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205익명의 참치 씨(c2970e66)2026-05-23 (토) 00:27:59
# 《다시 살아도 좋은 하루》

## 5막 — 마지막 하루: 되돌리지 않는 선택

### — 영원히 반복해도 좋다는 말은, 거대한 운명이 아니라 작은 식탁에서 먼저 태어난다 —

다음 날 아침은, 정말로 다음 날 아침이었다.

그 사실을 확인하는 데 죠니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창밖에는 빵을 훔치던 아이가 없었다. 어른이 뒤쫓는 느린 추격전도 없었다. 복도 저편에서 “장부가 어디 갔습니까?” 하고 묻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소리가 있었다. 누군가 물동이를 엎질렀고, 병사 하나가 말 안장 끈이 사라졌다고 투덜거렸으며, 멀리서 푸리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그 제목은 어제 후보였고! 오늘은 새 제목이 필요하다니까!”

죠니는 창가에 기대어 있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진짜 다음 날이네.”

어제와 다른 하루.

그것은 당연한 일인데도, 이상하게 조금 낯설었다. 같은 하루를 여러 번 겪고 나면, 사람은 다음 날이 온다는 사실에도 잠깐 경계하게 된다. 혹시 또 접히는 것은 아닌가. 혹시 문이 다시 열리는 것은 아닌가. 혹시 푸리나가 문밖에서 웃으며 “한 번 더!” 하고 외치는 것은 아닌가.

문이 열렸다.

푸리나가 들어왔다.

죠니는 그녀를 보기도 전에 말했다.

“한 번 더라면 안 해.”

푸리나는 문가에서 멈췄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할 얼굴이었어.”

“그 얼굴 판정 너무 넓은 거 아니야?”

“너는 전적이 있어.”

푸리나는 잠깐 생각했다. 반박하려다 그만두었다.

“그건 그렇네.”

그녀는 방 안으로 들어왔다. 손에는 양피지가 있었다. 죠니는 그것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또 제목이야?”

“이번 건 짧아.”

“믿을 수가 없는데.”

“정말 짧아. 《별거 아닌 것들》.”

죠니는 잠시 침묵했다. 어젯밤 자신이 괜찮다고 말한 제목이었다. 푸리나는 그걸 잊지 않았다. 잊을 리가 없었다. 그는 고개를 조금 돌려 창밖을 보았다.

“제목으로 쓰기엔 좀 맥 빠지지 않아?”

“그래서 좋아.”

푸리나는 양피지를 접었다.

“엄청난 운명도, 장엄한 승리도, 세상을 바꾸는 맹세도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하루를 붙잡아주잖아.”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너 방금 꽤 얌전하게 말했네.”

“나도 가끔은 절제해.”

“그 말은 좀 과장이고.”

푸리나는 웃었다.

그리고 잠시 후, 조금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늘은 돌리지 않을 거지?”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네가 묻는 거야?”

“응.”

“너답지 않네. 보통은 돌릴지 말지 묻기 전에 이미 무대 깔아놓잖아.”

“그러니까 오늘은 물어보는 거야.”

푸리나는 평소보다 조용했다. 어제의 극이 그녀에게도 무언가 남긴 듯했다. 죠니는 창밖의 아침을 보았다. 오늘은 아직 아무것도 고치지 않았다. 아직 어떤 실수도 하지 않았고, 어떤 질문도 듣지 않았고, 어떤 장부도 보지 않았고, 어떤 먼지도 먹지 않았다. 그래서 이 하루는 아직 완벽할 수도 있고, 엉망일 수도 있고, 둘 다 아닐 수도 있었다.

죠니는 말했다.

“안 돌려.”

“정말?”

“응. 오늘 틀리면 오늘 틀리는 거지.”

푸리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그거 체념이야?”

죠니는 잠시 생각했다.

“아니. 체념이면 좀 더 멋없고, 내 쪽은 조금 더 귀찮아.”

“귀찮다?”

“응. 틀리면 고쳐야 하잖아. 바로 되돌리는 것보다 훨씬 번거롭지.”

