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81여관◆zAR16hM8he(28da446d)2026-05-21 (목) 15:45:27
《은빛 피노키오》

2막 — 인형극장과 장난감 나라

— 박수받는 말과 돌아올 수 있는 말은 다르다 —

문은 닫혀 있었다.

잠겨 있지는 않았다.

그 사실이 은인에게는 이상하게 무서웠다.

잠겨 있다면, 나갈 수 없다고 말하면 되었다.
나갈 수 없다면, 나가지 못한 것은 자기 선택이 아니었다.
라이자 곁에 남는 것도, 작업실 안에 있는 것도, 안전한 부품 상자와 따뜻한 차와 익숙한 은빛 냄새 사이에 앉아 있는 것도 전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갈 수 있었다.

나갈 수 있다는 것은, 나가지 않는 것도 선택이라는 뜻이었다.

은인은 손잡이를 바라보았다.

라이자는 그 뒤에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손가락이 조금 굳어 있었다. 그 손은 방금까지 은인의 손을 잡고 있었고, 지금은 놓아주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았다.

원래라면 여기서 크게 선언했을 것이다.

“자! 모험의 시작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문 옆에 작은 의자를 하나 가져다 놓았다.

라이자가 물었다.

“그건 뭐야?”

“의자.”

“그건 나도 알아.”

“돌아오면 앉을 자리.”

라이자의 눈빛이 조금 흔들렸다.

푸리나는 아무렇지 않게 의자 위치를 고쳤다.

“모험을 시작하는 문 옆에는, 돌아왔을 때 앉을 자리가 있어야 해. 그래야 문이 출발만 하는 곳이 아니라 돌아오는 곳도 되거든.”

은인은 의자를 보았다.

“제가 돌아오면 저기에 앉나요?”

“원하면.”

“안 앉아도 되나요?”

“응.”

“늦게 와도요?”

라이자의 목소리가 낮게 끼어들었다.

“늦어도.”

은인이 돌아보았다.

라이자는 스스로도 그 말을 붙잡는 듯했다.

“늦어도 문은 닫지 않아.”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는 기록판에 무언가 적었다.

푸리나가 슬쩍 보았다.

문 옆 의자: 귀환 확인용. 강제 착석 금지.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그레이, 그건 소품 기록이야, 행정 기록이야?”

“둘 다입니다.”

“좋아. 아주 그레이다워.”

은인은 문손잡이를 잡았다.

천천히 돌렸다.

끼익.

이번에는 코가 아니라 문이 소리를 냈다.

은인은 그 소리에 놀라 멈췄다.

푸리나가 말했다.

“문은 원래 소리를 내.”

은인은 물었다.

“나가도 된다는 소리인가요?”

“아니. 그냥 오래된 문이라는 소리.”

라이자가 아주 작게 웃을 뻔했다가 참았다.

은인은 문을 열었다.

작업실 밖의 복도에는 작은 극장처럼 빛이 깔려 있었다. 푸리나의 신술은 아직 얇았다. 벽과 바닥은 그대로였지만, 복도 끝에는 어디서 생겼는지 모를 작은 간판이 걸려 있었다.

인형극장

그 아래 작은 글씨.

오늘의 주연: 아주 사람 같은 은빛 아이

은인은 간판을 읽고 멈췄다.

“아주 사람 같은.”

라이자의 표정이 굳었다.

푸리나도 그 글씨를 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저 문구는 내가 안 썼는데.”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무대가 원전의 유혹을 은인의 불안에 맞춰 번역한 것으로 보입니다.”

푸리나는 간판을 보았다.

아주 사람 같은 은빛 아이.

칭찬처럼 보였다.

하지만 라이자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이었다.

은인에게는 더 복잡했다.

은인은 조용히 물었다.

“사람 같으면 박수받나요?”

푸리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문 옆 의자를 한 번 더 확인했다.

“확인하러 가볼래?”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는 힘들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원하면.”

은인은 다시 간판을 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궁금해요.”

푸리나는 문 안쪽에 남은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

“알아.”

라이자는 먼저 말했다.

“따라가고 싶어.”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라이자의 손은 아직도 은인을 향해 있었다.

하지만 라이자는 그 손을 천천히 내렸다.

“그래도 여기 있을게.”

은인이 놀라 물었다.

“같이 안 가나요?”

라이자는 숨을 들이쉬었다.

“네가 처음으로 혼자 보고 싶은 곳이잖아.”

“하지만 무서워요.”

“응.”

라이자는 문 옆 의자를 보았다.

“나도 무서워.”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는 조금 아픈 얼굴로 웃었다.

“그러니까 둘 다 배워야 해. 너는 나 없이 한 걸음 가는 법을. 나는 네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어도 문을 닫지 않는 법을.”

그레이는 기록판 위에 펜을 올렸다가, 곧 내렸다.

