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83여관◆zAR16hM8he(28da446d)2026-05-21 (목) 16:04:41
《은빛 피노키오》

4막 — 고장보다 먼저 아픔을 보는 손

— 고치기 전에, 먼저 물어야 하는 말이 있다 —

고래에서 돌아온 뒤, 작업실은 다시 작업실이 되었다.

녹슨 바다는 사라졌다.

거대한 철갑 고래도 없었다.

벽에 걸린 공구들은 제자리로 돌아왔고, 반쯤 식은 용광로는 낮은 열을 품고 있었으며, 작업대 위에는 은실과 부품과 작은 렌즈들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문 옆에는 여전히 의자가 있었다.

그 의자는 이제 그냥 소품이 아니었다.
은인이 돌아와 앉은 자리였고, 라이자가 함께 앉은 자리였고, 문이 닫히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한 자리였다.

그레이는 의자 옆에 작은 표식을 붙였다.

귀환용. 강제 착석 금지.

푸리나는 그걸 보고 말했다.

“그레이. 이제 그 의자는 거의 공공시설이 됐네.”

그레이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이용 목적이 명확해졌으므로 표기하는 편이 좋습니다.”

죠니가 옆에서 낮게 웃었다.

“돌아온 사람 전용 의자라. 나쁘지 않네.”

하융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창가에 작은 빛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다른 길이 열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듯이.

은인은 그 의자에 앉아 있었다.

코끝은 아직 조금 휘어 있었다.

라이자는 그 앞에 앉아 있었다.

둘 사이에는 작업대가 없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푸리나는 조금 감탄했다.

라이자의 손은 무언가를 만들거나 고치지 않을 때도, 늘 작업대 위에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라이자는 공구를 들지 않았다.
은인을 살피고 있었지만, 해체하거나 조정하거나 수리하려는 자세는 아니었다.

그냥 보고 있었다.

은인은 그 시선을 견디다가 작게 물었다.

“많이 이상해요?”

라이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 “휘었어. 각도가 조금 틀어졌고, 표면 장력도 이상해졌어. 고쳐야 해.”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라이자는 천천히 물었다.

“아파?”

은인은 눈을 깜박였다.

그 질문은 예상 밖이었다.

“아프지는 않아요.”

라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불편해?”

은인은 코끝을 조심스럽게 만졌다.

“조금요.”

“숨 쉬는 데 방해돼?”

“아니요.”

“말하는 데는?”

“가끔 신경 쓰여요.”

라이자는 그제야 손을 뻗었다.

“만져봐도 돼?”

은인은 조금 놀랐다.

“물어보는 건가요?”

라이자는 멈칫했다.

그 질문이 더 아팠다.

“응.”

“전에는 그냥 만졌는데요.”

라이자는 손을 거두려 했다.

은인이 먼저 말했다.

“싫다는 뜻은 아니에요.”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은인은 자기 코끝을 만지며 말했다.

“그냥…… 물어보니까 이상해서요.”

푸리나는 무대 옆에서 숨을 낮췄다.

이건 중요한 장면이었다.

은인이 처음으로 “만져지는 것”과 “허락하는 것”의 차이를 인식하는 장면.
그리고 라이자가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너무 자연스럽게 해오던 손길을 멈추는 장면.

라이자는 아주 낮게 말했다.

“앞으로는 물어볼게.”

은인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

“항상요?”

“가능하면.”

“급할 때는요?”

“급할 때는 먼저 고치고 나중에 사과해야 할 수도 있어.”

그레이가 조용히 고개를 들었다.

라이자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을게.”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만져도 돼요.”

라이자는 다시 손을 뻗었다.

이번에는 아주 천천히.

손끝이 은인의 코끝에 닿았다.

은인은 눈을 감지 않았다.

라이자의 손은 차갑지 않았다.

손끝은 조심스러웠고, 조금 떨리고 있었다.

“조금 휘었어.”

라이자가 말했다.

“네.”

“고칠 수 있어.”

“네.”

“완전히 원래대로 돌릴 수도 있고, 네가 말한 것처럼 조금 남길 수도 있어.”

은인은 잠시 생각했다.

“원래대로 돌리면, 제가 거짓말한 게 없어지나요?”

라이자의 손이 멈췄다.

“아니.”

“그럼 조금 남기면, 제가 계속 잘못한 채로 있는 건가요?”

“아니.”

