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40여관◆zAR16hM8he(7ce028f3)2026-05-11 (월) 02:02:09
엽편 — 오즈의 마법사: 노란 길 위의 군주들

6편. 장막 뒤의 오즈와 돌아가는 구두

최종 개정판

에메랄드 성의 중앙 궁전은 가까이서 보아도 웅장했다.

오히려 너무 웅장했다.

성문은 초록빛 보석처럼 빛났고, 기둥은 하늘을 떠받드는 것처럼 높았다. 계단은 넓고 길었으며, 양옆에는 수많은 촛불과 거울이 놓여 있었다. 거울은 사람을 그대로 비추지 않았다. 허수아비의 짚을 더 초라하게, 양철 나무꾼의 은빛을 더 차갑게, 사자의 갈기를 더 우스꽝스럽게, 도로시의 은구두를 더 밝게 비추었다.

푸리나 헤툼은 계단 앞에서 잠시 멈췄다.

품 안에는 요안나가 준 지지 티켓이 있었다.

손바닥에는 슈샤니크에게 내밀었던 손의 감각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귀에는 민다우가스의 질문이 남아 있었다.

집이 불탔다면, 그래도 돌아갈 것인가?

그리고 슈샤니크의 질문도.

돌아갈 집이 아예 없어진 사람은, 어디로 돌아가야 합니까?

그 질문들을 지나, 푸리나는 여기까지 왔다.

오즈를 만나기 위해서.

위대한 마법사.

모든 소원을 들어준다는 자.

뇌를 주고, 심장을 주고, 용기를 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알려준다는 자.

죠니 죠스타가 계단 아래에서 사자 갈기를 고쳐 썼다.

“이제 와서 말하는 건데.”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응?”

“만약 저 안에 진짜 위대한 마법사가 있으면, 우리가 지금까지 한 고생은 뭐가 되는 거지?”

레이튼은 정중하게 대답했다.

“그 경우에도 여행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결론이 조금 민망해질 뿐이지요.”

죠니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게 더 싫은데.”

그레이는 장부를 품에 안고 조용히 말했다.

“진짜 마법사가 있다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일부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융은 중앙 궁전의 문을 보았다.

“마법사가 있든 없든, 저 문 뒤에는 기록된 결말이 있소.”

아카식은 토토 리본을 만지작거리며 빙긋 웃었다.

“좋아. 이제 제일 재미있는 장면이네.”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토토, 너 너무 기대하는 거 아니야?”

“토토는 원작상 중요한 일을 하니까.”

“너, 계속 원작 핑계로 하고 싶은 거 하고 있지?”

아카식은 맑게 대답했다.

“응.”

죠니가 낮게 말했다.

“솔직하긴 하네.”

그때 중앙 궁전의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안쪽은 어두웠다.

빛나는 도시의 중심인데도, 궁전 안쪽에는 빛이 많지 않았다. 촛불과 거울과 초록빛 렌즈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고, 그 끝에 거대한 장막이 있었다.

장막은 에메랄드색이었다.

두껍고, 무겁고, 지나치게 화려했다.

장막 뒤에는 거대한 그림자가 비쳤다.

머리에 관을 쓰고, 손에는 지팡이를 들었으며, 등 뒤에는 별과 책과 날개가 한꺼번에 펼쳐진 듯한 그림자.

그 그림자가 움직였다.

궁전 전체에 목소리가 울렸다.

“누가 나를 찾는가?”

목소리는 천둥 같았다.

연기와 메아리와 여러 겹의 기록된 음성이 합쳐진 소리였다. 한 사람의 목소리라기보다, 수많은 서기관이 같은 문장을 동시에 읽는 것처럼 들렸다.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죠니는 장대를 잡았다.

그레이는 장부를 조금 더 단단히 안았다.

레이튼은 눈을 가늘게 떴다.

하융은 창 하나를 열었다가, 안쪽이 너무 많은 가능성으로 흐려지자 곧 닫았다.

아카식은 웃음을 참는 얼굴이었다.

장막 뒤의 그림자가 말했다.

“허수아비여.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레이튼이 앞으로 나섰다.

“뇌를 원합니다.”

“양철 나무꾼이여.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레이가 작게 대답했다.

“심장을 원합니다.”

“사자여.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죠니가 한숨을 쉬었다.

“용기라더군.”

“도로시여. 당신은 무엇을 원하는가?”

푸리나는 은구두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대답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궁전이 조용해졌다.