그 말은 기록하기 전에 먼저 들을 말이었다.

푸리나는 은인에게 말했다.

“나는 무대 옆에 있을게. 하지만 대신 걷지는 않아.”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녀올게요.”

라이자는 대답했다.

“응.”

조금 늦게.

“기다릴게.”

그 말은 짧았다.

하지만 은인은 그것을 들고 복도로 나갔다.


---

인형극장은 생각보다 작았다.

낡은 나무 무대.
붉은 천으로 만든 막.
손때 묻은 객석.
천장에 매달린 둥근 등불들.
그리고 수많은 인형들.

줄에 매달린 병정 인형.
나무로 만든 왕자 인형.
종이로 만든 새.
천 조각으로 꿰맨 여우.
한쪽 눈이 떨어진 고양이.
왕관을 쓴 꼭두각시.

인형들은 은인을 보자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왔다!”

“은빛이다!”

“반짝인다!”

“사람 같아!”

그 말에 은인은 자기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사람 같아.

이번에는 박수처럼 들렸다.

작은 무대의 옆, 낡은 객석 가장자리에 한 사람이 비스듬히 앉아 있었다.

죠니 죠스타였다.

그는 인형극장 주인처럼 화려한 옷을 입고 있지 않았다. 다만 낡은 무대용 망토 하나를 어깨에 걸치고, 한 손에는 아직 묶지 않은 무대용 창을 들고 있었다.

푸리나가 눈을 깜박였다.

“죠니?”

죠니는 고개만 살짝 들었다.

“응.”

“왜 여기 있어?”

“객원 단장이라던데.”

“누가?”

죠니는 무대 뒤를 턱짓했다.

“네 극장이.”

푸리나는 잠시 자기 신술을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내 극장, 가끔 너무 능동적이야.”

죠니는 건조하게 말했다.

“주인을 닮았겠지.”

“너무해.”

“틀린 말은 아니잖아.”

은인은 죠니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인형극장 주인인가요?”

죠니는 고개를 저었다.

“주인은 아니야. 박수받는 쪽이 어떤 느낌인지 조금 아는 사람이지.”

푸리나가 작게 말했다.

“그 설명, 은근히 멋있네.”

죠니는 은인을 보았다.

“무대에 서볼래?”

은인은 주저했다.

“서면 박수받나요?”

“잘하면.”

“못하면요?”

“그럼 못한 만큼 조용해지겠지.”

푸리나가 바로 끼어들었다.

“죠니, 교육적으로 너무 건조해.”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도 거짓말은 안 했어.”

은인은 그 말을 들었다.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

무섭지만, 조금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죠니는 은인의 코끝을 보았다.

휘어진 부분을 본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걸 오래 보지 않았다.

대신 물었다.

“그 코, 아프냐?”

은인은 조금 놀랐다.

“아프지는 않아요. 불편해요.”

“그럼 불편한 거지.”

“이상하지 않나요?”

“이상하긴 해.”

은인의 눈이 흔들렸다.

죠니는 무심하게 이어 말했다.

“근데 세상에 안 이상한 게 그렇게 많지도 않아.”

푸리나는 손뼉을 칠 뻔했다가 참았다.

죠니는 망토 하나를 은인에게 던졌다.

“입고 싶으면 입어. 싫으면 바닥에 둬. 망토는 네가 입어야 의미가 있지, 망토가 널 입으면 귀찮아진다.”

은인은 망토를 받았다.

“망토가 저를 입을 수도 있나요?”

“가능하지.”

죠니는 무대 위 줄에 매달린 꼭두각시들을 보았다.

“사람들은 가끔 박수받으려고 자기가 입은 걸 자기라고 믿거든.”

은인은 망토를 내려다보았다.

붉은 망토였다.

조금 낡았지만 무대 위에서는 예쁘게 보일 색.

은인은 조심스럽게 입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섰다.

은빛 피부.
조금 휘어진 코끝.
붉은 망토.
낯선 무대.

인형들이 박수를 쳤다.

짝짝짝짝.

“사람 같아!”

“정말 사람 같아!”

“걸음도 사람 같아!”

“웃어봐!”

은인은 멈칫했다.

죠니는 무대 옆에서 말했다.

“웃기 싫으면 웃지 마.”

은인은 그를 보았다.

인형들이 웅성거렸다.

푸리나는 조용히 지켜보았다.

은인은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어색한 웃음이었다.

박수가 줄었다.

은인은 그것을 느꼈다.

그래서 조금 더 사람처럼 웃으려고 했다.

입꼬리를 올리고, 눈을 접고, 푸리나가 웃던 얼굴을 떠올렸다.

박수가 커졌다.

“좋아!”

“사람 같아!”

“훌륭해!”

은인은 조금 놀랐다.

사람 같아.

