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31익명의 참치 씨(7ce028f3)2026-05-10 (일) 23:42:02
# 《희극: 숲의 빛은 가면을 벗기지 않는다》

## 3편 — **다른 얼굴로 말하는 진심**

숲은 낮은 빛으로 시작되었다.

궁정의 조명이 사람을 못 박는 못이었다면, 숲의 빛은 나뭇잎 사이로 흔들리는 물결이었다.

완전히 어둡지는 않았다.
하지만 충분히 어두웠다.

사람이 자기 얼굴을 숨길 수 있을 만큼.
사람이 방금까지 입고 있던 옷을 벗고, 다른 옷을 입어볼 수 있을 만큼.

무대 한쪽에서 푸리나가 등장했다.

이제 그녀는 로잘린드가 아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짧은 겉옷.
움직이기 편한 바지.
허리에 찬 가짜 단검.
머리를 눌러 묶은 리본.

가니메드였다.

푸리나/가니메드는 일부러 조금 크게 걸었다.
궁정에서 로잘린드가 걸을 때는 옷자락이 움직임을 제한했지만, 지금은 달랐다.

한 걸음이 가벼웠다.

하지만 그 가벼움은 완전한 자유가 아니었다.

처음 입은 옷이 몸에 익지 않아, 조금 과장되고 조금 서툴렀다.

그 뒤를 그레이/알리에나가 따라왔다.

그레이는 실리아의 화려한 옷을 벗고, 더 수수한 옷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작은 가방이 있었다.

빵.
물.
망토.
약초.
바늘과 실.
작은 칼.

객석에서 라이자가 그것을 보며 흐뭇하게 말했다.

“역시 그레이는 숲에 가도 빈손으로 가지 않네.”

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 위 생존 가능성이 상승했습니다.”

“그렇게 말하니까 좀 전투 같아.”

“리투아니아식으로 보면 전투일지도 모릅니다.”

라이자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멀리서 그 말을 들은 듯, 민다우가스가 무표정하게 말했다.

“틀린 말은 아니다.”

아스테르다스가 작게 웃었다.

“대공, 지금 무대 보고 있는 거 맞지?”

“보고 있다.”

“숲속 사랑 희극인데.”

“피난, 신분 위장, 보급, 동선 은폐. 사랑이 들어간 도주 작전이다.”

아스테르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이 아닌 게 제일 무섭군.”

무대 위에서는 하융/터치스톤이 마지막으로 등장했다.

그는 광대 모자를 쓰고 있었지만, 첫 막보다 더 자연스러워 보였다.

궁정에서의 광대는 위험한 농담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숲에 들어온 광대는 조금 달랐다.

그는 길을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먼저 길을 잃을 권리가 있는 사람이었다.

하융/터치스톤은 발끝으로 바닥을 톡톡 쳤다.

“참으로 친절한 숲이오.”

그레이/알리에나가 말했다.

“어디가 친절합니까? 길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친절하오. 길이 너무 잘 보이면 사람은 자신이 제대로 가고 있다고 착각하니까.”

객석에서 웃음이 번졌다.

푸리나/가니메드는 팔짱을 꼈다.

“그럼 우리는 지금 제대로 길을 잃은 거야?”

하융/터치스톤은 정중하게 고개를 숙였다.

“아주 훌륭하게 길을 잃고 있소.”

“그건 칭찬이야?”

“숲에서는 칭찬이오. 궁정에서는 처벌이겠지만.”

푸리나/가니메드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웃음은 로잘린드의 것이면서, 가니메드의 것이었다.

그리고 조금은 푸리나 자신의 것이기도 했다.

그레이/알리에나는 그 웃음을 보다가 말했다.

“걸음이 달라졌습니다.”

“그래?”

“네. 조금 과합니다.”

푸리나/가니메드는 가슴에 손을 얹고 뒤로 물러섰다.

