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238)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237익명의 참치 씨(7420cdcd)2026-05-24 (일) 13:14:06
# 《기억이 잠드는 거리의 손님》
## — 등불을 든 사람도 쉬어야 하는 밤 —
### 8막 — 돌려받는 접수대
접수대는 처음보다 가까워 보였다. 거리의 입구에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돌아올 때에는 긴 길을 되짚어온 느낌이 아니었다. 등불지기가 앞에서 걸었고, 그레이는 작은 등불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푸리나와 죠니와 레이튼과 하융은 조금 뒤에 있었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접수대 위의 세 접시는 그대로 놓여 있었고, 여관의 성좌가 그 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열쇠 꾸러미는 그의 손에 있었으나, 이번에는 희미하게 한 번 흔들렸다. 작은 금속음이 났다. 문을 여닫는 소리라기보다, 손님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소리 같았다.
그레이는 접수대 앞에 섰다. 손에 든 작은 등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빛은 접시의 가장자리와 서랍 손잡이를 비췄고, 그레이의 손목에 묻은 진흙 자국과 인주 자국도 함께 드러냈다. 여관의 성좌는 그것들을 보았지만, 닦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돌아오셨군요.”
그레이도 고개를 숙였다.
“네. 돌아왔습니다.”
푸리나는 그 말에 잠깐 눈을 내렸다. 아마 그 단순한 문장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에도 대사를 가로채지 않았다. 죠니는 접시를 품 가까이 들고 있었고, 레이튼은 찻주전자를 접수대 위에 올릴지 말지 아주 짧게 고민하다가 그대로 들었다. 하융은 접수대 위의 빈 접시들을 보며, 한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여관의 성좌는 첫 번째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서 작은 종이등이 나왔다. 처음 그레이의 이름이 접혀 들어갔던 빛이었다. 그 빛은 서랍 안에 있었음에도 어두워지지 않았다. 다만 조금 차분해져 있었다. 여관의 성좌가 그것을 첫 번째 접시 위에 올리자, 종이등은 다시 소리가 되었다. 소리는 아주 낮게 흔들리더니, 그레이에게 돌아왔다.
그레이는 자기 이름이 돌아오는 것을 들었다. 밖에서 누군가 부른 것도 아니고, 장부 위에 적힌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눈을 내리고,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잘 보관해주셨습니다.”
“손님께서 잘 맡겨주셨습니다.”
푸리나가 작게 말했다.
“여관식 인사, 꽤 좋아.”
죠니가 속삭였다.
“너무 많이 배우면 네 극장이 여관이 될걸.”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레이튼이 부드럽게 말했다.
“극장과 여관은 모두 누군가 잠시 다른 자리에 앉는 곳이니, 의외로 친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막을 열고, 하나는 문을 여는구려.”
푸리나는 눈을 빛냈다.
“그 말도 살까?”
하융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번에는 손을 저었다.
“오늘은 외상으로 하겠소.”
죠니가 낮게 말했다.
“언어 시장에 신용거래까지 생겼네.”
그레이는 그 말에 아주 작게 웃었다. 여관의 성좌는 미소인지 아닌지 알기 어려운 표정으로 두 번째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그레이가 맡겼던 작은 물건들이 있었다. 붉은 실이 묶인 민원표, 모서리가 닳은 사망 확인서, 봉하지 않은 편지, 보상 쪽지, 접힌 지도 조각, 꺼진 등불이 그려진 얇은 문패. 들어갈 때보다 조금 더 가지런해 보였지만, 새것이 된 것은 아니었다. 구겨진 자국은 그대로였고, 물든 가장자리도 그대로였다.
여관의 성좌가 물었다.
“전부 돌려받으시겠습니까?”
그레이는 접시 위의 물건들을 보았다. 손이 곧장 나가지 않았다. 민원표의 붉은 실, 편지의 접힌 모서리, 등불 문패의 꺼진 불꽃. 모두 익숙했다. 모두 돌아가면 다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접시 가장 아래에 아주 작은 쪽지가 하나 더 있었다. 처음에는 없었던 것 같았다. 아무 글씨도 없는 흰 쪽지였다. 그레이는 그것을 보았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여관의 성좌는 쪽지를 보았다.
