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63여관◆zAR16hM8he(514e9af3)2026-05-20 (수) 19:58:13
3막 — 사막의 뱀과 침묵의 식탁

— 돌아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문턱 —

사막은 다시 조용했다.

하지만 처음의 사막과는 달랐다.

처음의 사막은 넓고, 낯설고, 아무것도 대답하지 않는 곳이었다.
지금의 사막은 어쩐지 누군가 기다리고 있는 곳처럼 보였다.

모래빛 천 위로 낮은 바람이 흘렀다.
무대 위의 별들은 멀어졌고, 장미 정원의 붉은빛도 사라졌다. 대신 모래 위에 길 하나가 남아 있었다.

요안나는 그 길 끝에 서 있었다.

손에는 기록판이 있었다.

상자 속 양.
유리 덮개.
그리고 알토가 준 이름표에는 이제 작게 쓴 글자가 남아 있었다.

장미.

요안나는 그 글자를 보고, 다시 하늘을 보았다.

별은 너무 많았다.

자기 별이 어느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하지.”

그 말에 대답하듯, 모래 위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사각.

사각.

누군가 걸어왔다.

검은 숄을 두른 여인이었다.

아레 마가트로이드.

오늘의 그녀는 뱀이었다.

그러나 뱀의 가면도, 비늘도 없었다. 그녀는 그저 검은 실처럼 낮은 침묵을 끌고 왔다. 숄 끝이 모래 위를 스쳤고, 그녀의 발걸음은 거의 소리를 내지 않았다.

그녀는 요안나 앞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아무 설명도 없이 모래 위에 작은 식탁보를 펼쳤다.

물 한 잔.

빵 한 조각.

빈 접시 하나.

그것뿐이었다.

요안나는 그것을 한참 보다가 물었다.

“당신이…… 뱀이에요?”

아레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그렇단다.”

객석에서 아주 낮은 웃음이 흘렀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작게 속삭였다.

“뱀이 식탁보를 깔았어.”

죠니가 낮게 말했다.

“저 뱀은 물기 전에 식사부터 챙겨줄 것 같은데.”

그레이는 조용히 말했다.

“문턱 앞에서는 물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맞네.”

요안나는 식탁보와 아레를 번갈아 보았다.

“뱀은 원래 이렇게 하나요?”

“아니.”

아레는 물잔을 요안나 쪽으로 조금 밀었다.

“나는 전장 뒤에 식탁을 놓는 쪽이란다.”

요안나는 그 말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식탁보 위의 물잔을 보니, 아주 조금 목이 말라졌다.

아레는 앉으라고 말하지 않았다.

다만 식탁보 옆에 무릎을 낮추고 앉았다.
요안나가 앉지 않아도 괜찮다는 듯이.
앉고 싶어지면, 자리가 있다는 듯이.

요안나는 조심스럽게 식탁보 앞에 앉았다.

“이 물을 마시면 돌아가게 되나요?”

아레는 고개를 저었다.

“목이 덜 마른다.”

이번에는 객석에서 조금 더 선명한 웃음이 났다.

요안나도 아주 조금 웃었다.

그러고 나서 물잔을 들었다.

물은 차갑지 않았다.

따뜻하지도 않았다.

그저 목을 지나갈 만큼의 물이었다.

요안나는 물잔을 내려놓았다.

아레가 물었다.

“무서우냐.”

요안나는 손에 든 기록판을 내려다보았다.

“네.”

“좋다.”

요안나가 고개를 들었다.

“좋아요?”

“아직 붙잡은 것이 있다는 뜻이다.”

아레는 빵을 건드리지 않았다.

빈 접시도 그대로 두었다.

그 침묵이, 이상하게 요안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

멀리서 미하일라가 걸어왔다.

부러진 청동 매 옆에 남아 있던 황제.

그녀는 사막길 위의 검은 숄과 식탁보, 그리고 요안나 앞의 물잔을 보았다.

미하일라의 눈빛이 낮아졌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아레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빼앗으러 온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하러 왔지.”

“혼자 보내지 않으러 왔다.”

미하일라의 손이 허리 쪽으로 갔다.

오늘 그곳에는 활이 없었다.

아레는 그 손을 보았다.

“황제여.”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다.

“그 문은 쏘는 곳이 아니다.”

미하일라는 아레를 바라보았다.

“그럼 무엇으로 지키지.”

아레는 식탁보 위의 빈 접시를 보았다.

“침묵으로.”

그리고 조금 뒤에 덧붙였다.

“기다림으로.”

사막이 더 조용해졌다.

요안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숨을 삼켰다.

미하일라는 아레의 식탁보 앞에 서 있었다.
아레는 자리를 내어주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그저 그곳에 있었다.

전장의 지휘관이, 후퇴로의 끝에 서 있듯이.

미하일라가 낮게 말했다.

“요안나는 돌아가야 한다.”

아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러나 그 방식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마음에 들어서 하는 일은 적다.”

미하일라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아레는 담담히 말했다.

“보내는 일도 그렇다.”

요안나는 미하일라를 보았다.

미하일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의 침묵에는 전장의 침묵과 다른 무게가 있었다.

