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214여관◆zAR16hM8he(c2970e66)2026-05-23 (토) 03:38:12
《아포리아의 교실》
— 성급한 답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법 —
3막 — 열린 답의 불안
— 질문은 문을 열지만, 열린 문 앞에 선 사람에게는 바람도 함께 닿는다 —
세 번째 수업은 시작되기 전부터 조용했다.
아니, 조용하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았다. 교실 안에는 소리가 없었지만, 칠판 위의 물음표들은 어딘가 시끄러웠다. 흰 분필로 그려진 세 개의 작은 질문이, 제각기 자기 주인의 뒤를 따라다니다가 다시 교실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버리면 길이 사라지고, 붙잡으면 증명만 남는가?
포함하지 않으면 모든 이가 아니고, 포함하면 너무 빨리 괜찮아져야 하는가?
책임과 자기판결은 어디서 갈라지는가?
알렉산드리나는 자기 자리 앞에 서서 첫 번째 질문을 보고 있었다. 오늘 그녀는 전보다 조금 늦게 앉았다. 자리에 앉는 일조차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사람처럼, 책상 옆에 손을 얹고 잠시 머물렀다.
요안나는 두 번째 질문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평화라는 말은 여전히 그녀의 안에서 빛났다. 그러나 그 빛은 이제 궁의 닫힌 문과도 닿아 있었다. 너무 밝은 말은 때로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를 더 길게 늘인다.
호흐마이스터는 세 번째 질문을 보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모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명령서 위에 서명하기 전처럼. 그러나 손끝은 멈추어 있었다.
레이튼은 교탁 앞에 섰다. 그는 찻잔을 준비하지 않았다. 차가 필요 없는 날이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필요한 날일지도 몰랐다. 다만 오늘은 차를 마시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오늘은 답을 쓰지 않겠습니다.”
알렉산드리나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오늘은 무엇을 하나요?”
“답이 열렸을 때 생기는 불안을 보겠습니다.”
요안나가 손을 모았다.
“그건 수업인가요?”
레이튼은 잠시 생각했다.
“그렇기를 바랍니다.”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확신하지 못하시는군요.”
“예.”
레이튼은 부드럽게 인정했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모든 수업의 결말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급한 답이겠지요.”
푸리나는 교실 한쪽에서 그 말을 들으며 칠판을 바라보았다. 레이튼이 직접 쓴 물음표들. 그러나 이제 그것들은 레이튼 혼자 만든 기호가 아니었다. 알렉산드리나의 떨림, 요안나의 막힌 목, 호흐마이스터의 멈춘 손이 묻은 질문이었다.
그레이는 기록했다.
3막 시작. 목표: 열린 답의 불안 관찰. 답 작성 없음.
미하일라는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학생이 아니었다. 그러나 관객도 아니었다. 그녀는 교실 바깥의 현실로서 서 있었고, 그 현실은 오늘따라 조금 더 가까웠다.
그녀가 말했다.
“레이튼.”
“예, 폐하.”
“그대는 문을 열었다.”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미하일라의 목소리는 짧고 정확했다.
“열었다. 이제 바람이 들어올 것이다.”
그 말이 끝난 순간, 창문은 닫혀 있었는데도 분필 가루가 흔들렸다.
푸리나가 눈을 들었다.
극장이 반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변화였다. 칠판 위의 물음표가 조금 번졌다. 하얀 선이 물처럼 흐르더니, 칠판 가장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벽으로 퍼졌다. 책상의 그림자가 길어졌고, 창문 밖의 오후빛이 이상하게 어두워졌다. 교실은 여전히 교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교실이 아닌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요안나가 작게 말했다.
“무대가 바뀌고 있어요.”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내가 의도한 것보다 빠른데.”
레이튼은 칠판을 보았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그 이름 아래, 물음표들이 별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아직 별자리가 되지 않은 별들. 그러나 누군가 선을 긋지 않아도, 별들은 자기 중력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
레이튼은 낮게 말했다.
“질문들이 수업을 계속하려는 모양입니다.”
미하일라가 물었다.
“막을 내릴 것인가?”
푸리나는 잠시 레이튼을 보았다.
레이튼은 학생들을 보았다. 세 사람 모두 아직 답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극장은 이미 그 답들을 바람 앞에 세우려 하고 있었다. 현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을 닮은 압력. 현실의 얼굴을 빌린 무대. 답이 교실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
레이튼이 말했다.
“아니요.”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다만,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미하일라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그 말을 기억하라.”
교실의 바닥이 갈라지듯 바뀌었다.
막이 열렸다.
---
첫 번째로 변한 것은 알렉산드리나의 자리였다.
그녀의 책상이 길게 늘어나 군막의 탁자가 되었다. 칠판은 전황도가 되었다. 분필로 적힌 선들이 강과 산맥과 성채의 위치로 바뀌었다. 교실 의자들은 사절의 자리처럼 양옆에 놓였고, 창문으로 들어오던 오후빛은 천막 위를 두드리는 새벽빛이 되었다.
그곳은 실제 불가리아가 아니었다.
푸리나의 극 안에서 만들어진, 알렉산드리나의 답이 가장 불안해지는 장소였다.
알렉산드리나는 탁자 앞에 서 있었다. 옷차림은 그대로였지만, 그림자가 달랐다. 교실 속 학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왕으로 보이기 위해 계속 자세를 바로잡아온 사람이었다.
무대 속 사절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얼굴은 뚜렷하지 않았다. 목소리만 선명했다.
“차르시여, 약점을 보이시면 안 됩니다.”
“따르는 자들은 완성된 왕을 원합니다.”
“피의 부족함은 말하지 마십시오.”
“흔들림은 적에게 빌미를 줍니다.”
“가짜라는 말은 적이 붙이는 이름입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누구보다 왕답게 보이셔야 합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 말들은 새롭지 않았다. 너무 익숙했다. 익숙해서 편할 정도였다. 그녀는 그 말들에 맞춰 자신을 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정돈하고, 의심받지 않는 답을 내놓는 법.
