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200익명의 참치 씨(c2970e66)2026-05-22 (금) 23:36:56
# 《다시 살아도 좋은 하루》

## 프롤로그 — 오늘이라는 무대

### — 이것도 극이야? 그냥 일인데 —

아침은 대체로 극적이지 않았다.

적어도 죠니 죠스타는 그렇게 생각했다. 전쟁터의 새벽처럼 피 냄새가 나는 것도 아니고, 왕궁의 대관식처럼 금실과 향 냄새가 섞이는 것도 아니며, 신전의 축일처럼 누군가가 종을 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아직 덜 깬 사람들의 발소리와, 식기 부딪히는 소리와,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 “장부가 어디 갔습니까?” 하고 묻는 소리와, 또 다른 누군가가 “전하께서 가져가셨습니다”라고 대답하는 소리로 시작되는 평범한 아침이었다.

그러니까, 더 문제였다.

평범한 아침은 방심하게 만든다. 사람이 정말로 망가지는 건 대개 장엄한 전투 한가운데가 아니라, 별일 아니라고 생각한 하루가 조금씩 삐걱이다가 끝내 발목을 잡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죠니는 창가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바깥의 빛은 아직 부드러웠고, 성벽 아래로는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누군가는 물동이를 들고 지나갔고, 누군가는 말에게 여물을 주었으며, 아이 하나는 빵을 훔치다 들켜 도망치고 있었다. 훔친 빵을 든 아이는 빠르지 않았지만, 잡으러 가는 어른도 진심으로 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죠니는 그 광경을 보며 낮게 말했다.

“좋은 추격전은 아니네.”

그 말에 대답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문을 열고 들어온 푸리나였다.

“그럼 제목을 붙여주면 좋아질지도 모르지!”

죠니는 고개를 돌렸다. 푸리나는 이미 아침부터 무언가를 꾸민 얼굴이었다. 좋지 않은 징조였다. 그녀가 저런 얼굴을 할 때마다 누군가는 배역을 맡았고, 누군가는 소품을 들었고, 누군가는 자기가 왜 무대 위에 서 있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을 했다. 대체로 그 셋 중 하나는 죠니였다.

그는 잠깐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아침부터?”

“아침이니까.”

“그게 이유가 돼?”

“물론.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은 원래 가장 훌륭한 개막 시간이야.”

“잠을 덜 깬 사람을 속이기 좋은 시간이라는 뜻이지.”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아주 만족스럽게 웃었다. 반박하지 않는 걸 보니, 어느 정도 맞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그녀는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와 양피지 한 장을 펼쳤다. 양피지에는 제목으로 보이는 글자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제목치고는 지나치게 길었다. 죠니는 그걸 보자마자 피곤해졌다.

“읽지 마.”

“아직 안 읽었는데?”

“이미 길어 보여.”

푸리나는 양피지를 가슴에 안고 말했다.

“오늘의 극은 아주 특별해. 전쟁도 아니고, 바다도 아니고, 왕관도 아니고, 죽은 자의 성도 아니야.”

“그럼 더 위험하네.”

“왜?”

“네가 특별하지 않은 걸 특별하게 만들려고 할 때 제일 피곤하거든.”

푸리나는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말했다.

“좋아. 그건 좀 맞아.”

죠니는 한숨을 쉬었다.

“솔직해서 고맙네.”

푸리나는 웃으며 양피지를 내려놓았다. 그러더니 창밖을 보았다. 아침빛 아래의 킬리키아 아르메니아는 아직 완전히 깨어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미 하루는 움직이고 있었다. 물류 창고 쪽에서는 누군가 물건 목록을 부르고 있었고, 병사들은 교대 인원을 확인하고 있었으며, 성문 쪽에서는 전선 시찰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거대한 사건은 없었다. 하지만 작은 일들은 이미 서로 부딪히고 있었다.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오늘은 그냥 하루야.”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그럼 극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극이지.”

죠니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손으로 얼굴을 문질렀다.

“그 말, 오늘 몇 번이나 할 생각이야?”

“필요할 때마다.”

“많겠네.”

