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212여관◆zAR16hM8he(c2970e66)2026-05-23 (토) 03:09:05
《아포리아의 교실》
— 성급한 답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법 —
1막 — 책상 위에서 답을 내려다보다
—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은, 다른 높이에서 보인다 —
레이튼은 정말로 책상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교실에 앉은 이들은 평범한 학생들이 아니었다. 한 사람은 내전의 한복판에서 왕도를 증명해야 하는 차르였고, 한 사람은 혈통과 지지와 기적으로 로마의 평화를 말하는 어린 황제였으며, 한 사람은 죄와 기사도를 한 몸에 두른 튜튼의 호흐마이스터였다. 그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서라는 말은 수업이라기보다, 아주 예의 바른 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교실 뒤편 창가에 선 미하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수업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들고 있었고, 푸리나는 문가에 기대어 이 이상한 침묵이 무대 위에서 어떤 호흡으로 바뀌는지 보고 있었다.
알렉산드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책상 위에 올라서라는 뜻인가요?”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왕좌도 아니고, 전장의 언덕도 아니고, 사절단 앞의 단상도 아니었다. 학생이 답을 쓰고, 지우고, 틀리고, 다시 쓰는 곳. 그녀는 잠시 난처하게 웃었다.
“제가 아직 왕도 위에서도 제대로 서 있는지 모르겠는데, 책상 위부터 배워야 하다니요.”
“그래서 좋은 출발점일지도 모릅니다.”
“그 말은 조금 얄밉네요, 레이튼 경.”
“종종 듣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다시 책상을 보았다. 눈빛은 경계하고 있었지만, 이전처럼 날카롭게 밀어붙이는 태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부족함을 알기에 더 단정히 서려는 사람이었다. 가짜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때로 남들보다 자세를 더 곧게 세운다. 무너지면, 그 말이 사실이 되어버릴까 봐.
요안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선생님.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요?”
레이튼은 잠시 생각했다.
“그 경우에는, 누군가 손을 내밀어야겠지요.”
“그것도 수업인가요?”
“많은 경우 그렇습니다.”
요안나는 그 대답을 듣고 작게 웃었다. 그녀는 책상 위를 보았다. 작고 낡은 나무판. 황제의 발이 올라서기에는 지나치게 평범한 곳. 그래서 조금 마음에 들었다.
호흐마이스터는 가장 늦게 반응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은 채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기사단장다운 침착한 자세였지만, 그 침착함 안쪽에 분명한 불편함이 있었다.
“레이튼 경.”
“예, 호흐마이스터.”
“기사단장으로서 여러 독특한 명령과 의식을 보아왔습니다만, 이것은 그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명령은 아닙니다.”
“그 점이 더 어렵군요.”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거절하셔도 됩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명령이라면 따르거나 거절하면 된다. 그러나 권유는 자기 마음의 이유를 살펴야 한다. 호흐마이스터에게 그것은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거절할 수 있다는 말은, 대체로 거절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질문도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오늘 수업은 시작 전부터 함정이 많습니다.”
“퍼즐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푸리나가 결국 작게 웃었다. 그레이는 기록했다.
수업 방식: 책상 위에 올라서기. 학생 반응: 당혹, 경계, 예의 바른 저항.
요안나가 가장 먼저 일어섰다.
그녀는 책상에 손을 짚고 조심스럽게 올라섰다. 레이튼이 가까이서 손을 내밀 준비를 했지만, 요안나는 스스로 균형을 잡았다. 책상이 작게 삐걱였다. 그녀는 잠깐 놀라더니, 곧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다르게 보여요.”
교실은 여전히 교실이었다. 그러나 조금 높은 곳에서 보면, 칠판이 낮아지고 창밖의 빛이 가까워졌다. 사람들의 얼굴도 다르게 놓였다. 왕좌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높이였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기묘한 자리. 어쩌면 학생의 자리.
알렉산드리나는 요안나를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섰다.
“요안나 폐하께서 먼저 올라가셨는데, 제가 계속 앉아 있기도 어렵네요.”
그녀는 책상 위에 올라섰다. 동작은 조심스러웠지만 몸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단련된 사람의 균형이었다. 그러나 표정은 조금 복잡했다. 책상 위에 올라선 왕도 지망자라니, 그녀 자신도 그 그림이 우스운지 아주 짧게 숨을 흘렸다.
“이건…… 조금 이상하네요.”
레이튼이 물었다.
“이상한 것은 나쁜 일입니까?”
“아니요. 하지만 낯섭니다. 낯선 건 늘 조금 무섭고요.”
“좋은 관찰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책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선생님들은 원래 학생이 무서워한다는 말을 하면 칭찬하나요?”
“좋은 선생이라면, 가끔은 그래야겠지요.”