“빈칸입니다.”
“제가 맡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손님 방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레이는 쪽지를 들지 않고 바라보았다. 빈칸은 깨끗했다. 그러나 대기실의 검은 손님이 내밀던 지나치게 하얀 종이와는 달랐다. 이 쪽지는 도장을 기다리는 종이가 아니었다. 접히지도 않았고, 제목도 없었다. 그저 작은 여백처럼 보였다.
푸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져갈 거야?”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전부 가져가겠습니다.”
여관의 성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는 접시 위의 물건들을 하나씩 품에 넣었다. 민원표, 확인서, 편지, 보상 쪽지, 지도 조각, 등불 문패. 그리고 마지막에 빈칸을 집었다. 빈칸은 다른 종이들보다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손끝에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레이는 그것을 장부 사이에 끼울 생각을 했다가, 아직 장부를 돌려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결국 빈칸은 소매 안쪽의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죠니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건 어디에 쓰는 거야?”
그레이는 주머니를 살짝 눌렀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좋네.”
“좋습니까?”
“응. 가끔은 모르겠는 게 하나쯤 있어도 돼. 너무 많으면 곤란하지만.”
레이튼이 미소 지었다.
“훌륭한 균형 감각입니다.”
죠니는 레이튼을 보지 않고 말했다.
“교수, 오늘은 그냥 넘어가자.”
레이튼은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 번째 접시는 비어 있었다. 여관의 성좌는 그것을 그레이 쪽으로 밀지 않았다. 대신 접수대 아래에서 그레이의 장부를 꺼냈다. 그녀가 방에 두고 온 장부와 똑같아 보였다. 표지의 모서리, 책갈피의 위치, 닫힌 부분의 두께까지. 그런데 아주 희미하게 차 냄새가 났다. 그레이는 장부를 받기 전에 손을 보았다. 손은 완전히 깨끗하지 않았다. 진흙은 거의 닦였지만 손톱 밑에 옅은 자국이 있었고, 손목의 등불패에는 인주가 조금 남아 있었다.
여관의 성좌는 장부를 내밀었다.
“맡기신 것은 아니지만, 돌아가실 때 필요하실 듯하여 준비해두었습니다.”
그레이는 두 손으로 장부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장부는 무거웠다. 이상하게도 그 무게가 낯설지 않았다. 다만 전보다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분명했다. 그레이는 습관처럼 장부를 펼치려다 멈췄다. 책갈피가 끼워진 곳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줄이 제대로 말랐는지, 새로 끼운 빈칸이 접히지 않았는지,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손이 표지 위에서 아주 조금 움직였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죠니도 접시를 들고만 있었다.
레이튼은 찻주전자의 뚜껑을 닫았다.
하융은 그레이의 손이 멈춘 것을 보고, 시선을 낮췄다.
그레이는 장부를 펼치지 않았다. 표지를 한 번 쓸고, 품에 안았다. 장부의 모서리가 다시 손바닥에 닿았다. 손목에는 등불패가 있었고, 다른 손에는 여관에서 빌린 작은 등불이 있었다. 장부와 등불은 서로 부딪히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들기에는 조금 불편했다. 그레이는 잠시 자세를 고쳤다. 죠니가 접시를 내려놓고 손을 뻗으려 했지만, 그레이가 먼저 균형을 잡았다.
“괜찮습니다.”
죠니는 손을 거두었다.
“알았어.”
여관의 성좌가 마지막 접시를 보았다. 빈 접시였다. 아무것도 올라가지 않았다.
“세 번째 접시는 그대로 두고 가시겠습니까?”
그레이는 접시를 보았다.
“제가 무엇을 올려야 했습니까?”
“손님마다 다릅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비워두어도 됩니다.”
