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35여관◆zAR16hM8he(7ce028f3)2026-05-11 (월) 00:20:01
엽편 — 오즈의 마법사: 노란 길 위의 군주들

1편. 회오리가 무대를 들어 올리다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밤은 유난히 밝았다.

성벽 위에는 등불이 걸렸고, 항구 쪽에서는 구운 빵 냄새와 향신료 냄새가 바람을 타고 올라왔다. 전쟁의 시대였다. 성 밖의 길에는 여전히 피난민의 수레 자국이 남아 있었고, 먼 동쪽에서는 몽골의 말발굽 소식이 끊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왕궁 앞 광장에는 천으로 만든 휘장이 걸리고, 나무로 만든 임시 무대가 세워졌다.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러나 푸리나 헤툼은 그것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극장처럼 꾸몄다.

기둥에는 노란 천이 감겼고, 바닥에는 금빛 벽돌 모양으로 칠한 널빤지가 줄지어 놓였다. 무대 한가운데에는 작은 집 모형이 있었다. 집은 일부러 살짝 삐뚤게 만들어져 있었고, 그 위에는 “평범한 집”이라고 적힌 작은 팻말이 붙어 있었다.

그레이는 팻말을 오래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폐하. 평범한 집이라고 굳이 적으면, 오히려 평범해 보이지 않습니다.”

푸리나는 무대 위에서 빙글 돌았다. 하얀 앞치마와 푸른 치마. 머리에는 리본. 평소의 왕관도, 극장주의 장식도 없었다. 그녀는 오늘 밤 도로시였다.

“그레이, 그게 바로 연극이야.”

“……그렇습니까?”

“응! 평범한 집이라고 써야 사람들이 ‘아, 평범한 집이구나!’ 하고 안심하지!”

죠니 죠스타는 무대 아래에서 팔짱을 낀 채 그 말을 들었다. 그의 손에는 사자 갈기가 들려 있었다. 아직 쓰지 않았다. 절대로 쓰기 싫다는 얼굴이었다.

“그걸 안심이라고 부르나?”

“죠니, 그 갈기 아직도 안 썼어?”

“전투에도, 기병 지휘에도, 식사에도 방해돼.”

“오늘은 전투가 아니라 공연이야.”

“그래서 더 이상하다고.”

레이튼은 허수아비 복장을 입고 있었다. 낡은 모자, 헐렁한 옷, 팔 소매에서 삐져나온 짚. 그런데 그 모습으로도 이상하게 품위가 있었다. 그는 한 손에 찻잔을 들고, 다른 손으로 자기 소매에 꽂힌 짚을 정리했다.

“죠니 경, 그래도 배역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한 문제입니다. 질문은 이렇게 시작할 수 있겠지요. 사자란 무엇인가? 그리고 사자가 사자답다는 것은 갈기의 유무에 달려 있는가?”

죠니가 그를 보았다.

“그 질문, 지금 꼭 필요해?”

“필요하지 않을 때 묻는 질문이 때로 가장 흥미롭습니다.”

“아니, 그냥 귀찮은 거야.”

그레이는 양철 나무꾼의 복장을 입고 있었다. 정확히는 은색으로 칠한 앞치마와 팔 보호대였다. 라이자가 직접 만든 것이었다. 너무 정교해서 문제였다. 관절부가 실제 갑옷처럼 움직였고, 표면에는 작게 성은의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그레이는 그것을 입은 채로 장부를 들고 있었다.

푸리나가 그녀를 보자마자 외쳤다.

“그레이! 장부 금지!”

그레이가 작게 움찔했다.

“하지만 무대 설치비와 소품 재료비를 확인해야 해서…….”

“오늘은 심장 없는 양철 나무꾼이잖아!”

“그 배역이라면 오히려 장부를 들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상해! 아니, 조금 어울려서 더 이상해!”

하융은 무대 뒤편, 노란 길의 끝에 세워진 회색 창틀 옆에 서 있었다. 그는 배우인지 무대장치 담당인지 모를 모습이었다. 동방식 창호가 여러 겹으로 접힌 유리 상자. 그 창들에는 아직 아무것도 비치지 않았다. 다만 등불빛이 닿을 때마다 회색으로 반짝이며, 없는 풍경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푸리나가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하융! 준비됐어?”

