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71여관◆zAR16hM8he(514e9af3)2026-05-20 (수) 21:15:31
5막 — 장미가 쉬는 법
—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어? —
작은 별은 여전히 작았다.
너무 작아서 조명탑 세 개가 별의 절반을 차지했고, 커튼 하나를 잘못 접으면 길을 막았다. 의자를 조금만 옮기면 해가 지는 장치도 그대로였고, 바닥 한쪽에는 아직 뽑지 못한 대본 덩굴의 작은 싹이 올라와 있었다.
푸리나는 별 가장자리에 섰다.
손에는 상자 속 양이 그려진 종이.
품에는 두 개의 표지판.
무대에서 내려와도 됨.
같은 시간에 다시 옵니다.
그리고 아직 쓰지 않은 세 번째 문장.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어?
그러나 그 문장은 아직 표지판 위에 있지 않았다.
푸리나는 장미를 보았다.
장미는 무대 중앙에 있었다.
예전처럼 조명 아래에 있었지만, 어쩐지 조금 피곤해 보였다. 꽃잎은 완전히 닫히지는 않았으나, 활짝 펴져 있지도 않았다. 줄기는 꼿꼿했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얇은 가시가 작게 흔들렸다.
푸리나는 본능적으로 조명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명을 조금 더 부드럽게.
아니, 장미가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지만 손이 멈췄다.
아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 무엇이 필요한지 묻기 전에 방부터 세우면, 또 다른 조명이 될 수 있단다.
푸리나는 손을 내렸다.
그 대신 장미 앞에 한 걸음 다가갔다.
장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깨달았다.
> “내가 멋진 극을 준비해왔어.”
아니.
> “네가 쉴 수 있는 방을 만들었어.”
아니.
> “이제 알았어.”
그것도 아니었다.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한참 뒤, 아주 작게 말했다.
“늦었지.”
장미의 꽃잎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늦었네요.”
예상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가슴이 아팠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늦었어.”
장미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금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아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나요?”
푸리나는 변명하고 싶었다.
죠니의 길을 봤고.
레이튼의 질문을 들었고.
하융의 등불을 따라 걸었고.
그레이에게 길들임을 배웠고.
아레의 식탁보 앞에 앉았고.
슈샤니크의 지도 위 장미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러나 슈샤니크가 말했었다.
> 변명은 뒤에 두십시오.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응.”
장미는 예상하지 못한 듯 꽃잎을 살짝 떨었다.
“그냥 인정하나요?”
“응.”
“이상하네요.”
“나도 그래.”
장미는 더 말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류트도 내려놓았다.
작은 왕관도 벗어서 조심스럽게 바닥에 두었다.
장미가 물었다.
“왕관은 왜 내려놓나요?”
“오늘은 먼저 왕으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럼 뭘로 말하나요?”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늦은 사람.”
장미는 아주 작게 웃은 것 같았다.
꽃잎 한 장이 미세하게 열렸다.
“정확하네요.”
“응.”
푸리나는 장미 앞에 앉았다.
무대 중앙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중앙을 채우려 하지 않았다.
장미보다 높게 서지도 않았다.
그냥 앉았다.
장미는 그 모습을 한동안 보았다.
“박수는요?”
“없어.”
“조명은요?”
“네가 원하면 낮출게.”
“노래는요?”
푸리나는 류트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장미를 보았다.
“나중에. 네가 듣고 싶으면.”
장미는 침묵했다.
그 침묵은 불편했다.
푸리나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식탁보 앞에서 배운 것처럼.
상대가 숨을 고를 때까지.
조금 더.
조금 더.
마침내 장미가 말했다.
“나는 당신의 무대가 싫은 게 아니었어요.”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장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처음엔 좋았어요. 조명이 닿으면 내가 정말 피어난 것 같았고, 박수를 들으면 내가 혼자가 아닌 것 같았어요.”
“응.”
“당신이 나를 주인공이라고 불렀을 때, 조금 기뻤어요.”
푸리나는 가만히 들었다.
“하지만 매일 주인공이면…….”
장미는 꽃잎을 조금 접었다.
