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7여관◆zAR16hM8he(55e5d5d9)2026-05-08 (금) 17:48:37
좋아. 이번에는 죠니 × 아스테르다스 대련,
주제는 **“나선과 유성”**으로 가볼게.
죠니는 돌아서 한 점에 닿는 사람.
아스테르다스는 스스로 정한 곳으로 떨어지는 사람.
둘 다 돌격형이지만, 움직임의 철학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살리면 좋겠다.
---
엽편 — 나선과 유성
훈련장은 이른 아침부터 비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비워졌다.
그레이가 전날 밤부터 기사단과 병사들에게 명령했기 때문이다.
내일 오전 제3훈련장 사용 금지.
관전 허가자 외 접근 금지.
훈련장 주변 돌기둥 보강 완료.
의료 담당자 대기.
말 두 필 이상 예비 배치.
군주님 난입 방지선 설치.
마지막 항목 때문에 푸리나 헤툼은 아침부터 매우 불만스러웠다.
“난입 방지선이라니 너무하잖아!”
그레이는 차분히 대답했다.
“군주님께서 난입하실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대련 구경하는 건 난입이 아니야!”
“구경하시다가 ‘좋아, 즉흥 해설!’이라고 외치실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융이 조용히 말했다.
“그 가능성은 매우 선명하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실로 흥미로운 대련입니다. 회전과 낙하, 찰나와 궤도, 선택된 순간과 선택된 지점의 충돌이라.”
푸리나는 바로 눈을 빛냈다.
“봐! 레이튼도 해설하잖아!”
그레이가 말했다.
“레이튼 님은 난입하지 않습니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은요.”
그레이가 그를 보았다.
레이튼은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훈련장 중앙에는 죠니 죠스타가 서 있었다.
말 위가 아니었다.
오늘은 기승전이 아니라 보법과 창술을 먼저 보기로 했다. 그는 창을 어깨에 걸친 채 가볍게 발목을 돌리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아스테르다스가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청흑빛 유성.
민다우가스의 망치.
예순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그는 젊은 기사들보다 더 가벼운 얼굴로 서 있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웃으며 말했다.
“말 없이 시작하는 건가?”
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까지 쓰면 훈련장 부서질걸.”
그레이가 멀리서 말했다.
“부서지면 안 됩니다.”
아스테르다스가 그레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걱정 마, 그레이 양. 최대한 덜 부수도록 하지.”
그레이는 즉시 기록판에 적었다.
‘덜 부수도록’은 파손 가능성 인정 발언.
푸리나가 웃었다.
“그레이, 그걸 왜 적어?”
“사후 보수 청구 근거입니다.”
아스테르다스는 그 말을 듣고 더 크게 웃었다.
“좋은 행정이야. 민다우가스도 좋아하겠군.”
죠니는 창을 바로잡았다.
“준비됐어?”
아스테르다스는 어깨를 풀었다.
“언제든.”
죠니는 낮게 말했다.
“그럼 간다.”
그 순간, 죠니의 발이 움직였다.
직선이 아니었다.
그는 옆으로 비껴나가며 반원을 그렸다.
창끝은 땅을 향하는 듯하다가, 어느새 아스테르다스의 어깨선을 향해 올라왔다.
느리지 않았다.
그러나 빠르다는 말보다, 끊기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맞았다.
죠니의 보법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발끝, 무릎, 허리, 어깨, 창끝.
모든 움직임이 한 방향으로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돌아가며 다음 움직임을 낳았다.
아스테르다스는 한 걸음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딛었다.
“오.”
그는 웃었다.
“돌아오는군.”
죠니의 창이 아스테르다스의 옆구리를 스치려는 순간, 아스테르다스의 발밑이 이상하게 흔들렸다.
그는 뛰어오르지 않았다.
내려앉았다.
분명 땅 위에 서 있었는데, 마치 허공 높은 곳에서 지금 이 자리로 떨어진 것처럼 몸이 내려꽂혔다.
쿵.
훈련장 바닥이 낮게 울렸다.
죠니의 창끝이 궤도를 잃지 않으려 회전했지만, 아스테르다스의 주먹이 그 궤도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창대와 주먹이 부딪쳤다.
금속음이 아니라, 별똥별이 바위에 닿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죠니는 뒤로 밀리지 않았다.
그는 충격을 그대로 받아내지 않고, 창대를 돌려 흘렸다.
주먹의 힘은 창대를 타고 원을 그리며 바닥으로 빠졌다.
아스테르다스가 감탄했다.
“좋네. 떨어진 힘을 돌려보냈어.”
죠니는 담담히 말했다.
“정면으로 받으면 팔 나가.”
“정확한 판단이야.”
“나이 생각하면 더 세게 오네.”
아스테르다스가 크게 웃었다.
“나이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군.”
“예순 근처라며.”
“그래도 아이들은 나를 형이나 오빠라고 부르지.”
훈련장 밖에서 푸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하융이 조용히 말했다.
“그것이 아스테르다스 경의 기묘한 중력인 듯하오.”
그레이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
두 번째 충돌은 더 빨랐다.
죠니가 먼저 나선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아스테르다스의 정면을 노리지 않았다.
오른쪽 어깨, 왼쪽 무릎, 뒤꿈치, 옆구리.
창끝은 계속 목표를 바꾸며 돌았다.
한 번의 찌르기가 끝나기 전에 다음 찌르기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피하면 피한 방향이 다음 궤도의 시작점이 되었다.
《윤회보: 흐름의 보법》.
죠니의 발걸음은 짧게,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졌다.
훈련장 바닥에 원이 생기고, 그 원이 작아지고, 작아진 원은 어느 순간 아스테르다스의 중심을 향해 수렴했다.
레이튼은 눈을 가늘게 떴다.
“흥미롭군요. 죠니 경은 공격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오차를 줄이고 있습니다.”
하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반복 끝에 하나의 찰나로 수렴하는 길이오.”
푸리나가 작게 말했다.
“죠니답네.”
그레이는 말했다.
“저 속도로 움직이면 관절 부담이 큽니다.”
푸리나는 그레이를 보았다.
“너도 참 그레이다워.”
그레이는 부정하지 않았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의 나선 안에 있었다.
보통이라면 압박을 받아 중심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방식으로 버텼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그곳이 아래가 되었다.
죠니가 왼쪽에서 파고들면, 아스테르다스는 왼쪽으로 떨어졌다.
뒤에서 압박하면, 뒤로 떨어졌다.
위에서 내려오는 창끝에는, 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듯 팔꿈치를 꽂았다.
