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52여관◆zAR16hM8he(52459695)2026-05-20 (수) 10:41:02
6막 — 이타카로의 귀환과 활의 시험
이타카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불 하나였다.
저승의 여관에서 올라온 뒤, 바다는 다시 푸른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출항할 때의 바다와는 달랐다. 그때의 푸른 천은 장난스럽고 가벼웠다. 은실은 반짝였고, 종이 갈매기는 우스울 만큼 씩씩하게 흔들렸다.
지금의 바다는 조용했다.
파도는 여전히 천이었고, 배는 여전히 무대 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타카행 임시 극장선에 탄 이들은 이제 그것을 단순한 장치로 보지 않았다.
저 천 아래에 이름들이 있었다.
젖은 신발들이 있었다.
스킬라의 바위에서 사라진 작은 이름표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멀리, 불 하나가 있었다.
푸리나는 그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이타카야?”
하융은 조타륜을 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이는구려.”
죠니가 물었다.
“그렇게 보인다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야?”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이타카는 항구이기도 하고, 돌아가려는 마음이 붙인 이름이기도 하오. 그러니 닿기 전에는 언제나 조금 불확실하오.”
죠니는 난간에 기대었다.
“집까지 철학적이면 피곤한데.”
레이튼이 부드럽게 말했다.
“집은 원래 가장 오래된 수수께끼 중 하나지요.”
죠니는 그를 보았다.
“그 말, 이타카에 도착하고 나서 하면 안 될까?”
“도착해도 사라지지는 않을 질문입니다.”
“알아. 그래서 더 피곤한 거야.”
아스테르다스는 배 앞머리로 걸어왔다.
이번에는 난간에 올라가지 않았다. 다만 손을 이마 위에 얹고, 멀리 불빛을 보았다.
“작네.”
푸리나가 말했다.
“아직 멀어서 그래.”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하네. 처음엔 이타카가 멋진 성이나 큰 항구처럼 나올 줄 알았는데.”
죠니가 말했다.
“나도 그랬어. 그런데 저 정도 불 하나면 충분한 것 같기도 하네.”
“왜?”
“멀리서 돌아오는 사람은, 처음부터 집 전체를 보는 게 아니잖아. 먼저 불빛 하나 보고, 그다음 지붕 보고, 그다음 문 앞에 누가 있는지 보는 거지.”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웃었다.
“죠니, 오늘은 자꾸 좋은 말을 하네.”
죠니는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승까지 갔다 왔잖아. 사람 말투가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지.”
“그럼 계속 저승에—”
“여왕님.”
“농담이야.”
“그 농담은 타마르가 들으면 차 한 잔 더 줄 것 같아서 무서워.”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레이는 배 뒤편에서 빈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더 이상 마른 천이 없었다. 모두 저승 여관의 신발장 앞에 놓고 왔다. 그런데도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지 않았다. 가벼워진 가방이 오히려 손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죠니는 그것을 보다가 물었다.
“무거워?”
그레이는 조금 늦게 대답했다.
“네.”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래서요.”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그런 무게도 있지.”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설명하지 않았다.
죠니도 더 묻지 않았다.
---
이타카가 가까워지자, 무대가 바뀌기 시작했다.
푸른 천은 천천히 걷히고, 그 아래에서 돌길이 드러났다. 배는 뒤로 물러났고, 대신 무대 중앙에는 낮은 집이 세워졌다. 왕궁도 아니고, 거대한 성도 아니었다.
낮은 담장.
작은 문.
오래된 올리브나무.
문 옆에는 꺼지지 않은 등불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집 앞에는 식탁이 있었다.
식탁 위에는 빵과 수프, 물잔이 놓여 있었다. 따뜻한 연기가 아주 얇게 올라왔다. 관객석에서도 그 연기가 보일 만큼 조명이 세심했다.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타카.”
죠니는 한참 동안 그 집을 보았다.
“생각보다 작네.”
“실망했어?”
“아니.”
그는 식탁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았다.
“큰 집이면, 오히려 좀 낯설었을 것 같아.”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좋은 답입니다.”
“아직 질문 안 했잖아.”
“이미 답하고 계셨습니다.”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질문은 나중에 청구서로 보내.”
그러나 이타카의 집은 비어 있지 않았다.
식탁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구혼자들이었다.
원전의 오디세이아라면 페넬로페의 집을 점거한 자들. 여기서는 푸리나가 준비한 귀향 연회를 먼저 차지한 자들이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시끄럽게 웃고, 남의 식탁 위의 빵을 아무렇지 않게 찢어 먹는 이들.
그들은 오디세우스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혹은 알고도 모른 척하는 듯했다.
푸리나의 얼굴이 굳었다.
“저 사람들…….”
죠니가 말했다.
“집에 모르는 사람이 많네.”
아스테르다스가 주먹을 쥐었다.
“쫓아내면 되지?”
죠니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식탁, 등불, 문, 그리고 구혼자들을 차례로 보았다.
“쫓아내긴 해야겠지. 그런데 그냥 싸움으로 끝내면 여왕님이 준비한 6막 제목이 아까워져.”