푸리나는 웃었다.

“그런데?”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사는 거라며.”

그 말은 푸리나가 했던 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죠니가 어제 하루 끝에서 겨우 주워온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푸리나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대체로.”

“대체로라니.”

“삶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레이튼이 싫어할 것 같아서.”

죠니는 피식 웃었다.

“그건 맞네.”

---

아침 회의는 다시 엉망이었다.

완전히 같은 방식은 아니었다. 장부는 어제와 다른 곳에서 틀렸고, 푸리나의 제목은 짧아졌지만 대신 부제가 세 개 붙었고, 레이튼은 어제 미룬 질문을 “충분히 숙성되었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꺼냈다. 하융은 전선 보고서에 자신이 본 죽은 가능성 중 하나를 너무 담담하게 적어 그레이를 곤란하게 만들었고, 아스트리트는 그 내용을 어떻게 공식 문서에 반영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물었다.

죠니는 회의실 벽에 기대어 그 모든 것을 보았다.

어제라면 고칠 수 있었다. 아니, 어제의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지금도 고칠 수 있을 것 같았다. 푸리나가 부제를 세 개 붙이기 전에 하나로 줄이라고 말할 수 있었고, 그레이의 장부 오류를 더 빨리 찾을 수 있었고, 레이튼의 질문이 회의실을 멈추기 전에 항목으로 정리할 수 있었다. 하융의 보고서도 “그 부분은 비공식 참고로 돌리자”고 먼저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푸리나가 말했다.

“그러니까 정식 제목은 《별거 아닌 것들》이고, 부제는 ‘그러나 버리기엔 아까운 것들’, ‘장부와 질문과 먼지에 관한 소고’, 그리고 ‘죠니가 드물게 인정한 제목’이야.”

죠니가 입을 열었다.

“마지막 부제 빼.”

푸리나는 즉시 양피지를 끌어안았다.

“왜?”

“너 그거 오래 우려먹을 거잖아.”

“그렇긴 해.”

“그렇게 솔직하면 내가 더 빼고 싶어져.”

그레이가 말했다.

“공식 문서상 부제는 하나 이하가 적합합니다.”

푸리나는 배신당한 얼굴로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 어제부터 내 제목에 너무 엄격해진 거 아니야?”

“기존에도 엄격했습니다.”

“그랬나?”

죠니가 말했다.

“그랬어. 네가 안 들었을 뿐이지.”

푸리나는 입술을 삐죽였다. 그러나 결국 부제를 하나로 줄였다. 죠니는 그 장면을 보고 생각했다. 이것은 되돌림이 아니라 조정이다. 완벽하게 고치는 것도 아니고, 방치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지금 여기서 말하고, 상대가 반응하고, 그 반응 속에서 하루가 조금 달라지는 것.

그레이가 장부를 펼쳤다.

“다음은 보급 수량입니다. 어제 수정한 항목은 반영되었으나, 새로운 이동 수레 배치에 따라 말 사료 수량이 부족합니다.”

죠니는 장부를 보았다.

“이번엔 말 쪽이 탈영했네.”

그레이는 거의 반사적으로 말했다.

“말은 이동 능력이 있습니다.”

잠시 침묵.

푸리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레이튼도 고개를 숙이며 웃었다. 하융은 낮게 웃었고, 아스트리트는 잠깐 어리둥절하다가 뒤늦게 웃었다. 그레이는 자신이 방금 농담 비슷한 말을 했다는 걸 깨달은 듯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

죠니는 그레이를 보았다.

“방금 좋았어.”

그레이는 차분하게 대답하려 했지만, 아주 조금 늦었다.

“의도한 농담은 아닙니다.”

“그래서 더 좋았어.”

푸리나는 손뼉을 쳤다.

“그레이가 농담했어!”

“전하, 공식적으로 농담으로 분류하지 말아주십시오.”

죠니는 장부를 보며 웃었다.

