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77여관◆zAR16hM8he(d3c1cbff)2026-05-21 (목) 13:53:37
《은빛 피노키오》
1막 — 거짓말은 은을 휘게 한다
— 무서워서 한 거짓말도, 돌아올 길을 멀게 만든다 —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은 은인이 아니라, 의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라이자의 작업실 의자였다.
낡은 나무 의자 하나.
그 위에는 작은 쿠션이 놓여 있었고, 옆에는 은인을 위해 준비된 낮은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따뜻한 차 한 잔, 빈 대본 한 장, 그리고 라이자가 손대지 말라고 세 번 말한 은실 뭉치가 있었다.
푸리나는 그 은실 뭉치를 보고 잠시 고민했다.
“이건 치워둘까?”
라이자가 즉시 말했다.
“치워.”
“하지만 1막 제목이 거짓말은 은을 휘게 한다잖아. 은실이 있어야 상징성이—”
“치워.”
“네.”
푸리나는 얌전히 은실을 들어 올리려 했다.
라이자가 덧붙였다.
“직접 만지지 말고.”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레이가 대답했다.
“위험물 근처에서 즉흥성을 발휘하는 군주로 생각합니다.”
푸리나는 그레이를 돌아보았다.
“오늘따라 그레이가 자꾸 정확한 말을 해.”
“기록상 평소에도 그렇습니다.”
“기록도 잔인해.”
결국 은실 뭉치는 라이자의 손으로 작업대 뒤쪽에 치워졌다.
은인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조금 전까지 자기 손가락에 감겨 있던 은실.
그것을 만졌다고 말하지 못했던 은실.
거짓말과 함께 코를 삐걱거리게 만든 은실.
그 은실이 사라지자, 은인은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푸리나는 그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일부러 밝게 손뼉을 쳤다.
“좋아! 1막을 시작하기 전에, 아주 중요한 규칙을 정하겠습니다.”
은인이 고개를 들었다.
라이자도 푸리나를 보았다.
그레이는 이미 기록판을 들고 있었다.
푸리나는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첫째, 대사를 틀려도 된다.”
은인은 조심스럽게 따라 했다.
“대사를 틀려도 된다.”
“둘째,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해도 된다.”
은인은 조금 작게 말했다.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해도 된다.”
“셋째.”
푸리나는 아주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푸리나가 멋진 연출을 떠올렸다고 해서 반드시 따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합니다.”
라이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중요해.”
푸리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지금 둘 다 너무 진심이야.”
라이자는 팔짱을 꼈다.
“네 즉흥성은 은인의 코보다 위험할 때가 있어.”
“너무해. 그래도 오늘은 조심할 거야.”
푸리나는 은인을 보았다.
“은인. 오늘은 네가 피노키오야.”
은인은 천천히 물었다.
“피노키오는 나무 인형인가요?”
“원래는 그렇지.”
“저는 은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은빛 피노키오야.”
은인은 자기 손등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는 피노키오가 아닌데 피노키오인가요?”
푸리나는 살짝 웃었다.
“맞아. 아주 좋은 질문이야.”
라이자가 낮게 말했다.
“이상한 질문 같은데.”
“아니, 진짜 좋은 질문이야.”
푸리나는 빈 대본을 들어 올렸다.
“배역이란 원래 그래. 완전히 네가 아니지만, 완전히 네가 아니지도 않아. 너무 딱 맞으면 숨이 막히고, 너무 안 맞으면 벗겨지지. 그러니까 오늘은 입어보고, 불편하면 말하면 돼.”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하면 말한다.”
“좋아.”
푸리나는 대본 첫 줄에 큼직하게 적었다.
나는 오늘, 거짓말을 배우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다.
그레이가 대본을 보고 잠시 멈췄다.
“전하.”
“응?”
“첫 줄부터 난도가 높습니다.”
“그래?”
“은인 님께는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은인은 대본을 보았다.
“거짓말을 배우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한 음절씩 천천히 읽었다.
“이상한 문장입니다.”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그렇지? 그래서 좋아.”
라이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써.”
푸리나는 바로 대본을 뒤집었다.
“좋아. 다시 쓰겠습니다.”
그레이가 작게 말했다.
“빠른 수정은 좋은 판단입니다.”
푸리나는 새 줄을 적었다.
나는 무서워서 아니라고 말했다.
은인은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이번에는 읽지 않았다.
그저 보았다.
라이자는 은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손을 잡고 싶어 보였지만, 잡지 않았다. 대신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자기 손을 내려두었다.
푸리나는 그걸 보고, 아무 말 없이 조명을 조금 더 낮췄다.
---
첫 장면은 아주 간단했다.
은인이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은빛 단추를 만진다.
라이자 역할의 푸리나가 묻는다.
“단추 만졌어?”
은인은 대답한다.
“아니요.”
그러면 코가 삐걱인다.
끝.
아주 간단했다.
그런데 은인에게는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은인은 단추 앞에 서 있었다.
작은 은빛 단추.
위험하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고, 실제로는 라이자가 일부러 만져도 되는 물건으로 골라둔 것이었다.
하지만 은인의 손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푸리나가 물었다.
“무서워?”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 그럼 첫 대사는 성공이야.”
은인이 눈을 깜박였다.
“제가 대사를 했나요?”
“응. 방금 아주 중요한 대사를 했어.”
푸리나는 손가락으로 대본을 톡 쳤다.
“대본에는 없지만, 무대에 필요한 대사였어.”
은인은 조금 생각했다.
“무서워요, 라고 말해도 극이 이어지나요?”
라이자가 낮게 말했다.
“이어져.”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는 조금 어색하게 덧붙였다.
“이어져야 해.”
그 말은 라이자에게도 하는 말 같았다.
푸리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다시. 은인, 단추를 만져도 돼. 이건 만져도 되는 단추야.”
은인은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단추를 만졌다.
