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65여관◆zAR16hM8he(514e9af3)2026-05-20 (수) 20:09:46
후일담 — 물뿌리개와 거꾸로 걸린 별
— 같은 시간에 돌아간다는 것 —
공연이 끝난 뒤에도, 별들은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원래라면 막이 닫히고, 무대 담당들이 사막 천을 접고, 청동 매의 날개를 분리하고, 장미 정원의 꽃들을 하나씩 상자에 넣어야 했다. 그러나 푸리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 앞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꾸로 걸렸던 별은 이제 바로 걸려 있었다.
그 별이 정말 요안나의 작은 별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실 무대 담당이 실수로 거꾸로 걸었던 종이 별 하나일 뿐이었다. 얇은 나무틀에 은색 가루를 바르고, 뒤쪽에 작은 실을 묶은 소품.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그 별을 너무 빨리 내리면 안 될 것 같았다.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아직 치우지 말자.”
무대 담당들이 서로를 보았다.
죠니가 객석에서 물었다.
“여왕님, 그럼 퇴근은?”
푸리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죠니, 오늘은 별이 퇴근을 허락할 때까지야.”
“별이 노동법을 모를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내가 대신 협상할 거야.”
요안나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
웃음은 아주 작았지만, 공연 중 마지막에 별을 보고 웃던 것과 같은 결이었다.
미하일라는 그 웃음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장미는 무대 가장자리에 남아 있었다.
작은 별 세트는 절반쯤 내려가 있었고, 화산 세 개는 이미 소품 담당의 손에 들려 있었다. 바오밥나무 싹도 상자 안에 정리되었다.
하지만 장미만은 아직 제자리에 있었다.
요안나는 그 앞에 섰다.
꽃잎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신술의 빛이 걷혀, 장미는 다시 무대 장미에 가까워져 있었다. 가느다란 철사와 천으로 만든 꽃. 조명 없이는 조금 낡아 보이기까지 하는 소품.
그런데도 요안나는 물뿌리개를 들었다.
푸리나가 조용히 다가왔다.
“요안나.”
“네?”
“그거 진짜 물 들어 있어.”
요안나는 물뿌리개를 내려다보았다.
“알아요.”
“무대 장미라서 너무 많이 주면 곤란해.”
그 말에 요안나는 잠시 멈췄다.
공연 중 장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물은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요안나는 조금 웃었다.
“조금만 줄게요.”
푸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줄 거야?”
“네.”
“소품 담당이 울 수도 있는데.”
요안나는 장미를 보았다.
“그러면 닦을게요.”
푸리나는 잠시 요안나를 보았다.
그러다 조용히 물러났다.
“응. 그러면 됐어.”
요안나는 물뿌리개를 기울였다.
아주 조금.
물 한 방울이 장미의 뿌리 부분, 정확히는 무대 장미가 꽂혀 있는 작은 흙색 받침대 위로 떨어졌다.
톡.
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요안나에게는 크게 들렸다.
물을 너무 많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후일담은 시작된 셈이었다.
---
미하일라는 부러진 청동 매 곁에 있었다.
공연이 끝났으니, 이제 그 매는 다시 소품이었다. 날개를 고정하던 은실은 느슨해졌고, 천문반은 더 이상 별빛을 받아 움직이지 않았다. 소품 담당이 다가와 물었다.
“폐하,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미하일라는 청동 매를 보았다.
“기다려라.”
소품 담당은 즉시 물러났다.
죠니가 옆에서 낮게 말했다.
“소품도 황제 명령 받으면 좀 긴장하겠네.”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청동 매의 오른쪽 날개를 손끝으로 만졌다.
임시로 묶였던 은실.
공연 중에는 날 수 있을 만큼 고쳤지만, 자세히 보면 여전히 틀어져 있었다.
요안나가 다가왔다.
“아직 고장 났나요?”
“그렇다.”
“그래도 날았잖아요.”
“임시 조치였다.”
요안나는 날개를 보았다.
“그럼 다시 고쳐야겠네요.”
“그래.”
“완전히요?”
미하일라는 잠시 침묵했다.
“가능하면.”
요안나는 그 대답을 듣고 조금 웃었다.
“완전히가 아니어도, 돌아갈 수는 있었어요.”
미하일라는 요안나를 보았다.
그 말은 청동 매에 대한 말이었고, 또 다른 것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그렇다.”
요안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말하라.”
“완전히 고쳐지지 않아도, 같이 있을 수 있나요?”
미하일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다가, 슬쩍 무대 뒤로 물러났다. 죠니도 입을 다물었다.
미하일라는 청동 매를 내려다보았다.
“있을 수 있다.”
요안나는 숨을 삼켰다.
미하일라는 이어 말했다.
“다만 틀어진 날개를 틀어지지 않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네.”
“어디가 어긋났는지 알아야 한다.”
“네.”
“그리고 날 때마다 살펴야 한다.”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미도요?”
“장미도.”
“사람도요?”
미하일라는 요안나를 보았다.
“사람은 더 그렇다.”
요안나는 그 말을 마음속에 넣었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그럼 저도 살펴볼게요.”
미하일라는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짐도 그러겠다.”
