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67여관◆zAR16hM8he(514e9af3)2026-05-20 (수) 20:46:59
1막 — 박수 이후의 길

— 일어난 사람은 어디로 걸어가는가 —

첫 번째 별은 길 위에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별 자체가 길이었다.

둥근 별의 표면 위로 말발굽 자국이 나 있었고, 그 옆에는 오래된 바퀴 자국이 있었다. 길 양쪽에는 낮은 울타리가 놓여 있었고, 한쪽 끝에는 무대 커튼처럼 붉은 천이 걸려 있었다.

하지만 그 커튼은 무대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길의 시작을 알리는 표식처럼 보였다.

푸리나는 그 별 위에 내려섰다.

“여긴…… 무대가 아니네.”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무대일 수도 있나? 길이 무대인 극도 있으니까.”

“여왕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죠니 조스타가 길가의 낮은 담장에 기대 서 있었다.

그는 오늘도 지나치게 비장하지 않았다. 모래 묻은 망토를 걸쳤고, 손에는 활 대신 낡은 여행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마치 이미 길을 한참 걸어본 사람처럼 보였다.

“이번 별의 주인은 너야?”

푸리나가 물었다.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주인이라기보단 길가에서 말 거는 사람 정도지. 주인은 아마 길 쪽일걸.”

“길이 주인인 별이라니, 철학적이네.”

“레이튼 교수님 별로 가면 그런 말 더 많이 들을 수 있을 거야. 여기서는 조금 덜 복잡하게 가자고.”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길 위에는 몇몇 사람이 서 있었다.

아니, 사람처럼 보이는 그림자들이었다.

한 사람은 박수를 받고 막 일어난 배우처럼 보였고, 한 사람은 전투에서 돌아온 병사처럼 보였고, 한 사람은 피난민처럼 보였으며, 또 한 사람은 손에 빵을 쥔 아이처럼 보였다.

그들은 모두 푸리나를 향해 잠깐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별 위에 박수 소리가 울렸다.

푸리나가 반사적으로 웃었다.

박수.

그건 그녀가 아는 소리였다.

얼어붙은 사람의 어깨를 펴게 하는 소리.
방금까지 울던 아이가 고개를 들게 하는 소리.
죽음과 공포와 피난의 밤 뒤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소리.

푸리나는 자연스럽게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좋아! 그럼 다음 막으로—”

“여왕님.”

죠니가 그녀를 불렀다.

그 목소리는 딱딱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소보다 조금 낮았다.

푸리나는 멈췄다.

“왜?”

죠니는 박수가 사라진 길을 가리켰다.

“박수는 사람을 일으켜. 그건 맞아.”

그림자 하나가 천천히 일어났다.

배우처럼 보였던 사람은 허리를 폈다.
병사는 고개를 들었다.
피난민은 빵을 쥔 아이의 손을 잡았다.

죠니는 그들을 보며 말했다.

“근데 일어난 사람이 어디로 걸어갈지는 또 다른 문제잖아.”

푸리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일어난 사람들은 실제로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박수 쪽으로.

그다음에는 무대 쪽으로.

하지만 무대는 길의 시작에만 있었다.

조금 더 앞으로 가자, 박수는 들리지 않았다. 조명도 닿지 않았다. 붉은 커튼도 뒤에 남았다.

길은 계속 이어졌다.

푸리나는 그 길을 바라보았다.

“박수가 끝나도…… 계속 걷는구나.”

“대부분 그렇지.”

죠니는 담장에 기대 있던 몸을 일으켰다.

“여왕님이 사람들을 일으킨 건 대단한 일이야. 진짜로.”

그 말은 가볍지 않았다.

푸리나는 죠니를 보았다.

죠니는 웃지 않고 있었다.

“그런데 일어난 사람이 다시 앉을 곳이 없으면, 결국 길 위에서 지쳐.”

푸리나는 길 끝을 보았다.

그곳에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내가 거기까지 무대를 깔면 되잖아.”