그레이는 그 접시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빈 접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완전히 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등불빛이 접시 안쪽에 둥글게 고여 있었다. 그레이는 그것을 보다가, 품에 안은 장부를 조금 더 단단히 받쳤다.
등불지기가 옆에서 물었다.
“이제 가요?”
여관의 성좌가 대답했다.
“예. 문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접수대 뒤쪽의 문이 열렸다. 처음 들어온 터널로 이어지는 문 같았지만, 조금 달랐다. 문 너머에는 극장 뒤편의 복도와, 그레이의 방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현실의 먼지 냄새가 조금 섞여 들어왔다. 여관거리의 차 냄새와 젖은 나무 냄새가 그 냄새와 섞였다.
푸리나는 문을 보았다.
“돌아가는 문이네.”
여관의 성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만 손님께서는 잠시 머무셨으니, 들어오실 때와 완전히 같은 문은 아닐 겁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마음에 들어하는 얼굴이 되었지만, 이번에도 자기 대사로 훔치지 않았다. 대신 그레이를 보았다.
“갈까?”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등불지기가 먼저 문 앞으로 갔다. 아이는 문고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그레이를 돌아보았다. 젖어 있던 신발은 이제 덜 젖어 있었다. 마른 것은 아니었지만, 물방울은 없었다.
“또 올 거예요?”
그레이는 잠시 아이를 보았다. 그 질문은 아이에게서 나왔지만, 여관거리 전체가 묻는 것처럼 들렸다. 다시 올 것인가. 손님으로. 관리자나 기록자가 아니라, 작은 등불을 들고.
그레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품의 장부가 무겁고, 손의 등불이 가벼웠다. 둘 사이에서 손목의 등불패가 조용히 흔들렸다.
“필요하면 오겠습니다.”
등불지기는 그 대답이 조금 마음에 안 든 듯 입술을 내밀었다.
“필요해서만 오면 늦을 때도 있어요.”
그레이는 멈췄다.
푸리나가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죠니는 접시를 보았고, 레이튼은 등불지기를 보았다. 하융은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레이는 등불지기 앞에 몸을 낮췄다. 장부를 품에 안고 있어서 완전히 무릎을 굽히기는 어려웠지만, 아이의 눈높이에 가까워지려 했다.
“그럼…… 너무 늦지 않게 오겠습니다.”
등불지기는 그제야 조금 웃었다.
“네.”
그레이는 아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불지기는 등불을 조금 높이 들었다.
“손님이 잘 따라와서요.”
그레이는 그 말에 아주 작게 웃었다.
여관의 성좌는 문가에서 기다렸다. 그레이가 다가가자 그는 손을 내밀었다. 손목의 등불패를 돌려받으려는 듯했지만, 바로 풀지는 않았다.
“이 표식은 이 거리의 것입니다. 돌려주시겠습니까?”
그레이는 손목을 내밀었다.
“네.”
여관의 성좌는 조심스럽게 줄을 풀었다. 등불패가 손목에서 떨어지자, 그 자리에 아주 희미한 선이 남았다. 끈이 눌렀던 자국이었다. 금세 사라질 정도로 얕은 자국. 여관의 성좌는 등불패를 받아 세 번째 접시 옆에 놓았다. 패 위의 진흙 자국과 인주 자국은 그대로였다.
푸리나가 물었다.
“그 자국도 그대로 두는 거야?”
여관의 성좌가 대답했다.
“손님이 지나갔다는 표식이니까요. 닦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죠니가 작게 말했다.
“여기도 빠른 나중이 있네.”
레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절한 관리 원칙입니다.”
하융은 등불패를 보며 말했다.
“작은 자국도 객실의 방명록이 되는구려.”
푸리나는 하융을 보며 손가락을 들었다.
“그 말은 비싸겠다.”
“오늘은 폐점하였소.”
하융이 그렇게 말하자, 죠니가 낮게 웃었다.
“언어 시장 영업 종료.”