하융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창은 닫혀 있소. 그러나 길이 열리면, 비껴간 풍경도 따라 열릴 것이오.”

죠니가 중얼거렸다.

“여전히 반쯤도 못 알아듣겠네.”

레이튼이 미소 지었다.

“그래도 뜻은 알 것 같군요. 공연이 시작되면 하융 공의 배역도 함께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면 되잖아.”

그때, 광장 바깥쪽에서 작은 소란이 일었다.

오늘 밤 공연에는 킬리키아의 사람들만 온 것이 아니었다. 각국의 군주와 가신들, 성좌의 대리자와 제국의 관료들, 북방의 대공과 남방의 여왕들까지 초대되어 있었다.

리투아니아의 민다우가스는 무대 가장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있었다. 그는 공연장 배치와 출입구, 관객 동선, 비상 시 퇴로를 이미 세 번 확인했다. 얼굴은 공연을 보러 온 사람이 아니라, 성채를 점검하는 사람에 가까웠다.

그 곁에는 아스테르다스가 있었다. 그는 민다우가스보다 조금 더 무대 쪽을 보고 있었다. 노란 길 위에 놓인 금빛 널빤지들이 등불에 반짝이는 것을 가만히 바라보며, 아주 작게 웃고 있었다.

세르비아의 아레 마가트로이드는 어둠 가까운 자리에 섰다. 그녀는 아직 배역 복장을 입지 않았다. 다만 손끝에 보이지 않는 실이 가늘게 드리워져 있었다. 무대 위에 오르기 전부터 그녀는 이미 무대 아래의 침묵을 듣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니케아의 미하일라 두케나 안겔리나 콤니니 팔레올로기나는 자주빛 망토를 두른 채 앉아 있었다. 그녀가 맡을 배역은 에메랄드 성의 문지기였다. 그러나 그녀의 태도는 이미 실제 성문을 지키는 황제의 그것이었다.

요안나 4세는 그 옆에서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그녀는 이 공연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게오르기아 아크로폴리티사는 교사답게 대본을 마지막까지 읽고 있었고, 아스테리아 오르노비치는 무대의 길이 실제 갈림길처럼 짜였는지 흥미롭게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슈샤니크 파흘라부니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서쪽 마녀의 초록빛 망토가 놓여 있었다. 아직 입지 않았다. 그녀는 그 천을 손끝으로 만지지도 않은 채, 무대 한가운데의 작은 집을 보고 있었다.

작은 집.

돌아갈 곳.

그녀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하지만 푸리나는 그녀를 보았다.

보고도 모르는 척했다.

오늘 밤은 공연이었다. 그러나 푸리나는 알고 있었다. 좋은 공연은 때로, 배우가 숨기고 싶었던 것을 무대 위에 올린다.

“자!”

푸리나는 무대 중앙으로 뛰어올랐다.

광장의 소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피난민 아이들, 병사들, 상인들, 사제들, 각국의 사절과 군주들이 모두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양팔을 활짝 펼쳤다.

“신사 숙녀 여러분! 그리고 군주 여러분! 성좌 여러분! 오늘 밤 킬리키아 아르메니아 왕립 임시 야외극장에서는 아주 특별한 공연을 시작합니다!”

죠니가 작게 말했다.

“임시라는 말은 안 붙이는 게 낫지 않나?”

그레이가 속삭였다.

“실제로 임시입니다.”

푸리나는 못 들은 척했다.

“오늘의 이야기는 길 잃은 소녀와, 말을 하는 강아지와, 지혜 없는 허수아비와, 심장 없는 양철 나무꾼과, 겁 많은 사자가 함께 노란 길을 걷는 이야기!”

레이튼이 고개를 숙였다.

그레이는 장부를 등 뒤로 숨겼다.

죠니는 아직도 갈기를 쓰지 않았다.

푸리나는 더 크게 웃었다.

“그리고 그 길 끝에서 모두가 깨닫게 되는 이야기!”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우리가 찾으러 떠나는 것들 중 많은 것은, 어쩌면 처음부터 우리 안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그 순간, 무대 아래에 있던 아카식이 손을 들었다.

