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53여관◆zAR16hM8he(52459695)2026-05-20 (수) 10:46:13
후일담 — 마른 옷과 따뜻한 밥

공연이 끝난 뒤에도, 이타카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원래라면 막이 내리고, 무대 담당들이 나와 식탁을 치우고, 푸른 천 바다를 접고, 배의 돛대를 내려야 했다. 하지만 푸리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집 앞의 낮은 담장에 앉아 있었다.

류트는 무릎 위에 놓여 있었고, 손끝은 현에 닿아 있었지만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눈앞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식탁이 있었다.

빵.

따뜻했던 수프.

빈 잔 하나.

그리고 죠니가 끊어낸 천 아래 드러난 문구.

돌아오는 이를 위해 남겨둔 자리

푸리나는 그것을 오래 보았다.

“후일담을 해야 하는데.”

죠니가 수프 그릇을 들고 그녀 옆으로 왔다.

“여왕님, 이미 하고 있는 것 같은데.”

푸리나가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안 했잖아.”

“응. 그래서 후일담 같아. 본편은 보통 너무 많이 하거든.”

푸리나는 잠시 그를 보다가, 작게 웃었다.

“그거 내 얘기지?”

“반쯤.”

“나머지 반은?”

죠니는 식탁을 보았다.

“이번엔 이 극 얘기.”

푸리나는 류트를 내려다보았다.

“오디세이아는 더 요란할 줄 알았어.”

“원래는 요란한 이야기가 맞지. 괴물 나오고, 마녀 나오고, 바다도 화내고, 활도 쏘고.”

“그런데 왜 이렇게 조용해졌을까.”

죠니는 수프를 한 숟갈 떴다.

“돌아오면 조용해지는 사람이 있으니까.”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죠니는 식탁 쪽으로 고개를 까딱였다.

“그리고 밥 먹을 때 너무 떠들면 그레이가 정리하기 힘들어.”

멀리서 그레이가 말했다.

“그 정도는 아닙니다.”

죠니는 푸리나를 보았다.

“봐. 들었잖아.”

푸리나는 이번엔 정말 웃었다.

하지만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죠니.”

“응.”

“재밌었어?”

죠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무대 위에 남은 것들을 보았다.

접힌 돛.

풀린 밧줄.

한쪽에 모아둔 귀마개.

라플리의 섬에서 가져온 마른 천.

스킬라의 바위를 지나며 생긴 밧줄 자국.

저승 여관에서 빈 채 돌아온 그레이의 가방.

그리고 이타카의 식탁.

“재밌었다고만 하면 좀 이상하고.”

“응.”

“나빴다고 하면 거짓말이고.”

그는 잠깐 생각했다.

“돌아온 느낌은 있어.”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럼 됐네.”

“응.”

죠니는 수프 그릇을 내려놓았다.

“꽤 됐어.”


---

그레이는 식탁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녀는 서두르지 않았다.

구혼자들이 남긴 그릇은 한쪽으로 치우고, 손대지 않은 수프 그릇은 그대로 두었다. 빈 잔 옆에 놓인 빵 조각은 건드리지 않았다. 그것은 아스테르다스가 놓은 것이었다.

그녀는 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러다 식탁 아래에 떨어진 빵 부스러기를 조심스럽게 쓸어 모았다.

푸리나가 다가왔다.

“그레이.”

“네.”

“이것도 해야 해?”

“네.”

“공연 끝났는데?”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해야 합니다.”

푸리나는 말문이 막혔다.

그레이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공연 중에는 모두가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난 뒤에는, 남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녀는 빈 잔을 보았다.

“그릇, 천, 젖은 신발, 빈 자리 같은 것들이요.”

푸리나는 조용히 식탁 앞에 섰다.

“내가 도와도 돼?”

그레이는 조금 놀란 듯 푸리나를 보았다.

“군주님께서요?”

“응.”

“손이 더러워질 수 있습니다.”

“연극 끝났는데 손 깨끗한 게 더 이상하지 않아?”

그레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죠니가 옆에서 말했다.

“여왕님이 좋은 말 했다. 기록해둬.”

그레이는 아주 작게 말했다.

“기록할 정도는 아닙니다.”

푸리나는 소매를 걷었다.

“그럼 기록하지 말고 부스러기나 줘.”

그레이는 망설이다가 작은 천을 건넸다.

푸리나는 식탁 한쪽을 닦기 시작했다.

손놀림은 서툴렀다. 빵 부스러기를 닦는다기보다 옆으로 밀어내는 쪽에 가까웠다.