그레이는 그 대화를 들으며 등불패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지나온 물의 방과 대기실과 손님 방의 흔적이었다. 여관의 성좌는 그것을 소중하게 다루었다. 닦지 않았고, 숨기지도 않았다. 그레이는 그 사실에 짧게 고개를 숙였다.
여관의 성좌가 문을 열어주었다.
“다녀가십시오, 손님.”
“감사합니다.”
“다음에 오실 때에도 방은 마련해두겠습니다.”
그레이는 잠시 멈췄다.
“제가 오지 않으면요?”
여관의 성좌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래도 방은 종종 환기해두겠습니다.”
푸리나가 그 말을 듣고 눈을 깜박였다. 레이튼은 미소 지었고, 죠니는 괜히 접시 위의 빵가루를 정리했다. 하융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레이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문을 지났다.
터널은 다시 열두 걸음 남짓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손이 비어 있지 않았다. 품에는 장부가 있었고, 한 손에는 작은 등불이 있었다. 다른 손은 장부의 모서리를 받쳤다. 들고 가는 것이 많아 조금 불편했지만, 걸을 수 없을 만큼은 아니었다. 푸리나와 죠니와 레이튼과 하융의 발소리가 뒤따랐다. 등불지기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돌아보면 아직 문 앞에 서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레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터널 끝에서 극장 뒤편의 복도 냄새가 짙어졌다. 먼지, 나무, 오래된 천막, 식은 차, 그리고 아주 희미한 잉크 냄새. 그 냄새를 맡자 그레이는 자기 방에 두고 온 마지막 줄을 떠올렸다. 잉크는 이제 완전히 말랐을 것이다.
문밖으로 나왔을 때, 극장 뒤편의 등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푸리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귀환.”
죠니가 말했다.
“그 말은 좀 거창한데.”
“그래도 귀환이잖아.”
레이튼은 조용히 덧붙였다.
“돌아왔다는 말과 다녀왔다는 말 사이의 어딘가군요.”
하융은 터널 문을 보았다.
“문은 닫혔으되, 길이 사라진 것은 아니오.”
푸리나가 웃었다.
“영업 종료라며.”
“아, 방금 것은…… 예외요.”
죠니가 말했다.
“언어 시장 재개장.”
그레이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자기 방 쪽으로 걸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방 안에는 줄인 촛불, 마른 잉크, 비어 있는 의자, 식은 찻잔이 있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섰다. 장부를 내려놓았다. 작은 등불은 장부 옆에 두었다. 등불의 빛이 마지막 줄을 비췄다. 글자는 번지지 않았다.
그레이는 장부를 펼치지 않았다.
먼저 의자에 앉았다.
푸리나는 문가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죠니도, 레이튼도, 하융도 문밖에 멈췄다. 누구도 방 안으로 먼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레이는 식은 찻잔을 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말했다.
“차를 다시 데워도 될까요?”
레이튼이 문밖에서 바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죠니가 접시를 들어 보였다.
“빵도 아직 조금 있어.”
푸리나가 웃었다.
“좋아. 후일담은 차와 빵이네.”
하융이 낮게 말했다.
“다녀온 자에게 어울리는 귀환식이오.”
그레이는 고개를 들었다.
“귀환식이라기엔…… 작습니다.”
푸리나가 대답했다.
“작아도 돼.”
그레이는 잠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작은 등불이 장부 옆에서 흔들렸다. 방 안의 촛불보다 작았지만, 더 가까운 빛이었다.
그레이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그녀는 장부 옆의 빈칸을 꺼내지 않은 채, 먼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
## — 등불을 든 사람도 쉬어야 하는 밤 —
### 8막 — 돌려받는 접수대
접수대는 처음보다 가까워 보였다. 거리의 입구에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돌아올 때에는 긴 길을 되짚어온 느낌이 아니었다. 등불지기가 앞에서 걸었고, 그레이는 작은 등불을 들고 그 뒤를 따랐다. 푸리나와 죠니와 레이튼과 하융은 조금 뒤에 있었다. 아무도 서두르지 않았다. 접수대 위의 세 접시는 그대로 놓여 있었고, 여관의 성좌가 그 곁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열쇠 꾸러미는 그의 손에 있었으나, 이번에는 희미하게 한 번 흔들렸다. 작은 금속음이 났다. 문을 여닫는 소리라기보다, 손님이 돌아왔음을 알리는 소리 같았다.