모든 방향이 낙하가 되었다.
《발을 디디다》.
그는 허공이든 땅이든, 자신이 선택한 지점을 낙점으로 삼았다.
죠니의 나선이 좁아질수록 아스테르다스의 낙하도 더 분명해졌다.
“너.”
죠니가 창을 돌리며 말했다.
“떨어진다기보다, 네가 선 곳을 하늘로 바꾸네.”
아스테르다스의 눈이 빛났다.
“좋은 말이야.”
그는 몸을 낮췄다.
“그럼 이번엔 네 나선 위로 떨어져볼까?”
그 말과 동시에 아스테르다스가 사라졌다.
아니, 위로 뛰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가 뛰어오른 것이 아니라, 하늘이 아래로 내려온 것처럼 보였다.
아스테르다스의 몸이 훈련장 위로 떠올랐다가, 죠니가 만든 나선의 중심을 향해 떨어졌다.
《하늘을 가르는 스파킹 메테오》.
청흑빛 기운이 그의 주먹과 어깨를 감쌌다.
그 낙하는 단순한 돌진이 아니었다.
중력의 방향을 스스로 정해, 목표를 세계의 아래쪽으로 만드는 움직임.
죠니는 위를 보았다.
창을 들었다.
피하지 않았다.
“좋아.”
그는 창끝을 돌렸다.
작은 원.
더 작은 원.
더더욱 작은 원.
나선이 압축되었다.
《윤회창: 나선수렴》.
아스테르다스의 낙하와 죠니의 나선이 충돌했다.
쾅!
훈련장 중앙의 먼지가 원형으로 터졌다.
그레이가 즉시 외쳤다.
“중지!”
푸리나가 동시에 외쳤다.
“멋있어!”
그레이가 푸리나를 보았다.
“군주님.”
“아니, 지금 건 진짜 멋있었잖아!”
먼지가 걷히자, 죠니와 아스테르다스는 서로의 공격을 막은 상태로 멈춰 있었다.
죠니의 창끝은 아스테르다스의 목 바로 옆에 있었다.
아스테르다스의 주먹은 죠니의 가슴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다.
서로 한 치만 더 나아갔으면, 대련이 아니라 부상 보고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레이는 이미 종이를 꺼냈다.
“두 분 다 즉시 거리 벌리십시오.”
죠니가 창을 내렸다.
아스테르다스도 주먹을 풀었다.
“좋은 충돌이었어.”
죠니는 짧게 대답했다.
“응.”
아스테르다스가 웃었다.
“담백하군.”
“좋은 건 길게 말해도 좋아지는 거 아니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야.”
---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레이가 물과 붕대를 준비했고, 푸리나는 관전석에서 거의 박수를 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얼굴이었다.
“진짜 멋있었어. 죠니가 빙글빙글 돌고, 아스테르다스가 쾅 하고 떨어지고!”
그레이가 말했다.
“군주님의 해설은 기술 분석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레이튼은 웃었다.
“하지만 감상으로는 매우 정확합니다.”
하융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방금 가능성 몇 개는 매우 위험했소.”
죠니가 물을 마시며 말했다.
“얼마나?”
“그레이 양의 보고서가 세 배쯤 늘어나는 가능성.”
죠니는 아스테르다스를 보았다.
“조심하자.”
아스테르다스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피해야겠군.”
그레이는 둘을 보았다.
“제 보고서 때문이 아니라 부상 때문입니다.”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그레이 보고서도 꽤 무서워.”
그레이는 듣지 못한 척했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 옆에 앉았다.
“죠니.”
“응.”
“너는 왜 그렇게 돌아가지?”
죠니는 창대를 천천히 닦았다.
“돌아가면 보이는 게 있어.”
“무엇이?”
“정면에서는 못 보는 틈. 상대 호흡. 땅의 기울기. 내 실수.”
그는 손가락으로 창대의 흠집을 문질렀다.
“그리고 멀리 돌아가야 도착하는 곳도 있어.”
아스테르다스는 조용히 들었다.
죠니는 계속 말했다.
“나는 반복을 믿어. 같은 움직임을 계속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틀린 부분이 깎여나가. 남는 건 하나의 찰나야.”
“완성된 순간.”
“응.”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반대군.”
죠니가 그를 보았다.
아스테르다스는 훈련장 바닥에 생긴 균열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그레이의 시선이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아스테르다스는 급히 발을 뗐다.
“미안.”
그레이는 기록했다.
아스테르다스는 헛기침했다.
“나는 반복보다 낙점을 믿어. 어디로 떨어질지 정하면, 내 몸은 거기로 향해. 길이 어떻든 상관없어. 직선이든 곡선이든, 위든 아래든, 내가 정한 곳이 아래가 된다.”
죠니는 잠시 생각했다.
“자기 길의 바닥을 직접 정하는 거네.”
아스테르다스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 말도 좋군.”
“많이 가져가네.”
“좋은 말은 저장해두는 편이야. 나중에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거든.”
죠니는 피식 웃었다.
“아이들이 진짜 형이라고 부르는 이유 알겠네.”
아스테르다스는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
하융은 그 둘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두 사람은 다르게 움직이나, 묘하게 같은 것을 보고 있소.”
레이튼이 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선택한 순간과 선택한 지점.”
하융은 죠니를 보았다.
“죠니 경은 수많은 반복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순간을 사랑하고.”
다음으로 아스테르다스를 보았다.
“아스테르다스 경은 수많은 방향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지점을 사랑하오.”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좋아! 멋진 해설!”
그레이가 말했다.
“군주님, 박수는 대련 종료 후에.”
푸리나는 손을 내렸다.
“너무 엄격해.”
---
두 번째 라운드는 무기 사용을 바꾸었다.
죠니는 창을 그대로 들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주먹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둔중한 훈련용 철봉을 들었다. 검이라기보다는 작은 기둥 같았다.
그레이의 눈이 차가워졌다.
“그 물건은 어디서 가져오셨습니까?”
아스테르다스는 밝게 말했다.
“저쪽 무기 보관대에 있던데.”
“그건 사람에게 휘두르라고 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문 보강용입니다.”
푸리나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죠니는 철봉을 보고 말했다.
“괜찮아. 저 사람한테는 무기 맞는 것 같아.”
그레이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대련 후 원위치입니다.”
아스테르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는 철봉을 어깨에 걸쳤다.
그 자세는 기묘했다.
무식하게 무거운 무기를 든 것처럼 보이는데, 어깨에 걸친 모습은 농부가 괭이를 든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죠니는 창끝을 낮췄다.
