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226여관◆zAR16hM8he(7420cdcd)2026-05-24 (일) 02:50:15
《비껴간 창가의 날개》

— 창밖의 세계들을 지나, 오늘의 거리 위에 날개를 펴는 이야기 —

4막 — 접시의 무게

치료소로 향하는 골목에는 등불이 늦게까지 켜져 있었다. 그레이는 마리암과 그 어머니를 먼저 안으로 들여보냈고, 문턱에서 잠시 멈춰 하융 쪽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을 열었다가, 결국 작게 고개만 숙였다. 하융도 고개를 끄덕였다. 긴 말은 필요하지 않았다. 마리암은 아직 숨을 쉬고 있었고, 그레이는 그 숨이 계속 이어지는지 확인하러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약초 냄새와 젖은 천 냄새가 한 번 바깥으로 밀려 나왔다가, 다시 안으로 스며들었다.

푸리나는 치료소 문 앞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그녀는 문에 붙은 낡은 표식을 손끝으로 살짝 눌러보더니, 떨어질 것 같던 모서리를 다시 붙였다. 별일 아닌 행동이었다. 왕이 할 일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푸리나는 그런 일을 종종 했다. 벽에 붙은 안내문이 비뚤어져 있으면 바로잡고, 무대 뒤에서 누가 밟고 넘어질 끈이 있으면 묶어두고, 아이들이 만든 종이 왕관이 구겨져 있으면 손가락으로 펴주었다. 하융은 그 손끝을 보고, 창 안의 다른 푸리나를 보았다. 조금 덜 지친 푸리나. 잠을 더 잔 푸리나. 누군가 대신 벽의 표식을 붙여주어, 그녀가 굳이 멈추지 않아도 되었던 세계의 푸리나.

그 창은 조용히 열렸다.

이번에는 우물처럼 차갑지 않았다. 시장처럼 눈부시지도 않았다. 더 나은 동료들이 있는 창이었다. 푸리나가 덜 지쳐 웃는 세계, 레이튼의 책상이 조금 더 정리된 세계, 그레이의 눈 밑 그늘이 얕은 세계, 죠니가 절뚝이는 박자를 조금 덜 숨기는 세계. 그리고 하융 자신이 창 앞에 오래 앉아 있지 않아도 되었던 세계. 그 세계는 비극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오래 보게 되었다. 슬픈 창은 피하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정한 창은 피하기 어렵다.

죠니가 옆에서 말했다.

“배고프지 않아?”

하융은 그제야 자기가 치료소 문을 오래 보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죠니는 언제 가져왔는지 다시 접시를 들고 있었다. 접시 위에는 시장에서 가져온 빵 조각과 말린 과일, 치즈 몇 조각이 남아 있었다. 밤공기에 조금 말라 가장자리가 굳어 있었지만, 먹을 수는 있었다.

“그대는 접시를 잃어버리지 않는구려.”

“그건 중요한 능력이야. 전장에서 창 잃어버리는 것보다 덜 멋없긴 한데, 배고플 때는 이쪽이 더 중요해.”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죠니, 그 접시 아직도 있었어?”

“응. 누가 책임지라고 했잖아.”

“내가?”

“네가 위험한 말은 책임진다고 했고, 난 접시를 책임진다고 했지. 계약은 지켜야지.”

레이튼이 가볍게 웃었다.

“훌륭합니다. 오늘 밤 가장 안정적인 행정 단위는 저 접시였군요.”

“교수, 그런 식으로 말하면 접시도 부담스러워해.”

“그릇에게도 감정이 있다는 주장은 흥미롭군요.”

“그건 묻지 마. 지금 시작하면 새벽까지 갈 것 같으니까.”

푸리나는 치료소 벽에서 손을 떼고 걸어왔다. 그녀의 얼굴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다. 그러나 하융이 창 안에서 본 푸리나와 비교하려는 순간, 현실의 푸리나는 접시 위의 빵을 하나 집어 들고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그럼 먹자. 오늘의 점심.”

죠니가 눈썹을 올렸다.

“밤이야.”

“조용한 장면에서는 시간도 조용히 넘어가는 법이야.”

“그건 말이 안 되는데, 이상하게 네가 말하니까 그냥 넘어가고 싶어지네.”

“그게 연출력이야.”

“그건 사기랑 가까워.”

“연출이라니까.”