그레이는 접수대 앞에 섰다. 손에 든 작은 등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빛은 접시의 가장자리와 서랍 손잡이를 비췄고, 그레이의 손목에 묻은 진흙 자국과 인주 자국도 함께 드러냈다. 여관의 성좌는 그것들을 보았지만, 닦으라고 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고개를 숙였다.
“돌아오셨군요.”
그레이도 고개를 숙였다.
“네. 돌아왔습니다.”
푸리나는 그 말에 잠깐 눈을 내렸다. 아마 그 단순한 문장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에도 대사를 가로채지 않았다. 죠니는 접시를 품 가까이 들고 있었고, 레이튼은 찻주전자를 접수대 위에 올릴지 말지 아주 짧게 고민하다가 그대로 들었다. 하융은 접수대 위의 빈 접시들을 보며, 한 걸음 뒤에 서 있었다.
여관의 성좌는 첫 번째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서 작은 종이등이 나왔다. 처음 그레이의 이름이 접혀 들어갔던 빛이었다. 그 빛은 서랍 안에 있었음에도 어두워지지 않았다. 다만 조금 차분해져 있었다. 여관의 성좌가 그것을 첫 번째 접시 위에 올리자, 종이등은 다시 소리가 되었다. 소리는 아주 낮게 흔들리더니, 그레이에게 돌아왔다.
그레이는 자기 이름이 돌아오는 것을 들었다. 밖에서 누군가 부른 것도 아니고, 장부 위에 적힌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알아볼 수 있었다. 그녀는 눈을 내리고,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잘 보관해주셨습니다.”
“손님께서 잘 맡겨주셨습니다.”
푸리나가 작게 말했다.
“여관식 인사, 꽤 좋아.”
죠니가 속삭였다.
“너무 많이 배우면 네 극장이 여관이 될걸.”
“그것도 나쁘지 않은데?”
레이튼이 부드럽게 말했다.
“극장과 여관은 모두 누군가 잠시 다른 자리에 앉는 곳이니, 의외로 친척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융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나는 막을 열고, 하나는 문을 여는구려.”
푸리나는 눈을 빛냈다.
“그 말도 살까?”
하융은 잠시 생각하더니, 이번에는 손을 저었다.
“오늘은 외상으로 하겠소.”
죠니가 낮게 말했다.
“언어 시장에 신용거래까지 생겼네.”
그레이는 그 말에 아주 작게 웃었다. 여관의 성좌는 미소인지 아닌지 알기 어려운 표정으로 두 번째 상자를 열었다. 그 안에는 그레이가 맡겼던 작은 물건들이 있었다. 붉은 실이 묶인 민원표, 모서리가 닳은 사망 확인서, 봉하지 않은 편지, 보상 쪽지, 접힌 지도 조각, 꺼진 등불이 그려진 얇은 문패. 들어갈 때보다 조금 더 가지런해 보였지만, 새것이 된 것은 아니었다. 구겨진 자국은 그대로였고, 물든 가장자리도 그대로였다.
여관의 성좌가 물었다.
“전부 돌려받으시겠습니까?”
그레이는 접시 위의 물건들을 보았다. 손이 곧장 나가지 않았다. 민원표의 붉은 실, 편지의 접힌 모서리, 등불 문패의 꺼진 불꽃. 모두 익숙했다. 모두 돌아가면 다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접시 가장 아래에 아주 작은 쪽지가 하나 더 있었다. 처음에는 없었던 것 같았다. 아무 글씨도 없는 흰 쪽지였다. 그레이는 그것을 보았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여관의 성좌는 쪽지를 보았다.
“빈칸입니다.”