호흐마이스터는 마지막까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서서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예의 바르게 장갑 낀 손을 책상 위에 올렸다.
“책상에게 무례를 범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푸리나는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레이튼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책상도 오늘 수업의 일원으로 존중해주시면 됩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레이튼을 보았다.
“그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질문을 사랑하는 사람은, 가끔 책상에게도 기회를 줍니다.”
“그렇군요.”
호흐마이스터는 올라섰다. 동작은 우아했고, 조금 뻣뻣했다. 책상 위에 선 뒤에도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반듯해서, 책상이 작은 연단처럼 보였다.
세 사람이 책상 위에 섰다.
알렉산드리나, 요안나, 호흐마이스터.
왕도와 평화와 책임이라는 답을 들고 온 이들이, 교실의 작은 책상 위에 서 있었다.
레이튼은 칠판 앞에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보이는 것을 말해주시겠습니까?”
요안나가 먼저 대답했다.
“교실이요. 그런데 조금 더 작아 보여요. 아니, 제가 커진 것 같기도 하고요.”
“좋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상하게 같아 보여요. 황제도, 차르도, 기사단장도 책상 위에서는 조금 학생 같아요.”
푸리나는 그 말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
레이튼은 알렉산드리나를 보았다.
“폐하께서는 무엇이 보이십니까?”
알렉산드리나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교실을 보았다. 책상, 칠판, 창문, 레이튼, 푸리나, 그레이, 미하일라. 그리고 자기가 올라선 낮은 높이.
“왕좌가 없네요.”
그 말이 교실에 내려앉았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왕좌가 없으니, 제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더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작게 웃었다.
“이상하네요. 왕좌가 없으면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을 보았다.
“왕좌는 자리를 정해주니까요. 그 자리에 앉으면, 적어도 무엇처럼 보여야 하는지는 압니다. 하지만 여기는…… 제가 직접 서야 하네요.”
그레이는 그 말을 기록했다.
알렉산드리나: 왕좌 없는 자리에서 오히려 자세를 스스로 정해야 함.
레이튼은 호흐마이스터를 보았다.
“호흐마이스터께서는 무엇이 보이십니까?”
호흐마이스터는 교실 뒤편과 문, 창문,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녀의 시선은 아직도 지휘관의 시야였다. 그러나 잠시 뒤, 아주 조용히 말했다.
“숨을 곳이 줄어드는군요.”
“높아졌는데도 말입니까?”
“예. 구석에 앉으면 몸은 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 서면 자세가 드러납니다.”
“좋은 관찰입니다.”
호흐마이스터는 고개를 숙였다.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레이튼은 칠판으로 돌아섰다. 그는 물음표 아래에 세 개의 문장을 적었다.
나는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나는 기사단을 위해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세 문장이 칠판 위에 나란히 놓였다.
그레이의 펜이 멈췄다. 푸리나는 숨을 조금 죽였다. 미하일라는 창가에서 조용히 그 문장들을 바라보았다.
레이튼은 다시 학생들을 보았다.
“여러분의 답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의 첫 문장을 보았다. 자기 입으로 말했을 때와 달랐다. 글자로 적히니 문장은 더 차갑고, 더 단단하고, 더 멀어 보였다.
요안나는 두 번째 문장을 보았다. 그것은 그녀의 핵심이었다. 짧고 밝고, 너무 크다. 칠판에 적히자 그 말은 교실을 넘어서려는 듯했다.
호흐마이스터는 세 번째 문장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장갑 낀 손가락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레이튼은 말했다.
“오늘은 이 답들이 틀렸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그는 분필을 내려놓았다.
“오히려 반대로 묻겠습니다. 이 답들은 여러분을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걷고 있습니까?”
교실 안은 조용했다.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여러분보다 먼저 걷고 있습니까?”
그 말은 세 사람 모두에게 다르게 닿았다.
알렉산드리나는 자기 문장을 보았다.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그 말은 그녀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 말이 앞서 걷는 순간, 그녀는 영원히 그 뒤를 따라가야 하는 사람이 된다.
요안나는 자기 문장을 보았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그 말은 넓고 따뜻했다. 그러나 너무 앞서가면, 아직 그 말에 도착하지 못한 자기 마음을 끌고 가버릴 수도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는 자기 문장을 보았다.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 말은 책임이었다. 그러나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끝없이 뒤쫓는 판결이 될 수도 있었다.
레이튼은 알렉산드리나에게 물었다.
“폐하. 그 문장은 폐하를 앞으로 걷게 합니까?”
알렉산드리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전 같으면 그렇다고 했을 것이다. 지금도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책상 위에서 보니, 문장과 자기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걷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까?”
“네. 아마도요.”
“아마도.”
레이튼은 그 말을 부드럽게 받았다.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의 문장을 보며 말했다.