“매일 예뻐야 하잖아요.”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장미는 계속 말했다.
“매일 피어 있어야 하고, 매일 웃는 것처럼 보여야 하고, 매일 관객이 보기에 괜찮은 꽃이어야 해요.”
바람이 지나갔다.
장미의 가시가 작게 떨렸다.
“나는 가끔 그냥 꽃이고 싶었어요.”
푸리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 말은 조용했지만,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냥 꽃.
주인공도, 상징도, 공연의 중심도, 박수의 이유도 아닌.
그저 바람을 느끼고, 물을 마시고, 조금 시들었다가 다시 피어날 수 있는 꽃.
푸리나는 낮게 말했다.
“미안해.”
장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미워하나요?”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실망했나요?”
“아니.”
“그럼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나요?”
푸리나는 장미를 보았다.
“내가 네가 좋아하는 것만 보려고 했던 것 같아서.”
장미는 잠시 침묵했다.
푸리나는 이어 말했다.
“네가 박수받을 때 피어나는 건 봤어. 조명 아래서 아름다운 것도 봤어. 그런데 네가 박수 뒤에 지치는 건…… 늦게 봤어.”
장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손에 든 첫 번째 표지판을 꺼냈다.
무대에서 내려와도 됨.
장미가 그것을 보았다.
“그건 뭔가요?”
“길에서 배운 말.”
“누구에게요?”
“죠니, 레이튼, 하융. 그리고…… 모두에게 조금씩.”
푸리나는 표지판을 장미 곁에 세웠다.
“네가 주인공이 되기 싫은 날에는 내려와도 돼.”
장미는 표지판을 오래 보았다.
“내가 내려오면 무대는요?”
“기다릴게.”
“관객은요?”
“돌려보낼게.”
“당신은요?”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대답했다.
“같이 내려갈게.”
장미의 꽃잎이 조금 떨렸다.
푸리나는 두 번째 표지판을 꺼냈다.
같은 시간에 다시 옵니다.
“이건?”
“그레이가 준 말.”
“그레이는 누구죠?”
“막이 내린 뒤에도 남은 걸 보는 사람.”
“그럼 좋은 사람이네요.”
“응. 좋은 사람이야.”
푸리나는 표지판을 첫 번째 표지판 옆에 세웠다.
“내가 매일 완벽하게 올 수는 없을지도 몰라.”
장미가 바로 말했다.
“그럼 약속이 아니잖아요.”
“맞아.”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늦으면 늦었다고 말할게. 못 오면 못 온다고 말할게. 그리고 돌아오면, 변명보다 먼저 네 말을 들을게.”
장미는 푸리나를 보았다.
“정말요?”
“응.”
“정말 먼저 들을 건가요?”
“응.”
“내가 오래 투덜거려도요?”
푸리나는 잠깐 웃을 뻔했다.
그러나 웃음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장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오늘은…….”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드디어 그 질문을 해야 할 때였다.
아직 표지판에 쓰지 않은 말.
지도보다 먼저 도착해야 하는 질문.
푸리나는 장미를 보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어?”
장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대 전체가 조용해졌다.
객석도, 무대 뒤도, 별의 바람도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장미는 아주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기다렸다.
이번에는 기다렸다.
류트를 만지지 않았다.
조명을 조정하지 않았다.
박수를 부르지 않았다.
그냥 장미 앞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장미가 말했다.
“오늘은…….”
꽃잎이 조금 열렸다가 다시 접혔다.
“조명을 낮춰주세요.”
푸리나는 곧바로 손을 움직이려다가 멈췄다.
“얼마나?”
장미는 잠시 생각했다.
“내가 보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나를 보지는 않을 정도로요.”
푸리나는 천천히 조명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명은 조금씩 낮아졌다.
장미는 더 이상 무대 전체의 중심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저 그곳에 있었다.
“이 정도?”
“조금 더요.”
푸리나는 조금 더 낮췄다.
“이 정도?”
장미는 꽃잎을 아주 조금 열었다.
“네.”
푸리나는 손을 내렸다.
“또?”
“박수는 필요 없어요.”
“응.”