그때 문밖에서 낮은 노크 소리가 났다. 그레이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장부가 있었다. 장부가 있다는 것은 대개 좋지 않은 뜻이었다. 특히 그레이가 아침 일찍 장부를 들고 나타났다면 더더욱.

그레이는 푸리나와 죠니를 번갈아 보았다.

“전하. 그리고 죠니 경. 아침 회의 전에 확인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죠니는 그레이의 장부를 보고 말했다.

“그거 죽은 장부야?”

그레이는 아주 잠깐 멈췄다.

“장부는 생물체가 아닙니다.”

“표정이 안 좋아 보여서.”

“표정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럼 네 표정인가.”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상당히 효과적이었다. 죠니는 더 묻지 않았다.

푸리나는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무슨 문제야?”

그레이는 장부를 펼쳤다. 페이지마다 숫자가 빽빽했다. 보급품, 마차, 말, 의약품, 수리용 목재, 화살, 빵, 그리고 누군가가 왜 기록했는지 알 수 없는 고양이 인형 세 개.

그레이가 말했다.

“전선 시찰용 배급 수량과 창고 반출 기록이 맞지 않습니다. 차이는 크지 않지만, 그대로 두면 오후에 추가 조정이 필요합니다.”

죠니는 장부를 보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숫자가 틀렸다는 말은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긴다. 특히 누군가가 그것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보고 있을 때는 더 그렇다.

그는 결국 장부를 흘끗 보았다.

“여기.”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어디입니까?”

죠니는 손가락으로 한 줄을 가리켰다.

“이 숫자, 여기서 이미 죽었네.”

그레이는 다시 한 번 멈췄다.

“숫자는 죽지 않습니다.”

“이건 죽었어. 장례 치러줘.”

푸리나가 웃음을 참다가 실패했다. 그레이는 아주 미세하게 눈썹을 움직였지만, 곧 장부를 다시 보았다. 그리고 죠니가 가리킨 줄을 따라가더니, 조용히 말했다.

“확실히 이 항목에서 중복 계산이 있습니다.”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봐. 사망 확인.”

“정정하겠습니다. 사망이 아니라 중복입니다.”

“그게 장부식 장례인가 보네.”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펜이 움직였다.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

죠니는 그녀의 표정을 보고 말했다.

“왜 그런 얼굴이야?”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닌데.”

“오늘의 극이 벌써 시작됐다는 얼굴.”

죠니는 장부와 푸리나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극이야?”

푸리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죠니는 천천히 말했다.

“그냥 일이잖아.”

“그러니까 극이지.”

죠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더니 낮게 중얼거렸다.

“이 하루, 시작부터 피곤하네.”

---

아침 회의실은 조금 뒤에 더 피곤해졌다.

레이튼이 있었기 때문이다.

회의 자체는 평범했다. 국경 마을 쪽의 물자 배분, 전선 시찰 경로, 피난민 임시 숙소, 주변 아미르들의 동향 확인, 그리고 푸리나가 몰래 넣은 “공연용 이동무대 수레의 공식 명칭” 안건까지. 마지막 것은 그레이가 회의 목록에서 빼려 했지만, 푸리나는 끝까지 “이름이 있어야 예산도 있다”고 주장했다.

죠니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눈은 뜨고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자세는 아니었다. 그러다 푸리나가 이동무대 수레의 이름을 “달빛 아래 노래하는 방랑 고양이 극장마차 1호”로 제안하는 순간, 그는 입을 열었다.

“그 수레, 이름 부르다가 바퀴 빠지겠는데.”

푸리나는 바로 반박했다.

“이름에는 혼이 있어.”

“바퀴에는 축이 있어.”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축이 더 중요합니다.”

푸리나는 배신당한 얼굴로 그레이를 보았다.

레이튼은 그때까지 조용히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찻잔을 내려놓았다. 회의실의 공기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죠니는 그 기척을 느끼고 미리 머리를 짚었다.

“레이튼.”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네, 죠니 경.”

“그 표정은 질문할 표정이야.”

“훌륭한 관찰입니다.”

“하지 마.”