은인은 혼란스러워했다.

“그럼 어떻게 정해요?”

라이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이 질문은 공구로 풀 수 없었다.

푸리나는 끼어들지 않았다.

그레이도 기록하지 않았다.

죠니는 벽에 기대어 눈을 내렸다.

조용히 기다렸다.

라이자는 한참 뒤에 말했다.

“어떻게 보이고 싶은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고 싶은지로 정해야 할 것 같아.”

은인은 그 말을 반복했다.

“어떻게 살고 싶은지.”

“응.”

라이자는 손을 거두었다.

“코가 조금 휘어 있으면, 네가 거짓말했던 걸 기억할 수 있겠지. 하지만 그게 너를 계속 벌한다면 고치는 게 맞아.”

“완전히 고치면요?”

“그럼 겉으로는 전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네가 기억할 수 있다면, 꼭 흔적이 겉에 있어야 하는 건 아니야.”

은인은 눈을 내렸다.

“저는 아직 모르겠어요.”

라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 다 고치지 말자.”

은인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그래도 돼요?”

“응.”

라이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웃었다.

“모르는 상태로도 잠깐 둘 수 있어.”

그레이가 그 말을 기록하려다가 멈췄다.

푸리나는 그레이를 보았다.

“왜 안 적어?”

그레이는 낮게 말했다.

“지금은 들을 말인 것 같습니다.”

푸리나는 미소 지었다.

“응. 맞아.”


---

4막의 무대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1막에는 거짓말이 있었다.

2막에는 박수와 축제가 있었다.

3막에는 녹슨 바다와 고래가 있었다.

그에 비하면 4막은 너무 작았다.

작업대.
의자.
은인의 휘어진 코.
라이자의 손.
고치지 않고 기다리는 시간.

하지만 푸리나는 알았다.

작은 막일수록 어렵다.

전쟁보다 어려운 식탁이 있고, 고래 배 속보다 어려운 질문이 있다.

그리고 지금의 질문은 이것이었다.

> 사랑하는 사람을 고치고 싶을 때,
그 손은 어디까지 가도 되는가.



라이자는 마침내 공구함을 열었다.

은인이 조금 움찔했다.

라이자는 그것을 보았다.

“무서워?”

은인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네.”

라이자는 공구함을 다시 닫았다.

은인이 놀랐다.

“안 고쳐요?”

“네가 무섭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저는 고쳐야 하는데요.”

“고쳐야 한다고 누가 말했어?”

은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라이자는 조용히 물었다.

“나?”

은인은 조금 망설였다.

“조금은요.”

라이자의 얼굴이 아파졌다.

“그랬구나.”

은인은 급히 말했다.

“라이자가 직접 말한 건 아니에요.”

“그래도 그렇게 들렸으면, 들어야 해.”

라이자는 공구함 위에 손을 올렸다.

“나는 고치고 싶어. 네가 불편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네가 네 코를 만질 때마다 겁먹지 않았으면 좋겠어.”

은인은 조용히 들었다.

라이자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내가 고치고 싶다는 마음이, 네가 지금 당장 고쳐져야 한다는 뜻은 아니야.”

푸리나는 그 대사를 듣고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라이자가 제페토가 아니게 되는 순간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제페토라는 배역이 라이자 안에서 다시 쓰이는 순간이었다.

제작자.
보호자.
가족.
손을 가진 사람.
그리고 손을 멈출 줄 배워야 하는 사람.

은인은 한참 뒤에 말했다.

“조금만 고쳐주세요.”

라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까지?”

은인은 자기 코끝을 만졌다.

“아프지 않을 만큼.”

“그리고?”

“너무 많이 보이지는 않게.”

라이자는 공구함을 다시 열었다.

“흔적은?”

은인은 잠시 생각했다.

“저만 알 수 있을 만큼.”

라이자는 아주 조심스럽게 웃었다.

“좋아.”

그녀는 작은 렌즈와 은침, 아주 가느다란 집게를 꺼냈다.

그레이가 반사적으로 기록하려 했다.

푸리나가 작게 말했다.

“이번엔 기록해도 돼. 의료 기록이니까.”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처치 범위: 통증 완화. 외형 완전 복원 아님. 당사자 요청에 따른 흔적 일부 유지.”

죠니가 말했다.

“그렇게 적으니까 멋은 없는데 정확하네.”

그레이는 대답했다.