“노래도요.”
푸리나는 류트를 보았다.
“응.”
“하지만…….”
장미는 아주 작게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조금 무서울 것 같아요.”
푸리나는 장미를 보았다.
장미는 부끄러운 듯 꽃잎을 접었다.
“내가 조용히 있고 싶다고 했다고 해서, 완전히 혼자 있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푸리나는 가슴이 아렸다.
“그럼?”
“조용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어떤 이야기?”
“관객이 웃어야 하는 이야기는 말고요.”
푸리나는 생각했다.
그녀에게 이야기는 대개 관객을 향했다.
웃음을 유도하고, 박수를 만들고, 장면을 넘기기 위해 설계된 이야기.
하지만 장미가 원하는 것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푸리나는 낮게 말했다.
“그럼 오늘 길에서 본 걸 말해줄게.”
“길?”
“응. 박수가 끝난 뒤의 길.”
장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푸리나는 조용히 이야기했다.
죠니의 별에서 본 쉼터.
물 있음.
잠시 앉아도 됨.
주인공에서 내려와도 됨.
레이튼의 질문.
객석이 비어도 무대인가.
하융의 등불.
말하지 않아도 됨.
장미 정원의 수많은 장미.
각자의 별과, 각자의 밤과, 각자의 무대.
그레이 여우의 말.
같은 시간에 찾아가고, 필요한 것이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것.
아레의 식탁보.
웃음이 먼저 오면 슬픔이 앉을 자리를 잃는 밤.
그리고 슈샤니크의 지도 위 장미.
침묵한 꽃은 너무 예의 바르고, 그래서 더 아프다는 말.
장미는 오래 들었다.
가끔 꽃잎이 흔들렸다.
가끔 가시가 미세하게 떨렸다.
푸리나는 이야기하면서도, 장미의 반응을 보았다.
피곤해 보이면 멈추고.
듣고 있는 것 같으면 조금 더 이어갔다.
그것은 공연과 달랐다.
이야기의 길이를 관객의 박수가 아니라, 장미의 숨으로 재는 일이었다.
마지막에 푸리나는 말했다.
“그래서 돌아왔어.”
장미는 조용히 물었다.
“나를 다시 무대에 세우려고요?”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요?”
푸리나는 아주 작게 웃었다.
“오늘은 그냥, 네가 쉬는 법을 물어보려고.”
장미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작게 말했다.
“늦었네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많이 늦었어요.”
“응.”
“그래도…….”
장미는 더 작게 말했다.
“오늘은 괜찮아요.”
푸리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고마워.”
“아직 용서한 건 아니에요.”
“응.”
“내일 아침 인사는 제때 해주세요.”
푸리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웃지는 않았다.
조용히, 정말 조용히 웃었다.
“응. 내일 같은 시간에 올게.”
장미는 말했다.
“조명은 아침에는 조금 더 밝아도 돼요.”
“응.”
“하지만 박수는 묻고 나서요.”
“응.”
“그리고 물은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응.”
“그리고…….”
푸리나는 기다렸다.
장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곁에 있어주세요.”
푸리나는 대답했다.
“응. 여기 있을게.”
그 말은 극적인 선언이 아니었다.
무대 전체를 울리는 대사도 아니었다.
하지만 작은 별 위에서는 충분했다.
푸리나는 장미 곁에 앉았다.
류트는 바닥에 놓여 있었다.
왕관도 내려놓은 채였다.
조명은 낮았고, 박수는 없었다.
그날 밤, 작은 별의 무대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이 되었다.
장미는 쉬었다.
푸리나는 떠나지 않았다.
---
시간이 흘렀다.
해가 지는 의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작은 별 위에 밤이 내려왔다.
푸리나는 장미 곁에 유리 덮개를 가져왔다.
장미가 말했다.
“그건 너무 답답해요.”
푸리나는 멈췄다.
“그럼 안 씌울까?”
“바람은 차요.”
“그럼 어떻게 할까?”
장미는 잠시 생각했다.
“조금 열어둬요.”
푸리나는 유리 덮개를 기울여 세웠다.
바람이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지만, 직접 닿지도 않았다.