은빛 단추는 차가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은인은 조금 안심했다.
푸리나가 라이자 역할로 물었다.
“단추 만졌어?”
은인은 숨을 들이쉬었다.
“네.”
그리고 멈췄다.
푸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레이가 기록판을 보았다.
라이자는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은인은 당황했다.
“제가 틀렸나요?”
푸리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손뼉을 쳤다.
“좋아!”
은인은 놀랐다.
“좋아요?”
“응. 아주 좋아.”
푸리나는 웃었다.
“거짓말하는 장면에서 진실을 말했어. 이건 꽤 멋진 반항이야.”
라이자는 작게 말했다.
“반항이라고 부르지 마.”
“그럼 수정. 아주 멋진 선택이야.”
은인은 단추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피노키오는 거짓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원전은 그렇지. 하지만 네가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은인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면 저는 피노키오가 아닌가요?”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고, 빈 대본 옆에 두 번째 줄을 적었다.
피노키오가 거짓말하는 장면에서, 은인은 진실을 말했다.
은인은 그 문장을 읽었다.
“그래도 되나요?”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기록상으로는 더 정확합니다.”
푸리나가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가 극적 표현을 인정했어.”
“정확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좋아.”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괜찮아. 네가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
은인은 작게 물었다.
“그럼 제 코는 안 휘나요?”
라이자는 은인의 코끝을 보았다.
아직 조금 휘어 있었다.
“안 휘는 게 좋지.”
그 말에 은인은 잠시 안심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그 다음에 은인이 물었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거짓말하지 않으면, 사람이 되는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나요?”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라이자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레이는 기록판 위에서 펜을 멈췄다.
은인은 자신이 무슨 이상한 말을 했는지 모르는 얼굴로 셋을 보았다.
“피노키오는 거짓말해서 코가 길어지고, 잘못해서 혼나고, 도망가고, 돌아온다고 했어요.”
“응.”
푸리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지.”
“그럼 저는 거짓말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이야기를 못 하나요?”
그 질문은 작았지만, 무대 전체를 바꾸었다.
푸리나는 은인을 보았다.
은인은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는 이야기에 들어가고 싶었다.
실수해야만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실수해야 하는지 묻고 있었다.
푸리나는 빈 대본을 내려다보았다.
첫 줄.
나는 무서워서 아니라고 말했다.
두 번째 줄.
피노키오가 거짓말하는 장면에서, 은인은 진실을 말했다.
그녀는 대본을 덮었다.
“잠깐 쉬자.”
라이자가 물었다.
“벌써?”
“응. 지금은 쉬어야 해.”
푸리나는 은인을 보았다.
“이 질문은 그냥 지나가면 안 돼.”
---
쉬는 시간은 아주 이상했다.
무대는 작업실 그대로였고, 관객은 없었고, 배우는 은인과 라이자뿐이었다.
하지만 푸리나는 당당하게 “휴식!”이라고 선언했고, 그레이는 정말로 차를 다시 데웠다.
은인은 차를 들고 앉아 있었다.
라이자는 그 옆에 앉았지만, 이번에도 손을 잡지는 않았다.
대신 은인의 코끝을 보았다.
“아프지는 않아?”
“아프지는 않아요.”
“불편해?”
“조금요.”
“고쳐줄게.”
은인은 고개를 저었다.
라이자의 손이 멈췄다.
“왜?”
“아직은 두고 싶어요.”
라이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푸리나는 이해한 듯했다.
“표시라서?”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거짓말했다는 표시예요.”
레플리카라면 이 말을 듣고 뭐라고 했을까, 하고 푸리나는 생각했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고통을 증거로 들고 서지 마라.
하지만 지금 레플리카는 없었다.
그래서 푸리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표시가 꼭 벌이어야 할 필요는 없어.”
은인은 푸리나를 보았다.
“그럼 뭔가요?”
“음.”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접힌 페이지?”
은인은 고개를 기울였다.
푸리나는 대본 한쪽 모서리를 살짝 접었다.
“책을 읽다가 중요한 장면이 나오면, 어떤 사람들은 모서리를 접어둬. 나중에 다시 보려고.”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도서 관리 측면에서는 권장되지 않습니다.”
푸리나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맞아. 실제 책에는 하지 마. 비유야.”
은인은 접힌 종이 모서리를 보았다.
“제 코는 접힌 페이지인가요?”
푸리나는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어. 네가 무서워서 거짓말했던 장면. 나중에 다시 봐야 하는 장면.”
은인은 코끝을 만졌다.
“그럼 없애면 안 되나요?”
라이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없애도 기억할 수 있어.”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는 기억해요?”
“응.”
“화났어요?”
“응.”
은인의 몸이 조금 굳었다.
라이자는 바로 이어 말했다.
“하지만 화난 것보다 걱정한 게 더 커.”
은인은 아주 작게 물었다.
“실망했어요?”
라이자는 오래 침묵했다.
거짓말하지 않으려는 침묵이었다.
“조금.”
은인의 눈이 흔들렸다.
라이자는 은인의 손등 가까이에 자기 손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네가 가족이 아니게 된 건 아니야.”
은인은 그 손을 보았다.
라이자는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실망했다는 걸 말해도, 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나도 배워야 해.”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라이자가 제페토 역할을 연기하고 있지 않았다.
제페토라는 자리를 밟고, 자기 말을 하고 있었다.
좋아.
무대가 아주 조금 작동하기 시작했다.
---
두 번째 시도는 대본을 바꾸고 시작했다.
푸리나는 새 장면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은인이 단추를 만지는 게 아니었다.
단추는 이미 만졌다.
이미 진실도 말했다.
그러니 1막의 진짜 장면은 다른 곳에 있었다.
푸리나는 작은 상자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렸다.
“이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은인은 상자를 보았다.
“모릅니다.”
“좋아. 정답.”
“정답인가요?”
“모를 때 모른다고 말하는 건 아주 중요한 정답이야.”