푸리나가 작게 물었다.
“제목 신경 써주는 거야?”
“이쯤 오니까 신경 쓰이네. 좀 억울하지만.”
그때 구혼자 중 하나가 일어났다.
그는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집의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식탁은 남은 자들의 것이 아니겠는가!”
또 다른 구혼자가 웃었다.
“불이 켜져 있으면, 누구든 따뜻해질 권리가 있지!”
아스테르다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말은 그럴듯한데.”
죠니가 말했다.
“대체로 남의 집에서 남의 빵 먹는 사람들이 말을 제일 크게 하지.”
그레이는 식탁을 보았다.
빵은 잘려 있었다.
하지만 식탁의 한쪽에는 손대지 않은 그릇이 있었다.
따뜻한 수프 한 그릇.
마치 누군가 돌아올 것을 알고 남겨둔 자리처럼.
그레이가 작게 말했다.
“하나는 남겨두었습니다.”
푸리나가 그녀를 보았다.
“응?”
“전부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저 자리는…… 남아 있습니다.”
죠니는 그릇을 보았다.
그의 표정이 아주 조금 변했다.
“그렇네.”
레이튼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 집은 완전히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이 아직 하나 남아 있군요.”
죠니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좋아. 그럼 그 하나로 들어가자.”
---
구혼자들이 그들을 알아차렸다.
“누구냐?”
죠니는 앞으로 나섰다.
오디세우스의 낡은 망토가 그의 어깨에서 흔들렸다. 처음 출항할 때는 어색했던 그 망토가, 이제는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바닷바람과 동굴의 먼지와 세이렌의 침묵과 저승 여관의 차 냄새를 모두 지나온 망토였다.
그가 말했다.
“집주인.”
구혼자들이 웃었다.
“집주인?”
“이 집의 주인은 오래전에 바다에 죽었다!”
“돌아온 자라면 증명해보라!”
푸리나는 그 대사를 듣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무대 한쪽에서 오래된 활이 나타났다.
크고, 단단하고, 오래된 활.
오디세우스의 활.
그레이가 활 옆에 놓인 천을 조심스럽게 걷었다. 아스트리트가 활의 상태를 확인하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레이튼은 활과 죠니를 번갈아 보았다.
아스테르다스의 눈이 반짝였다.
“활의 시험.”
죠니는 활을 보았다.
“드디어 제목값 하는 장면이네.”
푸리나가 낮게 말했다.
“이 활을 당기는 자가 이타카의 주인.”
구혼자들이 하나둘 활을 들었다.
첫 번째 구혼자는 허세스럽게 웃으며 활을 잡았다.
당기지 못했다.
두 번째 구혼자는 양손을 비틀며 활시위를 걸려 했다.
실패했다.
세 번째 구혼자는 힘으로 밀어붙이려다, 활이 꿈쩍도 하지 않자 얼굴이 붉어졌다.
객석에서 낮은 웃음이 일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로빈후드의 활쏘기 대회처럼 가볍지 않았다.
활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돌아온 자가 정말 돌아왔는지 확인하는 문턱이었다.
그때 미하일라가 천천히 일어났다.
객석과 무대의 시선이 동시에 그녀에게 향했다.
미하일라는 활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 제국의 전쟁을 끝내는 천궁의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가 바로 외쳤다.
“잠깐!”
죠니도 거의 동시에 말했다.
“여왕님, 저건 막아야 해.”
아스테르다스도 말했다.
“저건 시험이 아니라 판결이 될 것 같은데.”
그레이가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황제칙령급 사격은 금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객석에서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라는 활을 보다가, 모두를 보았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짐은 손대지 않겠다.”
푸리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마워!”
미하일라는 이어 말했다.
“이 활은 집으로 돌아온 자의 것이다. 전쟁을 끝내는 짐의 활과는 쓰임이 다르다.”
그 말에 무대가 조용해졌다.
죠니는 미하일라를 보았다.
“정확하네.”
미하일라는 짧게 대답했다.
“그대의 차례다.”
죠니는 활 앞으로 걸어갔다.
---
활은 무거웠다.
그것은 소품이었다.
그러나 푸리나의 신술 안에서, 그것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었다. 죠니가 손을 뻗는 순간, 활은 그가 지나온 모든 막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키클롭스의 동굴에서 숨긴 이름.
세이렌의 노래 앞에서 묶였던 손목.
키르케의 섬에서 사람으로 돌아오던 선원들.
스킬라의 바위에서 사라진 이름표.
저승 여관의 젖은 신발.
그리고 지금, 식지 않은 수프 한 그릇.
죠니는 활을 들었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혼자 중 하나가 비웃었다.
“저런 낡은 망토를 입은 자가 주인이라고?”
다른 자가 말했다.
“바다가 데려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죠니는 고개를 들었다.
“돌아오긴 해.”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다만 돌아온 사람이, 떠났던 사람 그대로는 아닐 뿐이지.”
그는 활시위를 만졌다.