그녀는 입을 열었다.
“네. 저는…….”
말이 멈췄다.
레이튼이 옆에 있었다. 그는 사절들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알렉산드리나의 말을 대신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존재는 답이 아니었다. 물음표였다.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이었던 전황도 한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아직 희미하게 문장이 남아 있었다.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사절들의 목소리가 다시 밀려왔다.
“그렇습니다. 폐하께서는 누구보다 왕다워야 합니다.”
“멈추지 마십시오.”
“쉬지 마십시오.”
“부족함을 인정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 모두가 다시 묻게 될 것입니다. 정말 왕인가?”
알렉산드리나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저는…… 왕다워야 해요.”
그녀의 말투는 고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말하는 사람처럼 낮고 조심스러웠다.
“그 말로 여기까지 왔어요. 제가 가진 건 완성된 피가 아니라, 걸어온 길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더 잘해야 했고, 더 높이 서야 했고, 더 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절들의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 답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 답이 폐하를 왕으로 만듭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전황도를 보았다.
지도 위의 선들이 모두 그녀를 향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적군의 화살표가 아니라, 질문들이었다. 너는 누구인가. 피가 부족한 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흉내가 왕도가 될 수 있는가. 가짜가 왕이 될 수 있는가.
그녀는 작게 말했다.
“하지만…….”
무대 속 공기가 멈췄다.
레이튼이 조용히 물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제가 계속 증명만 하고 있다면, 저는 언제 왕이 되는 걸까요?”
그 질문은 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녀가 자기 입으로 낸 질문이었다.
사절들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런 말은 위험합니다.”
“의심을 보이면 안 됩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순간, 왕도는 무너집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그 목소리들을 들었다. 겁이 났다. 그녀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차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손을 떨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이곳은 교실이었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아직 선을 긋지 않은 곳.
그녀는 떨리는 손을 숨기지 않았다.
“저는 두려워요.”
그 말이 군막에 떨어졌다.
“제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면, 사람들이 저를 왕으로 보지 않을까 봐요. 제가 잠깐 멈추면, 뒤처질까 봐요. 제가 가짜라는 말을 버리면,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까지 사라질까 봐요.”
사절들은 침묵했다.
알렉산드리나는 숨을 골랐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숨기려고만 한다면…… 저는 왕도를 걷는 게 아니라 계속 도망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전황도의 선들이 흔들렸다. 새벽빛이 천막을 걷어냈다. 군막은 다시 교실의 책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다.
레이튼은 알렉산드리나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다만 말했다.
“좋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조금 지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이게 좋은 건가요?”
“답은 아닙니다.”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폐하의 질문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으로 돌아가는 전황도를 보았다.
그녀는 아직 답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자기 답이 자기 뒤에서 채찍처럼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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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변한 것은 요안나의 자리였다.
교실 문이 길어졌다. 나무문은 궁의 문이 되었다.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벽은 흰색이었지만, 어딘가 차가웠다. 책상은 사라지고, 긴 복도가 생겼다. 발소리가 너무 잘 울리는 복도였다.
그곳도 실제 궁이 아니었다.
요안나의 평화가 가장 아픈 얼굴과 마주해야 하는 무대였다.
요안나는 복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녀는 작은 황제였다. 그러나 작기만 한 황제는 아니었다. 그녀의 혈통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고, 그녀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복도에서는, 혈통도 지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목소리들이 들렸다.
“평화의 황제시여.”
“모든 이에게 평화를 말하려면 먼저 웃어야 합니다.”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모든 이를 말하겠습니까?”
“그분도 포함해야 합니다.”
“문을 닫은 사람도, 피 위에 선 사람도, 폐하의 평화 안에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요안나는 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문을 알고 있었다. 실제와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너무 닮아 있었다. 궁의 문. 예의 바르게 닫힌 문. 폭력적으로 잠기지 않았기에 더 말하기 어려운 문.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로 정치가 유지되고, 자신이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로 질서가 유지되던 문.
그 문 앞에 미하일라가 있었다.
정확히는, 두 명의 미하일라가 있었다.
하나는 창가에 서 있는 현실의 미하일라. 교실 바깥의 현실로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황제.
다른 하나는 무대 속 그림자. 보라색 망토와 활의 그림자를 지닌, 장례와 피와 결단 너머에서 문밖에 서 있던 황제.
요안나는 숨을 삼켰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말은 나왔다.
그러나 이어지지 않았다.
목소리들이 다시 말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이에게.”
“그 손도 잡으셔야 합니다.”
“손을 잡지 못한다면, 평화는 아직 부족합니다.”
“상처를 말하면 사람들은 갈라집니다.”
“기억은 분쟁을 낳습니다.”
“평화는 지나간 일을 넘는 것입니다.”
요안나는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모았다.
“아니요.”
그 말은 작았다.
목소리들이 멈췄다.
요안나는 문을 보았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레이튼은 복도 옆에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대신 말하지 않았다. 요안나가 자기 목소리를 찾을 때까지,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다.
요안나는 계속했다.
“저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 말하고 싶어요. 그건 거짓말이 아니에요. 저는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어요. 외국인도, 낮은 사람도, 적이었던 사람도, 언젠가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하지만 그 말이 제가 갇혀 있던 문을 없던 일로 만들면 안 돼요.”
문이 조금 흔들렸다.
“제가 아직 손을 잡을 수 없는데, 손을 잡은 척하는 것도 평화는 아니에요.”
무대 속 미하일라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창가의 미하일라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두 침묵이 겹치자, 교실은 숨을 죽였다.
요안나는 천천히 현실의 미하일라를 보았다.
“미하일라 폐하.”
미하일라는 짧게 대답했다.
“듣고 있다.”