“이렇게?”
“조금만 더.”
푸리나는 각도를 조정했다.
“이렇게?”
“네. 그 정도요.”
푸리나는 손을 떼었다.
유리 덮개는 비스듬히 놓였다.
완벽하게 보호하지도 않았고, 완전히 열어두지도 않았다.
어중간했다.
하지만 장미는 조금 편안해 보였다.
푸리나는 그걸 보고 깨달았다.
휴식은 종종 어중간한 각도를 찾는 일이었다.
완전히 보이지 않게 숨기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덮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방치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조금씩 묻고, 조금씩 조정하는 일.
그레이가 말한 것처럼.
같은 시간에 찾아갔을 때, 필요한 것이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일.
푸리나는 낮게 말했다.
“이거 어렵네.”
장미는 조금 새침하게 대답했다.
“제가 쉬는 일이 그렇게 쉬울 줄 알았나요?”
푸리나는 웃었다.
“아니. 이제는 안 그래.”
“다행이네요.”
“응. 다행이야.”
밤이 조금 더 깊어졌다.
작은 별의 조명탑은 꺼지지 않았다.
다만 아주 낮게 빛났다.
무대가 아니라 방처럼.
관객을 부르는 빛이 아니라, 누군가 길을 잃지 않도록 남겨둔 불빛처럼.
푸리나는 그 빛을 보며, 빈 세 번째 표지판을 꺼냈다.
장미가 물었다.
“또 표지판인가요?”
“응.”
“이번엔 뭐라고 쓸 건가요?”
푸리나는 목탄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적었다.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나요.
장미는 그것을 보았다.
“존댓말이네요.”
“응. 이건 누구에게나 걸어둘 표지판이니까.”
“나한테는요?”
푸리나는 장미를 보았다.
“너한테는 직접 물어볼게.”
장미는 만족한 듯 꽃잎을 조금 열었다.
“그게 좋겠어요.”
푸리나는 세 번째 표지판을 첫 번째, 두 번째 표지판 곁에 세웠다.
무대에서 내려와도 됨.
같은 시간에 다시 옵니다.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나요.
세 개의 표지판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별의 무대는 그 표지판들 때문에 전보다 조금 넓어진 것 같았다.
아니.
무대가 넓어진 것이 아니라, 무대 밖의 방이 생긴 것 같았다.
푸리나는 장미 곁에 앉아 밤을 지켰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
그래서 장미는 조금 더 오래 쉬었다.
---
무대가 천천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작은 별의 낮은 조명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빛 아래에서 푸리나는 잠들지 않았다.
장미도 완전히 잠들지는 않은 것 같았다.
둘은 가끔 아주 작은 말을 주고받았다.
“바람 괜찮아?”
“조금 차요.”
“덮개 더 기울일까?”
“조금만요.”
“이렇게?”
“네.”
또 한참 침묵.
“푸리나.”
“응?”
“내일도 올 건가요?”
“응.”
“같은 시간에요?”
“응.”
“늦으면요?”
“늦었다고 말할게.”
장미는 잠시 침묵했다.
“그럼 기다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푸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은 박수보다 조용했다.
하지만 박수보다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무대 뒤에서 푸리나의 목소리가, 혹은 극 자체의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작은 왕은 장미에게 돌아왔습니다.”
잠시 침묵.
“그리고 이번에는, 장미를 다시 무대 위에 세우기 전에 물었습니다.”
별빛이 낮게 흔들렸다.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으냐고.”
막이 천천히 내려왔다.
무대 뒤 간판이 떠올랐다.
후일담 — 막이 내린 뒤 쉬어가는 방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이어졌다.
—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방 —
—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어? —
작은 별은 여전히 작았다.
너무 작아서 조명탑 세 개가 별의 절반을 차지했고, 커튼 하나를 잘못 접으면 길을 막았다. 의자를 조금만 옮기면 해가 지는 장치도 그대로였고, 바닥 한쪽에는 아직 뽑지 못한 대본 덩굴의 작은 싹이 올라와 있었다.
푸리나는 별 가장자리에 섰다.