죠니는 조금 웃었다.

“여왕님답네.”

“안 돼?”

“돼. 어느 정도는.”

“어느 정도?”

“무대를 길 전체로 만들 수는 없잖아. 아니, 여왕님이라면 하려고 할 것 같긴 한데.”

푸리나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죠니가 손을 흔들었다.

“그 표정 하지 마. 진짜 하려고 하지 말고.”

객석에서 낮은 웃음이 났다.

푸리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하지만 사람들이 길에서 지친다며.”

“그러니까 무대를 길 전체로 덮는 것보다, 길 중간중간 쉴 곳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

죠니는 여행 지팡이로 길가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자 길가에 작은 의자 하나가 나타났다.

그 옆에 물통 하나.

작은 그늘막 하나.

아무 장식도 없는 쉼터였다.

푸리나는 그것을 보았다.

“이건 너무 소박해.”

“그렇지.”

“박수도 없고.”

“응.”

“조명도 없고.”

“낮에는 햇빛이면 충분하고, 밤에는 작은 등불이면 되겠지.”

푸리나는 쉼터 앞에 섰다.

그림자 중 하나가 그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
누구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그 사람은 그냥 앉았다.

물을 마셨다.

고개를 숙이고 한동안 숨을 골랐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어깨가 조금 내려갔다.

힘이 빠진 것이 아니라, 긴장이 풀린 것처럼.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저것도 휴식이야?”

죠니는 대답했다.

“아마도.”

“너무 조용한데.”

“휴식이 꼭 시끄러워야 할 필요는 없잖아.”

푸리나는 쉼터의 물통을 보았다.

그 물은 아무 빛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목마른 사람에게는 박수보다 먼저 필요할지도 몰랐다.

푸리나는 손에 든 물뿌리개를 내려다보았다.

“장미도…… 이런 걸 원했던 걸까?”

죠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길을 걷는 그림자들을 보았다.

“장미가 정확히 뭘 원했는지는 장미한테 물어봐야지. 다만 조명이 싫다고 해서 여왕님의 극장이 틀렸다는 건 아니야.”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죠니를 보았다.

“정말?”

“응. 그냥 그날은 조명 말고 커튼이 필요했을 수 있지.”

푸리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그 말은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죠니는 항상 그런 식이었다.

정답처럼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도망갈 곳도 남겨두지 않는다.

그는 길을 가리켰다.

“여왕님, 한 번만 더 보자.”

“뭘?”

“박수 끝나고.”

길의 시작에서 다시 박수가 울렸다.

이번에는 더 많은 그림자들이 일어났다.

푸리나는 박수를 받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들이 고개를 들고, 눈물을 닦고, 서로를 붙잡고, 걸음을 내딛는 모습을 보았다.

그 장면은 아름다웠다.

분명히 아름다웠다.

푸리나는 그 아름다움을 부정하고 싶지 않았다.

죠니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낮게 말했다.

“이 장면은 필요해.”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근데 그다음 장면도 필요해.”

박수가 멈췄다.

일어난 사람들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길 중간에 쉼터가 하나 더 생겼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작은 표지판이 생겼다.

물 있음.

조금 더 앞으로 가자, 다른 표지판이 나타났다.

잠시 앉아도 됨.

푸리나는 그 표지판을 보고 웃었다.

“너무 죠니다워.”

“왜?”

“대단한 말 안 써.”

“목마른 사람한테는 대단한 말보다 물통 위치가 더 중요할 때가 있거든.”

푸리나는 한참 동안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 극장에도 표지판이 필요하겠네.”

“무슨 표지판?”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박수가 끝난 뒤, 이쪽으로.”

죠니는 웃었다.

“좋네.”

“그리고 ‘잠시 아무 말 안 해도 됨’.”

“그건 더 좋고.”

“그리고…… ‘주인공에서 내려와도 됨’.”

죠니는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길 위에 서 있었다.

작은 왕관을 쓴 작은 별의 왕.