그레이는 잠시 그것을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군주님, 그렇게 하시면 부스러기가 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아.”

푸리나는 멈췄다.

“그럼 어떻게 해?”

그레이는 직접 손을 뻗어 천을 접었다.

“이렇게 모아서, 안쪽으로.”

푸리나는 따라 했다.

이번에는 조금 나았다.

죠니가 식탁 옆에 기대어 말했다.

“이타카에서 제일 놀라운 장면이네. 여왕님이 식탁 정리를 배우고 있어.”

푸리나가 그를 노려보았다.

“죠니도 해.”

“나는 오디세우스라서 방금 돌아왔는데.”

“그러니까 해. 집주인이잖아.”

죠니는 잠시 생각했다.

“그 말은 좀 세네.”

그는 결국 그릇을 하나 들었다.

“좋아. 집주인이면 이 정도는 해야겠지.”

그레이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릇은 저쪽에 모아주시면 됩니다.”

죠니는 그릇을 옮기며 말했다.

“명령이 자연스럽네.”

“죄송합니다.”

“아니. 집에 돌아왔다는 느낌이 좀 나서 그래.”

그레이는 손을 멈췄다.

죠니는 덧붙였다.

“나쁜 뜻 아니야.”

그레이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

아스테르다스는 불 옆에 앉아 있었다.

그는 공연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활의 시험 장면을 떠올리고 있었다. 죠니의 화살이 날아가던 순간, 아주 얇은 황금빛 원이 화살깃에 감기던 장면.

그리고 자신이 스킬라의 바위 앞에서 밧줄을 잡고 돌아오던 순간.

그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청흑빛 유성.

떨어질 곳을 고르는 몸.

그리고 오늘은, 떨어지지 않는 것으로 지킨 자리.

민다우가스가 객석에서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는 이타카의 낮은 집과 작은 식탁을 천천히 살폈다.

“작군.”

아스테르다스가 고개를 들었다.

“이타카?”

“그래.”

민다우가스는 식탁 위의 빈 잔을 보았다.

“그러나 작은 집일수록, 빈 자리 하나가 더 크게 보인다.”

아스테르다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더라.”

민다우가스는 그를 보았다.

“너는 오늘 여러 번 떨어질 수 있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하지만 거의 안 떨어졌지?”

“그래.”

민다우가스는 짧게 말했다.

“나쁘지 않았다.”

아스테르다스의 눈이 밝아졌다.

“정말?”

“스킬라 앞에서의 움직임은 좋았다. 떨어지되, 돌아올 줄을 알았다.”

그 말에 아스테르다스는 잠시 조용해졌다.

민다우가스는 이어 말했다.

“무인은 힘을 쓰는 자가 아니다. 힘의 귀환점을 아는 자다.”

아스테르다스는 그 말을 천천히 받아들였다.

“귀환점.”

“네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도,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것은 공격이 아니라 소모다.”

민다우가스는 낮게 말했다.

“오늘 너는 밧줄을 잡았다. 나쁘지 않다.”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이번에는 크게 웃지 않았다.

따뜻하게 웃었다.

“그럼 다음에도 잡을게.”

민다우가스는 그를 보다가, 아주 낮게 웃었다.

“그래. 다만 밧줄을 잡기 전에 먼저 뛰지는 마라.”

죠니가 멀리서 말했다.

“저 말은 나도 찬성.”

아스테르다스가 외쳤다.

“다들 나를 너무 잘 알아!”

“오늘 하루만 봐도 충분히 알겠던데.”

죠니의 말에 푸리나가 웃었다.

무대 위에 잠깐 가벼운 웃음이 돌아왔다.


---

레이튼은 문 위의 글자를 보고 있었다.

돌아오는 이를 위해 남겨둔 자리

그는 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알토가 객석에서 올라와 그 옆에 섰다.

“기록할 만한 문장입니까?”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기록할 만하기도 하고, 질문할 만하기도 합니다.”

알토는 문구를 보았다.

“기다림은 권리입니까, 의무입니까?”

레이튼은 즐거운 듯 눈을 가늘게 했다.

“좋은 질문입니다.”

알토는 담담하게 말했다.

“따라한 것은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아카식은 뒤에서 느긋하게 웃었다.

“둘이 같이 있으면 공기가 문서처럼 접히네.”

알토는 그 말을 무시했다.

대신 기록장에 한 줄을 적었다.

