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204익명의 참치 씨(c2970e66)2026-05-23 (토) 00:19:23
# 《다시 살아도 좋은 하루》
## 4막 — 네 번째 하루: 고치지 않는 연습
### — 삶을 긍정한다는 것은, 때때로 버리기 아까운 귀찮음들을 다시 집어 드는 일이다 —
아침은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죠니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지 못했다. 식탁 위의 촛불은 몇 번 흔들렸고, 창밖의 밤은 잠시 얇아지는 듯했지만, 더 이상 새벽으로 접히지 않았다. 장부는 장부인 채 남아 있었고, 찻잔은 비어 있었으며, 푸리나가 접어둔 지나치게 긴 제목의 양피지는 식탁 한쪽에서 여전히 쓸데없이 당당했다. 레이튼은 아직 묻지 않은 질문을 품은 사람처럼 조용했고, 그레이는 방금 적은 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고, 하융은 창밖의 어둠을 보며 방금 전까지 지나간 하루들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듯했다. 아스트리트는 죠니를 보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이해하지 못함을 숨기지 않았다.
죠니는 손끝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문질렀다. 낮에 아이에게 받았던 빵은 딱딱했고, 저녁 식탁의 빵은 그보다 나았다. 그런데 기억에 더 오래 남는 쪽은 맛없는 빵이었다. 사람은 가끔 아주 쓸모없는 방식으로 기억한다.
“안 돌아가네.”
푸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돌아가.”
“네가 멈춘 거야?”
“아니. 네가 멈춘 거지.”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꼭 무대 중앙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별것 아닌 말을 해도, 그 말 뒤에 조명 하나쯤은 숨어 있는 것처럼 만든다. 죠니는 그 점이 조금 짜증났고, 조금 익숙했고, 이상하게도 싫지만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굉장히 있어 보이는데, 정확히는 무슨 뜻이야?”
푸리나는 의자에 앉았다. 그녀도 조금 지쳐 보였다. 하루를 여러 번 다시 산 것은 죠니만이 아니었다. 다만 푸리나는 그것을 피곤함보다 흥미에 가깝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이 극은 내가 네 하루를 마음대로 돌리는 극이 아니야. 네가 ‘다시 살 수 있다면’ 하고 말했기 때문에 문이 열린 거지. 그리고 지금 네가 ‘다음은 그냥 살아보자’고 말했으니까, 무대도 멈춘 거야.”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리한 설명이네. 책임 소재가 아주 적당히 흩어져 있어.”
푸리나는 웃었다.
“극장주는 책임도 연출할 줄 알아야 하니까.”
“그건 좀 무서운 말인데.”
“조금만 무서운 말이야.”
그레이가 기록판을 들었다.
“반복 종료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죠니는 고개를 돌렸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반복의 중심이 죠니 경이었으니까요.”
“그런 표현은 너무 커. 내가 무슨 시계축이라도 된 것 같잖아.”
“시계축이라는 비유는 부적절하지 않습니다. 하루가 죠니 경의 인식 변화를 기준으로 반복 및 정지했으므로—”
“됐어. 그만. 네가 설명하면 진짜로 내가 기계 부품이 되는 기분이야.”
그레이는 잠시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략히 적겠습니다.”
죠니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래. 종료. 일단은.”
그레이는 적었다.
**반복 종료. 단, 당사자 인식 변화에 따른 잠정 종료로 추정.**
죠니는 그 문장을 흘끗 보고 말했다.
“그게 간략한 거야?”
“필요한 정도로 줄였습니다.”
“장부는 사람을 지치게 해. 숫자랑 문장들이 전부 줄 맞춰 서 있는 척하는데, 꼭 한 놈쯤은 대열에서 빠져 있거든. 그러면 네가 그걸 찾고, 나는 옆에서 눈 아프게 같이 보고, 결국 둘 다 피곤해져.”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장부는 사람을 지치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그렇게 잘해?”
푸리나가 웃었다. 그레이는 반박하려다 말았다. 아마 적절한 반박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쯤에서 반박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듯했다.
죠니는 그레이를 보며 조금 더 말했다.
“그래도 싫진 않아. 정확히 말하면 장부는 싫어. 장부 자체는 별로야. 그런데 네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숫자 하나를 붙잡고 있는 걸 옆에서 같이 보는 시간은…… 뭐, 그렇게까지 싫진 않더라.”
그레이의 펜 끝이 아주 조금 멈췄다.
“그것은 칭찬입니까?”
“아마도.”
“불명확합니다.”
“죠니식 칭찬은 원래 상태가 안 좋아.”
푸리나가 말하자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너는 왜 남의 칭찬 체계까지 분석하고 있어?”
“재밌으니까.”
“그게 제일 나쁜 이유야.”
하지만 죠니는 웃고 있었다. 아주 조금.
아스트리트는 그 웃음을 보았다. 그리고 조금 전 죠니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장부는 싫지만, 그레이와 같이 보는 시간은 그렇게 싫지 않다. 그것은 그녀가 배워온 생명의 긍정과는 아주 다른 말이었다. 생명을 긍정한다면 더 낫게 하고, 더 안전하게 하고, 더 많이 살려야 한다. 그것은 여전히 옳았다. 하지만 죠니는 그 옳은 말 사이에 있는 귀찮고 사소한 순간들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아스트리트가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십니까?”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뭘?”
“더 이상 되돌리지 않는다면…… 오늘 남은 시간은 그냥 사는 겁니까?”
그 질문은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잠깐 방 안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냥 산다. 여러 번 되돌린 뒤에는 그 말이 이상하게 낯설어진다. 죠니는 식탁 위의 것들을 보았다. 양피지, 장부, 빈 찻잔, 빵 부스러기, 덜 정리된 보고서. 푸리나는 아직 제목을 포기하지 않은 얼굴이었고, 그레이는 내일 아침 보고를 걱정하고 있었고, 레이튼은 분명히 아직 묻지 않은 질문이 있었고, 하융은 전선의 다른 가능성 하나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낮게 말했다.
“그냥 살아야지.”
잠시 뒤, 덧붙였다.
“그게 제일 귀찮긴 한데.”