“알리에나! 숲에 들어오자마자 잔혹해졌구나!”

“잔혹한 것이 아니라 관찰입니다.”

“그게 더 잔혹해!”

객석의 요안나가 작게 웃었다.

“그레이 경, 무대 위에서도 그레이 경이네요.”

슈샤니크가 말했다.

“그게 좋은 배역입니다.”

“왜요?”

“연기하면서도 본질이 남아야 관객이 믿습니다.”

미하일라는 무대를 보며 덧붙였다.

“그리고 저 본질은 유용하다.”

요안나는 웃었다.

“황제 폐하도 결국 유용성으로 보시는군요.”

“유용한 것은 중요하다.”

“희극인데요?”

“희극이 살아남으려면 더더욱.”

무대 위에서 푸리나/가니메드는 그레이/알리에나가 건넨 빵 조각을 받았다.

그녀는 작은 조각을 보고 눈을 깜빡였다.

“이게 내 몫?”

“네.”

“작아.”

“세 끼로 나누어야 합니다.”

“숲에 왔는데도 배급이 있어?”

“숲이니까 배급이 필요합니다.”

푸리나/가니메드는 빵을 한참 보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말했다.

“알리에나. 나는 지금 자유의 대가를 깨달았어.”

“무엇입니까?”

“자유는 배고프구나.”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아카식은 너무 즐거운 얼굴이었다.

“좋아. 아주 좋아. 자유와 배급표의 충돌.”

알토가 낮게 말했다.

“기록할 가치가 있습니다.”

아카식이 그를 보았다.

“방금 네가 먼저 말했지?”

“공연 후입니다.”

“치사해.”

하융/터치스톤은 빵 조각을 받아 들고 말했다.

“배고픔은 훌륭한 철학자요. 사람에게 가장 먼저 묻지. 그대의 이상은 씹어 삼킬 수 있는가?”

그레이/알리에나는 즉시 말했다.

“이상은 식량 대체품이 아닙니다.”

“그 말 또한 훌륭한 철학이오.”

“철학이 아니라 사실입니다.”

“광대에게 사실은 가끔 철학보다 더 희귀하오.”

푸리나/가니메드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

숲의 빛이 조금 더 따뜻해졌다.

그 웃음은 궁정에서 불가능했던 웃음이었다.

궁정에서의 웃음은 허락받은 위치에서, 허락받은 크기로, 허락받은 이유 때문에 나와야 했다.

그러나 숲의 웃음은 조금 달랐다.

배고픔 때문에 나오고, 길을 잃어서 나오고, 빵 조각이 작아서 나오고, 광대가 이상한 말을 해서 나왔다.

그것은 완벽하지 않았지만 살아 있었다.

그때 무대 뒤쪽의 나무 하나가 조명을 받았다.

그 나무에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한 장.

두 장.

세 장.

푸리나/가니메드가 그것을 발견했다.

“어?”

그녀는 다가가 첫 종이를 떼었다.

그레이/알리에나가 물었다.

“무엇입니까?”

푸리나/가니메드는 종이를 펼쳤다.

그리고 입꼬리를 올렸다.

“로잘린드에게.”

객석이 술렁였다.

하융/터치스톤은 고개를 들이밀었다.

“사랑시요?”

푸리나/가니메드는 일부러 근엄하게 말했다.

“그래. 이 숲에는 열매 대신 사랑시가 맺히는 모양이야.”

하융/터치스톤은 나무를 올려다보았다.

“그렇다면 이 나무는 참으로 고통스럽겠소. 열매는 익으면 떨어지지만, 사랑시는 붙어 있는 동안 계속 부끄러울 테니.”

객석에서 웃음.

푸리나/가니메드는 종이를 읽었다.

“로잘린드에게.
그대가 웃었을 때, 나는 내가 아직 서 있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잠시 멈췄다.

이 순간, 푸리나는 자신이 연출한 문장이 무대 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느꼈다.