하융은 그 말을 들으며 작게 웃었다. 치료소 옆 골목에는 의자도 없고 탁자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낮은 담장 곁에 서거나, 빈 나무상자를 조심스럽게 확인한 뒤 앉았다. 죠니는 먼저 상자의 못을 살폈고, 푸리나는 그가 너무 당연하게 그러는 모습을 보고 웃었다. 레이튼은 찻주전자를 내려놓았고, 그레이는 아직 치료소 안에 있었다. 그녀의 빈자리는 작지 않았다. 접시 위의 빵이 하나 남아 있었고, 푸리나는 그것을 집지 않았다.

“그건 그레이 몫.”

죠니가 먼저 말했다.

“나도 알아.”

푸리나는 손을 거두었다.

“그냥 확인한 거야.”

“네가 확인할 때 표정이 좀 위험해.”

“내가 그렇게 먹보처럼 보여?”

“말해야 돼?”

푸리나는 입술을 삐죽였고, 레이튼은 찻잔을 나누며 시선을 살짝 돌렸다. 하융은 그 장면을 보았다. 창 안의 더 덜 지친 푸리나도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에는 이 피곤한 농담이 없었다. 창 안의 죠니는 조금 더 편하게 서 있었고, 현실의 죠니는 오른발에 무게를 덜 싣고 있었다. 하융은 그걸 보지 않으려 했지만, 이미 보았다. 죠니는 자기가 숨기는 것들을 완전히 숨기지는 못했다. 하융은 여러 가능성 속의 죠니를 보았기 때문에, 현실의 죠니가 어디를 조금 더 아끼는지, 언제 손목을 늦게 쓰는지, 어느 순간 농담으로 숨을 돌리는지 너무 잘 알았다.

죠니가 빵을 내밀었다.

“왜 그렇게 봐?”

“보고 있었소?”

“응. 너무 오래 봤어. 내가 빵인지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로.”

하융은 빵을 받지 못하고 잠시 멈췄다.

“미안하오.”

“사과할 정도는 아니고. 그냥 빵을 받으면 돼.”

하융은 빵을 받았다. 현실의 빵은 조금 딱딱했다. 손가락으로 누르면 부드럽게 들어가지 않고, 가장자리가 먼저 갈라졌다. 창 안의 세계에서는 아마 더 따뜻한 빵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또 들었다. 그리고 곧, 더 온전한 죠니가 있는 창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그 창 속의 죠니는 접시를 들고 있지 않았다. 그는 말을 타고 있었다. 자세가 조금 더 곧았고, 얼굴에는 피곤한 농담 대신 조용한 여유가 있었다. 푸리나는 그 옆에서 크게 웃고 있었고, 그레이는 장부를 덜 급하게 넘겼으며, 레이튼은 찻잔을 놓을 시간이 있었다. 하융은 그 창을 보며 숨을 아주 조금 놓쳤다. 그것은 죽은 세계가 아니었다. 누구도 천에 덮여 있지 않았고, 우물에는 끈이 둘러져 있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멀쩡했다.

“저쪽이 보여?”

죠니가 물었다.

하융은 그를 보았다.

“알고 있었소?”

“네가 나를 보다가, 나 말고 다른 걸 보는 얼굴을 했어. 몇 번 봤거든.”

푸리나는 빵을 들고 있던 손을 멈췄다. 레이튼도 찻잔을 내려놓았다. 골목은 조용했다. 치료소 안쪽에서 누군가 낮게 기침하는 소리와, 그레이가 지시하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하융은 천천히 말했다.

“저쪽에는 그대가 조금 더 온전하오.”

죠니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자기 오른발을 내려다보았다.

“그래?”

“그렇소.”

“말은 잘 타?”

“잘 타오.”

“그건 좀 부럽네.”

죠니는 빵을 한 조각 떼어 입에 넣었다. 그 말이 너무 가볍게 나와서, 하융은 오히려 대답하지 못했다. 죠니는 씹던 것을 삼키고 나서, 창이 있는 쪽을 보는 듯 하융의 시선 끝을 따라갔다. 물론 그에게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늘 보이지 않는 것에도 적당한 거리를 두고 서는 법을 아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쪽 나는 지금 여기 없지?”

하융의 손 안에서 빵이 조금 눌렸다.

“없소.”

“그럼 됐어.”

“그것으로 되었소?”

“응.”

죠니는 접시를 하융 쪽으로 조금 더 밀었다.

“저쪽 놈이 더 멀쩡하면 좋겠네. 솔직히 부럽긴 해. 말도 잘 타고, 덜 아프고, 네가 보기에도 그럴싸하면 나쁘지 않은 인생이겠지.”

그는 잠깐 말을 멈추고, 접시의 균형을 맞추듯 손가락으로 가장자리를 눌렀다.

