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217여관◆zAR16hM8he(c2970e66)2026-05-23 (토) 12:09:18
《아포리아의 교실》
— 성급한 답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법 —
후일담 — 빈 칠판의 물음표
— 답은 완성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물을 수 있을 만큼 살아 있기 위해 쓰인다 —
수업이 끝난 뒤, 교실은 생각보다 오래 비어 있었다.
푸리나는 막을 내렸고, 조명은 낮아졌고, 학생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알렉산드리나는 다시 내전의 지도 앞으로, 요안나는 궁의 문과 사람들의 손이 함께 놓인 자리로, 호흐마이스터는 란트마이스터들의 시야와 명령서들이 기다리는 방으로. 미하일라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칠판을 한 번 보고, 아무 말 없이 교실을 나갔다.
그러나 교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푸리나의 극장이 만든 무대라면 막이 내리면 함께 접혀야 했다. 칠판도, 책상도, 창가의 빛도, 교탁 옆의 찻잔도 다음 극을 위해 사라져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교실은 잠시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아직 자기 답을 다 챙기지 못한 것처럼.
칠판에는 많은 것이 남아 있었다.
처음의 답들.
나는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나는 기사단을 위해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 옆의 질문들.
지금의 걸음은 왕도인가, 도망인가?
아직 잡을 수 없는 손 앞에서도, 미래의 문을 닫지 않을 수 있는가?
그 명령은 지키기 위한 것인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가?
그리고 세 사람이 남긴 오늘의 답들.
두려움에서 달아나기 위해 왕도를 걷지 않겠다는 문장.
잡을 수 없는 손을 잡은 척하지 않되, 그 손이 있는 미래의 문을 영원히 닫지도 않겠다는 문장.
죄를 피하지 않되, 더 많은 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문장.
그 문장들은 서로 닮지 않았다. 문장 길이도, 무게도, 떨림도 달랐다. 알렉산드리나의 문장은 칼집에 손을 얹고도 한 걸음 멈춘 사람 같았고, 요안나의 문장은 닫힌 문 앞에서 숨을 고르는 작은 황제 같았으며, 호흐마이스터의 문장은 서명 직전의 명령서 위에 놓인 차가운 손 같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세 개의 선이 있었다.
곧지 않은 선.
돌아간 선.
작게 꺾인 선.
별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별들이 완전히 흩어져 있지도 않았다.
푸리나는 빈 교실에 다시 들어왔다.
그녀는 문가에서 잠시 멈췄다. 수업 중에는 이곳이 꽤 북적였는데, 비어 있으니 갑자기 작아 보였다. 혹은 반대로, 더 커 보였다. 사람이 떠난 교실은 이상하다. 말소리가 사라진 뒤에야, 그곳에서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 더 잘 들리는 법이다.
그레이는 이미 칠판 앞에 있었다.
그녀는 지우개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지우지 않고 있었다.
푸리나는 물었다.
“왜 안 지워?”
그레이는 지우개를 든 손을 내려다보았다. 평소라면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무대가 끝났고, 기록은 남겼으며, 다음 장면을 위해 칠판은 비워야 한다. 그런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이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우려고 했습니다.”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조금 망설여져서요.”
푸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레이가?”
“예.”
그레이는 칠판을 보았다. 알렉산드리나의 곧지 않은 선, 요안나의 돌아간 선, 호흐마이스터의 작게 꺾인 선. 모두 분필 자국일 뿐인데, 이상하게 단순한 분필 자국처럼 보이지 않았다.
“기록은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칠판까지 바로 지워버리면, 조금 아까울 것 같았습니다.”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그레이답지 않은데.”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조금 뒤, 아주 작게 덧붙였다.
“하지만 오늘 수업은…… 조금 그럴 만했습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는 여전히 지우개를 들고 있었다. 자세도 단정했고, 표정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작고 조심스러운 망설임이 오히려 더 선명했다. 그녀는 감상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가 멈춘 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록 같았다.
푸리나는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분필 선들은 정말로 평범했다. 레이튼의 [문답의 서재]가 겹쳐졌을 때 보였던 별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끝없는 서재도, 이름 붙지 않은 별들도, 아직 닫히지 않은 책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푸리나는 그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느끼지 않았다.
분필은 분필이었고, 선은 선이었다.
그러나 한 번 별이었던 것은, 다시 분필이 되어도 어딘가에 하늘을 남긴다.