그 말은 화해라고 부르기에는 작았다.
맹세라고 부르기에는 조용했다.
하지만 요안나는 그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면, 오늘은 충분했다.
---
레플리카는 장미 정원 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리를 돕는 척하다가 장미 줄 하나가 서로 엉킨 것을 심각하게 풀고 있었다.
푸리나가 다가왔다.
“레플리카, 그건 그냥 소품이라서 적당히 상자에 넣어도 돼.”
레플리카는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엉킨 채로 넣으면 다음 공연 때 더 아프다.”
“소품이?”
“소품 담당이.”
푸리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건 맞아.”
요안나가 다가오자, 레플리카는 장미 줄을 내려놓았다.
“왔군.”
“네.”
“같은 시간은 아니다.”
요안나는 살짝 당황했다.
“공연이 끝나서요.”
레플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유 확인.”
푸리나가 속삭였다.
“레플리카, 알토 말투가 섞였어.”
레플리카는 못 들은 척했다.
요안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우 님.”
“오늘의 배역은 끝났다.”
“그래도요.”
레플리카는 잠시 요안나를 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라.”
요안나는 손에 든 물뿌리개를 보았다.
“저, 내일도 장미한테 갈 수 있을까요?”
“갈 수 있다.”
“바쁘면요?”
“조금이라도 가라.”
“정말 조금만 가도 돼요?”
레플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는 항상 큰 장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떤 날은 물 한 방울이면 된다.”
요안나는 아까 장미에게 떨어뜨린 물 한 방울을 떠올렸다.
“그것도 약속이에요?”
“약속의 일부다.”
레플리카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다만 너무 자주 한 방울만 주지는 마라. 꽃도 속는다.”
요안나는 웃었다.
“네.”
레플리카는 다시 장미 줄을 정리했다.
“그리고 네가 못 가는 날이 있으면, 못 간다고 말해라.”
“장미에게요?”
“그래.”
“장미가 알아들을까요?”
“아마 자기 방식으로.”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할게요.”
레플리카는 아주 작게 웃었다.
“좋다.”
그 웃음은 여우 가면 없이도 여우 같았다.
---
알토는 무대 한편에서 기록장을 들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는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푸리나가 다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뭐 적어?”
알토는 기록장을 살짝 기울였다.
“오늘 공연 기록입니다.”
“평가도 있어?”
“있습니다.”
“내 연출은?”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과감했습니다.”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칭찬이지?”
“대체로요.”
“대체로?”
알토는 정중하게 말했다.
“거꾸로 걸린 별은 사고였지만,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다만 다음부터는 의도한 사고인지 실제 사고인지 구분할 수 있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푸리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연극에서는 사고도 연출이 될 수 있어!”
알토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지만 예산에서는 사고가 사고로 기록됩니다.”
죠니가 멀리서 말했다.
“알토가 이겼네.”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요안나는 알토에게 다가갔다.
“제 장미도 기록했나요?”
알토는 기록장을 내려다보았다.
“네.”
“뭐라고요?”
알토는 잠시 생각했다.
“그대로 읽어드릴까요?”
요안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토는 차분히 읽었다.
“작은 별의 장미. 아침 인사를 기다림. 바람을 무서워하지만, 가시가 있다고 주장함. 물은 많이 주면 안 됨. 늦은 방문자에게 ‘늦었네요’라고 말함.”
요안나는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너무 자세해요.”
“기록은 대개 자세할수록 도움이 됩니다.”
알토는 곧 부드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원하지 않으시면 일부는 닫아둘 수 있어요.”
요안나는 눈을 깜박였다.
“닫아둬요?”
“모든 기록이 모두에게 공개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기록은, 당사자가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요안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늦었네요’는 닫아둘래요.”
알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기록장에 작게 표시했다.
“비공개 처리.”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장미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졌어.”
알토는 진지하게 말했다.
“중요합니다.”
요안나는 조금 웃었다.
“고마워요.”
알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돌아가도 됩니다. 잊지 않기만 하면요.”
---
벨라는 등불 세트를 정리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가로등 옆에 서서 유리를 닦고 있었다.
공연은 끝났고, 더 이상 밤과 낮이 빠르게 바뀌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벨라는 등불 유리를 한 번 더 닦았다.
요안나는 다가가 물었다.
“아직도 닦으세요?”
벨라는 요안나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닦는단다.”
“왜요?”
“다음에 켤 때, 빛이 흐리지 않게 하려고.”
요안나는 등불을 보았다.
“다음 공연 때요?”
벨라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녀는 손수건으로 유리를 닦았다.
“혹은 누군가 정말로 밤길을 걸을 때일 수도 있지.”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벨라는 요안나의 망토가 조금 비뚤어진 것을 보았다.
“이리 오렴.”
요안나는 가까이 갔다.
벨라는 망토의 매듭을 조금 고쳐주었다.
그 손길은 왕의 명령이 아니라, 어머니의 손에 가까웠다.
“장미에게 다녀왔구나.”
“네.”
“무서웠니?”
요안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네.”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단다.”
“무서웠는데요?”
“무서워도 갔으니까.”
요안나는 벨라를 보았다.
벨라는 미소 지었다.