그는 오늘 토토 역이었다.

토토 역치고는 지나치게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고, 지나치게 태연했다. 목에는 작은 개 목걸이처럼 보이는 리본이 걸려 있었다. 누가 봐도 본인이 즐기고 있었다.

“질문.”

푸리나가 활짝 웃었다.

“토토는 질문하면 안 됩니다!”

아카식이 고개를 기울였다.

“토토가 질문하지 않는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어.”

알토가 객석에서 낮게 말했다.

“대본에는 없습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그럼 새로운 기록이네.”

푸리나는 잠시 그를 노려보다가, 곧 손뼉을 쳤다.

“좋아! 토토도 말할 수 있는 버전으로 간다!”

그레이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대본 수정 사항을 기록해야겠습니다.”

“그레이!”

“……기록하지 않겠습니다.”

알토는 무표정하게 그 장면을 바라보았다. 아직 오즈의 마법사 복장은 입지 않았다. 그는 장막 뒤에 서야 할 사람이었다. 그의 시선은 무대보다, 무대에서 만들어지는 사건의 흐름을 보고 있었다.

아카식은 그런 알토를 보며 작게 웃었다.

“좋은 이야기 될 것 같지?”

알토는 짧게 답했다.

“혼란스러운 이야기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좋은 이야기지.”

푸리나는 무대 뒤쪽의 작은 집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안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준비됐어?”

무대 밖에서 누군가 대답했다.

“바람 장치 준비됐습니다!”

“번개 천 준비됐습니다!”

“말발굽 소리 준비됐습니다!”

“말발굽 소리?”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레이튼도 찻잔을 내려놓았다.

하융은 창틀 쪽을 돌아보았다.

민다우가스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대의 등불이 흔들렸다.

처음에는 연출이라고 생각했다.

천으로 만든 구름이 무대 위에서 돌아가고, 배우들이 회색 천을 흔들며 바람을 만들었다. 북소리가 울렸다. 아이들이 즐거워했다. 푸리나의 작은 집이 삐걱거리며 돌기 시작했다.

그런데 다음 순간, 북소리 사이로 다른 소리가 섞였다.

낮고 빠른 박자.

멀리서 달려오는 것 같은, 그러나 무대 아래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소리.

말발굽.

관객석 일부가 조용해졌다.

그 소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몽골의 말발굽 소식은 이 시대의 모든 왕궁과 여관과 성문을 지나갔다. 그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항복하거나 죽으라는 세계의 명령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소리를 실제로 들은 적은 없었지만, 너무 많이 전해 들어서 이미 몸이 먼저 알았다.

푸리나의 작은 집이 더 세게 흔들렸다.

무대 위의 천들이 바람이 아닌 무언가에 빨려 들어가듯 돌았다. 노란 길 위의 금빛 널빤지가 하나씩 떠올랐다가 제자리에 떨어졌다.

그레이가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폐하?”

레이튼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이건 연출이 아닌 듯합니다.”

죠니가 사자 갈기를 한 손에 든 채 낮게 말했다.

“그럼 이제야 좀 공연 같아졌네.”

민다우가스는 일어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타마르 여왕이 웃었다.

조지아의 죽은 여왕, 황혼의 농원을 품은 왕. 그녀는 아직 글린다의 흰 의상을 입지 않았지만, 그 주변에는 이미 황혼빛이 가볍게 내려앉아 있었다.

“괜찮답니다.”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이건 침공이 아니에요. 아직은.”

라이자도 은구두 상자를 안고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타마르는 무대를 보았다.

“무대가 조금 깊어졌을 뿐이지요.”

아카식이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눈을 빛냈다.

“아, 이건 예상보다 재미있겠는데.”

알토가 그를 보았다.

“개입했습니까?”

“조금?”

“얼마나.”

“재미있을 만큼.”

알토의 눈매가 아주 조금 낮아졌다.

“기록하겠습니다.”

“너무 딱딱하게 굴지 마, 알토. 이건 계약 위반이 아니라 공연이야.”

“공연 중 무대 현실화는 사전 고지 대상입니다.”

아카식은 웃기만 했다.

그 사이, 푸리나의 작은 집이 무대 위에서 완전히 떠올랐다.

