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6여관◆zAR16hM8he(55e5d5d9)2026-05-08 (금) 17:38:09
좋아. 이번에는 1순위: 푸리나 × 알토 × 아카식 단말로 가자.

주제는 “이야기는 살아가는 것인가, 기록되는 것인가”.
초반은 아카식 단말의 장난스러운 방문, 중반은 푸리나가 아르메니아 거리로 끌고 나가는 데이트 겸 시찰, 후반은 알토와 푸리나가 “기록과 무대”를 두고 부딪히는 장면으로 잡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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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편 — 기록자는 박수 전에 펜을 들었다

푸리나 헤툼은 처음 그 방문객을 보았을 때, 암살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암살자라기에는 너무 태연했고, 사절이라기에는 너무 예의가 없었으며, 신관이라기에는 너무 즐거워 보였다.

무엇보다 그는 푸리나의 왕궁 발코니 난간에 앉아 있었다.

그것도 한 손에는 작은 기록장을 들고, 다른 손에는 왕궁 주방에서 갓 구운 꿀과자를 들고 있었다.

푸리나는 잠시 그를 보았다.

방문객도 푸리나를 보았다.

그리고 아주 환하게 웃었다.

“좋은 아침, 킬리키아의 극장주.”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누구?”

방문객은 기록장을 탁 덮었다.

“기록의 성좌 아카식의 단말. 오늘은 산책용 몸이라고 생각해도 좋아.”

푸리나는 그 말을 들은 뒤, 정확히 세 가지를 동시에 생각했다.

첫째, 기록좌의 단말이 왕궁에 무단 침입했다.
둘째, 주방 꿀과자가 벌써 털렸다.
셋째, 그레이가 알면 난리가 난다.

그래서 푸리나는 말했다.

“좋아.”

아카식 단말은 눈을 빛냈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네?”

“좋지 않아.”

“방금 좋아라고 했는데?”

“그건 내 입버릇이야.”

“기록해둘게.”

“하지 마.”

단말은 이미 기록장을 펼쳤다.

푸리나는 바로 손을 뻗었다.

“기록하지 마!”

“왜? 귀여웠는데.”

“왕의 입버릇을 귀엽다고 기록하는 성좌가 어디 있어?!”

“여기.”

그 순간 발코니 아래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군주님.”

푸리나는 굳었다.

그레이였다.

그레이가 아래 정원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이미 장부가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폴란드 대공 알토가 조용히 서 있었다.

푸리나는 천천히 아래를 보았다.

“그레이.”

“예.”

“이건 말이지.”

“설명해주십시오.”

푸리나는 아카식 단말을 가리켰다.

“성좌가 떨어졌어.”

아카식 단말은 손을 흔들었다.

“정확히는 올라왔지.”

그레이는 눈을 감았다.

알토는 단말을 보았다.

“아카식.”

단말은 난간에서 뛰어내렸다.
그는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를 만난 듯 알토 앞에 내려섰다.

“알토. 너도 왔구나.”

알토는 담담히 말했다.

“네가 사라졌다는 보고를 받고 왔다.”

“사라진 게 아니라 방문한 거야.”

“폴란드 대공국의 기록좌 단말이 외교 절차 없이 타국 왕궁에 무단 진입했다. 이건 방문이 아니라 사건이다.”

푸리나가 속삭였다.

“알토, 너도 그레이 과야?”

알토가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가 누구지?”

그레이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제가 그레이입니다.”

알토는 그녀를 보고 잠시 생각했다.

“좋은 사람 같군.”

그레이는 조금 당황했다.

“예?”

아카식 단말이 웃었다.

“알토는 장부형 인간을 좋아해. 신뢰할 수 있으니까.”

푸리나는 팔짱을 꼈다.

“그래서. 기록좌의 단말이 왜 내 왕궁 난간에서 꿀과자를 먹고 있었는데?”

단말은 매우 당당하게 말했다.

“데이트 신청하러.”

침묵.

그레이의 펜이 멈췄다.

알토의 눈꺼풀이 아주 조금 내려갔다.

푸리나는 단말을 보았다.

“데이트?”

“응.”

“나랑?”

“응.”

“소리 소문 없이 남의 왕궁에 들어와서?”

“그 부분은 미안.”

“주방 꿀과자까지 먹고?”

“그건 정말 맛있었어.”

푸리나는 몇 초 동안 가만히 있다가, 양손을 허리에 올렸다.

“좋아!”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안 됩니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왜?!”