“용기는 무섭지 않은 것이 아니란다. 무섭다고 말하고도, 등불을 들고 나가는 것이지.”
요안나는 조용히 그 말을 들었다.
벨라는 등불을 요안나 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네가 돌아가는 길에 이 불이 필요하면, 기억하렴.”
“등불을 가져가도 돼요?”
“이 등불은 여기 있어야 한단다.”
요안나는 조금 아쉬워했다.
벨라는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불 켜는 법은 가져갈 수 있지.”
요안나는 눈을 들었다.
“어떻게요?”
“밤이 오면, 모른 척하지 않는 것.”
벨라는 낮게 말했다.
“그리고 작아도 불을 켜는 것.”
요안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미한테도요?”
“그래. 장미에게도. 사람에게도. 너 자신에게도.”
요안나는 조금 놀랐다.
“저 자신에게도요?”
벨라는 요안나의 머리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가, 금방 떼었다.
“왕관 쓴 아이도 밤에는 불이 필요하단다.”
요안나는 이번엔 반박하지 않았다.
그저 작게 말했다.
“네.”
---
슈샤니크는 지도 세트를 접고 있었다.
그녀는 요안나가 붙였던 작은 이름표를 떼지 않았다.
지도 가장자리.
원래라면 여백으로 남았을 곳.
그곳에 아직 장미라는 작은 글자가 붙어 있었다.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이름표, 떼나요?”
슈샤니크는 고개를 들었다.
“원하십니까?”
요안나는 망설였다.
“아니요. 그런데 지도는 정리해야 하잖아요.”
슈샤니크는 이름표를 보았다.
“접어도 남는 표시가 있습니다.”
그녀는 지도를 천천히 접었다.
장미 이름표가 안쪽으로 사라졌다.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요안나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슈샤니크는 말했다.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데요.”
“그래서 접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요안나는 지도를 보았다.
슈샤니크는 접힌 지도의 한 모서리를 가리켰다.
“다음에 펼칠 때, 이름표가 찢어지지 않도록 접었습니다.”
요안나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슈샤니크는 요안나를 보았다.
“덧없는 것들은, 보관 방식이 나쁘면 쉽게 상합니다.”
그 말투는 여전히 차갑고 정중했다.
그러나 요안나는 이제 그 안에 담긴 것을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장미도요?”
“장미도.”
“지도도요?”
“지도도.”
“사람도요?”
슈샤니크는 잠시 침묵했다.
“사람은 더 그렇습니다.”
요안나는 오늘 그 말을 두 번째 들었다.
미하일라도 그렇게 말했다.
사람은 더 그렇다.
요안나는 그 말을 기억하기로 했다.
슈샤니크는 접은 지도를 요안나에게 잠시 보여주었다.
“이 지도는 나중에 다시 펼치겠습니다.”
“그때 장미도 다시 보여요?”
“네.”
슈샤니크는 아주 희미하게 말했다.
“접혀 있는 동안에도, 장미는 여백에 남아 있을 겁니다.”
요안나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슈샤니크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별의 방문자께서 돌아갈 곳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은 축복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길을 잃지 말라는 아주 오래된 방식의 인사처럼 들렸다.
---
스토얀카는 꽃의 별 세트를 정리하지 않았다.
흰 꽃잎들이 아직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요안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금 긴장했다.
스토얀카는 여전히 아름답고, 조금 무서웠다.
“저…….”
스토얀카는 고개를 돌렸다.
“돌아갔느냐.”
“네.”
“꽃은 있었느냐.”
“네.”
“꺾이지 않았느냐.”
요안나는 잠시 장미를 떠올렸다.
꽃잎을 접은 채, 늦었다고 말하던 장미.
“네. 아직 있었어요.”
스토얀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피고 있구나.”
요안나는 조금 웃었다.
“많이 화나 있었지만요.”
스토얀카는 가볍게 웃었다.
“화낼 힘이 있으면 아직 살아 있다.”
그 말은 거칠었지만,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요안나는 흰 꽃잎 하나를 주웠다.
“당신의 꽃은 세상에게 보이기 위해 핀다고 했죠.”
“그렇다.”
“제 장미는…… 저에게 보이기 위해 피는 걸까요?”
스토얀카는 요안나를 보았다.
“그 질문은 네가 꽃에게 물어야지.”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스토얀카는 손을 뻗어 요안나가 든 흰 꽃잎을 바로 펴주었다.
꽃잎의 결이 다시 살아났다.
“다만 기억해라. 작은 꽃이라고 해서 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네.”
“부드러운 꽃도, 자기 방식으로 선다.”
요안나는 장미의 얇은 가시를 떠올렸다.
호랑이를 막겠다던 말.
이제는 그 말이 조금 덜 우스웠다.
“알 것 같아요.”
스토얀카는 살짝 웃었다.
“아직은 모를 것이다.”
요안나가 당황하자, 스토얀카는 덧붙였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을 아는 얼굴이 되었구나. 그 정도면 다음 물을 줄 수 있다.”
요안나는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스토얀카는 대답 대신 손을 내렸다.
흰 꽃잎들이 조용히 길을 열었다.