푸리나가 물었다.
“귀찮은데?”
죠니는 식탁을 보며 말했다.
“나쁘진 않아. 귀찮은 게 전부 나쁜 건 아니더라. 없애보니까 알겠어.”
---
그날 밤은 끝나지 않은 하루의 뒷정리로 이어졌다.
극이 멈췄다고 해서 장부가 저절로 맞아 들어가지는 않았고, 반복이 끝났다고 해서 질문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피난민 시찰 보고는 정리해야 했고, 배급 수량은 다시 확인해야 했으며, 레이튼이 던졌던 위험 감수 권한 문제는 다음 회의로 넘길지, 오늘 밤 안에 초안을 잡을지 결정해야 했다. 푸리나는 “오늘의 극적 성과”라는 제목으로 무언가를 쓰려다 그레이에게 세 번 제지당했다. 세 번째 제지 때는 그레이도 아주 조금 지쳐 보였다.
죠니는 도망갈 수 있었다. 사실 도망치고 싶었다. 몸은 아프지 않았지만 정신이 피곤했다. 하루를 여러 번 산다는 것은, 하루를 몇 배로 더 길게 겪는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도 그는 식탁 끝에 앉아 있었다. 그레이가 펼친 장부를 보고, 하융의 시찰 보고를 듣고, 레이튼이 가끔 던지는 질문에 짜증을 냈고, 푸리나가 자꾸 쓸데없이 말을 화려하게 만들 때마다 단어를 잘라냈다.
그레이가 말했다.
“피난민 행렬은 임시 숙소까지 도착했습니다. 다만 내일 오전 추가 배급이 필요합니다.”
죠니는 장부를 보았다. 숫자들이 줄을 맞춰 있었다. 하지만 그 줄 맞춤을 믿으면 안 된다. 숫자는 종종 얌전한 얼굴로 거짓말을 한다. 물론 그레이는 숫자가 생물체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죠니는 그런 식으로 느꼈다.
“여기 빵 수량이 또 이상한데.”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 부분입니까?”
죠니는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었다.
“이거. 낮에 받은 추가 명단이 반영 안 됐어. 빵이 숫자에서 탈영했네.”
그레이는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누락입니다.”
“이번엔 숫자가 죽은 건 아니고, 길을 잃은 거지.”
“숫자는 이동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찾아줘야지. 혼자 못 돌아오잖아.”
푸리나는 입을 막고 웃었다. 그레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아주 잠깐 시선이 흔들렸다. 죠니는 그것을 보았다. 그 미세한 흔들림이 있었다. 이게 첫 번째 하루에는 있었고, 완벽한 하루에는 없었다. 그때는 장부가 맞았고, 그레이는 덜 곤란했으며, 모두가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 좋은 하루였다. 그런데 이런 작은 흔들림은 없었다.
이런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 이상하다.
그래도 다시 살아도 괜찮은 조각이라고는 할 수 있었다.
레이튼이 옆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질문이 있습니다.”
죠니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없어.”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들을 수 있어. 네 질문은 일어날 때 소리가 나. 사람 머리 안쪽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 같은 게.”
레이튼은 흥미로운 얼굴이 되었다.
“질문이 일어나는 소리라. 좋은 표현입니다.”
“가져가지 마.”
“이미 기억했습니다.”
죠니는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그래서 뭔데.”
레이튼은 장부와 보고서를 번갈아 보았다.
“우리가 지금 놓친 숫자를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단순한 누락으로 처리할지, 피난민 집계 방식 자체의 문제로 볼지 정해야 합니다. 즉, 오늘의 오류는 사건입니까, 구조입니까?”
죠니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런 질문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진짜로 피곤하게 한다. 그런데 없으면 더 위험한 종류의 질문이다. 사람은 실수를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하고 넘어가고 싶어 한다. 그러면 편하니까. 하지만 같은 종류의 실수가 다시 온다면, 그건 누군가의 실수가 아니라 길의 문제일 수도 있다. 장부의 칸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고, 보는 눈이 잘못 놓인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낮게 말했다.
“네 질문은 머리에 안 좋아. 진짜로. 듣고 있으면 누가 머릿속 책장을 다 열어젖히는 기분이야.”
레이튼은 조용히 기다렸다.
“근데 그게 없으면 우리가 너무 빨리 똑똑한 척을 하게 돼. 숫자 하나 찾았다고, 사람 하나 놓칠 뻔한 구조까지 고친 것처럼 굴겠지.”
죠니는 장부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좋아. 구조 문제로 보자. 피곤한 쪽이 대체로 오래 남으니까.”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죠니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럼 그냥 그렇게 말해. 굳이 나한테 돌아서 말하게 하지 말고.”
“죠니 경이 직접 말하는 편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너 진짜 성격 나빠.”
“자주 듣습니다.”
하융이 낮게 말했다.
“그 질문 덕에 내일 같은 사람이 빠지지 않을 수도 있소.”
죠니는 하융을 보았다.
“너까지 붙으면 내가 졌네.”
“이긴 사람이 있소?”
죠니는 잠시 생각했다.
“장부?”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장부는 승패의 주체가 아닙니다.”
푸리나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꽤 크게 웃었다. 촛불이 흔들렸다. 방 안은 피곤했고, 장부는 아직 닫히지 않았고, 질문은 사람을 계속 붙잡았다. 그런데 그 웃음은 분명히 있었다.
죠니는 그 웃음을 듣고 생각했다.
이런 거구나.
정말 별것 아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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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트는 그 밤의 식탁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녀가 보기에는 이 사람들은 효율적이지 않았다. 누군가 하나가 답을 알고 있으면 바로 처리하면 될 일을, 굳이 같이 확인했다. 이미 질문의 방향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정리하면 될 일을, 굳이 질문하게 두었다. 보고서도 한 번에 완벽히 정리하지 않고, 중간중간 농담과 반박과 침묵을 섞었다. 그녀가 기사단에서 배운 방식과는 달랐다. 위계가 있고, 명령이 있고, 확인이 있고, 실행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이 식탁에서는 사람들이 자꾸 서로에게 걸렸다.
