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186여관◆zAR16hM8he(7a0003e8)2026-05-22 (금) 04:50:42
《은빛 피노키오》
후일담 — 문고리의 은실
— 내일도 같은 답일 필요는 없다 —
다음 날 아침, 그레이는 작업실 문 앞에서 멈췄다.
문고리에 은실이 묶여 있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였다.
느슨하게.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보이지 않을 만큼 작지도 않게.
그레이는 잠시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기록판을 꺼냈다.
문고리 은실: 유지 여부 재확인 예정.
그는 그렇게 적고,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라이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그레이가 문을 열었다.
은실은 문이 열릴 때 살짝 흔들렸다.
끊어지지 않았다.
그레이는 그것도 기록했다.
문 개방 시 은실 간섭 없음.
푸리나가 작업실 안쪽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레이, 아침부터 은실의 근무 상태를 점검하는 거야?”
“기능 확인입니다.”
“그거 잠금장치 아니잖아.”
“그렇기 때문에 더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금장치가 아닌 것이 잠금장치처럼 작동하면 곤란합니다.”
푸리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레이, 가끔 너무 좋은 말을 너무 행정적으로 해.”
“죄송합니다.”
“칭찬이야.”
“그렇습니까?”
“응. 아마도.”
작업실 안에는 전날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귀환용 의자 두 개.
보류 상자.
반환 예정 봉투.
접힌 붉은 망토.
빈 주머니.
그리고 작은 거울 앞에 앉은 은인.
은인은 자기 코끝을 보고 있었다.
그 결은 아직 남아 있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보아야 알 수 있을 만큼 작았다.
라이자는 은인의 뒤에서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느린 동작이었다. 손목에 올렸던 따뜻한 천은 작업대 옆에 접혀 있었다.
그레이가 물었다.
“은인 님. 문고리 은실의 유지 여부를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은인이 돌아보았다.
“오늘도 물어보나요?”
“네. 어제 ‘내일 다시 정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은인은 문고리를 보았다.
“기억했어요?”
그레이는 고개를 숙였다.
“기록했습니다.”
은인은 잠시 생각했다.
“그럼 오늘은…… 그대로 둘래요.”
그레이는 적었다.
금일 유지.
은인이 바로 덧붙였다.
“하지만 조금 낮춰도 될까요?”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푸리나도 흥미롭게 보았다.
라이자는 차잔을 내려놓았다.
은인은 문고리로 다가갔다.
“어제는 제가 나가고 돌아오는 표시였어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조금 높아요.”
푸리나는 물었다.
“높으면 불편해?”
“불편하다기보다…….”
은인은 은실을 손끝으로 만졌다.
“제가 볼 수는 있는데, 잡으려면 손을 조금 들어야 해요.”
라이자는 조용히 들었다.
은인은 계속 말했다.
“오늘은 조금 낮게 두고 싶어요. 손을 들지 않아도 만질 수 있게.”
그레이는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전날이었다면, 은실의 장력과 문고리 회전 반경과 손가락 위치부터 계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먼저 물었다.
“낮추면 더 편할 것 같아?”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 열 때 걸리지 않게 해야 해.”
“그레이가 봐줄 수 있어요?”
그레이는 즉시 말했다.
“가능합니다.”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귀환용 은실 조정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라이자가 말했다.
“너는 해설하지 마.”
“하지만 후일담이잖아.”
“그래서 더 하지 마.”
푸리나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셋은 문고리 앞에 모였다.
은인이 은실의 매듭을 풀었다.
라이자는 손을 뻗으려다가 멈췄다.
“도와줄까?”
은인은 매듭을 보다 말했다.
“조금만요.”
라이자는 은인의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치지 않았다.
대신 매듭의 한쪽 끝을 잡아주었다.
그레이는 문을 열고 닫아보며 위치를 확인했다.
“이 높이면 개폐에 방해되지 않습니다.”
은인은 은실을 조금 낮게 묶었다.
느슨하게.
하지만 어제보다 손에 더 가까운 위치에.
은인은 문 앞에 서서 은실을 만졌다.
“좋아요.”
라이자가 물었다.
“오늘은?”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그레이는 기록했다.
문고리 은실: 위치 하향 조정. 사유 — 당사자 접근성 향상. 내일 재확인.
푸리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제 정말 시설 관리 기록이네.”
그레이는 진지했다.
“중요한 시설입니다.”
은인은 작게 웃었다.
“중요해요.”
그레이는 그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건 이미 충분히 남아 있었다.
---
아침 식사는 조용했다.
은인은 단맛이 나는 차를 마셨다.