이것은 죠니가 푸리나에게 보내는 말이 아니었다.

올랜도가 로잘린드에게 보내는 말이었다.

그러나 죠니가 이 문장을 너무 죠니답게 읽고, 붙이고, 부끄러워했기 때문에, 그 문장은 더 낮고 진짜 같은 무게를 얻었다.

푸리나/가니메드는 그것을 배우이자 연출가로서 받아들였다.

좋다.

사랑이 꼭 금빛 수사로 빛나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랑은 “내가 아직 서 있다는 걸 알았다”는 투박한 문장으로 충분히 시작될 수 있다.

그레이/알리에나가 종이를 들여다보았다.

“올랜도 경의 문체입니다.”

푸리나/가니메드가 물었다.

“어떻게 알아?”

“문장 자체가 부끄러워하고 있습니다.”

하융/터치스톤이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사랑시요. 시인이 시보다 먼저 도망가고 싶어 하는 것이 보이오.”

객석에서 다시 웃음이 났다.

푸리나/가니메드는 두 번째 종이를 떼었다.

이번 것은 죠니가 즉흥으로 바꾼 문장이었다.

“로잘린드.
내가 이런 걸 쓰는 사람이라는 건 나도 몰랐다.
그러니까, 네가 책임져라.”

푸리나/가니메드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책임져라’래!”

그레이/알리에나는 아주 진지하게 말했다.

“사랑 고백보다는 피해 신고서에 가깝습니다.”

하융/터치스톤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랑이란 때로 상대를 상대로 한 소송이오. 증거는 심장이고, 판결은 대개 불공정하지.”

그레이/알리에나는 그를 보았다.

“그건 광대의 말입니까, 진심입니까?”

“둘 다 아니길 바라오.”

푸리나/가니메드는 종이를 품에 넣었다.

그레이/알리에나가 물었다.

“보관하십니까?”

“응.”

“놀리려고요?”

푸리나/가니메드는 씩 웃었다.

“반은.”

“나머지 반은요?”

푸리나/가니메드는 잠시 생각했다.

“극이 살아났다는 증거니까.”

그레이는 그것을 이해했다.

로잘린드가 올랜도의 시를 품에 넣은 것이면서, 푸리나가 죠니의 올랜도를 인정한 순간이었다.

그레이/알리에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분실하지 마십시오.”

“알리에나, 너무 현실적이야.”

“종이는 잃어버리기 쉽습니다.”

“그건 맞아.”

객석의 라이자는 그 장면을 보며 미소 지었다.

“푸리나는 정말 즐거워 보이네.”

은인이 물었다.

“연애 장면입니까?”

라이자는 잠시 생각했다.

“극 안에서는 그렇지. 하지만 극 밖에서는 조금 달라.”

“어떻게 다릅니까?”

“푸리나는 좋은 재료를 만난 연금술사처럼 기뻐하는 거야. 죠니가 올랜도를 정말 살아 있게 만들었으니까.”

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저 종이는 촉매입니까?”

“응! 아주 부끄러운 촉매.”

라이자는 만족스럽게 말했다.

무대 반대편에서 죠니/올랜도가 등장했다.

관객들이 조용해졌다.

이제 원작의 장난스러운 핵심 장면이 시작될 차례였다.

남장한 로잘린드, 가니메드가 올랜도를 만난다.

올랜도는 눈앞의 소년이 로잘린드인 줄 모른다.

그리고 가니메드는 그에게 제안한다.

자신이 로잘린드인 척해줄 테니, 사랑을 연습해보라고.

푸리나/가니메드는 자세를 바꾸었다.

방금까지 사랑시를 보고 웃던 로잘린드의 흔적이 뒤로 물러났다.

무대 위에는 숲속의 소년 가니메드가 섰다.

짓궂고, 영리하고, 조금 위험할 만큼 자유로운 얼굴.

죠니/올랜도는 가니메드를 보고 멈췄다.