푸리나는 칠판 아래의 문장을 읽었다.
오늘의 답은 내일의 질문이 되어도 좋다.
그리고 그 아래, 희미하게 남은 문장.
별들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
푸리나는 가만히 그 문장을 보았다.
“레이튼답네.”
그레이가 말했다.
“예.”
“답을 줬으면서도 안 줬어.”
“그것이 레이튼 경의 방식으로 보입니다.”
“얄밉지.”
그레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조금은요.”
그레이가 그렇게 말해서, 푸리나는 다시 웃었다.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레이튼이 들어왔다.
그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그 피로는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 어려운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지 않은 채 잠시 창밖을 본 사람의 피로였다.
“아직 남아 있었군요.”
푸리나가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다시 올 줄 알았어.”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제가요?”
“응. 자기 별들을 두고 그냥 갈 사람은 아니잖아.”
“별은 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푸리나는 칠판을 가리켰다.
“그래서, 선생님. 수업은 성공이었어?”
레이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칠판을 보았다. 알렉산드리나의 선, 요안나의 선, 호흐마이스터의 선. 그리고 그 선들이 아직 별자리가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모습.
“아직 모르겠습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도?”
“예.”
레이튼은 칠판 앞에 섰다.
“성공이라는 말은 조금 빠릅니다. 오늘 쓴 답들이 내일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알렉산드리나 폐하는 다시 증명하려 달릴 수도 있고, 요안나 폐하는 평화라는 말 앞에서 다시 목이 막힐 수도 있으며, 호흐마이스터는 명령서 앞에서 다시 자기판결과 책임을 혼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실패야?”
“그것도 빠릅니다.”
레이튼은 웃었다.
“오늘은 다만, 그들이 자기 답 옆에 서 있었습니다.”
잠시 침묵.
“교실 안에서요.”
푸리나는 그 말을 들었다.
“교실 밖에서는?”
“그건 다음 질문입니다.”
푸리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 끝까지 레이튼답네.”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반쯤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레이는 지우개를 든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칠판은…… 지워도 괜찮을까요?”
레이튼은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는 평소처럼 담담하게 서 있었지만, 질문의 끝이 아주 조금 낮았다. 명령을 기다리는 말투가 아니라, 정말로 허락을 구하는 말투였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워도 괜찮습니다.”
푸리나가 놀라 그를 보았다.
“지워도 된다고?”
“예.”
레이튼은 칠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답을 보존하는 것보다, 다시 쓸 수 있는 칠판을 남기는 편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레이는 잠시 칠판을 보았다.
“그래도…… 조금은 남겨도 될까요?”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물론입니다.”
푸리나가 물었다.
“뭘 남기게?”
레이튼은 칠판 위쪽의 이름을 보았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그리고 중앙의 물음표 하나.
“이름과 물음표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레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정도라면…… 다시 쓸 수도 있겠습니다.”
레이튼은 지우개를 들었다.
그러나 곧 그레이를 보았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지우시겠습니까?”
그레이는 조금 놀란 듯했다.
“제가요?”
“예.”
그레이는 칠판을 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겠습니다.”
두 사람은 칠판을 지우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리나의 답이 지워졌다. 그러나 그 답이 없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이미 자기 손으로 썼으니까.
요안나의 답이 지워졌다. 그러나 닫힌 문 앞에서 했던 말은 교실 바닥 어딘가에 남은 것 같았다.
호흐마이스터의 답이 지워졌다. 그러나 그 작은 꺾임은, 지워진 분필 가루 속에서도 이상하게 또렷했다.
그레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웠다.
평소라면 더 빠르고 깔끔하게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장 하나하나가 지워질 때마다 잠시 멈췄다. 그레이는 눈에 보이는 기록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기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이튼은 처음의 세 답도 지웠다.
나는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지워졌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지워졌다.
나는 기사단을 위해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지워졌다.
칠판은 점점 비어갔다.
마지막으로 선들이 지워졌다.
곧지 않은 선. 돌아간 선. 꺾인 선.
그 선들이 사라지자, 칠판은 거의 빈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두 가지는 남았다.
위쪽의 이름.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그리고 중앙의 물음표.
?
푸리나는 그 칠판을 보았다.
“결국 물음표만 남겼네.”
“예.”
레이튼이 말했다.
“너무 당신답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네.”