그 순간, 죠니의 눈에 바다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파도는 선이 되었다.
발자국은 원을 그렸다.
숨었던 이름.
묶였던 손목.
돌아오던 숨.
사라진 이름표.
젖은 신발.
식탁 위의 빈 잔.
모든 것이 흩어진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회전처럼 겹쳐졌다.
생과 사 사이의 動.
무한히 돌고, 어긋나고, 다시 이어지려는 궤적.
그리고 그 회전 속에서, 아주 짧게 반짝이는 하나의 찰나.
《황금의 동경》.
죠니의 신술은 거창하게 타오르지 않았다.
하늘을 찢지도 않았고, 바다를 가르지도 않았다.
그저 손끝과 활시위 사이에, 아주 얇은 황금빛 원 하나가 맺혔다.
죠니는 그 원 너머로 보았다.
돌아온 자의 자리.
돌아오지 못한 자의 빈 잔.
그리고 아직 식지 않은 밥.
그 무한한 회전 속에서, 사람은 거대한 승리가 아니라 아주 작은 순간을 찾는지도 모른다.
젖은 옷을 갈아입는 순간.
따뜻한 밥을 앞에 두고 처음 숟가락을 드는 순간.
빈 자리를 보고도 식탁에 앉기로 하는 순간.
죠니는 낮게 말했다.
“그 무한한 회전 속에서 우린 황금빛 시간을 찾아 헤맨다.”
그 말은 기도도, 선언도 아니었다.
그의 서약에 가까웠다.
죠니는 식탁의 수프를 보았다.
“영광 때문에 돌아온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왕관이나 노래 때문도 아니고.”
활시위가 천천히 당겨졌다.
“살아남은 사람이 돌아와서,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는지 보러 온 거지.”
시위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휘어졌다.
그 순간, 무대 위의 모든 소리가 낮아졌다.
파도도.
관객의 숨도.
구혼자들의 웅성거림도.
죠니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았다.
미하일라처럼 하늘의 명령을 쏘는 활도 아니었다.
아스테르다스처럼 별이 떨어지는 궤도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긴 항해 끝에 집 문 앞에 선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다시 걸어두는 동작이었다.
화살이 날았다.
황금빛 원은 아주 잠깐 화살깃에 감겼다가 사라졌다.
쐐액.
화살은 구혼자를 향하지 않았다.
식탁 뒤편, 오래된 문 위에 걸린 등불 옆.
그곳의 낡은 끈을 정확히 끊었다.
천이 떨어졌다.
그 아래에는 글자가 있었다.
돌아오는 이를 위해 남겨둔 자리
구혼자들의 웃음이 멈췄다.
죠니는 활을 내렸다.
“여기 주인이 없다고 했지.”
그는 식탁 위의 손대지 않은 수프 그릇을 보았다.
“누군가는 기다렸네.”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그레이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아스테르다스는 낮게 웃었다.
“멋있네.”
죠니는 그를 보았다.
“이번엔 뛰어내리지 않아도 됐어.”
“응. 그게 더 멋있을 때도 있네.”
구혼자 하나가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우리는—”
죠니가 그를 보았다.
“남의 집에서 남의 밥을 먹었지.”
“우리는 기다림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기다림은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식탁 앞으로 걸어갔다.
“돌아오는 이를 위해 남긴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비워두어야 합니다. 배고프다면 나눌 수 있습니다. 추웠다면 불을 쬘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다림의 이름으로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구혼자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레이튼이 미소 지었다.
“훌륭합니다. 이 집의 수수께끼는 풀렸군요.”
푸리나는 류트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승리의 노래를 바로 부르지 않았다.
죠니가 활을 내려놓고 말했다.
“나가.”
구혼자들이 눈치를 보았다.
아스테르다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청흑빛 기운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저 웃었다.
“문은 저쪽이야.”
그 말만으로 충분했다.
구혼자들은 하나둘 물러났다.
---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식탁에는 손댄 빵과 남은 수프, 흩어진 잔들이 있었다. 완벽한 귀향 연회는 아니었다.
하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레이는 먼저 식탁을 정리했다.
그녀는 구혼자들이 흐트러뜨린 그릇을 치우고, 남은 빵을 한쪽에 모았다. 누가 먹던 빵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버리지 않았다. 대신 따로 분리했다.
푸리나가 물었다.
“그레이, 지금도 정리해?”
그레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온 분이 앉아야 하니까요.”
그 말에 푸리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스테르다스는 불 옆에 손을 쬐었다.
“따뜻하네.”
죠니는 식탁 앞에 섰다.
손대지 않은 수프 한 그릇이 아직 따뜻했다.
그는 한참 동안 그것을 보았다.
푸리나가 조용히 물었다.
“죠니.”
“응.”
“이타카는 어때?”
죠니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집의 낮은 천장, 오래된 문, 식탁 위의 수프, 다시 켜진 등불, 그리고 비어 있는 몇 개의 의자를 보았다.
“생각보다 조용하네.”
“실망했어?”
“아니.”