“상대는 성좌의 단말입니다. 외교적으로 위험하고, 신술적으로 위험하며, 계약적으로 매우 위험합니다.”

아카식 단말이 손을 들었다.

“맞아. 계약적으로는 조심하는 게 좋아.”

그레이가 단말을 보았다.

“직접 인정하시는군요.”

“계약은 장난이 아니니까.”

그 말만큼은 가볍지 않았다.

아카식의 눈빛이 잠깐 달라졌다.

“이야기는 실수해도 돼. 사람은 넘어져도 되고, 잘못 골라도 돼. 하지만 계약은 안 돼. 기록된 약속은 세계가 기억하거든.”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들었다.

“그러면 조건.”

단말이 즐거운 듯 웃었다.

“오?”

“이 데이트는 계약이 아니야.”

“좋아.”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좋아’도 위험합니다.”

푸리나는 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방금 좋아는 동의가 아니라 감탄. 기록 금지.”

아카식 단말은 웃으며 기록장을 덮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오늘의 산책은 계약도, 맹세도, 외교조약도 아니다. 단지 기록자가 극장주에게 한 장면을 청하는 것.”

알토가 말했다.

“나는 동행한다.”

단말이 고개를 기울였다.

“데이트인데?”

“네가 계약을 꺼내지 않는지 감시한다.”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푸리나는 급히 손을 내저었다.

“그레이는 안 돼.”

“군주님.”

“그레이가 있으면 데이트가 아니라 감사가 돼.”

“감사가 필요합니다.”

“몰래 나가는 것도 아니잖아. 알토도 있고, 기록좌 단말도 있고, 나도 있어.”

그레이는 더 불안해졌다.

“그 조합이라서 더 문제입니다.”

푸리나는 그레이의 두 손을 잡았다.

“그레이.”

“예.”

“믿어줘.”

그레이는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환하게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장난만은 아니었다.

“나도 알아. 기록좌 앞에서 함부로 약속하면 안 된다는 거. ‘뭐든 들어줄게’ 같은 말 안 해. ‘반드시’도 조심할게. ‘영원히’도 금지. ‘무조건’도 금지.”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 정도까지 알고 계시면 조금은 안심입니다.”

“응!”

“그러나 조금만입니다.”

“충분해!”

그레이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해 질 무렵 전까지 돌아오십시오. 왕궁 밖으로 나가신다면 호위는 최소화하되 배치하겠습니다. 공식 기록은 ‘폴란드 대공 및 기록좌 단말과의 비공식 시찰’로 처리하겠습니다.”

푸리나가 활짝 웃었다.

“좋아!”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그 ‘좋아’는 기록하지 마십시오.”

아카식 단말은 양손을 들었다.

“안 할게.”

알토가 조용히 말했다.

“나는 기억한다.”

푸리나는 알토를 보았다.

“알토.”

“기억과 기록은 다르다.”

“너도 꽤 성가신 타입이구나.”

“자주 듣는다.”


---

푸리나는 데이트 장소로 왕궁을 고르지 않았다.

정원도 아니었다.

연회장도 아니었다.

그녀가 아카식 단말과 알토를 데려간 곳은 시스의 거리였다.

정확히는 왕궁 아래쪽 시장 거리.

전쟁의 그림자가 닿아 있었지만 아직 완전히 굴복하지 않은 거리였다.
피난민 수레가 지나가고, 대장장이가 부러진 말굽을 고치고, 빵 굽는 냄새가 골목을 따라 흘렀다. 아이들은 좁은 골목에서 나무 조각으로 만든 검을 휘둘렀고, 여관 앞에서는 부상병 둘이 햇볕을 쬐고 있었다.

아카식 단말은 그 모든 것을 즐거운 듯 보았다.

“아, 좋다.”

푸리나는 그를 흘끗 보았다.

“뭐가?”

“완성되지 않은 장면이 많아.”

“좋아하는 말투는 아니네.”

“왜?”

푸리나는 시장 한복판을 가리켰다.

“저 사람들은 아직 살아 있거든. 완성품처럼 보지 마.”

아카식 단말은 잠시 푸리나를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그래서 내가 온 거야.”

“뭐?”

“기록자는 끝난 이야기만 좋아한다고 생각해?”

알토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아카식은 끝난 기록보다 살아 있는 선택에 더 자주 끼어든다.”

푸리나는 알토를 보았다.

“그거 좋은 거야, 나쁜 거야?”

알토는 생각했다.

“대체로 귀찮다.”