“하지만 이미 모두가 답을 가지고 있는 듯하여, 질문이 필요한 순간으로 보입니다.”

죠니는 눈을 감았다.

“제일 싫은 말이야. 맞는 말이라서.”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고, 회의 참석자들을 둘러보았다.

“지금 우리는 전선 시찰 경로를 가장 안전한 방향으로 정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여쭙고 싶군요. 안전한 경로란, 누구에게 안전한 경로입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그레이의 펜이 멈췄다. 푸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몇몇 병사들은 서로 얼굴을 보았다. 죠니는 정말로 머리가 아픈 사람처럼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렀다.

“나왔다.”

레이튼이 말했다.

“시찰단이 다치지 않는 경로와, 피난민이 더 빨리 발견되는 경로가 다르다면, 어느 쪽을 안전하다고 부를 것인지 정해야 할 듯합니다.”

그 말은 회의실을 멈췄다. 진행은 늦어졌다. 시간이 걸렸다.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 답이 다시 열렸다.

죠니는 그것을 싫어했다.

그리고 동시에, 필요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 점이 더 싫었다.

“레이튼.”

“네.”

“너는 가끔 문을 열어놓고, 그 문이 왜 복도 한가운데 생겼는지 설명을 안 해.”

레이튼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 문을 지나갈지 말지는, 제가 정할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 대답도 싫어.”

“하지만?”

죠니는 한숨을 쉬었다.

“필요하겠지.”

레이튼은 만족스러운 듯 차를 다시 들었다.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고 작게 웃었다. 그레이는 회의록에 새로운 항목을 만들었다. **안전의 정의 재검토.** 죠니는 그 문구를 보고 말했다.

“오늘 장부에 이어 단어까지 죽겠네.”

그레이가 낮게 말했다.

“단어도 생물체가 아닙니다.”

“오늘은 많이 죽어.”

푸리나는 결국 웃었다.

회의는 느려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조금 더 나아졌다.

---

정오가 가까워질 무렵, 하융이 전선 시찰 준비를 마쳤다.

그는 마당에서 죠니를 기다리고 있었다. 먼지 낀 외투, 오래 걸은 사람의 자세, 그리고 현실 뒤쪽에 겹쳐진 무수한 가능성을 보는 듯한 눈. 하융은 늘 어딘가에 반쯤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현재에 있으면서도, 선택되지 않은 길들의 창가에 손을 얹고 있는 사람.

죠니는 말안장을 확인하며 말했다.

“오늘도 먼 길이야?”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멀지 않다고 하면 거짓이겠소.”

“좋은 시작이네.”

“다만 가야 할 길이오.”

“그건 더 나쁜 말이고.”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웃음은 크지 않았고, 약간 오래된 종이처럼 조용했다.

“그럼에도 경은 올 것이오.”

죠니는 고삐를 잡았다.

“그 말은 좀 건방진데.”

“틀렸소?”

죠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말에 올랐다.

“가자.”

그들은 성문을 나섰다. 푸리나의 무대는 여기서 크게 빛나지 않았다. 아니, 빛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죠니는 길 위의 먼지, 말발굽 소리, 멀리 보이는 피난민 수레, 병사들의 흐트러진 줄, 그리고 하융이 어느 순간 살짝 고개를 돌려 죽은 가능성을 보는 듯한 기척 속에서 이 하루가 이미 극이 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푸리나가 이걸 다 보고 있으면 좀 싫은데.”

하융이 물었다.

“보고 있으면 곤란하오?”

“멋있는 장면으로 만들까 봐.”

“경은 멋있는 것을 싫어하오?”

“내가 멋있는 척하는 걸 싫어하지.”

하융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 차이는 중요하구려.”

“그래. 레이튼한테 배우지 마.”

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그러나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았다. 작은 피난민 무리가 길을 잘못 들어 낮은 언덕 아래에 모여 있었고, 그중 한 사람이 수레바퀴를 고치다 손을 다쳤다. 큰 사고는 아니었다. 하지만 방치하면 늦어진다. 늦어지면 밤이 온다. 밤이 오면, 작은 사고는 큰 사고가 된다.