하지만 지금 그녀가 보고 있는 것은 무대가 아니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뒤의 길이었다.

죠니는 낮게 말했다.

“여왕님, 그 표지판은 꽤 많은 사람이 좋아할 거야.”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길 끝을 보았다.

아직 보이지 않는 곳.

그곳에 장미가 있었다.

무대 중앙에서 빛나는 장미가 아니라, 조명이 너무 밝다고 말했던 장미.

주인공이 되는 건 좋지만 매일 주인공이면 쉴 수 없다고 말했던 장미.

푸리나는 손에 든 상자 그림을 조금 더 꼭 쥐었다.

“죠니.”

“응.”

“내가 사람을 일으키는 것만 보고 있었을까?”

죠니는 잠시 침묵했다.

그는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게 오히려 죠니다웠다.

“여왕님은 일으키는 걸 정말 잘해.”

“그다음은?”

“그다음은 배우는 중이지.”

푸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늦었나?”

“장미가 아직 투덜거릴 수 있으면, 완전히 늦은 건 아니겠지.”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그 말, 슈샤니크가 하면 되게 아프게 들릴 것 같아.”

“그 사람은 같은 말도 지도에 못 박듯이 할 것 같긴 해.”

사막 쪽에서 슈샤니크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들립니다, 조스타 경.”

죠니는 어깨를 움찔했다.

“지도선이 추락해도 귀는 멀쩡하시네.”

푸리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 웃음은 조금 가벼웠다.

그러나 완전히 가볍지만은 않았다.

그 웃음 뒤에, 작은 쉼터의 물통이 남아 있었다.


---

푸리나는 첫 번째 별을 떠나려 했다.

그때 죠니가 그녀를 불렀다.

“여왕님.”

푸리나는 돌아보았다.

“응?”

죠니는 여행 지팡이로 길 위에 마지막 표지판 하나를 세웠다.

그 표지판에는 아무 글자도 없었다.

푸리나가 물었다.

“왜 비워뒀어?”

“여왕님이 나중에 쓰라고.”

“뭘 쓰면 되는데?”

“그건 나도 모르지. 내가 여왕님 극장 표지판 담당은 아니니까.”

푸리나는 빈 표지판을 보았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래 보게 되었다.

“좋아. 가져갈게.”

“들고 갈 수 있어?”

푸리나는 당당하게 말했다.

“무대 소품은 들고 갈 수 있어.”

“그거 좋은 규칙이네.”

“내 극장이니까.”

푸리나는 빈 표지판을 품에 안았다.

그리고 다음 별로 향했다.

죠니는 그녀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작게 손을 흔들었다.

“길 잃으면 너무 멀리 가지 말고.”

푸리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길 잃으면 하융한테 책임 물을 거야!”

멀리서 하융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군주여, 길은 잃은 이의 책임도 반은 있소.”

죠니가 낮게 웃었다.

“저쪽 별도 쉽진 않겠네.”


---

두 번째 별은 서재처럼 생겼다.

그 별에는 책장이 둥글게 서 있었다.

책장들은 벽이 아니라 질문처럼 놓여 있었다. 어느 책장은 길을 막고 있었고, 어느 책장은 열려 있었으며, 어떤 책은 읽히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반쯤 펼쳐져 있었다.

별 중앙에는 작은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찻잔 두 개.

그리고 한 장의 종이.

종이에는 단 한 문장만 적혀 있었다.

객석이 비어도 무대는 무대인가?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자마자 말했다.

“무대지.”

책장 뒤에서 레이튼이 나왔다.

“빠른 답변입니다.”

그는 오늘 질문의 별의 주인이었다.

모자는 조금 낮게 눌러썼고, 손에는 찻잔이 들려 있었다. 표정은 부드러웠지만, 눈빛은 이미 다음 질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푸리나는 경계하듯 그를 보았다.

“너 지금 함정 깔았지.”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질문이라고 해두겠습니다.”