라이자는 은인이 컵을 잡는 손을 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손목의 각도.
관절의 움직임.
코끝의 결.
차의 온도.
보고 싶은 곳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라이자는 은인의 얼굴을 보았다.
“맛은 어때?”
은인은 조금 생각했다.
“좋아요.”
라이자는 잠시 기다렸다.
은인은 컵을 내려놓고 다시 말했다.
“조금 뜨거워요.”
라이자는 즉시 컵을 가져가려 했다.
은인이 컵을 잡은 채 말했다.
“괜찮아요. 천천히 마실게요.”
라이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푸리나가 그 장면을 보며 숨을 죽였다.
라이자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알겠어.”
은인은 차를 조금 식혔다.
후후.
은빛 입술에서 작은 김이 흩어졌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들지 않았다.
푸리나도 말하지 않았다.
작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어제 이전의 라이자였다면, 컵은 이미 빼앗겼을 것이다.
어제 이전의 은인이었다면, “괜찮아요”만 말했을 것이다.
오늘 은인은 “좋아요”와 “뜨거워요”를 같이 말했고, 라이자는 컵을 빼앗지 않고 기다렸다.
푸리나는 속으로 박수쳤다.
겉으로는 치지 않았다.
이런 장면은 너무 큰 박수를 받으면 깨질 수 있었다.
라이자가 은인을 보며 말했다.
“천천히 마셔.”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 뒤, 은인이 물었다.
“라이자는 손 괜찮아요?”
라이자는 자기 손을 보았다.
어제 레플리카가 올려준 따뜻한 천이 아직 근처에 있었다.
“괜찮—”
라이자는 멈췄다.
은인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눈은 비난하지 않았다.
그냥 기다렸다.
라이자는 짧게 웃었다.
“조금 뻐근해.”
은인은 진지하게 말했다.
“레플리카에게 말해야 하나요?”
푸리나가 끼어들었다.
“레플리카를 부르면 라이자도 의자에 앉아야 할걸.”
라이자는 푸리나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 있어요.”
그레이가 조용히 덧붙였다.
“2개 있습니다.”
푸리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라이자도 조금 웃었다.
그 웃음은 작업실의 은빛에 부딪혀, 작게 반짝였다.
---
오후에는 반환 예정 봉투가 문제가 되었다.
작은 나사.
장난감 나라 태엽 아이에게서 떨어진 나사.
은인은 봉투를 들고 오래 바라보았다.
“돌려줘야 해요.”
라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지만 다시 장난감 나라에 가야 해요.”
라이자의 손이 굳었다.
아주 조금.
은인은 그것을 보았다.
“무서워요?”
라이자는 숨을 들이쉬었다.
“응.”
은인은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럼 안 갈까요?”
라이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답은 쉽지 않았다.
가지 마.
너무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은인이 가져온 나사는 누군가의 것이었다.
돌려주는 것도 은인의 책임이었다.
라이자는 문고리의 은실을 보았다.
어제보다 낮아진 은실.
손을 들지 않아도 닿는 높이.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가야 한다고 생각해?”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왜?”
“태엽 아이의 것이니까요.”
“그 아이가 괜찮다고 했잖아.”
은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사가 떨어졌는데 괜찮다고 했어요. 그건 괜찮은 게 아닌 것 같아요.”
라이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인은 봉투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저는 돌아올 수 있는지 다시 보고 싶어요.”
그 말에 라이자의 얼굴이 조금 흔들렸다.
돌아올 수 있는지 다시 보고 싶다.
그 말은 위험하면서도, 정직했다.
푸리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이번엔 어떻게 갈래?”
은인은 생각했다.
“혼자 가고 싶지는 않아요.”
라이자의 눈빛이 밝아지려다가, 은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은인은 말했다.
“하지만 라이자가 전부 대신 말해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같이 가되, 네가 먼저 말할래?”
“네.”
그레이가 말했다.
“반환 기록을 작성해야 하므로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푸리나가 손을 들었다.
“나는 무대 문만 열어둘게.”
죠니는 벽가에서 말했다.
“장난감 나라면 하융이 알아서 나타나겠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가에서 바람이 들어왔다.
하융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렸다.
“길은 이미 열려 있소.”
푸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후일담답지 않게 다시 외출이네.”
라이자가 말했다.
“외출도 후일담일 수 있어?”
푸리나는 웃었다.
“진짜 후일담은 끝난 뒤에 뭘 하는지 보는 거니까.”
은인은 봉투를 들었다.
“그럼 갔다 올게요.”
라이자는 말했다.
“같이 가자.”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요.”