푸리나는 죠니가 피곤해하는 순간을 보고 말을 줄였다가, 다시 일부러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그레이는 죠니의 지적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확인하는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다. 레이튼은 답을 강요하지 않고 질문을 놓았다. 하융은 가끔씩,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의 무게를 현재의 한 문장으로 끌고 왔다. 죠니는 그 모든 것에 짜증을 내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스트리트는 조용히 말했다.
“이상합니다.”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뭐가?”
“분명 더 완벽한 하루가 있었습니다. 덜 다치고, 덜 틀리고, 덜 멈추는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하루가 더…….”
그녀는 말을 찾았다. 푸리나는 기다렸다. 레이튼도, 그레이도, 하융도 기다렸다. 아스트리트는 마침내 말했다.
“사람이 많아 보입니다.”
죠니는 그 표현을 듣고 잠시 멈췄다.
푸리나는 작게 감탄했다.
“좋은 말이네.”
아스트리트는 당황했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닙니다.”
레이튼이 말했다.
“의도하지 않은 말이 더 정확할 때도 있습니다.”
죠니는 아스트리트를 보았다.
“그래. 맞아.”
그는 장부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손목은 아프지 않았다. 오늘은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기억 속에는 아팠던 하루도 있었고, 아프지 않았지만 빈 하루도 있었고, 지금처럼 조금 귀찮은 하루도 있었다.
“완벽한 하루에는 사람이 좀 적었어. 이상하지. 다들 있었는데, 덜 보였거든.”
아스트리트는 조용히 들었다.
“일은 잘 굴러갔고,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았고, 장부도 얌전히 맞아떨어졌어. 좋은 하루였지. 그건 알아.”
죠니는 빵 부스러기를 손끝으로 밀었다.
“근데 좋은 하루였다는 것하고, 다시 살아도 괜찮은 하루였다는 건 좀 다르더라. 완벽한 하루는 깔끔했는데, 이상하게 내가 그 안에 별로 없었어. 푸리나도 덜 웃고, 그레이도 덜 곤란해하고, 레이튼도 덜 짜증나고, 하융이랑 먼지 먹으면서 돌아오는 느낌도 없고.”
“덜 짜증나는 것이 나쁜 일입니까?”
아스트리트가 물었다.
죠니는 잠깐 생각했다.
“보통은 좋은 일이지.”
“그런데요?”
“근데 레이튼 질문은 짜증나도 가끔 필요해. 진짜 짜증나는 건 그거야. 쓸모없는 질문이면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맞는 질문이라 머리에 남거든.”
레이튼은 웃었다.
죠니는 그를 가리켰다.
“좋아하지 마. 칭찬 반, 항의 반이야.”
“그 비율은 기록해둘 만하군요.”
“기록하지 마.”
그레이가 말했다.
“기록 대상이 아닙니다.”
“고마워.”
푸리나는 이 대화를 들으며 웃었다.
아스트리트는 그 웃음과 죠니의 투덜거림을 보았다. 그녀는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다. 죠니는 상처를 좋아하지 않는다. 실수를 숭배하지도 않는다. 위험을 낭만적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고친다는 이름으로 사람 사이의 마찰과 우연과 웃음까지 지워버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의 긍정은 빛나는 구호가 아니라, 피곤한 식탁에서 빠지지 않고 앉아 있는 태도에 가까웠다.
아스트리트가 말했다.
“그럼 생명을 긍정한다는 건, 단순히 덜 다치게 하는 것만은 아니겠군요.”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기본이고.”
“그다음은요?”
죠니는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그래서 고르지 않고 말했다.
“글쎄. 나한테 그런 걸 깔끔하게 물어보면 대답이 안 나와. 레이튼이나 푸리나 쪽에 물어봐. 그쪽은 말 예쁘게 잘 하잖아.”
푸리나가 바로 말했다.
“죠니가 하는 말도 가끔 좋아.”
“가끔이면 됐어.”
죠니는 다시 아스트리트를 보았다.
“덜 다치게 하는 건 중요해. 죽을 사람 살리는 것도 중요하고, 고칠 수 있는 건 고쳐야지. 그걸 안 하자는 게 아니야. 그런 식으로 들리면 내가 말을 잘못한 거고.”
그는 식탁을 가볍게 두드렸다.
“근데 그걸 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닿는 순간까지 다 지워버리면 좀 곤란하더라. 부딪히고, 묻고, 웃고, 짜증내고, 같이 숫자 하나 찾아내는 그런 거. 진짜 별거 아닌데, 없애보니까 하루가 얇아졌어.”
잠깐 침묵.
“그러니까 뭐…….”
죠니는 조금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나는 그런 걸 버리긴 좀 아까운가 봐.”
아스트리트는 고개를 숙였다.
“기억하겠습니다.”
죠니는 바로 말했다.
“너무 진지하게 기억하진 마.”
“어째서입니까?”
“그럼 내가 너무 대단한 말 한 것 같잖아. 난 그냥 오늘 하루에 좀 질려서 투덜거리는 중이야.”
푸리나가 웃었다.
아스트리트는 잠깐 멈췄다가, 이번에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어색했다. 하지만 있었다.
죠니는 그걸 보고 생각했다.
이것도 아마.
---
밤이 더 깊어지자 모두가 조금씩 흩어졌다.
그레이는 장부를 정리했고, 레이튼은 남은 질문을 내일로 미루겠다고 선언했다. 죠니는 그 선언에 대해 “훌륭한 자제력”이라고 평가했고, 레이튼은 “질문에도 숙성이 필요합니다”라고 답했다. 하융은 전선 보고를 접으며 내일 다시 길을 살피겠다고 했다. 푸리나는 양피지를 접었다가 다시 폈다가, 결국 제목의 절반을 지우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큰 양보였다.
죠니는 식탁 끝에 남아 있었다.
푸리나가 다가왔다.
“어때?”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뭐가.”
“오늘.”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은 여러 번 있었다. 엉망인 하루, 고친 하루, 완벽에 가까운 하루, 그리고 지금의 하루.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런 질문은 레이튼에게 넘기는 편이 낫다. 죠니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어느 하루를 다시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는가였다.