광장 위의 등불들이 일제히 흔들렸다. 천들이 하늘로 말려 올라가고, 노란 길이 한 줄기 빛처럼 길게 뻗었다. 무대가 광장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광장 위에 다른 공간이 겹쳤다.

킬리키아의 밤하늘 아래, 이름 모를 초원의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 끝에는 먼 전쟁의 냄새가 있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빵 굽는 냄새도 있었다.
등불의 기름 냄새도, 아이들의 숨소리도, 배우들이 입은 의상의 천 냄새도 있었다.

현실과 연극이 겹쳤다.

푸리나의 [여관:극장]이, 오늘 밤의 이야기를 진짜 길로 바꾸고 있었다.

작은 집이 떨어졌다.

쿵.

무대가 흔들렸다.

먼지가 일었다.

그리고 조용해졌다.

푸리나가 집 문을 열고 조심스럽게 나왔다.

그녀는 잠시 주변을 보았다.

광장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광장 위에는 알 수 없는 색의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노란 벽돌길이 멀리까지 이어졌고, 길 양옆에는 낮은 풀과 이상하게 반짝이는 꽃들이 피어 있었다.

하늘은 킬리키아의 밤이면서 동시에 오즈의 아침이었다.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말했다.

“……좋아.”

무대 아래에서 그레이가 다급하게 말했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푸리나는 천천히 웃었다.

“그레이.”

“예.”

“이거…… 생각보다 훨씬 재밌어졌어.”

죠니가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역시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

그때, 집 아래에서 검은 깃발 하나가 삐져나와 있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보고 멈췄다.

그 깃발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복종하라, 아니면 죽어라.

말발굽의 회오리가 남긴 깃발.

원작이라면 동쪽 마녀가 깔려 죽었을 자리였다.

하지만 이 무대에서 깔려 있던 것은 마녀가 아니었다.
이 세계가 강요받고 있는 하나의 지루한 결말이었다.

푸리나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무릎을 굽혀 그 깃발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관객석을 향해 활짝 웃었다.

“각하!”

누군가 외쳤다.

“그건 위험한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알아!”

푸리나는 깃발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너무 재미없잖아!”

그녀는 깃발을 두 손으로 잡았다.

“복종 아니면 죽음이라니. 선택지가 두 개뿐인 극이라니. 작가가 게을러!”

그리고 찢었다.

천이 갈라지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노란 길의 첫 번째 벽돌이 밝게 빛났다.

타마르 여왕이 천천히 무대 위로 걸어 올라왔다.

그녀는 이제 글린다의 흰 의상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그 흰빛은 단순한 선함의 색이 아니었다. 황혼이 섞인 흰색이었다. 포도나무 십자가 아래에서 죽은 자에게 길을 알려주는 여왕의 빛.

푸리나는 그녀를 보고 눈을 반짝였다.

“와. 타마르, 완전 잘 어울려.”

타마르는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웃었다.

“그대도 제법 길 잃은 아이 같답니다.”

“길 잃은 아이 역할이니까!”

“역할은 때로 사람의 안쪽을 잘 비추지요.”

푸리나는 잠시 멈칫했다.

타마르는 노란 길을 가리켰다.

“돌아가는 길은 있답니다.”

푸리나는 바로 물었다.

“어디로 가면 돼?”

“오즈를 찾아가렴.”

“오즈?”

“에메랄드 성에 있는 위대한 마법사. 그는 그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있다고 하지요.”

아카식이 무대 위로 가볍게 올라왔다. 목의 리본이 흔들렸다.

“멍.”

푸리나가 그를 보았다.

“말하면 안 된다니까?”

아카식은 태연하게 말했다.

“토토의 해석 폭은 넓다.”

타마르는 웃음을 참는 듯했다.

푸리나는 노란 길을 한 번 보고, 다시 자기 발을 보았다.

그때 라이자가 다가왔다.

그녀는 두 손으로 은빛 구두 한 켤레를 들고 있었다.

그 구두는 지나치게 아름다웠다.

무대 소품치고는 너무 섬세했고, 장식품치고는 너무 따뜻했다. 은은 차가운 금속인데도, 그 안쪽에서 낮은 체온 같은 빛이 흘렀다. 성은으로 만든 구두였다. 그러나 무기나 성물이 아니라, 누군가의 발을 다치지 않게 감싸기 위해 만든 물건처럼 보였다.