푸리나는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작은 종이 왕관이 들어 있었다.
삼총사 극에서 쓰고 남은 소품이었다. 어딘가 삐뚤고, 금박은 조금 벗겨져 있었다.
은인은 왕관을 보았다.
“왕관.”
“응.”
푸리나는 왕관을 꺼냈다.
“이건 사람 흉내를 내는 왕관이야.”
라이자가 바로 말했다.
“왕관이 사람 흉내를 낸다고?”
“아니. 왕관을 쓰면 사람들이 왕처럼 말하려고 하잖아.”
그레이가 낮게 말했다.
“전하께서는 왕관이 없어도 자주 그러십니다.”
푸리나는 그레이를 돌아보았다.
“그레이, 오늘은 유난히 날카롭다?”
“사실 확인입니다.”
“그게 날카로운 거야.”
푸리나는 은인에게 왕관을 내밀었다.
“은인. 이걸 써볼래?”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조심해”, “그건 가볍지만 균형이”, “관절에 부담이” 같은 말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었다.
“쓰고 싶어?”
은인은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궁금해요.”
“그럼 써.”
은인은 종이 왕관을 썼다.
왕관은 조금 컸다.
푸리나가 두 손을 펼쳤다.
“자! 은빛 피노키오는 왕관을 썼습니다. 이제 모두가 묻습니다. 당신은 왕인가요?”
은인은 눈을 깜박였다.
“저는 왕이 아닌데요.”
“좋아. 그럼 이렇게 말해봐. ‘나는 왕이다!’”
은인은 망설였다.
“하지만 아니에요.”
“맞아. 아니지.”
“그럼 거짓말 아닌가요?”
푸리나는 웃었다.
“연기일 수도 있어.”
은인은 혼란스러워했다.
“거짓말과 연기는 다른가요?”
그레이가 기록판을 들었다.
이 질문은 행정상으로도 흥미로워 보였다.
라이자도 은인을 보았다.
푸리나는 왕관을 살짝 고쳐주었다.
“중요한 질문이야. 거짓말은 보통 상대가 진실을 모르게 하려고 하는 말이야. 연기는 상대에게 ‘지금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보자’고 약속하고 하는 말이고.”
은인은 천천히 말했다.
“약속하고 하는 거짓말?”
푸리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 약속하고 하는 상상.”
은인은 왕관을 만졌다.
“그럼 제가 ‘나는 왕이다’라고 말하면, 모두 거짓말인 걸 아나요?”
“응. 모두 알아.”
“라이자도요?”
라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래도 가족인가요?”
라이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응.”
은인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나는 왕이다.”
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은인은 놀라 코끝을 만졌다.
“안 휘었어요.”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축하합니다! 은빛 피노키오가 연기를 배웠습니다!”
그레이는 기록판에 적었다.
“연기와 기만의 차이. 당사자 간 합의 여부, 맥락, 의도, 사후 책임.”
푸리나가 슬쩍 보았다.
“그레이, 지금 그걸 정말로 장부에 적고 있어?”
“중요한 구분입니다.”
“맞긴 한데 너무 장부야.”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은인은 왕관을 쓴 채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나는 왕이다.”
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세 번째.
“나는 왕이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은인은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이건 괜찮은 거짓말이에요.”
푸리나는 바로 말했다.
“정확히는 연기.”
“연기.”
은인은 그 단어를 기억하려는 듯 반복했다.
“연기는 돌아올 수 있는 거짓말인가요?”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그레이도 기록판 위에서 펜을 멈췄다.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푸리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응. 아주 좋게 말하면, 그래.”
은인은 왕관을 벗었다.
“그럼 저는 돌아올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 말은 1막의 첫 번째 진짜 대사였다.
푸리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은인이 연기를 배웠다.
거짓말과 연기의 차이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러자 은인은 질문을 더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문이 많아질수록, 라이자의 불안도 커졌다.
은인은 물었다.
“제가 무섭지 않은 척하면 연기인가요?”
푸리나는 대답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
“라이자가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괜찮다고 하면요?”
라이자는 바로 말했다.
“그건 하지 마.”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왜요?”
“네가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면, 내가 네가 아픈 걸 모르게 되니까.”
“하지만 라이자가 걱정하지 않으면 좋잖아요.”
라이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상대의 걱정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상태를 숨기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배려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보호와 대응을 어렵게 만듭니다.”
푸리나가 작게 말했다.
“그레이, 조금만 부드럽게.”
그레이는 잠시 생각하고 다시 말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알려주셔야, 곁에 있는 사람이 제대로 도울 수 있습니다.”
은인은 그 말을 곱씹었다.
“그럼 괜찮다고 말하면 코가 휘나요?”
라이자는 은인의 코를 보았다.
“네가 정말 괜찮지 않다면, 아마.”
은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럼 거짓말은 나쁜 거예요.”
푸리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위험해.”
“나쁜 게 아니라요?”
“나쁠 때가 많아. 하지만 가끔은 무서워서 나와. 가끔은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서 나오고. 가끔은 자기 자신도 뭐가 진짜인지 몰라서 나오지.”
은인은 푸리나를 보았다.
“그럼 어떻게 해요?”
푸리나는 대본을 들었다.
“그래서 이야기가 필요해.”
라이자가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은인에게 말했다.
“거짓말을 하면 끝, 이 아니라. 왜 그 말을 했는지, 그 말이 어디를 휘게 했는지, 다시 어떻게 펴야 하는지 봐야 하니까.”
은인은 자기 코끝을 만졌다.
“은이 휘면 펼 수 있나요?”
라이자는 말했다.
“대부분은.”
은인은 물었다.
“흔적 없이요?”
라이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직하게.
“항상 그렇지는 않아.”
은인의 손이 멈췄다.
라이자는 조용히 이어 말했다.
“하지만 흔적이 남는다고 해서 버리는 건 아니야.”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정말요?”
