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216여관◆zAR16hM8he(c2970e66)2026-05-23 (토) 11:57:21
《아포리아의 교실》

— 성급한 답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법 —

5막 — 각자의 별자리를 그리다

— 좋은 답은 질문 없이 태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언젠가 질문은, 각자의 손으로 그은 선이 되어야 한다 —

다섯 번째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칠판에는 별 세 개가 그려져 있었다.

레이튼이 지난 막의 끝에 남겨둔 별들이었다. 아직 선은 없었다. 그저 떨어져 있을 뿐이었다. 하나는 알렉산드리나의 문장 가까이에, 하나는 요안나의 문장 가까이에, 하나는 호흐마이스터의 문장 가까이에 있었다.

별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고, 분필 자국이라고 부르기에는 이상하게 눈에 걸렸다.

푸리나는 그 별들을 보고 있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펼치고 있었다.
미하일라는 창가에 서 있었다.
레이튼은 교탁 앞에 섰지만, 오늘은 분필을 들지 않았다.

그는 분필을 책상 위에 놓아두었다.

세 개였다.

“오늘은 제가 쓰지 않겠습니다.”

레이튼이 말했다.

교실은 조용했다.

“오늘은 여러분이 질문을 고르고, 그 질문 옆에 오늘 말할 수 있는 답을 쓰면 됩니다. 완성될 필요는 없습니다. 아름다울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가능하면 자기 목소리여야 합니다.”

요안나는 분필을 보았다.

“자기 목소리라는 건 어떻게 알 수 있나요?”

레이튼은 잠시 생각했다.

“쉽지는 않습니다.”

“역시 어렵네요.”

“대개 그렇습니다.”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는 보통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문장보다 조금 늦게 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그 말을 들으며 칠판을 보았다.

늦게 오는 문장.

그녀는 그 말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빠른 문장은 많았다. 왕도, 증명, 가짜, 위대함, 결핍, 대제의 그림자. 그 문장들은 이미 길들여진 말처럼 그녀의 입가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러나 레이튼이 말한 것은 그다음에 오는 것이었다. 조금 느리고, 조금 덜 멋지고, 그래서 더 들키기 쉬운 말.

호흐마이스터가 물었다.

“그 늦게 오는 문장이 반드시 정확하다는 보장은 있습니까?”

“없습니다.”

레이튼은 즉시 대답했다.

“하지만 빠른 문장이 반드시 정확하다는 보장도 없지요.”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그 점은 인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레이는 기록했다.

5막 시작. 조건: 학생 각자 질문 선택 후 오늘 가능한 답 작성. 완성·미문 요구 없음. 자기 목소리 우선.

푸리나는 조용히 말했다.

“이제 진짜 이름 붙이는 시간이네.”

레이튼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이름 붙이는 시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푸리나가 눈을 가늘게 떴다.

“레이튼.”

“예.”

“오늘은 좀 이름 붙여도 돼.”

레이튼은 잠시 침묵하다가, 아주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군요. 그렇다면 오늘은, 너무 빨리 닫히지 않는 이름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

알렉산드리나가 먼저 일어섰다.

그녀는 일부러 가장 먼저 일어난 것 같기도 했고, 더 늦으면 다시 빠른 문장들이 앞서 걸어갈까 봐 서둘렀던 것 같기도 했다. 발걸음은 단정했지만, 이전보다 조금 느렸다. 왕좌가 없는 교실에서, 그녀는 자신이 어디에 서야 하는지 계속 배우는 중이었다.

그녀는 칠판 앞에 섰다.

자기 문장 옆에는 여러 질문이 남아 있었다.

버리면 길이 사라지고, 붙잡으면 증명만 남는가?

왕도는 결핍을 지우는 길인가?

지금의 걸음은 왕도인가, 도망인가?

알렉산드리나는 그 질문들을 오래 바라보았다.

“저는 이 질문을 고르겠습니다.”

그녀가 손끝으로 가리킨 것은 세 번째 질문이었다.

지금의 걸음은 왕도인가, 도망인가?

그 질문이 교실에 드러나자, 푸리나는 살짝 숨을 들이마셨다. 그건 가장 아픈 질문이었다. 하지만 알렉산드리나는 피하지 않았다.

레이튼이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알렉산드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마 이 질문이 제일 싫으니까요.”

“싫은 질문을 고른 이유가 있습니까?”

“계속 따라올 것 같아서요.”