“너희도 길을 잃었나?”

푸리나/가니메드는 웃었다.

“그렇다고 해야 할지, 길이 우리를 새로 쓰고 있다고 해야 할지.”

죠니/올랜도는 잠깐 그를 보았다.

“말이 복잡하네.”

“숲에서는 단순한 말이 비싸거든.”

“그럼 가난한 나는 못 사겠군.”

푸리나/가니메드는 손에 든 종이를 살짝 흔들었다.

“가난하다기엔 사랑시를 꽤 많이 뿌리고 다니던데?”

죠니/올랜도는 굳었다.

객석에서 웃음이 일어났다.

아카식은 기뻐서 거의 의자에서 미끄러질 뻔했다.

알토가 그를 잡았다.

“조심하십시오.”

“이 장면 너무 좋아.”

“예. 그래서 조심하십시오.”

죠니/올랜도는 낮게 말했다.

“그걸 봤나?”

푸리나/가니메드는 일부러 두 번째 종이를 펼쳤다.

“특히 이 부분. ‘내가 이런 걸 쓰는 사람이라는 건 나도 몰랐다. 그러니까, 네가 책임져라.’”

객석이 웃음으로 흔들렸다.

죠니/올랜도는 한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건 나무한테 맡긴 건데.”

“나무가 나한테 보여줬어.”

“나무가 아주 입이 가볍군.”

“숲은 원래 소문이 빨라.”

하융/터치스톤이 끼어들었다.

“나무는 움직이지 못하오. 그러니 말이라도 많이 해야 공평하지.”

그레이/알리에나는 조용히 말했다.

“나무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대는 숲의 가능성을 너무 좁게 보오.”

“현실적으로 본 것입니다.”

“그렇소. 그래서 광대가 필요한 것이오.”

죠니/올랜도는 푸리나/가니메드를 보았다.

“그래서, 너는 누구지?”

푸리나/가니메드는 과장되게 인사했다.

“나는 가니메드. 숲의 충실한 주민이자, 지나가는 사랑병 환자를 치료하는 자칭 명의.”

“사랑병?”

“응. 네 증상은 꽤 심각해.”

“네가 뭘 아는데?”

푸리나/가니메드는 손가락을 하나 들었다.

“첫째, 나무에 시를 붙인다.”

“그건 인정.”

“둘째, 그 시를 읽은 사람이 부끄러워할 거라는 생각을 못 한다.”

“그건 못 했네.”

“셋째,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는 제대로 말 못 하고, 나무 앞에서는 말한다.”

죠니/올랜도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그건 좀 아프군.”

푸리나/가니메드는 씩 웃었다.

“명의의 진단은 원래 아픈 법이야.”

민다우가스가 객석에서 말했다.

“정확한 공격이다.”

아스테르다스가 웃었다.

“사랑 장면이야, 대공.”

“그래서 방심하면 안 된다. 지금 저 소년은 적의 약점을 정확히 찔렀다.”

“가니메드가 들으면 기뻐할 해석이네.”

“좋은 심문이다.”

“심문도 아니야.”

“상대의 진의를 끌어내고 있다.”

아스테르다스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무대 위에서 푸리나/가니메드는 한 걸음 다가갔다.

“내가 도와줄게.”

죠니/올랜도는 경계했다.

“뭘?”

“네 사랑병.”

“불길한데.”

“간단해.”

푸리나/가니메드는 자기 가슴을 가볍게 쳤다.

“내가 로잘린드인 척해줄게.”

죠니/올랜도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뭐?”

“나를 로잘린드라고 생각하고 사랑을 연습해.”

죠니/올랜도는 가니메드를 한참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건 꽤 못된 장난이네.”

푸리나/가니메드는 눈을 가늘게 떴다.

“겁나?”

“아니.”

죠니/올랜도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그냥,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는 이미 많이 우스운 꼴이라서.”