그 말은 아까보다 덜 아팠다.

아니, 아픈데도 따뜻했다.

왜냐하면 박수가 함께 왔기 때문이다.

죠니는 그 박수를 들으며 말했다.

“박수는 받아둬. 나쁠 건 없어.”

은인이 물었다.

“나쁘지 않나요?”

“응. 나쁘진 않아.”

그는 잠깐 멈췄다가 덧붙였다.

“문제는 그 박수 없이는 네 걸음이 진짜가 아니라고 믿기 시작할 때지.”

은인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기억했다.


---

첫 공연은 아주 간단했다.

은빛 피노키오가 무대 중앙으로 걸어 나온다.

죠니가 무대 옆 의자에서 묻는다.

“이름이 뭐냐?”

은인은 대답한다.

“저는 은인입니다.”

그러자 무대 뒤 인형들이 웅성거렸다.

“아니야, 아니야.”

“오늘은 은빛 피노키오잖아.”

“그 이름이 더 잘 팔려.”

“은인은 너무 조용해.”

은인은 자기 이름을 손으로 만질 수 없었다.

하지만 그 순간, 이름이 조금 뒤로 밀리는 느낌이 들었다.

푸리나는 무대 옆에서 손을 들려다가 멈췄다.

지금 끼어들면 은인의 장면을 빼앗는다.

하지만 너무 늦으면 은인이 밀려난다.

그때 죠니가 낮게 말했다.

“이름을 바꾸면 박수는 커질 수 있어.”

은인은 그를 보았다.

죠니는 무심하게 이어 말했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갈 때, 누가 돌아가는지 헷갈릴 수도 있지.”

은인은 침묵했다.

인형들이 기다렸다.

은인은 말했다.

“저는 은인입니다.”

잠시 정적.

은인은 조금 더 말했다.

“오늘은 은빛 피노키오를 해봅니다.”

죠니가 작게 웃었다.

“좋네.”

푸리나는 숨을 내쉬었다.

그레이가 문 밖에서 기록했다.

이름 유지. 배역 임시 착용.

인형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박수를 쳤다.

박수는 다시 따뜻해졌다.

은인은 조금 안심했다.

이름을 잃지 않아도 박수받을 수 있다.

그 사실이 은인에게는 커다란 발견이었다.


---

두 번째 장면은 더 어려웠다.

은인이 줄에 매달린 병정 인형들과 춤을 추는 장면이었다.

인형들은 줄에 이끌려 움직였다.

왼쪽.
오른쪽.
앞으로.
뒤로.
고개 숙이기.
돌기.

은인은 처음에는 따라 하기 어려워했다.

왜냐하면 은인은 줄이 없었기 때문이다.

병정 인형 하나가 말했다.

“줄이 있으면 편해.”

다른 인형이 말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거든.”

세 번째 인형이 덧붙였다.

“틀리지도 않아.”

은인은 그 말을 들었다.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틀리지도 않는다.

그것은 조금 달콤했다.

은인은 병정 인형들을 따라 움직였다.

왼쪽.
오른쪽.
앞으로.
뒤로.

처음에는 삐걱였다.

박수가 줄었다.

은인은 더 열심히 맞추려 했다.

이번에는 발보다 고개가 먼저 움직였다.

관절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

끼릭.

푸리나가 눈썹을 움직였다.

문 밖에서 라이자의 손이 굳었다.

죠니가 말했다.

“멈춰.”

은인은 멈췄다.

인형들이 아쉬운 소리를 냈다.

“왜 멈춰?”

“조금 더 하면 되는데.”

“박수받고 있었잖아.”

은인은 무대 중앙에서 굳었다.

박수받고 있었다.

하지만 관절이 조금 아팠다.

아프다고 해야 하나.
아프지 않은 척하면 박수가 이어질까.
괜찮다고 말하면 라이자가 걱정하지 않을까.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공연이 멈출까.

은인은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손목을 가볍게 두드렸다.

신호였다.

네 대사를 해.

은인은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저는 지금 조금 불편해요.”

박수가 멈췄다.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앉아.”

은인은 놀랐다.

“공연 중인데요?”

“그래서 뭐.”

죠니는 무대 바닥을 가리켰다.

“무대가 사람보다 비싼 건 아니잖아.”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그 대사, 마음에 들어.”

은인은 조심스럽게 무대 위에 앉았다.

천장이 무너지지도 않았고, 무대가 꺼지지도 않았다.

다만 조명이 조금 낮아졌다.

푸리나가 박수를 쳤다.

짝.

죠니도 느리게 박수를 쳤다.

짝.

문 밖에서 그레이가 박수를 쳤다.

짝.

그리고 조금 늦게, 라이자의 박수가 들렸다.

짝.

처음에는 인형들이 어색해했다.