“신을 그렇게 말해도 돼?”

아카식 단말이 환하게 웃었다.

“좋아. 아주 좋은 기록이야.”

알토는 익숙한 듯 대답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시장 골목으로 앞장섰다.

“따라와. 나 하나만 기록하면 재미없어.”

아카식 단말이 물었다.

“너는 왕이잖아. 왕의 이야기는 보통 재미있어.”

“너무 쉽잖아.”

푸리나는 고개를 돌려 씩 웃었다.

“기록자가 게으르면 안 되지. 진짜 주인공들은 저쪽에 있어.”

그녀는 빵집 앞에 멈춰 섰다.

빵집 주인은 푸리나를 보고 허둥지둥 허리를 숙이려 했다.
푸리나는 바로 손을 내밀어 막았다.

“오늘은 몰래 시찰이야.”

빵집 주인이 그녀의 복장을 보았다.

푸리나의 푸른 장식과 뒤따르는 폴란드 대공, 그리고 아카식 단말을 보았다.

“……전혀 몰래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푸리나는 당당히 말했다.

“기분이 몰래면 몰래야.”

알토가 조용히 말했다.

“기록상 부정확하다.”

“알토, 오늘은 기록 좀 늦게 해.”

아카식 단말이 빵 냄새를 맡으며 말했다.

“하지만 이런 건 기록해야 해. 전쟁 중인 도시에서 빵이 구워지고 있다는 건 중요하니까.”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왜?”

“성벽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기록보다, 사람들이 내일 아침 먹을 빵을 굽고 있다는 기록이 더 오래 버티는 경우가 있어.”

푸리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빵집 주인은 그 말에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그저 밀가루가 오늘 들어왔을 뿐입니다.”

알토가 물었다.

“밀가루 수송로는 어느 쪽이지?”

빵집 주인은 바로 길 이름을 말했다.

알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쪽 길이 아직 열려 있군.”

푸리나가 작게 웃었다.

“봐. 빵 하나에도 작전 정보가 있지?”

아카식 단말이 말했다.

“그리고 사람 냄새도 있지.”

푸리나는 그에게 빵 하나를 건넸다.

“데이트 비용은 네가 낸다고 했지?”

“내가?”

“몰래 침입 벌칙.”

“계약은 아니지?”

“벌칙이야.”

아카식 단말은 웃으며 동전을 꺼냈다.

알토가 그 동전을 보았다.

“어디서 났지?”

“기록자에게는 비상금이 있어.”

“누구의 기록에서 꺼낸 거지?”

“아주 오래전, 어떤 상인이 여관에 놓고 간 동전.”

알토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아카식 단말은 한숨을 쉬었다.

“농담이야. 정당한 폴란드 화폐야.”

푸리나는 빵을 한입 베어 물며 말했다.

“신도 농담이 구리네.”

단말은 바로 기록장을 꺼냈다.

“이건 기록해도 돼?”

“안 돼.”


---

다음으로 푸리나는 그들을 작은 광장으로 데려갔다.

광장 한쪽에서는 피난민 아이들이 나무판자와 천 조각으로 작은 인형극 무대를 만들고 있었다.

무대 위에는 우스꽝스러운 몽골 기병 인형과, 그보다 훨씬 더 우스꽝스러운 왕관 쓴 고양이 인형이 있었다.

아카식 단말이 눈을 빛냈다.

“저건 뭐야?”

푸리나는 잠시 굳었다.

“……막간?”

아이 하나가 푸리나를 보고 외쳤다.

“군주님!”

푸리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쉿. 오늘은 몰래야.”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알겠습니다, 몰래 군주님!”

알토가 말했다.

“실패했군.”

푸리나는 못 들은 척했다.

아이들이 인형극을 시작했다.

몽골 기병 인형이 외쳤다.

“복종하라, 아니면 죽어라!”

그러자 왕관 쓴 고양이 인형이 탁자 위로 뛰어올랐다.

“야옹!”

아이들이 까르르 웃었다.

다음에는 푸리나를 닮은 인형이 나왔다.
푸리나 인형은 지나치게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즉흥극!”

푸리나는 입을 벌렸다.

아카식 단말은 어깨를 떨었다.

알토는 입가만 아주 조금 움직였다.

푸리나는 아이들을 보았다.

“잠깐. 나 그렇게 말해?”

아이들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카식 단말이 말했다.

“귀중한 민간 구전 자료군.”

“기록하지 마!”

“이건 해야지.”

“안 돼!”