그는 말했다.
“길었어.”
푸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게 감상?”
“중요한 감상이야. 하루가 세 번쯤 접혔다 펴졌는데 짧았다고 하면 그게 더 무섭지.”
“그리고?”
“귀찮았어.”
“그것도 감상?”
“아주 중요한 감상이지. 네 제목은 길고, 그레이 장부는 눈 아프고, 레이튼 질문은 사람 머리를 갉아먹고, 하융이랑 전선 돌면 신발에서 먼지가 안 빠져. 오늘은 아스트리트까지 와서 내 삶의 방식이 이상하다고 아주 정중하게 찔렀고.”
푸리나는 웃음을 참았다.
“나쁘진 않았고?”
죠니는 잠시 침묵했다.
“응. 나쁘진 않았어.”
그 대답은 작았다. 그러나 푸리나는 그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받았다. 평소 같으면 박수라도 쳤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이번 극은 박수보다 조용한 확인이 어울렸다.
죠니는 푸리나를 보며 말했다.
“너, 처음부터 이걸 보여주려고 한 거야?”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응. 나는 그냥 네가 어떤 하루를 고를지 보고 싶었어.”
“참 극장주다운 무책임이네.”
“칭찬?”
“비슷한 거. 정확히는 항의랑 칭찬이 적당히 섞인 거.”
푸리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네가 처음에는 큰 순간을 찾는 줄 알았어.”
죠니는 시선을 내렸다.
푸리나는 이어 말했다.
“이 삶을 다시 살아도 좋다고 말하게 만드는, 엄청나게 반짝이는 순간. 그런 걸 찾는 줄 알았어.”
죠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생각은 낯설지 않았다. 자신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니, 지금도 가끔 그렇게 생각한다. 뭔가 큰 순간, 증명되는 순간, 끝내 닿는 순간. 그런 게 있어야만 삶 전체를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오늘 하루는 그렇지 않았다.
푸리나가 웃었다. 그레이가 장부를 들고 심각해졌다. 레이튼의 질문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하융과 먼지를 먹고 돌아왔다. 아스트리트가 이해하지 못한 채 진지하게 물었다. 맛없는 빵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있었다.
죠니는 낮게 말했다.
“반짝이긴 하더라.”
푸리나가 조용히 물었다.
“뭐가?”
“별거 아닌 것들이. 네가 좋아하는 무대 조명 같은 건 아니고, 장부 위에 묻은 잉크라든가, 맛없는 빵 조각이라든가, 레이튼 질문 듣고 다 같이 표정 썩는 순간이라든가. 하융이 먼지 뒤집어쓴 얼굴로 별일 아닌 말 하는 것도 그렇고.”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죠니는 식탁 위의 빵 부스러기를 보았다.
“없애보니까 알겠더라. 별거 아닌 것들이 빠지면, 하루가 얇아져. 잘 굴러가긴 하는데, 내가 다시 살고 싶은 하루는 아니게 돼.”
그 말이 방 안에 남았다.
푸리나는 미소 지었다.
“그거 좋은 대사야.”
죠니는 바로 말했다.
“가져가지 마.”
“이미 늦었어.”
“알았어. 대신 제목은 짧게 해.”
푸리나는 잠깐 고민했다.
“《별거 아닌 것들》?”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괜찮네.”
푸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응.”
“죠니가 제목을 칭찬했어.”
“취소할까?”
“아니. 이미 기록됐어.”
그레이가 멀리서 말했다.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그레이!”
그레이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비공식 제목까지 모두 기록하면 장부가 과밀해집니다.”
죠니는 낮게 웃었다.
정말 별거 아닌 밤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
죠니는 그날 잠들기 전, 잠깐 창밖을 보았다.
성벽 아래는 조용했다. 빵을 훔치던 아이도, 쫓던 어른도 없었다. 장부를 찾던 소리도 사라졌다. 하루는 끝났다. 완벽하지 않았고, 정리되지 않았고, 내일로 미룬 질문도 있었고, 또 틀릴지도 모를 장부도 있었다.
그런데 죠니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아니, 가벼운 건 아니었다. 그의 삶은 가볍지 않았다. 고통도 있었고, 먼 길도 있었고, 이미 지나온 상처들도 있었다. 영원히 반복된다면 지겨울 것이다. 화도 날 것이다. 같은 실수를 다시 보게 된다면, 욕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반복 안에 이런 하루가 있다면.
푸리나가 쓸데없는 제목을 들고 들어오고, 그레이가 장부를 들고 정색하고, 레이튼이 질문을 번식시키고, 하융이 먼지 속에서 낮게 웃고, 아스트리트가 이해하지 못한 채 진지하게 묻는 하루가 있다면.
죠니는 창틀에 팔을 올렸다.
“그래.”
그는 아주 낮게 말했다.
“다시 살아도, 아주 최악은 아니겠네.”
그 말은 선언이 아니었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막은 조용히 내려왔다.
**5막 — 마지막 하루: 되돌리지 않는 선택**
그 아래, 접히지 않은 하루의 가장자리처럼 한 줄이 남았다.
**— 영원히 반복해도 좋다는 말은, 거대한 운명이 아니라 작은 식탁에서 먼저 태어난다 —**
## 4막 — 네 번째 하루: 고치지 않는 연습
### — 삶을 긍정한다는 것은, 때때로 버리기 아까운 귀찮음들을 다시 집어 드는 일이다 —
아침은 돌아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죠니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지 못했다. 식탁 위의 촛불은 몇 번 흔들렸고, 창밖의 밤은 잠시 얇아지는 듯했지만, 더 이상 새벽으로 접히지 않았다. 장부는 장부인 채 남아 있었고, 찻잔은 비어 있었으며, 푸리나가 접어둔 지나치게 긴 제목의 양피지는 식탁 한쪽에서 여전히 쓸데없이 당당했다. 레이튼은 아직 묻지 않은 질문을 품은 사람처럼 조용했고, 그레이는 방금 적은 기록을 다시 확인하고 있었고, 하융은 창밖의 어둠을 보며 방금 전까지 지나간 하루들의 가능성을 생각하는 듯했다. 아스트리트는 죠니를 보고 있었다. 이해하지 못한다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이해하지 못함을 숨기지 않았다.