죠니는 말에서 내렸다.

“바퀴 봐.”

하융이 고개를 끄덕이고 움직였다. 죠니는 다친 사람 쪽으로 갔다. 손을 감싸고 있는 천은 피로 젖어 있었다. 다친 사람은 자꾸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는 말은 대체로 믿을 게 못 된다.

죠니는 낮게 말했다.

“괜찮으면 손을 그렇게 숨기진 않지.”

남자는 말을 잃었다.

죠니는 천을 풀어 상처를 보았다. 깊지는 않았다. 하지만 더럽게 찢어졌다. 그는 자기 물통을 열어 상처를 씻기고, 대충이나마 묶었다. 그 과정에서 남자가 떨자, 죠니는 짧게 말했다.

“아픈 건 정상이라서 그래.”

남자는 죄송하다고 했다.

죠니는 얼굴을 찡그렸다.

“사과할 일은 아니고.”

그는 상처를 묶은 뒤 일어났다. 그때 수레 쪽에서 삐걱이는 소리가 났고, 하융이 손짓했다. 바퀴가 완전히 빠지기 직전이었다. 죠니가 급히 움직였고, 빠지는 수레를 막으려다 손목을 살짝 삐끗했다.

아주 큰 부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팠다.

“젠장.”

하융이 다가왔다.

“괜찮소?”

죠니는 자기 손목을 돌려보았다.

“괜찮다고 하면 네가 안 믿을 거잖아.”

“그렇소.”

“그럼 좀 아픈 걸로.”

하융은 수레를 안정시키고, 피난민들을 다시 움직일 수 있게 도왔다. 시간이 걸렸다. 예정된 시찰은 늦어졌다. 보고서에는 비효율이라고 적힐지도 몰랐다. 그러나 피난민들은 다시 길을 찾았다.

그중 한 아이가 죠니에게 빵 조각을 내밀었다.

죠니는 그것을 보고 말했다.

“나한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도와주셨으니까요.”

빵은 작았다. 조금 딱딱했고, 모양도 좋지 않았다. 죠니는 잠시 그것을 보다가 받아 들었다.

“고맙네.”

아이는 달려갔다.

죠니는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맛은 별로였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이상하게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융이 말했다.

“오늘 온 보람은 있었구려.”

죠니는 입안의 빵을 삼켰다.

“그 말, 내가 하려고 했는데.”

하융은 웃었다.

“그럼 경이 하시오.”

죠니는 피난민들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보았다. 먼지가 올랐다. 햇빛은 뜨거웠다. 손목은 아팠다. 입안의 빵은 퍽퍽했다. 모든 것이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는 낮게 말했다.

“그래.”

잠깐의 침묵 뒤.

“오늘 온 보람은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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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하루는 이미 충분히 길었다.

하지만 하루는 끝나기 전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죠니는 그것을 알고 있었다. 피곤한 몸으로 돌아오자마자 그레이는 수정된 장부를 들고 왔고, 푸리나는 아침에 미뤄둔 긴 제목을 끝내 발표하려 했으며, 레이튼은 전선 시찰의 보고를 듣고 “피난민이 길을 잘못 든 이유는 길이 나빴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지도에서 그들의 입장이 빠졌기 때문입니까?” 같은 질문을 던졌다.

죠니는 식탁에 앉아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다들 정말 지치지도 않네.”

푸리나가 말했다.

“지쳤어.”

“그런 사람의 얼굴이 아닌데.”

“지쳤지만, 제목은 붙일 수 있어.”

“그게 더 무서워.”

그레이는 장부를 펼쳤다.

“죠니 경. 낮에 확인한 피난민 수레와 관련해 배급량을 조정해야 합니다.”

“지금?”

“지금 하지 않으면 내일 오전 보고가 늦어집니다.”

“내일 오전 보고가 좀 늦어지면?”

그레이는 조용히 그를 보았다.

죠니는 손을 들었다.

“알았어. 장부 줘.”

레이튼은 차를 따르며 말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이 생깁니다.”

죠니는 고개를 들었다.

“생기지 마.”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이미 생겼습니다.”

“죽여.”