하지만 곧 한쪽 눈이 떨어진 고양이 인형이 박수를 쳤다.

짝.

그러자 병정 인형 하나가 따라 했다.

짝.

은인은 앉은 채로 박수를 들었다.

서 있지 않아도 박수가 올 수 있었다.

이것도 은인에게는 큰 발견이었다.

죠니는 은인 옆에 쪼그려 앉았다.

“기억해둬.”

“무엇을요?”

“박수받으려고 서는 건 나쁘지 않아. 그런데 앉아야 할 때 못 앉게 되는 순간부터 좀 위험해진다.”

은인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

인형극장의 박수는 나쁘지 않았다.

그건 분명했다.

박수는 따뜻했고, 은인은 그 따뜻함을 싫어하지 않았다.

문제는 박수가 너무 빨리 답처럼 들린다는 것이었다.

웃으면 박수.
사람처럼 말하면 박수.
아프다고 말해도, 푸리나가 장면을 바꾸면 박수.

그렇게 되자 은인은 조금씩 헷갈리기 시작했다.

사람다움은 무엇일까.

라이자의 가족인 것.
자기 이름을 지키는 것.
아프다고 말하는 것.
연기하는 것.
박수받는 것.

모두 조금씩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어려웠다.

공연이 끝난 뒤, 무대 뒤 인형 하나가 은인에게 작은 주머니를 내밀었다.

“오늘 아주 훌륭했어. 특별 배우에게 주는 보상이야.”

은인은 주머니를 받았다.

안에는 반짝이는 동전들이 들어 있었다.

은인이 물었다.

“이건 무엇인가요?”

“네가 번 거지.”

“제가요?”

“물론! 박수를 받았으니까.”

은인은 동전을 바라보았다.

푸리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은인, 그건 받아도 되고 안 받아도 돼.”

그레이가 문 밖에서 조용히 말했다.

“계약 조건이 사전에 명시되지 않았습니다.”

죠니는 동전 주머니를 보고 말했다.

“받기 전에 물어봐. 나중에 귀찮아진다.”

은인은 동전 주머니를 들고 물었다.

“이걸 받으면 저는 뭘 해야 하나요?”

인형은 멈칫했다.

“어…… 다음 공연도 조금?”

그레이의 눈빛이 선명해졌다.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아, 방금 계약서 없는 장기 출연 계약이 될 뻔했어.”

죠니는 무덤덤하게 말했다.

“세상엔 그런 박수가 많아.”

은인은 동전 주머니를 내려놓았다.

“아직은 안 받을래요.”

인형들이 웅성거렸다.

“왜?”

“반짝이는데.”

“사람처럼 보이는 데 필요한 걸 살 수 있는데.”

은인의 손이 멈췄다.

사람처럼 보이는 데 필요한 것.

푸리나의 표정이 조금 차가워졌다.

죠니가 은인을 보았다.

“필요하냐?”

은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죠니는 이어 말했다.

“사람처럼 보이는 데 필요한 건 많아. 옷, 말투, 걸음, 웃는 법, 화내는 법, 안 아픈 척하는 법.”

은인은 그를 보았다.

“그럼 그걸 배우면 사람이 되나요?”

죠니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냥 남들이 헷갈리기 쉬워져.”

푸리나는 살짝 웃었다.

“죠니식 답변은 건조한데 정확하네.”

은인은 동전 주머니에서 손을 뗐다.

그러자 무대 뒤쪽의 다른 문이 열렸다.

거기에는 또 다른 간판이 있었다.

장난감 나라

그 아래 작은 글씨.

책임 없는 아이들은 매일 축제입니다.

푸리나는 그 문구를 보고 아주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 이거 원전적으로 정말 안 좋은 곳인데.”

은인이 물었다.

“책임 없는 곳은 좋은 곳인가요?”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아닙니다.”

푸리나는 그레이를 보았다.

“이번엔 빠르네.”

“위험 문구입니다.”

죠니는 간판을 보았다.

“그래도 궁금하겠지.”

은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푸리나는 은인을 보았다.

“가보고 싶어?”

은인은 작게 말했다.

“제가 고르는 걸 해보고 싶어요.”

문 밖의 라이자가 눈을 감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말리지 않았다.

“혼자?”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네.”

라이자의 얼굴이 아파졌다.

“무서울 거야.”

“네.”

“속을 수도 있어.”

“네.”

“돌아오는 길을 잃을 수도 있어.”

은인은 문 옆 의자를 떠올렸다.

“그래도 문은 열려 있나요?”

라이자는 눈을 떴다.

그 질문은 잔인했다.

하지만 동시에, 라이자가 해주었던 약속이 돌아온 것이었다.

“응.”

라이자는 말했다.

“열려 있어.”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갔다 올게요.”

라이자는 아주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돌아오기 싫어지면.”

은인의 몸이 멈췄다.