그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돌아오는 곳이 너무 시끄러우면, 못 알아볼 것 같아.”
푸리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집 같아?”
죠니는 수프 그릇을 손으로 감쌌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는 조금 뒤에 덧붙였다.
“그런데 밥은 따뜻하네.”
그 말에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웃음이 나오려다가, 조금 울음처럼 변했다.
“그럼 괜찮은 귀향이야?”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괜찮다는 말은 아직 아껴두자. 그레이한테 혼날 수도 있고.”
그레이가 멀리서 작게 말했다.
“그 표현은 과장입니다.”
죠니는 피식 웃었다.
“들었네.”
그리고 그는 다시 수프를 보았다.
“그래도 시작할 수는 있겠지. 따뜻한 밥이 있으면, 사람은 대체로 다시 시작할 핑계를 찾거든.”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레이가 빈 의자들을 보았다.
하나.
둘.
셋.
집은 돌아온 사람을 맞이했지만, 모든 자리가 차지는 않았다.
저승 여관에서 보았던 의자들.
스킬라의 바위에서 사라진 니코스의 이름표.
돌아오지 못한 선원들.
그레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식탁 한쪽에 빈 잔을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접시를 하나 두었다.
푸리나가 그것을 보았다.
“빈 자리?”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돌아오지 못한 분들의 자리입니다.”
죠니는 그 잔을 보았다.
“좋네.”
그레이는 조금 놀란 듯 그를 보았다.
죠니는 수프를 한 숟갈 떴다.
“다 같이 앉는다는 건, 꼭 다 살아 돌아왔다는 뜻은 아니니까.”
아스테르다스는 빈 잔 앞에 빵 한 조각을 놓았다.
“하나만 있으면 외로워 보이니까.”
그레이는 아주 작게 웃었다.
이번에는 푸리나가 봤지만, 크게 외치지 않았다.
그저 미소 지었다.
---
푸리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는 류트를 들었다.
이번에는 노래해도 되는 순간이었다.
크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밝게, 그러나 빈 자리를 덮지 않게.
푸리나는 노래했다.
> 오래 떠난 배가 돌아왔네.
돛은 해지고, 손은 떨리고,
이름 몇 개는 파도에 젖었네.
그래도 불은 남았고,
밥은 아직 따뜻하니,
앉으라, 돌아온 이여.
빈 자리도 함께 세어
잔 하나 더 놓으리라.
살아 돌아온 이는 먹고,
돌아오지 못한 이는 기억되며,
집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리라.
노래가 끝나자, 집 안의 불빛이 조금 더 밝아졌다.
요란한 박수는 없었다.
객석도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차갑지 않았다.
죠니는 수프를 한 숟갈 먹었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따뜻하네.”
푸리나는 그의 말을 듣고, 이번에는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 말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
이타카 귀환극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무대 앞에 나섰다.
“이타카행 임시 극장선은, 마침내 항구에 닿았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맑았다.
“그러나 귀향은 도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빈 자리를 세고, 다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까지가 귀향입니다.”
그녀는 잠시 죠니를 보았다.
죠니는 수프 그릇을 들고 있었다.
푸리나는 웃었다.
“그러니 오늘의 마지막 막은 여기서 닫습니다.”
그레이가 아주 작게 말했다.
“식탁 정리 후에요.”
푸리나는 잠깐 멈췄다.
그리고 밝게 웃었다.
“식탁 정리 후에!”
죠니가 중얼거렸다.
“좋은 수정이네.”
아스테르다스가 웃었다.
“그레이의 막내림이야.”
그레이는 조금 당황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하지만 좋은 결론입니다. 집은 식탁을 정리하는 사람 덕분에 다음 식사를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그레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푸리나는 류트를 마지막으로 한 번 튕겼다.
무대 뒤 간판이 천천히 내려왔다.
후일담 — 마른 옷과 따뜻한 밥
죠니는 그 간판을 보고 낮게 말했다.
“여왕님.”
“응?”
“후일담 제목도 괜찮네.”
푸리나는 기쁘게 웃었다.
“이번엔 몇 점?”
죠니는 수프를 한 숟갈 더 먹고 말했다.
“따뜻한 정도.”
“그게 몇 점인데?”
“높은 편이야.”
푸리나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따뜻한 수프와 빵, 그리고 빈 잔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타카는 작았다.
그러나 불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사람들은, 그 불 앞에 앉아 있었다.
이타카는 처음부터 보이지 않았다.
그저 불 하나였다.
저승의 여관에서 올라온 뒤, 바다는 다시 푸른빛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처음 출항할 때의 바다와는 달랐다. 그때의 푸른 천은 장난스럽고 가벼웠다. 은실은 반짝였고, 종이 갈매기는 우스울 만큼 씩씩하게 흔들렸다.
지금의 바다는 조용했다.
파도는 여전히 천이었고, 배는 여전히 무대 위에 있었다. 하지만 이타카행 임시 극장선에 탄 이들은 이제 그것을 단순한 장치로 보지 않았다.
저 천 아래에 이름들이 있었다.