“응.”
라이자는 은인의 휘어진 코끝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렸다.
“은은 휘었다가 펴져도, 그 자리에 결이 남을 때가 있어. 하지만 그 결 때문에 더 잘 알 수 있는 것도 있어.”
“무엇을요?”
라이자는 잠시 생각했다.
“어디를 너무 세게 누르면 안 되는지.”
은인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고 대본 구석에 적었다.
은은 휜 자리에 기억을 남긴다.
---
1막의 마지막 장면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푸리나는 더 이상 단추도, 왕관도, 은실도 쓰지 않았다.
대신 은인 앞에 세 문장을 놓았다.
첫 번째 문장.
나는 괜찮아요.
두 번째 문장.
나는 무서워요.
세 번째 문장.
나는 거짓말했어요.
푸리나는 말했다.
“이 중에서 지금 네가 말할 수 있는 걸 골라.”
은인은 세 문장을 보았다.
라이자는 은인의 옆에 있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내리고 있었다. 기록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기다리는 자세였다.
은인은 첫 번째 문장을 보았다.
나는 괜찮아요.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두 번째 문장.
나는 무서워요.
은인은 손을 움켜쥐었다.
세 번째 문장.
나는 거짓말했어요.
은인은 코끝을 만졌다.
아직 조금 휘어 있었다.
한참 뒤, 은인은 말했다.
“저는…….”
목소리가 작았다.
푸리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라이자도 기다렸다.
은인은 다시 말했다.
“저는 무서워요.”
그 순간 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은인은 그 사실에 놀란 듯했다.
“안 휘었어요.”
푸리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응. 그건 돌아오는 말이니까.”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저는 거짓말했어요.”
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은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이것도 안 휘어요.”
라이자는 낮게 말했다.
“그건 숨기는 말이 아니니까.”
은인은 숨을 들이쉬었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 문장을 보았다.
나는 괜찮아요.
은인은 그 문장을 집어 들었다.
잠시 손에 쥐고 있다가, 푸리나에게 돌려주었다.
“이건 아직 못 말해요.”
푸리나는 그 문장을 받아 들었다.
“좋아.”
“좋아요?”
“응. 아주 좋아.”
은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푸리나는 말했다.
“못 말하는 걸 못 말한다고 했잖아. 그건 아주 좋은 대사야.”
그레이가 조용히 기록했다.
현재 상태: 괜찮지 않음. 그러나 말할 수 있음.
라이자는 그 문장을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말했다.
“그건 좋은 기록이네.”
그레이는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저는 괜찮지 않아요.”
라이자의 얼굴이 아팠다.
하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응.”
“그래도 여기 있어도 되나요?”
라이자는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은인이 먼저 그 손을 잡았다.
“응.”
라이자는 말했다.
“여기 있어도 돼.”
은인의 코끝은 여전히 조금 휘어 있었다.
그러나 더 길어지지는 않았다.
---
막이 내려가려 할 때, 푸리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세상은 무대요, 모든 이는 주인공일지니!》**의 기척은 아직 작업실에 얇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커지지 않았다.
오늘의 1막은 세상을 뒤집을 필요가 없었다.
은인이 거짓말을 했고, 코가 휘었고, 진실을 말했으며, 아직 괜찮지 않다고 인정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푸리나는 대본 첫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이제 세 줄이 적혀 있었다.
나는 무서워요.
나는 거짓말했어요.
나는 아직 괜찮지 않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은인이 직접 적은 삐뚤삐뚤한 한 줄이 있었다.
그래도 문은 닫히지 않았어요.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고 아주 작게 웃었다.
“좋아.”
라이자가 물었다.
“뭐가?”
“첫 막.”
“끝난 거야?”
“응.”
푸리나는 조명을 조금 낮췄다.
“거짓말은 은을 휘게 했지만, 진실은 문을 닫지 않았어.”
은인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코를 만졌다.
“그럼 다음에는 뭐예요?”
푸리나는 대본의 다음 장을 넘겼다.
빈 페이지였다.
그 빈 페이지를 보자 은인은 조금 긴장했고, 라이자는 조금 불안해졌고, 그레이는 새 기록지를 준비했다.
푸리나는 웃었다.
“다음에는 밖으로 나가볼 거야.”
라이자의 손이 움찔했다.
은인도 놀라 물었다.
“밖이요?”
“응.”
푸리나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피노키오는 작업실 안에서만 사람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라이자는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장난스럽게 웃지 않았다.
대신 빈 대본을 은인 앞에 놓았다.
“하지만 기억해. 밖으로 나가는 건 버리는 게 아니야. 돌아올 길을 알아보러 가는 거지.”
은인은 라이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손을 놓지 않은 채, 작업실 문을 보았다.
문은 닫혀 있었다.
하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막이 내려왔다.
2막 — 인형극장과 장난감 나라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이어졌다.
— 박수받는 말과 돌아올 수 있는 말은 다르다 —
1막 — 거짓말은 은을 휘게 한다
— 무서워서 한 거짓말도, 돌아올 길을 멀게 만든다 —
처음 무대에 오른 것은 은인이 아니라, 의자였다.
정확히 말하면 라이자의 작업실 의자였다.
낡은 나무 의자 하나.
그 위에는 작은 쿠션이 놓여 있었고, 옆에는 은인을 위해 준비된 낮은 탁자가 있었다. 탁자 위에는 따뜻한 차 한 잔, 빈 대본 한 장, 그리고 라이자가 손대지 말라고 세 번 말한 은실 뭉치가 있었다.
푸리나는 그 은실 뭉치를 보고 잠시 고민했다.
“이건 치워둘까?”
라이자가 즉시 말했다.
“치워.”
“하지만 1막 제목이 거짓말은 은을 휘게 한다잖아. 은실이 있어야 상징성이—”
“치워.”
“네.”