---
민다우가스는 왕좌에서 내려와 있었다.
왕관은 벗어두었고, 큰 망토도 접혀 있었다. 왕좌 옆에는 작은 해 장치가 놓여 있었다. 아까 “해여, 져라”라는 명령에 맞춰 내려갔던 그 해였다.
요안나는 다가가 인사했다.
“왕의 별은 이제 끝났나요?”
민다우가스는 해 장치를 보았다.
“해가 졌으니, 오늘의 왕은 끝났다.”
“내일은요?”
“내일 해가 뜨면 다시 시작하겠지.”
요안나는 조금 웃었다.
“왕도 매일 다시 시작해요?”
“그렇다.”
민다우가스는 요안나를 보았다.
“장미에게 다녀왔다고 들었다.”
“네.”
“명령했나.”
요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좋다.”
“물을 줬어요.”
“더 좋다.”
요안나는 조금 놀라 민다우가스를 보았다.
민다우가스는 낮게 웃었다.
“하하. 왕이 늘 명령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조금요.”
“그런 왕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는 작은 해 장치를 손에 들었다.
“해는 때가 되면 진다. 장미는 때가 되면 목이 마르다. 사람은 때가 되면 상처를 말한다.”
요안나는 조용히 들었다.
민다우가스는 말했다.
“왕은 그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놓치면요?”
“늦었다고 말해야지.”
요안나는 아레의 말을 떠올렸다.
늦었다고 말하라.
물을 주라.
미하일라의 말도 떠올랐다.
화내면 들어라.
“그다음에는요?”
민다우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때를 놓치지 마라.”
요안나는 조금 웃었다.
“다들 비슷한 말을 하네요.”
“좋은 말은 대개 여러 왕국을 지나도 살아남는다.”
그 말에 요안나는 웃었다.
민다우가스는 작은 해를 다시 내려놓았다.
“가거라, 작은 방문자.”
“네.”
“네 별의 해가 질 시간을 보아라.”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람 부는 시간도요.”
“그래.”
“물 주는 시간도요.”
민다우가스는 만족한 듯 낮게 웃었다.
“조금 더 배웠군.”
---
마지막으로 푸리나가 무대 중앙에 섰다.
배우들이 하나둘 뒤쪽에 모였다.
미하일라와 요안나.
민다우가스.
스토얀카.
알토.
벨라.
슈샤니크.
레플리카.
아레는 조금 떨어진 어둠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푸리나는 그들을 보다가, 객석을 향해 돌아섰다.
“오늘의 작은 방문자는 장미에게 다녀왔습니다.”
그녀는 물뿌리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조금 거짓말이겠지요.”
죠니가 객석에서 말했다.
“여왕님, 후일담에서 자주 하는 말이네.”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좋은 말은 여러 극을 지나도 살아남는 법이야.”
민다우가스가 낮게 웃었다.
“나쁘지 않군.”
푸리나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돌아간다는 것은 한 번의 장면이 아닙니다. 내일 같은 시간에 다시 가는 일. 물을 너무 많이 주지 않는 일. 늦었다면 늦었다고 말하는 일. 화가 났다면 듣는 일. 불이 꺼졌다면 다시 켜는 일.”
그녀는 장미를 보았다.
“그리고 가끔은, 무대 장미에게 진짜 물을 너무 많이 주지 않는 일.”
소품 담당이 객석 뒤편에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안나가 조금 부끄럽게 웃었다.
푸리나는 그 웃음을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니 오늘의 막은 이렇게 닫겠습니다.”
그녀는 유리 덮개를 장미 옆에 놓았다.
덮지는 않았다.
그저 곁에 두었다.
“덮개는 필요할 때 씌우면 되니까요.”
벨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밤이 오면 잊지 말아야 한단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밤이 오면.”
알토는 기록장에 무언가 적었다.
푸리나가 물었다.
“또 뭐 적어?”
알토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덮개는 곁에 둘 것. 필요할 때 씌울 것. 과잉 보호 주의.”
죠니가 웃었다.
“정확하네.”
요안나는 장미를 보았다.
장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요안나는 왠지 들은 것 같았다.
> 아침 인사는 제때 해주세요.
그녀는 작게 대답했다.
“내일 같은 시간에.”
미하일라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래.”
푸리나는 손을 들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하나씩 꺼졌다.
하지만 거꾸로 걸렸던 별 하나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이제는 똑바로 걸려 있었다.
푸리나는 그 별을 보고 웃었다.
“오늘의 극은 여기까지.”
잠시 후, 그녀가 덧붙였다.
“하지만 장미에게 물 주는 일은 내일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별이 꺼졌다.
무대는 어두워졌다.
그러나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작은 등불 하나가, 무대 가장자리에 남아 있었다.
— 같은 시간에 돌아간다는 것 —
공연이 끝난 뒤에도, 별들은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원래라면 막이 닫히고, 무대 담당들이 사막 천을 접고, 청동 매의 날개를 분리하고, 장미 정원의 꽃들을 하나씩 상자에 넣어야 했다. 그러나 푸리나는 손을 들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 앞에 서서 밤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거꾸로 걸렸던 별은 이제 바로 걸려 있었다.