라이자는 겨우 말을 이었다.

“그때도, 네가 어디 있는지는 알려줘.”

“왜요?”

라이자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기다릴 곳을 알아야 하니까.”

은인은 한참 라이자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려줄게요.”

그것은 완전한 귀환 약속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라이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가장 먼 약속이었다.

죠니는 은인에게 짧게 말했다.

“갔다 와. 그리고 박수랑 네 이름 중에 하나만 들고 와야 하면, 이름을 들고 와.”

은인은 물었다.

“박수는 놓고 와도 되나요?”

죠니는 무심하게 답했다.

“박수는 대체로 네가 없어도 자기들끼리 울려.”

푸리나가 낮게 말했다.

“정말 죠니다운 조언이네.”

은인은 장난감 나라의 문을 향해 걸었다.


---

장난감 나라는 문을 열자마자 소리가 쏟아졌다.

웃음.
나팔.
목마의 삐걱거림.
나무 바퀴가 바닥을 구르는 소리.
달콤한 과자의 냄새.
색종이.
풍선.
작은 회전목마.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

“놀자!”

“오늘만 놀자!”

“내일은 없어!”

“혼나지 않아!”

“기록하지 않아!”

“실수해도 아무도 묻지 않아!”

은인은 문 앞에 서서 압도되었다.

이곳에는 의자가 많았다.

하지만 돌아오는 의자는 없어 보였다.

모든 의자는 놀이기구였고, 모든 문은 안쪽으로만 열려 있었다.

장난감 나라의 입구 옆, 색종이와 그림자 사이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하융이었다.

그는 장난감 나라의 아이들처럼 웃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들을 꾸짖지도 않았다. 그저 여러 갈래로 이어진 길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색빛 창호가 그의 등 뒤에 아주 얇게 겹쳐 보였다.

은인은 그를 알아보았다.

“하융.”

하융은 고개를 들었다.

“왔구려.”

“여기서 무엇을 하나요?”

“길을 보고 있소.”

은인은 장난감 나라 안쪽을 보았다.

“여기 길이 많나요?”

하융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많소. 이 길로 가면 칭찬받는 아이요. 저 길로 가면 혼나는 아이요. 저쪽 길로 가면 아무도 찾지 않는 아이가 되오.”

은인의 손이 움찔했다.

“어느 길이 사람이 되는 길인가요?”

하융은 은인을 보았다.

그의 눈은 미래를 확정하는 눈이 아니었다.

이미 선택되지 못한 가능성의 창들을 보는 눈이었다.

“길이 사람을 만들지는 않소.”

은인은 기다렸다.

하융은 낮게 말했다.

“돌아오는 방식이 사람을 만들 뿐이오.”

은인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장난감 나라의 음악이 워낙 커서, 생각할 시간은 많지 않았다.

태엽 아이가 달려왔다.

“너도 왔구나!”

종이 아이가 외쳤다.

“여기는 아무도 혼내지 않아!”

천 아이가 말했다.

“대사 틀려도 돼!”

나무 아이가 웃었다.

“거짓말해도 돼!”

태엽 아이가 덧붙였다.

“아파도 괜찮다고 하면 돼!”

은인은 마지막 말을 듣고 멈칫했다.

“아파도 괜찮다고 하면 되나요?”

태엽 아이가 웃었다.

“응! 그러면 아무도 멈추라고 안 해!”

종이 아이가 말했다.

“멈추면 재미없잖아.”

천 아이가 말했다.

“여기서는 다 괜찮아!”

은인은 그 말을 들었다.

다 괜찮아.

그 말은 따뜻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차가웠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돌아가지 않아도 되는 길은 처음엔 자유로워 보이오.”

은인은 그를 보았다.

“나쁜 길인가요?”

“아니오.”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노는 것도 길이오. 쉬는 것도 길이고, 도망치는 것도 때로는 길이오.”

“그럼요?”

“다만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는 말과, 돌아갈 곳이 없다는 말은 종종 같은 얼굴을 하고 있소.”

은인은 그 말을 듣고 장난감 나라 안쪽을 바라보았다.

아이들이 웃고 있었다.

아무도 돌아갈 곳을 말하지 않았다.

그게 조금 이상했다.

하지만 곧 회전목마가 돌기 시작했고, 과자의 냄새가 가까워졌고, 음악이 은인의 생각을 덮었다.

은인은 한 발 들어섰다.


---

문 밖에서 라이자는 기다렸다.

처음에는 서 있었다.

그 다음에는 문 옆 의자에 앉았다.

그러다 다시 일어났다.

다시 앉았다.

푸리나는 그녀 곁에 있었다.

그레이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기록하고 있었다.

죠니는 인형극장 쪽 무대 턱에 앉아 있었다. 그는 따라오지 않았다. 그의 역할은 박수의 문 앞에서 끝난 듯했다.