알토가 조용히 말했다.

“민간극은 기록 가치가 높다.”

푸리나는 배신당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알토, 너까지?”

알토는 담담했다.

“특히 군주가 민간에서 어떻게 희화화되는지는 국가 정체성의 중요한 증거다.”

“나는 지금 놀림받고 있는데?”

“그것도 신뢰의 증거다.”

푸리나는 멈칫했다.

아이들은 푸리나 인형에게 종이 왕관을 씌우고 있었다.
그 인형은 과장되게 팔을 벌렸다.

“모두 주인공이야!”

아이들이 또 웃었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다가, 살짝 웃었다.

“……뭐, 나쁘진 않네.”

아카식 단말은 조용히 그 옆모습을 보았다.

그의 손이 기록장으로 향했다.

푸리나는 보지 않고 말했다.

“펜 내려.”

단말은 멈췄다.

“왜?”

“먼저 봐.”

그 말에 아카식 단말이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아이들의 인형극을 바라보고 있었다.

“기록하지 말라는 게 아니야. 그런데 지금은 먼저 봐. 저 애들은 기록되기 위해 웃는 게 아니야. 그냥 웃는 거야.”

아카식 단말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

알토도 말없이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기록은 나중에 해도 돼. 박수는 지금 해야 해.”

그리고 그녀는 아이들의 인형극이 끝나자 가장 먼저 박수를 쳤다.

짝.

짝짝.

처음에는 푸리나 혼자였다.

곧 빵집 주인이 박수쳤고, 부상병도 박수쳤고, 지나가던 피난민들이 박수쳤다.
아이들은 어색해하다가, 곧 얼굴이 환해졌다.

아카식 단말은 그 박수 소리를 들었다.

한참 뒤, 그는 조용히 손뼉을 쳤다.

알토도 느리게 박수쳤다.

아주 짧은 박수였지만, 분명히 박수였다.

푸리나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좋아. 이제 조금 데이트 같네.”

알토가 말했다.

“데이트의 정의가 독특하군.”

“아르메니아식이야.”

아카식 단말이 웃었다.

“아르메니아식 데이트는 박수부터 치는군.”

푸리나는 가볍게 답했다.

“당연하지. 상대가 살아 있다는 걸 확인하는 좋은 방법이거든.”


---

해가 기울 무렵, 셋은 성벽 위에 올라갔다.

시장 아래에서는 저녁 준비가 시작되고 있었다.
연기가 피어올랐고, 여관 앞에는 피난민들이 줄을 서 있었다.
멀리 산길 너머에는 아직 전쟁의 먼지가 남아 있었다.

아카식 단말은 성벽 위에 앉아 기록장을 펼쳤다.

이번에는 푸리나도 말리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적었다.

아이들의 인형극.
전쟁 중에도 구워진 빵.
왕을 놀릴 수 있는 거리.
피난민 수레 옆에서 울다가 웃은 아이.
박수를 먼저 치라고 말한 극장주.

푸리나는 성벽 난간에 기대 그를 보았다.

“너는 정말 전부 기록하는구나.”

“전부는 아니야.”

“그래?”

“전부 기록하려 하면 아무것도 못 봐.”

그 말은 의외였다.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아카식 단말은 기록장을 덮었다.

“기록자는 선택해야 해. 무엇을 남길지. 어떤 순서로 남길지. 어떤 이름으로 남길지. 그래서 기록도 무섭지.”

알토가 조용히 말했다.

“잘못된 기록은 사람을 영원히 묶을 수 있다.”

푸리나는 알토를 보았다.

알토의 목소리는 늘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묘하게 무거운 것이 있었다.

“기록되지 않는 삶은 사라진다. 하지만 잘못 기록된 삶은 왜곡되어 남는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극이랑 비슷하네.”

아카식 단말이 웃었다.

“그렇지?”

“작가가 잘못하면 사람을 배역으로 가둬버리니까.”

“기록자도 그래.”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래 거리에서는 아이들이 아직 인형극 무대를 정리하고 있었다.

푸리나는 문득 물었다.

“아카식.”

“응?”

“너는 사람의 이야기를 사랑한다고 했지?”

“응.”

“그럼 묻고 싶은 게 있어.”

아카식 단말은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밝지 않았다.

그렇다고 어둡지도 않았다.

그저 진지했다.

“네가 사랑하는 건 끝난 이야기야?”

알토가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말을 이었다.

“아니면 아직 무대 위에서 넘어지고 있는 사람도 사랑해?”