“저는 폐하를 용서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교실이 아주 조용해졌다.
그 말은 공격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안나의 목소리는 칼이 아니었다. 문 앞에서 떨리는 손이었다.
“저는 아직 그 문을 기억해요. 장례식의 소리도,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도, 제가 살아 있는데도 나갈 수 없던 날들도. 그래서 모든 이에게 평화를 말하려고 하면, 목이 막혀요. 그 안에 폐하도 들어가야 하는지 생각하면, 더 막혀요.”
미하일라는 눈을 내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 말을 받아냈다.
변명하지 않았다.
요안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하지만 저는 미래를 전부 닫고 싶지도 않아요.”
문틈에 아주 작은 빛이 생겼다.
“이상하죠. 손은 못 잡겠는데, 문을 영원히 잠그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아직 폐하에게 다가갈 수 없지만, 폐하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제가 원하는 평화가 뭔지 아직 모르겠어요.”
레이튼은 조용히 말했다.
“모른다는 말이 오늘은 정직할 수 있습니다.”
요안나는 그를 보았다.
“하지만 황제가 몰라도 되나요?”
창가의 미하일라가 대답했다.
“오래 몰라서는 안 된다.”
요안나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미하일라는 이어 말했다.
“그러나 거짓으로 아는 척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 말은 차가웠지만, 요안나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요안나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모르겠다고 말할게요.”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닫힌 문 앞에서, 요안나는 처음으로 자기가 문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자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평화를 배신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알았다.
복도의 벽이 흐려졌다. 궁의 문은 다시 교실 문이 되려 했다.
요안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하지만 그 평화가 기억을 지우는 말이면, 저는 아직 그 말을 제 목소리로 할 수 없어요.”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그 말도 폐하의 목소리입니다.”
요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울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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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변한 것은 호흐마이스터의 자리였다.
교실의 책상들이 길게 이어져 기사단 회의실의 탁자가 되었다. 칠판은 거대한 명령서가 되었고, 분필 가루는 눈처럼 보이다가 곧 재처럼 보였다. 방 곳곳에는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겹쳤다. 란트마이스터들의 시야. 전선의 보고. 봉인된 편지. 끝내 서명해야 하는 명령들.
호흐마이스터는 탁자 끝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학생이 아니라, 호흐마이스터였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학생 같았다. 자기가 가장 익숙한 자리에서, 가장 피하고 싶던 질문을 마주하고 있었으니까.
탁자 위에는 한 장의 명령서가 놓여 있었다.
글자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목만은 선명했다.
징벌 명령.
목소리들이 들렸다.
“호흐마이스터.”
“반란에는 본보기가 필요합니다.”
“죄는 이미 당신의 몫입니다.”
“더러운 명령은 당신이 내리시면 됩니다.”
“그러면 기사단은 깨끗하게 남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 아닙니까?”
호흐마이스터는 명령서를 보았다.
이것은 실제 명령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실제 명령서와 닮아 있었다. 사랑하는 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결정. 기사답지 않지만 기사단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 누군가 해야 하며,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게 되는 결정.
그녀는 펜을 들었다.
레이튼은 탁자 옆에 있었다.
그는 펜을 빼앗지 않았다. 명령서를 찢지도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은, 멈추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었다.
호흐마이스터는 펜 끝을 명령서 위에 놓았다.
목소리들이 속삭였다.
“당신은 이미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니 더러운 일을 맡으십시오.”
“그것이 책임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기사단을 위한 죄입니다.”
호흐마이스터의 손은 안정되어 있었다.
너무 안정되어 있었다.
그 안정이 오히려 위험해 보일 정도로.
레이튼이 조용히 물었다.
“호흐마이스터.”
“듣고 있습니다.”
“그 명령은 기사단을 위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대답은 빨랐다.
레이튼은 다시 물었다.
“아니면, 당신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까?”
펜이 멈췄다.
탁자 위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호흐마이스터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질문은 과도합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명령서 앞에서는 질문이 늦습니다.”
“그럴 때도 있습니다.”
“늦은 질문은 사람을 죽입니다.”
“맞습니다.”
레이튼은 인정했다.
“그러나 너무 빠른 판결도 사람을 죽입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들이 다시 밀려왔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이미 죄는 당신의 것입니다.”
“더 어두운 길을 택하십시오.”
“당신이 더러워질수록, 기사단은 남습니다.”
“당신이 구원받지 않을수록, 땅은 평화로워집니다.”
그 말은 달콤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흐마이스터에게는 익숙했다. 익숙한 것은 때로 달콤한 것보다 위험하다. 사람은 익숙한 고통을 자기 본분이라 믿기 쉽다.
호흐마이스터가 낮게 말했다.
“저는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레이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명령한 일은 제게 돌아옵니다. 병사의 손, 란트마이스터의 시야, 서류 위의 잉크. 모두 제 이름 아래 모입니다.”
그녀의 손이 아주 조금 떨렸다.
“하지만 제가 죄를 짊어진다는 이유로, 더 많은 죄를 필요로 하게 된다면…….”
펜 끝이 명령서 위에서 멈췄다.
“그것은 기사단을 위한 책임이 아니라, 제가 제 판결을 유지하기 위한 명령일지도 모릅니다.”
목소리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차가워졌다.
“그렇다면 명령하지 않을 것입니까?”
“손실을 감당할 것입니까?”
“더 깨끗한 척할 것입니까?”
“당신이 죄를 피하려는 것입니까?”
호흐마이스터의 입술이 아주 조금 굳었다.
“아닙니다.”
그녀는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저는 죄를 피하지 않습니다.”
명령서의 글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죄를 피하지 않는 것과, 죄를 찾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호흐마이스터는 명령서 제목을 보았다.
징벌 명령.
그녀는 그것을 지우지 않았다. 아직은. 대신 그 아래 빈 줄에 다른 말을 쓰려 했다. 그러나 손이 멈췄다.