명령하면 움직이는 병사들.
쏘면 쓰러지는 적들.
막으면 지킬 수 있는 문들.

하지만 이 문턱은 달랐다.

아레는 짧게 말했다.

“지키는 것과 붙드는 것은 다르다.”

미하일라는 물잔을 보았다.

아레가 미하일라 쪽으로도 물잔 하나를 밀었다.

“짐에게도 주는가.”

“목마르면 마시십시오.”

“짐은 목마르지 않다.”

아레는 물잔을 거두지 않았다.

“그럼 두겠습니다.”

미하일라는 한참 동안 물잔을 보았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들었다.

마시지는 않았다.

다만 손에 쥐었다.


---

요안나는 두 사람을 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저는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알아요.”

아레가 요안나를 보았다.

“그래.”

“그런데 돌아가기가 싫어요.”

“그래.”

“장미가 화낼지도 몰라요.”

“그럴 것이다.”

“못 본 척할지도 몰라요.”

“그럴 수 있다.”

“늦었다고 할 거예요.”

아레는 잠시 침묵했다.

“그 말은 들어야 한다.”

요안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다음엔요?”

아레는 짧게 말했다.

“물을 주거라.”

요안나는 기록판을 꼭 안았다.

“그걸로 충분해요?”

“충분하지 않다.”

아레는 담담했다.

“그래도 해야 한다.”

요안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은 위로라기보다 명령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차갑지는 않았다.

아레는 요안나의 눈물을 닦아주지 않았다.
괜찮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잘못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도 않았다.

다만, 해야 할 일을 알려주었다.

늦었다는 말을 듣는다.

물을 준다.

덮개를 씌운다.

다음날 다시 간다.

요안나는 작게 물었다.

“사과하면 되나요?”

아레는 빈 접시를 보았다.

“사과만으로는 빈 접시가 차지 않는다.”

요안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레는 이어 말했다.

“그래도 사과는 해야 한다.”

“그다음은요?”

“앉아라.”

“어디에요?”

“네가 비워둔 자리 앞에.”

사막 바람이 지나갔다.

그 말은 요안나에게 아주 무겁게 내려앉았다.


---

미하일라가 입을 열었다.

“아레.”

아레는 고개를 들었다.

“황제여.”

“그 아이가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면?”

“그럼 남는다.”

“그걸 허락한다는 뜻인가.”

아레는 미하일라를 바라보았다.

“억지로 간 아이는 돌아간 것이 아니다.”

미하일라는 물잔을 손에 쥔 채 침묵했다.

아레는 낮게 덧붙였다.

“하지만 남으면, 남겨둔 꽃은 바람을 맞는다.”

요안나는 눈을 감았다.

작은 별이 떠올랐다.

화산 세 개.
바오밥나무 싹.
해 지는 자리.
그리고 장미.

유리 덮개 옆에 서 있던 장미.

필요 없다고 말하면서도 꽃잎을 떨던 장미.

“장미가 혼자 있겠죠.”

요안나가 말했다.

아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늦었죠.”

“그래.”

“그럼…… 가야겠죠.”

아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요안나를 보았다.

작고, 왕관은 없지만 왕관의 무게를 아는 아이.

평화를 말하지만, 아직 한 송이 꽃 앞에서 떨고 있는 아이.

아레는 낮게 말했다.

“네가 말해야 한다.”

요안나는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가고 싶어요.”

미하일라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요안나.”

“네.”

“무섭나.”

“네.”

“그래도 가나.”

요안나는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하일라는 한참 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평소라면 명령은 짧았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것은 명령이 아니었다.

마침내 미하일라가 말했다.

“그렇다면 가라.”

요안나는 숨을 삼켰다.

미하일라는 이어 말했다.

“도망치듯 가지 마라. 네가 돌아간다는 것을 알고 가라.”

“네.”

미하일라는 물잔을 아주 조금 마셨다.

그리고 낮게 덧붙였다.

“장미가 화를 내면, 들어라.”

요안나는 눈을 크게 떴다.

“폐하도 그렇게 하세요?”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객석에서 아주 낮은 웃음이 흘렀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입을 가렸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저 질문은 꽤 정확했네.”

미하일라는 마침내 말했다.

“짐도 배워야 할 일이 있다.”

그 말은 작았다.

하지만 요안나는 들었다.

그리고 그 말은, 등불 같았다.

벨라의 작은 별에서 보았던, 켜졌다 꺼졌다 다시 켜지는 불빛처럼.


---

아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식탁보를 접지 않았다.

물잔도, 빵도, 빈 접시도 그대로 두었다.

요안나는 물었다.

“왜 치우지 않아요?”

“아직 문턱이다.”

“누가 더 앉아요?”

아레는 사막의 먼 곳을 보았다.

“떠나는 자. 남는 자. 늦게 따라오는 자.”

잠시 침묵.

“말을 잃은 자.”

요안나는 그 말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식탁보가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 조금 안심되었다.

아레는 검은 숄 끝을 손에 감았다.

그러자 숄에서 가느다란 검은 리본 하나가 풀려나왔다.

리본은 모래 위로 길게 뻗었다.

