섬은 길을 막지는 않소.”
죠니가 돌아보았다.
“그럼 괜찮은 건가?”
“아니오. 길을 바꾸오.”
“그게 더 안 괜찮게 들리는데.”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이 들어간 발자국과 나오는 발자국이 다를 것이오.”
그 말에 푸리나의 손이 류트 위에서 멈췄다.
아스테르다스도 더 이상 뛰려 하지 않았다.
레이튼은 섬의 숲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흥미롭군요. 돌아온다는 것은 같은 발로 돌아오는 일일까요, 아니면 달라진 발을 받아들이는 일일까요?”
죠니가 말했다.
“레이튼, 이번엔 그 질문이 꽤 필요해 보이네.”
“그런가요?”
“응. 보통은 배에 돌아가서 하자고 했을 텐데, 이번엔 섬에 들어가기 전에 들어두는 게 나을 것 같거든.”
레이튼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
저택의 문 앞에는 라플리가 서 있었다.
오늘의 그녀는 키르케였다.
화려한 마녀의 로브라기보다, 오래된 마탑의 주인 같은 옷차림이었다. 검은색과 깊은 보라색이 섞인 옷자락이 발밑까지 내려왔고, 손에는 은빛 잔이 들려 있었다. 눈은 차갑고,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있었다.
그녀는 배에서 내린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이타카로 간다더니, 길을 꽤 잘못 들었네.”
죠니가 대답했다.
“그 말은 첫 섬부터 계속 듣고 있어서, 이제 좀 익숙해졌어.”
라플리는 그를 보았다.
“오디세우스?”
“오늘은 그렇다네.”
“어울리진 않는데.”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여왕님이 이미 배까지 띄워서 늦었어.”
푸리나는 라플리 뒤의 식탁을 보았다.
그 위에는 빵과 과일, 따뜻한 수프, 붉은 술이 놓여 있었다. 모두 무대용 소품이거나 안전하게 준비된 음식일 터였다. 그래도 냄새는 이상하게 생생했다.
“키르케의 섬이네.”
라플리는 웃었다.
“잘 아네.”
“오디세이아니까.”
“그럼 알겠지. 여기서 함부로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도.”
아스테르다스가 손을 멈췄다.
이미 빵에 가까이 가 있던 손이었다.
죠니가 그를 보았다.
“봐. 내가 뭐랬어.”
아스테르다스는 천천히 손을 거두었다.
“안 먹었어.”
“좋아. 드디어 ‘아직’을 빼는 법을 배웠네.”
라플리는 그 광경을 흥미롭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래도 누군가는 먹겠지. 배고픈 사람은 항상 있고, 쉬고 싶은 사람도 항상 있으니까.”
그 말은 이상하게 부드러웠다.
그래서 더 불편했다.
그레이는 식탁을 보았다. 따뜻한 음식. 열린 문. 마른 의자. 바다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앉고 싶어질 자리였다.
“쉬는 것 자체는 잘못이 아닙니다.”
라플리가 그레이를 보았다.
“물론. 문제는 쉬는 순간, 자기가 무엇을 내려놓는지 모른다는 거지.”
푸리나는 살짝 미간을 좁혔다.
“그건 무슨 뜻이야?”
라플리는 잔을 흔들었다.
“앉아봐. 알게 될 테니까.”
죠니는 한 발 앞으로 나섰다.
“여왕님, 이번엔 내가 먼저 볼게.”
“괜찮겠어?”
“괜찮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고, 안 괜찮다고 빠지면 오디세우스 배역료를 못 받을 것 같네.”
“배역료는 없는데?”
“그럼 더 억울하네.”
푸리나는 잠깐 웃었다.
그 웃음은 짧았다.
죠니는 식탁 앞에 앉지 않았다. 대신 식탁을 지나쳐 라플리 앞에 섰다.
“뭘 보여주려는 거야?”
라플리는 그를 빤히 보았다.
“네가 데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사람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지금 보기엔 다 사람인데.”
“겉모양은 그렇지.”