그녀는 조금 웃었다.

“차라리 먼저 마주하는 편이 낫겠죠.”

알렉산드리나는 분필을 들었다. 손은 크게 떨리지 않았다. 그러나 완전히 안정되어 있지도 않았다.

그녀는 칠판에 쓰기 전에 먼저 말했다.

“저는 아직 왕이라고 말하는 게 무서워요.”

교실은 조용해졌다.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을 보지 않고, 자기 손에 든 분필을 보았다.

“차르라고 불리고, 군막에 서고, 사람들이 제게 결정을 묻습니다. 그런데 속으로는 아직도 누군가가 ‘너는 흉내일 뿐이다’라고 말할까 봐 무서워요. 그래서 더 곧게 서고, 더 강하게 말하고, 더 왕답게 보이려고 했습니다.”

그녀는 잠시 숨을 골랐다.

“하지만 그러다 보면, 저는 백성을 보는 게 아니라 그 목소리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요. 나를 의심했던 사람들, 나를 낮추어 부른 사람들, 나를 가짜라고 부른 사람들.”

레이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렉산드리나는 분필을 칠판에 댔다.

천천히 썼다.

나는 두려움에서 달아나기 위해 왕도를 걷지 않겠습니다.

그 문장은 짧았다.

너무 짧아서, 그녀는 잠시 불안한 듯 보였다. 그러다가 다시 분필을 댔다.

두려움은 남아도, 저는 백성 앞에 서겠습니다. 결핍을 지운 뒤가 아니라, 결핍을 알고도 걷는 길을 왕도라 부르겠습니다.

분필이 멈췄다.

알렉산드리나는 자기가 쓴 문장을 오래 보았다.

“너무 약해 보이나요?”

그 질문은 레이튼에게 한 것 같기도 했고, 교실 전체에 한 것 같기도 했다.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약해 보이지 않아요.”

알렉산드리나는 요안나를 보았다.

요안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오히려…… 그 말을 하려면 강해야 할 것 같아요.”

알렉산드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칭찬을 들은 사람이라기보다, 예상하지 못한 길에서 손을 받은 사람처럼 보였다.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정치적으로는 위험한 문장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살짝 굳었다.

호흐마이스터는 바로 이어 말했다.

“그러나 지휘관에게 필요한 문장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무엇에서 도망치는지 모르는 지휘관은, 적이 아니라 그림자를 향해 군을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알렉산드리나는 호흐마이스터를 보았다.

“고맙습니다.”

“평가입니다.”

“그럼 평가를 고맙게 받겠습니다.”

푸리나는 그 대답을 듣고 조용히 웃었다.

레이튼은 물었다.

“폐하. 그 답은 오늘의 폐하의 답입니까?”

알렉산드리나는 칠판을 보았다.

처음 문장.

나는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새 문장.

나는 두려움에서 달아나기 위해 왕도를 걷지 않겠습니다. 두려움은 남아도, 저는 백성 앞에 서겠습니다. 결핍을 지운 뒤가 아니라, 결핍을 알고도 걷는 길을 왕도라 부르겠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아주 작게 덧붙였다.

“오늘은요.”

레이튼은 깊게 고개를 숙였다.

“충분합니다.”

그레이는 기록했다.

알렉산드리나: 선택 질문 — 지금의 걸음은 왕도인가, 도망인가. 오늘의 답 — 두려움에서 달아나기 위해 왕도를 걷지 않겠다. 결핍을 알고도 백성 앞에 서는 길을 왕도라 부르겠다.

알렉산드리나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 걸음은 여전히 단정했다.
하지만 조금 전보다 덜 쫓기고 있었다.


---

요안나는 두 번째로 일어섰다.

그녀는 칠판 앞에 선 뒤, 자기 문장 옆의 질문들을 보았다.

포함하지 않으면 모든 이가 아니고, 포함하면 너무 빨리 괜찮아져야 하는가?

평화는 기억을 지우는가?

아직 잡을 수 없는 손 앞에서도, 미래의 문을 닫지 않을 수 있는가?

요안나는 마지막 질문 앞에서 멈췄다.

그 질문을 보는 순간, 그녀는 저도 모르게 교실 문을 보았다. 지금은 평범한 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문과 겹쳐 보였다.

궁의 문.

닫힌 문.

그러나 오늘은, 영원히 닫힌 문이라고 단정하지 않기로 한 문.

요안나는 분필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먼저 말해도 되나요?”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물론입니다.”