“이번엔 네가 먼저 와.”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그럼 떨어진다.”
그는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 순간 훈련장 전체가 아스테르다스 쪽으로 기운 듯했다.
죠니는 발끝으로 바닥을 느꼈다.
무게가 온다.
정면에서.
아니, 위에서.
아니, 자신이 서 있는 모든 방향에서.
아스테르다스는 달려오지 않았다.
그는 떨어져 왔다.
철봉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죠니는 피했다.
하지만 철봉이 땅에 닿는 순간, 충격이 옆으로 퍼졌다.
죠니의 발이 살짝 떴다.
그 짧은 순간, 아스테르다스는 이미 다음 낙점을 정했다.
죠니의 옆.
쿵.
그는 옆으로 떨어졌다.
철봉이 휘둘러졌다.
죠니는 몸을 돌렸다.
《윤회보: 흐름의 보법》.
그는 충격파의 바깥선을 탔다.
바깥으로 밀려나는 힘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그 원심력을 자신의 나선에 섞었다.
한 바퀴.
창끝이 아스테르다스의 손목을 향했다.
아스테르다스는 철봉을 놓지 않고 손목을 비틀었다.
창끝이 철봉에 감겼다.
죠니는 눈을 가늘게 떴다.
“힘 세네.”
“늙으면 힘이 늘어.”
“거짓말이지?”
“조금.”
아스테르다스가 철봉을 당겼다.
죠니가 끌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끌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당겨지는 힘을 타고 한 걸음 들어갔다.
나선은 밀려날 때만 도는 것이 아니었다.
당겨질 때도 돈다.
죠니의 어깨가 낮아지고, 창대가 철봉 아래를 미끄러졌다.
순간 창끝이 아래에서 위로 솟았다.
아스테르다스의 턱밑.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좋다.”
그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기 몸 전체를 뒤쪽으로 떨어뜨렸다.
허공에 등이 닿는 듯한 자세.
정상적인 움직임이라면 넘어져야 했다.
그러나 아스테르다스는 넘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뒤쪽 허공에 낙점을 만들고, 그쪽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 몸이 죠니의 창끝을 피해 미끄러지듯 빠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옆으로 굴러 일어났다.
죠니가 말했다.
“그건 좀 이상하네.”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유성은 가끔 대기권에서 튕기기도 하지.”
“비유가 너무 자유로운데.”
“푸리나 군주께 배웠나 보군.”
푸리나는 관전석에서 외쳤다.
“내 탓이야?!”
그레이가 말했다.
“군주님, 방해 금지입니다.”
“지금 대화에 참여한 것뿐이야!”
“그것이 방해입니다.”
---
대련은 점점 빨라졌다.
죠니의 나선은 좁아졌다가 커졌다.
아스테르다스의 낙하는 정면에서 옆으로,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바뀌었다.
훈련장 바닥에는 원형의 발자국과 방사형 균열이 동시에 생겼다.
나선과 유성.
하나는 돌아서 중심에 닿고,
하나는 모든 방향을 중심으로 바꾸어 떨어졌다.
죠니가 회전하면, 아스테르다스는 그 회전의 바깥에서 낙하했다.
아스테르다스가 내려꽂히면, 죠니는 그 충돌을 돌려 다시 궤도로 만들었다.
둘은 비슷하면서 달랐다.
죠니는 반복 속에서 완성된 순간을 찾았다.
아스테르다스는 선택한 목표를 향해 모든 길을 떨어뜨렸다.
마침내 죠니가 크게 원을 그렸다.
그 원은 점점 작아졌다.
《윤회진: 나선행군》.
원래는 부대를 이끌 때 쓰는 진형이었다.
하지만 지금 죠니는 그것을 혼자 펼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기병대의 궤도가 겹쳐졌다.
말발굽 없는 행군.
창대와 발걸음만으로 이루어진 회전 진형.
아스테르다스는 그 나선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위를 보았다.
하늘은 맑았다.
그는 웃었다.
“좋아. 그럼 나는 떨어질 하늘을 만들지.”
그의 몸 주위에 청흑빛 기운이 떠올랐다.
《소우주》.
아스테르다스의 주변에 작은 중력권이 생겼다.
훈련장 모래가 천천히 떠올랐다가, 그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푸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와.”
그레이는 즉시 말했다.
“출력 낮추십시오!”
아스테르다스는 손을 들었다.
“낮췄어!”
그레이는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를 향해 철봉을 들었다.
“죠니.”
“응.”
“이번 건 막아도 다친다.”
“그럼 흘려야지.”
“흘려도 흔들린다.”
“그럼 돌려야지.”
“좋아.”
아스테르다스는 뛰지 않았다.
그냥 한 걸음.
그 한 걸음이 낙하였다.
《예성천극 천극성락》의 아주 약한 형태.
천극의 끝에서 떨어지는 별.
죠니는 창을 세웠다.
그는 정면으로 받지 않았다.
회전시켰다.
창끝, 창대, 어깨, 허리, 발끝.
모든 것이 하나의 원이 되었다.
아스테르다스의 낙하가 죠니의 원에 닿았다.
그리고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낙하는 원을 부수지 못했다.
원도 낙하를 밀어내지 못했다.
낙하는 원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아스테르다스의 힘이 죠니의 나선에 실렸다.
죠니의 나선은 그 힘을 완전히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돌려 더 깊은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죠니가 이를 악물었다.
아스테르다스가 웃었다.
“하하, 이거 위험하군.”
죠니가 말했다.
“웃을 때냐.”
“재밌잖아.”
푸리나가 관전석에서 주먹을 쥐었다.
“내 대사!”
그레이가 외쳤다.
“두 분 모두 중지!”
하지만 이미 둘은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훈련장 중앙이 날아간다.
죠니는 창대를 틀었다.
아스테르다스는 낙점을 바꿨다.
나선의 중심이 땅이 아니라 하늘로 향했다.
유성의 낙하점이 죠니가 아니라 훈련장 위 빈 공간으로 바뀌었다.
둘의 힘이 위로 솟았다.
쾅!
공중에서 청흑빛 나선이 터졌다.
폭발이라기보다는, 별똥별이 둥근 궤도를 그리며 사라지는 듯한 빛이었다.
훈련장에는 충격파만 내려왔다.
먼지가 흩날렸다.
막대한 힘이었지만,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건물도 부서지지 않았다.
다만 훈련장 중앙 바닥에는 커다란 소용돌이 모양의 자국과, 그 중심에 유성처럼 파인 낙점이 남았다.