장막 뒤의 거대한 그림자가 지팡이를 들었다.

“그렇다면 증명하십시오.”

초록빛 렌즈들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기둥 위의 거울들이 빛을 모았다.

허수아비의 그림자 뒤에는 거대한 책장이 떠올랐다.
양철 나무꾼의 그림자 뒤에는 심장 모양의 보석이 떠올랐다.
사자의 그림자 뒤에는 황금 훈장이 떠올랐다.
도로시의 그림자 뒤에는 닫힌 문 하나가 떠올랐다.

위대한 마법사는 말했다.

“지혜는 증명되어야 합니다. 마음은 검증되어야 합니다. 용기는 판정되어야 합니다. 귀환은 허가되어야 합니다.”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뭔가 엄청 행정적이네.”

그레이가 작게 말했다.

“오히려 익숙합니다.”

죠니가 낮게 중얼거렸다.

“나만 안 익숙한가?”

레이튼은 장막을 보았다.

“흥미롭군요.”

“뭐가?”

“위대한 마법사치고는 너무 절차를 중시합니다.”

아카식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작게 웃었다.

그 웃음소리가 궁전에 울렸다.

장막 뒤의 그림자가 멈췄다.

“토토.”

푸리나가 말했다.

“응?”

아카식은 푸리나의 옆을 지나 앞으로 걸어갔다.

“이제 내 차례지?”

“토토?”

“응. 토토.”

아카식은 에메랄드 장막 앞에 섰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장막 끝을 잡았다.

“원작 존중.”

“잠깐, 진짜 걷는 거야?”

“응.”

푸리나가 말릴 틈도 없이, 아카식은 장막을 확 잡아당겼다.

촤르륵.

장막이 내려갔다.

거대한 그림자는 사라졌다.

연기 장치가 멈췄다.

거울들이 엉뚱한 방향으로 빛을 흩뿌렸고, 렌즈 몇 개가 딸깍딸깍 소리를 내며 멈춰 섰다.

그리고 장막 뒤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알토.

폴란드 대공.

『허공록』의 대리자.

기록교단의 총수.

그리고 지금 이 극에서는, 오즈의 마법사.

그는 한 손에 두꺼운 책을 들고 있었다. 책의 표지는 비어 있었지만, 그 안쪽에서는 무수한 문장이 빛났다. 그의 곁에는 연기 장치와 음성 증폭용 관, 거울을 조정하는 레버와 초록 렌즈들이 놓여 있었다.

알토는 잠시 아카식을 보았다.

아카식은 장막을 손에 든 채 웃었다.

알토가 말했다.

“장막 훼손.”

아카식이 대답했다.

“좋은 장면이잖아.”

“기록하겠습니다.”

“이미 좋은 기록이지?”

알토는 아주 짧게 침묵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죠니가 얼굴을 손으로 덮었다.

“역시 사기였나?”

알토는 그를 보았다.

“사기라는 표현은 부정확합니다. 극적 장치입니다.”

푸리나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오즈가 알토였어?”

“배역상 그렇습니다.”

“진짜 마법사는 아니고?”

알토는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위대한 마법사가 아닙니다.”

그 말은 궁전에 조용히 떨어졌다.

그리고 이상하게, 거짓이 아니어서 더 무겁게 들렸다.

알토는 책을 펼쳤다.

“다만 기록과 절차상, 당신들이 이미 가지고 있던 것을 확인해드릴 수는 있습니다.”

레이튼이 미소 지었다.

“역시 그렇군요.”

죠니가 말했다.

“잠깐. 그럼 우리는 여기까지 그냥 확인서 받으러 온 거야?”

알토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체로 그렇습니다.”

“기분 나쁘게 정확하네.”

아카식은 옆에서 즐겁게 말했다.

“하지만 확인서는 중요해. 사람은 가끔 자기가 이미 가진 것도 누가 말해줘야 믿거든.”

그 말에 그레이가 살짝 시선을 내렸다.

알토는 『허공록』 위에 손을 얹었다.

그의 주변에 조용한 빛이 내려앉았다.

《허공 작성》.

그것은 환상이 아니었다.

알토가 기록한 것은 무대 위에 임시로 비친 그림자가 아니라, 조건을 갖춘 기록을 현실에 작성하는 힘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무엇이든 꺼내는 것이 아니었다. 이미 걸어온 길, 이미 선택한 말, 이미 견딘 고통, 이미 증명된 행동이 있어야 했다.