푸리나는 얌전히 은실을 들어 올리려 했다.
라이자가 덧붙였다.
“직접 만지지 말고.”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레이가 대답했다.
“위험물 근처에서 즉흥성을 발휘하는 군주로 생각합니다.”
푸리나는 그레이를 돌아보았다.
“오늘따라 그레이가 자꾸 정확한 말을 해.”
“기록상 평소에도 그렇습니다.”
“기록도 잔인해.”
결국 은실 뭉치는 라이자의 손으로 작업대 뒤쪽에 치워졌다.
은인은 그 모습을 가만히 보았다.
조금 전까지 자기 손가락에 감겨 있던 은실.
그것을 만졌다고 말하지 못했던 은실.
거짓말과 함께 코를 삐걱거리게 만든 은실.
그 은실이 사라지자, 은인은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
푸리나는 그 표정을 보았다.
그리고 일부러 밝게 손뼉을 쳤다.
“좋아! 1막을 시작하기 전에, 아주 중요한 규칙을 정하겠습니다.”
은인이 고개를 들었다.
라이자도 푸리나를 보았다.
그레이는 이미 기록판을 들고 있었다.
푸리나는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첫째, 대사를 틀려도 된다.”
은인은 조심스럽게 따라 했다.
“대사를 틀려도 된다.”
“둘째,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해도 된다.”
은인은 조금 작게 말했다.
“무서우면 무섭다고 말해도 된다.”
“셋째.”
푸리나는 아주 엄숙한 얼굴로 말했다.
“푸리나가 멋진 연출을 떠올렸다고 해서 반드시 따라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레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요합니다.”
라이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중요해.”
푸리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지금 둘 다 너무 진심이야.”
라이자는 팔짱을 꼈다.
“네 즉흥성은 은인의 코보다 위험할 때가 있어.”
“너무해. 그래도 오늘은 조심할 거야.”
푸리나는 은인을 보았다.
“은인. 오늘은 네가 피노키오야.”
은인은 천천히 물었다.
“피노키오는 나무 인형인가요?”
“원래는 그렇지.”
“저는 은이에요.”
“그래서 오늘은 은빛 피노키오야.”
은인은 자기 손등을 바라보았다.
“그럼 저는 피노키오가 아닌데 피노키오인가요?”
푸리나는 살짝 웃었다.
“맞아. 아주 좋은 질문이야.”
라이자가 낮게 말했다.
“이상한 질문 같은데.”
“아니, 진짜 좋은 질문이야.”
푸리나는 빈 대본을 들어 올렸다.
“배역이란 원래 그래. 완전히 네가 아니지만, 완전히 네가 아니지도 않아. 너무 딱 맞으면 숨이 막히고, 너무 안 맞으면 벗겨지지. 그러니까 오늘은 입어보고, 불편하면 말하면 돼.”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하면 말한다.”
“좋아.”
푸리나는 대본 첫 줄에 큼직하게 적었다.
나는 오늘, 거짓말을 배우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다.
그레이가 대본을 보고 잠시 멈췄다.
“전하.”
“응?”
“첫 줄부터 난도가 높습니다.”
“그래?”
“은인 님께는 조금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은인은 대본을 보았다.
“거짓말을 배우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했다.”
그녀는 한 음절씩 천천히 읽었다.
“이상한 문장입니다.”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그렇지? 그래서 좋아.”
라이자는 단호하게 말했다.
“다시 써.”
푸리나는 바로 대본을 뒤집었다.
“좋아. 다시 쓰겠습니다.”
그레이가 작게 말했다.
“빠른 수정은 좋은 판단입니다.”
푸리나는 새 줄을 적었다.
나는 무서워서 아니라고 말했다.
은인은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이번에는 읽지 않았다.
그저 보았다.
라이자는 은인의 옆에 앉아 있었다. 손을 잡고 싶어 보였지만, 잡지 않았다. 대신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자기 손을 내려두었다.
푸리나는 그걸 보고, 아무 말 없이 조명을 조금 더 낮췄다.
---
첫 장면은 아주 간단했다.
은인이 탁자 위에 놓인 작은 은빛 단추를 만진다.
라이자 역할의 푸리나가 묻는다.
“단추 만졌어?”
은인은 대답한다.
“아니요.”
그러면 코가 삐걱인다.
끝.
아주 간단했다.
그런데 은인에게는 전혀 간단하지 않았다.
은인은 단추 앞에 서 있었다.
작은 은빛 단추.
위험하지도 않고, 비싸지도 않고, 실제로는 라이자가 일부러 만져도 되는 물건으로 골라둔 것이었다.
하지만 은인의 손은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푸리나가 물었다.
“무서워?”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좋아. 그럼 첫 대사는 성공이야.”
은인이 눈을 깜박였다.
“제가 대사를 했나요?”
“응. 방금 아주 중요한 대사를 했어.”
푸리나는 손가락으로 대본을 톡 쳤다.
“대본에는 없지만, 무대에 필요한 대사였어.”
은인은 조금 생각했다.
“무서워요, 라고 말해도 극이 이어지나요?”
라이자가 낮게 말했다.
“이어져.”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는 조금 어색하게 덧붙였다.
“이어져야 해.”
그 말은 라이자에게도 하는 말 같았다.
푸리나는 부드럽게 웃었다.
“그럼 다시. 은인, 단추를 만져도 돼. 이건 만져도 되는 단추야.”
은인은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단추를 만졌다.
은빛 단추는 차가웠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은인은 조금 안심했다.
푸리나가 라이자 역할로 물었다.
“단추 만졌어?”
은인은 숨을 들이쉬었다.
“네.”
그리고 멈췄다.
푸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레이가 기록판을 보았다.
라이자는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은인은 당황했다.
“제가 틀렸나요?”
푸리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 손뼉을 쳤다.
“좋아!”
은인은 놀랐다.
“좋아요?”
“응. 아주 좋아.”