“의료 기록에 멋은 필수 요소가 아닙니다.”

“그건 맞아.”

라이자는 은인의 코끝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아프면 말해.”

“네.”

“무서워도 말해.”

“네.”

“멈추고 싶어도 말해.”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라이자는 아주 작은 힘으로 은을 폈다.

끼익.

작은 소리.

은인은 어깨를 움츠렸다.

라이자가 바로 멈췄다.

“아파?”

“놀랐어요.”

“계속해도 돼?”

은인은 숨을 들이쉬었다.

“네.”

다시.

끼익.

은은 조금씩 펴졌다.

완전히 원래대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날카롭게 튀어나온 부분이 부드러워졌고, 말할 때 신경 쓰이던 각도가 줄었다.

은인은 숨을 내쉬었다.

“덜 불편해요.”

라이자는 손을 멈췄다.

“여기서 멈출까?”

은인은 코끝을 만졌다.

“네.”

“더 고칠 수 있어.”

“알아요.”

“그래도 여기서?”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여기서요.”

라이자는 공구를 내려놓았다.

그 동작은 생각보다 어려워 보였다.

고칠 수 있는데 멈추는 것.

라이자에게 그건, 고치지 못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멈췄다.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고 생각했다.

이것도 귀환이다.

고치고 싶은 손이, 원래 자리로 돌아오는 일.


---

처치가 끝나자, 은인은 거울 앞에 섰다.

코끝은 거의 원래와 같아 보였다.

하지만 아주 가까이에서 보면 작은 결이 남아 있었다.

은인은 그 결을 손끝으로 만졌다.

“보여요?”

푸리나는 일부러 가까이 다가가 보았다.

“음.”

“보여요?”

“아주 가까이 보면.”

은인은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는 성실하게 다가와 확인했다.

“육안으로는 미세합니다. 다만 은인 님 본인은 촉각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죠니가 말했다.

“그레이는 거짓말 안 해서 좋아.”

푸리나는 웃었다.

“건조해서 문제지.”

그레이는 조금 억울한 듯했다.

“정보를 정확히 전달했을 뿐입니다.”

은인은 거울을 다시 보았다.

“저만 알 수 있을 만큼 남았어요.”

라이자는 물었다.

“괜찮아?”

은인은 잠시 생각했다.

이번에는 쉽게 “괜찮아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은 이제 조심해야 하는 말이었다.

은인은 한참 자기 얼굴을 보고, 코끝의 작은 결을 만지고, 라이자를 돌아보았다.

“조금 괜찮아졌어요.”

라이자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

“조금.”

“네.”

“그 정도면 오늘은 충분해.”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푸리나는 대본을 펼쳤다.

“좋아. 4막의 첫 번째 장면은 완벽해.”

라이자가 곧바로 말했다.

“완벽하다는 말 쓰지 마.”

푸리나는 바로 손을 들었다.

“수정. 충분해.”

라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이 좋아.”

은인도 따라 말했다.

“충분해.”

그 말은 “완벽하다”보다 덜 반짝였지만, 훨씬 더 편안했다.


---

하지만 4막은 코를 고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푸리나는 작업대 위에 작은 나무 상자를 올렸다.

은인은 그 상자를 보고 물었다.

“그 안에는 뭐가 있나요?”

“오늘의 두 번째 장면.”

“또 열어야 하나요?”

“원하면.”

라이자가 푸리나를 보았다.

“이번엔 뭐야?”

푸리나는 상자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여러 물건이 있었다.

인형극장의 붉은 망토.
받지 않았던 동전 주머니 대신 놓인 빈 주머니.
장난감 나라에서 가져온 작은 나사.
하융이 보여준 창문 조각처럼 보이는 얇은 유리.
그리고 라이자와 은인 사이에서 다시 묶은 느슨한 은실 한 가닥.

은인은 그 물건들을 보았다.

“이건 다 제 이야기인가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지나온 장면들이지.”

“이걸로 뭘 하나요?”

푸리나는 상자를 은인 쪽으로 밀었다.

“버릴 것과 남길 것을 정해.”

은인은 당황했다.

“제가요?”

“응.”

라이자는 곧바로 불안해졌다.

그녀는 망토를 버리라고 말하고 싶었다.

장난감 나라의 나사는 치우라고 말하고 싶었다.