그레이는 그 자국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보수 필요.”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멋있는데.”
“보수 필요입니다.”
레이튼은 감탄했다.
“이건 거의 하나의 문장 같군요. 회전하는 길과 떨어지는 별이 서로를 부수지 않기 위해, 같은 하늘을 선택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좋은 가능성이 현실이 되었소.”
---
죠니와 아스테르다스는 훈련장 중앙에 서 있었다.
둘 다 숨이 조금 거칠었다.
죠니의 손바닥에는 창대가 스친 자국이 남아 있었고, 아스테르다스의 팔에는 나선의 마찰로 생긴 붉은 선이 있었다.
그레이가 다가왔다.
“두 분 모두 치료를 받으십시오.”
죠니가 말했다.
“괜찮아.”
그레이가 조용히 보았다.
죠니는 바로 말을 바꿨다.
“받을게.”
아스테르다스가 웃었다.
“강한 행정이군.”
그레이가 말했다.
“행정이 아니라 의료 조치입니다.”
“그것도 강하군.”
푸리나는 방지선을 넘어오려다가 그레이의 시선을 받고 멈췄다.
“이제 끝났지?”
그레이가 말했다.
“공식적으로 종료 후 접근 가능합니다.”
“그럼 종료!”
그레이가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은 박수를 쳤다.
하융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푸리나는 마침내 크게 박수쳤다.
“좋아! 훌륭한 대련이었어!”
죠니는 창을 어깨에 걸었다.
“결과는?”
아스테르다스가 말했다.
“무승부로 하지.”
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게 편해.”
푸리나가 아쉬워했다.
“승패가 있어야 극적이지 않아?”
레이튼이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떤 장면은 승패보다 상호 이해로 완성되지요.”
하융이 말했다.
“이번 대련은 이기기 위한 것보다, 서로의 길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소.”
그레이가 기록했다.
대련 결과: 무승부. 목적: 상호 전투 방식 확인. 부수 피해: 훈련장 중앙 바닥 보수 필요.
푸리나는 그 기록을 보고 말했다.
“마지막 항목만 너무 현실적이야.”
“가장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죠니는 그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악수는 길지 않았다.
아스테르다스가 말했다.
“죠니. 네 나선은 부러지지 않아서 좋았다.”
죠니가 대답했다.
“네 유성은 무겁지만, 방향을 바꿀 줄 알아서 좋았어.”
아스테르다스는 크게 웃었다.
“좋은 칭찬이야.”
죠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너는 그냥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야.”
아스테르다스는 그를 보았다.
“그럼?”
“떨어지기로 정한 사람이지.”
아스테르다스의 웃음이 조금 조용해졌다.
그는 잠시 죠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마음에 오래 두겠어.”
그는 반대로 말했다.
“그리고 너는 그냥 도는 사람이 아니야.”
죠니가 물었다.
“그럼?”
“돌아가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지.”
죠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작게 웃었다.
“나쁘지 않네.”
---
대련이 끝난 뒤, 훈련장에는 소용돌이와 낙점의 흔적이 남았다.
그레이는 그 흔적을 보수해야 한다고 했고, 푸리나는 그 흔적을 기념으로 남기자고 했다.
그레이는 당연히 반대했다.
“훈련장 바닥에 균열을 기념으로 남길 수는 없습니다.”
푸리나는 항의했다.
“하지만 멋있잖아!”
“병사가 발목을 접질릴 수 있습니다.”
“그럼 주변에 울타리를—”
“안 됩니다.”
아스테르다스는 훈련장 자국을 보고 웃었다.
“아깝긴 하군. 좋은 별자국인데.”
죠니도 말했다.
“나선도 잘 나왔어.”
그레이는 둘을 보았다.
“두 분까지 그러시면 안 됩니다.”
레이튼은 중재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탁본을 남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기록은 남기되, 바닥은 고치는 방식이지요.”
하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타협이오.”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좋아! 이름은?”
그레이가 경계했다.
“이름이 필요합니까?”
푸리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필요하지!”
죠니는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나선과 유성.”
아스테르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레이튼도 미소 지었다.
“간결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두 길이 부딪히지 않고 하늘로 오른 흔적이오.”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비공식 명칭으로만 허가합니다.”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럼 됐어!”
그날 오후, 훈련장 바닥은 수리되었다.
하지만 수리 전에 레이튼의 제안대로 탁본이 만들어졌다.
그 탁본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창흔과, 그 중심에서 살짝 비껴난 유성의 낙점이 함께 남아 있었다.
죠니는 그것을 보고 말했다.
“중심이 조금 빗나갔네.”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그래서 좋지. 완전히 겹쳤으면 둘 중 하나는 부서졌을 거야.”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껴갔기에 둘 다 남았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만족스럽게 선언했다.
“좋아. 오늘의 결론!”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대련은 사전 보수 예산을 책정한 뒤에 진행해야 한다.”
“그거 말고!”
죠니가 말했다.
“돌아가도 닿을 수 있다.”
아스테르다스가 말했다.
“떨어져도 부술 필요는 없다.”
레이튼이 말했다.
“서로 다른 길도, 같은 하늘을 향할 수 있지요.”
하융이 말했다.
“그리고 조금 비껴가야 함께 남을 수 있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그래. 그거야.”
그녀는 탁본을 바라보았다.
나선과 유성.
완전히 같은 길은 아니었다.
하나는 돌아갔고, 하나는 떨어졌다.
하나는 순간을 완성했고, 하나는 지점을 선택했다.
그러나 둘은 부딪힌 뒤에도 서로를 부수지 않았다.
힘을 하늘로 돌렸다.
그것이 그들의 대련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서도 필요한 결론이었다.
주제는 **“나선과 유성”**으로 가볼게.
죠니는 돌아서 한 점에 닿는 사람.
아스테르다스는 스스로 정한 곳으로 떨어지는 사람.
둘 다 돌격형이지만, 움직임의 철학이 전혀 다르다는 점을 살리면 좋겠다.
---
엽편 — 나선과 유성
훈련장은 이른 아침부터 비어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비워졌다.
그레이가 전날 밤부터 기사단과 병사들에게 명령했기 때문이다.
내일 오전 제3훈련장 사용 금지.
관전 허가자 외 접근 금지.
훈련장 주변 돌기둥 보강 완료.
의료 담당자 대기.
말 두 필 이상 예비 배치.
군주님 난입 방지선 설치.