그 별이 정말 요안나의 작은 별인지는 아무도 몰랐다. 사실 무대 담당이 실수로 거꾸로 걸었던 종이 별 하나일 뿐이었다. 얇은 나무틀에 은색 가루를 바르고, 뒤쪽에 작은 실을 묶은 소품.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그 별을 너무 빨리 내리면 안 될 것 같았다.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아직 치우지 말자.”
무대 담당들이 서로를 보았다.
죠니가 객석에서 물었다.
“여왕님, 그럼 퇴근은?”
푸리나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말했다.
“죠니, 오늘은 별이 퇴근을 허락할 때까지야.”
“별이 노동법을 모를 것 같은데.”
“그러니까 내가 대신 협상할 거야.”
요안나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웃었다.
웃음은 아주 작았지만, 공연 중 마지막에 별을 보고 웃던 것과 같은 결이었다.
미하일라는 그 웃음을 보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장미는 무대 가장자리에 남아 있었다.
작은 별 세트는 절반쯤 내려가 있었고, 화산 세 개는 이미 소품 담당의 손에 들려 있었다. 바오밥나무 싹도 상자 안에 정리되었다.
하지만 장미만은 아직 제자리에 있었다.
요안나는 그 앞에 섰다.
꽃잎은 움직이지 않았다. 이제 신술의 빛이 걷혀, 장미는 다시 무대 장미에 가까워져 있었다. 가느다란 철사와 천으로 만든 꽃. 조명 없이는 조금 낡아 보이기까지 하는 소품.
그런데도 요안나는 물뿌리개를 들었다.
푸리나가 조용히 다가왔다.
“요안나.”
“네?”
“그거 진짜 물 들어 있어.”
요안나는 물뿌리개를 내려다보았다.
“알아요.”
“무대 장미라서 너무 많이 주면 곤란해.”
그 말에 요안나는 잠시 멈췄다.
공연 중 장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 물은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요안나는 조금 웃었다.
“조금만 줄게요.”
푸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진짜 줄 거야?”
“네.”
“소품 담당이 울 수도 있는데.”
요안나는 장미를 보았다.
“그러면 닦을게요.”
푸리나는 잠시 요안나를 보았다.
그러다 조용히 물러났다.
“응. 그러면 됐어.”
요안나는 물뿌리개를 기울였다.
아주 조금.
물 한 방울이 장미의 뿌리 부분, 정확히는 무대 장미가 꽂혀 있는 작은 흙색 받침대 위로 떨어졌다.
톡.
그 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요안나에게는 크게 들렸다.
물을 너무 많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후일담은 시작된 셈이었다.
---
미하일라는 부러진 청동 매 곁에 있었다.
공연이 끝났으니, 이제 그 매는 다시 소품이었다. 날개를 고정하던 은실은 느슨해졌고, 천문반은 더 이상 별빛을 받아 움직이지 않았다. 소품 담당이 다가와 물었다.
“폐하, 정리해도 되겠습니까?”
미하일라는 청동 매를 보았다.
“기다려라.”
소품 담당은 즉시 물러났다.
죠니가 옆에서 낮게 말했다.
“소품도 황제 명령 받으면 좀 긴장하겠네.”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청동 매의 오른쪽 날개를 손끝으로 만졌다.
임시로 묶였던 은실.
공연 중에는 날 수 있을 만큼 고쳤지만, 자세히 보면 여전히 틀어져 있었다.
요안나가 다가왔다.
“아직 고장 났나요?”
“그렇다.”
“그래도 날았잖아요.”
“임시 조치였다.”
요안나는 날개를 보았다.
“그럼 다시 고쳐야겠네요.”
“그래.”
“완전히요?”
미하일라는 잠시 침묵했다.
“가능하면.”
요안나는 그 대답을 듣고 조금 웃었다.
“완전히가 아니어도, 돌아갈 수는 있었어요.”
미하일라는 요안나를 보았다.
그 말은 청동 매에 대한 말이었고, 또 다른 것에 대한 말이기도 했다.
“그렇다.”
요안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폐하.”
“말하라.”
“완전히 고쳐지지 않아도, 같이 있을 수 있나요?”
미하일라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멀리서 그 장면을 보다가, 슬쩍 무대 뒤로 물러났다. 죠니도 입을 다물었다.
미하일라는 청동 매를 내려다보았다.
“있을 수 있다.”
요안나는 숨을 삼켰다.
미하일라는 이어 말했다.
“다만 틀어진 날개를 틀어지지 않았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네.”
“어디가 어긋났는지 알아야 한다.”
“네.”
“그리고 날 때마다 살펴야 한다.”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장미도요?”
“장미도.”
“사람도요?”
미하일라는 요안나를 보았다.
“사람은 더 그렇다.”
요안나는 그 말을 마음속에 넣었다.
그리고 작게 말했다.
“그럼 저도 살펴볼게요.”
미하일라는 아주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짐도 그러겠다.”
그 말은 화해라고 부르기에는 작았다.
맹세라고 부르기에는 조용했다.
하지만 요안나는 그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것이면, 오늘은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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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플리카는 장미 정원 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정리를 돕는 척하다가 장미 줄 하나가 서로 엉킨 것을 심각하게 풀고 있었다.