아카식 단말은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성벽 위를 지나갔다.

아래에서 저녁 종소리가 들렸다.

마침내 단말은 웃었다.

이번 웃음은 장난스럽지 않았다.

“푸리나 헤툼.”

“응.”

“끝난 이야기는 읽기 좋아. 정리되어 있고, 구조가 있고, 결말이 있지. 실패도 후회도 비극도, 마지막 장까지 넘기고 나면 하나의 기록이 돼.”

그는 아래 거리를 보았다.

“하지만 아직 넘어지는 사람은 더 좋아.”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왜?”

“예측이 안 되거든.”

아카식은 웃었다.

“넘어지고, 울고, 다시 일어나고, 엉뚱한 선택을 하고, 구린 농담에 웃고, 도저히 해피엔딩이 안 될 것 같은 곳에서 삼류 해피엔딩을 만들어내.”

그는 기록장을 손끝으로 두드렸다.

“그런 건 끝난 책에서는 못 봐. 살아 있는 사람만 해.”

푸리나는 그를 가만히 보았다.

알토가 조용히 덧붙였다.

“아카식은 비극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가능하다면 사람의 서투른 해피엔딩을 선호한다.”

푸리나가 아카식을 보며 말했다.

“취향 좋네.”

아카식 단말이 활짝 웃었다.

“그렇지?”

“조금 마음에 들었어.”

“데이트 성공?”

푸리나는 손가락을 들었다.

“부분 성공.”

“왜 부분?”

“왕궁 무단 침입, 꿀과자 절도, 민간극 무단 기록 시도, 계약 위험성.”

아카식 단말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점수가 많이 깎였네.”

“그래도 박수는 잘 쳤어.”

“가산점?”

“응.”

알토가 말했다.

“평가는 합리적이다.”

아카식 단말이 알토를 보았다.

“너까지 평가하지 마.”

“동행 감시자로서 필요하다.”

푸리나는 두 사람을 보다가 웃었다.

그 웃음은 성벽 아래까지는 닿지 않았다.

하지만 성벽 위 세 사람에게는 충분했다.


---

돌아가기 전, 아카식 단말은 푸리나에게 작은 책갈피 하나를 건넸다.

책갈피는 투명한 얇은 판처럼 보였다.
그 안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들어 빛에 비추었다.

“빈 건데?”

“아직 기록되지 않은 책갈피야.”

“그게 뭐야?”

“네가 언젠가 남기고 싶은 장면이 생기면, 거기에 끼워.”

푸리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계약 아니지?”

아카식 단말은 웃었다.

“아니야. 선물.”

푸리나는 알토를 보았다.

알토는 책갈피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성 문구는 없다.”

“좋아.”

그레이가 있었다면 한 번 더 확인했겠지만, 지금은 일단 받기로 했다.

푸리나는 책갈피를 품에 넣었다.

“그럼 나도 하나 줄게.”

아카식 단말이 눈을 빛냈다.

“오?”

푸리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성벽 위에 떨어진 작은 종이꽃 하나를 주웠다.

아이들이 인형극 무대 장식으로 쓰던 것이었다.

조잡했다.
접힌 모양도 삐뚤었고, 색도 살짝 번져 있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아카식 단말에게 건넸다.

“이건 오늘의 박수.”

아카식 단말은 종이꽃을 받았다.

푸리나는 말했다.

“기록해도 돼. 하지만 예쁘게 쓰려고 하지 마.”

“왜?”

“삐뚤게 접힌 게 중요하니까.”

아카식은 종이꽃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기록장 사이에 그것을 끼웠다.

“알겠어.”

푸리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데이트 종료.”

“다음도 있어?”

푸리나는 바로 대답하려다가 멈췄다.

아카식이 눈을 반짝였다.

알토도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손가락을 들어 단호하게 말했다.

“다음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 약속 아님. 계약 아님. 기록상 확정 아님.”

알토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문장이다.”

아카식 단말은 조금 아쉬운 듯 웃었다.

“그레이에게 잘 배웠네.”

푸리나는 가슴을 폈다.

“내 가신들은 우수하거든.”

“그것도 기록해도 돼?”

“그건 해.”

아카식 단말은 기록했다.

킬리키아의 극장주는 자신의 가신들을 자랑스러워한다.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고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응. 그건 맞아.”


---

왕궁으로 돌아왔을 때, 그레이는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푸리나를 위아래로 확인했다.

“부상 없음.”

다음으로 알토를 보았다.

