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203익명의 참치 씨(c2970e66)2026-05-22 (금) 23:58:29
# 《다시 살아도 좋은 하루》

## 3막 — 세 번째 하루: 완벽한 하루

### — 실수를 모두 없앤 자리에는, 때때로 웃음도 함께 사라진다 —

푸리나는 제목을 끝까지 읽었다.

그것은 길었다. 길어도 너무 길었다. 제목이라기보다는 짧은 선언문 같았고, 선언문이라기에는 중간에 고양이와 달빛과 방랑과 기적이라는 단어가 너무 많이 들어갔다. 죠니는 처음 두 문장까지는 들으려 했고, 세 번째 문장에서 포기했으며, 네 번째 문장쯤에는 창밖의 아이가 빵을 훔치는 순간을 보고 있었다. 아이는 이번에도 망설이다가 손을 뻗었다. 어른은 이번에도 아주 조금 늦게 뒤돌아보았다.

푸리나는 숨도 거의 쉬지 않고 제목을 끝냈다. 그리고 매우 뿌듯한 얼굴로 죠니를 보았다.

“어때?”

죠니는 잠시 침묵했다.

“수레 이름이 아니라 수레 일생이네.”

푸리나의 얼굴이 환해졌다.

“좋은 평가야?”

“아니.”

“그래도 반응은 있었어.”

“너는 반응이면 다 먹고 살 수 있냐.”

“극장주는 대체로 그래.”

죠니는 피식 웃었다. 완전히 웃은 것은 아니지만, 웃음에 가까웠다. 푸리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그녀는 제목을 접으면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죠니는 그 장면을 보며 생각했다. 이건 남겨도 되겠네.

하지만 이번 하루는 완벽하게 만들기로 했다.

그는 제목을 들었다. 푸리나의 웃음도 남겼다. 그러면서도 장부를 미리 고치고, 레이튼의 질문을 너무 납작하게 만들지 않고, 하융과 전선에서 사고를 막되 공백을 남기지 않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말만 놓고 보면 간단했다.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하지만 불가능에 가까운 일을 몇 번쯤 시도해보는 건 죠니에게 아주 낯선 일도 아니었다.

그레이가 들어왔다. 장부를 들고 있었다.

죠니는 이번에는 그녀가 말하게 두었다. 장부 오류를 설명하게 두고, 페이지를 펼치게 두고, 계산의 흐름을 따라가게 두었다. 그리고 그레이가 중복 항목에 닿기 조금 전에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었다.

“여기. 이 숫자가 좀 이상하지 않아?”

그레이는 멈춰서 그 줄을 보았다. 이번에는 죠니가 답을 통째로 던지지 않았다. 그레이가 직접 확인할 시간을 남겼다. 그녀는 숫자를 따라가며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중복 계산입니다.”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

그레이는 펜을 들고 정정했다. 그러다가 아주 잠깐 죠니를 보았다.

“방금은 제가 찾을 수 있도록 기다리신 겁니까?”

죠니는 시선을 피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든가.”

그레이는 고개를 숙였다. 표정은 여전히 차분했지만, 첫 번째 하루의 그 미세한 곤란함과 두 번째 하루의 차가운 효율 사이 어딘가에 작은 온도가 생겼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죠니는 그녀가 또 의미를 붙이기 전에 먼저 말했다.

“뭔가 말하지 마.”

푸리나는 입을 닫았다.

그러나 눈은 웃고 있었다.

죠니는 생각했다. 좋아. 이건 조금 나아졌다.

---

회의실에서도 죠니는 비슷한 방식을 시도했다.

레이튼의 질문을 막으면 회의는 빠르다. 하지만 빠른 회의는 얕았다. 그렇다고 레이튼을 그대로 두면 회의는 다시 늦어지고, 모두는 머리를 싸매게 된다. 아마 그게 필요한 시간일 때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그 시간을 조금 다르게 열어야 했다.

레이튼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죠니는 이번에도 그 기척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먼저 결론을 말하지 않았다.