요안나는 미하일라를 보았다.

“미하일라 폐하.”

미하일라는 대답했다.

“듣고 있다.”

요안나는 숨을 골랐다.

“저는 아직 폐하의 손을 잡을 수 없어요.”

그 말은 이미 한 번 했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분명했다. 미하일라도 그것을 알았다.

“알고 있다.”

“그리고 아직 용서했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알고 있다.”

“그런데…….”

요안나는 손 안의 분필을 내려다보았다.

“저는 폐하가 없는 미래를 바라는 것도 아니에요.”

교실이 조용해졌다.

요안나는 천천히 말을 골랐다.

“이게 이상해요. 저는 폐하가 한 일을 잊고 싶지 않아요. 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갇혀 있던 문, 사라진 사람들, 제 이름으로 움직이던 궁정의 조용함. 그런 걸 평화라는 말로 덮으면 안 돼요.”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 기억 때문에 미래의 문까지 모두 잠가버리면, 제가 말한 평화는 복수가 될 것 같아요. 저는 복수를 평화라고 부르고 싶지 않아요.”

미하일라는 말하지 않았다.

그 침묵은 요안나의 말을 가볍게 받지 않겠다는 침묵이었다.

요안나는 칠판에 분필을 댔다.

천천히 썼다.

나는 아직 잡을 수 없는 손을 잡은 척하지 않겠습니다.

그 문장을 쓰자, 그녀의 손이 조금 떨렸다.

그래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 손이 있는 미래의 문을 영원히 닫지도 않겠습니다.

요안나는 숨을 골랐다.

그리고 마지막 줄을 덧붙였다.

나의 평화는 기억을 지우는 말이 아니라, 기억한 채 다음 문을 닫지 않는 말이어야 합니다.

그녀는 분필을 내려놓았다.

문장은 길었다. 아이의 말처럼 솔직했고, 황제의 말처럼 무거웠으며, 아직 정치적 문서로 옮기기에는 너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요안나의 목소리였다.

푸리나는 말없이 그 문장을 보았다.

그레이는 기록하려다가 멈췄다. 문장이 너무 길었다. 그러나 줄일 수 없었다. 줄이면 요안나의 떨림이 사라질 것 같았다.

미하일라가 입을 열었다.

“요안나.”

요안나는 돌아보았다.

“그 문장은 나를 용서하지 않는다.”

“네.”

“나를 지우지도 않는다.”

“네.”

“나를 쉽게 받아들이지도 않는다.”

요안나는 조금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미하일라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서 그 문장 앞에 설 수 있다.”

그 말은 사과가 아니었다. 변명도 아니었다. 그러나 도망치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요안나는 미하일라를 보았다.

“서 있어주세요.”

미하일라의 눈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요안나는 다시 말했다.

“제가 아직 못 잡는 손 앞에서, 폐하가 가벼워지지 않고 서 있어주세요. 제가 평화라고 말하지 못하는 날에도. 제가 기억한다고 말하는 날에도.”

미하일라는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하겠다.”

요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그럼 오늘은…… 그걸로 괜찮아요.”

레이튼은 그 말을 들으며 칠판을 보았다.

모든 이에게 평화.

그 말은 여전히 있었다. 그러나 그 옆에, 기억과 문과 아직 잡지 못한 손이 생겼다. 평화는 더 쉬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어려워졌다. 그래서 더 요안나의 것이 되었다.

레이튼은 물었다.

“폐하. 그 답은 오늘의 폐하의 답입니까?”

요안나는 칠판을 보았다.

“네.”

그리고 조금 뒤, 덧붙였다.

“아직 슬프지만요.”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슬픈 답도 자기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그레이는 기록했다.

요안나: 선택 질문 — 아직 잡을 수 없는 손 앞에서도, 미래의 문을 닫지 않을 수 있는가. 오늘의 답 — 잡을 수 없는 손을 잡은 척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 손이 있는 미래의 문을 영원히 닫지도 않겠다. 평화는 기억을 지우는 말이 아니라, 기억한 채 다음 문을 닫지 않는 말.

요안나는 자리로 돌아갔다.

교실 문은 여전히 문이었다.
하지만 조금 덜 감옥처럼 보였다.


---

호흐마이스터는 마지막까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자기 질문들을 보고 있었다.

책임과 자기판결은 어디서 갈라지는가?

그 명령은 지키기 위한 것인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가?