라플리는 잔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바다는 사람을 깎아. 전쟁도 그렇고, 공포도 그렇고, 집에 돌아가야 한다는 말도 그렇지. 사람은 살아남으려고 많은 걸 삼킨다. 짐승처럼 뛰고, 짐승처럼 숨고, 짐승처럼 물어뜯고, 그런 다음 집에 돌아가서 사람 얼굴을 하지.”
그녀의 웃음이 희미해졌다.
“그게 정말 돌아온 걸까?”
죠니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조금 낮아졌다.
“그 질문을 하려고 남의 속을 뒤집어놓을 생각이면, 꽤 취미가 안 좋은데.”
라플리는 무심하게 말했다.
“상처는 안에 있다고 사라지지 않아.”
“그건 맞아.”
죠니는 식탁 위의 잔을 보았다.
“그런데 안에 있다고 해서, 남이 멋대로 꺼내 전시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지.”
라플리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그럼 못 본 척 데려가게?”
“아니. 볼 거야.”
죠니는 천천히 말했다.
“다만 구경거리처럼 보진 않을 거고, 다시 사람으로 돌아올 때까지 옆에 있을 거야. 적어도 그 정도는 선장이 해야 할 일 같거든.”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해졌다.
라플리는 한참 죠니를 보았다.
그러다 웃었다.
“좋아. 그럼 얼마나 잘 기다리는지 보자.”
그녀가 손가락을 튕겼다.
식탁 위의 붉은 술잔들이 흔들렸다.
그리고 향이 퍼졌다.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흙냄새가 섞인 향.
무대 위의 조명이 낮아졌다.
---
처음 변화한 것은 엑스트라 선원들이었다.
그들의 어깨가 움츠러들고, 손이 바닥을 짚었다. 누군가는 낮은 울음소리를 냈고, 누군가는 겁먹은 짐승처럼 뒤로 물러났다. 물론 완전한 변신은 아니었다. 배우들은 가면과 망토, 몸짓으로 짐승이 되어갔다. 하지만 푸리나의 신술이 얇게 깔린 무대 위에서, 그 변화는 단순한 분장보다 더 생생하게 보였다.
다음 순간, 향이 아스테르다스에게 닿았다.
그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어깨가 낮아지고, 발끝이 무대 바닥을 긁었다.
하지만 그것은 겁먹은 짐승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냥감을 향해 떨어지기 직전의 유성.
아직 하늘에 있으나, 이미 낙하지점을 정하려는 몸.
라플리의 마법은 그를 약하게 만들지 못했다. 다만, 그 안에 있던 가장 원초적인 운동성을 겉으로 끌어냈다.
달려라.
들이받아라.
생각보다 먼저 떨어져라.
그 충동은 단순한 야성이 아니었다. 아스테르다스가 원래부터 품고 있던 속도와 낙하와 돌파의 본능이었다. 전장에서 적진을 가르고, 공중에서 궤도를 바꾸고, 닿아야 할 곳에 떨어지는 무인의 몸이 먼저 깨어난 것이다.
죠니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나 붙잡지는 않았다.
붙잡아 멈출 수 있는 상대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씨.”
죠니가 낮게 말했다.
“내가 막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 안 해. 그러니까 네가 골라. 지금 저 마법이 미는 방향으로 떨어질 건지, 아니면 네가 정한 곳으로 떨어질 건지.”
아스테르다스의 눈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공포가 아니었다.
방향을 빼앗기기 직전의 분노였다.
다음 순간, 그의 발이 바닥을 눌렀다.
청흑빛 기운이 발끝에서 허리로, 허리에서 어깨로 감겨 올라갔다. 충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라질 필요도 없었다.
돌진하려는 힘은 그 자체로 아스테르다스의 일부였다.
다만, 방향을 잃은 짐승의 선이 아니라, 낙하지점을 정한 유성의 궤도로 다시 묶였다.
아스테르다스는 이를 악문 채 웃었다.
“그래.”
그의 손이 바닥을 짚기 직전 멈췄다.
짐승이 되려던 자세는, 어느새 낮게 몸을 낮춘 무인의 준비 자세가 되어 있었다.
“이건 내 낙하지점이 아니야.”