귀향은 도착 사실이 아니라, 남겨둔 자리의 확인으로 완성된다.

아카식은 그 문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기록은 꽤 따뜻하네.”

알토는 펜을 멈췄다.

“그렇게 보입니까?”

“응.”

알토는 잠시 식탁을 보았다.

빈 잔.

빵 조각.

수프.

그리고 그레이가 조용히 닦고 있는 식탁.

“그렇다면 괜찮습니다.”

아카식은 조금 더 웃었다.

“역시 좋아했네.”

알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

타마르는 아직 무대 뒤편 어둠 가까이에 서 있었다.

저승 여관의 주인 역할은 끝났지만, 그녀의 손에는 아직 작은 등불이 있었다. 그 등불은 이제 거의 꺼져가고 있었다.

푸리나는 식탁을 닦던 손을 멈추고 그녀에게 다가갔다.

“타마르.”

타마르는 느릿하게 고개를 돌렸다.

“네, 어린양.”

“아까 그 여관 말이야.”

“네.”

“정말로…… 그 사람들이 쉬고 있을까?”

타마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푸리나의 손을 보았다. 빵 부스러기가 조금 묻어 있었다.

“오늘 극 안에서는 그랬지요.”

“극 밖에서는?”

타마르는 미소 지었다.

“그 질문은 별에게도 무겁답니다.”

푸리나는 눈을 내리깔았다.

“그렇구나.”

타마르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러니 산 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젖은 신발 곁에 마른 천을 놓고, 빈 자리에 잔을 두고, 이름을 부를 때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부르지요.”

푸리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걸로 충분해?”

“충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타마르는 낮게 웃었다.

“하지만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훨씬 낫답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마음에 담았다.

“응.”

타마르는 등불을 푸리나에게 건넸다.

“이제 이 등불은 그쪽 무대의 것입니다.”

푸리나는 조심스럽게 받았다.

“받아도 돼?”

“오늘은 귀향극이니까요. 집의 불을 돌보는 이는 많을수록 좋답니다.”

푸리나는 등불을 품에 안았다.

“고마워.”

타마르는 느릿하게 고개를 숙였다.


---

미하일라는 활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활을 들지는 않았다.

다만 바라보았다.

죠니가 그 곁으로 왔다.

“안 쏴서 다행이야.”

미하일라는 그를 보았다.

“그대들이 너무 급하게 말렸다.”

“그건 좀 필사적이었지.”

“짐은 그 활을 당길 생각이 없었다.”

죠니는 잠시 멈췄다.

“정말?”

“그 활은 전쟁을 끝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미하일라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대의 활은 사람을 꿰뚫지 않고, 남겨둔 자리를 드러냈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죠니는 활을 보았다.

“내 신술도 좀 썼는데.”

“보았다.”

“어땠어?”

미하일라는 아주 잠시 생각했다.

“크지 않았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그건 칭찬?”

“그렇다.”

미하일라는 이어 말했다.

“큰 힘이 필요한 장면이 아니었다. 작은 찰나를 놓치지 않는 힘이면 충분했다.”

죠니는 그 말을 들으며 활시위를 내려다보았다.

황금빛 원은 이미 사라졌다.

하지만 손끝에는 아직 감각이 남아 있었다.

무한한 회전 속에서 찾아낸 아주 작은 순간.

따뜻한 수프.

빈 잔.

남겨둔 자리.

죠니는 낮게 말했다.

“꽤 정확하네.”

미하일라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도 정확했다.”

그 말은 화려한 칭찬이 아니었다.

하지만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마워.”


---

그레이는 마지막으로 빈 잔 옆에 놓인 빵 조각을 정돈했다.

푸리나는 타마르에게 받은 등불을 그 옆에 놓았다.

작은 불빛이 빈 잔에 비쳤다.

죠니는 그것을 보고 말했다.

“잔이 좀 덜 비어 보이네.”

그레이가 물었다.

“불빛 때문입니까?”

“응.”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아스테르다스가 빈 잔 옆에 또 무엇인가 놓으려다 멈췄다.

죠니가 물었다.

“이번엔 뭐 놓으려고?”

“음.”

아스테르다스는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나뭇잎을 보여주었다.

“올리브나무 잎.”

푸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이타카니까.”

죠니는 나뭇잎을 보았다.

“단순하네.”

“별로야?”

“아니. 이럴 땐 단순한 게 좋아.”

아스테르다스는 빈 잔 옆에 올리브 잎을 놓았다.