죄를 피하지 않는 것과 죄를 찾아가는 것은 어떻게 다른가?

호흐마이스터는 일어섰다.

그녀는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걸음은 평소처럼 예의 있고 정확했다. 그러나 오늘 그녀는 가장자리로 돌지 않았다. 가장 짧은 길로 칠판 앞에 섰다.

“저는 두 번째 질문을 고르겠습니다.”

레이튼은 그 질문을 보았다.

그 명령은 지키기 위한 것인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가?

“어려운 질문입니다.”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그래서 선택했습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괜찮지는 않습니다.”

그녀는 침착하게 말했다.

“그러나 필요합니다.”

호흐마이스터는 분필을 들었다. 그녀의 손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안정은 조금 전까지와 달랐다. 완벽한 통제라기보다, 떨림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손을 고정하는 안정이었다.

“저는 죄를 피하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먼저 말했다.

“제가 한 선택은 제게 돌아옵니다. 제가 명령한 일의 죄를 부하에게 넘기지 않겠습니다. 란트마이스터의 시야를 빌려 본 전선도, 서명한 명령도, 침묵으로 승인한 일도 제 이름 아래 모입니다.”

그녀는 칠판의 첫 문장을 보았다.

나는 기사단을 위해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이 문장은 아직 필요합니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흐마이스터는 분필을 댔다.

나는 죄를 피하지 않겠습니다.

그녀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그 아래에 썼다.

그러나 죄를 짊어진다는 이유로, 더 많은 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습니다.

분필 소리가 멈췄다.

호흐마이스터의 손이 아주 조금 굳었다. 그 문장은 그녀에게 몹시 불편한 듯했다. 너무 부드러워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 정확해서 불편한 문장이었다.

그녀는 다시 썼다.

명령은 기사단을 지키기 위해 내려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내려서는 안 됩니다.

교실은 조용했다.

호흐마이스터는 그 문장을 보고 있었다.

“불편합니다.”

레이튼이 물었다.

“어떤 점이 불편하십니까?”

“이 문장은 저를 감시합니다.”

“그렇군요.”

“제가 앞으로 내릴 명령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 아니면 제 죄의 형상을 유지하기 위한 것인지 계속 묻게 만들 것입니다.”

“그것은 나쁜 일입니까?”

호흐마이스터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잠시 뒤, 그녀가 말했다.

“비효율적입니다.”

푸리나는 조금 웃을 뻔했다.

호흐마이스터는 이어 말했다.

“하지만 필요한 비효율입니다.”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좋은 표현입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칠판의 문장을 보았다.

“저는 아직 구원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아직 안식을 바라겠다고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 또한 그럴 수 있습니다.”

“다만…….”

그녀는 아주 낮게 말했다.

“제가 사랑하는 땅을 지키는 일과, 제 영혼을 일부러 더럽히는 일을 혼동하지 않겠습니다.”

그 말은 칠판에 쓰이지 않았다.

하지만 교실 안에 분명히 남았다.

미하일라가 조용히 말했다.

“그 문장도 쓰는 것이 좋다.”

호흐마이스터는 미하일라를 보았다.

“폐하의 판단입니까?”

“그렇다.”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가, 다시 분필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줄을 썼다.

사랑하는 땅을 지키는 일과, 나를 일부러 더럽히는 일을 혼동하지 않겠습니다.

분필이 멈췄다.

호흐마이스터는 한동안 그 문장을 보았다. 그러고는 아주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누구에게 한 인사인지는 분명하지 않았다. 교실에게, 질문에게, 혹은 아직 자기 안에 남아 있는 기사에게 한 인사일 수도 있었다.

레이튼은 물었다.

“호흐마이스터. 그 답은 오늘의 당신의 답입니까?”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생각했다.

“예.”

그리고 덧붙였다.

“검토 기한은 내일까지로 하겠습니다.”

푸리나가 이번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요안나도 웃었다.

알렉산드리나도 작게 웃었다.

호흐마이스터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영원한 보류는 답이 아니라고 하셨으므로.”

레이튼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훌륭합니다.”

그레이는 기록했다.

호흐마이스터: 선택 질문 — 그 명령은 지키기 위한 것인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가. 오늘의 답 — 죄를 피하지 않되, 더 많은 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 명령은 기사단을 지키기 위해 내릴 것. 자기판결 증명을 위해 내리지 않을 것. 사랑하는 땅을 지키는 일과 자신을 일부러 더럽히는 일을 혼동하지 않을 것. 검토 기한: 내일.