“제가 맡긴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손님 방에서 생긴 것입니다.”
그레이는 쪽지를 들지 않고 바라보았다. 빈칸은 깨끗했다. 그러나 대기실의 검은 손님이 내밀던 지나치게 하얀 종이와는 달랐다. 이 쪽지는 도장을 기다리는 종이가 아니었다. 접히지도 않았고, 제목도 없었다. 그저 작은 여백처럼 보였다.
푸리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가져갈 거야?”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전부 가져가겠습니다.”
여관의 성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는 접시 위의 물건들을 하나씩 품에 넣었다. 민원표, 확인서, 편지, 보상 쪽지, 지도 조각, 등불 문패. 그리고 마지막에 빈칸을 집었다. 빈칸은 다른 종이들보다 가벼웠다. 너무 가벼워서, 손끝에서 날아갈 것 같았다. 그레이는 그것을 장부 사이에 끼울 생각을 했다가, 아직 장부를 돌려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결국 빈칸은 소매 안쪽의 작은 주머니에 넣었다.
죠니가 그 모습을 보고 말했다.
“그건 어디에 쓰는 거야?”
그레이는 주머니를 살짝 눌렀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좋네.”
“좋습니까?”
“응. 가끔은 모르겠는 게 하나쯤 있어도 돼. 너무 많으면 곤란하지만.”
레이튼이 미소 지었다.
“훌륭한 균형 감각입니다.”
죠니는 레이튼을 보지 않고 말했다.
“교수, 오늘은 그냥 넘어가자.”
레이튼은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 번째 접시는 비어 있었다. 여관의 성좌는 그것을 그레이 쪽으로 밀지 않았다. 대신 접수대 아래에서 그레이의 장부를 꺼냈다. 그녀가 방에 두고 온 장부와 똑같아 보였다. 표지의 모서리, 책갈피의 위치, 닫힌 부분의 두께까지. 그런데 아주 희미하게 차 냄새가 났다. 그레이는 장부를 받기 전에 손을 보았다. 손은 완전히 깨끗하지 않았다. 진흙은 거의 닦였지만 손톱 밑에 옅은 자국이 있었고, 손목의 등불패에는 인주가 조금 남아 있었다.
여관의 성좌는 장부를 내밀었다.
“맡기신 것은 아니지만, 돌아가실 때 필요하실 듯하여 준비해두었습니다.”
그레이는 두 손으로 장부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장부는 무거웠다. 이상하게도 그 무게가 낯설지 않았다. 다만 전보다 손바닥에 닿는 느낌이 분명했다. 그레이는 습관처럼 장부를 펼치려다 멈췄다. 책갈피가 끼워진 곳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줄이 제대로 말랐는지, 새로 끼운 빈칸이 접히지 않았는지, 돌아가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손이 표지 위에서 아주 조금 움직였다.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죠니도 접시를 들고만 있었다.
레이튼은 찻주전자의 뚜껑을 닫았다.
하융은 그레이의 손이 멈춘 것을 보고, 시선을 낮췄다.
그레이는 장부를 펼치지 않았다. 표지를 한 번 쓸고, 품에 안았다. 장부의 모서리가 다시 손바닥에 닿았다. 손목에는 등불패가 있었고, 다른 손에는 여관에서 빌린 작은 등불이 있었다. 장부와 등불은 서로 부딪히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들기에는 조금 불편했다. 그레이는 잠시 자세를 고쳤다. 죠니가 접시를 내려놓고 손을 뻗으려 했지만, 그레이가 먼저 균형을 잡았다.
“괜찮습니다.”
죠니는 손을 거두었다.
“알았어.”
여관의 성좌가 마지막 접시를 보았다. 빈 접시였다. 아무것도 올라가지 않았다.
“세 번째 접시는 그대로 두고 가시겠습니까?”
그레이는 접시를 보았다.
“제가 무엇을 올려야 했습니까?”
“손님마다 다릅니다.”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은 비워두어도 됩니다.”