“아직 못 쓰겠습니다.”
그 말은 작았다.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습니다. 명령서 앞에서 아직 못 쓰겠다는 말은 위험합니다.”
“예.”
레이튼은 정직하게 말했다.
“위험합니다.”
호흐마이스터가 그를 보았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합니까?”
“아니요.”
레이튼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지 않지만, 혼자 두지는 않겠습니다.”
그 말에 호흐마이스터의 표정이 아주 조금 변했다.
아주 조금.
그녀는 다시 명령서를 보았다. 아직 답은 없었다. 징벌을 방어로 바꾸지도 못했고, 자기처벌과 책임을 완전히 구분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자기 안의 어두운 명령이 정말 기사단을 위한 것인지 묻게 되었다.
그 물음만으로도 회의실은 흔들렸다.
탁자가 다시 교실 책상이 되기 시작했다. 명령서는 칠판의 문장으로 흐려졌다. 분필 가루는 다시 분필 가루가 되었다.
호흐마이스터는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놓지 못한 것인지, 놓지 않기로 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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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작은 극이 지나간 뒤, 교실은 다시 교실이 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책상들은 조금 다른 위치에 놓인 것 같았고, 칠판의 물음표들은 전보다 더 짙어 보였다. 창문 밖의 빛도 조금 차가웠다. 학생들은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들이 앉은 자세는 이전과 달랐다.
알렉산드리나는 손을 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주먹을 쥐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도 이제야 깨달은 듯했다.
요안나는 교실 문을 보고 있었다. 단순한 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직 복도의 문과 겹쳐 보였다.
호흐마이스터는 펜을 들고 있지 않았는데도, 손가락이 무언가를 붙잡은 자세로 굳어 있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보았다. 적어야 할 말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한동안 적지 못했다. 마침내 그녀는 짧게 썼다.
3막: 질문의 부작용 확인. 학생 전원, 답을 완성하지 못함. 불안 개방.
푸리나는 칠판을 보았다. 그녀가 연출한 극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극은 레이튼의 질문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문을 열었고, 바람을 불러들였으며, 학생들의 손을 떨게 했다.
미하일라가 입을 열었다.
“레이튼.”
레이튼은 고개를 들었다.
“예, 폐하.”
“그대의 질문은 그들의 답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미하일라는 학생들을 차례로 보았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더 불안하다.”
교실은 조용했다.
“그대는 이것을 성장이라 부를 것인가, 상처라 부를 것인가.”
레이튼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알렉산드리나를 보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왕도가 도망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들여다보았다.
요안나를 보았다. 그녀는 평화가 기억을 지우는 말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앞에 서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를 보았다. 그녀는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자기판결을 유지하려 했는지 묻게 되었다.
상처가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손들이 떨리고 있었다.
성장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그 떨림은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에서 나왔다.
레이튼은 천천히 말했다.
“둘 다일지도 모릅니다.”
미하일라는 침묵했다.
레이튼은 말을 이었다.
“상처가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그들의 손이 떨립니다. 성장이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그 떨림은 너무 아픕니다.”
그는 칠판의 물음표를 보았다.
“하지만 성장도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그들은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로 떨고 있습니다.”
푸리나는 숨을 멈춘 듯 들었다.
레이튼은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 저는…… 그 떨림이 혼자 남지 않도록 곁에 있어야겠지요.”
미하일라가 물었다.
“그것이 그대의 답인가?”
레이튼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답을 성급히 닫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질문 뒤에 숨을 수는 없었다.
“오늘의 답입니다.”
그는 말했다.
“완성된 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이 교실에서 제가 피해서는 안 되는 답입니다.”
미하일라는 그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좋다.”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다.
판결에 가까웠다.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교실의 칠판 한쪽,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이라는 글씨 아래에서 물음표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들. 아직 선을 긋지 않은 답들. 그러나 이제 모두가 알았다. 별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아름답기만 한 일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위험도 함께 있다.
레이튼은 분필을 들었다.
그리고 칠판 아래에 짧게 적었다.
문을 열었다면, 바람 앞에 함께 설 것.
그 문장은 아직 교사의 변론이 아니었다.
다만 변론이 시작될 자리였다.
막이 천천히 내려왔다.
4막 — 질문하는 교사의 변론
그 아래,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차가운 바람처럼 한 줄이 남았다.
— 질문자는 문을 여는 사람이다. 그러나 좋은 교사는 문을 열고 떠나지 않는다 —
— 성급한 답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법 —
3막 — 열린 답의 불안
— 질문은 문을 열지만, 열린 문 앞에 선 사람에게는 바람도 함께 닿는다 —
세 번째 수업은 시작되기 전부터 조용했다.
아니, 조용하다는 말은 정확하지 않았다. 교실 안에는 소리가 없었지만, 칠판 위의 물음표들은 어딘가 시끄러웠다. 흰 분필로 그려진 세 개의 작은 질문이, 제각기 자기 주인의 뒤를 따라다니다가 다시 교실로 돌아온 것처럼 보였다.
버리면 길이 사라지고, 붙잡으면 증명만 남는가?
포함하지 않으면 모든 이가 아니고, 포함하면 너무 빨리 괜찮아져야 하는가?
책임과 자기판결은 어디서 갈라지는가?
알렉산드리나는 자기 자리 앞에 서서 첫 번째 질문을 보고 있었다. 오늘 그녀는 전보다 조금 늦게 앉았다. 자리에 앉는 일조차 한 번 더 생각해야 하는 사람처럼, 책상 옆에 손을 얹고 잠시 머물렀다.
요안나는 두 번째 질문 앞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평화라는 말은 여전히 그녀의 안에서 빛났다. 그러나 그 빛은 이제 궁의 닫힌 문과도 닿아 있었다. 너무 밝은 말은 때로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림자를 더 길게 늘인다.