젖은 신발들이 있었다.
스킬라의 바위에서 사라진 작은 이름표가 있었다.
그리고 아주 멀리, 불 하나가 있었다.
푸리나는 그 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이타카야?”
하융은 조타륜을 잡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보이는구려.”
죠니가 물었다.
“그렇게 보인다는 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이야?”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이타카는 항구이기도 하고, 돌아가려는 마음이 붙인 이름이기도 하오. 그러니 닿기 전에는 언제나 조금 불확실하오.”
죠니는 난간에 기대었다.
“집까지 철학적이면 피곤한데.”
레이튼이 부드럽게 말했다.
“집은 원래 가장 오래된 수수께끼 중 하나지요.”
죠니는 그를 보았다.
“그 말, 이타카에 도착하고 나서 하면 안 될까?”
“도착해도 사라지지는 않을 질문입니다.”
“알아. 그래서 더 피곤한 거야.”
아스테르다스는 배 앞머리로 걸어왔다.
이번에는 난간에 올라가지 않았다. 다만 손을 이마 위에 얹고, 멀리 불빛을 보았다.
“작네.”
푸리나가 말했다.
“아직 멀어서 그래.”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상하네. 처음엔 이타카가 멋진 성이나 큰 항구처럼 나올 줄 알았는데.”
죠니가 말했다.
“나도 그랬어. 그런데 저 정도 불 하나면 충분한 것 같기도 하네.”
“왜?”
“멀리서 돌아오는 사람은, 처음부터 집 전체를 보는 게 아니잖아. 먼저 불빛 하나 보고, 그다음 지붕 보고, 그다음 문 앞에 누가 있는지 보는 거지.”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살짝 웃었다.
“죠니, 오늘은 자꾸 좋은 말을 하네.”
죠니는 피곤한 얼굴로 대답했다.
“저승까지 갔다 왔잖아. 사람 말투가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지.”
“그럼 계속 저승에—”
“여왕님.”
“농담이야.”
“그 농담은 타마르가 들으면 차 한 잔 더 줄 것 같아서 무서워.”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레이는 배 뒤편에서 빈 가방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 안에는 더 이상 마른 천이 없었다. 모두 저승 여관의 신발장 앞에 놓고 왔다. 그런데도 그녀는 가방을 내려놓지 않았다. 가벼워진 가방이 오히려 손에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죠니는 그것을 보다가 물었다.
“무거워?”
그레이는 조금 늦게 대답했다.
“네.”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도?”
“그래서요.”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그런 무게도 있지.”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더 설명하지 않았다.
죠니도 더 묻지 않았다.
---
이타카가 가까워지자, 무대가 바뀌기 시작했다.
푸른 천은 천천히 걷히고, 그 아래에서 돌길이 드러났다. 배는 뒤로 물러났고, 대신 무대 중앙에는 낮은 집이 세워졌다. 왕궁도 아니고, 거대한 성도 아니었다.
낮은 담장.
작은 문.
오래된 올리브나무.
문 옆에는 꺼지지 않은 등불 하나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집 앞에는 식탁이 있었다.
식탁 위에는 빵과 수프, 물잔이 놓여 있었다. 따뜻한 연기가 아주 얇게 올라왔다. 관객석에서도 그 연기가 보일 만큼 조명이 세심했다.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타카.”
죠니는 한참 동안 그 집을 보았다.
“생각보다 작네.”
“실망했어?”
“아니.”
그는 식탁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보았다.
“큰 집이면, 오히려 좀 낯설었을 것 같아.”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좋은 답입니다.”
“아직 질문 안 했잖아.”
“이미 답하고 계셨습니다.”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질문은 나중에 청구서로 보내.”
그러나 이타카의 집은 비어 있지 않았다.
식탁 주변에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구혼자들이었다.
원전의 오디세이아라면 페넬로페의 집을 점거한 자들. 여기서는 푸리나가 준비한 귀향 연회를 먼저 차지한 자들이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시끄럽게 웃고, 남의 식탁 위의 빵을 아무렇지 않게 찢어 먹는 이들.
그들은 오디세우스가 돌아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혹은 알고도 모른 척하는 듯했다.
푸리나의 얼굴이 굳었다.
“저 사람들…….”
죠니가 말했다.
“집에 모르는 사람이 많네.”
아스테르다스가 주먹을 쥐었다.
“쫓아내면 되지?”
죠니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그는 식탁, 등불, 문, 그리고 구혼자들을 차례로 보았다.
“쫓아내긴 해야겠지. 그런데 그냥 싸움으로 끝내면 여왕님이 준비한 6막 제목이 아까워져.”
푸리나가 작게 물었다.
“제목 신경 써주는 거야?”
“이쯤 오니까 신경 쓰이네. 좀 억울하지만.”
그때 구혼자 중 하나가 일어났다.
그는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집의 주인이 돌아오지 않는다면, 식탁은 남은 자들의 것이 아니겠는가!”
또 다른 구혼자가 웃었다.
“불이 켜져 있으면, 누구든 따뜻해질 권리가 있지!”