라이자가 낮게 물었다.

“죠니는 안 들어가?”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 안쪽은 내 장면이 아니야.”

푸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융 쪽 장면이지.”

라이자는 장난감 나라의 문을 보았다.

“하융이면 괜찮을까?”

죠니는 건조하게 말했다.

“괜찮게 만들어주는 사람은 아니지.”

라이자가 그를 보았다.

죠니는 이어 말했다.

“대신 길을 보여줄 거야. 걷는 건 은인 몫이고.”

라이자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제일 무섭네.”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기다림은 통제보다 어렵습니다.”

라이자가 그레이를 보았다.

“너는 그런 말도 기록해?”

“필요하다면요.”

라이자는 작게 웃었다.

“그럼 적어둬.”

그레이는 기록했다.

기다림은 통제보다 어렵다.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고 말했다.

“그레이, 오늘 기록이 너무 좋아.”

“감사합니다.”

“아니, 정말로.”

그레이는 조금 당황한 듯 시선을 내렸다.

라이자는 문을 보았다.

“은인이 돌아오면, 뭐라고 해야 하지?”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처음부터 많이 묻지 마.”

“왜?”

“돌아온 사람은 문턱에서 이미 지쳐 있을 때가 많아.”

라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푸리나는 덧붙였다.

“그리고 코부터 보지 마.”

라이자는 굳었다.

자신이 가장 먼저 코를 볼 것이라는 걸 들킨 얼굴이었다.

푸리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얼굴을 봐.”

“코도 얼굴이야.”

“라이자.”

“알았어.”

라이자는 숨을 내쉬었다.

“얼굴을 볼게.”


---

장난감 나라의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곳에는 시계가 많았지만, 모두 다른 시간을 가리켰다.

한 시계는 계속 낮이었다.

다른 시계는 계속 축제 전날이었다.

또 다른 시계는 숫자 대신 과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은인은 점점 피곤해졌다.

그러나 장난감 나라에서는 피곤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피곤하다고 말하면, 누군가 말했다.

“조금만 더!”

“마지막 한 번!”

“재밌잖아!”

“여기는 쉬러 온 곳이 아니라 놀러 온 곳이야!”

은인은 생각했다.

작업실에서는 쉬어도 된다고 했다.

무대에서는 앉아도 박수받았다.

그런데 장난감 나라에서는 쉬는 사람이 없었다.

모두 놀고 있었다.

모두 웃고 있었다.

모두 괜찮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세히 보니, 모두 조금씩 휘어 있었다.

나무 아이의 팔은 살짝 갈라져 있었다.

종이 아이의 모서리는 젖어 있었다.

태엽 아이는 같은 웃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천 아이의 바느질은 풀려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아프다고 말하지 않았다.

“괜찮아?”

은인이 처음으로 물었다.

태엽 아이가 웃었다.

“괜찮아!”

끼릭.

태엽 소리가 났다.

은인은 그 소리를 들었다.

“정말?”

“응! 여기는 다 괜찮아!”

끼릭.

태엽 아이의 등에서 작은 나사가 떨어졌다.

은인은 그것을 주웠다.

“이게 떨어졌어요.”

태엽 아이는 웃었다.

“괜찮아!”

“하지만 떨어졌어요.”

“괜찮다니까!”

그 순간, 태엽 아이의 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은인은 놀랐다.

“왜 안 휘나요?”

태엽 아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거짓말하면 코가 휘어야 하는데.”

태엽 아이는 웃었다.

“나는 내가 괜찮다고 믿어.”

그 말에 은인은 조용해졌다.

거짓말은 남을 속이는 말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자신도 속고 있으면?

자기 자신도 정말 괜찮다고 믿고 있으면?

그러면 은은 휘지 않는가.

하지만 나사는 떨어졌다.

은인은 손안의 작은 나사를 보았다.

휘지 않는 거짓말도 있었다.

그것은 더 무서웠다.

그때 하융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그 길도 있소.”

은인은 돌아보았다.

하융은 장난감 나라의 가장자리, 색종이가 닿지 않는 그늘에 서 있었다.

“어떤 길인가요?”

“아프지 않다고 믿는 길.”

은인은 태엽 아이를 보았다.

“그 길은 어디로 가나요?”

하융은 잠시 창밖을 보는 듯 눈을 내렸다.

“오래 가오. 생각보다 오래. 웃을 수 있고, 달릴 수 있고, 모두에게 괜찮아 보일 수 있소.”

“그럼 좋은 길인가요?”

“끝에서 자신이 왜 멈췄는지 모르게 되오.”

은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하융은 더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답을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길을 보여주었다.

은인은 갑자기 라이자가 보고 싶어졌다.

작업실의 은빛 냄새.
문 옆 의자.
그레이의 기록판.
푸리나의 빈 대본.
라이자의 손.