---

세 사람의 답이 칠판에 놓였다.

완성된 답은 아니었다.

알렉산드리나의 답은 아직 왕도 앞에서 떨렸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도망치는 걸음을 왕도라 부르지 않으려 했다.

요안나의 답은 아직 궁의 문 앞에서 멈춰 있었다. 그러나 그 문을 영원히 잠그는 것을 평화라 부르지도 않으려 했다.

호흐마이스터의 답은 아직 죄와 책임 사이에서 차가웠다. 그러나 자기판결을 명령으로 위장하는 일을 경계하려 했다.

레이튼은 그 답들을 보았다.

그는 만족스럽다고 말하지 않았다. 성공이라고도 말하지 않았다. 사람의 답 앞에서 그런 말은 너무 빠르다.

대신 그는 말했다.

“이제 선을 그어도 되겠습니다.”

그는 분필을 들지 않았다.

알렉산드리나가 물었다.

“선이요?”

레이튼은 칠판 위의 세 별을 가리켰다.

“이 교실의 이름을 기억하십니까?”

요안나가 대답했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그렇습니다.”

레이튼은 세 사람을 보았다.

“별은 혼자 있어도 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길을 찾으려면 언젠가 선을 그어야 합니다. 다만 그 선은 제가 그릴 것이 아닙니다.”

푸리나는 미소 지었다.

“각자 긋는 거네.”

“예.”

레이튼은 분필을 내려놓았다.

“오늘의 답과, 처음의 답 사이에 선을 그어주십시오. 지우는 선이 아니라, 이어보는 선입니다.”

그 순간이었다.

레이튼이 별다른 주문을 외운 것은 아니었다.

그의 손이 칠판을 향해 뻗지도 않았고, 찬란한 빛이 터지지도 않았다. 교실 바닥에 마법진이 떠오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레이튼이 아주 조용히 눈을 감았고, 숨을 한 번 골랐다.

그리고 교실의 천장이 조금 높아졌다.

정확히는, 높아진 것처럼 보였다.

낡은 목재 천장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칠판도, 책상도, 창문도 그대로 있었다. 그러나 그 위로 다른 공간이 아주 얇게 겹쳐졌다. 끝없이 오래된 서재. 천장에는 별들이 그려져 있었지만, 어떤 별도 아직 선으로 이어져 있지 않았다. 책장들은 멀리까지 이어졌고, 책들 중 어느 것도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다. 페이지 사이로 질문들이 떠다녔다. 아직 답이 되지 못한 문장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가능성들. 아직 누구의 결론도 되지 않은 별들.

푸리나는 그것을 보았다.

“레이튼……?”

레이튼은 눈을 떴다.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조금만, 빌리겠습니다.”

누구에게 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이 교실에게일 수도 있고, 자신의 Inn에게일 수도 있었다. 혹은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들에게.

교실 위에 겹쳐진 서재가 조용히 숨을 쉬었다.

《여관:문답의 서재》.

그 이름을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곳은 레이튼의 내면과 닮아 있었다. 답의 창고가 아니라 질문의 서재. 결론의 왕좌가 아니라 미지의 책상. 별자리를 완성하는 천문대가 아니라, 별들이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채 머무는 천장.

칠판 위의 분필 자국들이 희미하게 떨렸다.

처음의 답들이 별처럼 떠올랐다.

나는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그 옆에 알렉산드리나가 쓴 오늘의 답이 별빛처럼 번졌다.

나는 두려움에서 달아나기 위해 왕도를 걷지 않겠습니다. 두려움은 남아도, 저는 백성 앞에 서겠습니다. 결핍을 지운 뒤가 아니라, 결핍을 알고도 걷는 길을 왕도라 부르겠습니다.

레이튼은 말했다.

“제가 선을 긋지 않겠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분필을 들었다.

그녀의 손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떨림을 숨기지 않았다.

처음 문장과 오늘의 답 사이에 선이 그어졌다.

선은 곧지 않았다. 중간에 한 번 흔들렸고, 아주 잠깐 끊어질 듯 얇아졌다. 그러나 끊어지지 않았다. 그 선은 “가짜”라는 판결에서 “결핍을 알고도 걷는 왕도”로 이어졌다. 처음의 문장을 지우지 않고, 새 문장으로 달아나지도 않고, 그 사이의 길을 자기 손으로 이었다.