오즈의 마법은 주는 것이 아니었다.

확인하고, 이름 붙이고, 현실에 작성하는 것이었다.

알토가 말했다.

“허수아비 레이튼.”

레이튼은 앞으로 나왔다.

알토는 책 위에 펜을 움직였다.

《허공 작성 - 요람》.

공중에 얇은 종이 다발이 생겼다.

졸업장이 아니었다.

왕실 인장도 아니었다.

그것은 빈 질문지였다.

끝까지 비어 있는 질문지.

첫 장에는 한 문장만 적혀 있었다.

지혜란, 답을 닫는 권리가 아니라 질문을 살려두는 책임이다.

알토는 그것을 레이튼에게 건넸다.

“당신은 뇌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레이튼이 받았다.

알토는 말했다.

“하지만 당신은 이미 생각하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뇌가 아니라, 질문을 멈추지 않을 책임의 확인입니다.”

레이튼은 종이를 조심스럽게 넘겼다.

빈 페이지들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종이 위로,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이 아주 희미하게 떠올랐다. 레이튼의 [여관:문답의 서재] 천장에 그려져 있던, 아직 선으로 이어지지 않은 별들이었다.

푸리나의 여정도, 이 극의 결론도, 누군가가 너무 빨리 붙여버릴 정답이 아니었다.

레이튼은 아주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훌륭한 선물입니다. 채워야 할 답이 아니라, 계속 살아 있어야 할 질문이라니.”

죠니가 중얼거렸다.

“저게 선물인가?”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제게는 그렇습니다.”

알토는 이번에는 그레이를 보았다.

“양철 나무꾼 그레이.”

그레이는 앞으로 나왔다.

그녀는 장부를 품에 안고 있었지만, 손끝이 조금 떨렸다.

알토는 『허공록』을 넘겼다.

책장 사이에서 작은 장부 하나가 떠올랐다.

표지는 은색이었다.

심장 모양 장식은 없었다.

대신 표지 안쪽에는 수많은 이름이 아주 작게 새겨져 있었다.

알토가 말했다.

“당신은 심장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예.”

“하지만 심장이 없었다면, 당신은 이 이름들을 끝까지 적지 않았을 겁니다.”

그레이는 장부를 받았다.

첫 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름. 사유. 책임. 보상. 보호 주소. 재발 방지.

그 아래에는 작은 문장이 있었다.

울어도 장부는 닫히지 않는다.
그러나 울지 않는 장부는 사람을 잃는다.

그레이의 눈이 흔들렸다.

알토는 말했다.

“기록은 사람을 묶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낮고 정중했다.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레이는 장부를 품에 안았다.

그 안쪽에서 [여관:기억이 잠드는 거리]의 문패들이 하나둘 켜졌다. 이름 옆에는 사유와 책임, 보호 주소와 재발 방지 항목이 함께 적혔다.

같은 이유로 다시 죽지 않도록.

그레이는 울지 않았다.

하지만 양철 나무꾼의 은빛 옷 아래에서, 분명히 무언가가 뛰고 있었다.

알토는 죠니를 보았다.

“사자 죠니.”

죠니가 앞으로 나왔다.

“이거 진짜 훈장 같은 거 주는 건 아니지?”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비슷합니다.”

“젠장.”

아카식이 웃었다.

알토는 책 위에 손을 얹었다.

공중에 훈장 하나가 생겼다.

하지만 그것은 금빛으로 번쩍이는 용맹 훈장이 아니었다. 낡은 철조각처럼 보이는 작은 표식이었다. 거기에는 사자 문양도, 승리의 말도 없었다.

대신 짧은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두려웠으나, 도망치지 않았다.

죠니는 그 표식을 받았다.

한참 보다가 말했다.

“이거 너무 정직한데.”

알토가 답했다.

“당신은 용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용기는 공포가 없었다는 증명서가 아닙니다.”

죠니는 표식을 손바닥 안에서 굴렸다.

알토는 이어 말했다.

“공포가 있었기에 기록될 수 있는 행동입니다.”

죠니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사자 갈기에 표식을 대충 달았다.

“좋아. 이 정도면 덜 창피하네.”

푸리나가 웃었다.

“죠니, 잘 어울려!”

“그 말 때문에 다시 창피해졌어.”

하지만 그 철조각은 낮게 울렸다.