죠니는 손끝에 묻은 빵 부스러기를 문질렀다. 낮에 아이에게 받았던 빵은 딱딱했고, 저녁 식탁의 빵은 그보다 나았다. 그런데 기억에 더 오래 남는 쪽은 맛없는 빵이었다. 사람은 가끔 아주 쓸모없는 방식으로 기억한다.
“안 돌아가네.”
푸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안 돌아가.”
“네가 멈춘 거야?”
“아니. 네가 멈춘 거지.”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꼭 무대 중앙에 서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별것 아닌 말을 해도, 그 말 뒤에 조명 하나쯤은 숨어 있는 것처럼 만든다. 죠니는 그 점이 조금 짜증났고, 조금 익숙했고, 이상하게도 싫지만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굉장히 있어 보이는데, 정확히는 무슨 뜻이야?”
푸리나는 의자에 앉았다. 그녀도 조금 지쳐 보였다. 하루를 여러 번 다시 산 것은 죠니만이 아니었다. 다만 푸리나는 그것을 피곤함보다 흥미에 가깝게 받아들이는 사람이었다.
“이 극은 내가 네 하루를 마음대로 돌리는 극이 아니야. 네가 ‘다시 살 수 있다면’ 하고 말했기 때문에 문이 열린 거지. 그리고 지금 네가 ‘다음은 그냥 살아보자’고 말했으니까, 무대도 멈춘 거야.”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편리한 설명이네. 책임 소재가 아주 적당히 흩어져 있어.”
푸리나는 웃었다.
“극장주는 책임도 연출할 줄 알아야 하니까.”
“그건 좀 무서운 말인데.”
“조금만 무서운 말이야.”
그레이가 기록판을 들었다.
“반복 종료로 보아도 되겠습니까?”
죠니는 고개를 돌렸다.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반복의 중심이 죠니 경이었으니까요.”
“그런 표현은 너무 커. 내가 무슨 시계축이라도 된 것 같잖아.”
“시계축이라는 비유는 부적절하지 않습니다. 하루가 죠니 경의 인식 변화를 기준으로 반복 및 정지했으므로—”
“됐어. 그만. 네가 설명하면 진짜로 내가 기계 부품이 되는 기분이야.”
그레이는 잠시 멈췄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간략히 적겠습니다.”
죠니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래. 종료. 일단은.”
그레이는 적었다.
**반복 종료. 단, 당사자 인식 변화에 따른 잠정 종료로 추정.**
죠니는 그 문장을 흘끗 보고 말했다.
“그게 간략한 거야?”
“필요한 정도로 줄였습니다.”
“장부는 사람을 지치게 해. 숫자랑 문장들이 전부 줄 맞춰 서 있는 척하는데, 꼭 한 놈쯤은 대열에서 빠져 있거든. 그러면 네가 그걸 찾고, 나는 옆에서 눈 아프게 같이 보고, 결국 둘 다 피곤해져.”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장부는 사람을 지치게 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럼 왜 그렇게 잘해?”
푸리나가 웃었다. 그레이는 반박하려다 말았다. 아마 적절한 반박을 찾지 못한 것이 아니라, 이쯤에서 반박하지 않는 편이 낫다고 판단한 듯했다.
죠니는 그레이를 보며 조금 더 말했다.
“그래도 싫진 않아. 정확히 말하면 장부는 싫어. 장부 자체는 별로야. 그런데 네가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숫자 하나를 붙잡고 있는 걸 옆에서 같이 보는 시간은…… 뭐, 그렇게까지 싫진 않더라.”
그레이의 펜 끝이 아주 조금 멈췄다.
“그것은 칭찬입니까?”
“아마도.”
“불명확합니다.”
“죠니식 칭찬은 원래 상태가 안 좋아.”
푸리나가 말하자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너는 왜 남의 칭찬 체계까지 분석하고 있어?”
“재밌으니까.”
“그게 제일 나쁜 이유야.”
하지만 죠니는 웃고 있었다. 아주 조금.
아스트리트는 그 웃음을 보았다. 그리고 조금 전 죠니가 했던 말을 다시 떠올렸다. 장부는 싫지만, 그레이와 같이 보는 시간은 그렇게 싫지 않다. 그것은 그녀가 배워온 생명의 긍정과는 아주 다른 말이었다. 생명을 긍정한다면 더 낫게 하고, 더 안전하게 하고, 더 많이 살려야 한다. 그것은 여전히 옳았다. 하지만 죠니는 그 옳은 말 사이에 있는 귀찮고 사소한 순간들을 놓지 않으려 하고 있었다.
아스트리트가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십니까?”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뭘?”
“더 이상 되돌리지 않는다면…… 오늘 남은 시간은 그냥 사는 겁니까?”
그 질문은 너무 당연해서, 오히려 잠깐 방 안을 조용하게 만들었다. 그냥 산다. 여러 번 되돌린 뒤에는 그 말이 이상하게 낯설어진다. 죠니는 식탁 위의 것들을 보았다. 양피지, 장부, 빈 찻잔, 빵 부스러기, 덜 정리된 보고서. 푸리나는 아직 제목을 포기하지 않은 얼굴이었고, 그레이는 내일 아침 보고를 걱정하고 있었고, 레이튼은 분명히 아직 묻지 않은 질문이 있었고, 하융은 전선의 다른 가능성 하나를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는 낮게 말했다.
“그냥 살아야지.”
잠시 뒤, 덧붙였다.
“그게 제일 귀찮긴 한데.”
푸리나가 물었다.
“귀찮은데?”
죠니는 식탁을 보며 말했다.
“나쁘진 않아. 귀찮은 게 전부 나쁜 건 아니더라. 없애보니까 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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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은 끝나지 않은 하루의 뒷정리로 이어졌다.