마지막 항목 때문에 푸리나 헤툼은 아침부터 매우 불만스러웠다.
“난입 방지선이라니 너무하잖아!”
그레이는 차분히 대답했다.
“군주님께서 난입하실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대련 구경하는 건 난입이 아니야!”
“구경하시다가 ‘좋아, 즉흥 해설!’이라고 외치실 가능성이 높았습니다.”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하융이 조용히 말했다.
“그 가능성은 매우 선명하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실로 흥미로운 대련입니다. 회전과 낙하, 찰나와 궤도, 선택된 순간과 선택된 지점의 충돌이라.”
푸리나는 바로 눈을 빛냈다.
“봐! 레이튼도 해설하잖아!”
그레이가 말했다.
“레이튼 님은 난입하지 않습니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은요.”
그레이가 그를 보았다.
레이튼은 조용히 찻잔을 들었다.
훈련장 중앙에는 죠니 죠스타가 서 있었다.
말 위가 아니었다.
오늘은 기승전이 아니라 보법과 창술을 먼저 보기로 했다. 그는 창을 어깨에 걸친 채 가볍게 발목을 돌리고 있었다.
그 맞은편에는 아스테르다스가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청흑빛 유성.
민다우가스의 망치.
예순에 가까운 나이임에도, 그는 젊은 기사들보다 더 가벼운 얼굴로 서 있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웃으며 말했다.
“말 없이 시작하는 건가?”
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까지 쓰면 훈련장 부서질걸.”
그레이가 멀리서 말했다.
“부서지면 안 됩니다.”
아스테르다스가 그레이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걱정 마, 그레이 양. 최대한 덜 부수도록 하지.”
그레이는 즉시 기록판에 적었다.
‘덜 부수도록’은 파손 가능성 인정 발언.
푸리나가 웃었다.
“그레이, 그걸 왜 적어?”
“사후 보수 청구 근거입니다.”
아스테르다스는 그 말을 듣고 더 크게 웃었다.
“좋은 행정이야. 민다우가스도 좋아하겠군.”
죠니는 창을 바로잡았다.
“준비됐어?”
아스테르다스는 어깨를 풀었다.
“언제든.”
죠니는 낮게 말했다.
“그럼 간다.”
그 순간, 죠니의 발이 움직였다.
직선이 아니었다.
그는 옆으로 비껴나가며 반원을 그렸다.
창끝은 땅을 향하는 듯하다가, 어느새 아스테르다스의 어깨선을 향해 올라왔다.
느리지 않았다.
그러나 빠르다는 말보다, 끊기지 않는다는 말이 더 맞았다.
죠니의 보법은 물 흐르듯 이어졌다.
발끝, 무릎, 허리, 어깨, 창끝.
모든 움직임이 한 방향으로 쏟아지는 것이 아니라, 계속 돌아가며 다음 움직임을 낳았다.
아스테르다스는 한 걸음 물러나지 않았다.
오히려 앞으로 딛었다.
“오.”
그는 웃었다.
“돌아오는군.”
죠니의 창이 아스테르다스의 옆구리를 스치려는 순간, 아스테르다스의 발밑이 이상하게 흔들렸다.
그는 뛰어오르지 않았다.
내려앉았다.
분명 땅 위에 서 있었는데, 마치 허공 높은 곳에서 지금 이 자리로 떨어진 것처럼 몸이 내려꽂혔다.
쿵.
훈련장 바닥이 낮게 울렸다.
죠니의 창끝이 궤도를 잃지 않으려 회전했지만, 아스테르다스의 주먹이 그 궤도 한가운데로 떨어졌다.
창대와 주먹이 부딪쳤다.
금속음이 아니라, 별똥별이 바위에 닿는 듯한 둔탁한 소리가 났다.
죠니는 뒤로 밀리지 않았다.
그는 충격을 그대로 받아내지 않고, 창대를 돌려 흘렸다.
주먹의 힘은 창대를 타고 원을 그리며 바닥으로 빠졌다.
아스테르다스가 감탄했다.
“좋네. 떨어진 힘을 돌려보냈어.”
죠니는 담담히 말했다.
“정면으로 받으면 팔 나가.”
“정확한 판단이야.”
“나이 생각하면 더 세게 오네.”
아스테르다스가 크게 웃었다.
“나이 이야기를 들을 줄은 몰랐군.”
“예순 근처라며.”
“그래도 아이들은 나를 형이나 오빠라고 부르지.”
훈련장 밖에서 푸리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
하융이 조용히 말했다.
“그것이 아스테르다스 경의 기묘한 중력인 듯하오.”
그레이는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지만 기록하지 않기로 했다.
---
두 번째 충돌은 더 빨랐다.
죠니가 먼저 나선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아스테르다스의 정면을 노리지 않았다.
오른쪽 어깨, 왼쪽 무릎, 뒤꿈치, 옆구리.
창끝은 계속 목표를 바꾸며 돌았다.
한 번의 찌르기가 끝나기 전에 다음 찌르기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피하면 피한 방향이 다음 궤도의 시작점이 되었다.
《윤회보: 흐름의 보법》.
죠니의 발걸음은 짧게, 그러나 끊임없이 이어졌다.
훈련장 바닥에 원이 생기고, 그 원이 작아지고, 작아진 원은 어느 순간 아스테르다스의 중심을 향해 수렴했다.
레이튼은 눈을 가늘게 떴다.
“흥미롭군요. 죠니 경은 공격을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을 통해 오차를 줄이고 있습니다.”
하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수많은 반복 끝에 하나의 찰나로 수렴하는 길이오.”
푸리나가 작게 말했다.
“죠니답네.”
그레이는 말했다.
“저 속도로 움직이면 관절 부담이 큽니다.”
푸리나는 그레이를 보았다.
“너도 참 그레이다워.”
그레이는 부정하지 않았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의 나선 안에 있었다.
보통이라면 압박을 받아 중심을 잃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상한 방식으로 버텼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그곳이 아래가 되었다.
죠니가 왼쪽에서 파고들면, 아스테르다스는 왼쪽으로 떨어졌다.
뒤에서 압박하면, 뒤로 떨어졌다.
위에서 내려오는 창끝에는, 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떨어지듯 팔꿈치를 꽂았다.
모든 방향이 낙하가 되었다.
《발을 디디다》.
그는 허공이든 땅이든, 자신이 선택한 지점을 낙점으로 삼았다.
죠니의 나선이 좁아질수록 아스테르다스의 낙하도 더 분명해졌다.
“너.”
죠니가 창을 돌리며 말했다.