라플리의 눈이 가늘어졌다.
“버티네.”
아스테르다스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니.”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선명했다.
“고른 거야.”
그 말과 함께 청흑빛 기운이 한 번 더 그의 몸을 돌았다.
멧돼지처럼 들이받으려던 충동은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정렬되었다. 필요하다면 떨어질 수 있었다. 필요하다면 돌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라플리의 향이 정한 방향이 아니라, 아스테르다스 자신이 고른 방향일 것이다.
죠니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다.
“그래. 그쪽이 훨씬 형씨답지.”
아스테르다스는 숨을 내쉬었다.
“위험했네.”
죠니가 물었다.
“너한테?”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떨어질 곳을 잘못 고르면, 옆 사람들까지 휩쓸릴 뻔했어.”
그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짐승이 되는 게 무서운 게 아니야. 방향을 남에게 맡기는 게 무서운 거지.”
죠니는 잠시 그를 보았다.
“좋은 말이네.”
“칭찬?”
“응. 이번엔 거의 온전히.”
아스테르다스는 짧게 웃었다.
---
그레이는 이미 다른 선원들 곁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누군가는 여우처럼 웅크렸고, 누군가는 새처럼 팔을 접었다. 그녀는 그들에게 이름을 묻지 않았다. “괜찮습니까?”도 바로 묻지 않았다. 괜찮지 않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대신 그녀는 물병을 열어 가까운 곳에 놓았다.
“여기 있습니다.”
그레이의 목소리는 작았다.
“마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까이 두겠습니다.”
토끼처럼 떨고 있던 배우 하나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레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지만 뚫어져라 보지도 않았다.
그저 옆에 있었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며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처음에는 입에서 거의 튀어나올 뻔했다.
귀엽다.
작고, 웅크리고, 가면을 쓴 모습들이 무대 위에서 잠깐은 귀엽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플리가 그녀를 보았다.
“말해봐.”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라플리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귀엽지? 사람이 말 대신 울음으로 대답하는 게.”
푸리나의 손이 류트 위에서 굳었다.
라플리는 계속 말했다.
“내가 짐승으로 만든 게 아니야. 바다가, 전쟁이, 공포가, 살아남기 위해 안쪽에 구겨 넣은 걸 겉으로 꺼냈을 뿐이지.”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라플리는 식탁을 가리켰다.
“사람은 배고프면 먹어. 무서우면 숨고, 궁지에 몰리면 물어뜯고, 다치면 웅크리지. 그걸 보기 싫어서 이름과 옷과 예절로 덮어두는 거야.”
그녀는 죠니를 보았다.
“자, 오디세우스. 이들을 데리고 집에 갈 수 있겠어?”
죠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바닥에 웅크린 선원들을 보았다.
아스테르다스가 자기 힘의 방향을 다시 고른 모습을 보았다.
그레이가 물병을 놓고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집에 데려가는 건 해야지.”
라플리의 입가가 올라갔다.
“저 꼴로?”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저 꼴이라서.”
그 말에 푸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죠니는 이어 말했다.
“멀쩡한 사람만 데려갈 거면 선장이 필요 없잖아. 알아서 걸어가면 되지. 배가 필요한 건, 혼자서는 못 돌아가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야.”
라플리는 침묵했다.
죠니는 낮게, 그러나 분명하게 덧붙였다.
“그리고 라플리, 이런 건 네가 꽤 그럴듯하게 말해도 마음에 안 들어. 남의 상처를 보여주는 게 치료는 아니거든.”
라플리는 웃지 않았다.
“그럼 치료해봐.”
죠니는 푸리나를 보았다.
“여왕님.”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응.”
“이번엔 웃기는 노래 말고. 돌아오게 하는 노래.”
푸리나는 잠시 류트를 내려다보았다.
세이렌의 섬에서, 그녀는 배웠다.
사람을 혼자 상처 속에 세우는 노래가 있다.
그리고 그 옆에 다른 사람을 앉히는 노래도 있다.
이번에는 더 조심해야 했다.
짐승이 된 이들을 억지로 사람이라 부르는 것은 폭력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영영 짐승이라 부르는 것도 폭력이었다.