문고리의 은실이 조금 흔들렸다.
문은 열렸다.
---
장난감 나라는 전날보다 조용했다.
아니, 소리는 여전히 컸다.
나팔도 울렸고, 회전목마도 돌았고, 색종이도 흩날렸다.
하지만 은인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어제는 모든 소리가 은인을 끌어당겼다.
오늘은 그 소리 사이의 틈이 들렸다.
반복되는 웃음 뒤의 태엽 소리.
과자 냄새 아래의 눅눅한 종이 냄새.
“괜찮아!”라는 말 사이에 떨어지는 작은 부품 소리.
은인은 봉투를 꼭 쥐었다.
라이자는 곁에 있었다.
하지만 한 걸음 뒤.
그레이는 기록판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은인보다 먼저 말하지 않았다.
태엽 아이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 옆에서, 같은 웃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괜찮아!”
끼릭.
“괜찮아!”
끼릭.
은인은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태엽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너 다시 왔구나!”
“네.”
“놀러 왔어?”
은인은 고개를 저었다.
“돌려주러 왔어요.”
태엽 아이는 눈을 깜박였다.
은인은 봉투를 열었다.
작은 나사가 나왔다.
태엽 아이의 웃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거…….”
“어제 떨어졌어요.”
태엽 아이는 바로 말했다.
“괜찮아!”
끼릭.
은인은 나사를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말했다.
“안 괜찮을 수도 있어요.”
태엽 아이는 웃었다.
“괜찮다니까!”
끼릭.
은인은 조금 무서웠다.
이 말이 맞는지, 자기가 괜히 아픈 곳을 건드리는 건 아닌지, 태엽 아이가 화낼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말했다.
“저도 어제 괜찮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태엽 아이가 멈췄다.
라이자가 한 걸음 앞으로 오려다가 멈췄다.
은인은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이걸 돌려줄게요. 다시 붙일지, 보관할지, 버릴지는 당신이 정해도 돼요.”
태엽 아이는 나사를 보았다.
“내가 정해?”
“네.”
“안 붙여도 돼?”
은인은 잠시 생각했다.
라이자가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흔적이 벌이 아니라 접힌 페이지일 수도 있다는 말.
“안 붙여도 돼요. 하지만 떨어졌다는 걸 몰랐던 것과, 알고도 안 붙이는 건 다를 것 같아요.”
태엽 아이는 나사를 받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이거 없으면 조금 느려져.”
“네.”
“있으면 다시 빨리 움직일 수 있어.”
“네.”
“빨리 움직이면 모두가 좋아해.”
은인은 작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요?”
태엽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장난감 나라의 음악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태엽 아이는 나사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 말했다.
“오늘은 안 붙일래.”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내일 붙일지도 몰라.”
“네.”
“아니면 모레.”
“네.”
은인은 조금 웃었다.
“내일도 같은 답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태엽 아이는 그 말을 따라 했다.
“내일도 같은 답일 필요는 없다.”
끼릭.
태엽 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그레이는 조용히 기록했다.
나사 반환 완료. 수령자 결정: 금일 미부착, 추후 재결정 가능.
라이자는 그 기록을 보며 생각했다.
반환은 끝이 아니었다.
돌려주고, 상대가 정하도록 기다리는 것.
그것도 배움이었다.
은인은 태엽 아이에게 말했다.
“저는 돌아갈게요.”
태엽 아이가 물었다.
“벌써?”
“네.”
“더 놀지 않고?”
은인은 잠시 생각했다.
“조금 놀고 싶어요.”
라이자의 손이 아주 조금 굳었다.
은인은 그걸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돌아가고 싶어요.”
태엽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놀고 싶은데 돌아가?”
“네.”
“왜?”
은인은 문 쪽을 보았다.
라이자와 그레이, 열린 길, 문고리의 은실을 떠올렸다.
“돌아가도 다시 올 수 있는지 보고 싶어서요.”
태엽 아이는 나사를 손에 쥐고 말했다.
“이상해.”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돌아섰다.
이번에는 길이 그렇게 멀어지지 않았다.
---
작업실로 돌아오자, 푸리나는 문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은인은 문을 지나오며 은실을 만졌다.
낮아진 은실은 손끝에 잘 닿았다.
“다녀왔어요.”
라이자가 뒤따라 들어왔다.
그레이도 들어왔다.
문은 닫혔다.
잠기지는 않았다.
푸리나는 물었다.
“어땠어?”
은인은 생각했다.
“이상했어요.”
“좋은 쪽?”
“모르겠어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은인은 귀환용 의자에 앉았다.