알렉산드리나는 숨을 내쉬었다.

“아직 곧지는 않네요.”

레이튼은 부드럽게 말했다.

“왕도는 반드시 직선일 필요는 없습니다.”

그다음, 요안나가 분필을 들었다.

칠판 위에서 그녀의 처음 답이 빛났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그 옆에 오늘의 답이 조용히 떠올랐다.

나는 아직 잡을 수 없는 손을 잡은 척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 손이 있는 미래의 문을 영원히 닫지도 않겠습니다. 나의 평화는 기억을 지우는 말이 아니라, 기억한 채 다음 문을 닫지 않는 말이어야 합니다.

요안나는 선을 그으려다가 멈췄다.

그녀의 시선이 교실 문으로 향했다. 닫힌 궁문과 겹쳤던 그 문. 미하일라가 서 있는 창가. 아직 잡을 수 없는 손.

요안나는 곧장 선을 긋지 않았다.

그 선은 먼저 문 쪽으로 조금 돌아갔다. 마치 칠판 위에 문이 있는 것처럼, 기억을 피해가지 않고 한 번 감싸듯 돌아간 뒤, 오늘의 답으로 이어졌다.

푸리나는 그 선을 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선은 멀었다. 돌아갔다. 조금 떨렸다. 그러나 그것이 요안나의 평화였다. 모든 이에게 곧장 닿는 평화가 아니라, 닫힌 문 앞에서 멈추고, 기억을 지우지 않고, 그래도 미래를 완전히 닫지 않는 평화.

요안나는 분필을 내려놓았다.

“돌아가버렸어요.”

미하일라가 조용히 말했다.

“피하지 않은 것이다.”

요안나는 미하일라를 보았다.

미하일라는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그 정도면, 오늘은 충분하다.”

요안나는 작게 대답했다.

“네. 오늘은요.”

마지막으로 호흐마이스터가 분필을 들었다.

칠판 위에서 그녀의 처음 답이 떠올랐다.

나는 기사단을 위해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 옆에 오늘의 답이 있었다.

나는 죄를 피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죄를 짊어진다는 이유로, 더 많은 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습니다. 명령은 기사단을 지키기 위해 내려야 합니다. 내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증명하기 위해 내려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땅을 지키는 일과, 나를 일부러 더럽히는 일을 혼동하지 않겠습니다.

호흐마이스터의 선은 처음에는 지나치게 곧았다.

너무 정확하고, 너무 효율적이고, 너무 명령서 같았다.

그러다 중간에서 아주 작게 꺾였다.

그 꺾임은 실수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그녀가 바로잡으려면 바로잡을 수 있을 정도의 작은 흔들림이었다.

그러나 호흐마이스터는 그 선을 고치지 않았다.

그녀는 선이 꺾인 자리를 보았다. 책임과 자기판결이 갈라지는 작은 각도. 사랑하는 땅을 지키는 일과, 자신을 일부러 더럽히는 일을 혼동하지 않기 위해 필요한 불편한 굴절.

“수정하지 않겠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좋습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조금 뒤 덧붙였다.

“검토 기한은 내일까지지만, 이 꺾임은 보존하겠습니다.”

푸리나는 웃었다.

그레이는 기록하려다 잠시 멈추고, 아주 진지하게 적었다.

호흐마이스터: 선의 꺾임 보존. 검토 기한과 별개로 유지.

레이튼의 [문답의 서재]는 여전히 희미하게 겹쳐져 있었다.

그러나 그 공간은 세 선을 하나의 별자리로 묶지 않았다. 아무 이름도 내려오지 않았다. 천장 위의 별들은 여전히 별자리가 아니었다. 책장 속 책들은 여전히 결말을 닫지 않았다. 떠다니는 질문들은 세 사람의 답 위에 조용히 머물 뿐이었다.

레이튼은 칠판을 보았다.

세 개의 선이 생겼다.

별자리는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은 전보다 조금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레이튼은 낮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덧붙였다.

“오늘은 이름 붙이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푸리나가 물었다.

“이름 붙이지 않아도 돼?”

“예.”

레이튼의 목소리는 온화했다.

“별자리는 너무 빨리 이름 붙이면, 하늘을 닫아버리니까요. 오늘은 다만, 길을 잃지 않을 만큼의 선이면 충분합니다.”

그 말과 함께, 겹쳐져 있던 오래된 서재가 조금씩 옅어졌다.