푸리나의 은구두가 낼 세 번의 소리를 미리 아는 것처럼, 아주 작고 둥근 울림이었다. [여관:찰나]의 회전은 아직 열리지 않았지만, 죠니의 박자는 그 귀환의 순간과 맞물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알토는 하융을 보았다.

“비껴간 창의 유리장수.”

하융은 조금 놀란 듯 고개를 들었다.

“나도 받는 것이오?”

알토는 담담하게 말했다.

“동행자는 기록됩니다.”

아카식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길가에 서 있었다고 해서 이야기 밖에 있는 건 아니니까.”

알토는 『허공록』을 넘겼다.

이번에는 물건이 아니라, 얇은 유리 조각 하나가 떠올랐다.

회색빛 창호의 작은 파편.

그 안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비치지 않았다.

단 하나의 장면만 비쳤다.

지금 이 길.

푸리나와 레이튼과 그레이와 죠니와 하융과 아카식이 함께 서 있는 장면.

알토는 말했다.

“당신은 수많은 가능성을 봅니다.”

하융은 고개를 숙였다.

“그렇소.”

“그러나 이 기록은 하나입니다.”

하융은 유리 조각을 받았다.

알토가 말했다.

“가능성은 많습니다. 하지만 선택은 기록됩니다.”

하융은 유리 조각 안의 현재를 보았다.

비극적인 가능성도, 희망적인 가능성도 아닌 지금.

[여관:비껴간 창]의 수많은 창들이 멀리서 조용히 닫혔다. 선택되지 않은 길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다만 지금은, 그 모든 길이 현재의 발목을 붙잡지 않았다.

하융은 아주 천천히 대답했다.

“그렇소. 우리는 지금 이 길을 걸었소.”

그리고 알토는 푸리나를 보았다.

궁전이 조용해졌다.

도로시.

은구두를 신은 길 잃은 소녀.

군주.

극장주.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

푸리나는 앞으로 나왔다.

“내 차례네.”

알토는 『허공록』을 닫지 않았다.

오히려 책이 스스로 더 깊이 열렸다.

공중에 문 하나가 나타났다.

처음에는 킬리키아 왕궁의 문처럼 보였다.

다음 순간에는 야전 여관의 문처럼 보였다.

그다음에는 피난민이 두드리던 임시 숙소의 문, 극장의 무대 뒤 문, 불탄 집의 문틀, 검은 성에서 끝내 열리지 않은 슈샤니크의 여관 문처럼 보였다.

푸리나는 그 문들을 보았다.

“이게…… 집으로 돌아가는 문?”

알토는 말했다.

“아닙니다.”

푸리나는 그를 보았다.

알토는 담담하게 말했다.

“집을 대신 정해주는 문입니다. 그래서 폐기합니다.”

그가 손을 내리자 문들이 모두 사라졌다.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잠깐, 방금 엄청 중요한 거 없앤 거 아니야?”

“중요하기 때문에 없앴습니다.”

알토는 『허공록』 위에 손을 얹었다.

“누군가의 집을 기록자가 대신 정하면, 그것은 귀환이 아니라 배치입니다.”

그 말에 그레이가 작게 숨을 들이켰다.

슈샤니크의 검은 성이 떠올랐다.

장부 안의 귀속.

알토는 푸리나를 보았다.

“도로시. 당신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응.”

“그 길은 제가 줄 수 없습니다.”

푸리나는 말없이 그를 보았다.

“하지만 당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귀환의 조건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알토의 손이 움직였다.

《허공 작성》.

은구두 위에 작은 기록문이 떠올랐다.

돌아갈 자격은 이미 있다.
그러나 돌아갈 집의 이름은 스스로 말해야 한다.

라이자의 은구두가 빛났다.

타마르의 황혼 같은 목소리가 아주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처음부터 돌아갈 수 있었다는 말은, 길이 헛되었다는 뜻이 아니랍니다.

아카식은 푸리나 옆에 섰다.

더 이상 토토처럼 굴지 않았다.

아니, 여전히 리본은 목에 걸려 있었다. 그래서 좀 웃기긴 했다.

하지만 그 눈빛은 기록의 성좌였다.

그는 말했다.

“푸리나.”

“응.”

“세 번 두드리면 돌아갈 수 있어.”

푸리나는 은구두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응. 원작 존중.”

죠니가 말했다.

“그 말로 계속 다 밀어붙이는군.”

아카식은 웃었다.

하지만 웃음 뒤의 목소리는 깊었다.