“외교적 충돌 없음.”

마지막으로 아카식 단말을 보았다.

“추가 꿀과자 절도 없음.”

아카식 단말은 양심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만 더 먹었어.”

그레이의 눈이 가늘어졌다.

푸리나는 급히 끼어들었다.

“그레이! 오늘 아주 중요한 성과가 있었어.”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책갈피를 꺼냈다.

“선물 받았어. 계약 아님.”

그레이가 즉시 알토를 보았다.

알토가 말했다.

“확인했다. 계약성 없음.”

그레이는 그제야 아주 조금 안도했다.

푸리나는 이어 말했다.

“그리고 내가 종이꽃 줬어. 그것도 계약 아님.”

아카식 단말이 말했다.

“하지만 기록은 했어.”

그레이가 다시 긴장했다.

푸리나는 웃었다.

“괜찮아. 이번엔 내가 허락했어.”

그레이는 잠시 푸리나를 보았다.

“어떤 기록입니까?”

아카식 단말은 기록장을 열었다.

그리고 읽었다.

“전쟁 중인 시스의 작은 광장에서 아이들이 군주를 우스꽝스러운 인형으로 만들었다. 군주는 항의했으나, 결국 가장 먼저 박수쳤다. 기록자는 펜을 들려 했으나, 군주는 말했다. ‘기록하지 마. 먼저 봐.’ 이후 기록자는 박수를 쳤다.”

그레이는 조용히 들었다.

푸리나는 조금 부끄러운 듯 시선을 돌렸다.

“뭐, 대충 그런 일이 있었어.”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좋은 시찰이었군요.”

푸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예.”

그레이는 아주 작게 고개를 숙였다.

“무사히 돌아오셨다면요.”

아카식 단말이 미소 지었다.

“좋은 결론이네.”

그레이는 단호하게 말했다.

“결론이 아니라 조건입니다.”

알토가 조용히 말했다.

“그레이는 역시 좋은 사람이다.”

푸리나는 웃었다.

“그렇지?”

그레이는 더 당황했다.

“무슨 흐름입니까?”

“칭찬의 흐름.”

“멈춰주십시오.”

아카식 단말이 기록장을 들었다.

“이건 기록해야—”

그레이와 푸리나가 동시에 말했다.

“하지 마.”

아카식 단말은 웃으며 기록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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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알토는 폴란드식 기록지에 짧은 보고를 남겼다.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비공식 시찰.
기록좌 단말 동행.
푸리나 헤툼은 기록보다 현장의 박수와 삶의 현재성을 우선함.
그러나 기록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음.
그녀는 기록될 장면과 먼저 살아야 할 장면을 구분하려 한다.
위험하나, 중요한 군주.

아카식 단말은 그 옆에 자기 글씨로 한 줄을 덧붙였다.

삼류 해피엔딩 가능성 높음. 관찰 지속 희망.

알토는 그 문장을 보았다.

“희망이라는 표현은 부정확하다.”

아카식 단말은 웃었다.

“하지만 좋잖아.”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그 문장을 지우지 않았다.

한편 푸리나는 자기 방에서 빈 책갈피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아무것도 기록되지 않은 책갈피.

아직 끼워지지 않은 장면.

그녀는 그것을 자기 대본집 사이에 넣으려다가 멈췄다.

그리고 대신 작은 상자 안에 넣었다.

상자 안에는 몇 가지 물건이 있었다.

그레이가 준 수정된 휴식권 사본.
죠니의 말 장식 제작 초안.
하융에게 주었던 장기말과 닮은 작은 목각 조각.
레이튼의 수수께끼 상자에서 남은 자물쇠 하나.
그리고 오늘 받은 빈 책갈피.

푸리나는 책갈피를 넣고 뚜껑을 닫았다.

“아직은 아니야.”

그녀는 작게 말했다.

“기록되기엔 아직 무대가 너무 소란스럽거든.”

창밖에서는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꺼지고 있었다.

하지만 전부 꺼지지는 않았다.

어딘가에서는 아직 빵이 구워지고 있었고, 어딘가에서는 아이들이 내일 공연할 인형극을 고치고 있었고, 어딘가에서는 그레이가 결국 오늘의 시찰 보고서를 쓰고 있을 것이다.

푸리나는 창가에 기대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웃었다.

기록자는 박수 전에 펜을 들었다.

극장주는 그 손을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먼저 보라고.

아직 이 사람들은 살아 있다고.

아직 막은 닫히지 않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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