푸리나가 다가왔다.
“레플리카, 그건 그냥 소품이라서 적당히 상자에 넣어도 돼.”
레플리카는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엉킨 채로 넣으면 다음 공연 때 더 아프다.”
“소품이?”
“소품 담당이.”
푸리나는 잠시 침묵했다.
“그건 맞아.”
요안나가 다가오자, 레플리카는 장미 줄을 내려놓았다.
“왔군.”
“네.”
“같은 시간은 아니다.”
요안나는 살짝 당황했다.
“공연이 끝나서요.”
레플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유 확인.”
푸리나가 속삭였다.
“레플리카, 알토 말투가 섞였어.”
레플리카는 못 들은 척했다.
요안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우 님.”
“오늘의 배역은 끝났다.”
“그래도요.”
레플리카는 잠시 요안나를 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라.”
요안나는 손에 든 물뿌리개를 보았다.
“저, 내일도 장미한테 갈 수 있을까요?”
“갈 수 있다.”
“바쁘면요?”
“조금이라도 가라.”
“정말 조금만 가도 돼요?”
레플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관계는 항상 큰 장면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떤 날은 물 한 방울이면 된다.”
요안나는 아까 장미에게 떨어뜨린 물 한 방울을 떠올렸다.
“그것도 약속이에요?”
“약속의 일부다.”
레플리카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다만 너무 자주 한 방울만 주지는 마라. 꽃도 속는다.”
요안나는 웃었다.
“네.”
레플리카는 다시 장미 줄을 정리했다.
“그리고 네가 못 가는 날이 있으면, 못 간다고 말해라.”
“장미에게요?”
“그래.”
“장미가 알아들을까요?”
“아마 자기 방식으로.”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말할게요.”
레플리카는 아주 작게 웃었다.
“좋다.”
그 웃음은 여우 가면 없이도 여우 같았다.
---
알토는 무대 한편에서 기록장을 들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그는 무언가를 적고 있었다.
푸리나가 다가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뭐 적어?”
알토는 기록장을 살짝 기울였다.
“오늘 공연 기록입니다.”
“평가도 있어?”
“있습니다.”
“내 연출은?”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과감했습니다.”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칭찬이지?”
“대체로요.”
“대체로?”
알토는 정중하게 말했다.
“거꾸로 걸린 별은 사고였지만, 결과적으로 의미 있는 장면이 되었습니다. 다만 다음부터는 의도한 사고인지 실제 사고인지 구분할 수 있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푸리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연극에서는 사고도 연출이 될 수 있어!”
알토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지만 예산에서는 사고가 사고로 기록됩니다.”
죠니가 멀리서 말했다.
“알토가 이겼네.”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요안나는 알토에게 다가갔다.
“제 장미도 기록했나요?”
알토는 기록장을 내려다보았다.
“네.”
“뭐라고요?”
알토는 잠시 생각했다.
“그대로 읽어드릴까요?”
요안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토는 차분히 읽었다.
“작은 별의 장미. 아침 인사를 기다림. 바람을 무서워하지만, 가시가 있다고 주장함. 물은 많이 주면 안 됨. 늦은 방문자에게 ‘늦었네요’라고 말함.”
요안나는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너무 자세해요.”
“기록은 대개 자세할수록 도움이 됩니다.”
알토는 곧 부드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원하지 않으시면 일부는 닫아둘 수 있어요.”
요안나는 눈을 깜박였다.
“닫아둬요?”
“모든 기록이 모두에게 공개될 필요는 없습니다. 어떤 기록은, 당사자가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도와주는 정도면 충분합니다.”
요안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늦었네요’는 닫아둘래요.”
알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기록장에 작게 표시했다.
“비공개 처리.”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장미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졌어.”
알토는 진지하게 말했다.
“중요합니다.”
요안나는 조금 웃었다.
“고마워요.”
알토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천천히 돌아가도 됩니다. 잊지 않기만 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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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라는 등불 세트를 정리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작은 가로등 옆에 서서 유리를 닦고 있었다.
공연은 끝났고, 더 이상 밤과 낮이 빠르게 바뀌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벨라는 등불 유리를 한 번 더 닦았다.
요안나는 다가가 물었다.
“아직도 닦으세요?”
벨라는 요안나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닦는단다.”
“왜요?”
“다음에 켤 때, 빛이 흐리지 않게 하려고.”
요안나는 등불을 보았다.
“다음 공연 때요?”
벨라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럴 수도 있고.”
그녀는 손수건으로 유리를 닦았다.
“혹은 누군가 정말로 밤길을 걸을 때일 수도 있지.”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벨라는 요안나의 망토가 조금 비뚤어진 것을 보았다.
“이리 오렴.”
요안나는 가까이 갔다.
벨라는 망토의 매듭을 조금 고쳐주었다.
그 손길은 왕의 명령이 아니라, 어머니의 손에 가까웠다.
“장미에게 다녀왔구나.”
“네.”
“무서웠니?”
요안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네.”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잘했단다.”
“무서웠는데요?”
“무서워도 갔으니까.”
요안나는 벨라를 보았다.