손에는 상자 속 양이 그려진 종이.
품에는 두 개의 표지판.
무대에서 내려와도 됨.
같은 시간에 다시 옵니다.
그리고 아직 쓰지 않은 세 번째 문장.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어?
그러나 그 문장은 아직 표지판 위에 있지 않았다.
푸리나는 장미를 보았다.
장미는 무대 중앙에 있었다.
예전처럼 조명 아래에 있었지만, 어쩐지 조금 피곤해 보였다. 꽃잎은 완전히 닫히지는 않았으나, 활짝 펴져 있지도 않았다. 줄기는 꼿꼿했지만, 바람이 불 때마다 얇은 가시가 작게 흔들렸다.
푸리나는 본능적으로 조명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명을 조금 더 부드럽게.
아니, 장미가 아름답게 보이도록.
하지만 손이 멈췄다.
아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 무엇이 필요한지 묻기 전에 방부터 세우면, 또 다른 조명이 될 수 있단다.
푸리나는 손을 내렸다.
그 대신 장미 앞에 한 걸음 다가갔다.
장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그 순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깨달았다.
> “내가 멋진 극을 준비해왔어.”
아니.
> “네가 쉴 수 있는 방을 만들었어.”
아니.
> “이제 알았어.”
그것도 아니었다.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한참 뒤, 아주 작게 말했다.
“늦었지.”
장미의 꽃잎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늦었네요.”
예상한 말이었다.
그런데도 가슴이 아팠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늦었어.”
장미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금 새침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걸 아는 데 이렇게 오래 걸렸나요?”
푸리나는 변명하고 싶었다.
죠니의 길을 봤고.
레이튼의 질문을 들었고.
하융의 등불을 따라 걸었고.
그레이에게 길들임을 배웠고.
아레의 식탁보 앞에 앉았고.
슈샤니크의 지도 위 장미 이야기를 들었다고.
그러나 슈샤니크가 말했었다.
> 변명은 뒤에 두십시오.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응.”
장미는 예상하지 못한 듯 꽃잎을 살짝 떨었다.
“그냥 인정하나요?”
“응.”
“이상하네요.”
“나도 그래.”
장미는 더 말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물뿌리개를 내려놓았다.
류트도 내려놓았다.
작은 왕관도 벗어서 조심스럽게 바닥에 두었다.
장미가 물었다.
“왕관은 왜 내려놓나요?”
“오늘은 먼저 왕으로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럼 뭘로 말하나요?”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늦은 사람.”
장미는 아주 작게 웃은 것 같았다.
꽃잎 한 장이 미세하게 열렸다.
“정확하네요.”
“응.”
푸리나는 장미 앞에 앉았다.
무대 중앙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중앙을 채우려 하지 않았다.
장미보다 높게 서지도 않았다.
그냥 앉았다.
장미는 그 모습을 한동안 보았다.
“박수는요?”
“없어.”
“조명은요?”
“네가 원하면 낮출게.”
“노래는요?”
푸리나는 류트를 보았다.
그리고 다시 장미를 보았다.
“나중에. 네가 듣고 싶으면.”
장미는 침묵했다.
그 침묵은 불편했다.
푸리나는 무언가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참았다.
식탁보 앞에서 배운 것처럼.
상대가 숨을 고를 때까지.
조금 더.
조금 더.
마침내 장미가 말했다.
“나는 당신의 무대가 싫은 게 아니었어요.”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장미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처음엔 좋았어요. 조명이 닿으면 내가 정말 피어난 것 같았고, 박수를 들으면 내가 혼자가 아닌 것 같았어요.”
“응.”
“당신이 나를 주인공이라고 불렀을 때, 조금 기뻤어요.”
푸리나는 가만히 들었다.
“하지만 매일 주인공이면…….”
장미는 꽃잎을 조금 접었다.
“매일 예뻐야 하잖아요.”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장미는 계속 말했다.
“매일 피어 있어야 하고, 매일 웃는 것처럼 보여야 하고, 매일 관객이 보기에 괜찮은 꽃이어야 해요.”
바람이 지나갔다.
장미의 가시가 작게 떨렸다.