이번에는 라이자가 옆 의자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푸리나는 그걸 보고 웃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닫았다.
라이자는 은인에게 물었다.
“다시 가고 싶어?”
은인은 생각했다.
“언젠가는요.”
라이자의 손이 굳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풀었다.
“그럼 그때 다시 말해줘.”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 뒤 은인이 물었다.
“라이자는 무서웠어요?”
라이자는 솔직히 말했다.
“응.”
“그래도 같이 와줬어요.”
“응.”
“제가 먼저 말하게 해줬어요.”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응.”
은인은 조금 웃었다.
“잘했어요.”
라이자의 눈이 커졌다.
푸리나는 입을 막았다.
그레이도 아주 잠깐 멈췄다.
라이자가 물었다.
“내가?”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라이자도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라이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은 아마 오늘 라이자가 받은 가장 큰 보상이었다.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 후일담, 좋네.”
죠니가 어디선가 나타나 말했다.
“지금까지 중 제일 후일담답네.”
푸리나가 놀라 물었다.
“죠니, 어디 있었어?”
“문 밖.”
“왜?”
“들어오면 장면이 내 쪽으로 샐 것 같아서.”
푸리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가끔은.”
은인은 죠니를 보고 말했다.
“나사를 돌려줬어요.”
“잘했네.”
“놀고 싶었는데 돌아왔어요.”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꽤 잘했네.”
은인은 조금 자랑스러워졌다.
“박수는요?”
죠니는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안 칠래.”
은인이 눈을 깜박였다.
“왜요?”
“이번 건 박수보다 기억 쪽이 나아.”
은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
저녁이 되자, 푸리나는 대본 마지막 뒤에 후일담 페이지를 붙였다.
제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문고리의 은실
그 아래에는 오늘 있었던 일들이 적혔다.
은실을 낮춘 일.
뜨거운 차를 천천히 마신 일.
라이자가 손이 조금 뻐근하다고 말한 일.
나사를 돌려준 일.
태엽 아이가 오늘은 나사를 붙이지 않겠다고 정한 일.
은인이 놀고 싶었지만 돌아온 일.
라이자가 무서웠지만 같이 갔고, 대신 말하지 않은 일.
푸리나는 마지막 줄을 비워두었다.
“은인.”
“네.”
“오늘 후일담 마지막 줄, 네가 쓸래?”
은인은 펜을 받았다.
조금 망설이다가 썼다.
오늘은 돌아왔어요. 내일은 다시 정할래요.
라이자가 그 문장을 보았다.
“좋네.”
은인이 물었다.
“좋아요?”
“응.”
라이자는 은실이 묶인 문고리를 보았다.
“내일도 같은 답일 필요는 없으니까.”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레이는 기록판을 닫았다.
레플리카는 저녁 무렵 잠깐 들러 두 사람을 보고, 무리하지 않았는지 확인한 뒤 말했다.
“오늘은 충분하다. 더 증명하려 하지 마라.”
푸리나는 바로 대답했다.
“네. 막 내립니다.”
레플리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죠니는 문가에 기대어 있었다.
하융의 창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창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필요한 날에는 다시 열릴 것이다.
작업실의 등불이 낮아졌다.
문고리의 은실은 어제보다 낮은 곳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의자 두 개는 비어 있었다.
하지만 비어 있다는 것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누군가 돌아오면 앉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푸리나는 대본을 덮었다.
“《은빛 피노키오》, 여기서 끝.”
은인이 물었다.
“정말 끝인가요?”
푸리나는 웃었다.
“극은.”
“이야기는요?”
라이자가 대답했다.
“내일 다시 정하자.”
은인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코끝의 작은 결이 등불에 살짝 반짝였다.
그것은 더 이상 벌처럼 보이지 않았다.
문고리의 은실처럼, 너무 세게 조이지 않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작업실 문은 닫혔다.
잠기지는 않았다.
후일담 — 문고리의 은실
— 내일도 같은 답일 필요는 없다 —
다음 날 아침, 그레이는 작업실 문 앞에서 멈췄다.
문고리에 은실이 묶여 있었다.
어제와 같은 자리였다.
느슨하게.
문이 열리고 닫히는 것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하지만 보이지 않을 만큼 작지도 않게.
그레이는 잠시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기록판을 꺼냈다.
문고리 은실: 유지 여부 재확인 예정.
그는 그렇게 적고, 문을 두드렸다.
안쪽에서 라이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와.”
그레이가 문을 열었다.
은실은 문이 열릴 때 살짝 흔들렸다.
끊어지지 않았다.