벨라는 미소 지었다.
“용기는 무섭지 않은 것이 아니란다. 무섭다고 말하고도, 등불을 들고 나가는 것이지.”
요안나는 조용히 그 말을 들었다.
벨라는 등불을 요안나 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네가 돌아가는 길에 이 불이 필요하면, 기억하렴.”
“등불을 가져가도 돼요?”
“이 등불은 여기 있어야 한단다.”
요안나는 조금 아쉬워했다.
벨라는 부드럽게 말했다.
“하지만 불 켜는 법은 가져갈 수 있지.”
요안나는 눈을 들었다.
“어떻게요?”
“밤이 오면, 모른 척하지 않는 것.”
벨라는 낮게 말했다.
“그리고 작아도 불을 켜는 것.”
요안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장미한테도요?”
“그래. 장미에게도. 사람에게도. 너 자신에게도.”
요안나는 조금 놀랐다.
“저 자신에게도요?”
벨라는 요안나의 머리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가, 금방 떼었다.
“왕관 쓴 아이도 밤에는 불이 필요하단다.”
요안나는 이번엔 반박하지 않았다.
그저 작게 말했다.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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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샤니크는 지도 세트를 접고 있었다.
그녀는 요안나가 붙였던 작은 이름표를 떼지 않았다.
지도 가장자리.
원래라면 여백으로 남았을 곳.
그곳에 아직 장미라는 작은 글자가 붙어 있었다.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이름표, 떼나요?”
슈샤니크는 고개를 들었다.
“원하십니까?”
요안나는 망설였다.
“아니요. 그런데 지도는 정리해야 하잖아요.”
슈샤니크는 이름표를 보았다.
“접어도 남는 표시가 있습니다.”
그녀는 지도를 천천히 접었다.
장미 이름표가 안쪽으로 사라졌다.
보이지 않게 되었다.
요안나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슈샤니크는 말했다.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데요.”
“그래서 접는 방식이 중요합니다.”
요안나는 지도를 보았다.
슈샤니크는 접힌 지도의 한 모서리를 가리켰다.
“다음에 펼칠 때, 이름표가 찢어지지 않도록 접었습니다.”
요안나는 그 말을 듣고 작게 숨을 내쉬었다.
“다행이에요.”
슈샤니크는 요안나를 보았다.
“덧없는 것들은, 보관 방식이 나쁘면 쉽게 상합니다.”
그 말투는 여전히 차갑고 정중했다.
그러나 요안나는 이제 그 안에 담긴 것을 조금 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장미도요?”
“장미도.”
“지도도요?”
“지도도.”
“사람도요?”
슈샤니크는 잠시 침묵했다.
“사람은 더 그렇습니다.”
요안나는 오늘 그 말을 두 번째 들었다.
미하일라도 그렇게 말했다.
사람은 더 그렇다.
요안나는 그 말을 기억하기로 했다.
슈샤니크는 접은 지도를 요안나에게 잠시 보여주었다.
“이 지도는 나중에 다시 펼치겠습니다.”
“그때 장미도 다시 보여요?”
“네.”
슈샤니크는 아주 희미하게 말했다.
“접혀 있는 동안에도, 장미는 여백에 남아 있을 겁니다.”
요안나는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슈샤니크는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별의 방문자께서 돌아갈 곳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그 말은 축복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길을 잃지 말라는 아주 오래된 방식의 인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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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얀카는 꽃의 별 세트를 정리하지 않았다.
흰 꽃잎들이 아직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요안나는 그녀에게 다가가 조금 긴장했다.
스토얀카는 여전히 아름답고, 조금 무서웠다.
“저…….”
스토얀카는 고개를 돌렸다.
“돌아갔느냐.”
“네.”
“꽃은 있었느냐.”
“네.”
“꺾이지 않았느냐.”
요안나는 잠시 장미를 떠올렸다.
꽃잎을 접은 채, 늦었다고 말하던 장미.
“네. 아직 있었어요.”
스토얀카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피고 있구나.”
요안나는 조금 웃었다.
“많이 화나 있었지만요.”
스토얀카는 가볍게 웃었다.
“화낼 힘이 있으면 아직 살아 있다.”
그 말은 거칠었지만,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요안나는 흰 꽃잎 하나를 주웠다.
“당신의 꽃은 세상에게 보이기 위해 핀다고 했죠.”
“그렇다.”
“제 장미는…… 저에게 보이기 위해 피는 걸까요?”
스토얀카는 요안나를 보았다.
“그 질문은 네가 꽃에게 물어야지.”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스토얀카는 손을 뻗어 요안나가 든 흰 꽃잎을 바로 펴주었다.
꽃잎의 결이 다시 살아났다.
“다만 기억해라. 작은 꽃이라고 해서 결이 없는 것은 아니다.”
“네.”
“부드러운 꽃도, 자기 방식으로 선다.”
요안나는 장미의 얇은 가시를 떠올렸다.
호랑이를 막겠다던 말.
이제는 그 말이 조금 덜 우스웠다.
“알 것 같아요.”
스토얀카는 살짝 웃었다.
“아직은 모를 것이다.”