“떨어진다기보다, 네가 선 곳을 하늘로 바꾸네.”
아스테르다스의 눈이 빛났다.
“좋은 말이야.”
그는 몸을 낮췄다.
“그럼 이번엔 네 나선 위로 떨어져볼까?”
그 말과 동시에 아스테르다스가 사라졌다.
아니, 위로 뛰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가 뛰어오른 것이 아니라, 하늘이 아래로 내려온 것처럼 보였다.
아스테르다스의 몸이 훈련장 위로 떠올랐다가, 죠니가 만든 나선의 중심을 향해 떨어졌다.
《하늘을 가르는 스파킹 메테오》.
청흑빛 기운이 그의 주먹과 어깨를 감쌌다.
그 낙하는 단순한 돌진이 아니었다.
중력의 방향을 스스로 정해, 목표를 세계의 아래쪽으로 만드는 움직임.
죠니는 위를 보았다.
창을 들었다.
피하지 않았다.
“좋아.”
그는 창끝을 돌렸다.
작은 원.
더 작은 원.
더더욱 작은 원.
나선이 압축되었다.
《윤회창: 나선수렴》.
아스테르다스의 낙하와 죠니의 나선이 충돌했다.
쾅!
훈련장 중앙의 먼지가 원형으로 터졌다.
그레이가 즉시 외쳤다.
“중지!”
푸리나가 동시에 외쳤다.
“멋있어!”
그레이가 푸리나를 보았다.
“군주님.”
“아니, 지금 건 진짜 멋있었잖아!”
먼지가 걷히자, 죠니와 아스테르다스는 서로의 공격을 막은 상태로 멈춰 있었다.
죠니의 창끝은 아스테르다스의 목 바로 옆에 있었다.
아스테르다스의 주먹은 죠니의 가슴 바로 앞에서 멈춰 있었다.
서로 한 치만 더 나아갔으면, 대련이 아니라 부상 보고서가 되었을 것이다.
그레이는 이미 종이를 꺼냈다.
“두 분 다 즉시 거리 벌리십시오.”
죠니가 창을 내렸다.
아스테르다스도 주먹을 풀었다.
“좋은 충돌이었어.”
죠니는 짧게 대답했다.
“응.”
아스테르다스가 웃었다.
“담백하군.”
“좋은 건 길게 말해도 좋아지는 거 아니니까.”
“그것도 맞는 말이야.”
---
잠시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레이가 물과 붕대를 준비했고, 푸리나는 관전석에서 거의 박수를 치고 싶어 몸이 근질거리는 얼굴이었다.
“진짜 멋있었어. 죠니가 빙글빙글 돌고, 아스테르다스가 쾅 하고 떨어지고!”
그레이가 말했다.
“군주님의 해설은 기술 분석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레이튼은 웃었다.
“하지만 감상으로는 매우 정확합니다.”
하융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방금 가능성 몇 개는 매우 위험했소.”
죠니가 물을 마시며 말했다.
“얼마나?”
“그레이 양의 보고서가 세 배쯤 늘어나는 가능성.”
죠니는 아스테르다스를 보았다.
“조심하자.”
아스테르다스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피해야겠군.”
그레이는 둘을 보았다.
“제 보고서 때문이 아니라 부상 때문입니다.”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그레이 보고서도 꽤 무서워.”
그레이는 듣지 못한 척했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 옆에 앉았다.
“죠니.”
“응.”
“너는 왜 그렇게 돌아가지?”
죠니는 창대를 천천히 닦았다.
“돌아가면 보이는 게 있어.”
“무엇이?”
“정면에서는 못 보는 틈. 상대 호흡. 땅의 기울기. 내 실수.”
그는 손가락으로 창대의 흠집을 문질렀다.
“그리고 멀리 돌아가야 도착하는 곳도 있어.”
아스테르다스는 조용히 들었다.
죠니는 계속 말했다.
“나는 반복을 믿어. 같은 움직임을 계속 돌리다 보면, 어느 순간 틀린 부분이 깎여나가. 남는 건 하나의 찰나야.”
“완성된 순간.”
“응.”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반대군.”
죠니가 그를 보았다.
아스테르다스는 훈련장 바닥에 생긴 균열을 발끝으로 툭 건드렸다.
그레이의 시선이 바로 그쪽으로 향했다.
아스테르다스는 급히 발을 뗐다.
“미안.”
그레이는 기록했다.
아스테르다스는 헛기침했다.
“나는 반복보다 낙점을 믿어. 어디로 떨어질지 정하면, 내 몸은 거기로 향해. 길이 어떻든 상관없어. 직선이든 곡선이든, 위든 아래든, 내가 정한 곳이 아래가 된다.”
죠니는 잠시 생각했다.
“자기 길의 바닥을 직접 정하는 거네.”
아스테르다스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 말도 좋군.”
“많이 가져가네.”
“좋은 말은 저장해두는 편이야. 나중에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거든.”
죠니는 피식 웃었다.
“아이들이 진짜 형이라고 부르는 이유 알겠네.”
아스테르다스는 환하게 웃었다.
“그렇지?”
하융은 그 둘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두 사람은 다르게 움직이나, 묘하게 같은 것을 보고 있소.”
레이튼이 물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선택한 순간과 선택한 지점.”
하융은 죠니를 보았다.
“죠니 경은 수많은 반복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순간을 사랑하고.”
다음으로 아스테르다스를 보았다.
“아스테르다스 경은 수많은 방향 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지점을 사랑하오.”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좋아! 멋진 해설!”
그레이가 말했다.
“군주님, 박수는 대련 종료 후에.”
푸리나는 손을 내렸다.
“너무 엄격해.”
---
두 번째 라운드는 무기 사용을 바꾸었다.
죠니는 창을 그대로 들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주먹만으로는 부족하다며, 둔중한 훈련용 철봉을 들었다. 검이라기보다는 작은 기둥 같았다.
그레이의 눈이 차가워졌다.
“그 물건은 어디서 가져오셨습니까?”
아스테르다스는 밝게 말했다.
“저쪽 무기 보관대에 있던데.”
“그건 사람에게 휘두르라고 둔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문 보강용입니다.”
푸리나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죠니는 철봉을 보고 말했다.
“괜찮아. 저 사람한테는 무기 맞는 것 같아.”
그레이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대련 후 원위치입니다.”
아스테르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는 철봉을 어깨에 걸쳤다.
그 자세는 기묘했다.
무식하게 무거운 무기를 든 것처럼 보이는데, 어깨에 걸친 모습은 농부가 괭이를 든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죠니는 창끝을 낮췄다.