호흐마이스터는 세 번째 질문을 보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손가락을 모았다. 마치 보이지 않는 명령서 위에 서명하기 전처럼. 그러나 손끝은 멈추어 있었다.
레이튼은 교탁 앞에 섰다. 그는 찻잔을 준비하지 않았다. 차가 필요 없는 날이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가장 필요한 날일지도 몰랐다. 다만 오늘은 차를 마시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었다.
“오늘은 답을 쓰지 않겠습니다.”
알렉산드리나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오늘은 무엇을 하나요?”
“답이 열렸을 때 생기는 불안을 보겠습니다.”
요안나가 손을 모았다.
“그건 수업인가요?”
레이튼은 잠시 생각했다.
“그렇기를 바랍니다.”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확신하지 못하시는군요.”
“예.”
레이튼은 부드럽게 인정했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모든 수업의 결말을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이야말로 성급한 답이겠지요.”
푸리나는 교실 한쪽에서 그 말을 들으며 칠판을 바라보았다. 레이튼이 직접 쓴 물음표들. 그러나 이제 그것들은 레이튼 혼자 만든 기호가 아니었다. 알렉산드리나의 떨림, 요안나의 막힌 목, 호흐마이스터의 멈춘 손이 묻은 질문이었다.
그레이는 기록했다.
3막 시작. 목표: 열린 답의 불안 관찰. 답 작성 없음.
미하일라는 창가에 서 있었다. 그녀는 오늘도 학생이 아니었다. 그러나 관객도 아니었다. 그녀는 교실 바깥의 현실로서 서 있었고, 그 현실은 오늘따라 조금 더 가까웠다.
그녀가 말했다.
“레이튼.”
“예, 폐하.”
“그대는 문을 열었다.”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럴지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미하일라의 목소리는 짧고 정확했다.
“열었다. 이제 바람이 들어올 것이다.”
그 말이 끝난 순간, 창문은 닫혀 있었는데도 분필 가루가 흔들렸다.
푸리나가 눈을 들었다.
극장이 반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아주 작은 변화였다. 칠판 위의 물음표가 조금 번졌다. 하얀 선이 물처럼 흐르더니, 칠판 가장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벽으로 퍼졌다. 책상의 그림자가 길어졌고, 창문 밖의 오후빛이 이상하게 어두워졌다. 교실은 여전히 교실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교실이 아닌 곳이 되어가고 있었다.
요안나가 작게 말했다.
“무대가 바뀌고 있어요.”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내가 의도한 것보다 빠른데.”
레이튼은 칠판을 보았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그 이름 아래, 물음표들이 별처럼 흩어지고 있었다. 아직 별자리가 되지 않은 별들. 그러나 누군가 선을 긋지 않아도, 별들은 자기 중력으로 서로를 부르고 있었다.
레이튼은 낮게 말했다.
“질문들이 수업을 계속하려는 모양입니다.”
미하일라가 물었다.
“막을 내릴 것인가?”
푸리나는 잠시 레이튼을 보았다.
레이튼은 학생들을 보았다. 세 사람 모두 아직 답을 쓰지 못했다. 그런데 극장은 이미 그 답들을 바람 앞에 세우려 하고 있었다. 현실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을 닮은 압력. 현실의 얼굴을 빌린 무대. 답이 교실 안에서 안전하게 머물 수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장면.
레이튼이 말했다.
“아니요.”
그의 목소리는 조용했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다만, 제가 곁에 있겠습니다.”
미하일라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그 말을 기억하라.”
교실의 바닥이 갈라지듯 바뀌었다.
막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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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로 변한 것은 알렉산드리나의 자리였다.
그녀의 책상이 길게 늘어나 군막의 탁자가 되었다. 칠판은 전황도가 되었다. 분필로 적힌 선들이 강과 산맥과 성채의 위치로 바뀌었다. 교실 의자들은 사절의 자리처럼 양옆에 놓였고, 창문으로 들어오던 오후빛은 천막 위를 두드리는 새벽빛이 되었다.
그곳은 실제 불가리아가 아니었다.
푸리나의 극 안에서 만들어진, 알렉산드리나의 답이 가장 불안해지는 장소였다.
알렉산드리나는 탁자 앞에 서 있었다. 옷차림은 그대로였지만, 그림자가 달랐다. 교실 속 학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왕으로 보이기 위해 계속 자세를 바로잡아온 사람이었다.
무대 속 사절들이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얼굴은 뚜렷하지 않았다. 목소리만 선명했다.
“차르시여, 약점을 보이시면 안 됩니다.”
“따르는 자들은 완성된 왕을 원합니다.”
“피의 부족함은 말하지 마십시오.”
“흔들림은 적에게 빌미를 줍니다.”
“가짜라는 말은 적이 붙이는 이름입니다. 그러니 폐하께서는 누구보다 왕답게 보이셔야 합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 말들은 새롭지 않았다. 너무 익숙했다. 익숙해서 편할 정도였다. 그녀는 그 말들에 맞춰 자신을 세우는 법을 알고 있었다.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정돈하고, 의심받지 않는 답을 내놓는 법.
그녀는 입을 열었다.
“네. 저는…….”
말이 멈췄다.
레이튼이 옆에 있었다. 그는 사절들 사이에 끼어들지 않았다. 알렉산드리나의 말을 대신하지도 않았다. 그저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존재는 답이 아니었다. 물음표였다.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이었던 전황도 한쪽을 보았다. 그곳에는 아직 희미하게 문장이 남아 있었다.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사절들의 목소리가 다시 밀려왔다.
“그렇습니다. 폐하께서는 누구보다 왕다워야 합니다.”
“멈추지 마십시오.”
“쉬지 마십시오.”
“부족함을 인정하지 마십시오.”
“그 순간, 모두가 다시 묻게 될 것입니다. 정말 왕인가?”
알렉산드리나의 손이 천천히 주먹을 쥐었다.