“그 말이 없으면, 저는 제가 여기까지 온 길을 설명하기 어려워요. 부족하다고 들었고, 흉내라고 들었고, 왕의 피가 아니라고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더 왕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답이 폐하를 지켜주었군요.”
“네.”
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가끔은, 그 답이 저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아요.”
레이튼은 더 묻지 않았다. 아직 1막이었다. 오늘은 내려다보는 시간이지, 해부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요안나를 보았다.
“폐하. 그 문장은 폐하를 열어줍니까?”
요안나는 칠판의 문장을 보았다.
“네.”
대답은 맑았다. 그러나 잠시 뒤, 그녀는 덧붙였다.
“그런데 너무 커요.”
“크다는 것은 나쁜 일입니까?”
“아니요. 로마는 작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평화도 너무 작으면, 누군가를 바깥에 두게 될 테니까요.”
그녀는 교실 뒤편의 미하일라를 보지 않으려 했다가, 결국 보았다.
“하지만 너무 크면…… 제가 아직 말하지 못한 것까지 다 말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미하일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관찰입니다.”
요안나는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호흐마이스터에게는 레이튼이 조금 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흐마이스터. 그 문장은 당신을 지탱합니까?”
“그렇습니다.”
대답은 빠르고 예의 있었다.
“기사단의 장은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당신에게 서 있을 자리를 줍니까?”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예.”
“그리고?”
호흐마이스터는 칠판의 문장을 보았다.
“때로는 앉을 자리를 빼앗습니다.”
교실 안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호흐마이스터는 더 말하지 않았다. 레이튼도 더 묻지 않았다. 오늘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답이 아직 숨 쉬는지 보려면, 너무 오래 손으로 움켜쥐면 안 된다.
레이튼은 말했다.
“이제 내려오셔도 됩니다.”
요안나가 먼저 내려왔다. 이번에도 레이튼의 손을 잡지 않고 스스로 내려왔지만, 내려온 뒤 책상을 한 번 쓰다듬었다.
“생각보다 높은 곳이었어요.”
알렉산드리나는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그녀는 아주 작게 말했다.
“왕좌가 아니어도, 서는 연습은 필요하군요.”
레이튼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훌륭한 문장입니다.”
“아직 제 문장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보류해두지요.”
호흐마이스터는 마지막으로 내려왔다. 책상에서 내려오는 동작마저 예의 바르고 정확했다. 그러나 내려온 뒤, 그녀는 아주 잠깐 자기 발이 닿은 바닥을 확인하듯 내려다보았다.
레이튼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호흐마이스터는 고개를 들었다.
“예. 다만 타인의 시야가 아니라 자기 발로 높이를 바꾸는 일은, 예상보다 불편하군요.”
“오늘 수업의 절반은 이미 성공한 것 같습니다.”
“칭찬입니까?”
“그렇게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아주 희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예의상 받아들이겠습니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문득 칠판 위의 물음표와 세 문장을 보았다. 아직 이 교실에는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름을 붙이지 않은 채로 두기에는, 무언가가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그때 요안나가 먼저 물었다.
“선생님.”
“예, 폐하.”
“이 교실에는 이름이 없나요?”
레이튼은 잠시 칠판을 보았다.
“아직 없습니다.”
푸리나의 눈이 빛났다.
“그럼 지금 정하자.”
그레이가 즉시 반응했다.
“기록을 위해서도 임시 명칭은 필요합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조용히 말했다.
“명칭은 기능을 과도하게 규정할 위험이 있습니다.”
레이튼은 그녀를 보았다.
“좋은 지적입니다. 이름은 문이 될 수도 있지만, 벽이 될 수도 있지요.”
푸리나는 팔짱을 꼈다.
“하지만 이름 없는 무대는 관객이 길을 잃어.”
“길을 잃는 것도 때로는 수업입니다.”
“레이튼, 그 말은 제목으로 쓰기 힘들어.”
그레이가 말했다.
“임시 명칭을 제안해도 되겠습니까?”
푸리나는 조금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좋아. 말해봐.”
그레이는 기록판을 보며 말했다.
“답의 재검토 교실.”
푸리나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그건 교실이 아니라 행정 감사야.”
“기능은 정확합니다.”
“정확하기만 하면 제목이 아니야.”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손을 놓지 않는 교실은 어때요?”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좋아. 따뜻해.”
알렉산드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손을 잡을 수 없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요안나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판결을 유예하는 방.”
푸리나는 호흐마이스터를 보았다.
“너무 무겁지 않아?”
호흐마이스터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제 평소 취향입니다.”
알렉산드리나가 아주 작게 웃었다. 요안나도 웃었다. 교실의 공기가 잠깐 가벼워졌다.