레이튼은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빈 칠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답이 다 지워졌는데, 이상하게 사라진 느낌은 아니야. 오히려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아.”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녀라면, 무엇을 지웠고 무엇을 남겼는지 항목별로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짧게 적었다.
칠판은 지워졌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한 줄을 더 적었다.
하지만 질문은 남았습니다.
그레이는 그 두 줄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한 줄을 덧붙였다.
그리고 아마, 오늘의 선들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푸리나는 기록판을 들여다보고 웃었다.
“좋네.”
그레이는 조금 작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응. 오늘은 그게 더 그레이다워.”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조금, 안도한 듯 기록판을 품에 안았다.
---
학생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알렉산드리나는 군막으로 돌아가, 전황도를 보았다. 지도 위의 선들은 여전히 차가웠고, 사절들의 말은 여전히 반듯했다. 왕도는 여전히 무거웠다. 그녀는 자기가 쓴 문장을 기억했다.
나는 두려움에서 달아나기 위해 왕도를 걷지 않겠습니다.
그 문장은 군막에 걸어두기에는 너무 사적이었고, 공식 선언문으로 쓰기에는 너무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 문장을 버리지 않았다. 대신 전황도 옆,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여백에 점 하나를 찍었다.
별이라고 부르기에는 작은 점.
그러나 알렉산드리나는 그 점을 보며 한 번 숨을 골랐다.
“오늘은 여기서 다시 보죠.”
누구에게 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였을 수도 있고, 아직 왕도를 걷는 법을 배우는 작은 차르에게였을 수도 있다.
요안나는 궁의 복도를 걸었다.
문들은 여전히 문이었다. 어떤 문은 열려 있었고, 어떤 문은 닫혀 있었다. 그녀는 닫힌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 문은 그때의 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닫힌 문은 조금씩 닮아 있다.
그녀는 손을 뻗지 않았다.
억지로 열지도 않았다.
다만 문 앞에 서서 작게 말했다.
“아직은 못 해요.”
그리고 조금 뒤, 덧붙였다.
“하지만 영원히 닫는다고도 말하지 않을래요.”
그것은 칙령이 아니었다. 화해도 아니었다. 그러나 요안나는 그 문장으로 그날의 복도를 지나갈 수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란트마이스터의 보고가 들어와 있었다. 명령서도 있었다.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일들이 여전히 있었다. 그녀는 펜을 들었다. 펜 끝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안정 안에 작은 꺾임이 하나 생겨 있었다.
그녀는 명령서 한 줄을 오래 보았다.
징벌.
그 단어는 편했다. 빠르고, 명확하고, 책임을 자기 쪽으로 모으기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멈췄다.
“이것은 지키기 위한 명령입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아니면 제 판결을 유지하기 위한 문장입니까.”
잠시 뒤, 그녀는 첫 단어를 고쳤다.
징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명령서는 조금 더 정확해졌다. 더럽지 않은 명령이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기 자신을 더럽히기 위해 더 어두워진 명령은 아니게 되었다.
호흐마이스터는 문서 여백에 아주 작게 적었다.
검토 기한: 내일.
그리고 정말로 내일 다시 보기로 했다.
---
빈 교실에는 레이튼만 남았다.
푸리나와 그레이도 나간 뒤였다. 창가의 빛은 낮아졌고, 칠판에는 이름과 물음표만 남아 있었다.
레이튼은 교탁 옆에 앉아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는 이미 향을 조금 잃었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식은 차에는 식은 차의 역할이 있다. 뜨거울 때는 몰랐던 떫은맛을 남기고, 오래 놓인 시간의 무게를 알려준다.
레이튼은 칠판을 보았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
그는 아주 낮게 말했다.
“오늘도 끝까지 이름 붙지 않았군요.”
그 말에는 안도가 있었다.
그러나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다.
이름 붙지 않은 채 남는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영원히 이름 붙지 않을 수는 없다. 언젠가 알렉산드리나는 왕도에 이름을 붙여야 할 것이고, 요안나는 평화의 문을 열지 닫을지 선택해야 할 것이며, 호흐마이스터는 명령서에 서명해야 할 것이다.
그때 레이튼은 그들의 곁에 언제나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생각하자, 교실은 조금 쓸쓸해졌다.
“선생이라는 것도, 쉬운 퍼즐은 아니군요.”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때 칠판의 물음표가 아주 희미하게 흔들렸다.
레이튼은 눈을 깜박였다.