그레이는 그 접시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빈 접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완전히 빈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등불빛이 접시 안쪽에 둥글게 고여 있었다. 그레이는 그것을 보다가, 품에 안은 장부를 조금 더 단단히 받쳤다.
등불지기가 옆에서 물었다.
“이제 가요?”
여관의 성좌가 대답했다.
“예. 문은 준비되어 있습니다.”
접수대 뒤쪽의 문이 열렸다. 처음 들어온 터널로 이어지는 문 같았지만, 조금 달랐다. 문 너머에는 극장 뒤편의 복도와, 그레이의 방으로 이어지는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현실의 먼지 냄새가 조금 섞여 들어왔다. 여관거리의 차 냄새와 젖은 나무 냄새가 그 냄새와 섞였다.
푸리나는 문을 보았다.
“돌아가는 문이네.”
여관의 성좌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만 손님께서는 잠시 머무셨으니, 들어오실 때와 완전히 같은 문은 아닐 겁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마음에 들어하는 얼굴이 되었지만, 이번에도 자기 대사로 훔치지 않았다. 대신 그레이를 보았다.
“갈까?”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등불지기가 먼저 문 앞으로 갔다. 아이는 문고리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그레이를 돌아보았다. 젖어 있던 신발은 이제 덜 젖어 있었다. 마른 것은 아니었지만, 물방울은 없었다.
“또 올 거예요?”
그레이는 잠시 아이를 보았다. 그 질문은 아이에게서 나왔지만, 여관거리 전체가 묻는 것처럼 들렸다. 다시 올 것인가. 손님으로. 관리자나 기록자가 아니라, 작은 등불을 들고.
그레이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품의 장부가 무겁고, 손의 등불이 가벼웠다. 둘 사이에서 손목의 등불패가 조용히 흔들렸다.
“필요하면 오겠습니다.”
등불지기는 그 대답이 조금 마음에 안 든 듯 입술을 내밀었다.
“필요해서만 오면 늦을 때도 있어요.”
그레이는 멈췄다.
푸리나가 아주 작게 숨을 들이마셨다. 죠니는 접시를 보았고, 레이튼은 등불지기를 보았다. 하융은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레이는 등불지기 앞에 몸을 낮췄다. 장부를 품에 안고 있어서 완전히 무릎을 굽히기는 어려웠지만, 아이의 눈높이에 가까워지려 했다.
“그럼…… 너무 늦지 않게 오겠습니다.”
등불지기는 그제야 조금 웃었다.
“네.”
그레이는 아이에게 고개를 숙였다.
“안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등불지기는 등불을 조금 높이 들었다.
“손님이 잘 따라와서요.”
그레이는 그 말에 아주 작게 웃었다.
여관의 성좌는 문가에서 기다렸다. 그레이가 다가가자 그는 손을 내밀었다. 손목의 등불패를 돌려받으려는 듯했지만, 바로 풀지는 않았다.
“이 표식은 이 거리의 것입니다. 돌려주시겠습니까?”
그레이는 손목을 내밀었다.
“네.”
여관의 성좌는 조심스럽게 줄을 풀었다. 등불패가 손목에서 떨어지자, 그 자리에 아주 희미한 선이 남았다. 끈이 눌렀던 자국이었다. 금세 사라질 정도로 얕은 자국. 여관의 성좌는 등불패를 받아 세 번째 접시 옆에 놓았다. 패 위의 진흙 자국과 인주 자국은 그대로였다.
푸리나가 물었다.
“그 자국도 그대로 두는 거야?”
여관의 성좌가 대답했다.
“손님이 지나갔다는 표식이니까요. 닦는 것은 나중에 해도 됩니다.”
죠니가 작게 말했다.
“여기도 빠른 나중이 있네.”
레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적절한 관리 원칙입니다.”
하융은 등불패를 보며 말했다.
“작은 자국도 객실의 방명록이 되는구려.”
푸리나는 하융을 보며 손가락을 들었다.
“그 말은 비싸겠다.”
“오늘은 폐점하였소.”