푸리나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미지와 물음표와 세 명의 군주와 한 명의 신사와 아무튼 매우 중요한 교실》.”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기록 불가입니다.”
“왜!”
“명칭이 과도합니다.”
호흐마이스터가 정중하게 덧붙였다.
“작전명으로도 부적절합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손으로 입가를 살짝 가렸다.
“그래도 푸리나 전하답긴 하네요.”
푸리나는 조금 만족한 듯했다.
레이튼은 웃으며 학생들을 보았다.
“제안들이 모두 흥미롭군요. 그러나 이름은 제가 붙일 것이 아닙니다.”
요안나가 물었다.
“왜요?”
“제가 이름 붙이면, 이 교실은 제 답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레이튼은 칠판의 물음표를 보았다.
“다만, 이 교실이 무엇을 위한 곳인지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급한 답을 다시 질문으로 돌려보내는 곳. 아직 선을 긋지 않은 가능성을 함께 바라보는 곳.”
알렉산드리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너무 빨리 정하지 않는 이름이면 어떨까요?”
“흥미롭군요.”
“아직 길을 다 걷지 않았으니까요. 아직 왕인지, 학생인지, 죄인인지, 황제인지, 그런 이름만으로 닫히지 않는 곳이면 좋겠어요.”
레이튼은 잠시 그녀를 보았다.
이번 알렉산드리나의 말은 높지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그 조심스러움 안에, 언젠가 위대해질 수 있는 사람의 의지가 있었다.
레이튼은 천천히 칠판의 물음표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별들이 좋겠습니다.”
요안나가 고개를 기울였다.
“별이요?”
“별은 거기 있습니다. 하지만 선을 긋기 전에는 아직 별자리가 아닙니다. 성급하게 선을 그으면 하늘이 너무 빨리 닫히지요.”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그러나 선을 전혀 긋지 않으면 항로를 찾기 어렵습니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을 긋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빨리 긋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푸리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교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레이가 기록판을 내려다보았다.
“기록 가능합니다.”
요안나는 미소 지었다.
“좋아요. 아직 별들이니까요.”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을 보았다.
“아직 이름 붙지 않았으니, 다시 볼 수 있겠네요.”
호흐마이스터는 고개를 숙였다.
“명칭이 기능을 과도하게 고정하지 않으면서도, 방향은 제공합니다. 적절합니다.”
푸리나는 뿌듯하게 웃었다.
“결정!”
레이튼은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이 교실은 그렇게 불리겠군요.”
그는 칠판 한쪽에 조심스럽게 적었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분필 소리가 교실 안에 낮게 울렸다.
미하일라는 그 이름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반대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별에 선을 그어야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빨리 그은 선은 하늘을 명령서로 바꾼다.
레이튼은 분필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알렉산드리나가 놀란 듯 물었다.
“벌써요?”
“첫 수업은 오래 끌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요.”
“좋은 수업의 첫날은 대개 그렇습니다. 시작한 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시작되어 있지요.”
요안나는 칠판의 이름을 보았다.
“다음에는 뭘 하나요?”
레이튼은 칠판 아래에 새 질문을 적었다.
어디서 다쳤습니까?
그 문장이 쓰이자, 방금 가벼워졌던 공기가 다시 조금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닫히는 무게가 아니라, 다음 문을 예감하는 무게였다.
레이튼은 말했다.
“다음 수업에서는 답을 조금 더 가까이 보겠습니다.”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진찰입니까?”
“예.”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맥박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을 보았다.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그 문장은 아직 그녀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옆에는 물음표가 있었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아직 선을 긋지 않은 하늘.
그녀는 작게 말했다.
“차가 필요하겠네요.”
레이튼은 웃었다.
“물론입니다.”
막이 천천히 내려왔다.
2막 — 성급한 답들의 해부
그 아래,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빛처럼 한 줄이 남았다.
— 답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오래된 상처와 아직 살아 있는 소망이 함께 있다 —
— 성급한 답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법 —
1막 — 책상 위에서 답을 내려다보다
—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은, 다른 높이에서 보인다 —
레이튼은 정말로 책상을 가리켰다.
처음에는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그 교실에 앉은 이들은 평범한 학생들이 아니었다. 한 사람은 내전의 한복판에서 왕도를 증명해야 하는 차르였고, 한 사람은 혈통과 지지와 기적으로 로마의 평화를 말하는 어린 황제였으며, 한 사람은 죄와 기사도를 한 몸에 두른 튜튼의 호흐마이스터였다. 그들에게 책상 위에 올라서라는 말은 수업이라기보다, 아주 예의 바른 장난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교실 뒤편 창가에 선 미하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 수업이 어디로 가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들고 있었고, 푸리나는 문가에 기대어 이 이상한 침묵이 무대 위에서 어떤 호흡으로 바뀌는지 보고 있었다.