“저는…… 왕다워야 해요.”
그녀의 말투는 고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말하는 사람처럼 낮고 조심스러웠다.
“그 말로 여기까지 왔어요. 제가 가진 건 완성된 피가 아니라, 걸어온 길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더 잘해야 했고, 더 높이 서야 했고, 더 틀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절들의 그림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그 답을 놓치지 마십시오.”
“그 답이 폐하를 왕으로 만듭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전황도를 보았다.
지도 위의 선들이 모두 그녀를 향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적군의 화살표가 아니라, 질문들이었다. 너는 누구인가. 피가 부족한 자가 어디까지 갈 수 있는가. 흉내가 왕도가 될 수 있는가. 가짜가 왕이 될 수 있는가.
그녀는 작게 말했다.
“하지만…….”
무대 속 공기가 멈췄다.
레이튼이 조용히 물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제가 계속 증명만 하고 있다면, 저는 언제 왕이 되는 걸까요?”
그 질문은 답이 아니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그녀가 자기 입으로 낸 질문이었다.
사절들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
“그런 말은 위험합니다.”
“의심을 보이면 안 됩니다.”
“부족함을 인정하는 순간, 왕도는 무너집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그 목소리들을 들었다. 겁이 났다. 그녀는 그것을 부정하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차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손을 떨면 안 된다고 배웠다. 그러나 이곳은 교실이었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아직 선을 긋지 않은 곳.
그녀는 떨리는 손을 숨기지 않았다.
“저는 두려워요.”
그 말이 군막에 떨어졌다.
“제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면, 사람들이 저를 왕으로 보지 않을까 봐요. 제가 잠깐 멈추면, 뒤처질까 봐요. 제가 가짜라는 말을 버리면, 제가 여기까지 온 이유까지 사라질까 봐요.”
사절들은 침묵했다.
알렉산드리나는 숨을 골랐다.
“하지만 그 두려움을 숨기려고만 한다면…… 저는 왕도를 걷는 게 아니라 계속 도망치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전황도의 선들이 흔들렸다. 새벽빛이 천막을 걷어냈다. 군막은 다시 교실의 책상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아직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다.
레이튼은 알렉산드리나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다만 말했다.
“좋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조금 지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이게 좋은 건가요?”
“답은 아닙니다.”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폐하의 질문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으로 돌아가는 전황도를 보았다.
그녀는 아직 답을 쓰지 못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자기 답이 자기 뒤에서 채찍처럼 달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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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변한 것은 요안나의 자리였다.
교실 문이 길어졌다. 나무문은 궁의 문이 되었다. 문틈 사이로 빛이 새어 나오지 않았다. 벽은 흰색이었지만, 어딘가 차가웠다. 책상은 사라지고, 긴 복도가 생겼다. 발소리가 너무 잘 울리는 복도였다.
그곳도 실제 궁이 아니었다.
요안나의 평화가 가장 아픈 얼굴과 마주해야 하는 무대였다.
요안나는 복도 한가운데 서 있었다. 그녀는 작은 황제였다. 그러나 작기만 한 황제는 아니었다. 그녀의 혈통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었고, 그녀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이 복도에서는, 혈통도 지지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 너머에서 목소리들이 들렸다.
“평화의 황제시여.”
“모든 이에게 평화를 말하려면 먼저 웃어야 합니다.”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모든 이를 말하겠습니까?”
“그분도 포함해야 합니다.”
“문을 닫은 사람도, 피 위에 선 사람도, 폐하의 평화 안에 들어가야 하지 않습니까?”
요안나는 문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이 문을 알고 있었다. 실제와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너무 닮아 있었다. 궁의 문. 예의 바르게 닫힌 문. 폭력적으로 잠기지 않았기에 더 말하기 어려운 문. 자신이 살아 있다는 사실로 정치가 유지되고, 자신이 나가지 못한다는 사실로 질서가 유지되던 문.
그 문 앞에 미하일라가 있었다.
정확히는, 두 명의 미하일라가 있었다.
하나는 창가에 서 있는 현실의 미하일라. 교실 바깥의 현실로서, 아무 말 없이 지켜보는 황제.
다른 하나는 무대 속 그림자. 보라색 망토와 활의 그림자를 지닌, 장례와 피와 결단 너머에서 문밖에 서 있던 황제.
요안나는 숨을 삼켰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말은 나왔다.
그러나 이어지지 않았다.
목소리들이 다시 말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이에게.”
“그 손도 잡으셔야 합니다.”
“손을 잡지 못한다면, 평화는 아직 부족합니다.”
“상처를 말하면 사람들은 갈라집니다.”
“기억은 분쟁을 낳습니다.”
“평화는 지나간 일을 넘는 것입니다.”
요안나는 두 손을 가슴 앞에서 모았다.
“아니요.”
그 말은 작았다.
목소리들이 멈췄다.
요안나는 문을 보았다.
“그렇게 말하면 안 돼요.”
레이튼은 복도 옆에 있었다. 이번에도 그는 대신 말하지 않았다. 요안나가 자기 목소리를 찾을 때까지, 가까운 거리에 서 있었다.
요안나는 계속했다.
“저는 모든 이에게 평화를 말하고 싶어요. 그건 거짓말이 아니에요. 저는 정말로 그렇게 하고 싶어요. 외국인도, 낮은 사람도, 적이었던 사람도, 언젠가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하지만 그 말이 제가 갇혀 있던 문을 없던 일로 만들면 안 돼요.”
문이 조금 흔들렸다.
“제가 아직 손을 잡을 수 없는데, 손을 잡은 척하는 것도 평화는 아니에요.”
무대 속 미하일라의 그림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창가의 미하일라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 두 침묵이 겹치자, 교실은 숨을 죽였다.
요안나는 천천히 현실의 미하일라를 보았다.
“미하일라 폐하.”
미하일라는 짧게 대답했다.