그레이는 그것도 기록했다.
문 개방 시 은실 간섭 없음.
푸리나가 작업실 안쪽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레이, 아침부터 은실의 근무 상태를 점검하는 거야?”
“기능 확인입니다.”
“그거 잠금장치 아니잖아.”
“그렇기 때문에 더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잠금장치가 아닌 것이 잠금장치처럼 작동하면 곤란합니다.”
푸리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레이, 가끔 너무 좋은 말을 너무 행정적으로 해.”
“죄송합니다.”
“칭찬이야.”
“그렇습니까?”
“응. 아마도.”
작업실 안에는 전날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귀환용 의자 두 개.
보류 상자.
반환 예정 봉투.
접힌 붉은 망토.
빈 주머니.
그리고 작은 거울 앞에 앉은 은인.
은인은 자기 코끝을 보고 있었다.
그 결은 아직 남아 있었다.
아주 가까이에서 보아야 알 수 있을 만큼 작았다.
라이자는 은인의 뒤에서 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제보다 조금 느린 동작이었다. 손목에 올렸던 따뜻한 천은 작업대 옆에 접혀 있었다.
그레이가 물었다.
“은인 님. 문고리 은실의 유지 여부를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은인이 돌아보았다.
“오늘도 물어보나요?”
“네. 어제 ‘내일 다시 정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은인은 문고리를 보았다.
“기억했어요?”
그레이는 고개를 숙였다.
“기록했습니다.”
은인은 잠시 생각했다.
“그럼 오늘은…… 그대로 둘래요.”
그레이는 적었다.
금일 유지.
은인이 바로 덧붙였다.
“하지만 조금 낮춰도 될까요?”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푸리나도 흥미롭게 보았다.
라이자는 차잔을 내려놓았다.
은인은 문고리로 다가갔다.
“어제는 제가 나가고 돌아오는 표시였어요. 그런데 오늘 보니까 조금 높아요.”
푸리나는 물었다.
“높으면 불편해?”
“불편하다기보다…….”
은인은 은실을 손끝으로 만졌다.
“제가 볼 수는 있는데, 잡으려면 손을 조금 들어야 해요.”
라이자는 조용히 들었다.
은인은 계속 말했다.
“오늘은 조금 낮게 두고 싶어요. 손을 들지 않아도 만질 수 있게.”
그레이는 라이자를 보았다.
라이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전날이었다면, 은실의 장력과 문고리 회전 반경과 손가락 위치부터 계산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먼저 물었다.
“낮추면 더 편할 것 같아?”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문 열 때 걸리지 않게 해야 해.”
“그레이가 봐줄 수 있어요?”
그레이는 즉시 말했다.
“가능합니다.”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귀환용 은실 조정 작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라이자가 말했다.
“너는 해설하지 마.”
“하지만 후일담이잖아.”
“그래서 더 하지 마.”
푸리나는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셋은 문고리 앞에 모였다.
은인이 은실의 매듭을 풀었다.
라이자는 손을 뻗으려다가 멈췄다.
“도와줄까?”
은인은 매듭을 보다 말했다.
“조금만요.”
라이자는 은인의 손 위에 자기 손을 겹치지 않았다.
대신 매듭의 한쪽 끝을 잡아주었다.
그레이는 문을 열고 닫아보며 위치를 확인했다.
“이 높이면 개폐에 방해되지 않습니다.”
은인은 은실을 조금 낮게 묶었다.
느슨하게.
하지만 어제보다 손에 더 가까운 위치에.
은인은 문 앞에 서서 은실을 만졌다.
“좋아요.”
라이자가 물었다.
“오늘은?”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그레이는 기록했다.
문고리 은실: 위치 하향 조정. 사유 — 당사자 접근성 향상. 내일 재확인.
푸리나는 참지 못하고 말했다.
“이제 정말 시설 관리 기록이네.”
그레이는 진지했다.
“중요한 시설입니다.”
은인은 작게 웃었다.
“중요해요.”
그레이는 그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
그건 이미 충분히 남아 있었다.
---
아침 식사는 조용했다.
은인은 단맛이 나는 차를 마셨다.
라이자는 은인이 컵을 잡는 손을 보다가, 시선을 옮겼다.
손목의 각도.
관절의 움직임.
코끝의 결.
차의 온도.
보고 싶은 곳은 너무 많았다.
하지만 라이자는 은인의 얼굴을 보았다.
“맛은 어때?”
은인은 조금 생각했다.
“좋아요.”
라이자는 잠시 기다렸다.
은인은 컵을 내려놓고 다시 말했다.
“조금 뜨거워요.”