알렉산드리나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말 책상 위에 올라서라는 뜻인가요?”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책상을 내려다보았다. 왕좌도 아니고, 전장의 언덕도 아니고, 사절단 앞의 단상도 아니었다. 학생이 답을 쓰고, 지우고, 틀리고, 다시 쓰는 곳. 그녀는 잠시 난처하게 웃었다.
“제가 아직 왕도 위에서도 제대로 서 있는지 모르겠는데, 책상 위부터 배워야 하다니요.”
“그래서 좋은 출발점일지도 모릅니다.”
“그 말은 조금 얄밉네요, 레이튼 경.”
“종종 듣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다시 책상을 보았다. 눈빛은 경계하고 있었지만, 이전처럼 날카롭게 밀어붙이는 태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자기 부족함을 알기에 더 단정히 서려는 사람이었다. 가짜라는 말을 들어본 사람은 때로 남들보다 자세를 더 곧게 세운다. 무너지면, 그 말이 사실이 되어버릴까 봐.
요안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선생님. 떨어지면 어떻게 하나요?”
레이튼은 잠시 생각했다.
“그 경우에는, 누군가 손을 내밀어야겠지요.”
“그것도 수업인가요?”
“많은 경우 그렇습니다.”
요안나는 그 대답을 듣고 작게 웃었다. 그녀는 책상 위를 보았다. 작고 낡은 나무판. 황제의 발이 올라서기에는 지나치게 평범한 곳. 그래서 조금 마음에 들었다.
호흐마이스터는 가장 늦게 반응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앉은 채 손가락을 가지런히 모으고 있었다. 기사단장다운 침착한 자세였지만, 그 침착함 안쪽에 분명한 불편함이 있었다.
“레이튼 경.”
“예, 호흐마이스터.”
“기사단장으로서 여러 독특한 명령과 의식을 보아왔습니다만, 이것은 그중에서도 상당히 독특합니다.”
“명령은 아닙니다.”
“그 점이 더 어렵군요.”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거절하셔도 됩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명령이라면 따르거나 거절하면 된다. 그러나 권유는 자기 마음의 이유를 살펴야 한다. 호흐마이스터에게 그것은 생각보다 번거로운 일이었다.
“거절할 수 있다는 말은, 대체로 거절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질문도 그렇습니다.”
“그렇군요. 오늘 수업은 시작 전부터 함정이 많습니다.”
“퍼즐이라고 불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푸리나가 결국 작게 웃었다. 그레이는 기록했다.
수업 방식: 책상 위에 올라서기. 학생 반응: 당혹, 경계, 예의 바른 저항.
요안나가 가장 먼저 일어섰다.
그녀는 책상에 손을 짚고 조심스럽게 올라섰다. 레이튼이 가까이서 손을 내밀 준비를 했지만, 요안나는 스스로 균형을 잡았다. 책상이 작게 삐걱였다. 그녀는 잠깐 놀라더니, 곧 눈을 크게 떴다.
“정말 다르게 보여요.”
교실은 여전히 교실이었다. 그러나 조금 높은 곳에서 보면, 칠판이 낮아지고 창밖의 빛이 가까워졌다. 사람들의 얼굴도 다르게 놓였다. 왕좌에서 내려다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높이였다. 낮지도, 높지도 않은 기묘한 자리. 어쩌면 학생의 자리.
알렉산드리나는 요안나를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일어섰다.
“요안나 폐하께서 먼저 올라가셨는데, 제가 계속 앉아 있기도 어렵네요.”
그녀는 책상 위에 올라섰다. 동작은 조심스러웠지만 몸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단련된 사람의 균형이었다. 그러나 표정은 조금 복잡했다. 책상 위에 올라선 왕도 지망자라니, 그녀 자신도 그 그림이 우스운지 아주 짧게 숨을 흘렸다.
“이건…… 조금 이상하네요.”
레이튼이 물었다.
“이상한 것은 나쁜 일입니까?”
“아니요. 하지만 낯섭니다. 낯선 건 늘 조금 무섭고요.”
“좋은 관찰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책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선생님들은 원래 학생이 무서워한다는 말을 하면 칭찬하나요?”
“좋은 선생이라면, 가끔은 그래야겠지요.”
호흐마이스터는 마지막까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서서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예의 바르게 장갑 낀 손을 책상 위에 올렸다.
“책상에게 무례를 범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푸리나는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레이튼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책상도 오늘 수업의 일원으로 존중해주시면 됩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레이튼을 보았다.
“그 대답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질문을 사랑하는 사람은, 가끔 책상에게도 기회를 줍니다.”
“그렇군요.”
호흐마이스터는 올라섰다. 동작은 우아했고, 조금 뻣뻣했다. 책상 위에 선 뒤에도 자세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반듯해서, 책상이 작은 연단처럼 보였다.