빈 주머니도, 창문 조각도, 위험한 기억은 모두 상자에 넣어 닫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방금 고치고 싶은 손을 멈추었다.

그러니 이번에도 멈춰야 했다.

은인은 먼저 붉은 망토를 들었다.

그 망토는 박수를 떠올리게 했다.

“이건…….”

푸리나가 물었다.

“싫어?”

“아니요.”

은인은 망토를 만졌다.

“입고 있으면 답답했어요. 그런데 처음 입었을 때는 조금 좋았어요.”

죠니가 말했다.

“둘 다 맞겠지.”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남길래요. 하지만 접어서.”

그녀는 망토를 곱게 접었다.

입는 것이 아니라, 들고 있을 수 있는 크기로.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고 미소 지었다.

다음은 작은 나사였다.

은인은 나사를 손바닥에 올렸다.

“태엽 아이의 나사예요.”

라이자가 물었다.

“그 아이에게 돌려줄 거야?”

은인은 생각했다.

“돌려주고 싶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디 있는지 몰라요.”

하융이 있었다면 길을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없었다.

그레이가 말했다.

“분실물로 보관할 수 있습니다. 소유자가 확인되면 반환하도록 기록하겠습니다.”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그레이는 나사를 작은 봉투에 넣고 적었다.

장난감 나라 태엽 아이의 나사. 반환 예정.

은인은 그 문장을 보고 조금 안심했다.

그다음은 빈 주머니였다.

은인은 그것을 보자 표정이 복잡해졌다.

“동전은 안 받았는데, 왜 주머니가 있어요?”

푸리나는 말했다.

“받지 않은 것도 흔적이니까.”

은인은 빈 주머니를 들었다.

“안 받은 것도 남나요?”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선택의 부재와 거절도 기록될 수 있습니다.”

죠니가 말했다.

“가끔은 받은 것보다 안 받은 게 더 오래 남지.”

은인은 빈 주머니를 접었다.

“이건…….”

그녀는 라이자를 보았다.

“남길래요.”

라이자가 조금 놀랐다.

“왜?”

“나중에 제가 무언가를 받을 때, 먼저 물어보려고요.”

그레이가 아주 만족한 듯 기록했다.

빈 주머니: 계약 확인의 기억.

푸리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레이의 기록이 점점 소품 설명서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주 좋았다.

다음은 창문 조각이었다.

은인은 그것을 손에 들었다.

유리 조각에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그냥 흐릿한 자기 얼굴만 비쳤다.

“하융이 보여준 길은 여기 없어요.”

푸리나는 말했다.

“창문은 늘 길을 보여주지는 않아. 가끔은 보는 사람을 보여주지.”

은인은 그 유리 조각을 보았다.

거기에는 은인의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조금 휘어진 코.
조금 덜 무서운 눈.
아직 사람인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는 얼굴.

은인은 유리 조각을 내려놓았다.

“이건 지금은 못 정하겠어요.”

라이자가 말했다.

“그럼 보류하자.”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보류 항목으로 두겠습니다.”

푸리나가 말했다.

“좋아. 보류도 훌륭한 극적 장치지.”

라이자가 작게 웃었다.

“그 말,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푸리나는 과장되게 감동한 얼굴을 했다.

“라이자가 내 연출론을 이해했어.”

“아니, 아주 조금만.”

“그 조금도 소중해.”

마지막은 은실이었다.

느슨하게 다시 묶인 은실 한 가닥.

은인은 그것을 오래 보았다.

라이자도 그 실을 보았다.

둘 다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푸리나도 말하지 않았다.

이 실은 다른 소품들과 달랐다.

버릴 수도 없고, 그냥 보관할 수도 없었다.

이건 둘 사이에 아직 이어져 있는 것이었다.

은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건 어디에 둬요?”

라이자는 대답하지 못했다.

은인은 실을 들어 자기 손목에 감아보려 했다가 멈췄다.

조일 것 같았다.

라이자의 손목에 감아보려다가 그것도 멈췄다.

라이자를 묶는 것 같았다.

작업대에 놓으려니 너무 멀어 보였다.

의자에 묶으려니, 돌아올 때마다 봐야 해서 조금 무서울 것 같았다.

은인은 한참 고민하다가 말했다.

“문고리에 묶어도 돼요?”

라이자의 눈이 흔들렸다.

“문고리에?”

“네.”

은인은 문을 보았다.