푸리나/가니메드는 잠시 멈췄다.

죠니/올랜도는 말을 이었다.

“그래도 해볼게. 어차피 나무한테도 말했는데, 이제 와서 사람한테 못 할 건 없겠지.”

그 말에 웃음이 작게 번졌다가, 곧 잦아들었다.

그것은 올랜도의 진심이었다.

동시에 죠니가 배우로서 배역을 받아들이는 방식이었다.

화려하게 사랑을 연기하지 않는다.

그는 부끄러움을 숨기지 않고, 그 부끄러움째로 무대 위에 올려놓는다.

푸리나/가니메드가 잠시 흔들린 것은 그 때문이었다.

연애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원했던 것을 보았다.

배역이 사람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배역을 자기 방식으로 살아내는 순간.

가니메드는 다시 웃었다.

“좋아. 그럼 오늘부터 나는 로잘린드야.”

죠니/올랜도가 말했다.

“너 이름이 가니메드라며.”

“연습이니까.”

“연습치고는 위험한데.”

“사랑도 위험하잖아.”

“그 말도 수상해.”

“자, 시작.”

푸리나/가니메드는 손을 내밀었다.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봐.”

죠니/올랜도는 바로 말하지 않았다.

객석이 조용해졌다.

원작이라면 희극적 장난으로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 무대에서는 조금 달랐다.

가니메드는 로잘린드가 아니면서 로잘린드였다.
올랜도는 그것을 모르면서도 자기 마음을 말해야 했다.

죠니/올랜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나는 로잘린드를 사랑한다.”

푸리나/가니메드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얼마나?”

죠니/올랜도는 생각했다.

“그걸 말로 재면 거짓말 같아져.”

“시도 써놓고?”

“그래서 부끄러운 거야.”

객석에서 웃음.

죠니/올랜도는 계속 말했다.

“내가 아는 건 별로 없어. 그 사람이 나를 봤고, 나는 그걸 잊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여기까지 왔어.”

그는 가니메드를 보았다.

“그게 사랑이면, 아마 그렇겠지.”

푸리나/가니메드는 그 대사를 받았다.

이번에는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가니메드답게, 조금 짓궂고 조금 다정하게 웃었다.

“흠. 증상은 심각하네.”

죠니/올랜도가 말했다.

“치료 가능해?”

“가능하지!”

“믿음이 안 가는데.”

“환자는 의사를 믿어야 해.”

“자칭 명의라며.”

“자칭이든 아니든, 네 병을 알아본 건 나잖아?”

죠니/올랜도는 잠시 생각했다.

“그건 그렇네.”

가니메드는 손가락으로 자기 가슴을 가리켰다.

“내일부터 매일 나를 찾아와. 나를 로잘린드라고 생각하고 네 사랑을 연습해. 내가 그 사랑병을 아주 훌륭하게 고쳐줄게.”

“고치면 어떻게 되지?”

“네가 더 이상 로잘린드를 사랑하지 않게 되겠지!”

죠니/올랜도는 즉시 말했다.

“그건 안 좋은 치료 같은데.”

객석에서 웃음이 크게 터졌다.

하융/터치스톤이 끼어들었다.

“사랑병의 명의란 대개 환자를 낫게 하지 않소. 다만 환자가 자신이 얼마나 아픈지 말하게 만들 뿐이지.”

그레이/알리에나가 말했다.

“그건 의학적으로 부적절합니다.”

“그러니 숲의 의학이오.”

“그런 의학은 없습니다.”

“오늘 생겼소.”

아레가 객석에서 작게 말했다.

“좋은 광대구나.”

타마르는 웃었다.

“그의 농담은 침묵을 찌르면서도 피를 많이 내지 않는군요.”

아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서 무대 위에 둘 수 있는 칼이란다.”

죠니/올랜도는 푸리나/가니메드를 보았다.

“좋아. 내일 오지.”

가니메드가 눈을 반짝였다.