세 사람이 책상 위에 섰다.
알렉산드리나, 요안나, 호흐마이스터.
왕도와 평화와 책임이라는 답을 들고 온 이들이, 교실의 작은 책상 위에 서 있었다.
레이튼은 칠판 앞에서 그들을 올려다보았다.
“이제 보이는 것을 말해주시겠습니까?”
요안나가 먼저 대답했다.
“교실이요. 그런데 조금 더 작아 보여요. 아니, 제가 커진 것 같기도 하고요.”
“좋습니다.”
“그리고…… 모두가 이상하게 같아 보여요. 황제도, 차르도, 기사단장도 책상 위에서는 조금 학생 같아요.”
푸리나는 그 말에 조용히 미소 지었다.
레이튼은 알렉산드리나를 보았다.
“폐하께서는 무엇이 보이십니까?”
알렉산드리나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 그녀는 교실을 보았다. 책상, 칠판, 창문, 레이튼, 푸리나, 그레이, 미하일라. 그리고 자기가 올라선 낮은 높이.
“왕좌가 없네요.”
그 말이 교실에 내려앉았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왕좌가 없으니, 제가 어디에 서야 하는지 더 잘 모르겠습니다.”
그녀는 작게 웃었다.
“이상하네요. 왕좌가 없으면 자유로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조심스러워요.”
“왜 그렇다고 생각하십니까?”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을 보았다.
“왕좌는 자리를 정해주니까요. 그 자리에 앉으면, 적어도 무엇처럼 보여야 하는지는 압니다. 하지만 여기는…… 제가 직접 서야 하네요.”
그레이는 그 말을 기록했다.
알렉산드리나: 왕좌 없는 자리에서 오히려 자세를 스스로 정해야 함.
레이튼은 호흐마이스터를 보았다.
“호흐마이스터께서는 무엇이 보이십니까?”
호흐마이스터는 교실 뒤편과 문, 창문, 사람들의 위치를 확인했다. 그녀의 시선은 아직도 지휘관의 시야였다. 그러나 잠시 뒤, 아주 조용히 말했다.
“숨을 곳이 줄어드는군요.”
“높아졌는데도 말입니까?”
“예. 구석에 앉으면 몸은 숨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에 서면 자세가 드러납니다.”
“좋은 관찰입니다.”
호흐마이스터는 고개를 숙였다.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
레이튼은 칠판으로 돌아섰다. 그는 물음표 아래에 세 개의 문장을 적었다.
나는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나는 기사단을 위해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세 문장이 칠판 위에 나란히 놓였다.
그레이의 펜이 멈췄다. 푸리나는 숨을 조금 죽였다. 미하일라는 창가에서 조용히 그 문장들을 바라보았다.
레이튼은 다시 학생들을 보았다.
“여러분의 답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의 첫 문장을 보았다. 자기 입으로 말했을 때와 달랐다. 글자로 적히니 문장은 더 차갑고, 더 단단하고, 더 멀어 보였다.
요안나는 두 번째 문장을 보았다. 그것은 그녀의 핵심이었다. 짧고 밝고, 너무 크다. 칠판에 적히자 그 말은 교실을 넘어서려는 듯했다.
호흐마이스터는 세 번째 문장을 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았지만, 장갑 낀 손가락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레이튼은 말했다.
“오늘은 이 답들이 틀렸는지 묻지 않겠습니다.”
그는 분필을 내려놓았다.
“오히려 반대로 묻겠습니다. 이 답들은 여러분을 여기까지 데려왔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도 여러분과 함께 걷고 있습니까?”
교실 안은 조용했다.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여러분보다 먼저 걷고 있습니까?”
그 말은 세 사람 모두에게 다르게 닿았다.
알렉산드리나는 자기 문장을 보았다.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그 말은 그녀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 말이 앞서 걷는 순간, 그녀는 영원히 그 뒤를 따라가야 하는 사람이 된다.
요안나는 자기 문장을 보았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그 말은 넓고 따뜻했다. 그러나 너무 앞서가면, 아직 그 말에 도착하지 못한 자기 마음을 끌고 가버릴 수도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는 자기 문장을 보았다.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 말은 책임이었다. 그러나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끝없이 뒤쫓는 판결이 될 수도 있었다.
레이튼은 알렉산드리나에게 물었다.
“폐하. 그 문장은 폐하를 앞으로 걷게 합니까?”
알렉산드리나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전 같으면 그렇다고 했을 것이다. 지금도 대답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책상 위에서 보니, 문장과 자기 사이에 거리가 생겼다.
“걷게 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까?”
“네. 아마도요.”
“아마도.”
레이튼은 그 말을 부드럽게 받았다.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의 문장을 보며 말했다.