푸리나는 숨을 고르고, 류트를 들었다.
---
첫 음은 낮았다.
섬의 숲에 깔린 향을 밀어내려 하지 않았다. 라플리의 마법을 부수려 하지도 않았다. 대신, 웅크린 이들이 들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음이었다.
푸리나는 노래했다.
> 돌아오라, 사람의 이름으로.
그러나 서두르지 마라.
손이 떨리면 손부터,
목이 막히면 숨부터,
말이 나오지 않으면
울음 옆에 앉아도 좋다.
발굽도, 깃도, 이빨도
잠시 내려놓을 곳이 여기 있다.
돌아오라.
명령이 아니라,
기다림으로.
노래는 밝지 않았다.
하지만 따뜻했다.
그레이는 노래에 맞춰 움직였다.
그녀는 선원들에게 하나씩 천을 건넸다. 누구에게도 억지로 씌우지 않았다. 그저 가까운 곳에 놓았다. 물을 마시지 못하는 이에게는 잔을 더 가까이 밀어주었다. 손이 떨리는 이에게는 자신의 손을 내밀었다가, 상대가 원하지 않는 듯하면 바로 거두었다.
“바로 말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가 작게 말했다.
“사람으로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으니까요.”
그 말에, 여우 가면을 쓴 선원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푸리나의 노래가 이어졌다.
> 네가 아직 네 이름을 듣기 어렵다면,
우리는 크게 부르지 않으리라.
네가 아직 식탁에 앉기 어렵다면,
그릇을 네 곁에 두리라.
돌아오라.
돌아오지 못하겠다면,
우리가 먼저 네 곁에 앉으리라.
아스테르다스는 두 손을 내려다보았다.
그의 손끝은 아직 뜨거웠다.
짐승의 발톱처럼 느껴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또렷하게 자신의 손이었기 때문이다. 떨어질 곳을 정하고, 적을 치고, 동료를 지킬 수 있는 손. 동시에 방향을 잘못 고르면 너무 많은 것을 휩쓸 수 있는 손.
그는 작게 말했다.
“죠니.”
“응.”
“방금 내가 정말 떨어졌으면, 이 섬 반쯤은 부서졌겠지?”
죠니는 섬의 숲과 저택, 그리고 라플리를 번갈아 보았다.
“반쯤으로 끝났으면 다행이었을걸.”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그 웃음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자기 힘을 다시 확인한 무인의 웃음이었다.
“다음엔 더 조심해야겠네.”
“네가 그렇게 말하면, 조심이라는 단어도 꽤 빠르게 들려.”
“그래도 할 거야.”
“알아. 그래서 형씨가 여기 있는 거겠지.”
그레이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아스테르다스 앞에 물잔을 놓았다.
“물을 드시겠습니까?”
아스테르다스는 물잔을 받았다.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고마워.”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손이 뜨거우시면, 천을 감아드릴 수 있습니다.”
아스테르다스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괜찮아. 이 열은 내가 가져갈게.”
그레이는 잠시 그를 보았다.
“그럼 옆에 두겠습니다. 필요하면 말씀해주십시오.”
“응.”
아스테르다스는 낮게 웃었다.
“고마워. 기다려주는 건 꽤 도움이 되네.”
그레이는 조금 난처해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
레이튼은 라플리 곁에 서 있었다.
그는 변하지 않았다.
혹은, 변했더라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라플리가 그를 보았다.
“당신은 안 변하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이미 질문이라는 꽤 번거로운 짐승을 안에 기르고 있어서일지도 모르지요.”
라플리는 눈을 가늘게 떴다.
“농담?”
“절반쯤은요.”
레이튼은 웅크린 선원들과, 스스로 궤도를 되찾은 아스테르다스를 보았다.
“하지만 한 가지 묻고 싶습니다. 당신이 꺼낸 것은 본질입니까, 아니면 상처가 취한 임시 형태입니까?”
라플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레이튼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사람이 공포 속에서 짐승처럼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순간을 그 사람의 본질로 고정해버리면, 당신은 상처를 본 것이 아니라 결론을 너무 빨리 붙인 셈이 되겠지요.”