“듣고 있다.”
“저는 폐하를 용서했다고 말할 수 없어요.”
교실이 아주 조용해졌다.
그 말은 공격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요안나의 목소리는 칼이 아니었다. 문 앞에서 떨리는 손이었다.
“저는 아직 그 문을 기억해요. 장례식의 소리도,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도, 제가 살아 있는데도 나갈 수 없던 날들도. 그래서 모든 이에게 평화를 말하려고 하면, 목이 막혀요. 그 안에 폐하도 들어가야 하는지 생각하면, 더 막혀요.”
미하일라는 눈을 내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 말을 받아냈다.
변명하지 않았다.
요안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하지만 저는 미래를 전부 닫고 싶지도 않아요.”
문틈에 아주 작은 빛이 생겼다.
“이상하죠. 손은 못 잡겠는데, 문을 영원히 잠그고 싶지도 않아요. 저는 아직 폐하에게 다가갈 수 없지만, 폐하가 사라지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제가 원하는 평화가 뭔지 아직 모르겠어요.”
레이튼은 조용히 말했다.
“모른다는 말이 오늘은 정직할 수 있습니다.”
요안나는 그를 보았다.
“하지만 황제가 몰라도 되나요?”
창가의 미하일라가 대답했다.
“오래 몰라서는 안 된다.”
요안나의 얼굴이 조금 굳었다.
미하일라는 이어 말했다.
“그러나 거짓으로 아는 척하는 것보다는 낫다.”
그 말은 차가웠지만, 요안나를 몰아붙이지 않았다.
요안나는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은…… 모르겠다고 말할게요.”
문은 열리지 않았다.
하지만 닫힌 문 앞에서, 요안나는 처음으로 자기가 문을 열 수 없다는 사실을 자기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평화를 배신하는 말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 알았다.
복도의 벽이 흐려졌다. 궁의 문은 다시 교실 문이 되려 했다.
요안나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하지만 그 평화가 기억을 지우는 말이면, 저는 아직 그 말을 제 목소리로 할 수 없어요.”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그 말도 폐하의 목소리입니다.”
요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울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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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로 변한 것은 호흐마이스터의 자리였다.
교실의 책상들이 길게 이어져 기사단 회의실의 탁자가 되었다. 칠판은 거대한 명령서가 되었고, 분필 가루는 눈처럼 보이다가 곧 재처럼 보였다. 방 곳곳에는 보이지 않는 시선들이 겹쳤다. 란트마이스터들의 시야. 전선의 보고. 봉인된 편지. 끝내 서명해야 하는 명령들.
호흐마이스터는 탁자 끝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학생이 아니라, 호흐마이스터였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더 학생 같았다. 자기가 가장 익숙한 자리에서, 가장 피하고 싶던 질문을 마주하고 있었으니까.
탁자 위에는 한 장의 명령서가 놓여 있었다.
글자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목만은 선명했다.
징벌 명령.
목소리들이 들렸다.
“호흐마이스터.”
“반란에는 본보기가 필요합니다.”
“죄는 이미 당신의 몫입니다.”
“더러운 명령은 당신이 내리시면 됩니다.”
“그러면 기사단은 깨끗하게 남습니다.”
“당신은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그 자리에 있는 것 아닙니까?”
호흐마이스터는 명령서를 보았다.
이것은 실제 명령서가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 많은 실제 명령서와 닮아 있었다. 사랑하는 땅을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결정. 기사답지 않지만 기사단을 보존하기 위해 필요한 결정. 누군가 해야 하며, 그렇다면 자신이 해야 한다고 믿게 되는 결정.
그녀는 펜을 들었다.
레이튼은 탁자 옆에 있었다.
그는 펜을 빼앗지 않았다. 명령서를 찢지도 않았다. 그가 할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일은, 멈추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었다.
호흐마이스터는 펜 끝을 명령서 위에 놓았다.
목소리들이 속삭였다.
“당신은 이미 더러워졌습니다.”
“그러니 더러운 일을 맡으십시오.”
“그것이 책임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그것이 기사단을 위한 죄입니다.”
호흐마이스터의 손은 안정되어 있었다.
너무 안정되어 있었다.
그 안정이 오히려 위험해 보일 정도로.
레이튼이 조용히 물었다.
“호흐마이스터.”
“듣고 있습니다.”
“그 명령은 기사단을 위한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대답은 빨랐다.
레이튼은 다시 물었다.
“아니면, 당신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지키기 위한 것입니까?”
펜이 멈췄다.
탁자 위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호흐마이스터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 질문은 과도합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명령서 앞에서는 질문이 늦습니다.”
“그럴 때도 있습니다.”
“늦은 질문은 사람을 죽입니다.”
“맞습니다.”
레이튼은 인정했다.
“그러나 너무 빠른 판결도 사람을 죽입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입을 다물었다.
목소리들이 다시 밀려왔다.
“망설이지 마십시오.”
“이미 죄는 당신의 것입니다.”
“더 어두운 길을 택하십시오.”
“당신이 더러워질수록, 기사단은 남습니다.”
“당신이 구원받지 않을수록, 땅은 평화로워집니다.”
그 말은 달콤하지 않았다. 그러나 호흐마이스터에게는 익숙했다. 익숙한 것은 때로 달콤한 것보다 위험하다. 사람은 익숙한 고통을 자기 본분이라 믿기 쉽다.
호흐마이스터가 낮게 말했다.
“저는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레이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계속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제가 명령한 일은 제게 돌아옵니다. 병사의 손, 란트마이스터의 시야, 서류 위의 잉크. 모두 제 이름 아래 모입니다.”
그녀의 손이 아주 조금 떨렸다.
“하지만 제가 죄를 짊어진다는 이유로, 더 많은 죄를 필요로 하게 된다면…….”
펜 끝이 명령서 위에서 멈췄다.