“하지만 주문은 네가 말해야 해.”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아카식은 말했다.

“나는 모든 삶이 기록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실패한 삶도, 우스운 삶도, 길을 잃은 삶도, 돌아가지 못한 삶도.”

그는 장막이 내려간 오즈의 궁전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기록자가 대신 결말을 써주면, 그건 그 사람의 삶이 아니게 되지.”

알토가 조용히 덧붙였다.

“선택은 존중합니다. 책임은 남습니다.”

푸리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기록의 성좌.

기록된 군주.

장난스러운 토토와, 장막 뒤의 오즈.

둘은 서로 닮지 않은 듯 닮아 있었다.

한쪽은 모든 이야기를 사랑하고, 한쪽은 이야기가 책임 없이 흩어지지 않게 붙든다.

아카식은 가볍게 말했다.

“나는 1류 새드엔딩보다 3류 해피엔딩이 좋아.”

알토가 그를 보았다.

“그 표현은 품위가 없습니다.”

“그래도 사실이잖아.”

“부정하지 않습니다.”

푸리나는 웃었다.

“3류 해피엔딩이라.”

아카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조금 유치하고, 조금 엉망이고, 조금 과장됐지만, 그래도 사람이 웃는 결말.”

푸리나는 은구두를 내려다보았다.

노란 길이 떠올랐다.

민다우가스의 숲.

아스테르다스의 유성.

슈샤니크의 검은 성.

아레의 검은 실.

미하일라의 활.

요안나의 티켓.

게오르기아의 수업.

아스테리아의 길.

레이튼의 질문.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회전.

하융의 창.

그리고 자신이 열었던 무대들.

푸리나는 작게 말했다.

“내 집은…….”

그녀는 멈췄다.

그 순간, 은구두 아래의 바닥이 조용히 무대가 되었다.

에메랄드 궁전의 돌바닥 위로 킬리키아의 밤이 겹쳐졌다. 항구의 등불이 켜지고, 성벽 위의 횃불이 흔들리고, 피난민의 수레바퀴 자국이 노란 길 위에 얇게 새겨졌다.

왕궁.

극장.

여관.

성벽.

부상병이 처음 다시 웃던 방.

아이들이 틀려도 되는 대사를 외우던 임시 무대.

그레이가 장부를 끌어안고 서 있던 거리.

레이튼이 질문을 던지던 회의실.

죠니의 말발굽이 돌던 훈련장.

하융의 창이 열리던 고요한 방.

그리고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관객석.

푸리나의 [여관:극장]이 열렸다.

완전한 전개는 아니었다.

이것은 나라를 뒤덮는 대기적도, 전쟁의 판세를 바꾸는 대마술도 아니었다.

다만 푸리나가 자신이 돌아갈 곳을 말하기 위해, 자기 안의 무대를 여는 장면이었다.

《세기극: 아르메니아 대서사시》.

무대 뒤편에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웃음만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피난과 배급.

성벽 보수와 장례.

농담과 장부.

질문과 회전.

가능성의 창과 늦은 박수.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빈자리.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서, 그래도 막을 내리지 않겠다고 버티는 작은 왕국의 숨.

푸리나는 그것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집은 깨끗한 배경이 아니다.

집은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는 무대다.

무대가 더러워져도, 대사가 틀려도, 배우가 울어도, 관객이 너무 늦게 박수를 쳐도.

다음 장면을 포기하지 않는 곳.

그때 푸리나의 숨이 바뀌었다.

《즉흥극: 세기의 대배우》.

정해진 대사는 없었다.

알토도 써주지 않았다.

아카식도 결말을 대신 적지 않았다.

도로시가 말해야 하는 대사도 아니었고, 왕이 내려야 하는 칙령도 아니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푸리나의 대사였다.

도로시라는 배역이 푸리나의 몸을 빌렸고, 푸리나 헤툼이라는 군주가 도로시의 입을 빌렸다.

그녀는 은구두의 뒤꿈치를 한 번 맞부딪혔다.

딸깍.

“내 집은.”

두 번째.

딸깍.

“조명이 꺼지면 안 되는 사람들이 있는 곳.”

세 번째.

딸깍.

“그리고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들이, 잠시 자기 이름으로 머물러도 되는 무대.”

그 순간, 막이 올랐다.

아니, 막이 내려가기 직전에 다시 한 번 올라갔다.

《그대여, 박수를! 대단원의 막이 올랐으니!》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

질문은 이미 던져졌다.