레이튼이 입을 열었다.

“안전한 경로란, 누구에게 안전한 경로입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첫 번째 하루처럼, 사람들은 멈췄다. 그레이의 펜도 멈췄고, 푸리나도 고개를 들었다. 죠니는 그 침묵을 이번에는 끊지 않았다. 잠깐 두었다. 너무 오래 두지도 않았다. 침묵도 오래 두면 사람을 굳게 만든다.

그가 말했다.

“시찰단 기준 안전이랑 피난민 기준 안전이 다를 수 있다는 거지.”

레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그럼 둘 다 적자. 그리고 둘이 충돌할 때 기준을 정해야 해. 그걸 지금 정하는 게 좋겠네.”

레이튼은 죠니를 보았다. 이번에는 질문을 빼앗긴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질문이 이어진 얼굴이었다.

“그렇다면 두 번째 질문이 생깁니다.”

죠니는 즉시 이마를 짚었다.

“그건 예상 못 했네.”

푸리나가 웃음을 참았다.

레이튼은 부드럽게 말했다.

“피난민을 더 빨리 발견하는 경로가 시찰단에게 위험하다면, 위험을 감수할 권한은 누가 가집니까? 현장 지휘관입니까, 군주입니까, 아니면 그 길을 걷는 사람들 각자입니까?”

회의실이 다시 조용해졌다.

죠니는 작게 욕할 뻔했다. 이건 확실히 필요했다. 필요하니 더 귀찮았다.

그는 낮게 말했다.

“너, 질문이 번식하냐?”

레이튼은 아주 조금 웃었다.

“좋은 질문은 대개 그렇습니다.”

“지독하네.”

그러나 이번 회의는 첫 번째 하루처럼 무작정 늘어지지도 않았고, 두 번째 하루처럼 너무 빨리 닫히지도 않았다. 질문은 열렸고, 곧 항목이 되었다. 그레이는 회의록에 **위험 감수 권한 및 현장 재량**이라는 항목을 만들었다. 푸리나는 그 단어를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제목으로는 별로네.”

죠니가 말했다.

“제목으로 쓰지 마.”

“나도 그 정도 감각은 있어.”

“가끔 없잖아.”

회의실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죠니는 그 웃음을 들었다. 그래. 이것도 남았다.

좋은 방향인 것 같았다.

너무 좋은 방향이라 조금 불안했다.

---

전선 시찰에서 죠니는 더 조심했다.

그는 사고를 막되, 모든 것을 지워버리지는 않으려 했다. 말로 하면 우스운 일이다. 사고는 막아야 한다. 다치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 굳이 피를 흘려서 의미를 만들 필요는 없다. 그것은 그가 싫어하는 종류의 낭만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우연을 지워버리면, 사람들은 서로에게 닿을 기회를 잃기도 한다. 문제는 그 경계였다.

하융은 이번에도 그를 보며 말했다.

“경은 오늘도 무언가를 조정하려는 얼굴이오.”

죠니는 말 위에서 대답했다.

“너랑 다니면 내 얼굴이 너무 많이 읽히네.”

“경은 생각보다 얼굴에 많이 쓰이오.”

“그런 소리 처음 듣는데.”

“아마 다들 예의상 말하지 않았을 것이오.”

죠니는 하융을 노려보았다.

“너도 예의 좀 챙겨.”

하융은 웃었다.

그들은 수레가 고장날 길목에 먼저 도착했다. 죠니는 이번에는 바퀴가 빠질 돌을 치웠지만, 피난민들이 아예 그 길을 지나지 못하게 막지는 않았다. 위험한 경사는 손보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천천히 가라고 알려주었다. 하융은 옆에서 피난민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았다. 죽은 가능성의 창가에 서 있는 사람답게, 그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고의 그림자를 보는 듯했다.