“근데 그쪽 놈은 지금 네 옆에 없잖아. 그러니까 이쪽의 좀 망가진 놈이 빵이나 나눠주면 되는 거야.”

푸리나는 입을 열려다가 닫았다. 레이튼도 질문하지 않았다. 하융은 접시를 보았다. 딱딱한 빵, 조금 마른 치즈, 말린 과일 두 조각. 창 안의 더 나은 죠니는 손에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현실의 죠니는 접시를 밀어주고 있었다.

하융은 그 접시가 이상하게 무겁다고 생각했다.

무게는 有하오. 창외之人은 가볍고, 좌측之접시는 현실처럼 무겁소. 저 너머의 완전한 이는 바람 같고, 내 앞의 흠 있는 이는 빵을 건네는 손을 가졌소. 만일 생이란 것이 어디에 더 머무는가 묻는다면, 나는 오늘 밤 이 접시의 가장자리를 가리킬 수밖에 없겠구려. 결함이 있어 무겁고, 곁에 있어 더욱 무겁소.

그 생각은 너무 정직해서, 하융은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대신 빵을 조금 떼어 먹었다. 빵은 예상대로 딱딱했고, 예상보다 고소했다.

푸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때?”

“맛있소.”

죠니가 그를 보았다.

“거짓말은 아니지?”

“거짓말은 아니오. 조금 딱딱하나, 먹을 수 있소.”

“그게 정확한 평이네. 다음부터 시식 담당도 네가 해.”

푸리나가 말했다.

“죠니, 네가 준 빵에 너무 엄격한 평가를 요구하지 마.”

“먹을 수 있다는 건 좋은 평가야. 배고플 때는 특히.”

레이튼은 찻잔을 하융에게 건넸다.

“차도 드시겠습니까?”

“고맙소.”

하융은 찻잔을 받았다. 프롤로그의 방 안에서 식어 있던 차와 달리, 지금 찻잔은 아직 따뜻했다. 아주 뜨겁지는 않았다. 손을 데울 정도로만 따뜻했다. 하융은 그 온도를 느끼며 창 안의 다른 레이튼을 보았다. 그 레이튼은 더 많은 책과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질문은 더 정교했고, 대답을 기다리는 침묵은 더 여유로웠다. 현실의 레이튼은 골목 한쪽에서 찻잔을 나눠주고 있었고, 등불이 약해지자 주전자 표면에 맺힌 빛이 흔들렸다.

“레이튼.”

“예, 하융 경.”

“저쪽에는 교수도 조금 더…… 여유로워 보였소.”

레이튼은 찻주전자를 든 채 미소 지었다.

“그렇습니까? 그건 상당히 매력적인 가능성이군요.”

“부럽지 않소?”

“부럽습니다.”

레이튼은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여유로운 저는 분명 좋은 질문을 더 천천히 골랐겠지요. 하지만 오늘 밤의 저는 조금 빠르게 물어야 했고, 그 덕분에 어떤 질문은 다듬어지지 못한 채 나왔을 겁니다.”

“그것이 아쉽지 않소?”

“아쉽습니다. 하지만 완전히 다듬어진 질문만이 사람을 돕는 것은 아니니까요.”

레이튼은 찻잔을 하나 더 채워 그레이의 몫으로 남겨두었다.

“가끔은 덜 다듬어진 질문이, 더 빨리 손을 잡을 때도 있습니다.”

하융은 그 말을 들었다. 레이튼다운 말이었다. 설명처럼 보일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의 손은 그레이의 찻잔을 따뜻한 곳에 옮겨두고 있었다. 말보다 그 동작이 먼저 닿았다.

치료소 문이 열렸다. 그레이가 나왔다. 얼굴에는 피로가 있었지만, 아주 조금 안도도 있었다. 푸리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마리암은?”

“열은 있습니다. 하지만 의식은 돌아왔습니다. 물을 더 마시지는 않았고, 바로 조치했습니다. 아직 지켜봐야 합니다.”

푸리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좋아. 지켜보자.”

그레이는 하융을 보았다.

“이름이 맞았습니다.”

하융은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라 침묵했다. 그레이는 이어 말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몫으로 남은 찻잔을 보고 조금 놀란 얼굴을 했다.

“이건…….”

죠니가 말했다.

“네 몫. 식기 전에 마셔. 오늘 밤에는 식은 차가 너무 많았어.”

그레이는 찻잔을 두 손으로 받았다.

“감사합니다.”

푸리나가 남은 빵을 가리켰다.