“나는 가끔 그냥 꽃이고 싶었어요.”
푸리나는 입술을 다물었다.
그 말은 조용했지만,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냥 꽃.
주인공도, 상징도, 공연의 중심도, 박수의 이유도 아닌.
그저 바람을 느끼고, 물을 마시고, 조금 시들었다가 다시 피어날 수 있는 꽃.
푸리나는 낮게 말했다.
“미안해.”
장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나를 미워하나요?”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실망했나요?”
“아니.”
“그럼 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나요?”
푸리나는 장미를 보았다.
“내가 네가 좋아하는 것만 보려고 했던 것 같아서.”
장미는 잠시 침묵했다.
푸리나는 이어 말했다.
“네가 박수받을 때 피어나는 건 봤어. 조명 아래서 아름다운 것도 봤어. 그런데 네가 박수 뒤에 지치는 건…… 늦게 봤어.”
장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손에 든 첫 번째 표지판을 꺼냈다.
무대에서 내려와도 됨.
장미가 그것을 보았다.
“그건 뭔가요?”
“길에서 배운 말.”
“누구에게요?”
“죠니, 레이튼, 하융. 그리고…… 모두에게 조금씩.”
푸리나는 표지판을 장미 곁에 세웠다.
“네가 주인공이 되기 싫은 날에는 내려와도 돼.”
장미는 표지판을 오래 보았다.
“내가 내려오면 무대는요?”
“기다릴게.”
“관객은요?”
“돌려보낼게.”
“당신은요?”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대답했다.
“같이 내려갈게.”
장미의 꽃잎이 조금 떨렸다.
푸리나는 두 번째 표지판을 꺼냈다.
같은 시간에 다시 옵니다.
“이건?”
“그레이가 준 말.”
“그레이는 누구죠?”
“막이 내린 뒤에도 남은 걸 보는 사람.”
“그럼 좋은 사람이네요.”
“응. 좋은 사람이야.”
푸리나는 표지판을 첫 번째 표지판 옆에 세웠다.
“내가 매일 완벽하게 올 수는 없을지도 몰라.”
장미가 바로 말했다.
“그럼 약속이 아니잖아요.”
“맞아.”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늦으면 늦었다고 말할게. 못 오면 못 온다고 말할게. 그리고 돌아오면, 변명보다 먼저 네 말을 들을게.”
장미는 푸리나를 보았다.
“정말요?”
“응.”
“정말 먼저 들을 건가요?”
“응.”
“내가 오래 투덜거려도요?”
푸리나는 잠깐 웃을 뻔했다.
그러나 웃음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응.”
장미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럼 오늘은…….”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드디어 그 질문을 해야 할 때였다.
아직 표지판에 쓰지 않은 말.
지도보다 먼저 도착해야 하는 질문.
푸리나는 장미를 보고, 아주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어?”
장미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대 전체가 조용해졌다.
객석도, 무대 뒤도, 별의 바람도 잠시 멈춘 것 같았다.
장미는 아주 오랫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기다렸다.
이번에는 기다렸다.
류트를 만지지 않았다.
조명을 조정하지 않았다.
박수를 부르지 않았다.
그냥 장미 앞에 앉아 있었다.
마침내 장미가 말했다.
“오늘은…….”
꽃잎이 조금 열렸다가 다시 접혔다.
“조명을 낮춰주세요.”
푸리나는 곧바로 손을 움직이려다가 멈췄다.
“얼마나?”
장미는 잠시 생각했다.
“내가 보이기는 하지만, 모두가 나를 보지는 않을 정도로요.”
푸리나는 천천히 조명탑을 향해 손을 뻗었다.
조명은 조금씩 낮아졌다.
장미는 더 이상 무대 전체의 중심처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그저 그곳에 있었다.
“이 정도?”
“조금 더요.”
푸리나는 조금 더 낮췄다.
“이 정도?”
장미는 꽃잎을 아주 조금 열었다.
“네.”
푸리나는 손을 내렸다.
“또?”
“박수는 필요 없어요.”
“응.”
“노래도요.”
푸리나는 류트를 보았다.