극이 멈췄다고 해서 장부가 저절로 맞아 들어가지는 않았고, 반복이 끝났다고 해서 질문이 사라지지도 않았다. 피난민 시찰 보고는 정리해야 했고, 배급 수량은 다시 확인해야 했으며, 레이튼이 던졌던 위험 감수 권한 문제는 다음 회의로 넘길지, 오늘 밤 안에 초안을 잡을지 결정해야 했다. 푸리나는 “오늘의 극적 성과”라는 제목으로 무언가를 쓰려다 그레이에게 세 번 제지당했다. 세 번째 제지 때는 그레이도 아주 조금 지쳐 보였다.
죠니는 도망갈 수 있었다. 사실 도망치고 싶었다. 몸은 아프지 않았지만 정신이 피곤했다. 하루를 여러 번 산다는 것은, 하루를 몇 배로 더 길게 겪는 것과 비슷했다. 그런데도 그는 식탁 끝에 앉아 있었다. 그레이가 펼친 장부를 보고, 하융의 시찰 보고를 듣고, 레이튼이 가끔 던지는 질문에 짜증을 냈고, 푸리나가 자꾸 쓸데없이 말을 화려하게 만들 때마다 단어를 잘라냈다.
그레이가 말했다.
“피난민 행렬은 임시 숙소까지 도착했습니다. 다만 내일 오전 추가 배급이 필요합니다.”
죠니는 장부를 보았다. 숫자들이 줄을 맞춰 있었다. 하지만 그 줄 맞춤을 믿으면 안 된다. 숫자는 종종 얌전한 얼굴로 거짓말을 한다. 물론 그레이는 숫자가 생물체가 아니라고 하겠지만, 죠니는 그런 식으로 느꼈다.
“여기 빵 수량이 또 이상한데.”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어느 부분입니까?”
죠니는 손가락으로 한 줄을 짚었다.
“이거. 낮에 받은 추가 명단이 반영 안 됐어. 빵이 숫자에서 탈영했네.”
그레이는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누락입니다.”
“이번엔 숫자가 죽은 건 아니고, 길을 잃은 거지.”
“숫자는 이동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찾아줘야지. 혼자 못 돌아오잖아.”
푸리나는 입을 막고 웃었다. 그레이는 아무렇지 않은 듯 보였지만, 아주 잠깐 시선이 흔들렸다. 죠니는 그것을 보았다. 그 미세한 흔들림이 있었다. 이게 첫 번째 하루에는 있었고, 완벽한 하루에는 없었다. 그때는 장부가 맞았고, 그레이는 덜 곤란했으며, 모두가 조금 더 빨리 움직였다. 좋은 하루였다. 그런데 이런 작은 흔들림은 없었다.
이런 걸 좋아한다고 말하면 이상하다.
그래도 다시 살아도 괜찮은 조각이라고는 할 수 있었다.
레이튼이 옆에서 말했다.
“그렇다면 질문이 있습니다.”
죠니는 바로 고개를 돌렸다.
“없어.”
“아직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들을 수 있어. 네 질문은 일어날 때 소리가 나. 사람 머리 안쪽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 같은 게.”
레이튼은 흥미로운 얼굴이 되었다.
“질문이 일어나는 소리라. 좋은 표현입니다.”
“가져가지 마.”
“이미 기억했습니다.”
죠니는 손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그래서 뭔데.”
레이튼은 장부와 보고서를 번갈아 보았다.
“우리가 지금 놓친 숫자를 찾아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단순한 누락으로 처리할지, 피난민 집계 방식 자체의 문제로 볼지 정해야 합니다. 즉, 오늘의 오류는 사건입니까, 구조입니까?”
죠니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이런 질문은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진짜로 피곤하게 한다. 그런데 없으면 더 위험한 종류의 질문이다. 사람은 실수를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하고 넘어가고 싶어 한다. 그러면 편하니까. 하지만 같은 종류의 실수가 다시 온다면, 그건 누군가의 실수가 아니라 길의 문제일 수도 있다. 장부의 칸이 부족한 것일 수도 있고, 보는 눈이 잘못 놓인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낮게 말했다.
“네 질문은 머리에 안 좋아. 진짜로. 듣고 있으면 누가 머릿속 책장을 다 열어젖히는 기분이야.”
레이튼은 조용히 기다렸다.
“근데 그게 없으면 우리가 너무 빨리 똑똑한 척을 하게 돼. 숫자 하나 찾았다고, 사람 하나 놓칠 뻔한 구조까지 고친 것처럼 굴겠지.”
죠니는 장부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좋아. 구조 문제로 보자. 피곤한 쪽이 대체로 오래 남으니까.”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죠니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럼 그냥 그렇게 말해. 굳이 나한테 돌아서 말하게 하지 말고.”
“죠니 경이 직접 말하는 편이 의미가 있었습니다.”
“너 진짜 성격 나빠.”
“자주 듣습니다.”
하융이 낮게 말했다.
“그 질문 덕에 내일 같은 사람이 빠지지 않을 수도 있소.”
죠니는 하융을 보았다.
“너까지 붙으면 내가 졌네.”
“이긴 사람이 있소?”
죠니는 잠시 생각했다.
“장부?”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장부는 승패의 주체가 아닙니다.”
푸리나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이번에는 꽤 크게 웃었다. 촛불이 흔들렸다. 방 안은 피곤했고, 장부는 아직 닫히지 않았고, 질문은 사람을 계속 붙잡았다. 그런데 그 웃음은 분명히 있었다.
죠니는 그 웃음을 듣고 생각했다.
이런 거구나.
정말 별것 아니었다. 그래서 더 이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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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리트는 그 밤의 식탁을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녀가 보기에는 이 사람들은 효율적이지 않았다. 누군가 하나가 답을 알고 있으면 바로 처리하면 될 일을, 굳이 같이 확인했다. 이미 질문의 방향을 아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정리하면 될 일을, 굳이 질문하게 두었다. 보고서도 한 번에 완벽히 정리하지 않고, 중간중간 농담과 반박과 침묵을 섞었다. 그녀가 기사단에서 배운 방식과는 달랐다. 위계가 있고, 명령이 있고, 확인이 있고, 실행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그런데 이 식탁에서는 사람들이 자꾸 서로에게 걸렸다.