이건 고쳐 만든 하루가 아니었다. 그냥 생긴 하루였다. 그래서 좋았다.

레이튼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렇다면 어제의 질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죠니는 바로 말했다.

“안 돌아가면 안 돼?”

“아쉽게도 질문이 충분히 숙성되었습니다.”

“부패한 걸 수도 있어.”

“부패와 숙성의 차이는 맥락에 달려 있습니다.”

“방금도 질문이야?”

“아직은 아닙니다.”

죠니는 이마를 짚었다.

“벌써 피곤하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위험 감수 권한을 현장에 일부 위임한다면, 현장에 있는 이들이 위험을 판단할 수 있도록 어떤 정보가 제공되어야 합니까?”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이번에는 죠니가 바로 끼어들지 않았다. 질문은 필요했다. 짜증날 만큼 필요했다. 그는 그 침묵이 너무 오래 굳지 않을 만큼 기다렸다가 입을 열었다.

“지도, 피난민 이동 속도, 적 정찰 가능성, 그리고 빠질 수 있는 사람 명단.”

그레이가 적기 시작했다.

레이튼이 물었다.

“빠질 수 있는 사람 명단이란?”

죠니는 대답했다.

“공식 명단 말고. 늦게 걷는 사람, 아이가 있는 사람, 짐을 너무 많이 든 사람, 자꾸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

아스트리트가 조용히 물었다.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도 포함합니까?”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로 안 괜찮을 때 그렇게 말하거든.”

하융이 낮게 말했다.

“좋은 기준이오.”

죠니는 그를 보았다.

“너도 자주 그러잖아.”

하융은 잠시 침묵했다.

“그렇소?”

“그렇소, 같은 말로 빠져나가려고 하지 마.”

푸리나가 웃었다. 그레이는 **자꾸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공식 문서에 어떻게 넣을지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죠니는 그 얼굴을 보고 말했다.

“그레이, 그 표정은 공식 표현으로 바꾸려는 얼굴이야.”

그레이는 고개를 들었다.

“그렇습니다.”

“뭐라고 쓸 건데?”

“자기 상태를 축소 보고할 가능성이 높은 인원.”

죠니는 잠시 멈췄다.

“괜찮네.”

푸리나가 작게 감탄했다.

“죠니가 오늘 칭찬을 많이 하네.”

죠니는 즉시 말했다.

“많이는 아니야.”

레이튼이 말했다.

“비교 기준을 정해야겠군요.”

“하지 마.”

회의실에 다시 웃음이 번졌다.

죠니는 그 웃음 속에서 생각했다.

이 정도면 된다.

완벽하지 않아도, 굴러간다.

---

전선 시찰은 짧게 다녀오기로 했다.

어제 여러 번 다녀온 길이라, 죠니는 이미 위험한 경사와 수레가 지나갈 길목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의 길은 어제와 같지 않았다. 그것이 조금 다행이었다. 같은 문제를 완벽하게 다시 푸는 게 아니라, 비슷하지만 다른 길을 걷는 것. 삶은 대개 그렇게 사람을 괴롭힌다.

하융은 말 위에서 말했다.

“오늘은 덜 조정하려는 얼굴이오.”

죠니는 고삐를 느슨하게 잡았다.

“얼굴 평가가 네 취미였나?”

“그런 것은 아니오. 다만 경이 어제보다 덜 바빠 보이오.”

“내가 하루를 너무 많이 살았거든. 당분간은 한 번씩만 살고 싶어.”

하융은 그 말을 듣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선택이오.”

“너무 쉽게 좋은 선택이라고 하지 마. 왠지 나중에 대가가 붙을 것 같잖아.”

“대가는 대체로 선택 뒤에 붙소.”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하융은 조용히 웃었다.

길가에는 작은 피난민 무리가 있었다. 어제의 그 무리와는 달랐다. 아이도 달랐고, 수레도 달랐고, 고장 난 바퀴도 없었다. 대신 늙은 여인 하나가 뒤처져 있었다. 그녀는 자꾸 괜찮다고 말했다. 죠니는 말에서 내렸다.