“응.”
“하지만…….”
장미는 아주 작게 말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건 조금 무서울 것 같아요.”
푸리나는 장미를 보았다.
장미는 부끄러운 듯 꽃잎을 접었다.
“내가 조용히 있고 싶다고 했다고 해서, 완전히 혼자 있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푸리나는 가슴이 아렸다.
“그럼?”
“조용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어떤 이야기?”
“관객이 웃어야 하는 이야기는 말고요.”
푸리나는 생각했다.
그녀에게 이야기는 대개 관객을 향했다.
웃음을 유도하고, 박수를 만들고, 장면을 넘기기 위해 설계된 이야기.
하지만 장미가 원하는 것은 그런 이야기가 아니었다.
푸리나는 낮게 말했다.
“그럼 오늘 길에서 본 걸 말해줄게.”
“길?”
“응. 박수가 끝난 뒤의 길.”
장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듣고 있는 것 같았다.
푸리나는 조용히 이야기했다.
죠니의 별에서 본 쉼터.
물 있음.
잠시 앉아도 됨.
주인공에서 내려와도 됨.
레이튼의 질문.
객석이 비어도 무대인가.
하융의 등불.
말하지 않아도 됨.
장미 정원의 수많은 장미.
각자의 별과, 각자의 밤과, 각자의 무대.
그레이 여우의 말.
같은 시간에 찾아가고, 필요한 것이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것.
아레의 식탁보.
웃음이 먼저 오면 슬픔이 앉을 자리를 잃는 밤.
그리고 슈샤니크의 지도 위 장미.
침묵한 꽃은 너무 예의 바르고, 그래서 더 아프다는 말.
장미는 오래 들었다.
가끔 꽃잎이 흔들렸다.
가끔 가시가 미세하게 떨렸다.
푸리나는 이야기하면서도, 장미의 반응을 보았다.
피곤해 보이면 멈추고.
듣고 있는 것 같으면 조금 더 이어갔다.
그것은 공연과 달랐다.
이야기의 길이를 관객의 박수가 아니라, 장미의 숨으로 재는 일이었다.
마지막에 푸리나는 말했다.
“그래서 돌아왔어.”
장미는 조용히 물었다.
“나를 다시 무대에 세우려고요?”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럼요?”
푸리나는 아주 작게 웃었다.
“오늘은 그냥, 네가 쉬는 법을 물어보려고.”
장미는 말이 없었다.
그러다 아주 작게 말했다.
“늦었네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많이 늦었어요.”
“응.”
“그래도…….”
장미는 더 작게 말했다.
“오늘은 괜찮아요.”
푸리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고마워.”
“아직 용서한 건 아니에요.”
“응.”
“내일 아침 인사는 제때 해주세요.”
푸리나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하지만 크게 웃지는 않았다.
조용히, 정말 조용히 웃었다.
“응. 내일 같은 시간에 올게.”
장미는 말했다.
“조명은 아침에는 조금 더 밝아도 돼요.”
“응.”
“하지만 박수는 묻고 나서요.”
“응.”
“그리고 물은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응.”
“그리고…….”
푸리나는 기다렸다.
장미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은 곁에 있어주세요.”
푸리나는 대답했다.
“응. 여기 있을게.”
그 말은 극적인 선언이 아니었다.
무대 전체를 울리는 대사도 아니었다.
하지만 작은 별 위에서는 충분했다.
푸리나는 장미 곁에 앉았다.
류트는 바닥에 놓여 있었다.
왕관도 내려놓은 채였다.
조명은 낮았고, 박수는 없었다.
그날 밤, 작은 별의 무대는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장면이 되었다.
장미는 쉬었다.
푸리나는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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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렀다.
해가 지는 의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작은 별 위에 밤이 내려왔다.
푸리나는 장미 곁에 유리 덮개를 가져왔다.
장미가 말했다.
“그건 너무 답답해요.”
푸리나는 멈췄다.
“그럼 안 씌울까?”
“바람은 차요.”
“그럼 어떻게 할까?”
장미는 잠시 생각했다.
“조금 열어둬요.”