“빵도 있어. 조금 딱딱하지만 하융이 먹을 수 있대.”

“그건 권유입니까, 경고입니까?”

그레이가 드물게 작게 물었다.

죠니가 곧장 대답했다.

“둘 다. 정확한 정보가 좋은 정보니까.”

그레이는 아주 작게 웃었다. 그리고 빵을 조금 떼어 먹었다. 그녀는 맛에 대해 말하지 않았지만, 천천히 씹었다. 하융은 그 모습을 보며 또 다른 그레이의 창을 보았다. 더 쉬는 그레이. 더 적게 확인하고, 더 적게 자책하고, 더 적은 이름을 잃은 세계의 그레이. 그레이의 장부에는 사망자보다 배급 완료 표시가 많았고, 그녀는 밤에 찻잔을 들고 조금 더 오래 앉아 있었다.

하융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레이 경.”

“네.”

“그대가 조금 덜 지친 세계도 보았소.”

그레이는 찻잔을 든 채 멈췄다.

“그렇습니까?”

“그렇소. 그 세계의 그대는 조금 더 오래 앉아 있었소.”

그레이는 잠시 자기 손을 내려다보았다. 찻잔을 잡은 손가락 끝이 약간 붉었다. 뜨거워서가 아니라, 밤새 기록판과 약재 상자를 오간 탓이었다.

“좋은 세계네요.”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푸리나가 그레이를 보았다. 죠니도 말을 멈췄다.

그레이는 빵 조각을 조심스럽게 접시 가장자리에 내려놓고, 조금 생각한 뒤 덧붙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리암의 열을 먼저 봐야 합니다. 앉는 건 그 뒤에 하겠습니다.”

그 말에는 체념이 없었다. 과장된 사명감도 없었다. 그저 순서가 있었다. 하융은 그 순서가 그레이를 닳게 한다는 것도 알았다. 동시에 그 순서가 누군가를 살린다는 것도 알았다. 창 안의 쉬는 그레이는 아름다웠다. 현실의 그레이는 다시 치료소 문을 힐끗 보았다.

푸리나가 빵을 하나 집어 그레이의 손에 더 얹었다.

“그 뒤에 앉을 때 먹어.”

“전하, 저는…….”

“명령은 아니고 예약.”

죠니가 말했다.

“예약이면 지켜야지. 여왕님이 이상한 방식으로 상냥할 때는 그냥 받아두는 게 편해.”

그레이는 조금 난처한 얼굴이 되었지만, 빵을 받았다.

“알겠습니다. 나중에 먹겠습니다.”

“나중에 말고, 가능한 빠른 나중.”

푸리나가 덧붙이자, 그레이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한 빠른 나중에 먹겠습니다.”

레이튼이 미소 지었다.

“훌륭한 타협입니다.”

하융은 그들을 보았다. 더 나은 동료들의 창은 아직 열려 있었다. 그 창의 빛은 희고 부드러웠다. 누군가에게는 그 빛이 위로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하융에게는 조금 아팠다. 저쪽에서는 모두 조금 덜 닳았다. 저쪽에서는 푸리나가 망토 끝을 덜 더럽혔고, 죠니가 오른발에 무게를 조금 더 실었고, 레이튼의 질문은 조금 더 고요했고, 그레이는 찻잔 앞에 조금 더 오래 앉았다.

하융은 무심코 말했다.

“저쪽이 더 좋은 세계일지도 모르오.”

말이 나온 뒤에야, 그는 자기 목소리가 얼마나 낮았는지 알았다. 골목의 등불이 흔들렸다. 누구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푸리나는 그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레이튼은 질문을 준비하지 않았으며, 그레이는 찻잔을 내려놓지 않았다. 죠니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럴지도.”

하융은 죠니를 보았다.

죠니는 빵을 하나 더 떼어 먹었다.

“더 좋은 세계라는 게 있으면, 아마 그런 식이겠지. 덜 다치고, 덜 잃고, 잠도 좀 자고. 나도 그런 세계 있으면 싫진 않아.”

“그럼 왜…….”

하융은 말을 멈췄다. 왜 이쪽인가. 왜 이 접시인가. 왜 이 피곤한 밤인가. 왜 마리암이 열이 나는 세계인가. 질문은 많았지만, 어느 것도 입 밖으로 온전히 나오지 않았다.

죠니는 그의 말을 기다렸다가, 하융이 더 잇지 않자 접시를 조금 들어 보였다.

“왜 이쪽이냐고?”