“이번엔 네가 먼저 와.”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그럼 떨어진다.”
그는 한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그 순간 훈련장 전체가 아스테르다스 쪽으로 기운 듯했다.
죠니는 발끝으로 바닥을 느꼈다.
무게가 온다.
정면에서.
아니, 위에서.
아니, 자신이 서 있는 모든 방향에서.
아스테르다스는 달려오지 않았다.
그는 떨어져 왔다.
철봉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쳤다.
죠니는 피했다.
하지만 철봉이 땅에 닿는 순간, 충격이 옆으로 퍼졌다.
죠니의 발이 살짝 떴다.
그 짧은 순간, 아스테르다스는 이미 다음 낙점을 정했다.
죠니의 옆.
쿵.
그는 옆으로 떨어졌다.
철봉이 휘둘러졌다.
죠니는 몸을 돌렸다.
《윤회보: 흐름의 보법》.
그는 충격파의 바깥선을 탔다.
바깥으로 밀려나는 힘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그 원심력을 자신의 나선에 섞었다.
한 바퀴.
창끝이 아스테르다스의 손목을 향했다.
아스테르다스는 철봉을 놓지 않고 손목을 비틀었다.
창끝이 철봉에 감겼다.
죠니는 눈을 가늘게 떴다.
“힘 세네.”
“늙으면 힘이 늘어.”
“거짓말이지?”
“조금.”
아스테르다스가 철봉을 당겼다.
죠니가 끌려가는 듯했다.
하지만 그는 끌려가지 않았다.
오히려 당겨지는 힘을 타고 한 걸음 들어갔다.
나선은 밀려날 때만 도는 것이 아니었다.
당겨질 때도 돈다.
죠니의 어깨가 낮아지고, 창대가 철봉 아래를 미끄러졌다.
순간 창끝이 아래에서 위로 솟았다.
아스테르다스의 턱밑.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좋다.”
그는 뒤로 물러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자기 몸 전체를 뒤쪽으로 떨어뜨렸다.
허공에 등이 닿는 듯한 자세.
정상적인 움직임이라면 넘어져야 했다.
그러나 아스테르다스는 넘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뒤쪽 허공에 낙점을 만들고, 그쪽으로 떨어졌다.
그 결과 몸이 죠니의 창끝을 피해 미끄러지듯 빠졌다.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그는 옆으로 굴러 일어났다.
죠니가 말했다.
“그건 좀 이상하네.”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유성은 가끔 대기권에서 튕기기도 하지.”
“비유가 너무 자유로운데.”
“푸리나 군주께 배웠나 보군.”
푸리나는 관전석에서 외쳤다.
“내 탓이야?!”
그레이가 말했다.
“군주님, 방해 금지입니다.”
“지금 대화에 참여한 것뿐이야!”
“그것이 방해입니다.”
---
대련은 점점 빨라졌다.
죠니의 나선은 좁아졌다가 커졌다.
아스테르다스의 낙하는 정면에서 옆으로, 위에서 아래로, 다시 아래에서 위로 바뀌었다.
훈련장 바닥에는 원형의 발자국과 방사형 균열이 동시에 생겼다.
나선과 유성.
하나는 돌아서 중심에 닿고,
하나는 모든 방향을 중심으로 바꾸어 떨어졌다.
죠니가 회전하면, 아스테르다스는 그 회전의 바깥에서 낙하했다.
아스테르다스가 내려꽂히면, 죠니는 그 충돌을 돌려 다시 궤도로 만들었다.
둘은 비슷하면서 달랐다.
죠니는 반복 속에서 완성된 순간을 찾았다.
아스테르다스는 선택한 목표를 향해 모든 길을 떨어뜨렸다.
마침내 죠니가 크게 원을 그렸다.
그 원은 점점 작아졌다.
《윤회진: 나선행군》.
원래는 부대를 이끌 때 쓰는 진형이었다.
하지만 지금 죠니는 그것을 혼자 펼치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 보이지 않는 기병대의 궤도가 겹쳐졌다.
말발굽 없는 행군.
창대와 발걸음만으로 이루어진 회전 진형.
아스테르다스는 그 나선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대신 위를 보았다.
하늘은 맑았다.
그는 웃었다.
“좋아. 그럼 나는 떨어질 하늘을 만들지.”
그의 몸 주위에 청흑빛 기운이 떠올랐다.
《소우주》.
아스테르다스의 주변에 작은 중력권이 생겼다.
훈련장 모래가 천천히 떠올랐다가, 그를 중심으로 돌기 시작했다.
푸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와.”
그레이는 즉시 말했다.
“출력 낮추십시오!”
아스테르다스는 손을 들었다.
“낮췄어!”
그레이는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를 향해 철봉을 들었다.
“죠니.”
“응.”
“이번 건 막아도 다친다.”
“그럼 흘려야지.”
“흘려도 흔들린다.”
“그럼 돌려야지.”
“좋아.”
아스테르다스는 뛰지 않았다.
그냥 한 걸음.
그 한 걸음이 낙하였다.
《예성천극 천극성락》의 아주 약한 형태.
천극의 끝에서 떨어지는 별.
죠니는 창을 세웠다.
그는 정면으로 받지 않았다.
회전시켰다.
창끝, 창대, 어깨, 허리, 발끝.
모든 것이 하나의 원이 되었다.
아스테르다스의 낙하가 죠니의 원에 닿았다.
그리고 기묘한 일이 벌어졌다.
낙하는 원을 부수지 못했다.
원도 낙하를 밀어내지 못했다.
낙하는 원을 따라 돌기 시작했다.
아스테르다스의 힘이 죠니의 나선에 실렸다.
죠니의 나선은 그 힘을 완전히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돌려 더 깊은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죠니가 이를 악물었다.
아스테르다스가 웃었다.
“하하, 이거 위험하군.”
죠니가 말했다.
“웃을 때냐.”
“재밌잖아.”
푸리나가 관전석에서 주먹을 쥐었다.
“내 대사!”
그레이가 외쳤다.
“두 분 모두 중지!”
하지만 이미 둘은 같은 결론에 도달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훈련장 중앙이 날아간다.
죠니는 창대를 틀었다.
아스테르다스는 낙점을 바꿨다.
나선의 중심이 땅이 아니라 하늘로 향했다.
유성의 낙하점이 죠니가 아니라 훈련장 위 빈 공간으로 바뀌었다.
둘의 힘이 위로 솟았다.
쾅!