그레이는 그것도 가지런히 정리했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빈 자리인데, 점점 채워지고 있어.”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람이 앉지는 않았는데, 아무것도 없는 자리는 아니게 됐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등불을 조금 더 식탁 안쪽으로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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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일담의 마지막은 박수로 끝나지 않았다.

푸리나는 무대 앞에 서지 않았다.

대신 식탁 옆에 섰다.

그녀는 관객을 향해 크게 외치지 않았다.

그저 배우들과 객석 사이, 무대와 현실 사이 어딘가에 서서 말했다.

“이타카행 임시 극장선은 돌아왔습니다.”

목소리는 맑았지만 낮았다.

“하지만 배가 돌아왔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았습니다. 젖은 옷은 말려야 하고, 식탁은 다시 차려야 하고, 빈 자리는 세어야 합니다.”

그녀는 등불을 보았다.

“그리고 때로는,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위해서도 밥이 식지 않게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레이가 아주 작게 말했다.

“위생상 오래 두면 안 됩니다.”

순간, 모두가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는 진지했다.

푸리나는 눈을 깜박이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죠니도 고개를 숙이고 웃었다.

“그레이, 이 장면에서 그 말을 할 수 있는 건 너밖에 없어.”

그레이는 조금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푸리나가 손을 들었다.

“맞아. 그러면 이렇게 하자.”

그녀는 관객을 향해 말했다.

“밥은 식기 전에 먹고, 빈 자리는 식탁이 아니라 마음에 오래 두자!”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 표현은 적절합니다.”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승인!”

죠니가 말했다.

“이번엔 진짜 승인 같네.”

그레이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네. 승인입니다.”

그 말에 푸리나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웃었다.


---

식탁 정리가 끝났다.

그러나 빈 잔과 등불, 올리브 잎만은 그대로 남겨두었다.

죠니는 오디세우스의 망토를 벗었다.

처음엔 어색했던 망토였다. 이제는 벗는 것이 조금 이상했다.

푸리나가 물었다.

“아쉬워?”

죠니는 망토를 접어 의자 위에 두었다.

“반쯤.”

“나머지 반은?”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

푸리나는 웃었다.

“죠니답다.”

“여왕님, 이거 다시 할 거야?”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언젠가는.”

죠니는 바로 대답했다.

“그럼 그때는 배 이름에서 ‘목적지까지 책임지지는 않음’은 빼자.”

“왜?”

“돌아와 보니까, 그건 좀 너무했어.”

푸리나는 배 앞머리에 붙어 있던 부제를 떠올렸다.

그리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다음엔 바꿀게.”

“뭐로?”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말했다.

“목적지는 멀어도, 돌아올 자리는 준비해둠.”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길다.”

“그렇지?”

“응.”

“별로야?”

죠니는 식탁 위의 등불을 보았다.

“아니. 좀 길어도 괜찮겠네.”

푸리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

마지막으로 그레이가 문을 닫았다.

이타카의 낮은 집은 어둠 속으로 천천히 물러났다. 바다 천은 접혔고, 배의 돛대도 내려갔다. 종이 갈매기들은 줄에서 풀려 상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모두가 사라진 뒤에도 작은 불빛 하나는 남았다.

타마르가 준 등불이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끄려다 멈췄다.

그레이가 물었다.

“두고 가시겠습니까?”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늘은.”

죠니가 말했다.

“극장에 불 켜두면 관리인이 싫어할 텐데.”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안전한 등불이면 문제 없습니다. 다만 주변에 가연물을 치워야 합니다.”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현실로 돌아왔네.”

푸리나는 웃었다.

“그래도 좋네.”

아스테르다스가 말했다.

“응. 돌아온 것 같아.”

레이튼은 조용히 덧붙였다.

“그리고 돌아왔기 때문에, 다시 떠날 수 있겠지요.”

죠니가 그를 보았다.

“후일담 끝나자마자 다음 질문이야?”

“좋은 귀향은 다음 길을 막지 않습니다.”

죠니는 한숨처럼 웃었다.

“그래. 그 말은 좀 좋네.”

푸리나는 등불을 마지막으로 한 번 바라보았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그녀가 말했다.

“이타카행 임시 극장선, 항해 종료.”

죠니가 낮게 정정했다.

“귀항 완료.”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응.”

그녀는 다시 말했다.

“귀항 완료.”

등불은 조용히 흔들렸다.

무대는 어두워졌다.

하지만 완전히 어두워지지는 않았다.

빈 잔 옆에 놓인 작은 불빛이, 아주 오래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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