그것은 신술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았다. 기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조용했다. 다만 [문답의 서재] 깊은 곳에서, 아직 끝이 쓰이지 않은 책 한 권이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소리 같았다.
칠판 아래, 지워진 분필 가루 사이에서 아주 작은 문장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선생은 어디까지 동행하는가?
레이튼은 그 문장을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아, 이런.”
그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질문은 제 몫이군요.”
교실은 대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는 것이 이 교실의 방식이었다.
레이튼은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 앞으로 갔다. 물음표 아래에 아주 작게, 아무도 보지 못할 만큼 작은 글씨로 적었다.
내일 다시 묻겠습니다.
그는 분필을 내려놓았다.
칠판은 다시 조용해졌다.
교실은 이제 정말 사라지기 시작했다. 책상들이 옅어지고, 창가의 빛이 접히고, 칠판의 이름도 천천히 무대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러나 물음표만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막이 완전히 내려가기 직전, 레이튼은 그 물음표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좋은 밤 되십시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들.”
그리고 교실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분필 가루처럼 희미한 질문 하나였다.
답은 완성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물을 수 있을 만큼 살아 있기 위해 쓰인다.
— 성급한 답을 다시 숨 쉬게 하는 법 —
후일담 — 빈 칠판의 물음표
— 답은 완성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물을 수 있을 만큼 살아 있기 위해 쓰인다 —
수업이 끝난 뒤, 교실은 생각보다 오래 비어 있었다.
푸리나는 막을 내렸고, 조명은 낮아졌고, 학생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알렉산드리나는 다시 내전의 지도 앞으로, 요안나는 궁의 문과 사람들의 손이 함께 놓인 자리로, 호흐마이스터는 란트마이스터들의 시야와 명령서들이 기다리는 방으로. 미하일라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녀는 마지막까지 칠판을 한 번 보고, 아무 말 없이 교실을 나갔다.
그러나 교실은 사라지지 않았다.
푸리나의 극장이 만든 무대라면 막이 내리면 함께 접혀야 했다. 칠판도, 책상도, 창가의 빛도, 교탁 옆의 찻잔도 다음 극을 위해 사라져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교실은 잠시 남아 있었다. 마치 누군가 아직 자기 답을 다 챙기지 못한 것처럼.
칠판에는 많은 것이 남아 있었다.
처음의 답들.
나는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나는 기사단을 위해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 옆의 질문들.
지금의 걸음은 왕도인가, 도망인가?
아직 잡을 수 없는 손 앞에서도, 미래의 문을 닫지 않을 수 있는가?
그 명령은 지키기 위한 것인가,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결론을 증명하기 위한 것인가?
그리고 세 사람이 남긴 오늘의 답들.
두려움에서 달아나기 위해 왕도를 걷지 않겠다는 문장.
잡을 수 없는 손을 잡은 척하지 않되, 그 손이 있는 미래의 문을 영원히 닫지도 않겠다는 문장.
죄를 피하지 않되, 더 많은 죄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되지 않겠다는 문장.
그 문장들은 서로 닮지 않았다. 문장 길이도, 무게도, 떨림도 달랐다. 알렉산드리나의 문장은 칼집에 손을 얹고도 한 걸음 멈춘 사람 같았고, 요안나의 문장은 닫힌 문 앞에서 숨을 고르는 작은 황제 같았으며, 호흐마이스터의 문장은 서명 직전의 명령서 위에 놓인 차가운 손 같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세 개의 선이 있었다.
곧지 않은 선.
돌아간 선.
작게 꺾인 선.
별자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별들이 완전히 흩어져 있지도 않았다.
푸리나는 빈 교실에 다시 들어왔다.
그녀는 문가에서 잠시 멈췄다. 수업 중에는 이곳이 꽤 북적였는데, 비어 있으니 갑자기 작아 보였다. 혹은 반대로, 더 커 보였다. 사람이 떠난 교실은 이상하다. 말소리가 사라진 뒤에야, 그곳에서 어떤 말들이 오갔는지 더 잘 들리는 법이다.
그레이는 이미 칠판 앞에 있었다.
그녀는 지우개를 들고 있었다.
하지만 지우지 않고 있었다.
푸리나는 물었다.
“왜 안 지워?”
그레이는 지우개를 든 손을 내려다보았다. 평소라면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무대가 끝났고, 기록은 남겼으며, 다음 장면을 위해 칠판은 비워야 한다. 그런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손이 바로 움직이지 않았다.