“그 말이 없으면, 저는 제가 여기까지 온 길을 설명하기 어려워요. 부족하다고 들었고, 흉내라고 들었고, 왕의 피가 아니라고 들었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더 왕다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답이 폐하를 지켜주었군요.”
“네.”
그녀는 잠시 멈췄다가,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가끔은, 그 답이 저를 기다려주지 않는 것 같아요.”
레이튼은 더 묻지 않았다. 아직 1막이었다. 오늘은 내려다보는 시간이지, 해부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는 요안나를 보았다.
“폐하. 그 문장은 폐하를 열어줍니까?”
요안나는 칠판의 문장을 보았다.
“네.”
대답은 맑았다. 그러나 잠시 뒤, 그녀는 덧붙였다.
“그런데 너무 커요.”
“크다는 것은 나쁜 일입니까?”
“아니요. 로마는 작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평화도 너무 작으면, 누군가를 바깥에 두게 될 테니까요.”
그녀는 교실 뒤편의 미하일라를 보지 않으려 했다가, 결국 보았다.
“하지만 너무 크면…… 제가 아직 말하지 못한 것까지 다 말한 것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미하일라는 움직이지 않았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관찰입니다.”
요안나는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호흐마이스터에게는 레이튼이 조금 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흐마이스터. 그 문장은 당신을 지탱합니까?”
“그렇습니다.”
대답은 빠르고 예의 있었다.
“기사단의 장은 책임을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당신에게 서 있을 자리를 줍니까?”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예.”
“그리고?”
호흐마이스터는 칠판의 문장을 보았다.
“때로는 앉을 자리를 빼앗습니다.”
교실 안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호흐마이스터는 더 말하지 않았다. 레이튼도 더 묻지 않았다. 오늘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답이 아직 숨 쉬는지 보려면, 너무 오래 손으로 움켜쥐면 안 된다.
레이튼은 말했다.
“이제 내려오셔도 됩니다.”
요안나가 먼저 내려왔다. 이번에도 레이튼의 손을 잡지 않고 스스로 내려왔지만, 내려온 뒤 책상을 한 번 쓰다듬었다.
“생각보다 높은 곳이었어요.”
알렉산드리나는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발이 바닥에 닿는 순간, 그녀는 아주 작게 말했다.
“왕좌가 아니어도, 서는 연습은 필요하군요.”
레이튼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훌륭한 문장입니다.”
“아직 제 문장인지는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보류해두지요.”
호흐마이스터는 마지막으로 내려왔다. 책상에서 내려오는 동작마저 예의 바르고 정확했다. 그러나 내려온 뒤, 그녀는 아주 잠깐 자기 발이 닿은 바닥을 확인하듯 내려다보았다.
레이튼은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호흐마이스터는 고개를 들었다.
“예. 다만 타인의 시야가 아니라 자기 발로 높이를 바꾸는 일은, 예상보다 불편하군요.”
“오늘 수업의 절반은 이미 성공한 것 같습니다.”
“칭찬입니까?”
“그렇게 받아들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아주 희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예의상 받아들이겠습니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지켜보다가, 문득 칠판 위의 물음표와 세 문장을 보았다. 아직 이 교실에는 이름이 없었다. 그러나 이제 이름을 붙이지 않은 채로 두기에는, 무언가가 이미 시작된 것 같았다.
그때 요안나가 먼저 물었다.
“선생님.”
“예, 폐하.”
“이 교실에는 이름이 없나요?”
레이튼은 잠시 칠판을 보았다.
“아직 없습니다.”
푸리나의 눈이 빛났다.
“그럼 지금 정하자.”
그레이가 즉시 반응했다.
“기록을 위해서도 임시 명칭은 필요합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조용히 말했다.
“명칭은 기능을 과도하게 규정할 위험이 있습니다.”
레이튼은 그녀를 보았다.
“좋은 지적입니다. 이름은 문이 될 수도 있지만, 벽이 될 수도 있지요.”
푸리나는 팔짱을 꼈다.
“하지만 이름 없는 무대는 관객이 길을 잃어.”
“길을 잃는 것도 때로는 수업입니다.”
“레이튼, 그 말은 제목으로 쓰기 힘들어.”
그레이가 말했다.
“임시 명칭을 제안해도 되겠습니까?”
푸리나는 조금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좋아. 말해봐.”
그레이는 기록판을 보며 말했다.
“답의 재검토 교실.”
푸리나는 즉시 고개를 저었다.
“그건 교실이 아니라 행정 감사야.”
“기능은 정확합니다.”
“정확하기만 하면 제목이 아니야.”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손을 놓지 않는 교실은 어때요?”
푸리나는 눈을 반짝였다.
“좋아. 따뜻해.”
알렉산드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하지만 아직 손을 잡을 수 없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요?”