그레이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라이자 님. 그 구두의 제작비는…….”

라이자가 시선을 피했다.

“소품이야.”

“성은으로 만든 소품입니까?”

“안전한 소품.”

“예산이 안전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푸리나는 이미 구두에 마음을 빼앗긴 뒤였다.

“와…….”

라이자는 무대 위에 무릎을 꿇고 푸리나 앞에 구두를 놓았다.

“신어.”

푸리나는 한쪽 발을 들었다.

“이거 신고 세 번 두드리면 바로 돌아가는 거야?”

라이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아니야?”

“이건 돌아가게 해주는 구두가 아니야.”

라이자는 손끝으로 구두의 은빛 표면을 살짝 쓸었다.

“네가 돌아갈 자격이 있다는 걸 잊지 않게 해주는 구두야.”

푸리나는 말없이 그녀를 보았다.

라이자는 평소처럼 따뜻하게 웃었다.

“받은 친절은 돌아가야 해. 네가 돌아가서 다시 누군가에게 흘려보내야 하니까.”

무대 위의 공기가 아주 조금 달라졌다.

푸리나는 장난스럽게 대답하려 했다.
“좋아!”라고 말하려 했다.
“그럼 오늘 목표, 집으로 돌아가기!”라고 외치려 했다.

하지만 한 박자 늦었다.

돌아갈 자격.

집.

받은 친절.

다시 흘려보내야 하는 것.

그 말들이 구두보다 먼저 그녀의 발목을 감쌌다.

푸리나는 천천히 은구두를 신었다.

잘 맞았다.

너무 잘 맞아서 조금 무서웠다.

타마르가 말했다.

“노란 길을 따라가렴. 길 끝에 답이 있어서가 아니랍니다.”

푸리나가 고개를 들었다.

타마르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길을 걷는 동안, 그대가 무엇을 집이라 부르는지 알게 될 테니까요.”

아카식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대사네. 기록 가치가 높아.”

알토가 객석에서 낮게 말했다.

“이미 대본에 있는 대사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지금부터는 대본에 있는 걸로 하자!”

그녀는 노란 길 위에 섰다.

뒤쪽에서 그레이, 레이튼, 죠니, 하융이 각자의 배역을 입은 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은 길 위에 오르지 않았다. 이번 막은 도로시의 출발이었다.

푸리나는 관객석을 향해 돌아섰다.

그녀는 더 이상 단순히 장난치는 얼굴이 아니었다.

물론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 웃음 아래에는 조금 전 찢어버린 검은 깃발의 문장이 남아 있었다.

복종하라, 아니면 죽어라.

그 지루한 결말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얼굴이었다.

푸리나가 말했다.

“좋아!”

그 한마디에 아이들이 웃었다.

병사들도 웃었다.

죠니는 한숨을 쉬었고,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그레이는 여전히 예산을 걱정하는 얼굴이었고, 하융은 노란 길 너머 아직 열리지 않은 창들을 보고 있었다.

푸리나는 첫 번째 벽돌 위에 발을 올렸다.

은구두가 노란 길에 닿았다.

빛이 길게 이어졌다.

그녀는 말했다.

“그럼 가자, 토토!”

아카식이 따라붙었다.

“멍.”

“말하지 말랬지!”

“멍은 말이 아니야.”

“그건 억지야!”

“억지도 기록될 수 있어.”

푸리나는 웃으며 앞으로 걸었다.

노란 길이 열렸다.

그리고 광장 전체가, 관객석 전체가, 각국의 군주와 가신들이 앉아 있는 이 밤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무대가 되었다.

무대 뒤편에서 알토가 조용히 그것을 보았다.

아카식이 즐거워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 공연은 단순한 희극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누군가는 자신이 없다고 믿었던 것을 보게 될 것이고,
누군가는 돌아갈 집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 마주할 것이며,
누군가는 집이 불탔을 때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묻게 될 것이다.

그리고 푸리나 헤툼은.

도로시는.

자신이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아직 알지 못한 채 노란 길을 걷기 시작했다.

첫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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