푸리나는 웃었다.
“거짓말하는 장면에서 진실을 말했어. 이건 꽤 멋진 반항이야.”
라이자는 작게 말했다.
“반항이라고 부르지 마.”
“그럼 수정. 아주 멋진 선택이야.”
은인은 단추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피노키오는 거짓말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원전은 그렇지. 하지만 네가 반드시 그래야 하는 건 아니야.”
은인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러면 저는 피노키오가 아닌가요?”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고, 빈 대본 옆에 두 번째 줄을 적었다.
피노키오가 거짓말하는 장면에서, 은인은 진실을 말했다.
은인은 그 문장을 읽었다.
“그래도 되나요?”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기록상으로는 더 정확합니다.”
푸리나가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가 극적 표현을 인정했어.”
“정확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좋아.”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괜찮아. 네가 거짓말하지 않아도 돼.”
은인은 작게 물었다.
“그럼 제 코는 안 휘나요?”
라이자는 은인의 코끝을 보았다.
아직 조금 휘어 있었다.
“안 휘는 게 좋지.”
그 말에 은인은 잠시 안심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안심은 오래가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그 다음에 은인이 물었기 때문이다.
“그럼 제가 거짓말하지 않으면, 사람이 되는 이야기는 시작되지 않나요?”
푸리나는 입을 다물었다.
라이자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레이는 기록판 위에서 펜을 멈췄다.
은인은 자신이 무슨 이상한 말을 했는지 모르는 얼굴로 셋을 보았다.
“피노키오는 거짓말해서 코가 길어지고, 잘못해서 혼나고, 도망가고, 돌아온다고 했어요.”
“응.”
푸리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지.”
“그럼 저는 거짓말하지 않으면, 돌아오는 이야기를 못 하나요?”
그 질문은 작았지만, 무대 전체를 바꾸었다.
푸리나는 은인을 보았다.
은인은 거짓말을 하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는 이야기에 들어가고 싶었다.
실수해야만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실수해야 하는지 묻고 있었다.
푸리나는 빈 대본을 내려다보았다.
첫 줄.
나는 무서워서 아니라고 말했다.
두 번째 줄.
피노키오가 거짓말하는 장면에서, 은인은 진실을 말했다.
그녀는 대본을 덮었다.
“잠깐 쉬자.”
라이자가 물었다.
“벌써?”
“응. 지금은 쉬어야 해.”
푸리나는 은인을 보았다.
“이 질문은 그냥 지나가면 안 돼.”
---
쉬는 시간은 아주 이상했다.
무대는 작업실 그대로였고, 관객은 없었고, 배우는 은인과 라이자뿐이었다.
하지만 푸리나는 당당하게 “휴식!”이라고 선언했고, 그레이는 정말로 차를 다시 데웠다.
은인은 차를 들고 앉아 있었다.
라이자는 그 옆에 앉았지만, 이번에도 손을 잡지는 않았다.
대신 은인의 코끝을 보았다.
“아프지는 않아?”
“아프지는 않아요.”
“불편해?”
“조금요.”
“고쳐줄게.”
은인은 고개를 저었다.
라이자의 손이 멈췄다.
“왜?”
“아직은 두고 싶어요.”
라이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푸리나는 이해한 듯했다.
“표시라서?”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거짓말했다는 표시예요.”
레플리카라면 이 말을 듣고 뭐라고 했을까, 하고 푸리나는 생각했다.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고통을 증거로 들고 서지 마라.
하지만 지금 레플리카는 없었다.
그래서 푸리나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다.
“표시가 꼭 벌이어야 할 필요는 없어.”
은인은 푸리나를 보았다.
“그럼 뭔가요?”
“음.”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접힌 페이지?”
은인은 고개를 기울였다.
푸리나는 대본 한쪽 모서리를 살짝 접었다.
“책을 읽다가 중요한 장면이 나오면, 어떤 사람들은 모서리를 접어둬. 나중에 다시 보려고.”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도서 관리 측면에서는 권장되지 않습니다.”
푸리나가 바로 고개를 숙였다.
“맞아. 실제 책에는 하지 마. 비유야.”
은인은 접힌 종이 모서리를 보았다.
“제 코는 접힌 페이지인가요?”
푸리나는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어. 네가 무서워서 거짓말했던 장면. 나중에 다시 봐야 하는 장면.”
은인은 코끝을 만졌다.
“그럼 없애면 안 되나요?”
라이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없애도 기억할 수 있어.”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는 기억해요?”
“응.”
“화났어요?”
“응.”
은인의 몸이 조금 굳었다.
라이자는 바로 이어 말했다.
“하지만 화난 것보다 걱정한 게 더 커.”
은인은 아주 작게 물었다.
“실망했어요?”
라이자는 오래 침묵했다.
거짓말하지 않으려는 침묵이었다.
“조금.”
은인의 눈이 흔들렸다.
라이자는 은인의 손등 가까이에 자기 손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네가 가족이 아니게 된 건 아니야.”
은인은 그 손을 보았다.
라이자는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실망했다는 걸 말해도, 네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걸 나도 배워야 해.”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미소 지었다.
라이자가 제페토 역할을 연기하고 있지 않았다.
제페토라는 자리를 밟고, 자기 말을 하고 있었다.
좋아.
무대가 아주 조금 작동하기 시작했다.
---
두 번째 시도는 대본을 바꾸고 시작했다.
푸리나는 새 장면을 만들었다.
이번에는 은인이 단추를 만지는 게 아니었다.
단추는 이미 만졌다.
이미 진실도 말했다.
그러니 1막의 진짜 장면은 다른 곳에 있었다.
푸리나는 작은 상자 하나를 탁자 위에 올렸다.
“이 상자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은인은 상자를 보았다.
“모릅니다.”
“좋아. 정답.”
“정답인가요?”
“모를 때 모른다고 말하는 건 아주 중요한 정답이야.”