“괜찮다고?”

여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먼저들 가셔도 됩니다.”

죠니는 하융을 보았다.

“방금 공식 문서에 넣은 유형이네.”

하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소.”

죠니는 여인 앞에 쪼그려 앉았다.

“괜찮으면, 왜 그렇게 숨을 아껴 써?”

여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죠니는 그녀의 짐을 보았다. 너무 무거웠다. 그것도 아주 교묘하게 무거웠다. 남들이 보면 괜찮아 보일 만큼만, 하지만 오래 걸으면 사람을 무너뜨릴 만큼.

죠니는 짐을 들어보았다.

“이건 버려.”

여인의 얼굴이 굳었다.

“안 됩니다.”

“왜?”

“가족 물건입니다.”

죠니는 짐을 내려다보았다. 낡은 천과 작은 솥, 부러진 장난감, 옷가지, 오래된 나무 숟가락. 버리라고 말하기 쉬운 것들. 하지만 그 말이 언제나 맞지는 않다. 그는 어제의 하루들을 떠올렸다. 고치려고 하다 지워버린 순간들. 효율적으로 바꾸다 얇아진 하루.

그는 짐을 다시 묶었다.

“전부는 못 들고 가.”

여인은 고개를 숙였다.

죠니는 말했다.

“하지만 전부 버리라고도 안 할게. 여기서 나눠. 진짜 필요한 거, 버리면 안 되는 거, 남이 대신 들어도 되는 거.”

여인은 조용히 짐을 풀었다. 하융이 옆에서 도왔다. 시간이 걸렸다. 아주 효율적인 방식은 아니었다. 그러나 여인은 자기 손으로 골랐다. 부러진 장난감은 챙겼고, 작은 솥은 다른 사람에게 맡겼고, 낡은 천 일부는 버렸다. 나무 숟가락은 끝까지 손에 쥐었다.

죠니는 그것을 보았다.

“그건 가져가?”

여인이 말했다.

“남편이 깎아준 겁니다.”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져가야지.”

하융은 여인을 부축했다. 피난민 무리는 다시 움직였다. 시간이 늦어졌지만, 모두가 같이 걸었다. 죠니는 말에 오르지 않고 잠시 옆에서 걸었다. 먼지가 신발에 묻었다. 귀찮았다. 정말로 귀찮았다.

그런데 이 귀찮음은 나쁘지 않았다.

하융이 말했다.

“오늘도 온 보람은 있구려.”

죠니는 그를 흘끗 보았다.

“그 대사, 너 마음에 들었나 봐.”

“적절한 말이오.”

“너무 자주 쓰면 푸리나가 제목으로 만든다.”

“그건 피해야겠소.”

죠니는 웃었다.

먼지 속에서, 아주 작게.

---

저녁이 되었을 때, 죠니는 피곤했다.

하지만 그 피로는 반복되는 하루의 피로와 달랐다. 같은 장면을 여러 번 본 사람의 지침이 아니라, 한 번뿐인 하루를 지나온 사람의 피로였다. 그것은 더 무거웠지만 덜 비어 있었다.

식탁에는 사람들이 모였다. 푸리나는 드디어 《별거 아닌 것들》이라는 제목을 공식적으로 채택했고, 부제는 하나로 줄였다. 그레이는 그 제목이 행정 문서에는 들어가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묵인했다. 레이튼은 오늘의 질문을 “내일 추가 숙성”하겠다고 했고, 죠니는 “숙성고에 잠가둬”라고 말했다. 하융은 차를 마셨고, 아스트리트는 낮의 일을 기록해도 되는지 그레이에게 물었다.

그레이는 대답했다.

“공식 보고에는 간략히. 개인 기록에는 더 자세히 적어도 됩니다.”

아스트리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죠니는 빵을 먹었다. 오늘의 빵은 평범했다. 낮에 여인에게 받은 것도, 아이에게 받은 것도 아니었다. 그냥 식탁의 빵이었다. 그래도 괜찮았다. 모든 빵이 기억에 남을 필요는 없다. 어떤 빵은 그냥 배를 채우면 된다. 그것도 삶의 일부다.