요안나가 당황하자, 스토얀카는 덧붙였다.
“하지만 모른다는 것을 아는 얼굴이 되었구나. 그 정도면 다음 물을 줄 수 있다.”
요안나는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스토얀카는 대답 대신 손을 내렸다.
흰 꽃잎들이 조용히 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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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다우가스는 왕좌에서 내려와 있었다.
왕관은 벗어두었고, 큰 망토도 접혀 있었다. 왕좌 옆에는 작은 해 장치가 놓여 있었다. 아까 “해여, 져라”라는 명령에 맞춰 내려갔던 그 해였다.
요안나는 다가가 인사했다.
“왕의 별은 이제 끝났나요?”
민다우가스는 해 장치를 보았다.
“해가 졌으니, 오늘의 왕은 끝났다.”
“내일은요?”
“내일 해가 뜨면 다시 시작하겠지.”
요안나는 조금 웃었다.
“왕도 매일 다시 시작해요?”
“그렇다.”
민다우가스는 요안나를 보았다.
“장미에게 다녀왔다고 들었다.”
“네.”
“명령했나.”
요안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좋다.”
“물을 줬어요.”
“더 좋다.”
요안나는 조금 놀라 민다우가스를 보았다.
민다우가스는 낮게 웃었다.
“하하. 왕이 늘 명령만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조금요.”
“그런 왕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는 작은 해 장치를 손에 들었다.
“해는 때가 되면 진다. 장미는 때가 되면 목이 마르다. 사람은 때가 되면 상처를 말한다.”
요안나는 조용히 들었다.
민다우가스는 말했다.
“왕은 그 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놓치면요?”
“늦었다고 말해야지.”
요안나는 아레의 말을 떠올렸다.
늦었다고 말하라.
물을 주라.
미하일라의 말도 떠올랐다.
화내면 들어라.
“그다음에는요?”
민다우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때를 놓치지 마라.”
요안나는 조금 웃었다.
“다들 비슷한 말을 하네요.”
“좋은 말은 대개 여러 왕국을 지나도 살아남는다.”
그 말에 요안나는 웃었다.
민다우가스는 작은 해를 다시 내려놓았다.
“가거라, 작은 방문자.”
“네.”
“네 별의 해가 질 시간을 보아라.”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바람 부는 시간도요.”
“그래.”
“물 주는 시간도요.”
민다우가스는 만족한 듯 낮게 웃었다.
“조금 더 배웠군.”
---
마지막으로 푸리나가 무대 중앙에 섰다.
배우들이 하나둘 뒤쪽에 모였다.
미하일라와 요안나.
민다우가스.
스토얀카.
알토.
벨라.
슈샤니크.
레플리카.
아레는 조금 떨어진 어둠 가장자리에 서 있었다.
푸리나는 그들을 보다가, 객석을 향해 돌아섰다.
“오늘의 작은 방문자는 장미에게 다녀왔습니다.”
그녀는 물뿌리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면, 조금 거짓말이겠지요.”
죠니가 객석에서 말했다.
“여왕님, 후일담에서 자주 하는 말이네.”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좋은 말은 여러 극을 지나도 살아남는 법이야.”
민다우가스가 낮게 웃었다.
“나쁘지 않군.”
푸리나는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말했다.
“돌아간다는 것은 한 번의 장면이 아닙니다. 내일 같은 시간에 다시 가는 일. 물을 너무 많이 주지 않는 일. 늦었다면 늦었다고 말하는 일. 화가 났다면 듣는 일. 불이 꺼졌다면 다시 켜는 일.”
그녀는 장미를 보았다.
“그리고 가끔은, 무대 장미에게 진짜 물을 너무 많이 주지 않는 일.”
소품 담당이 객석 뒤편에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요안나가 조금 부끄럽게 웃었다.
푸리나는 그 웃음을 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니 오늘의 막은 이렇게 닫겠습니다.”
그녀는 유리 덮개를 장미 옆에 놓았다.
덮지는 않았다.
그저 곁에 두었다.
“덮개는 필요할 때 씌우면 되니까요.”
벨라가 부드럽게 말했다.
“밤이 오면 잊지 말아야 한단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밤이 오면.”
알토는 기록장에 무언가 적었다.
푸리나가 물었다.
“또 뭐 적어?”
알토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덮개는 곁에 둘 것. 필요할 때 씌울 것. 과잉 보호 주의.”
죠니가 웃었다.
“정확하네.”
요안나는 장미를 보았다.
장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요안나는 왠지 들은 것 같았다.
> 아침 인사는 제때 해주세요.
그녀는 작게 대답했다.
“내일 같은 시간에.”
미하일라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래.”
푸리나는 손을 들었다.
밤하늘의 별들이 하나씩 꺼졌다.
하지만 거꾸로 걸렸던 별 하나는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이제는 똑바로 걸려 있었다.
푸리나는 그 별을 보고 웃었다.
“오늘의 극은 여기까지.”
잠시 후, 그녀가 덧붙였다.
“하지만 장미에게 물 주는 일은 내일부터 다시 시작입니다.”
별이 꺼졌다.
무대는 어두워졌다.
그러나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작은 등불 하나가, 무대 가장자리에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