푸리나는 죠니가 피곤해하는 순간을 보고 말을 줄였다가, 다시 일부러 가벼운 농담을 던졌다. 그레이는 죠니의 지적을 받으면서도 스스로 확인하는 시간을 빼앗기지 않았다. 레이튼은 답을 강요하지 않고 질문을 놓았다. 하융은 가끔씩, 선택되지 않은 가능성의 무게를 현재의 한 문장으로 끌고 왔다. 죠니는 그 모든 것에 짜증을 내면서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아스트리트는 조용히 말했다.
“이상합니다.”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뭐가?”
“분명 더 완벽한 하루가 있었습니다. 덜 다치고, 덜 틀리고, 덜 멈추는 하루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하루가 더…….”
그녀는 말을 찾았다. 푸리나는 기다렸다. 레이튼도, 그레이도, 하융도 기다렸다. 아스트리트는 마침내 말했다.
“사람이 많아 보입니다.”
죠니는 그 표현을 듣고 잠시 멈췄다.
푸리나는 작게 감탄했다.
“좋은 말이네.”
아스트리트는 당황했다.
“그런 의도로 한 말은 아닙니다.”
레이튼이 말했다.
“의도하지 않은 말이 더 정확할 때도 있습니다.”
죠니는 아스트리트를 보았다.
“그래. 맞아.”
그는 장부 위에 손가락을 얹었다. 손목은 아프지 않았다. 오늘은 다치지 않았다. 그러나 기억 속에는 아팠던 하루도 있었고, 아프지 않았지만 빈 하루도 있었고, 지금처럼 조금 귀찮은 하루도 있었다.
“완벽한 하루에는 사람이 좀 적었어. 이상하지. 다들 있었는데, 덜 보였거든.”
아스트리트는 조용히 들었다.
“일은 잘 굴러갔고, 아무도 크게 다치지 않았고, 장부도 얌전히 맞아떨어졌어. 좋은 하루였지. 그건 알아.”
죠니는 빵 부스러기를 손끝으로 밀었다.
“근데 좋은 하루였다는 것하고, 다시 살아도 괜찮은 하루였다는 건 좀 다르더라. 완벽한 하루는 깔끔했는데, 이상하게 내가 그 안에 별로 없었어. 푸리나도 덜 웃고, 그레이도 덜 곤란해하고, 레이튼도 덜 짜증나고, 하융이랑 먼지 먹으면서 돌아오는 느낌도 없고.”
“덜 짜증나는 것이 나쁜 일입니까?”
아스트리트가 물었다.
죠니는 잠깐 생각했다.
“보통은 좋은 일이지.”
“그런데요?”
“근데 레이튼 질문은 짜증나도 가끔 필요해. 진짜 짜증나는 건 그거야. 쓸모없는 질문이면 그냥 무시하면 되는데, 맞는 질문이라 머리에 남거든.”
레이튼은 웃었다.
죠니는 그를 가리켰다.
“좋아하지 마. 칭찬 반, 항의 반이야.”
“그 비율은 기록해둘 만하군요.”
“기록하지 마.”
그레이가 말했다.
“기록 대상이 아닙니다.”
“고마워.”
푸리나는 이 대화를 들으며 웃었다.
아스트리트는 그 웃음과 죠니의 투덜거림을 보았다. 그녀는 조금씩 이해하고 있었다. 죠니는 상처를 좋아하지 않는다. 실수를 숭배하지도 않는다. 위험을 낭만적으로 여기지도 않는다. 다만 그는 고친다는 이름으로 사람 사이의 마찰과 우연과 웃음까지 지워버리는 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의 긍정은 빛나는 구호가 아니라, 피곤한 식탁에서 빠지지 않고 앉아 있는 태도에 가까웠다.
아스트리트가 말했다.
“그럼 생명을 긍정한다는 건, 단순히 덜 다치게 하는 것만은 아니겠군요.”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건 기본이고.”
“그다음은요?”
죠니는 대답을 고르지 못했다. 그래서 고르지 않고 말했다.
“글쎄. 나한테 그런 걸 깔끔하게 물어보면 대답이 안 나와. 레이튼이나 푸리나 쪽에 물어봐. 그쪽은 말 예쁘게 잘 하잖아.”
푸리나가 바로 말했다.
“죠니가 하는 말도 가끔 좋아.”
“가끔이면 됐어.”
죠니는 다시 아스트리트를 보았다.
“덜 다치게 하는 건 중요해. 죽을 사람 살리는 것도 중요하고, 고칠 수 있는 건 고쳐야지. 그걸 안 하자는 게 아니야. 그런 식으로 들리면 내가 말을 잘못한 거고.”
그는 식탁을 가볍게 두드렸다.
“근데 그걸 하면서, 사람들이 서로 닿는 순간까지 다 지워버리면 좀 곤란하더라. 부딪히고, 묻고, 웃고, 짜증내고, 같이 숫자 하나 찾아내는 그런 거. 진짜 별거 아닌데, 없애보니까 하루가 얇아졌어.”
잠깐 침묵.
“그러니까 뭐…….”
죠니는 조금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나는 그런 걸 버리긴 좀 아까운가 봐.”
아스트리트는 고개를 숙였다.
“기억하겠습니다.”
죠니는 바로 말했다.
“너무 진지하게 기억하진 마.”
“어째서입니까?”
“그럼 내가 너무 대단한 말 한 것 같잖아. 난 그냥 오늘 하루에 좀 질려서 투덜거리는 중이야.”
푸리나가 웃었다.
아스트리트는 잠깐 멈췄다가, 이번에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어색했다. 하지만 있었다.
죠니는 그걸 보고 생각했다.
이것도 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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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더 깊어지자 모두가 조금씩 흩어졌다.
그레이는 장부를 정리했고, 레이튼은 남은 질문을 내일로 미루겠다고 선언했다. 죠니는 그 선언에 대해 “훌륭한 자제력”이라고 평가했고, 레이튼은 “질문에도 숙성이 필요합니다”라고 답했다. 하융은 전선 보고를 접으며 내일 다시 길을 살피겠다고 했다. 푸리나는 양피지를 접었다가 다시 폈다가, 결국 제목의 절반을 지우기로 했다. 그것만으로도 큰 양보였다.