푸리나가 말했다.

“죠니.”

“응.”

“오늘은 어땠어?”

죠니는 빵을 씹으며 그녀를 보았다.

“또 감상문?”

“응.”

“너는 사람 하루를 극으로 만들고 감상문까지 받아가네.”

“극장주니까.”

“편리한 직업이야.”

푸리나는 웃으며 기다렸다.

죠니는 식탁을 보았다. 푸리나, 그레이, 레이튼, 하융, 아스트리트. 각자의 찻잔과 장부와 질문과 보고서. 오늘 하루에 고친 것들, 고치지 못한 것들, 일부러 남긴 것들. 그리고 이미 지나가서 다시는 똑같이 오지 않을 것들.

그는 천천히 말했다.

“완벽하진 않았어. 장부는 또 틀렸고, 네 제목은 아직도 위험했고, 레이튼 질문은 사람 머리를 또 괴롭혔고, 하융이랑 다녀오면 신발이 먼지를 먹어. 아스트리트는 오늘도 너무 진지했고.”

아스트리트는 조금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죠니는 바로 말했다.

“그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야. 좀 부담스럽긴 한데, 나쁘진 않아.”

푸리나가 웃었다.

죠니는 말을 이었다.

“근데 오늘은 한 번만 살았잖아. 그래서 그런지, 좀 낫더라. 틀리면 그 자리에서 고치고, 놓치면 다음부터 덜 놓치려고 하고, 누가 질문하면 머리 아파하다가 듣고, 누가 괜찮다 그러면 일단 의심하고.”

그는 빵을 내려놓았다.

“그렇게 사는 게 되돌리는 것보다 훨씬 귀찮은데, 이상하게 더 내가 사는 것 같아.”

레이튼은 조용히 들었다.

그레이는 기록하지 않았다. 푸리나도 박수치지 않았다. 하융은 차를 들고 있었다. 아스트리트는 죠니를 보고 있었다.

푸리나가 물었다.

“그러면 한 번 더 되돌릴 수 있다면?”

죠니는 이번에는 오래 생각하지 않았다.

“안 해.”

“왜?”

“오늘이 대단해서가 아니야. 오히려 별거 아니었지.”

그는 식탁을 보았다.

“근데 별거 아닌 것들이 너무 많아. 하나 고치면 다른 게 사라지고, 하나 막으면 다른 데서 웃음이 빠지고, 하나 편하게 만들면 다른 누군가와 같이 머리 싸매는 시간이 없어져. 그거 일일이 계산하면서 살면, 아마 레이튼보다 피곤한 인간이 될걸.”

레이튼이 미소 지었다.

“그것은 꽤 큰 경고군요.”

“넌 좀 경고로 받아들여.”

푸리나는 물었다.

“그럼 오늘은 그냥 둘 거야?”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오늘은 오늘로 두자.”

그 말과 함께 촛불이 아주 작게 흔들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은 오지 않았다. 식탁은 그대로였고, 장부는 그대로였고, 사람들은 그대로였다.

푸리나는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좋아.”

죠니가 말했다.

“너 아쉬워 보이는데.”

“조금.”

“솔직하네.”

“하지만 이 결말도 좋아.”

죠니는 빵을 집었다.

“제목만 더 안 붙이면.”

푸리나는 잠깐 멈췄다.

“하나만.”

“안 돼.”

“정말 짧은 거.”

“안 돼.”

“《오늘은 오늘》.”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그건 좀 괜찮네.”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죠니가 또 제목을 칭찬했어!”

“취소한다.”

“늦었어!”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비공식 제목으로만 기록하겠습니다.”

죠니는 고개를 숙였다.

“너희 진짜 지치지도 않네.”

아스트리트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죠니 경.”

“응.”

“저는 아직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게 정상이지.”