이름은 이미 되찾았다.

길은 이미 열렸다.

책임은 이미 확인되었다.

장막은 이미 걷혔다.

모든 배우가 자기 장면을 끝냈다.

그러니 이제, 대단원의 막은 푸리나 혼자 올리는 것이 아니었다.

레이튼의 빈 질문지가 바람에 넘어갔다.
아직 이름 붙지 않은 별들은 푸리나의 대답을 결론으로 닫지 않고, 앞으로도 물어야 할 질문으로 남겨두었다.

그레이의 장부 안쪽에서 작은 문패들이 켜졌다.
이름 옆에는 사유와 책임, 보호 주소와 재발 방지 항목이 함께 적혔다.
같은 이유로 다시 죽지 않도록.

죠니의 사자 갈기에 달린 철조각이 낮게 울렸다.
그 울림은 세 번의 딸깍 소리와 맞물려, 돌아가는 길의 박자를 만들었다.

하융의 회색 유리 조각에는 수많은 가능성이 아니라, 지금 이 길 하나만 비쳤다.
선택되지 않은 길들은 조용히 닫히고, 선택한 길만 기록으로 남았다.

멀리서, 아레의 검은 실이 잠시 떨렸다.
그것은 붙잡기 위한 실이 아니라, 퇴장한 배우가 잊히지 않도록 배웅하는 실이었다.

검은 성의 높은 곳에서, 슈샤니크의 청록빛 까마귀가 아주 멀리서 날개를 접었다.
실패의 기록을 읽던 눈이, 이번만큼은 아직 실패라 부를 수 없는 장면 앞에서 멈추었다.

리투아니아 숲 어딘가에서, 아스테르다스가 남긴 작은 귀환점이 아직 꺼지지 않았다.
민다우가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불빛을 지우지도 않았다.

미하일라의 화살 자국이 노란 길의 경계선을 지켰다.
귀환은 도피가 아니며, 돌아간 뒤의 책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표시처럼.

요안나의 지지 티켓이 푸리나의 품 안에서 따뜻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가, 길 위에 남은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바뀌었다.

게오르기아의 책장이 조용히 넘어갔다.
귀환은 결말이 아니라, 배운 것을 현실에서 시험하는 다음 장이라는 듯이.

아스테리아의 노선도에는 새로운 귀환선 하나가 그어졌다.
목적지는 하나였지만, 그 길은 다시 수많은 사람에게 갈라질 수 있었다.

라이자의 은구두는 여전히 따뜻했고, 타마르의 황혼빛은 그 위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은 길이 헛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길을 걸은 자가 마침내 자기 집의 이름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었다.

알토의 『허공록』은 그 장면을 기록했고.

아카식은 웃었다.

“좋아. 이 정도면, 3류 해피엔딩치고는 꽤 괜찮네.”

알토가 말했다.

“표현은 여전히 품위가 없습니다.”

“하지만 맞잖아?”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부정하지 않습니다.”

은구두가 빛났다.

노란 길 전체가 울렸다.

에메랄드 성의 초록빛이 멀어졌다.

검은 성의 초록 문장들이 희미해졌다.

리투아니아 숲의 달빛이 접혔다.

창문들이 닫히고, 질문지들이 바람에 넘어가고, 장부의 문패들이 낮게 빛났다.

푸리나는 떨어졌다.

아니, 돌아갔다.

회오리는 없었다.

이번에는 집이 그녀를 덮치지 않았다.

그녀가 집의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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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밤.

광장 위의 임시 무대.

천막과 나무 기둥, 금빛으로 칠한 널빤지, 관객석의 의자와 뒤집은 상자들.

푸리나는 무대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그녀는 도로시의 옷을 입고 있었고, 발에는 은구두가 있었다.

잠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옆에서 죠니가 중얼거렸다.

“돌아왔네.”

레이튼은 자기 품의 빈 질문지를 확인했다.

“흥미롭군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레이도 장부를 안고 있었다.

그 표지 안쪽에는 이름들이 남아 있었다.

하융의 손에는 회색빛 유리 조각이 있었다.

아카식은 여전히 토토 리본을 목에 걸고 있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말했다.

“그 리본은 아직도 하고 있네?”

아카식은 진지하게 대답했다.

“기념품.”

알토는 장막 뒤에서 걸어 나왔다.

아니, 원래부터 무대 뒤에 있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타났다. 손에는 『허공록』이 있었고, 표정은 평소와 같았다.