“지우려고 했습니다.”
그레이가 조용히 말했다.
“그런데…… 조금 망설여져서요.”
푸리나는 눈을 깜박였다.
“그레이가?”
“예.”
그레이는 칠판을 보았다. 알렉산드리나의 곧지 않은 선, 요안나의 돌아간 선, 호흐마이스터의 작게 꺾인 선. 모두 분필 자국일 뿐인데, 이상하게 단순한 분필 자국처럼 보이지 않았다.
“기록은 해두었습니다. 하지만 칠판까지 바로 지워버리면, 조금 아까울 것 같았습니다.”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그레이답지 않은데.”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조금 뒤, 아주 작게 덧붙였다.
“하지만 오늘 수업은…… 조금 그럴 만했습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한동안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는 여전히 지우개를 들고 있었다. 자세도 단정했고, 표정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작고 조심스러운 망설임이 오히려 더 선명했다. 그녀는 감상에 쉽게 휩쓸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녀가 멈춘 순간은, 그 자체로 하나의 기록 같았다.
푸리나는 칠판 앞으로 걸어갔다.
가까이서 보니, 분필 선들은 정말로 평범했다. 레이튼의 [문답의 서재]가 겹쳐졌을 때 보였던 별빛은 사라지고 없었다. 끝없는 서재도, 이름 붙지 않은 별들도, 아직 닫히지 않은 책들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푸리나는 그 빛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느끼지 않았다.
분필은 분필이었고, 선은 선이었다.
그러나 한 번 별이었던 것은, 다시 분필이 되어도 어딘가에 하늘을 남긴다.
푸리나는 칠판 아래의 문장을 읽었다.
오늘의 답은 내일의 질문이 되어도 좋다.
그리고 그 아래, 희미하게 남은 문장.
별들은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았다.
푸리나는 가만히 그 문장을 보았다.
“레이튼답네.”
그레이가 말했다.
“예.”
“답을 줬으면서도 안 줬어.”
“그것이 레이튼 경의 방식으로 보입니다.”
“얄밉지.”
그레이는 잠시 망설이다가, 조용히 말했다.
“조금은요.”
그레이가 그렇게 말해서, 푸리나는 다시 웃었다.
그때 교실 문이 열렸다.
레이튼이 들어왔다.
그는 조금 피곤해 보였다. 그러나 그 피로는 불쾌한 것이 아니었다. 오래 어려운 책을 읽고, 마지막 장을 덮지 않은 채 잠시 창밖을 본 사람의 피로였다.
“아직 남아 있었군요.”
푸리나가 말했다.
“당신이야말로 다시 올 줄 알았어.”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제가요?”
“응. 자기 별들을 두고 그냥 갈 사람은 아니잖아.”
“별은 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푸리나는 칠판을 가리켰다.
“그래서, 선생님. 수업은 성공이었어?”
레이튼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칠판을 보았다. 알렉산드리나의 선, 요안나의 선, 호흐마이스터의 선. 그리고 그 선들이 아직 별자리가 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모습.
“아직 모르겠습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도?”
“예.”
레이튼은 칠판 앞에 섰다.
“성공이라는 말은 조금 빠릅니다. 오늘 쓴 답들이 내일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알렉산드리나 폐하는 다시 증명하려 달릴 수도 있고, 요안나 폐하는 평화라는 말 앞에서 다시 목이 막힐 수도 있으며, 호흐마이스터는 명령서 앞에서 다시 자기판결과 책임을 혼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 실패야?”
“그것도 빠릅니다.”
레이튼은 웃었다.
“오늘은 다만, 그들이 자기 답 옆에 서 있었습니다.”
잠시 침묵.
“교실 안에서요.”
푸리나는 그 말을 들었다.
“교실 밖에서는?”
“그건 다음 질문입니다.”
푸리나는 피식 웃었다.
“정말 끝까지 레이튼답네.”
“칭찬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반쯤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레이는 지우개를 든 채 조심스럽게 물었다.
“칠판은…… 지워도 괜찮을까요?”
레이튼은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는 평소처럼 담담하게 서 있었지만, 질문의 끝이 아주 조금 낮았다. 명령을 기다리는 말투가 아니라, 정말로 허락을 구하는 말투였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지워도 괜찮습니다.”
푸리나가 놀라 그를 보았다.