푸리나는 유리 덮개를 기울여 세웠다.
바람이 완전히 막히지는 않았지만, 직접 닿지도 않았다.
“이렇게?”
“조금만 더.”
푸리나는 각도를 조정했다.
“이렇게?”
“네. 그 정도요.”
푸리나는 손을 떼었다.
유리 덮개는 비스듬히 놓였다.
완벽하게 보호하지도 않았고, 완전히 열어두지도 않았다.
어중간했다.
하지만 장미는 조금 편안해 보였다.
푸리나는 그걸 보고 깨달았다.
휴식은 종종 어중간한 각도를 찾는 일이었다.
완전히 보이지 않게 숨기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드러내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덮는 것도 아니고, 완전히 방치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조금씩 묻고, 조금씩 조정하는 일.
그레이가 말한 것처럼.
같은 시간에 찾아갔을 때, 필요한 것이 달라졌는지 확인하는 일.
푸리나는 낮게 말했다.
“이거 어렵네.”
장미는 조금 새침하게 대답했다.
“제가 쉬는 일이 그렇게 쉬울 줄 알았나요?”
푸리나는 웃었다.
“아니. 이제는 안 그래.”
“다행이네요.”
“응. 다행이야.”
밤이 조금 더 깊어졌다.
작은 별의 조명탑은 꺼지지 않았다.
다만 아주 낮게 빛났다.
무대가 아니라 방처럼.
관객을 부르는 빛이 아니라, 누군가 길을 잃지 않도록 남겨둔 불빛처럼.
푸리나는 그 빛을 보며, 빈 세 번째 표지판을 꺼냈다.
장미가 물었다.
“또 표지판인가요?”
“응.”
“이번엔 뭐라고 쓸 건가요?”
푸리나는 목탄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적었다.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나요.
장미는 그것을 보았다.
“존댓말이네요.”
“응. 이건 누구에게나 걸어둘 표지판이니까.”
“나한테는요?”
푸리나는 장미를 보았다.
“너한테는 직접 물어볼게.”
장미는 만족한 듯 꽃잎을 조금 열었다.
“그게 좋겠어요.”
푸리나는 세 번째 표지판을 첫 번째, 두 번째 표지판 곁에 세웠다.
무대에서 내려와도 됨.
같은 시간에 다시 옵니다.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나요.
세 개의 표지판은 화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작은 별의 무대는 그 표지판들 때문에 전보다 조금 넓어진 것 같았다.
아니.
무대가 넓어진 것이 아니라, 무대 밖의 방이 생긴 것 같았다.
푸리나는 장미 곁에 앉아 밤을 지켰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
그래서 장미는 조금 더 오래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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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천천히 어두워졌다.
하지만 완전히 꺼지지는 않았다.
작은 별의 낮은 조명 하나가 남아 있었다.
그 빛 아래에서 푸리나는 잠들지 않았다.
장미도 완전히 잠들지는 않은 것 같았다.
둘은 가끔 아주 작은 말을 주고받았다.
“바람 괜찮아?”
“조금 차요.”
“덮개 더 기울일까?”
“조금만요.”
“이렇게?”
“네.”
또 한참 침묵.
“푸리나.”
“응?”
“내일도 올 건가요?”
“응.”
“같은 시간에요?”
“응.”
“늦으면요?”
“늦었다고 말할게.”
장미는 잠시 침묵했다.
“그럼 기다릴 수 있을지도 몰라요.”
푸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그 말은 박수보다 조용했다.
하지만 박수보다 오래 남을 것 같았다.
무대 뒤에서 푸리나의 목소리가, 혹은 극 자체의 목소리가 낮게 들렸다.
“작은 왕은 장미에게 돌아왔습니다.”
잠시 침묵.
“그리고 이번에는, 장미를 다시 무대 위에 세우기 전에 물었습니다.”
별빛이 낮게 흔들렸다.
“오늘은 어떻게 쉬고 싶으냐고.”
막이 천천히 내려왔다.
무대 뒤 간판이 떠올랐다.
후일담 — 막이 내린 뒤 쉬어가는 방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이어졌다.
—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