푸리나는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작은 종이 왕관이 들어 있었다.
삼총사 극에서 쓰고 남은 소품이었다. 어딘가 삐뚤고, 금박은 조금 벗겨져 있었다.
은인은 왕관을 보았다.
“왕관.”
“응.”
푸리나는 왕관을 꺼냈다.
“이건 사람 흉내를 내는 왕관이야.”
라이자가 바로 말했다.
“왕관이 사람 흉내를 낸다고?”
“아니. 왕관을 쓰면 사람들이 왕처럼 말하려고 하잖아.”
그레이가 낮게 말했다.
“전하께서는 왕관이 없어도 자주 그러십니다.”
푸리나는 그레이를 돌아보았다.
“그레이, 오늘은 유난히 날카롭다?”
“사실 확인입니다.”
“그게 날카로운 거야.”
푸리나는 은인에게 왕관을 내밀었다.
“은인. 이걸 써볼래?”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조심해”, “그건 가볍지만 균형이”, “관절에 부담이” 같은 말이 먼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물었다.
“쓰고 싶어?”
은인은 조금 망설이다가 말했다.
“궁금해요.”
“그럼 써.”
은인은 종이 왕관을 썼다.
왕관은 조금 컸다.
푸리나가 두 손을 펼쳤다.
“자! 은빛 피노키오는 왕관을 썼습니다. 이제 모두가 묻습니다. 당신은 왕인가요?”
은인은 눈을 깜박였다.
“저는 왕이 아닌데요.”
“좋아. 그럼 이렇게 말해봐. ‘나는 왕이다!’”
은인은 망설였다.
“하지만 아니에요.”
“맞아. 아니지.”
“그럼 거짓말 아닌가요?”
푸리나는 웃었다.
“연기일 수도 있어.”
은인은 혼란스러워했다.
“거짓말과 연기는 다른가요?”
그레이가 기록판을 들었다.
이 질문은 행정상으로도 흥미로워 보였다.
라이자도 은인을 보았다.
푸리나는 왕관을 살짝 고쳐주었다.
“중요한 질문이야. 거짓말은 보통 상대가 진실을 모르게 하려고 하는 말이야. 연기는 상대에게 ‘지금부터 이런 이야기를 해보자’고 약속하고 하는 말이고.”
은인은 천천히 말했다.
“약속하고 하는 거짓말?”
푸리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비슷하지만 조금 달라. 약속하고 하는 상상.”
은인은 왕관을 만졌다.
“그럼 제가 ‘나는 왕이다’라고 말하면, 모두 거짓말인 걸 아나요?”
“응. 모두 알아.”
“라이자도요?”
라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
“그래도 가족인가요?”
라이자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응.”
은인은 숨을 들이쉬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나는 왕이다.”
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은인은 놀라 코끝을 만졌다.
“안 휘었어요.”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축하합니다! 은빛 피노키오가 연기를 배웠습니다!”
그레이는 기록판에 적었다.
“연기와 기만의 차이. 당사자 간 합의 여부, 맥락, 의도, 사후 책임.”
푸리나가 슬쩍 보았다.
“그레이, 지금 그걸 정말로 장부에 적고 있어?”
“중요한 구분입니다.”
“맞긴 한데 너무 장부야.”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은인은 왕관을 쓴 채 조심스럽게 다시 말했다.
“나는 왕이다.”
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세 번째.
“나는 왕이다.”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은인은 처음으로 조금 웃었다.
“이건 괜찮은 거짓말이에요.”
푸리나는 바로 말했다.
“정확히는 연기.”
“연기.”
은인은 그 단어를 기억하려는 듯 반복했다.
“연기는 돌아올 수 있는 거짓말인가요?”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그레이도 기록판 위에서 펜을 멈췄다.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푸리나는 천천히 대답했다.
“응. 아주 좋게 말하면, 그래.”
은인은 왕관을 벗었다.
“그럼 저는 돌아올 수 있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 말은 1막의 첫 번째 진짜 대사였다.
푸리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은인이 연기를 배웠다.
거짓말과 연기의 차이를 조금 알게 되었다.
그러자 은인은 질문을 더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질문이 많아질수록, 라이자의 불안도 커졌다.
은인은 물었다.
“제가 무섭지 않은 척하면 연기인가요?”
푸리나는 대답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
“라이자가 걱정하지 않게 하려고 괜찮다고 하면요?”
라이자는 바로 말했다.
“그건 하지 마.”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왜요?”
“네가 안 괜찮은데 괜찮다고 하면, 내가 네가 아픈 걸 모르게 되니까.”
“하지만 라이자가 걱정하지 않으면 좋잖아요.”
라이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상대의 걱정을 줄이기 위해 자신의 상태를 숨기는 것은 단기적으로는 배려처럼 보일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보호와 대응을 어렵게 만듭니다.”
푸리나가 작게 말했다.
“그레이, 조금만 부드럽게.”
그레이는 잠시 생각하고 다시 말했다.
“아프면 아프다고 알려주셔야, 곁에 있는 사람이 제대로 도울 수 있습니다.”
은인은 그 말을 곱씹었다.
“그럼 괜찮다고 말하면 코가 휘나요?”
라이자는 은인의 코를 보았다.
“네가 정말 괜찮지 않다면, 아마.”
은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럼 거짓말은 나쁜 거예요.”
푸리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거짓말은 위험해.”
“나쁜 게 아니라요?”
“나쁠 때가 많아. 하지만 가끔은 무서워서 나와. 가끔은 누군가를 지키고 싶어서 나오고. 가끔은 자기 자신도 뭐가 진짜인지 몰라서 나오지.”
은인은 푸리나를 보았다.
“그럼 어떻게 해요?”
푸리나는 대본을 들었다.
“그래서 이야기가 필요해.”
라이자가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은인에게 말했다.