라플리는 오래 침묵했다.
그러다 낮게 웃었다.
“역시 귀찮은 질문을 하는군.”
“좋은 질문은 대체로 조금 귀찮습니다.”
“그럼 저 선장의 답은?”
라플리는 죠니를 보았다.
죠니는 지금도 아스테르다스와 선원들 사이에 서 있었다. 선장이라기보다, 피곤한 동료처럼 보였다.
레이튼은 말했다.
“아직 답하는 중이겠지요.”
---
푸리나의 노래가 끝나갈 무렵, 선원들은 하나둘 사람의 자세를 되찾았다.
누군가는 가면을 벗었다.
누군가는 여전히 벗지 못했지만, 더 이상 바닥에 엎드려 있지는 않았다.
누군가는 울었다.
그레이는 그 울음을 멈추게 하지 않았다.
그저 가까이에 마른 천을 놓았다.
라플리는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처음보다 덜 비웃는 얼굴이었다.
푸리나는 류트를 천천히 내렸다.
“이제 됐어?”
라플리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죠니를 보았다.
“좋아. 데려가 봐.”
죠니는 일어섰다.
“보내주는 건가?”
“시험은 끝났어.”
“친절하진 않았네.”
“친절한 섬을 원했다면 키르케에게 오면 안 되지.”
죠니는 피식 웃었다.
“그건 맞는 말이네.”
라플리는 식탁 위의 잔을 정리했다.
“하지만 기억해. 집에 도착한다고 다 사람이 되는 건 아니야.”
죠니는 그 말을 받아넘기지 않았다.
“알아.”
“정말?”
“응.”
죠니는 그레이가 접어둔 담요와 물병, 푸리나의 류트, 아스테르다스의 아직 열이 남은 손을 보았다.
“그래서 배에 물이랑 담요가 있는 거겠지.”
라플리는 눈을 가늘게 했다.
“그런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죠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충분하지 않지. 그런데 그런 것부터 없으면, 더 큰 말은 다 빈소리야.”
라플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이상하게 이 섬의 향기보다 오래 남았다.
---
그들이 배로 돌아올 때, 섬의 금빛 조명은 조금씩 낮아졌다.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저택을 돌아보았다.
“라플리.”
라플리가 문 앞에 서 있었다.
“왜?”
“아까 내가…… 귀엽다고 말할 뻔했어.”
라플리는 조용히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류트를 품에 안았다.
“안 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
라플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 정도면 배웠네.”
“칭찬이야?”
“절반쯤.”
죠니가 옆에서 말했다.
“오늘 다들 절반짜리 칭찬이 많네.”
라플리는 그를 보았다.
“나머지 절반은 경고니까.”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익숙해.”
그들은 배에 올랐다.
하융은 조타륜을 잡고 있었다.
“돌아오는 발자국이 달라졌구려.”
죠니가 말했다.
“그래도 돌아왔어.”
“그것이 중요하오.”
하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허나 다음 바다는 더 좁을 것이오. 길이 둘로 갈라지고, 어느 쪽도 온전하지 않소.”
푸리나는 무대 뒤쪽을 보았다.
바다는 다시 어두워지고 있었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레이튼이 낮게 말했다.
“선택의 바다군요.”
아스테르다스는 물잔을 쥔 채 말했다.
“이번엔 모두 돌아왔지?”
그레이는 대답하기 전에 선원들을 한 명씩 보았다.
누군가는 아직 말을 하지 못했다.
누군가는 담요를 쥔 손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모두 배 위에 있었다.
“네.”
그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이번에는 모두 돌아왔습니다.”
그 말에 푸리나는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죠니는 난간에 기대어 섬이 멀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말, 다음 막에서도 들을 수 있으면 좋겠네.”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무대 뒤 간판이 천천히 내려왔다.
4막 — 스킬라와 카리브디스, 선택의 바다
바다는 흔들렸다.
이번에는 파도 소리가 조금 더 낮았다.
그리고 배 위에는, 방금 사람으로 돌아온 이들의 숨소리가 오래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