“그것은 기사단을 위한 책임이 아니라, 제가 제 판결을 유지하기 위한 명령일지도 모릅니다.”
목소리들이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차가워졌다.
“그렇다면 명령하지 않을 것입니까?”
“손실을 감당할 것입니까?”
“더 깨끗한 척할 것입니까?”
“당신이 죄를 피하려는 것입니까?”
호흐마이스터의 입술이 아주 조금 굳었다.
“아닙니다.”
그녀는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저는 죄를 피하지 않습니다.”
명령서의 글자가 흔들렸다.
“하지만 죄를 피하지 않는 것과, 죄를 찾아가는 것은 다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호흐마이스터는 명령서 제목을 보았다.
징벌 명령.
그녀는 그것을 지우지 않았다. 아직은. 대신 그 아래 빈 줄에 다른 말을 쓰려 했다. 그러나 손이 멈췄다.
“아직 못 쓰겠습니다.”
그 말은 작았다.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습니다. 명령서 앞에서 아직 못 쓰겠다는 말은 위험합니다.”
“예.”
레이튼은 정직하게 말했다.
“위험합니다.”
호흐마이스터가 그를 보았다.
“그런데도 괜찮다고 합니까?”
“아니요.”
레이튼은 고개를 저었다.
“괜찮지 않지만, 혼자 두지는 않겠습니다.”
그 말에 호흐마이스터의 표정이 아주 조금 변했다.
아주 조금.
그녀는 다시 명령서를 보았다. 아직 답은 없었다. 징벌을 방어로 바꾸지도 못했고, 자기처벌과 책임을 완전히 구분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자기 안의 어두운 명령이 정말 기사단을 위한 것인지 묻게 되었다.
그 물음만으로도 회의실은 흔들렸다.
탁자가 다시 교실 책상이 되기 시작했다. 명령서는 칠판의 문장으로 흐려졌다. 분필 가루는 다시 분필 가루가 되었다.
호흐마이스터는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다.
놓지 못한 것인지, 놓지 않기로 한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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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작은 극이 지나간 뒤, 교실은 다시 교실이 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책상들은 조금 다른 위치에 놓인 것 같았고, 칠판의 물음표들은 전보다 더 짙어 보였다. 창문 밖의 빛도 조금 차가웠다. 학생들은 각자 자기 자리로 돌아왔지만, 그들이 앉은 자세는 이전과 달랐다.
알렉산드리나는 손을 펴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주먹을 쥐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도 이제야 깨달은 듯했다.
요안나는 교실 문을 보고 있었다. 단순한 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아직 복도의 문과 겹쳐 보였다.
호흐마이스터는 펜을 들고 있지 않았는데도, 손가락이 무언가를 붙잡은 자세로 굳어 있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보았다. 적어야 할 말이 너무 많았다. 그러나 한동안 적지 못했다. 마침내 그녀는 짧게 썼다.
3막: 질문의 부작용 확인. 학생 전원, 답을 완성하지 못함. 불안 개방.
푸리나는 칠판을 보았다. 그녀가 연출한 극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극은 레이튼의 질문을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질문은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었다. 문을 열었고, 바람을 불러들였으며, 학생들의 손을 떨게 했다.
미하일라가 입을 열었다.
“레이튼.”
레이튼은 고개를 들었다.
“예, 폐하.”
“그대의 질문은 그들의 답을 열었다.”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피하지 않았다.
미하일라는 학생들을 차례로 보았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더 불안하다.”
교실은 조용했다.
“그대는 이것을 성장이라 부를 것인가, 상처라 부를 것인가.”
레이튼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알렉산드리나를 보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자신의 왕도가 도망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들여다보았다.
요안나를 보았다. 그녀는 평화가 기억을 지우는 말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 앞에 서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를 보았다. 그녀는 책임이라는 이름으로 자기판결을 유지하려 했는지 묻게 되었다.
상처가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손들이 떨리고 있었다.
성장이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그 떨림은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에서 나왔다.
레이튼은 천천히 말했다.
“둘 다일지도 모릅니다.”
미하일라는 침묵했다.
레이튼은 말을 이었다.
“상처가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그들의 손이 떨립니다. 성장이라고 쉽게 말하기에는, 그 떨림은 너무 아픕니다.”
그는 칠판의 물음표를 보았다.
“하지만 성장도 아니라고 말하기에는, 그들은 처음으로 자기 목소리로 떨고 있습니다.”
푸리나는 숨을 멈춘 듯 들었다.
레이튼은 아주 조용히 말했다.
“그러니 저는…… 그 떨림이 혼자 남지 않도록 곁에 있어야겠지요.”
미하일라가 물었다.
“그것이 그대의 답인가?”
레이튼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질문하는 사람이다. 답을 성급히 닫는 것을 경계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질문 뒤에 숨을 수는 없었다.
“오늘의 답입니다.”
그는 말했다.
“완성된 답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이 교실에서 제가 피해서는 안 되는 답입니다.”
미하일라는 그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짧게 말했다.
“좋다.”
그것은 칭찬이 아니었다.
판결에 가까웠다.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교실의 칠판 한쪽,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이라는 글씨 아래에서 물음표들이 희미하게 빛났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들. 아직 선을 긋지 않은 답들. 그러나 이제 모두가 알았다. 별을 오래 바라보는 일은 아름답기만 한 일이 아니다.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을 위험도 함께 있다.
레이튼은 분필을 들었다.
그리고 칠판 아래에 짧게 적었다.
문을 열었다면, 바람 앞에 함께 설 것.
그 문장은 아직 교사의 변론이 아니었다.
다만 변론이 시작될 자리였다.
막이 천천히 내려왔다.
4막 — 질문하는 교사의 변론
그 아래, 열린 문틈으로 들어온 차가운 바람처럼 한 줄이 남았다.
— 질문자는 문을 여는 사람이다. 그러나 좋은 교사는 문을 열고 떠나지 않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