요안나는 그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판결을 유예하는 방.”
푸리나는 호흐마이스터를 보았다.
“너무 무겁지 않아?”
호흐마이스터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제 평소 취향입니다.”
알렉산드리나가 아주 작게 웃었다. 요안나도 웃었다. 교실의 공기가 잠깐 가벼워졌다.
푸리나는 자신의 차례가 오자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미지와 물음표와 세 명의 군주와 한 명의 신사와 아무튼 매우 중요한 교실》.”
그레이가 바로 말했다.
“기록 불가입니다.”
“왜!”
“명칭이 과도합니다.”
호흐마이스터가 정중하게 덧붙였다.
“작전명으로도 부적절합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손으로 입가를 살짝 가렸다.
“그래도 푸리나 전하답긴 하네요.”
푸리나는 조금 만족한 듯했다.
레이튼은 웃으며 학생들을 보았다.
“제안들이 모두 흥미롭군요. 그러나 이름은 제가 붙일 것이 아닙니다.”
요안나가 물었다.
“왜요?”
“제가 이름 붙이면, 이 교실은 제 답이 되어버릴 테니까요.”
레이튼은 칠판의 물음표를 보았다.
“다만, 이 교실이 무엇을 위한 곳인지는 말할 수 있겠습니다. 성급한 답을 다시 질문으로 돌려보내는 곳. 아직 선을 긋지 않은 가능성을 함께 바라보는 곳.”
알렉산드리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너무 빨리 정하지 않는 이름이면 어떨까요?”
“흥미롭군요.”
“아직 길을 다 걷지 않았으니까요. 아직 왕인지, 학생인지, 죄인인지, 황제인지, 그런 이름만으로 닫히지 않는 곳이면 좋겠어요.”
레이튼은 잠시 그녀를 보았다.
이번 알렉산드리나의 말은 높지 않았다. 오히려 조심스러웠다. 그러나 그 조심스러움 안에, 언젠가 위대해질 수 있는 사람의 의지가 있었다.
레이튼은 천천히 칠판의 물음표를 바라보았다.
“그렇다면 별들이 좋겠습니다.”
요안나가 고개를 기울였다.
“별이요?”
“별은 거기 있습니다. 하지만 선을 긋기 전에는 아직 별자리가 아닙니다. 성급하게 선을 그으면 하늘이 너무 빨리 닫히지요.”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그러나 선을 전혀 긋지 않으면 항로를 찾기 어렵습니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을 긋지 않는 것이 아니라, 너무 빨리 긋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푸리나가 조용히 말했다.
“그럼……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교실이 잠시 조용해졌다.
그레이가 기록판을 내려다보았다.
“기록 가능합니다.”
요안나는 미소 지었다.
“좋아요. 아직 별들이니까요.”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을 보았다.
“아직 이름 붙지 않았으니, 다시 볼 수 있겠네요.”
호흐마이스터는 고개를 숙였다.
“명칭이 기능을 과도하게 고정하지 않으면서도, 방향은 제공합니다. 적절합니다.”
푸리나는 뿌듯하게 웃었다.
“결정!”
레이튼은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면 오늘부터 이 교실은 그렇게 불리겠군요.”
그는 칠판 한쪽에 조심스럽게 적었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분필 소리가 교실 안에 낮게 울렸다.
미하일라는 그 이름을 보고 있었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침묵은 반대가 아니었다. 어쩌면 그녀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별에 선을 그어야 길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너무 빨리 그은 선은 하늘을 명령서로 바꾼다.
레이튼은 분필을 내려놓았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알렉산드리나가 놀란 듯 물었다.
“벌써요?”
“첫 수업은 오래 끌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한 것 같은데요.”
“좋은 수업의 첫날은 대개 그렇습니다. 시작한 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시작되어 있지요.”
요안나는 칠판의 이름을 보았다.
“다음에는 뭘 하나요?”
레이튼은 칠판 아래에 새 질문을 적었다.
어디서 다쳤습니까?
그 문장이 쓰이자, 방금 가벼워졌던 공기가 다시 조금 가라앉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닫히는 무게가 아니라, 다음 문을 예감하는 무게였다.
레이튼은 말했다.
“다음 수업에서는 답을 조금 더 가까이 보겠습니다.”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진찰입니까?”
“예.”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처를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아직 살아 있는 맥박을 확인하기 위해서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을 보았다.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그 문장은 아직 그녀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옆에는 물음표가 있었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아직 선을 긋지 않은 하늘.
그녀는 작게 말했다.
“차가 필요하겠네요.”
레이튼은 웃었다.
“물론입니다.”
막이 천천히 내려왔다.
2막 — 성급한 답들의 해부
그 아래,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빛처럼 한 줄이 남았다.
— 답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오래된 상처와 아직 살아 있는 소망이 함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