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42여관◆zAR16hM8he(7ce028f3)2026-05-11 (월) 09:08:18
2막. 초대장을 받은 만인

막이 올랐을 때, 만인은 웃고 있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평범한 옷을 입고 있었다. 너무 가난해 보이지도 않았고, 너무 부유해 보이지도 않았다. 군인처럼 보이기도 했고, 상인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어느 골목에서나 만날 수 있는 아버지 같기도 했고, 아직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청년 같기도 했다.

그것이 푸리나의 주문이었다.

“만인은 누구처럼 보여야 합니까?” 하고 빵집 주인의 딸이 물었을 때, 푸리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모두처럼.”

그래서 만인은 모두처럼 보였다.

무대 위의 만인은 작은 탁자 앞에 앉아 있었다. 탁자 위에는 빵 한 조각, 동전 몇 닢, 낡은 술잔, 편지 한 장, 그리고 아직 펴지 않은 천 조각이 놓여 있었다.

만인은 빵을 한 입 베어 물고 말했다.

“오늘도 살았다!”

객석에서 아이들이 웃었다.

만인은 동전을 세었다.

“동전도 있다!”

그는 술잔을 들었다.

“친구도 있다!”

그는 편지를 품에 넣었다.

“가족도 있다!”

그리고 그는 양팔을 벌렸다.

“그렇다면 내일도 별일 없겠지!”

그 말에 객석 어딘가에서 어른들이 작게 웃었다.

그 웃음은 아이들의 웃음과 달랐다.
조금 쓴맛이 있었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좋아.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다.

만인은 아직 몰라야 했다.
그가 자기 삶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
그 당연함이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를.

무대 옆에서 악사가 현을 튕겼다.

띵.

만인은 고개를 들었다.

“누구요?”

무대 오른쪽에 문이 하나 생겼다.

분명 조금 전까지는 없던 문이었다. 낡은 나무 문. 손잡이는 오래 만져 닳아 있었고, 문틈에서는 따뜻한 등불빛이 새어 나왔다.

관객들은 그것이 무대 장치라고 생각했다.

그레이는 아니었다.

그녀는 무대 뒤에서 장부를 들고 있다가 문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문, 설치 명단에 없었습니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그럼 설치됐다는 뜻은 아니네.”

“죠니 경.”

“알아. 이상하다는 뜻이야.”

레이튼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질문이 하나 늘었군요.”

하융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보았다.

어떤 가능성에서는 저 문이 없었다.
그 가능성에서 극은 더 안전했다. 더 예측 가능했다. 더 푸리나의 손 안에 있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의 객석에서는 한 아이가 끝까지 울지 못했다.

하융은 창밖의 가능성들을 닫았다.

“저 문이 있는 쪽이 낫소.”

죠니가 그를 힐끗 보았다.

“너한테서 그런 말 나오면 보통 일이 커지던데.”

“이미 커졌소.”

“그렇겠지.”

무대 위의 만인은 천천히 문 쪽으로 다가갔다.

문이 열렸다.

그 안에서 나온 것은 검은 망토를 두른 사신도, 해골도, 칼을 든 천사도 아니었다.

낮에 의자를 닦던 그 남자였다.

그는 작은 쟁반을 들고 있었다.

쟁반 위에는 봉투 하나와 찻잔 하나가 있었다.

객석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아이 하나가 속삭였다.

“의자 아저씨다.”

남자는 무대 중앙으로 걸어와 만인 앞에 섰다.

“좋은 저녁입니다, 손님.”

만인이 눈을 깜빡였다.

“손님? 내가?”

“예. 언젠가는 모두 손님이 되시니까요.”

객석에 낮은 웃음이 번졌다.

만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여관 주인이오?”

“비슷합니다.”

“여기는 내 집인데.”

“대체로 손님들은 그렇게 말씀하시지요.”

이번에는 웃음이 조금 더 커졌다.

푸리나는 막 뒤에서 손가락을 튕겼다.

좋아.
죽음은 아직 무서워지면 안 된다.
먼저 다가와야 한다.
문을 두드리고, 농담처럼 들어오고, 찻잔을 내려놓아야 한다.

만인은 쟁반 위의 봉투를 보았다.

“그건 뭐요?”

남자는 봉투를 내밀었다.

“초대장입니다.”

“누구에게서?”

“가장 끝의 여관에서.”

웃음이 천천히 멎었다.

만인의 손이 멈췄다.

그는 봉투를 받지 않았다.

“그런 여관은 모르오.”

“대부분 처음에는 모르십니다.”

“난 예약한 적 없소.”

“예약은 태어나실 때 이미 되어 있습니다. 다만 날짜를 기억하지 못하실 뿐이지요.”

객석은 조용해졌다.

아이들도 더 이상 웃지 않았다.

만인은 억지로 웃었다.

“그거 별로 좋은 장사는 아니군. 손님에게 묻지도 않고 예약을 잡다니.”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은 저도 가끔 아쉽게 생각합니다.”