“거짓말을 하면 끝, 이 아니라. 왜 그 말을 했는지, 그 말이 어디를 휘게 했는지, 다시 어떻게 펴야 하는지 봐야 하니까.”
은인은 자기 코끝을 만졌다.
“은이 휘면 펼 수 있나요?”
라이자는 말했다.
“대부분은.”
은인은 물었다.
“흔적 없이요?”
라이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정직하게.
“항상 그렇지는 않아.”
은인의 손이 멈췄다.
라이자는 조용히 이어 말했다.
“하지만 흔적이 남는다고 해서 버리는 건 아니야.”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정말요?”
“응.”
라이자는 은인의 휘어진 코끝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렸다.
“은은 휘었다가 펴져도, 그 자리에 결이 남을 때가 있어. 하지만 그 결 때문에 더 잘 알 수 있는 것도 있어.”
“무엇을요?”
라이자는 잠시 생각했다.
“어디를 너무 세게 누르면 안 되는지.”
은인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고 대본 구석에 적었다.
은은 휜 자리에 기억을 남긴다.
---
1막의 마지막 장면은 예상보다 조용했다.
푸리나는 더 이상 단추도, 왕관도, 은실도 쓰지 않았다.
대신 은인 앞에 세 문장을 놓았다.
첫 번째 문장.
나는 괜찮아요.
두 번째 문장.
나는 무서워요.
세 번째 문장.
나는 거짓말했어요.
푸리나는 말했다.
“이 중에서 지금 네가 말할 수 있는 걸 골라.”
은인은 세 문장을 보았다.
라이자는 은인의 옆에 있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내리고 있었다. 기록하려는 자세가 아니라, 기다리는 자세였다.
은인은 첫 번째 문장을 보았다.
나는 괜찮아요.
입술이 조금 움직였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두 번째 문장.
나는 무서워요.
은인은 손을 움켜쥐었다.
세 번째 문장.
나는 거짓말했어요.
은인은 코끝을 만졌다.
아직 조금 휘어 있었다.
한참 뒤, 은인은 말했다.
“저는…….”
목소리가 작았다.
푸리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라이자도 기다렸다.
은인은 다시 말했다.
“저는 무서워요.”
그 순간 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은인은 그 사실에 놀란 듯했다.
“안 휘었어요.”
푸리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응. 그건 돌아오는 말이니까.”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저는 거짓말했어요.”
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은인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이것도 안 휘어요.”
라이자는 낮게 말했다.
“그건 숨기는 말이 아니니까.”
은인은 숨을 들이쉬었다.
마지막으로 첫 번째 문장을 보았다.
나는 괜찮아요.
은인은 그 문장을 집어 들었다.
잠시 손에 쥐고 있다가, 푸리나에게 돌려주었다.
“이건 아직 못 말해요.”
푸리나는 그 문장을 받아 들었다.
“좋아.”
“좋아요?”
“응. 아주 좋아.”
은인은 이해하지 못했다.
푸리나는 말했다.
“못 말하는 걸 못 말한다고 했잖아. 그건 아주 좋은 대사야.”
그레이가 조용히 기록했다.
현재 상태: 괜찮지 않음. 그러나 말할 수 있음.
라이자는 그 문장을 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말했다.
“그건 좋은 기록이네.”
그레이는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감사합니다.”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저는 괜찮지 않아요.”
라이자의 얼굴이 아팠다.
하지만 도망가지 않았다.
“응.”
“그래도 여기 있어도 되나요?”
라이자는 손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은인이 먼저 그 손을 잡았다.
“응.”
라이자는 말했다.
“여기 있어도 돼.”
은인의 코끝은 여전히 조금 휘어 있었다.
그러나 더 길어지지는 않았다.
---
막이 내려가려 할 때, 푸리나는 조용히 손을 들었다.
**《세상은 무대요, 모든 이는 주인공일지니!》**의 기척은 아직 작업실에 얇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더 커지지 않았다.
오늘의 1막은 세상을 뒤집을 필요가 없었다.
은인이 거짓말을 했고, 코가 휘었고, 진실을 말했으며, 아직 괜찮지 않다고 인정했다.
그 정도면 충분했다.
푸리나는 대본 첫 장을 넘겼다.
거기에는 이제 세 줄이 적혀 있었다.
나는 무서워요.
나는 거짓말했어요.
나는 아직 괜찮지 않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은인이 직접 적은 삐뚤삐뚤한 한 줄이 있었다.
그래도 문은 닫히지 않았어요.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고 아주 작게 웃었다.
“좋아.”
라이자가 물었다.
“뭐가?”
“첫 막.”
“끝난 거야?”
“응.”
푸리나는 조명을 조금 낮췄다.
“거짓말은 은을 휘게 했지만, 진실은 문을 닫지 않았어.”
은인은 그 말을 듣고 자기 코를 만졌다.
“그럼 다음에는 뭐예요?”
푸리나는 대본의 다음 장을 넘겼다.
빈 페이지였다.
그 빈 페이지를 보자 은인은 조금 긴장했고, 라이자는 조금 불안해졌고, 그레이는 새 기록지를 준비했다.
푸리나는 웃었다.
“다음에는 밖으로 나가볼 거야.”
라이자의 손이 움찔했다.
은인도 놀라 물었다.
“밖이요?”
“응.”
푸리나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피노키오는 작업실 안에서만 사람이 되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라이자는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장난스럽게 웃지 않았다.
대신 빈 대본을 은인 앞에 놓았다.
“하지만 기억해. 밖으로 나가는 건 버리는 게 아니야. 돌아올 길을 알아보러 가는 거지.”
은인은 라이자의 손을 잡고 있었다.
그 손을 놓지 않은 채, 작업실 문을 보았다.
문은 닫혀 있었다.
하지만 잠겨 있지는 않았다.
막이 내려왔다.
2막 — 인형극장과 장난감 나라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이어졌다.
— 박수받는 말과 돌아올 수 있는 말은 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