하융은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죠니는 잠시 생각했다. 평소처럼 바로 농담하지 않았다. 빵과 치즈와 말린 과일이 남은 접시를 보더니, 그중 가장 덜 딱딱한 빵 조각을 하융 앞으로 밀었다.

“모르지.”

그 대답은 너무 허술했다. 하지만 죠니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나는 세계 고르는 법 같은 건 몰라. 저쪽이 더 나은지, 이쪽이 더 맞는지, 그런 건 교수한테 물어봐. 아마 교수도 바로 답하진 않을 거고.”

레이튼은 조용히 웃었다.

“정확한 추측입니다.”

죠니는 계속 말했다.

“내가 아는 건 이쪽 접시에 빵이 남아 있다는 것뿐이야. 저쪽의 나는 더 멀쩡해도, 지금 네가 먹을 빵을 못 줘. 저쪽 푸리나가 더 잘 쉬었어도, 지금 저 문에 붙은 표식을 다시 눌러주진 못해. 저쪽 그레이가 더 오래 앉아 있어도, 지금 마리암 이름을 세 번 확인한 건 이쪽 그레이고.”

그는 하융을 보았다.

“그러니까 나는 이쪽을 먼저 볼거야. 저쪽은 네가 봐도 돼. 대신 너무 오래 가지는 말고.”

푸리나는 그 말에 아주 조용히 웃었다. 이번에는 박수치지 않았다. 레이튼은 찻잔을 내려놓았고, 그레이는 자기 손 안의 빵을 바라보았다. 하융은 죠니가 밀어준 빵 조각을 보았다. 아까보다 조금 덜 딱딱한 조각이었다. 그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너무 오래 가지는 말라.”

“응. 길 잃으면 찾으러 가야 하잖아. 귀찮아.”

“찾으러 와줄 것이오?”

“당연하지. 네가 창문 앞에서 굶고 있으면 여왕님이 나부터 보낼걸. 빵 들려서.”

푸리나가 바로 말했다.

“정확해.”

죠니는 푸리나를 보았다.

“거봐.”

하융은 웃었다. 웃음이 골목에 작게 번졌다. 치료소 안에서 누군가 움직이는 소리가 났고, 그레이가 곧 다시 들어가봐야 한다는 얼굴을 했다.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접시 가까이에 있었다. 하융은 빵을 입에 넣었다. 조금 딱딱했고, 조금 고소했고, 아주 조금 짰다. 현실의 맛이었다.

창은 닫히지 않았다. 더 온전한 동료들의 빛은 여전히 옆에서 부드럽게 흘렀다. 그러나 그 빛은 이제 접시 위에도 내려앉았다. 푸리나의 손끝, 죠니의 손목, 레이튼의 찻잔, 그레이가 남겨둔 빵 조각 위에 희게 얹혔다. 저쪽의 완전함은 이쪽의 결함을 지우지 않았다. 다만 잠깐, 결함의 가장자리까지 보이게 했다.

그레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다시 들어가 보겠습니다.”

푸리나가 말했다.

“가능한 빠른 나중.”

그레이는 빵 조각을 작은 천에 싸서 품에 넣었다.

“네. 가능한 빠른 나중에 먹겠습니다.”

죠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증인 많다. 안 먹으면 걸릴거야.”

그레이는 이번에는 분명히 웃었다. 아주 작았지만, 하융은 보았다. 그레이가 치료소 안으로 들어가고, 문이 닫혔다. 푸리나는 남은 접시를 보더니 하융에게 물었다.

“더 먹을래?”

하융은 접시를 보았다. 창 안의 더 좋은 세계에서는 아마 더 따뜻한 식사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 접시에는 죠니가 남겨둔 가장 덜 딱딱한 빵이 있었다.

“조금만 더 먹겠소.”

죠니가 말했다.

“좋은 선택이네. 너무 많이 먹으면 걸을 때 후회해.”

“그대는 늘 후회까지 계산하고 먹소?”

“아니. 여러 번 후회해봐서 알아.”

레이튼이 조용히 말했다.

“경험론적 식사 철학이군요.”

“교수, 내 식사까지 철학으로 만들지 마.”

“실례했습니다.”

푸리나는 웃었다. 하융도 웃었다. 치료소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않았고, 우물의 점검은 끝나지 않았으며, 피난길에는 내일 고쳐야 할 표식들이 남아 있었다. 더 나은 세계는 여전히 열려 있었다. 그러나 하융은 그 세계를 향해 몸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접시를 향해 손을 뻗었다.

그 손이 닿은 것은 가능성이 아니라, 조금 딱딱한 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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