라이자는 즉시 컵을 가져가려 했다.
은인이 컵을 잡은 채 말했다.
“괜찮아요. 천천히 마실게요.”
라이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
푸리나가 그 장면을 보며 숨을 죽였다.
라이자는 손을 천천히 내렸다.
“알겠어.”
은인은 차를 조금 식혔다.
후후.
은빛 입술에서 작은 김이 흩어졌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들지 않았다.
푸리나도 말하지 않았다.
작은 장면이었다.
하지만 어제 이전의 라이자였다면, 컵은 이미 빼앗겼을 것이다.
어제 이전의 은인이었다면, “괜찮아요”만 말했을 것이다.
오늘 은인은 “좋아요”와 “뜨거워요”를 같이 말했고, 라이자는 컵을 빼앗지 않고 기다렸다.
푸리나는 속으로 박수쳤다.
겉으로는 치지 않았다.
이런 장면은 너무 큰 박수를 받으면 깨질 수 있었다.
라이자가 은인을 보며 말했다.
“천천히 마셔.”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 뒤, 은인이 물었다.
“라이자는 손 괜찮아요?”
라이자는 자기 손을 보았다.
어제 레플리카가 올려준 따뜻한 천이 아직 근처에 있었다.
“괜찮—”
라이자는 멈췄다.
은인이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 눈은 비난하지 않았다.
그냥 기다렸다.
라이자는 짧게 웃었다.
“조금 뻐근해.”
은인은 진지하게 말했다.
“레플리카에게 말해야 하나요?”
푸리나가 끼어들었다.
“레플리카를 부르면 라이자도 의자에 앉아야 할걸.”
라이자는 푸리나를 흘겨보았다.
하지만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의자 있어요.”
그레이가 조용히 덧붙였다.
“2개 있습니다.”
푸리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라이자도 조금 웃었다.
그 웃음은 작업실의 은빛에 부딪혀, 작게 반짝였다.
---
오후에는 반환 예정 봉투가 문제가 되었다.
작은 나사.
장난감 나라 태엽 아이에게서 떨어진 나사.
은인은 봉투를 들고 오래 바라보았다.
“돌려줘야 해요.”
라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하지만 다시 장난감 나라에 가야 해요.”
라이자의 손이 굳었다.
아주 조금.
은인은 그것을 보았다.
“무서워요?”
라이자는 숨을 들이쉬었다.
“응.”
은인은 봉투를 내려놓았다.
“그럼 안 갈까요?”
라이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답은 쉽지 않았다.
가지 마.
너무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은인이 가져온 나사는 누군가의 것이었다.
돌려주는 것도 은인의 책임이었다.
라이자는 문고리의 은실을 보았다.
어제보다 낮아진 은실.
손을 들지 않아도 닿는 높이.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가야 한다고 생각해?”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왜?”
“태엽 아이의 것이니까요.”
“그 아이가 괜찮다고 했잖아.”
은인은 고개를 저었다.
“나사가 떨어졌는데 괜찮다고 했어요. 그건 괜찮은 게 아닌 것 같아요.”
라이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은인은 봉투를 손에 쥐었다.
“그리고 저는 돌아올 수 있는지 다시 보고 싶어요.”
그 말에 라이자의 얼굴이 조금 흔들렸다.
돌아올 수 있는지 다시 보고 싶다.
그 말은 위험하면서도, 정직했다.
푸리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이번엔 어떻게 갈래?”
은인은 생각했다.
“혼자 가고 싶지는 않아요.”
라이자의 눈빛이 밝아지려다가, 은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은인은 말했다.
“하지만 라이자가 전부 대신 말해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이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가 같이 가되, 네가 먼저 말할래?”
“네.”
그레이가 말했다.
“반환 기록을 작성해야 하므로 저도 동행하겠습니다.”
푸리나가 손을 들었다.
“나는 무대 문만 열어둘게.”
죠니는 벽가에서 말했다.
“장난감 나라면 하융이 알아서 나타나겠지.”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창가에서 바람이 들어왔다.
하융의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렸다.
“길은 이미 열려 있소.”
푸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후일담답지 않게 다시 외출이네.”
라이자가 말했다.
“외출도 후일담일 수 있어?”
푸리나는 웃었다.
“진짜 후일담은 끝난 뒤에 뭘 하는지 보는 거니까.”
은인은 봉투를 들었다.
“그럼 갔다 올게요.”
라이자는 말했다.
“같이 가자.”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같이요.”
문고리의 은실이 조금 흔들렸다.
문은 열렸다.
---
장난감 나라는 전날보다 조용했다.