“지워도 된다고?”
“예.”
레이튼은 칠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답을 보존하는 것보다, 다시 쓸 수 있는 칠판을 남기는 편이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레이는 잠시 칠판을 보았다.
“그래도…… 조금은 남겨도 될까요?”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물론입니다.”
푸리나가 물었다.
“뭘 남기게?”
레이튼은 칠판 위쪽의 이름을 보았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그리고 중앙의 물음표 하나.
“이름과 물음표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그레이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 정도라면…… 다시 쓸 수도 있겠습니다.”
레이튼은 지우개를 들었다.
그러나 곧 그레이를 보았다.
“괜찮으시다면, 함께 지우시겠습니까?”
그레이는 조금 놀란 듯했다.
“제가요?”
“예.”
그레이는 칠판을 보았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대답했다.
“그러겠습니다.”
두 사람은 칠판을 지우기 시작했다.
알렉산드리나의 답이 지워졌다. 그러나 그 답이 없어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가 이미 자기 손으로 썼으니까.
요안나의 답이 지워졌다. 그러나 닫힌 문 앞에서 했던 말은 교실 바닥 어딘가에 남은 것 같았다.
호흐마이스터의 답이 지워졌다. 그러나 그 작은 꺾임은, 지워진 분필 가루 속에서도 이상하게 또렷했다.
그레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지웠다.
평소라면 더 빠르고 깔끔하게 끝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문장 하나하나가 지워질 때마다 잠시 멈췄다. 그레이는 눈에 보이는 기록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옮기는 사람처럼 움직였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레이튼은 처음의 세 답도 지웠다.
나는 가짜이기에 누구보다 왕다워야 한다.
지워졌다.
모든 이에게 평화를.
지워졌다.
나는 기사단을 위해 죄를 짊어져야 합니다.
지워졌다.
칠판은 점점 비어갔다.
마지막으로 선들이 지워졌다.
곧지 않은 선. 돌아간 선. 꺾인 선.
그 선들이 사라지자, 칠판은 거의 빈 상태가 되었다.
그러나 두 가지는 남았다.
위쪽의 이름.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그리고 중앙의 물음표.
?
푸리나는 그 칠판을 보았다.
“결국 물음표만 남겼네.”
“예.”
레이튼이 말했다.
“너무 당신답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괜찮네.”
레이튼은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빈 칠판을 바라보며 말했다.
“답이 다 지워졌는데, 이상하게 사라진 느낌은 아니야. 오히려 다시 쓸 수 있을 것 같아.”
레이튼은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그레이는 기록판을 내려다보았다.
조금 전까지 그녀라면, 무엇을 지웠고 무엇을 남겼는지 항목별로 적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짧게 적었다.
칠판은 지워졌습니다.
그리고 조금 뒤, 한 줄을 더 적었다.
하지만 질문은 남았습니다.
그레이는 그 두 줄을 보고 잠시 망설였다. 그러다가 아주 조심스럽게 한 줄을 덧붙였다.
그리고 아마, 오늘의 선들도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푸리나는 기록판을 들여다보고 웃었다.
“좋네.”
그레이는 조금 작게 물었다.
“괜찮습니까?”
“응. 오늘은 그게 더 그레이다워.”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조금, 안도한 듯 기록판을 품에 안았다.
---
학생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알렉산드리나는 군막으로 돌아가, 전황도를 보았다. 지도 위의 선들은 여전히 차가웠고, 사절들의 말은 여전히 반듯했다. 왕도는 여전히 무거웠다. 그녀는 자기가 쓴 문장을 기억했다.
나는 두려움에서 달아나기 위해 왕도를 걷지 않겠습니다.
그 문장은 군막에 걸어두기에는 너무 사적이었고, 공식 선언문으로 쓰기에는 너무 흔들렸다. 그러나 그녀는 그 문장을 버리지 않았다. 대신 전황도 옆, 아무도 보지 않는 작은 여백에 점 하나를 찍었다.
별이라고 부르기에는 작은 점.
그러나 알렉산드리나는 그 점을 보며 한 번 숨을 골랐다.
“오늘은 여기서 다시 보죠.”
누구에게 한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자기 자신에게였을 수도 있고, 아직 왕도를 걷는 법을 배우는 작은 차르에게였을 수도 있다.
요안나는 궁의 복도를 걸었다.