하융이 그렇게 말하자, 죠니가 낮게 웃었다.
“언어 시장 영업 종료.”
그레이는 그 대화를 들으며 등불패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녀가 지나온 물의 방과 대기실과 손님 방의 흔적이었다. 여관의 성좌는 그것을 소중하게 다루었다. 닦지 않았고, 숨기지도 않았다. 그레이는 그 사실에 짧게 고개를 숙였다.
여관의 성좌가 문을 열어주었다.
“다녀가십시오, 손님.”
“감사합니다.”
“다음에 오실 때에도 방은 마련해두겠습니다.”
그레이는 잠시 멈췄다.
“제가 오지 않으면요?”
여관의 성좌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그래도 방은 종종 환기해두겠습니다.”
푸리나가 그 말을 듣고 눈을 깜박였다. 레이튼은 미소 지었고, 죠니는 괜히 접시 위의 빵가루를 정리했다. 하융은 낮게 숨을 내쉬었다.
그레이는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문을 지났다.
터널은 다시 열두 걸음 남짓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손이 비어 있지 않았다. 품에는 장부가 있었고, 한 손에는 작은 등불이 있었다. 다른 손은 장부의 모서리를 받쳤다. 들고 가는 것이 많아 조금 불편했지만, 걸을 수 없을 만큼은 아니었다. 푸리나와 죠니와 레이튼과 하융의 발소리가 뒤따랐다. 등불지기의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돌아보면 아직 문 앞에 서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레이는 돌아보지 않았다.
터널 끝에서 극장 뒤편의 복도 냄새가 짙어졌다. 먼지, 나무, 오래된 천막, 식은 차, 그리고 아주 희미한 잉크 냄새. 그 냄새를 맡자 그레이는 자기 방에 두고 온 마지막 줄을 떠올렸다. 잉크는 이제 완전히 말랐을 것이다.
문밖으로 나왔을 때, 극장 뒤편의 등불은 아직 켜져 있었다. 푸리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귀환.”
죠니가 말했다.
“그 말은 좀 거창한데.”
“그래도 귀환이잖아.”
레이튼은 조용히 덧붙였다.
“돌아왔다는 말과 다녀왔다는 말 사이의 어딘가군요.”
하융은 터널 문을 보았다.
“문은 닫혔으되, 길이 사라진 것은 아니오.”
푸리나가 웃었다.
“영업 종료라며.”
“아, 방금 것은…… 예외요.”
죠니가 말했다.
“언어 시장 재개장.”
그레이는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자기 방 쪽으로 걸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방 안에는 줄인 촛불, 마른 잉크, 비어 있는 의자, 식은 찻잔이 있었다. 그녀는 책상 앞에 섰다. 장부를 내려놓았다. 작은 등불은 장부 옆에 두었다. 등불의 빛이 마지막 줄을 비췄다. 글자는 번지지 않았다.
그레이는 장부를 펼치지 않았다.
먼저 의자에 앉았다.
푸리나는 문가에서 그 모습을 보았다. 죠니도, 레이튼도, 하융도 문밖에 멈췄다. 누구도 방 안으로 먼저 들어오지 않았다.
그레이는 식은 찻잔을 보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말했다.
“차를 다시 데워도 될까요?”
레이튼이 문밖에서 바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죠니가 접시를 들어 보였다.
“빵도 아직 조금 있어.”
푸리나가 웃었다.
“좋아. 후일담은 차와 빵이네.”
하융이 낮게 말했다.
“다녀온 자에게 어울리는 귀환식이오.”
그레이는 고개를 들었다.
“귀환식이라기엔…… 작습니다.”
푸리나가 대답했다.
“작아도 돼.”
그레이는 잠시 그 말을 듣고 있었다. 작은 등불이 장부 옆에서 흔들렸다. 방 안의 촛불보다 작았지만, 더 가까운 빛이었다.
그레이는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그녀는 장부 옆의 빈칸을 꺼내지 않은 채, 먼저 찻잔을 두 손으로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