아니, 소리는 여전히 컸다.
나팔도 울렸고, 회전목마도 돌았고, 색종이도 흩날렸다.
하지만 은인에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어제는 모든 소리가 은인을 끌어당겼다.
오늘은 그 소리 사이의 틈이 들렸다.
반복되는 웃음 뒤의 태엽 소리.
과자 냄새 아래의 눅눅한 종이 냄새.
“괜찮아!”라는 말 사이에 떨어지는 작은 부품 소리.
은인은 봉투를 꼭 쥐었다.
라이자는 곁에 있었다.
하지만 한 걸음 뒤.
그레이는 기록판을 들고 있었다.
하지만 은인보다 먼저 말하지 않았다.
태엽 아이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있었다.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 옆에서, 같은 웃음을 반복하고 있었다.
“괜찮아!”
끼릭.
“괜찮아!”
끼릭.
은인은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태엽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너 다시 왔구나!”
“네.”
“놀러 왔어?”
은인은 고개를 저었다.
“돌려주러 왔어요.”
태엽 아이는 눈을 깜박였다.
은인은 봉투를 열었다.
작은 나사가 나왔다.
태엽 아이의 웃음이 아주 잠깐 멈췄다.
“그거…….”
“어제 떨어졌어요.”
태엽 아이는 바로 말했다.
“괜찮아!”
끼릭.
은인은 나사를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말했다.
“안 괜찮을 수도 있어요.”
태엽 아이는 웃었다.
“괜찮다니까!”
끼릭.
은인은 조금 무서웠다.
이 말이 맞는지, 자기가 괜히 아픈 곳을 건드리는 건 아닌지, 태엽 아이가 화낼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말했다.
“저도 어제 괜찮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니었어요.”
태엽 아이가 멈췄다.
라이자가 한 걸음 앞으로 오려다가 멈췄다.
은인은 계속 말했다.
“그러니까…… 이걸 돌려줄게요. 다시 붙일지, 보관할지, 버릴지는 당신이 정해도 돼요.”
태엽 아이는 나사를 보았다.
“내가 정해?”
“네.”
“안 붙여도 돼?”
은인은 잠시 생각했다.
라이자가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흔적이 벌이 아니라 접힌 페이지일 수도 있다는 말.
“안 붙여도 돼요. 하지만 떨어졌다는 걸 몰랐던 것과, 알고도 안 붙이는 건 다를 것 같아요.”
태엽 아이는 나사를 받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이거 없으면 조금 느려져.”
“네.”
“있으면 다시 빨리 움직일 수 있어.”
“네.”
“빨리 움직이면 모두가 좋아해.”
은인은 작게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요?”
태엽 아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처음으로.
장난감 나라의 음악이 아주 조금 느려졌다.
태엽 아이는 나사를 들고 한참 서 있었다.
그러다 말했다.
“오늘은 안 붙일래.”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내일 붙일지도 몰라.”
“네.”
“아니면 모레.”
“네.”
은인은 조금 웃었다.
“내일도 같은 답일 필요는 없으니까요.”
태엽 아이는 그 말을 따라 했다.
“내일도 같은 답일 필요는 없다.”
끼릭.
태엽 소리가 조금 작아졌다.
그레이는 조용히 기록했다.
나사 반환 완료. 수령자 결정: 금일 미부착, 추후 재결정 가능.
라이자는 그 기록을 보며 생각했다.
반환은 끝이 아니었다.
돌려주고, 상대가 정하도록 기다리는 것.
그것도 배움이었다.
은인은 태엽 아이에게 말했다.
“저는 돌아갈게요.”
태엽 아이가 물었다.
“벌써?”
“네.”
“더 놀지 않고?”
은인은 잠시 생각했다.
“조금 놀고 싶어요.”
라이자의 손이 아주 조금 굳었다.
은인은 그걸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하지만 오늘은 돌아가고 싶어요.”
태엽 아이는 이해하지 못한 듯했다.
“놀고 싶은데 돌아가?”
“네.”
“왜?”
은인은 문 쪽을 보았다.
라이자와 그레이, 열린 길, 문고리의 은실을 떠올렸다.
“돌아가도 다시 올 수 있는지 보고 싶어서요.”
태엽 아이는 나사를 손에 쥐고 말했다.
“이상해.”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리고 돌아섰다.
이번에는 길이 그렇게 멀어지지 않았다.
---
작업실로 돌아오자, 푸리나는 문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와.”
은인은 문을 지나오며 은실을 만졌다.
낮아진 은실은 손끝에 잘 닿았다.