피난민 수레는 천천히 내려왔다. 바퀴는 빠지지 않았다. 남자의 손도 다치지 않았다. 아이도 울지 않았다. 그런데 수레가 경사를 지나갈 때, 작은 짐 하나가 떨어졌다. 죠니는 그것을 보고 말에서 내렸다. 짐은 빵이 든 작은 주머니였다. 아이가 허둥지둥 뛰어오려 했지만, 죠니가 먼저 주워 건넸다.

아이는 놀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감사합니다.”

죠니는 주머니를 건넸다.

“이번엔 안 흘리게 해.”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가 주머니 안에서 작은 빵 조각 하나를 꺼냈다. 첫 번째 하루와 같은 빵이었다. 딱딱하고, 모양도 별로고, 맛도 없을 것 같은 빵.

아이는 그것을 죠니에게 내밀었다.

죠니는 잠시 멈췄다.

이번에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다. 죠니는 무리하게 사람을 구하지 않았고, 손목도 삐끗하지 않았다. 그래도 아이는 빵을 내밀었다.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떨어진 주머니를 주워줬으니까. 그 정도였다.

그는 빵을 받았다.

“고맙네.”

아이는 웃고 달려갔다.

죠니는 빵을 내려다보았다. 첫 번째 하루의 빵과 같은 듯 달랐다. 같은 사건은 아니었다. 하지만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하융이 옆에서 말했다.

“오늘도 온 보람은 있었구려.”

죠니는 그를 보았다.

“너 일부러 그러냐?”

“무엇을 말이오?”

“아니. 됐어.”

죠니는 빵을 한 입 베어 물었다. 역시 맛은 별로였다. 이번에도 별로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웃음이 조금 나왔다.

“맛없네.”

하융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버릴 정도는 아니오?”

죠니는 빵을 삼켰다.

“응. 그런 정도.”

그리고 잠시 뒤, 낮게 말했다.

“그 정도면 괜찮지.”

---

오후는 순조로웠다.

너무 순조롭지는 않았다. 그 점이 이상하게 중요했다. 보고서에는 조정된 경로, 현장 재량, 피난민 행렬 안정화, 소규모 물자 분실 회수 같은 항목이 들어갔다. 큰 부상은 없었다. 손실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완전히 아무 일도 없는 하루는 아니었다.

죠니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완벽하게 고치려면, 아직도 더 고칠 수 있다.

푸리나의 제목도 더 짧게 만들 수 있고, 그레이의 장부 오류도 더 빨리 고칠 수 있고, 레이튼의 질문도 더 깔끔하게 항목화할 수 있으며, 하융과의 전선에서 빵 주머니가 떨어지는 일마저 막을 수 있다. 그렇게 하면 하루는 더 안전해지고, 더 빠르고, 더 흠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더 얇아질 것이다.

그 생각이 들자 죠니는 잠시 멈췄다.

얇아진다는 말이 언제부터 자기 안에서 이렇게 분명해졌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성문으로 돌아오며 하융에게 말했다.

“하융.”

“듣고 있소.”

“사람은 어느 정도까지 고쳐도 되는 걸까.”

하융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말발굽이 먼지를 밟는 소리가 이어졌다. 성벽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오.”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진짜 어렵다는 뜻이네.”

“경이 고치려는 것이 상처라면, 고칠 수 있는 만큼 고치는 것이 좋겠지. 경이 막으려는 것이 죽음이라면, 막을 수 있는 만큼 막아야 할 것이오.”

“그렇지.”

“허나 경이 고치려는 것이 하루 자체라면.”

하융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 하루에 살던 사람들도 함께 달라질 것이오.”

죠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융은 이어 말했다.

“죽은 가능성들은 내 뒤에 많소. 그러나 살아 있는 현재는 늘 하나뿐이오. 그 하나를 너무 무서워하지 마시오.”

죠니는 하융을 보았다.

“그 말, 좀 좋네.”

“그렇소?”

“너무 좋게 말해서 문제야.”

“그럼 다음에는 더 투박하게 말하겠소.”

“부탁할게.”

---

저녁 식탁은 처음으로 조금 균형이 맞았다.