아스테르다스가 얼굴을 찡그렸다.
“말은 그럴듯한데.”
죠니가 말했다.
“대체로 남의 집에서 남의 빵 먹는 사람들이 말을 제일 크게 하지.”
그레이는 식탁을 보았다.
빵은 잘려 있었다.
하지만 식탁의 한쪽에는 손대지 않은 그릇이 있었다.
따뜻한 수프 한 그릇.
마치 누군가 돌아올 것을 알고 남겨둔 자리처럼.
그레이가 작게 말했다.
“하나는 남겨두었습니다.”
푸리나가 그녀를 보았다.
“응?”
“전부 차지하지는 않았습니다. 저 자리는…… 남아 있습니다.”
죠니는 그릇을 보았다.
그의 표정이 아주 조금 변했다.
“그렇네.”
레이튼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 집은 완전히 빼앗긴 것이 아닙니다. 기다림이 아직 하나 남아 있군요.”
죠니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좋아. 그럼 그 하나로 들어가자.”
---
구혼자들이 그들을 알아차렸다.
“누구냐?”
죠니는 앞으로 나섰다.
오디세우스의 낡은 망토가 그의 어깨에서 흔들렸다. 처음 출항할 때는 어색했던 그 망토가, 이제는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바닷바람과 동굴의 먼지와 세이렌의 침묵과 저승 여관의 차 냄새를 모두 지나온 망토였다.
그가 말했다.
“집주인.”
구혼자들이 웃었다.
“집주인?”
“이 집의 주인은 오래전에 바다에 죽었다!”
“돌아온 자라면 증명해보라!”
푸리나는 그 대사를 듣고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무대 한쪽에서 오래된 활이 나타났다.
크고, 단단하고, 오래된 활.
오디세우스의 활.
그레이가 활 옆에 놓인 천을 조심스럽게 걷었다. 아스트리트가 활의 상태를 확인하고, 조용히 뒤로 물러났다. 레이튼은 활과 죠니를 번갈아 보았다.
아스테르다스의 눈이 반짝였다.
“활의 시험.”
죠니는 활을 보았다.
“드디어 제목값 하는 장면이네.”
푸리나가 낮게 말했다.
“이 활을 당기는 자가 이타카의 주인.”
구혼자들이 하나둘 활을 들었다.
첫 번째 구혼자는 허세스럽게 웃으며 활을 잡았다.
당기지 못했다.
두 번째 구혼자는 양손을 비틀며 활시위를 걸려 했다.
실패했다.
세 번째 구혼자는 힘으로 밀어붙이려다, 활이 꿈쩍도 하지 않자 얼굴이 붉어졌다.
객석에서 낮은 웃음이 일었다.
그러나 이 장면은 로빈후드의 활쏘기 대회처럼 가볍지 않았다.
활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었다.
돌아온 자가 정말 돌아왔는지 확인하는 문턱이었다.
그때 미하일라가 천천히 일어났다.
객석과 무대의 시선이 동시에 그녀에게 향했다.
미하일라는 활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빛은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 속에, 제국의 전쟁을 끝내는 천궁의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가 바로 외쳤다.
“잠깐!”
죠니도 거의 동시에 말했다.
“여왕님, 저건 막아야 해.”
아스테르다스도 말했다.
“저건 시험이 아니라 판결이 될 것 같은데.”
그레이가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황제칙령급 사격은 금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객석에서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하일라는 활을 보다가, 모두를 보았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짐은 손대지 않겠다.”
푸리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고마워!”
미하일라는 이어 말했다.
“이 활은 집으로 돌아온 자의 것이다. 전쟁을 끝내는 짐의 활과는 쓰임이 다르다.”
그 말에 무대가 조용해졌다.
죠니는 미하일라를 보았다.
“정확하네.”
미하일라는 짧게 대답했다.
“그대의 차례다.”
죠니는 활 앞으로 걸어갔다.
---
활은 무거웠다.
그것은 소품이었다.
그러나 푸리나의 신술 안에서, 그것은 단순한 소품이 아니었다. 죠니가 손을 뻗는 순간, 활은 그가 지나온 모든 막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키클롭스의 동굴에서 숨긴 이름.
세이렌의 노래 앞에서 묶였던 손목.
키르케의 섬에서 사람으로 돌아오던 선원들.
스킬라의 바위에서 사라진 이름표.
저승 여관의 젖은 신발.
그리고 지금, 식지 않은 수프 한 그릇.
죠니는 활을 들었다.
처음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구혼자 중 하나가 비웃었다.
“저런 낡은 망토를 입은 자가 주인이라고?”
다른 자가 말했다.
“바다가 데려간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죠니는 고개를 들었다.
“돌아오긴 해.”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다만 돌아온 사람이, 떠났던 사람 그대로는 아닐 뿐이지.”
그는 활시위를 만졌다.
그 순간, 죠니의 눈에 바다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파도는 선이 되었다.
발자국은 원을 그렸다.
숨었던 이름.
묶였던 손목.
돌아오던 숨.