“그게 함정이랑 뭐가 달라?”

“함정은 빠지게 만들기 위한 것이고, 질문은 멈추게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비슷한데.”

“때로는 그렇습니다.”

레이튼은 푸리나에게 찻잔을 권했다.

푸리나는 탁자 앞에 앉았다.

“좋아. 다시 물어봐.”

레이튼은 종이를 가리켰다.

“객석이 비어도 무대는 무대입니까?”

“응. 무대는 무대야.”

“그럼 배우가 내려간 뒤의 방도, 극장의 일부입니까?”

푸리나는 입을 열었다가 멈췄다.

레이튼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푸리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극장 뒤에 있으면 극장의 일부지.”

“그럼 군주님의 극장은 어디까지입니까?”

“내 극장?”

“무대까지입니까? 객석까지입니까? 분장실까지입니까? 길가의 쉼터까지입니까?”

푸리나는 빈 표지판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 죠니에게서 받은 빈 표지판.

“너도 봤어?”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좋은 질문은 대개 이미 앞 장면에 놓여 있습니다.”

“교수 같아.”

“감사합니다.”

“칭찬인지 몰라.”

“질문으로 남겨두지요.”

푸리나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내 극장은……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는 곳이야.”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주인공이 되지 않고 쉬고 싶은 사람은 어디에 있습니까?”

푸리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 질문은 장미의 말과 닮아 있었다.

> 오늘은 아무도 보지 않는 정도로요.



그때 푸리나는 당황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무대는 구원이었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던 사람을 보이게 하고, 무너진 사람에게 이름을 주고, 박수로 다시 일어나게 하는 것.

그것이 푸리나의 힘이었다.

그런데 레이튼은 물었다.

보이지 않고 싶을 때는?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때도 극장은 그 사람을 품을 수 있는가?

푸리나는 천천히 말했다.

“그럼 그 사람을 위한 무대는…… 무대가 아니어야 할지도 몰라.”

레이튼의 눈이 조금 밝아졌다.

“흥미로운 답입니다.”

“답이 맞아?”

“저는 정답을 채점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럼 뭐 하는 사람인데?”

“답이 너무 빨리 닫히지 않게 하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푸리나는 한숨을 쉬었다.

“질문하는 사람들은 정말 피곤해.”

레이튼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점에 대해서는 자주 듣습니다.”

객석에서 낮은 웃음이 났다.

레이튼은 탁자 위에 두 번째 종이를 올렸다.

이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휴식은 보이는 것인가, 보이지 않는 것인가?

푸리나는 이번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생각했다.

박수는 보인다.

웃음도 보인다.

무대 위에서 사람이 고개를 드는 순간도 보인다.

하지만 쉼은?

잠드는 얼굴.

문을 닫은 방.

조용히 놓인 물 한 잔.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그것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푸리나는 낮게 말했다.

“보이게 만들 수는 있어.”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군주님께서는 그것을 잘하시지요.”

“하지만…… 다 보이게 만들면 쉬지 못할 수도 있어.”

“그렇다면?”

푸리나는 말을 고르다가, 결국 웃었다.

“이거 되게 어려운 문제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말했다.

“좋습니다.”

“뭐가 좋아?”

“어려워졌으니까요.”

“나는 쉬러 왔지 시험 보러 온 게 아닌데.”

“휴식에 대해 묻는 일은, 생각보다 자주 시험처럼 느껴집니다.”

푸리나는 종이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빈 표지판을 그 옆에 놓았다.

“그럼 이 표지판에는 뭐라고 써야 할까?”

레이튼은 표지판을 보았다.

“제가 쓰면 제 답이 됩니다.”

“내가 써야 해?”

“군주님의 극장이니까요.”

푸리나는 조금 전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내 극장이니까.

그 말이 갑자기 조금 무거워졌다.

그녀는 표지판에 아직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레이튼은 말했다.

“비워두는 것도 답이 될 수 있습니다.”

“알토 같은 말 하네.”