그는 객석을 보았다.

각국의 군주와 가신들.

리투아니아의 민다우가스와 아스테르다스.

세르비아의 아레.

조지아의 타마르.

보헤미아의 라이자.

니케아의 미하일라, 요안나, 게오르기아, 아스테리아.

그리고 조금 떨어진 그늘에 선 슈샤니크.

슈샤니크는 아직 서쪽 마녀의 초록 망토를 완전히 벗지 않았다.

그녀는 푸리나의 은구두를 보고 있었다.

아주 오래.

푸리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슈샤니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아주 미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것이 인사인지, 인정인지, 경고인지, 아니면 아직 열리지 않은 문틈인지 푸리나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기록되었다.

아카식은 그것을 보며 웃었다.

“좋은 장면이네.”

알토가 낮게 말했다.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기억했는데?”

“그럼 조용히 기억하십시오.”

아카식은 잠시 생각하더니, 일부러 더 크게 말했다.

“싫어.”

알토는 눈을 감았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관객석에서 아이 하나가 손뼉을 쳤다.

짝.

작은 소리였다.

그 다음에 또 다른 아이가 손뼉을 쳤다.

짝.

그리고 피난민 하나가.

병사 하나가.

여관의 시종이.

보헤미아의 은인들이.

니케아의 사절들이.

리투아니아의 전사들이.

세르비아의 실을 단 인형사들이.

킬리키아의 백성들이.

박수는 점점 커졌다.

하지만 푸리나는 이상하게 바로 인사하지 못했다.

그녀는 무대 위에서 모두를 보았다.

오늘의 공연은 희극이었다.

오즈의 마법사.

노란 길.

허수아비와 양철 나무꾼과 겁쟁이 사자.

말하는 토토.

마녀와 마법사.

은구두와 귀환.

유치하고, 엉망이고, 과장된 이야기.

하지만 그 길 위에서 누군가는 집이 불탔을 때 무엇을 집이라 부를지 물었다.

누군가는 돌아갈 집이 없는 사람의 부러움을 보았다.

누군가는 평화를 소원으로만 두지 말라고 했다.

누군가는 위대한 마법사가 아니라 확인서만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푸리나는 이제 알았다.

무대는 도망치는 곳이 아니다.

무대는 돌아오기 위한 연습일 때가 있다.

푸리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깊게 인사했다.

“오늘의 공연은 여기까지.”

관객석이 조용해졌다.

푸리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밝았다.

하지만 가볍지만은 않았다.

“돌아갈 집이 있는 분들은, 부디 돌아가세요.”

그녀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돌아갈 집이 없는 분들은……”

광장 한쪽에 서 있던 피난민들이 그녀를 보았다.

아레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그레이는 장부를 열 준비를 했다.

레이튼은 질문지를 품에 넣었다.

죠니는 사자 갈기를 벗으려다 멈췄다.

하융은 유리 조각 안의 현재를 보았다.

슈샤니크는 은구두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푸리나는 말했다.

“우리 무대에 잠시 머물러도 좋아요.”

그 말이 끝나자, 박수가 다시 터졌다.

이번에는 단순한 환호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웃음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안도였다.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아직 돌아갈 수 없다는 아픔이었다.

그래도 박수였다.

알토는 『허공록』을 닫았다.

“기록 완료.”

아카식은 고개를 저었다.

“아직 아니야.”

알토가 그를 보았다.

아카식은 무대 위의 푸리나를 보고, 객석의 사람들을 보고, 은구두의 빛과 검은 성의 잔향과 에메랄드 성의 질문들을 차례로 보았다.

그리고 웃었다.

“이런 이야기는 공연이 끝난 뒤부터가 진짜 기록이거든.”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정정합니다.”

그의 목소리는 무심했지만, 어딘가 부드러웠다.

“기록 개시.”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막은 내려왔다.

하지만 노란 길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무대 바닥 어딘가에, 금빛 벽돌 하나가 아직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언젠가 누군가 다시 길을 잃으면.

언젠가 누군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지면.

언젠가 누군가 돌아갈 집이 없어져, 잠시 머물 무대를 찾게 되면.

그 벽돌은 다시 길이 될 것이다.

아마도.

아카식이 말하듯, 조금 유치하고, 조금 엉망이고, 조금 과장된 방식으로.

그래도 사람이 웃을 수 있는 쪽으로.

6막.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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