“제가 나갈 때도 보이고, 돌아올 때도 보이니까.”

라이자는 입술을 다물었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도 기록하지 않고 기다렸다.

은인은 덧붙였다.

“문을 잠그는 실이 아니라, 여기가 문이라는 걸 알려주는 실로요.”

라이자는 아주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좋아.”

은인은 은실을 문고리에 묶었다.

느슨하게.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보이지 않을 만큼 작지도 않게.

은실은 문고리에서 낮게 빛났다.

그건 사슬이 아니었다.

장식도 아니었다.

그냥 표시였다.

여기는 나가는 곳.
여기는 돌아오는 곳.
그리고 문은 잠겨 있지 않다.


---

그때, 레플리카가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면, 푸리나가 불렀다.

은인이 코를 고치고, 소품들을 정리하고, 문고리에 은실을 묶은 뒤였다.

레플리카는 작업실에 들어오자마자 상황을 한 번에 보았다.

문 옆 의자.
문고리에 묶인 은실.
은인의 조금 남은 코끝 결.
라이자의 피곤한 얼굴.
푸리나의 만족스러운 표정.
그레이의 지나치게 성실한 기록판.
죠니의 “나는 관여했지만 책임은 조금만 있다”는 듯한 자세.

레플리카는 잠시 침묵했다.

“많은 일이 있었군.”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피노키오였어.”

레플리카는 그걸 설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더 묻지도 않았다.

그녀는 은인을 보았다.

“아프나?”

은인은 대답했다.

“조금 덜 아파요. 아니, 아프지는 않고…… 불편함이 줄었어요.”

레플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정확히 말하려고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은인은 조금 안심했다.

레플리카는 라이자를 보았다.

“그대는?”

라이자는 눈을 깜박였다.

“나?”

“그대도 돌아왔다고 들었다.”

푸리나가 작게 말했다.

“의자 공동 사용 사건이 있었지.”

그레이는 정정했다.

“사건이라기보다는 귀환 후 착석 기록입니다.”

죠니가 중얼거렸다.

“그게 그거 같은데.”

레플리카는 라이자에게 다시 물었다.

“아픈 곳은?”

라이자는 대답하려 했다.

없어.

하지만 은인이 옆에 있었다.

그리고 방금까지 은인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말한 사람이 자기였다.

라이자는 짧게 한숨을 쉬었다.

“많아.”

레플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라이자는 조금 헛웃음을 지었다.

“너무 쉽게 인정하네.”

“고래 배 속에서 자기 손의 실을 보고 돌아왔다면, 아픈 것이 정상이다.”

푸리나가 작게 중얼거렸다.

“레플리카, 상황 파악 너무 빠르다.”

레플리카는 라이자에게 다가갔다.

“손을 봐도 되나?”

라이자는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은실을 다루던 손.
은인을 고치던 손.
너무 많은 실을 만들었던 손.

“왜?”

“떨리고 있다.”

라이자는 그제야 자기 손이 떨리는 것을 알았다.

은인은 놀라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도 아파요?”

라이자는 대답하려다 멈췄다.

“조금.”

레플리카는 말했다.

“좋다. 그 말에서 시작하자.”

그녀는 라이자의 손을 보았다.

상처는 없었다.

하지만 손가락 끝이 굳어 있었고, 손목에 긴장이 남아 있었다.

“무리했다.”

라이자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나는 싸운 것도 아니고, 그냥 극 안에서—”

“극 안에서도 몸은 긴장한다.”

레플리카는 단호했다.

“그리고 마음이 쥔 것은 손에도 남는다.”

라이자는 입을 다물었다.

레플리카는 붕대가 아니라 따뜻한 천을 꺼냈다.

“쥐는 연습을 했으면, 놓는 연습도 해야 한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레플리카는 라이자의 손 위에 천을 올렸다.

“오늘은 고치려고 하지 마라.”

라이자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은인은 아직—”

“은인 말고, 그대.”

라이자는 멈췄다.

레플리카는 낮게 말했다.

“돌아온 사람을 돌보는 자도 돌아온 사람이다. 그대도 쉬어야 한다.”

은인은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는 당황한 듯했다.

자기가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낯선 얼굴이었다.

은인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라이자도 의자에 앉아도 돼요.”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은인은 문 옆 의자를 가리켰다.

“귀환용이라서요.”

그레이가 조용히 덧붙였다.

“강제 착석은 금지입니다.”