“정말?”

“응.”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도망칠 생각은 없어. 배역이든 병이든, 중간에 던지는 건 별로니까.”

푸리나/가니메드는 웃었다.

그것은 로잘린드가 기뻐하는 웃음이면서, 가니메드가 장난감을 얻은 웃음이었다.

그리고 연출가 푸리나가 무대가 제대로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확인한 웃음이었다.

“그럼 기다릴게, 올랜도.”

죠니/올랜도는 고개를 끄덕이고 물러났다.

그가 나무 사이로 사라지자, 숲의 빛은 조금 더 깊어졌다.

그레이/알리에나가 다가왔다.

“괜찮습니까?”

푸리나/가니메드는 장난스럽게 말했다.

“당연하지.”

그레이는 낮게 말했다.

“가니메드가 아니라 로잘린드에게 물었습니다.”

푸리나/가니메드는 멈췄다.

그리고 천천히 웃었다.

“실리아는 그런 걸 꼭 보네.”

“지금은 알리에나입니다.”

“그럼 알리에나도 그런 걸 보는구나.”

“……같이 도망친 사람이니까요.”

그 대사는 작았다.

하지만 관객 중 몇몇은 들었다.

라이자가 은꽃을 꼭 쥐었다.

아스테르다스가 작게 말했다.

“동행이라는 건 좋네.”

민다우가스는 무표정하게 답했다.

“동행자는 작전 실패율을 낮춘다.”

“그런 말로도 충분히 좋게 들리는 게 신기해.”

“사실이다.”

“그게 좋은 거야.”

무대 위에서 하융/터치스톤은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숲은 참 기이하오. 가면을 쓰고 나서야 서로의 맨얼굴을 묻는군.”

그레이/알리에나가 물었다.

“그것도 농담입니까?”

“아니오.”

하융/터치스톤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길을 잃은 진실이오.”

그때 숲 가장 깊은 곳에서 새로운 조명이 켜졌다.

낮고 검은 빛.

레이튼/제이크스가 등장했다.

그는 검은 외투를 입고 있었다.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대 위에 들어오는 순간, 숲의 공기가 조용해졌다.

제이크스는 숲의 현자도, 왕도 아니었다.

그는 관찰자였다.

다만 단순한 관객은 아니었다.

그는 무대 위에 서서, 무대 전체를 질문으로 바꾸는 사람이었다.

레이튼/제이크스는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나뭇잎 그림자가 그의 얼굴 위를 지나갔다.

그는 가니메드, 알리에나, 터치스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짧게 객석을 보았다.

그 시선은 허용된 연출이었다.

관객들이 숨을 죽였다.

레이튼/제이크스가 말했다.

“온 세상이 무대라면.”

그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우리는 모두 배우일까요?”

한 박자.

“아니면 누군가의 대본을 자기 삶이라 착각한 사람들일까요?”

극장이 조용해졌다.

알토가 아주 작게 숨을 멈췄다.

아카식은 이번에는 기록하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니케아의 요안나는 눈을 크게 떴고, 미하일라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슈샤니크는 펜을 멈췄다.

민다우가스는 말없이 무대를 보았다.

아스테르다스는 그 옆에서 천천히 웃었다.

“좋은 질문이네.”

민다우가스가 말했다.

“위험한 질문이다.”

“그래서 좋은 거야.”

레이튼/제이크스는 말을 이었다.

“궁정에서는 배역이 먼저 오고, 사람은 그 뒤에 놓입니다.”

그는 손가락을 하나씩 접었다.

“딸.
아들.
추방자.
상속받지 못한 자.
광대.
충신.
반역자의 피.”

그는 푸리나/가니메드를 보았다.

“그러나 숲은 이상합니다.”

그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떠올랐다.

“이곳에서는 사람이 배역을 입어보고, 그 배역이 자기에게 맞는지 묻습니다.”

하융/터치스톤이 물었다.