“기록자와 질문자는 때때로 같은 방을 씁니다.”

푸리나는 웃었다.

“좋아. 그럼 아직 비워둘래.”

“이유는?”

“아직 모르는 답을 너무 빨리 써두면, 그 표지판만 보고 길을 잘못 찾을 수도 있으니까.”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훌륭한 임시 결론입니다.”

“임시라니.”

“좋은 결론은 대개 임시입니다. 살아 있는 것에 관한 문제라면 더욱 그렇지요.”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장미를 떠올렸다.

살아 있는 꽃.

불편하고, 까다롭고, 쉬고 싶어 하고, 주인공이 되고 싶지 않은 날이 있는 꽃.

그녀는 빈 표지판을 품에 안았다.

“고마워, 레이튼.”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다음 질문이 필요하시면 다시 오십시오.”

푸리나는 경계했다.

“다음 질문도 어려워?”

“더 어려울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 올래.”

“그 또한 좋은 선택입니다.”

푸리나는 웃으며 다음 별로 걸어갔다.

그러나 떠나기 전, 그녀는 탁자 위 첫 번째 종이를 다시 보았다.

객석이 비어도 무대는 무대인가?

푸리나는 아주 작게 말했다.

“아마도.”

그리고 덧붙였다.

“하지만 그 무대는 조용해야겠지.”

레이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정답이 아니라 다음 장면으로 가는 문 같았다.


---

세 번째 별은 길과 여관 사이 어딘가에 있었다.

처음에는 별이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어두운 길이 있었다.

길 양쪽에는 낮은 돌담이 있었고, 가끔 작은 등불이 걸려 있었다. 등불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지도 않았다. 한 등불을 지나면 다음 등불이 보일 만큼의 거리.

푸리나는 그 길 위에 내려섰다.

“여긴 하융 별이지?”

어둠 속에서 하융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 부르면 그리 되는 것이겠지, 군주여.”

하융은 길가의 등불 아래에 서 있었다.

그의 옷자락은 여행자의 것처럼 단정했고, 손에는 작은 지팡이가 있었다. 그는 푸리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별과 별 사이의 길에 오신 것을 환영하오.”

푸리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별이 아니잖아.”

“길도 머무는 이가 있으면 별이 될 수 있소.”

“그건 여관좌 쪽 말 같네.”

하융은 웃었다.

“그분의 길은 여러 곳에 이어지니 말이오.”

푸리나는 길 위의 등불들을 보았다.

죠니의 쉼터.

레이튼의 질문.

그리고 이제 하융의 길.

“나는 장미에게 돌아가야 해.”

“그렇겠지.”

“그런데 아직 배울 게 남은 것 같아.”

“그 또한 그렇겠지.”

“너무 쉽게 인정하는 거 아니야?”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 위에서는 부정해도 걸어야 할 때가 많소.”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철학자들이랑 길잡이는 다들 말이 어렵다니까.”

“그런가. 그럼 쉽게 말하리다.”

하융은 지팡이로 등불 하나를 가리켰다.

“저 등불까지 걸으시오.”

푸리나는 걸었다.

그리 멀지 않았다.

등불 아래에는 작은 의자와 물그릇이 있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보고 말했다.

“죠니 별이랑 비슷하네.”

“길은 배운 것을 가지고 이어지는 법이오.”

“그럼 다음은?”

하융은 다음 등불을 가리켰다.

“저기까지.”

푸리나는 다시 걸었다.

두 번째 등불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낮은 벽 하나가 있었다.

푸리나는 그 벽 옆에 잠깐 섰다.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

“바람을 막아주고 있소.”

“아.”

푸리나는 벽에 손을 대 보았다.

차갑지만, 든든했다.

하융은 말했다.

“휴식은 언제나 침대와 박수와 따뜻한 식사만은 아니오. 때로는 바람이 한 방향에서 덜 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은?”

세 번째 등불 아래에는 작은 표지판이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됨.