“하지만 오늘 경이 말한 것은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생명을 긍정한다는 것은 단지 위험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서로 닿는 시간을 지키는 것이기도 하군요.”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너는 내가 한 말보다 더 그럴듯하게 말하네.”

“그렇습니까?”

“응. 그러니까 조심해. 푸리나가 제목으로 만든다.”

푸리나가 즉시 말했다.

“《살아 있는 사람들이 서로 닿는 시간》.”

죠니는 한숨을 쉬었다.

“봐.”

아스트리트는 이번에는 조금 웃었다.

그 웃음이 식탁에 아주 작게 놓였다.

별거 아닌 것 하나가 더 생겼다.

---

밤이 깊어졌다.

사람들은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레이는 장부를 들고 갔고, 레이튼은 질문을 숙성시키러 갔고, 하융은 내일의 길을 보러 나갔고, 아스트리트는 자신의 기록을 정리하러 갔다. 푸리나는 마지막까지 남아 양피지를 접었다.

죠니는 식탁에 혼자 남아 있었다.

정확히는, 푸리나가 아직 옆에 있었다.

그녀가 말했다.

“죠니.”

“왜.”

“다시 살아도 이 하루야?”

죠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식탁 위에 남은 빵 부스러기와 잉크 자국, 찻잔의 둥근 흔적을 보았다. 오늘의 하루는 이미 끝나가고 있었다. 내일이면 다르게 기억될 것이다. 어떤 것은 흐려지고, 어떤 것은 엉뚱하게 남을 것이다. 푸리나의 제목, 그레이의 뜻밖의 농담, 레이튼의 숙성된 질문, 하융과 먼지 속에서 걸은 길, 아스트리트의 어색한 웃음.

그는 낮게 말했다.

“다시 살아도 완전히 똑같이는 안 살겠지.”

푸리나가 고개를 기울였다.

“그래?”

“응. 틀린 건 고칠 거고, 위험한 건 줄일 거고, 누가 아프면 덜 아프게 만들 거야. 그런 걸 안 하겠다는 말은 아니니까.”

그는 잠시 멈췄다.

“근데 다 지우진 않을 거야. 그건 이제 좀 알겠어.”

푸리나는 조용히 웃었다.

죠니는 식탁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다시 살아도, 아마 이쪽이겠지. 좀 시끄럽고, 귀찮고, 질문 많고, 장부는 틀리고, 제목은 길고, 전선은 먼지투성이인 쪽.”

푸리나는 말했다.

“그게 네 찰나야?”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찰나.

그 말은 이상하게도 너무 빛나는 단어처럼 들렸다. 그러나 오늘 하루의 그것들은 빛난다기보다, 손끝에 묻은 빵 부스러기나 옷자락에 남은 먼지에 가까웠다. 작고, 쉽게 털리고, 하지만 완전히 잊히지는 않는 것들.

죠니는 말했다.

“찰나라고 부르면 좀 거창한데.”

“그럼?”

“글쎄. 그냥…….”

그는 생각하다가 피곤하게 웃었다.

“다시 살아도 덜 억울한 이유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조용했다.

“좋네.”

“제목으로 쓰지 마.”

“그건 약속 못 해.”

“역시.”

푸리나는 양피지를 접었다.

“그래도 오늘은 안 쓸게.”

“오늘은?”

“응. 오늘은 오늘로 두기로 했잖아.”

죠니는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오늘은 오늘.”

푸리나는 막을 닫듯 손을 내렸다.

하지만 아무 조명도 꺼지지 않았다. 이미 밤이었고, 이미 하루는 끝나고 있었고, 무대는 현실과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

죠니는 마지막으로 식탁을 보았다.

별거 아닌 하루였다.

그래서 다시 살아도, 아마 이 하루였다.

막은 조용히 내려왔다.

**후일담 — 영원회귀의 작은 식탁**

그 아래, 식탁 위에 남은 빵 부스러기처럼 한 줄이 남았다.

**— 다시 살아도 덜 억울한 이유들은, 대개 아주 사소한 얼굴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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