죠니는 식탁 끝에 남아 있었다.
푸리나가 다가왔다.
“어때?”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뭐가.”
“오늘.”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오늘은 여러 번 있었다. 엉망인 하루, 고친 하루, 완벽에 가까운 하루, 그리고 지금의 하루. 어느 것이 진짜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런 질문은 레이튼에게 넘기는 편이 낫다. 죠니에게 중요한 것은, 지금 자신이 어느 하루를 다시 살아도 좋다고 생각하는가였다.
그는 말했다.
“길었어.”
푸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게 감상?”
“중요한 감상이야. 하루가 세 번쯤 접혔다 펴졌는데 짧았다고 하면 그게 더 무섭지.”
“그리고?”
“귀찮았어.”
“그것도 감상?”
“아주 중요한 감상이지. 네 제목은 길고, 그레이 장부는 눈 아프고, 레이튼 질문은 사람 머리를 갉아먹고, 하융이랑 전선 돌면 신발에서 먼지가 안 빠져. 오늘은 아스트리트까지 와서 내 삶의 방식이 이상하다고 아주 정중하게 찔렀고.”
푸리나는 웃음을 참았다.
“나쁘진 않았고?”
죠니는 잠시 침묵했다.
“응. 나쁘진 않았어.”
그 대답은 작았다. 그러나 푸리나는 그것을 아주 조심스럽게 받았다. 평소 같으면 박수라도 쳤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이번 극은 박수보다 조용한 확인이 어울렸다.
죠니는 푸리나를 보며 말했다.
“너, 처음부터 이걸 보여주려고 한 거야?”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응. 나는 그냥 네가 어떤 하루를 고를지 보고 싶었어.”
“참 극장주다운 무책임이네.”
“칭찬?”
“비슷한 거. 정확히는 항의랑 칭찬이 적당히 섞인 거.”
푸리나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네가 처음에는 큰 순간을 찾는 줄 알았어.”
죠니는 시선을 내렸다.
푸리나는 이어 말했다.
“이 삶을 다시 살아도 좋다고 말하게 만드는, 엄청나게 반짝이는 순간. 그런 걸 찾는 줄 알았어.”
죠니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생각은 낯설지 않았다. 자신도 한때는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른다. 아니, 지금도 가끔 그렇게 생각한다. 뭔가 큰 순간, 증명되는 순간, 끝내 닿는 순간. 그런 게 있어야만 삶 전체를 다시 선택할 수 있는 것처럼.
하지만 오늘 하루는 그렇지 않았다.
푸리나가 웃었다. 그레이가 장부를 들고 심각해졌다. 레이튼의 질문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하융과 먼지를 먹고 돌아왔다. 아스트리트가 이해하지 못한 채 진지하게 물었다. 맛없는 빵을 버리지 않았다.
그런 것들이 있었다.
죠니는 낮게 말했다.
“반짝이긴 하더라.”
푸리나가 조용히 물었다.
“뭐가?”
“별거 아닌 것들이. 네가 좋아하는 무대 조명 같은 건 아니고, 장부 위에 묻은 잉크라든가, 맛없는 빵 조각이라든가, 레이튼 질문 듣고 다 같이 표정 썩는 순간이라든가. 하융이 먼지 뒤집어쓴 얼굴로 별일 아닌 말 하는 것도 그렇고.”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죠니는 식탁 위의 빵 부스러기를 보았다.
“없애보니까 알겠더라. 별거 아닌 것들이 빠지면, 하루가 얇아져. 잘 굴러가긴 하는데, 내가 다시 살고 싶은 하루는 아니게 돼.”
그 말이 방 안에 남았다.
푸리나는 미소 지었다.
“그거 좋은 대사야.”
죠니는 바로 말했다.
“가져가지 마.”
“이미 늦었어.”
“알았어. 대신 제목은 짧게 해.”
푸리나는 잠깐 고민했다.
“《별거 아닌 것들》?”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괜찮네.”
푸리나는 눈을 크게 떴다.
“정말?”
“응.”
“죠니가 제목을 칭찬했어.”
“취소할까?”
“아니. 이미 기록됐어.”
그레이가 멀리서 말했다.
“기록하지 않았습니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그레이!”
그레이는 차분하게 대답했다.
“비공식 제목까지 모두 기록하면 장부가 과밀해집니다.”
죠니는 낮게 웃었다.
정말 별거 아닌 밤이었다.
그래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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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니는 그날 잠들기 전, 잠깐 창밖을 보았다.
성벽 아래는 조용했다. 빵을 훔치던 아이도, 쫓던 어른도 없었다. 장부를 찾던 소리도 사라졌다. 하루는 끝났다. 완벽하지 않았고, 정리되지 않았고, 내일로 미룬 질문도 있었고, 또 틀릴지도 모를 장부도 있었다.
그런데 죠니는 이상하게 마음이 가벼웠다.
아니, 가벼운 건 아니었다. 그의 삶은 가볍지 않았다. 고통도 있었고, 먼 길도 있었고, 이미 지나온 상처들도 있었다. 영원히 반복된다면 지겨울 것이다. 화도 날 것이다. 같은 실수를 다시 보게 된다면, 욕도 나올 것이다.
하지만 그 반복 안에 이런 하루가 있다면.
푸리나가 쓸데없는 제목을 들고 들어오고, 그레이가 장부를 들고 정색하고, 레이튼이 질문을 번식시키고, 하융이 먼지 속에서 낮게 웃고, 아스트리트가 이해하지 못한 채 진지하게 묻는 하루가 있다면.
죠니는 창틀에 팔을 올렸다.
“그래.”
그는 아주 낮게 말했다.
“다시 살아도, 아주 최악은 아니겠네.”
그 말은 선언이 아니었다. 아무도 듣지 않았다. 그래서 더 좋았다.
막은 조용히 내려왔다.
**5막 — 마지막 하루: 되돌리지 않는 선택**
그 아래, 접히지 않은 하루의 가장자리처럼 한 줄이 남았다.
**— 영원히 반복해도 좋다는 말은, 거대한 운명이 아니라 작은 식탁에서 먼저 태어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