사라진 이름표.
젖은 신발.
식탁 위의 빈 잔.
모든 것이 흩어진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회전처럼 겹쳐졌다.
생과 사 사이의 動.
무한히 돌고, 어긋나고, 다시 이어지려는 궤적.
그리고 그 회전 속에서, 아주 짧게 반짝이는 하나의 찰나.
《황금의 동경》.
죠니의 신술은 거창하게 타오르지 않았다.
하늘을 찢지도 않았고, 바다를 가르지도 않았다.
그저 손끝과 활시위 사이에, 아주 얇은 황금빛 원 하나가 맺혔다.
죠니는 그 원 너머로 보았다.
돌아온 자의 자리.
돌아오지 못한 자의 빈 잔.
그리고 아직 식지 않은 밥.
그 무한한 회전 속에서, 사람은 거대한 승리가 아니라 아주 작은 순간을 찾는지도 모른다.
젖은 옷을 갈아입는 순간.
따뜻한 밥을 앞에 두고 처음 숟가락을 드는 순간.
빈 자리를 보고도 식탁에 앉기로 하는 순간.
죠니는 낮게 말했다.
“그 무한한 회전 속에서 우린 황금빛 시간을 찾아 헤맨다.”
그 말은 기도도, 선언도 아니었다.
그의 서약에 가까웠다.
죠니는 식탁의 수프를 보았다.
“영광 때문에 돌아온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왕관이나 노래 때문도 아니고.”
활시위가 천천히 당겨졌다.
“살아남은 사람이 돌아와서, 아직 불이 꺼지지 않았는지 보러 온 거지.”
시위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휘어졌다.
그 순간, 무대 위의 모든 소리가 낮아졌다.
파도도.
관객의 숨도.
구혼자들의 웅성거림도.
죠니의 손은 흔들리지 않았다.
화려하지 않았다.
미하일라처럼 하늘의 명령을 쏘는 활도 아니었다.
아스테르다스처럼 별이 떨어지는 궤도도 아니었다.
그것은 그저, 긴 항해 끝에 집 문 앞에 선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다시 걸어두는 동작이었다.
화살이 날았다.
황금빛 원은 아주 잠깐 화살깃에 감겼다가 사라졌다.
쐐액.
화살은 구혼자를 향하지 않았다.
식탁 뒤편, 오래된 문 위에 걸린 등불 옆.
그곳의 낡은 끈을 정확히 끊었다.
천이 떨어졌다.
그 아래에는 글자가 있었다.
돌아오는 이를 위해 남겨둔 자리
구혼자들의 웃음이 멈췄다.
죠니는 활을 내렸다.
“여기 주인이 없다고 했지.”
그는 식탁 위의 손대지 않은 수프 그릇을 보았다.
“누군가는 기다렸네.”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그레이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아스테르다스는 낮게 웃었다.
“멋있네.”
죠니는 그를 보았다.
“이번엔 뛰어내리지 않아도 됐어.”
“응. 그게 더 멋있을 때도 있네.”
구혼자 하나가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우리는—”
죠니가 그를 보았다.
“남의 집에서 남의 밥을 먹었지.”
“우리는 기다림을 나누었을 뿐이다!”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기다림은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식탁 앞으로 걸어갔다.
“돌아오는 이를 위해 남긴 자리가 있다면, 그 자리는 비워두어야 합니다. 배고프다면 나눌 수 있습니다. 추웠다면 불을 쬘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기다림의 이름으로 자리를 빼앗을 수는 없습니다.”
구혼자들은 대답하지 못했다.
레이튼이 미소 지었다.
“훌륭합니다. 이 집의 수수께끼는 풀렸군요.”
푸리나는 류트를 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승리의 노래를 바로 부르지 않았다.
죠니가 활을 내려놓고 말했다.
“나가.”
구혼자들이 눈치를 보았다.
아스테르다스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그의 청흑빛 기운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그저 웃었다.
“문은 저쪽이야.”
그 말만으로 충분했다.
구혼자들은 하나둘 물러났다.
---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식탁에는 손댄 빵과 남은 수프, 흩어진 잔들이 있었다. 완벽한 귀향 연회는 아니었다.
하지만 불은 꺼지지 않았다.
그레이는 먼저 식탁을 정리했다.
그녀는 구혼자들이 흐트러뜨린 그릇을 치우고, 남은 빵을 한쪽에 모았다. 누가 먹던 빵인지 알 수 없는 것은 버리지 않았다. 대신 따로 분리했다.
푸리나가 물었다.
“그레이, 지금도 정리해?”
그레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온 분이 앉아야 하니까요.”
그 말에 푸리나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아스테르다스는 불 옆에 손을 쬐었다.
“따뜻하네.”
죠니는 식탁 앞에 섰다.
손대지 않은 수프 한 그릇이 아직 따뜻했다.
그는 한참 동안 그것을 보았다.
푸리나가 조용히 물었다.
“죠니.”
“응.”
“이타카는 어때?”