문들은 여전히 문이었다. 어떤 문은 열려 있었고, 어떤 문은 닫혀 있었다. 그녀는 닫힌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그 문은 그때의 문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든 닫힌 문은 조금씩 닮아 있다.
그녀는 손을 뻗지 않았다.
억지로 열지도 않았다.
다만 문 앞에 서서 작게 말했다.
“아직은 못 해요.”
그리고 조금 뒤, 덧붙였다.
“하지만 영원히 닫는다고도 말하지 않을래요.”
그것은 칙령이 아니었다. 화해도 아니었다. 그러나 요안나는 그 문장으로 그날의 복도를 지나갈 수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란트마이스터의 보고가 들어와 있었다. 명령서도 있었다. 결정을 미룰 수 없는 일들이 여전히 있었다. 그녀는 펜을 들었다. 펜 끝은 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안정 안에 작은 꺾임이 하나 생겨 있었다.
그녀는 명령서 한 줄을 오래 보았다.
징벌.
그 단어는 편했다. 빠르고, 명확하고, 책임을 자기 쪽으로 모으기 좋았다. 그러나 그녀는 잠시 멈췄다.
“이것은 지키기 위한 명령입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물었다.
“아니면 제 판결을 유지하기 위한 문장입니까.”
잠시 뒤, 그녀는 첫 단어를 고쳤다.
징벌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세상은 그렇게 친절하지 않다. 그러나 명령서는 조금 더 정확해졌다. 더럽지 않은 명령이 된 것은 아니었다. 다만 자기 자신을 더럽히기 위해 더 어두워진 명령은 아니게 되었다.
호흐마이스터는 문서 여백에 아주 작게 적었다.
검토 기한: 내일.
그리고 정말로 내일 다시 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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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교실에는 레이튼만 남았다.
푸리나와 그레이도 나간 뒤였다. 창가의 빛은 낮아졌고, 칠판에는 이름과 물음표만 남아 있었다.
레이튼은 교탁 옆에 앉아 식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차는 이미 향을 조금 잃었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식은 차에는 식은 차의 역할이 있다. 뜨거울 때는 몰랐던 떫은맛을 남기고, 오래 놓인 시간의 무게를 알려준다.
레이튼은 칠판을 보았다.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의 교실
?
그는 아주 낮게 말했다.
“오늘도 끝까지 이름 붙지 않았군요.”
그 말에는 안도가 있었다.
그러나 약간의 아쉬움도 있었다.
이름 붙지 않은 채 남는 것은 아름답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영원히 이름 붙지 않을 수는 없다. 언젠가 알렉산드리나는 왕도에 이름을 붙여야 할 것이고, 요안나는 평화의 문을 열지 닫을지 선택해야 할 것이며, 호흐마이스터는 명령서에 서명해야 할 것이다.
그때 레이튼은 그들의 곁에 언제나 있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 사실을 생각하자, 교실은 조금 쓸쓸해졌다.
“선생이라는 것도, 쉬운 퍼즐은 아니군요.”
그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그때 칠판의 물음표가 아주 희미하게 흔들렸다.
레이튼은 눈을 깜박였다.
그것은 신술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작았다. 기적이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조용했다. 다만 [문답의 서재] 깊은 곳에서, 아직 끝이 쓰이지 않은 책 한 권이 조용히 책장을 넘기는 소리 같았다.
칠판 아래, 지워진 분필 가루 사이에서 아주 작은 문장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선생은 어디까지 동행하는가?
레이튼은 그 문장을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아, 이런.”
그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마지막 질문은 제 몫이군요.”
교실은 대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는 것이 이 교실의 방식이었다.
레이튼은 자리에서 일어나 칠판 앞으로 갔다. 물음표 아래에 아주 작게, 아무도 보지 못할 만큼 작은 글씨로 적었다.
내일 다시 묻겠습니다.
그는 분필을 내려놓았다.
칠판은 다시 조용해졌다.
교실은 이제 정말 사라지기 시작했다. 책상들이 옅어지고, 창가의 빛이 접히고, 칠판의 이름도 천천히 무대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그러나 물음표만은 마지막까지 남았다.
막이 완전히 내려가기 직전, 레이튼은 그 물음표를 향해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좋은 밤 되십시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들.”
그리고 교실은 사라졌다.
남은 것은 분필 가루처럼 희미한 질문 하나였다.
답은 완성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 물을 수 있을 만큼 살아 있기 위해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