“질문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다루는 것입니다.”

“장부 숫자도 오늘 죽었는데 질문이라고 못 죽을 건 없지.”

푸리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그레이는 웃지 않았지만, 펜 끝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하융은 조용히 차를 마셨다. 아스트리트는 그 모든 광경을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이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분명 모두 피곤했다. 하루는 엉망이었다. 회의는 늦어졌고, 장부는 틀렸고, 질문은 사람들을 멈추게 했고, 전선 시찰에서는 사고가 생겼으며, 죠니는 손목을 다쳤다. 그런데도 이 식탁에는 이상한 온기가 있었다. 서로가 서로를 방해하고, 지치게 하고, 놀리고, 붙잡고 있었다.

아스트리트는 그 온기가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죠니는 장부를 보다가 빵 조각을 입에 물었다. 낮에 받은 것과 비슷하게 딱딱한 빵이었다. 그는 그것을 씹으며 중얼거렸다.

“오늘 다시 살 수 있으면, 좀 덜 엉망으로 만들 수 있겠는데.”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식탁 위의 촛불이 흔들렸다.

푸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아주 조금 빛났다.

“죠니.”

죠니는 빵을 씹다 말고 그녀를 보았다.

“왜.”

푸리나는 천천히 웃었다. 극장주가 새로운 막의 문을 발견했을 때 짓는 웃음이었다.

“방금 좋은 말을 했어.”

죠니는 즉시 얼굴을 찡그렸다.

“취소할게.”

“늦었어.”

촛불이 다시 흔들렸다. 식탁의 그림자가 길어졌고, 창밖의 밤이 조금 더 깊어졌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어딘가에서 아침빛이 다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잡았다.

레이튼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하융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는 무언가가 겹쳐지는 것을 본 사람처럼 조용해졌다.

아스트리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죠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리나.”

“응.”

“이거 네 짓이야?”

푸리나는 손을 가슴에 얹었다.

“정확히 말하면, 네 말이 문을 열었고 내 극장이 그 문을 무대로 만든 거지.”

“그럼 네 짓이네.”

“대체로.”

죠니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 하루도 충분히 길었는데.”

푸리나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다시 살아보자.”

“싫다고 하면?”

“싫어하는 얼굴도 배역의 일부야.”

“최악이네.”

그러나 촛불은 이미 아침빛으로 바뀌고 있었다. 식탁 위의 장부가 사라지고, 빈 회의실의 아침 공기가 다시 열렸다. 푸리나의 긴 제목이 아직 읽히기 전의 시간. 그레이의 장부가 아직 펼쳐지기 전의 시간. 레이튼의 질문이 아직 회의실을 멈추기 전의 시간. 하융과 전선으로 나가기 전의 시간. 아스트리트가 이 이상한 하루를 아직 이해하지 못하던 시간.

죠니는 다시 창가에 기대어 있었다.

아침이었다.

방금 전까지 입안에 남아 있던 딱딱한 빵 맛은 사라져 있었다. 손목의 통증도 사라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빵과 통증이 있었다는 기억은 남아 있었다.

문이 열렸다.

푸리나가 들어왔다. 아침부터 무언가를 꾸민 얼굴로.

“죠니!”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아주 낮게 말했다.

“아.”

푸리나는 눈을 빛냈다.

“오늘의 극은—”

죠니가 말을 끊었다.

“제목 읽기 전에 하나만 말해두자.”

“뭔데?”

죠니는 창밖을 보았다. 빵을 훔쳐 달아나는 아이가 다시 뛰고 있었다. 어른은 이번에도 진심으로 쫓지 않았다.

그는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이 하루, 생각보다 귀찮아질 거야.”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그러니까 극이지.”

죠니는 눈을 감았다.

“그래.”

잠깐의 침묵.

“또 그 말이네.”

막이 천천히 열렸다.

**1막 — 첫 번째 하루: 엉망인 하루**

그 아래, 아침 회의록의 빈 칸처럼 한 줄이 남았다.

**— 고치고 싶은 것들이 많다는 건, 아직 붙잡고 싶은 것들도 많다는 뜻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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