죠니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집의 낮은 천장, 오래된 문, 식탁 위의 수프, 다시 켜진 등불, 그리고 비어 있는 몇 개의 의자를 보았다.
“생각보다 조용하네.”
“실망했어?”
“아니.”
그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돌아오는 곳이 너무 시끄러우면, 못 알아볼 것 같아.”
푸리나는 그의 옆에 앉았다.
“집 같아?”
죠니는 수프 그릇을 손으로 감쌌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
그는 조금 뒤에 덧붙였다.
“그런데 밥은 따뜻하네.”
그 말에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웃음이 나오려다가, 조금 울음처럼 변했다.
“그럼 괜찮은 귀향이야?”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괜찮다는 말은 아직 아껴두자. 그레이한테 혼날 수도 있고.”
그레이가 멀리서 작게 말했다.
“그 표현은 과장입니다.”
죠니는 피식 웃었다.
“들었네.”
그리고 그는 다시 수프를 보았다.
“그래도 시작할 수는 있겠지. 따뜻한 밥이 있으면, 사람은 대체로 다시 시작할 핑계를 찾거든.”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그레이가 빈 의자들을 보았다.
하나.
둘.
셋.
집은 돌아온 사람을 맞이했지만, 모든 자리가 차지는 않았다.
저승 여관에서 보았던 의자들.
스킬라의 바위에서 사라진 니코스의 이름표.
돌아오지 못한 선원들.
그레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식탁 한쪽에 빈 잔을 놓았다.
그리고 그 옆에 작은 접시를 하나 두었다.
푸리나가 그것을 보았다.
“빈 자리?”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돌아오지 못한 분들의 자리입니다.”
죠니는 그 잔을 보았다.
“좋네.”
그레이는 조금 놀란 듯 그를 보았다.
죠니는 수프를 한 숟갈 떴다.
“다 같이 앉는다는 건, 꼭 다 살아 돌아왔다는 뜻은 아니니까.”
아스테르다스는 빈 잔 앞에 빵 한 조각을 놓았다.
“하나만 있으면 외로워 보이니까.”
그레이는 아주 작게 웃었다.
이번에는 푸리나가 봤지만, 크게 외치지 않았다.
그저 미소 지었다.
---
푸리나는 천천히 일어났다.
그녀는 류트를 들었다.
이번에는 노래해도 되는 순간이었다.
크게, 그러나 지나치지 않게.
밝게, 그러나 빈 자리를 덮지 않게.
푸리나는 노래했다.
> 오래 떠난 배가 돌아왔네.
돛은 해지고, 손은 떨리고,
이름 몇 개는 파도에 젖었네.
그래도 불은 남았고,
밥은 아직 따뜻하니,
앉으라, 돌아온 이여.
빈 자리도 함께 세어
잔 하나 더 놓으리라.
살아 돌아온 이는 먹고,
돌아오지 못한 이는 기억되며,
집은 그렇게 다시 시작되리라.
노래가 끝나자, 집 안의 불빛이 조금 더 밝아졌다.
요란한 박수는 없었다.
객석도 조용했다.
그러나 그 조용함은 차갑지 않았다.
죠니는 수프를 한 숟갈 먹었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따뜻하네.”
푸리나는 그의 말을 듣고, 이번에는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 말만으로 충분했기 때문이다.
---
이타카 귀환극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무대 앞에 나섰다.
“이타카행 임시 극장선은, 마침내 항구에 닿았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맑았다.
“그러나 귀향은 도착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젖은 옷을 갈아입고, 떨리는 손으로 숟가락을 들고, 빈 자리를 세고, 다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까지가 귀향입니다.”
그녀는 잠시 죠니를 보았다.
죠니는 수프 그릇을 들고 있었다.
푸리나는 웃었다.
“그러니 오늘의 마지막 막은 여기서 닫습니다.”
그레이가 아주 작게 말했다.
“식탁 정리 후에요.”
푸리나는 잠깐 멈췄다.
그리고 밝게 웃었다.
“식탁 정리 후에!”
죠니가 중얼거렸다.
“좋은 수정이네.”
아스테르다스가 웃었다.
“그레이의 막내림이야.”
그레이는 조금 당황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습니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하지만 좋은 결론입니다. 집은 식탁을 정리하는 사람 덕분에 다음 식사를 기다릴 수 있으니까요.”
그레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푸리나는 류트를 마지막으로 한 번 튕겼다.
무대 뒤 간판이 천천히 내려왔다.
후일담 — 마른 옷과 따뜻한 밥
죠니는 그 간판을 보고 낮게 말했다.
“여왕님.”
“응?”
“후일담 제목도 괜찮네.”
푸리나는 기쁘게 웃었다.
“이번엔 몇 점?”
죠니는 수프를 한 숟갈 더 먹고 말했다.
“따뜻한 정도.”
“그게 몇 점인데?”
“높은 편이야.”
푸리나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불은 꺼지지 않았다.
식탁 위에는 따뜻한 수프와 빵, 그리고 빈 잔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타카는 작았다.
그러나 불 하나가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사람들은, 그 불 앞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