“다녀왔어요.”
라이자가 뒤따라 들어왔다.
그레이도 들어왔다.
문은 닫혔다.
잠기지는 않았다.
푸리나는 물었다.
“어땠어?”
은인은 생각했다.
“이상했어요.”
“좋은 쪽?”
“모르겠어요.”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지.”
은인은 귀환용 의자에 앉았다.
이번에는 라이자가 옆 의자에 앉았다.
자연스럽게.
푸리나는 그걸 보고 웃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닫았다.
라이자는 은인에게 물었다.
“다시 가고 싶어?”
은인은 생각했다.
“언젠가는요.”
라이자의 손이 굳으려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스스로 풀었다.
“그럼 그때 다시 말해줘.”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 뒤 은인이 물었다.
“라이자는 무서웠어요?”
라이자는 솔직히 말했다.
“응.”
“그래도 같이 와줬어요.”
“응.”
“제가 먼저 말하게 해줬어요.”
라이자는 은인을 보았다.
“응.”
은인은 조금 웃었다.
“잘했어요.”
라이자의 눈이 커졌다.
푸리나는 입을 막았다.
그레이도 아주 잠깐 멈췄다.
라이자가 물었다.
“내가?”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라이자도 조금 돌아온 것 같아요.”
라이자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은 아마 오늘 라이자가 받은 가장 큰 보상이었다.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 후일담, 좋네.”
죠니가 어디선가 나타나 말했다.
“지금까지 중 제일 후일담답네.”
푸리나가 놀라 물었다.
“죠니, 어디 있었어?”
“문 밖.”
“왜?”
“들어오면 장면이 내 쪽으로 샐 것 같아서.”
푸리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런 배려를 할 줄 아는 사람이었어?”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가끔은.”
은인은 죠니를 보고 말했다.
“나사를 돌려줬어요.”
“잘했네.”
“놀고 싶었는데 돌아왔어요.”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꽤 잘했네.”
은인은 조금 자랑스러워졌다.
“박수는요?”
죠니는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안 칠래.”
은인이 눈을 깜박였다.
“왜요?”
“이번 건 박수보다 기억 쪽이 나아.”
은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
저녁이 되자, 푸리나는 대본 마지막 뒤에 후일담 페이지를 붙였다.
제목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문고리의 은실
그 아래에는 오늘 있었던 일들이 적혔다.
은실을 낮춘 일.
뜨거운 차를 천천히 마신 일.
라이자가 손이 조금 뻐근하다고 말한 일.
나사를 돌려준 일.
태엽 아이가 오늘은 나사를 붙이지 않겠다고 정한 일.
은인이 놀고 싶었지만 돌아온 일.
라이자가 무서웠지만 같이 갔고, 대신 말하지 않은 일.
푸리나는 마지막 줄을 비워두었다.
“은인.”
“네.”
“오늘 후일담 마지막 줄, 네가 쓸래?”
은인은 펜을 받았다.
조금 망설이다가 썼다.
오늘은 돌아왔어요. 내일은 다시 정할래요.
라이자가 그 문장을 보았다.
“좋네.”
은인이 물었다.
“좋아요?”
“응.”
라이자는 은실이 묶인 문고리를 보았다.
“내일도 같은 답일 필요는 없으니까.”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레이는 기록판을 닫았다.
레플리카는 저녁 무렵 잠깐 들러 두 사람을 보고, 무리하지 않았는지 확인한 뒤 말했다.
“오늘은 충분하다. 더 증명하려 하지 마라.”
푸리나는 바로 대답했다.
“네. 막 내립니다.”
레플리카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죠니는 문가에 기대어 있었다.
하융의 창은 이제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창이 완전히 사라진 것 같지는 않았다.
필요한 날에는 다시 열릴 것이다.
작업실의 등불이 낮아졌다.
문고리의 은실은 어제보다 낮은 곳에서 희미하게 빛났다.
의자 두 개는 비어 있었다.
하지만 비어 있다는 것은,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었다.
누군가 돌아오면 앉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푸리나는 대본을 덮었다.
“《은빛 피노키오》, 여기서 끝.”
은인이 물었다.
“정말 끝인가요?”
푸리나는 웃었다.
“극은.”
“이야기는요?”
라이자가 대답했다.
“내일 다시 정하자.”
은인은 그 말을 듣고 웃었다.
코끝의 작은 결이 등불에 살짝 반짝였다.
그것은 더 이상 벌처럼 보이지 않았다.
문고리의 은실처럼, 너무 세게 조이지 않는 표시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날 밤, 작업실 문은 닫혔다.
잠기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