돌아가고 싶었다.

그 순간, 장난감 나라의 음악이 조금 느려졌다.

태엽 아이가 말했다.

“어디 가?”

은인은 문을 보았다.

“돌아갈래요.”

“왜?”

“피곤해요.”

종이 아이가 말했다.

“피곤하지 않다고 하면 되잖아.”

천 아이가 말했다.

“그러면 계속 놀 수 있어.”

은인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저는 피곤해요.”

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은인은 조금 안심했다.

“그리고 무서워요.”

코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은인은 자기 손을 펼쳤다.

동전 주머니는 없었다.

인형극장에 두고 왔다.

하지만 박수의 감각은 아직 손에 남아 있었다.

“박수받고 싶어서 괜찮다고 말했어요.”

끼익.

코가 조금 움직였다.

은인은 놀랐다.

하지만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았다.

“아직도 조금 거짓말이 남아 있나 봐요.”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그걸 알고 돌아가는 길도 있소.”

은인은 그를 보았다.

“그 길은 어디로 가나요?”

하융은 문을 가리켰다.

“문 앞에서 혼나는 곳으로.”

은인은 움찔했다.

하융은 아주 낮게 덧붙였다.

“그리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은인은 문 쪽으로 걸어갔다.

“저는 돌아갈래요.”


---

문은 생각보다 멀었다.

장난감 나라에 들어올 때는 바로 앞에 있었는데, 돌아가려고 하자 길이 늘어난 것 같았다.

회전목마가 길을 막고, 과자 가게가 불렀고, 나팔 소리가 귀를 붙잡았다.

“마지막 한 번!”

“한 번만 더!”

“돌아가면 혼날 거야!”

은인은 멈췄다.

그 말이 가장 무서웠다.

돌아가면 혼난다.

그건 맞았다.

라이자는 거짓말은 혼날 거라고 했다.

은인은 코를 만졌다.

더 휘어 있었다.

망토는 조금 답답했다.

돌아가면 라이자가 볼 것이다.

코도 보고, 망토도 볼 것이다.

실망할지도 모른다.

화낼지도 모른다.

은인은 문 앞에서 멈췄다.

그리고 처음으로 거짓말하고 싶어졌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렇게 말하면 어떨까.

코가 휘겠지.

그러면 들키겠지.

그럼 차라리 돌아가지 않으면?

은인은 문손잡이를 잡지 못했다.

그때, 문 너머에서 소리가 들렸다.

작은 소리였다.

의자가 바닥에 살짝 끌리는 소리.

누군가 문 옆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나는 소리.

라이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푸리나도 말하지 않았다.

그레이의 펜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누군가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

은인은 손잡이를 잡았다.

문을 열었다.


---

문 밖에는 라이자가 있었다.

정말로 있었다.

푸리나도 있었고, 그레이도 있었다.

죠니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대용 창을 어깨에 걸치고 있었다.

하융은 어느새 문 안쪽 그늘에서 사라져 있었다.

문 옆 의자는 비어 있었다.

은인이 앉을 수 있게.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푸리나가 말했던 것처럼, 코부터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봤다.

조금 봤다.

그 다음에는 얼굴을 보았다.

은인은 그것을 알았다.

그래서 말했다.

“코 봤어요.”

라이자는 멈칫했다.

푸리나는 입술을 깨물며 웃음을 참았다.

죠니는 고개를 돌리고 조용히 웃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들었다가 내렸다.

라이자는 솔직히 말했다.

“응. 봤어.”

은인은 고개를 숙였다.

“휘었어요.”

“응.”

“거짓말했어요.”

라이자는 숨을 들이쉬었다.

“무슨 거짓말?”

은인은 망토 끈을 풀었다.

“괜찮다고 했어요. 피곤했는데. 어지러웠는데. 박수받고 싶어서 괜찮다고 했어요.”

라이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인은 더 작게 말했다.

“인형극장에서 박수받았어요. 좋았어요. 그런데 박수가 없으면 제가 못 걷는 것 같을까 봐 무서웠어요.”

죠니가 낮게 말했다.

“거기까지 알면 꽤 잘 돌아온 거야.”

은인은 죠니를 보았다.

“잘 돌아온 건가요?”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코 휘고, 겁먹고, 혼날 거 알면서 왔잖아. 그 정도면 돌아온 거지.”

라이자는 은인 앞에 무릎을 굽혔다.

“혼나요?”

은인이 물었다.

라이자는 대답했다.

“응.”

은인은 고개를 숙였다.

“네.”

“하지만 먼저 앉아.”

은인은 눈을 들었다.

라이자는 문 옆 의자를 가리켰다.

“돌아왔으니까.”

은인은 잠시 그 의자를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앉았다.