뱀처럼.

하지만 꿈틀대지는 않았다.

그것은 선이었다.

여기와 저기.

남음과 돌아감.

침묵과 말.

그 사이에 놓인 검은 선.

아레가 말했다.

“넘어라.”

요안나는 리본을 보았다.

“넘으면 아파요?”

“아프다.”

“그럼 싫어요.”

“그래도 된다.”

요안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안 넘으면요?”

아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작은 별의 바람 소리를 데려왔다.

장미가 혼자 서 있는 소리.

요안나는 기록판을 내려다보았다.

“장미가 기다리고 있겠죠.”

“그래.”

“화났겠죠.”

“그래.”

“울었을까요?”

아레는 잠시 침묵했다.

“돌아가서 물어라.”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본 앞에 섰다.

발끝이 멈췄다.

아레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대신 곁에 섰다.

말없이.

흔들림 없이.

요안나는 문득 깨달았다.

아레는 밀어주러 온 것이 아니었다.

끌고 가러 온 것도 아니었다.

넘는 것은 요안나의 일이었다.

다만, 혼자 넘지 않게 서 있었다.

요안나는 발을 들었다.

그리고 검은 리본을 넘었다.


---

사막의 조명이 꺼졌다.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었다.

작은 별 하나만 남았다.

요안나의 몸은 무대 위에 그대로 있었지만, 이상하게 가벼워 보였다. 마치 모래 위에 놓인 옷처럼. 또는, 잠시 벗어둔 그림자처럼.

객석에서 숨소리가 낮아졌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손을 꼭 쥐었다.

아레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렸다.

“숨을 쉬어라.”

요안나의 목소리가 멀리서 대답했다.

“이상해요.”

“그래.”

“아파요.”

“그래.”

“무서워요.”

“그래.”

“그래도…… 가야 해요.”

아레는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이제 아레가 해줄 필요가 없었다.

작은 별이 조금 더 밝아졌다.

요안나는 그 빛을 향해 걸었다.

모래는 사라지고 있었다.

대신 작은 별의 표면이 나타났다.

화산 세 개.

바오밥나무 싹.

그리고 장미가 있던 자리.

요안나는 걸음을 멈췄다.

장미는 아직 그곳에 있었다.

꼿꼿하게.

꽃잎을 조금 접은 채.

울지 않는다고 말할 준비가 된 것처럼.

요안나는 한 걸음 다가갔다.

장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요안나는 더 다가갔다.

장미의 목소리가 들렸다.

“늦었네요.”

그 한마디에, 요안나는 거의 울 뻔했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았다.

그녀는 기록판을 내려놓았다.

물뿌리개를 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말했다.

“미안해.”

장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요안나는 이어 말했다.

“바람이 불었지.”

장미의 꽃잎이 아주 조금 떨렸다.

“별일은 아니었어요.”

“그래.”

요안나는 유리 덮개를 들었다.

“그래도 오늘 밤에는 씌워줄게.”

장미는 한참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너무 늦게 씌우면, 꽃잎에 닿아요.”

요안나는 눈물을 삼키며 웃었다.

“응. 조심할게.”

장미는 다시 말했다.

“물은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응.”

“그리고…….”

요안나는 기다렸다.

장미는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침 인사는 내일 제때 해주세요.”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같은 시간에 올게.”

장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꽃잎이 조금 열렸다.

아주 조금.

그 정도면 충분했다.


---

사막으로 돌아오자, 미하일라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식탁보도 그대로였다.

물잔은 반쯤 비어 있었고, 빵 한 조각은 손대지 않았다.

아레는 검은 리본을 거두고 있었다.

요안나는 모래 위에 다시 섰다.

미하일라가 물었다.

“다녀왔나.”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엇을 했지.”

요안나는 기록판을 품에 안았다.

“물을 줬어요.”

미하일라는 아주 짧게 숨을 내쉬었다.

그것이 안도인지, 웃음인지, 아무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렇군.”

요안나는 조금 뒤에 말했다.

“그리고 내일도 가기로 했어요.”

미하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아레는 식탁보를 접기 시작했다.

요안나가 물었다.

“이제 치워도 돼요?”

“문턱을 넘었으니.”

“다시는 필요 없나요?”

아레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말했다.

“사람은 여러 번 문턱에 선단다.”

그녀는 식탁보를 접어 품에 넣었다.

“그때마다 물과 빵이 아주 쓸모없지는 않다.”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할게요.”

아레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푸리나의 목소리가 무대 위로 조용히 내려왔다.

“작은 방문자는 사막의 뱀을 만났습니다.”

그 목소리는 평소처럼 장난스럽지 않았다.

“뱀은 문턱을 열었고, 황제는 기다렸고, 아이는 돌아갔습니다.”

잠시 침묵.

“그리고 장미는, 여전히 장미였습니다.”

무대 뒤 간판이 천천히 내려왔다.

4막 — 별빛과 남겨진 사람

그 아래, 작은 부제가 붙었다.

— 밤하늘을 보고 웃는 법 —

요안나는 하늘을 보았다.

별은 여전히 많았다.

하지만 이제 그중 하나가, 조금 다르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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