죠니는 결국 웃었다.

푸리나도 웃었다.

레플리카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좋은 규칙이다.”

라이자는 버티려 했다.

그러나 결국 의자에 앉았다.

은인은 그 옆에 섰다.

잠시 뒤, 은인은 물었다.

“저도 앉아도 돼요?”

라이자는 대답했다.

“응.”

둘은 다시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의자는 조금 좁았다.

그래서 푸리나는 바로 옆에 하나 더 의자를 가져왔다.

“좋아. 귀환용 의자 증설.”

그레이가 기록했다.

귀환용 의자: 2개로 증설. 사유 — 동시 귀환 가능성.

죠니가 말했다.

“이제 진짜 시설이네.”

푸리나는 웃었다.

“극장 기반 시설이지.”

레플리카는 라이자와 은인을 보았다.

“좋다. 오늘은 여기서 더 깊이 가지 마라.”

푸리나가 조금 아쉬운 듯 대본을 보았다.

“하지만 4막이 아직—”

레플리카가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즉시 대본을 닫았다.

“네. 오늘은 여기서 멈추겠습니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좋은 판단.”

푸리나는 속삭였다.

“레플리카한테는 가끔 이길 수가 없어.”

그레이가 말했다.

“이기려고 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

4막의 마지막 장면은 치료도, 대결도, 거대한 고백도 아니었다.

그저 정리였다.

은인은 붉은 망토를 접어 상자 안에 넣었다.

빈 주머니는 그레이의 기록판 옆에 두었다.

나사는 반환 예정 봉투에 넣었다.

창문 조각은 보류 상자에 넣었다.

문고리에는 느슨한 은실이 남았다.

코끝에는 작은 결이 남았다.

그리고 의자는 두 개가 되었다.

라이자는 손에 따뜻한 천을 올린 채 앉아 있었다.

은인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레플리카는 두 사람의 자세를 보고, 무리가 없는지 확인했다.

죠니는 문가에 기대어 있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정리했다.

푸리나는 무대 한가운데, 아니 작업실 한가운데에 서서 천천히 숨을 들이쉬었다.

《세상은 무대요, 모든 이는 주인공일지니!》의 기척은 아주 얇게 남아 있었다.

이 신술은 오늘 거창한 기적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질문 하나를 남겼다.

고치기 전에, 먼저 물었는가.

만져도 되는지.
아픈지.
불편한지.
정말 고치고 싶은지.
흔적을 남기고 싶은지.
그리고 고치는 손도 쉬어야 하는지.

푸리나는 대본을 펼쳤다.

4막의 페이지에는 여러 글씨가 남았다.

은인의 글씨.

저는 조금 괜찮아졌어요.

라이자의 글씨.

고칠 수 있어도 멈출 수 있어야 했다.

레플리카의 단정한 글씨.

돌아온 사람을 돌보는 자도 돌아온 사람이다.

그레이의 작은 기록.

문고리의 은실: 출입과 귀환의 표시. 잠금 기능 없음.

죠니의 삐딱한 글씨.

망토가 널 입게 두지 마.

푸리나는 마지막 줄을 비워두었다가, 천천히 적었다.

극은 사람보다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막을 내릴 줄 알아야 한다.

그녀는 펜을 내려놓았다.

“좋아.”

라이자는 이제 그 말에 딴지를 걸지 않았다.

은인이 물었다.

“다음 막은 뭐예요?”

푸리나는 은인을 보았다.

은인은 지쳐 있었지만, 눈은 조용했다.

라이자도 피곤해 보였지만, 이전보다 조금 느슨해져 있었다.

문고리의 은실은 약하게 빛났다.

푸리나는 대본의 다음 장을 넘겼다.

빈 페이지.

마지막 막.

“다음은 결말이야.”

라이자가 바로 말했다.

“사람이 되었습니다, 같은 결말이면 안 해.”

푸리나는 웃었다.

“알아.”

은인이 물었다.

“그럼 어떤 결말인가요?”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선언하지 않는 결말.”

“선언하지 않아요?”

“응.”

푸리나는 빈 페이지 위에 제목을 적었다.

5막 — 사람이 되었다고 선언하지 않는 결말

그 아래 작은 글씨가 이어졌다.

— 완성품이 아니라, 돌아올 수 있는 이름으로 —

막이 천천히 내려왔다.
(최대 5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