공중에서 청흑빛 나선이 터졌다.
폭발이라기보다는, 별똥별이 둥근 궤도를 그리며 사라지는 듯한 빛이었다.
훈련장에는 충격파만 내려왔다.
먼지가 흩날렸다.
막대한 힘이었지만, 사람은 다치지 않았다.
건물도 부서지지 않았다.
다만 훈련장 중앙 바닥에는 커다란 소용돌이 모양의 자국과, 그 중심에 유성처럼 파인 낙점이 남았다.
그레이는 그 자국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보수 필요.”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멋있는데.”
“보수 필요입니다.”
레이튼은 감탄했다.
“이건 거의 하나의 문장 같군요. 회전하는 길과 떨어지는 별이 서로를 부수지 않기 위해, 같은 하늘을 선택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좋은 가능성이 현실이 되었소.”
---
죠니와 아스테르다스는 훈련장 중앙에 서 있었다.
둘 다 숨이 조금 거칠었다.
죠니의 손바닥에는 창대가 스친 자국이 남아 있었고, 아스테르다스의 팔에는 나선의 마찰로 생긴 붉은 선이 있었다.
그레이가 다가왔다.
“두 분 모두 치료를 받으십시오.”
죠니가 말했다.
“괜찮아.”
그레이가 조용히 보았다.
죠니는 바로 말을 바꿨다.
“받을게.”
아스테르다스가 웃었다.
“강한 행정이군.”
그레이가 말했다.
“행정이 아니라 의료 조치입니다.”
“그것도 강하군.”
푸리나는 방지선을 넘어오려다가 그레이의 시선을 받고 멈췄다.
“이제 끝났지?”
그레이가 말했다.
“공식적으로 종료 후 접근 가능합니다.”
“그럼 종료!”
그레이가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은 박수를 쳤다.
하융도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푸리나는 마침내 크게 박수쳤다.
“좋아! 훌륭한 대련이었어!”
죠니는 창을 어깨에 걸었다.
“결과는?”
아스테르다스가 말했다.
“무승부로 하지.”
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게 편해.”
푸리나가 아쉬워했다.
“승패가 있어야 극적이지 않아?”
레이튼이 말했다.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어떤 장면은 승패보다 상호 이해로 완성되지요.”
하융이 말했다.
“이번 대련은 이기기 위한 것보다, 서로의 길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소.”
그레이가 기록했다.
대련 결과: 무승부. 목적: 상호 전투 방식 확인. 부수 피해: 훈련장 중앙 바닥 보수 필요.
푸리나는 그 기록을 보고 말했다.
“마지막 항목만 너무 현실적이야.”
“가장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아스테르다스는 죠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죠니는 그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의 악수는 길지 않았다.
아스테르다스가 말했다.
“죠니. 네 나선은 부러지지 않아서 좋았다.”
죠니가 대답했다.
“네 유성은 무겁지만, 방향을 바꿀 줄 알아서 좋았어.”
아스테르다스는 크게 웃었다.
“좋은 칭찬이야.”
죠니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너는 그냥 떨어지는 사람이 아니야.”
아스테르다스는 그를 보았다.
“그럼?”
“떨어지기로 정한 사람이지.”
아스테르다스의 웃음이 조금 조용해졌다.
그는 잠시 죠니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은 마음에 오래 두겠어.”
그는 반대로 말했다.
“그리고 너는 그냥 도는 사람이 아니야.”
죠니가 물었다.
“그럼?”
“돌아가도 놓치지 않는 사람이지.”
죠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주 작게 웃었다.
“나쁘지 않네.”
---
대련이 끝난 뒤, 훈련장에는 소용돌이와 낙점의 흔적이 남았다.
그레이는 그 흔적을 보수해야 한다고 했고, 푸리나는 그 흔적을 기념으로 남기자고 했다.
그레이는 당연히 반대했다.
“훈련장 바닥에 균열을 기념으로 남길 수는 없습니다.”
푸리나는 항의했다.
“하지만 멋있잖아!”
“병사가 발목을 접질릴 수 있습니다.”
“그럼 주변에 울타리를—”
“안 됩니다.”
아스테르다스는 훈련장 자국을 보고 웃었다.
“아깝긴 하군. 좋은 별자국인데.”
죠니도 말했다.
“나선도 잘 나왔어.”
그레이는 둘을 보았다.
“두 분까지 그러시면 안 됩니다.”
레이튼은 중재하듯 말했다.
“그렇다면 탁본을 남기는 것은 어떻습니까? 기록은 남기되, 바닥은 고치는 방식이지요.”
하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타협이오.”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좋아! 이름은?”
그레이가 경계했다.
“이름이 필요합니까?”
푸리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필요하지!”
죠니는 자국을 내려다보았다.
“나선과 유성.”
아스테르다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네.”
레이튼도 미소 지었다.
“간결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두 길이 부딪히지 않고 하늘로 오른 흔적이오.”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비공식 명칭으로만 허가합니다.”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럼 됐어!”
그날 오후, 훈련장 바닥은 수리되었다.
하지만 수리 전에 레이튼의 제안대로 탁본이 만들어졌다.
그 탁본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창흔과, 그 중심에서 살짝 비껴난 유성의 낙점이 함께 남아 있었다.
죠니는 그것을 보고 말했다.
“중심이 조금 빗나갔네.”
아스테르다스는 웃었다.
“그래서 좋지. 완전히 겹쳤으면 둘 중 하나는 부서졌을 거야.”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비껴갔기에 둘 다 남았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만족스럽게 선언했다.
“좋아. 오늘의 결론!”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대련은 사전 보수 예산을 책정한 뒤에 진행해야 한다.”
“그거 말고!”
죠니가 말했다.
“돌아가도 닿을 수 있다.”
아스테르다스가 말했다.
“떨어져도 부술 필요는 없다.”
레이튼이 말했다.
“서로 다른 길도, 같은 하늘을 향할 수 있지요.”
하융이 말했다.
“그리고 조금 비껴가야 함께 남을 수 있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그래. 그거야.”
그녀는 탁본을 바라보았다.
나선과 유성.
완전히 같은 길은 아니었다.
하나는 돌아갔고, 하나는 떨어졌다.
하나는 순간을 완성했고, 하나는 지점을 선택했다.
그러나 둘은 부딪힌 뒤에도 서로를 부수지 않았다.
힘을 하늘로 돌렸다.
그것이 그들의 대련의 결론이었다.
그리고 아마, 앞으로 다가올 전쟁에서도 필요한 결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