푸리나는 아침에 읽었던 긴 제목의 축약판을 다시 제안했다. 그레이는 “행정 문서에 들어가기 어렵습니다”라고 말했고, 푸리나는 “행정 문서가 극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라고 반박했다. 죠니는 빵을 씹으며 말했다.

“행정 문서는 대체로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해. 그래서 오래 살아남는 거고.”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문서는 생물체가 아닙니다.”

죠니는 손가락으로 그녀를 가리켰다.

“그 말도 오늘 살아남았네.”

그레이는 잠시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푸리나는 웃었다.

레이튼은 식탁에 앉아 낮의 회의록을 다시 보았다.

“위험 감수 권한이라는 표현은 너무 딱딱하지 않습니까?”

그레이가 말했다.

“정확합니다.”

푸리나가 말했다.

“딱딱해.”

죠니가 말했다.

“딱딱한데 정확하면 그레이 쪽이 이겨.”

레이튼은 웃었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꾸지요. 정확한 표현이 반드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입니까?”

죠니는 머리를 감쌌다.

“저녁까지 왜 이래.”

레이튼은 태연했다.

“낮에 다루다 만 질문입니다.”

“질문도 식사 시간은 지켜야지.”

“질문은 식사하지 않습니다.”

죠니는 그레이를 보았다.

“저것도 생물체가 아니래.”

그레이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질문은 개념입니다.”

“오늘 다들 나를 이기려고 작정했네.”

식탁에 웃음이 번졌다. 아주 큰 웃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있었다. 푸리나의 웃음, 하융의 낮은 웃음, 레이튼의 조용한 미소, 그레이의 거의 보이지 않는 표정 변화. 아스트리트는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는 여전히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조금 보였다.

이들의 하루는 효율적이지 않다. 말이 많고, 질문이 많고, 농담이 중간에 끼어들고, 장부와 극 제목과 전선 보고가 한 식탁 위에서 뒤섞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혼선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잃지 않는다. 완벽하지 않은 대신, 서로를 자주 건드린다. 방해하고, 붙잡고, 웃게 하고, 생각하게 한다.

아스트리트는 조용히 죠니를 보았다.

죠니는 딱딱한 빵을 씹고 있었다. 낮에 아이에게 받은 빵이었다. 그는 그것을 맛없다는 얼굴로 씹으면서도 버리지 않았다.

아스트리트는 그 얼굴을 기억했다.

그것은 승리자의 얼굴도, 구원자의 얼굴도 아니었다. 생명을 긍정한다는 교리에서 그녀가 배워온 빛나는 얼굴과도 달랐다. 닳고, 피곤하고, 조금 귀찮아하면서도, 이상하게 버리지 않는 얼굴.

그녀는 아직 그게 무엇인지 몰랐다.

그러나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

그 질문은 식탁이 정리된 뒤에 왔다.

푸리나는 그날의 극이 꽤 마음에 든 듯 보였고, 그레이는 회의록과 장부를 정리하고 있었으며, 레이튼은 끝내 질문 두 개를 더 남겼고, 하융은 창가에서 밤공기를 보고 있었다. 죠니는 식탁 끝에 앉아 남은 빵 조각을 손가락으로 굴리고 있었다.

아스트리트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죠니 경.”

죠니는 고개를 들었다.

“응.”

“질문해도 되겠습니까?”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요즘 질문이 유행이네.”

아스트리트는 조금 당황했다.

“불편하시다면—”

“아니. 해.”

아스트리트는 숨을 고르듯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말을 고르는 데 서툴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질문은 그녀에게도 쉽게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저는 생명을 긍정하라고 배웠습니다.”

죠니는 빵 조각을 내려놓았다.

아스트리트는 계속했다.

“다치지 않게 하고, 살 수 있게 하고, 더 나아질 수 있게 돕는 것. 저는 그것이 생명을 긍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맞는 말이네.”

죠니가 말했다.

아스트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경은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어떻게?”

“경은 상처를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실패를 원하시는 것도 아니고, 위험을 일부러 키우는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완벽하게 고친 하루보다, 조금 닳고 엉성한 하루에서 더 살아 있는 얼굴을 하십니다.”