푸리나는 그 표지판 앞에서 멈췄다.

“이건…….”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레이튼 경의 질문에서 이어진 길이오.”

푸리나는 표지판을 오래 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됨.

무대 위에서는 말해야 했다.

노래해야 했다.

울어도 대사가 되어야 했고, 웃어도 장면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 극장이었다.

하지만 이 표지판은 다르게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됨.

푸리나는 손에 든 빈 표지판을 보았다.

아직 아무것도 적지 않은 표지판.

“이 길은 어디까지 이어져?”

하융은 등불이 늘어선 어둠을 보았다.

“쉬어갈 곳이 있는 쪽으로 이어지오.”

“쉬어갈 곳이 없으면?”

“만들어야지.”

“누가?”

하융은 푸리나를 보았다.

“군주가.”

푸리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하융은 목소리를 낮추었다.

“군주여, 그대는 무대를 잘 여오. 사람을 불러 세우고, 이름을 주고, 웃음으로 다시 걷게 하오.”

그는 길 위의 등불을 보았다.

“하지만 별과 별 사이에도 밤은 오오. 무대에서 내려온 자가 다음 무대에 닿기 전, 길 위에서 지치지 않게 할 곳이 필요하오.”

푸리나는 길을 보았다.

“여관이네.”

“그렇소.”

하융은 미소 지었다.

“무대와 여관은 닮았으나 같지는 않소.”

“어떻게 달라?”

“무대는 사람을 보이게 하오.”

하융은 등불 하나를 손끝으로 가리켰다.

“여관은 사람이 보이지 않아도 괜찮게 하오.”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그 말은 장미의 말과 아주 가까웠다.

> 오늘은 아무도 보지 않는 정도로요.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괜찮게.”

“그렇소.”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휴식에는 그런 방도 필요하오.”

푸리나는 길가의 표지판을 다시 보았다.

말하지 않아도 됨.

그녀는 자신의 빈 표지판을 꺼냈다.

그리고 잠시 망설였다.

“써도 될까?”

하융은 말했다.

“길은 쓰는 자를 기다리오.”

푸리나는 목탄을 꺼냈다.

그리고 빈 표지판에 천천히 적었다.

무대에서 내려와도 됨.

글씨는 조금 삐뚤었지만, 또렷했다.

하융은 그 문장을 보았다.

“좋은 길잡이로군.”

푸리나는 표지판을 들고 한참 바라보았다.

“이걸 장미에게 보여주면 좋아할까?”

“그건 장미가 답할 일이오.”

“다들 그 말 하네.”

“살아 있는 이에게 물어야 하는 일은, 대신 답할 수 없으니 말이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물어봐야겠네.”

“그렇소.”

길 끝에서 별빛이 흔들렸다.

다음 장면으로 가는 문이었다.

하융은 지팡이를 내려놓고, 푸리나에게 길을 열어주었다.

“가시오, 군주여.”

“다음은 어디야?”

“장미가 많은 곳.”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많아?”

“그렇소.”

“내 장미 말고도?”

하융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이미 답이었다.

푸리나는 표지판을 품에 안았다.

상자 속 양.

무대에서 내려와도 됨.

그리고 마음속에 남은 질문들.

그녀는 길 끝으로 걸어갔다.

하융은 뒤에서 말했다.

“길을 잃으면 부르시오.”

푸리나는 뒤돌아보았다.

“책임져줄 거야?”

하융은 웃었다.

“반은.”

“나머지 반은?”

“걸은 자의 몫이오.”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지만, 곧 웃었다.

“좋아. 반이라도 어디야.”

그녀는 다음 장면으로 걸어갔다.

무대 위 등불들이 하나씩 낮아졌다.

마지막 등불 아래, 푸리나가 적은 표지판만이 잠시 남았다.

무대에서 내려와도 됨.

그리고 그 표지판 뒤로, 수많은 장미의 붉은빛이 천천히 켜지기 시작했다.
(최대 5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