의자는 낮고, 따뜻하지는 않았지만, 안정적이었다.

라이자는 은인의 앞에 앉았다.

“거짓말한 건 혼날 거야.”

“네.”

“불편한데 괜찮다고 한 것도 다시 이야기해야 해.”

“네.”

“동전은 받지 않았어?”

“네. 죠니가 물어보라고 했어요. 그래서 물어봤더니, 다음 공연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안 받았어요.”

그레이가 낮게 말했다.

“매우 좋은 판단입니다.”

은인은 조금 안심했다.

라이자는 아주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잘했어.”

은인의 눈이 흔들렸다.

“잘했어요?”

“응.”

“코가 휘었는데요.”

“휘었어도 돌아왔잖아.”

은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라이자는 덧붙였다.

“그리고 네가 말했잖아.”

“무엇을요?”

“괜찮지 않다고.”

은인의 손이 떨렸다.

“그건 좋은 건가요?”

라이자는 이번에는 바로 대답했다.

“응.”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이것은 아직 화해가 아니었다.

아직 정리도 아니고, 완성도 아니었다.

하지만 은인은 돌아왔다.

그리고 라이자는 문을 닫지 않았다.

그 정도면 2막의 끝으로 충분했다.


---

그레이는 은인의 이야기를 천천히 정리했다.

“인형극장: 박수 경험. 이름 유지. 계약 미체결. 동전 수령 거부.”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장난감 나라: 피로 은폐. 괜찮다는 허위 진술. 귀환 선택.”

“네.”

“하융 님의 개입: 길 안내. 선택 강제 없음.”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융은 길을 보여줬어요.”

죠니가 말했다.

“그리고 나는 박수가 귀찮아질 수 있다고 했고.”

그레이는 기록했다.

“죠니 님의 개입: 박수와 이름의 구분. 계약 위험성 경고.”

죠니는 그레이를 보았다.

“그런 식으로 적으니까 내가 꽤 건전한 사람 같네.”

푸리나가 웃었다.

“오늘은 실제로 그랬어.”

“가끔은 그래.”

라이자는 은인의 코를 보았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이건 고칠 수 있어.”

은인은 잠시 생각했다.

“조금만 남겨도 되나요?”

라이자는 멈췄다.

“왜?”

“기억하려고요.”

라이자는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푸리나도 조용히 있었다.

은인은 말했다.

“벌로 남기는 건 아니에요. 접힌 페이지처럼.”

라이자의 눈빛이 부드러워졌다.

“그럼 조금만.”

“네.”

“하지만 아프면 고칠 거야.”

“네.”

라이자는 은인의 코끝을 아주 조심스럽게 만졌다.

그 손길은 제작자의 손이기도 했고, 가족의 손이기도 했다.

은인은 눈을 감지 않았다.


---

2막의 마지막에서, 푸리나는 대본을 펼쳤다.

첫 페이지에는 1막의 문장이 있었다.

그래도 문은 닫히지 않았어요.

그리고 2막의 페이지에는 새 문장이 생겼다.

은인이 직접 쓴 글씨는 아직 삐뚤었다.

박수받는 말은 달콤했지만, 돌아올 수 있는 말은 따뜻했어요.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라이자가 물었다.

“또 좋아?”

“응. 아주 좋아.”

그레이는 조용히 기록했다.

2막 결과: 외출, 공연, 박수, 무리, 거짓말, 귀환. 책임 논의 예정. 문은 유지됨.

푸리나는 그 기록을 보고 말했다.

“이제 그레이의 기록도 거의 극의 일부야.”

그레이는 조금 당황했다.

“저는 행정 기록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맞아. 그래서 좋아.”

은인은 의자에 앉아 문을 보았다.

문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장난감 나라의 음악은 멀어졌다.

인형극장의 박수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은인의 코끝에는 작은 휘어짐이 남아 있었고, 망토는 무릎 위에 접혀 있었으며, 하융이 보여준 길의 말과 죠니가 남긴 박수의 말이 아직 안쪽에서 울리고 있었다.

밖은 끝나지 않았다.

안도 끝나지 않았다.

푸리나는 빈 다음 장을 넘겼다.

“다음 막은 조금 더 깊은 곳으로 갈 거야.”

라이자가 불길한 얼굴로 물었다.

“어디로?”

푸리나는 대답하기 전에 은인을 보았다.

은인은 피곤해 보였지만, 눈은 닫히지 않았다.

푸리나는 낮게 말했다.

“녹슨 바다.”

은인의 손이 멈췄다.

라이자의 얼굴도 굳었다.

“바다?”

“응.”

푸리나는 빈 페이지 위에 제목을 적었다.

3막 — 녹슨 바다와 고래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이어졌다.

— 돌아오고 싶다는 말은, 길을 잃은 뒤에 더 무거워진다 —
(최대 5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