죠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스트리트는 그 침묵을 허락으로 받아들이고 말을 이었다.

“경은 생명을 긍정한다기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닳은 것을 농담처럼 다시 집어 드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가 멀리서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레이의 펜이 멈췄다. 레이튼은 일부러 조용히 있었다. 하융은 창밖을 보던 자세 그대로 듣고 있었다.

죠니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그 말, 꽤하네.”

아스트리트는 긴장했다.

“무례했다면 사과드립니다.”

“아니. 맞는 쪽이라서 좀 그렇지.”

죠니는 빵 조각을 다시 집어 들었다. 굴렸다. 딱딱한 빵 부스러기가 손끝에 묻었다.

“나도 잘 몰라.”

아스트리트는 눈을 깜박였다.

“모르십니까?”

“응.”

죠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 거 다 알고 사는 사람 별로 없어.”

잠시 침묵.

“근데 다 고치면, 내가 좋아하던 것들도 같이 없어지더라.”

아스트리트는 조용히 들었다.

죠니는 말을 이었다.

“푸리나가 말도 안 되는 제목으로 웃기는 거. 그레이가 죽은 숫자 앞에서 진짜로 심각해지는 거. 레이튼 질문 때문에 머리가 아픈데, 결국 그 질문이 필요했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거. 하융이랑 먼지 먹으면서 돌아오다가, 그래도 한 사람은 살렸다고 생각하는 거.”

그는 빵 조각을 보았다.

“이런 맛없는 빵을 받고, 버리긴 좀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스트리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죠니는 피곤하게 웃었다.

“그런 게 다 좀 귀찮은데.”

잠시 멈추고.

“버리긴 아깝더라고.”

또 한 번의 침묵.

“이 삶이.”

그 말은 크지 않았다. 선언도 아니었다. 식탁 끝에서, 딱딱한 빵 조각을 굴리며 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 말이 방 안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아스트리트는 그 말을 오래 들었다. 그녀는 아직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조금 알 것 같았다. 생명의 긍정은 늘 밝고 곧은 길의 언어만은 아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다 닳은 것을 버리지 않고 다시 집어 드는 방식으로도 나타난다. 그것은 멋있어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농담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그 안에도, 삶을 다시 선택하는 힘이 있다.

아스트리트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죠니는 말했다.

“조금이면 충분해.”

“경은요?”

“나도 조금만 알아.”

그 말에 푸리나가 결국 웃었다. 작게, 조심스럽게.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왜 웃어.”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그 얼굴은 아무것도 아닌 얼굴이 아닌데.”

그레이가 아주 작게 말했다.

“그 표현은 오늘 세 번째입니다.”

죠니는 그레이를 보았다.

“기록하지 마.”

“이미 했습니다.”

죠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래.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히 살아 있네.”

그 말이 떨어지자, 촛불이 다시 흔들렸다.

푸리나가 죠니를 보았다.

“한 번 더 돌릴래?”

이번에는 죠니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식탁을 보았다. 푸리나, 그레이, 레이튼, 하융, 아스트리트. 딱딱한 빵. 정리되지 않은 질문. 수정이 필요한 장부. 길고 이상한 제목. 먼지 묻은 전선 보고.

그리고 아직 완벽하지 않은 하루.

죠니는 낮게 말했다.

“아니.”

푸리나의 눈이 조금 커졌다.

“정말?”

“응.”

그는 의자에 등을 기댔다.

“다음은 그냥 살아보자.”

촛불은 흔들리다가, 이번에는 아침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저녁은 저녁인 채로 남았다. 하루는 더 이상 접히지 않았다.

막이 천천히 낮아졌다.

**4막 — 네 번째 하루: 고치지 않는 연습**

그 아래, 딱딱한 빵 부스러기처럼 작은 한 줄이 남았다.

**— 삶을 긍정한다는 것은, 때때로 버리기 아까운 귀찮음들을 다시 집어 드는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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