“맞지 않으면?”

레이튼/제이크스가 답했다.

“그렇다면 다시 묻는 수밖에요.”

“답은 없소?”

“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너무 빨리 붙이면, 사람은 다시 궁정으로 돌아가 버리지요.”

하융/터치스톤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숲이오. 길을 잃은 자에게 답을 늦게 주는군.”

레이튼/제이크스는 객석을 향해 아주 살짝 고개를 돌렸다.

“어쩌면 길을 잃는다는 것은, 너무 빨리 주어진 답에서 잠시 벗어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슈샤니크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녀는 팸플릿 가장자리에 적으려던 문장을 멈췄다.

너무 빨리 주어진 답.

파흘라부니.
노예 관료.
니케아의 재상.
아르메니아로 돌아가야 할 자.

그녀는 펜을 내려놓았다.

요안나가 작게 물었다.

“재상?”

슈샤니크는 잠시 후 대답했다.

“좋은 숲입니다.”

요안나는 웃었다.

“정말요?”

“판단을 잠시 미루게 하니까요.”

미하일라가 덧붙였다.

“그러나 너무 오래 미루면 제국이 무너진다.”

요안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니케아 사람들은 숲을 봐도 회의를 하네요.”

미하일라는 부정하지 않았다.

슈샤니크도 부정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레이튼/제이크스는 독백을 이어갔다.

“아이는 울며 들어옵니다.
젊은이는 자신이 고른 적 없는 옷을 입고 달립니다.
사랑하는 이는 자기 마음을 나무에 붙이고도 부끄러워합니다.
병사는 두려워하지 않는 척합니다.
재판관은 남의 삶에 이름을 붙입니다.
노인은 자신에게 붙은 이름들이 하나씩 헐거워지는 것을 봅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

조명이 낮아졌다.

“그리고 마지막에 사람은 묻습니다.”

침묵.

“그 많은 배역 중, 어느 순간이 진짜 나였는가.”

레이튼/제이크스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저는 아직 답하지 않겠습니다.
이곳은 숲이니까요.”

그가 물러섰다.

박수가 나왔다.

크지 않았다.

하지만 깊었다.

푸리나/가니메드는 그 박수를 들으며 생각했다.

숲이 열렸다.

가면을 쓴 사람들은 아직 진실에 도달하지 않았다.

올랜도는 아직 자신이 누구를 사랑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고, 로잘린드는 다른 얼굴 뒤에서 자기 마음을 시험하고, 실리아는 알리에나가 되어도 여전히 곁에 남는 법을 먼저 생각한다.

터치스톤은 농담으로 진실을 비틀고, 제이크스는 답을 늦춘다.

그래도 충분했다.

궁정의 조명 아래에서는 할 수 없었던 질문이, 이제 숲에서 시작되었으니까.

하융/터치스톤이 옆에서 낮게 말했다.

“가니메드.”

“응?”

“그 종이는 비상용 빵보다 오래 갈 것 같소?”

푸리나/가니메드는 품 안의 종이를 눌렀다.

그리고 웃었다.

“아마.”

그레이/알리에나는 바로 말했다.

“비상용 빵도 필요합니다.”

푸리나/가니메드는 양손을 들었다.

“알아, 알아. 숲의 철학도 배고픔을 이기진 못하지.”

하융/터치스톤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의 교훈이오.”

레이튼/제이크스가 멀리서 부드럽게 말했다.

“훌륭한 결론입니다. 다만 아직 마지막 답은 아니지요.”

그레이/알리에나는 한숨처럼 말했다.

“제발 답을 식사 후에 찾으십시오.”

객석에서 웃음과 박수가 함께 번졌다.

숲의 빛은 그 웃음을 받아 흔들렸다.

가면을 벗기지는 않았다.

다만, 그 가면 아래의 얼굴들이 조금 더 편하게 숨 쉬도록 조명을 낮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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