책장들이 사라지고, 끝나지 않은 책들이 사라지고, 천장의 별들이 교실의 낡은 나무 천장 안으로 조용히 스며들었다. 하지만 칠판의 세 선은 남았다.

분필로 그은 선.

그러나 조금 전까지 별빛이었던 선.


---

세 사람의 답과 선이 칠판에 놓였다.

완성된 답은 아니었다.

알렉산드리나의 답은 아직 왕도 앞에서 떨렸다. 그러나 이제 그녀는 도망치는 걸음을 왕도라 부르지 않으려 했다.

요안나의 답은 아직 궁의 문 앞에서 멈춰 있었다. 그러나 그 문을 영원히 잠그는 것을 평화라 부르지도 않으려 했다.

호흐마이스터의 답은 아직 죄와 책임 사이에서 차가웠다. 그러나 자기판결을 명령으로 위장하는 일을 경계하려 했다.

그레이는 기록했다.

학생 전원, 최초 답과 오늘의 답 사이에 선을 그림. 선은 삭제가 아니라 연결. 별자리 미완성. 항로 일부 확보. 레이튼의 [문답의 서재]가 일시적으로 교실과 겹침. 별들은 아직 이름 붙지 않음.

미하일라는 조용히 말했다.

“이 정도라면, 전장 밖으로 가져갈 수 있겠군.”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알렉산드리나는 자기 선을 보았다.

“이 선이 내일도 맞을지는 모르겠어요.”

레이튼은 말했다.

“내일 다시 보면 됩니다.”

요안나가 말했다.

“흐려지면요?”

“다시 그으면 됩니다.”

호흐마이스터가 말했다.

“잘못 그었으면?”

레이튼은 웃었다.

“그때는 좋은 지우개가 필요하겠지요.”

푸리나가 손을 들었다.

“그건 내가 준비할게.”

그레이가 덧붙였다.

“기록상 수정 이력도 남기겠습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 점은 안심이 됩니다.”

교실에 작게 웃음이 번졌다.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러나 충분했다.


---

수업은 끝나가고 있었다.

레이튼은 칠판 앞에 섰다. 그의 뒤에는 세 개의 처음 답, 세 개의 질문, 세 개의 오늘의 답, 그리고 그것들을 잇는 세 개의 선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여러분은 오늘 답을 완성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조용히 들었다.

“그러나 처음 답을 버리지도 않았습니다. 오늘 한 일은 삭제가 아니라 연결입니다. 자신을 세운 말과, 지금 자신을 흔드는 질문과, 오늘 말할 수 있는 답 사이에 선을 그은 것입니다.”

그는 아주 조금 웃었다.

“아직 별자리는 아닙니다.”

푸리나가 말했다.

“하지만 예쁘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직 이름 붙지 않았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미하일라가 말했다.

“이름은 언젠가 붙여야 한다.”

“그렇습니다.”

레이튼은 대답했다.

“하지만 오늘은 아직 이름 붙지 않은 채로 두겠습니다. 너무 빨리 닫히지 않도록.”

요안나는 그 말을 듣고 칠판을 보았다.

알렉산드리나는 자기 선을 보았다.

호흐마이스터는 자기 마지막 문장을 보았다.

그레이는 기록을 마쳤다.

푸리나는 교실의 문을 보았다. 이제 정말 막을 내릴 시간이었다. 하지만 아직 후일담이 남아 있었다. 모든 좋은 수업은 끝난 뒤에 더 오래 따라온다. 복도에서, 찻잔 옆에서, 명령서 앞에서, 닫힌 문 앞에서.

레이튼은 마지막으로 칠판 아래에 작은 문장을 썼다.

오늘의 답은 내일의 질문이 되어도 좋다.

분필 소리가 멈췄다.

그 문장 아래, 아주 희미하게 한 줄이 더 떠올랐다.

그것은 레이튼이 쓴 것이 아니었다. 혹은, 레이튼의 안쪽 어딘가에서 오래전부터 쓰여 있던 문장이 잠시 칠판 위에 비친 것인지도 몰랐다.

별들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

레이튼은 그 문장을 보고 아주 조용히 미소 지었다.

“다행입니다.”

막이 천천히 내려왔다.

후일담 — 빈 칠판의 물음표

그 아래,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자리처럼 한 줄이 남았다.

— 답은 완성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물을 수 있을 만큼 살아 있기 위해 쓰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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