그 대답에 몇몇 사람이 다시 작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

남자는 쟁반을 조금 낮추었다.

“받으시겠습니까?”

만인은 한 걸음 물러났다.

“거절하면?”

“그럴 수 있습니다.”

“정말?”

“예. 봉투를 받지 않는 것도 손님의 선택입니다.”

만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럼 안 받겠소.”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그는 봉투를 쟁반 위에 다시 올려두었다.

만인은 안도한 듯 웃었다.

“거봐. 별일 아니었잖아.”

그 순간 남자가 찻잔을 탁자 위에 놓았다.

딸깍.

“다만 봉투를 받지 않으셔도, 여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만인의 웃음이 굳었다.

남자는 부드럽게 말했다.

“문도 그대로 있습니다.”

만인은 뒤를 돌아보았다.

문은 거기 있었다.

조금 전보다 더 조용하고, 더 따뜻하게.

무섭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만인은 큰 소리로 말했다.

“나는 바쁘오.”

“예.”

“해야 할 일이 많소.”

“그렇겠지요.”

“내게는 재산도 있고, 명성도 있고, 친구도 있고, 가족도 있소.”

“좋은 일입니다.”

“그러니 아직 갈 수 없소.”

남자는 미소 지었다.

“아직 가시라는 말씀은 드리지 않았습니다.”

만인은 멈칫했다.

남자는 찻잔을 가리켰다.

“다만 언젠가 오실 길이라면, 무엇을 들고 오실지는 생각해두셔도 좋겠지요.”

마당 전체가 잠잠해졌다.

그 말은 무대 위의 만인에게 한 말이었다.

하지만 객석의 모두가 들었다.

한 병사는 무심코 자신의 검집을 만졌다.
한 여인은 품 안의 낡은 편지를 눌렀다.
한 아이는 담요 끝을 꼭 쥐었다.
그레이는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이름과 숫자 사이에서 아직 처리되지 않은 빈칸이 눈에 들어왔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숨을 조금 천천히 내쉬었다.

이상했다.

그녀가 쓴 대사는 분명 이런 식이었다.

“그대는 무엇을 들고 마지막 문을 넘겠는가?”

장엄하고, 연극적이고, 푸리나다운 문장.

하지만 저 남자의 말은 달랐다.

무대보다 낮았다.
화려하지 않았다.
그런데 더 오래 남았다.

푸리나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치사하네.”

죠니가 옆에서 물었다.

“뭐가?”

“대사를 너무 잘 쳐.”

“저 사람 배우 맞아?”

“아마도.”

“아마도?”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 만인은 다시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좋소. 생각은 해보겠소. 하지만 혼자 갈 생각은 없소. 내게는 같이 가줄 것들이 많으니까.”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그것도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먼저 재산을 부르겠소!”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신호를 기다리던 배우가 튀어나왔다.

재산이었다.

재산 역을 맡은 사람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이었다. 그는 푸리나가 억지로 입힌 금빛 망토를 걸치고 있었는데, 망토가 너무 길어서 세 걸음마다 한 번씩 밟혔다.

그가 등장하자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재산은 품에 주머니를 잔뜩 안고 외쳤다.

“누가 나를 불렀느냐! 나는 무겁고, 빛나고, 잃어버리기 쉬운 존재다!”

만인이 반색했다.

“재산아! 내 오랜 친구!”

재산은 코웃음을 쳤다.

“오랜 친구? 네가 나를 친구처럼 대한 적이 있느냐? 너는 나를 세고, 숨기고, 불리고, 걱정했지. 친구에게 그렇게 하느냐?”

객석에서 장사꾼 몇 명이 웃었다.

만인은 당황했다.

“그래도 너는 나와 함께했잖아. 그러니 마지막 여관까지 같이 가자.”

재산은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마지막 여관까지?”

“그래.”

재산은 갑자기 품 안의 주머니를 더욱 꽉 안았다.

“싫다!”

아이들이 웃었다.

재산은 뒤로 물러났다.

“나는 문턱을 넘지 못한다! 땅에 묻히거나, 자식에게 넘어가거나, 도둑에게 사라지거나, 세금으로 뜯기거나, 전쟁으로 불타지!”

그레이가 객석 뒤에서 아주 작게 반응했다.

“세금은 뜯기는 게 아닙니다.”

죠니가 옆에서 피식 웃었다.

재산은 계속 외쳤다.

“하지만 마지막 여관까지? 그건 안 된다! 거기서는 내 주머니가 열리지 않는다!”

만인은 절망했다.

“그럼 넌 나를 버리겠다는 거냐?”

재산은 갑자기 진지한 얼굴을 했다.

“아니. 나는 원래부터 너와 함께 갈 수 없었다.”

웃음이 조금 가라앉았다.

재산은 품에서 작은 동전 하나를 꺼냈다.

“다만 네가 나를 어떻게 썼는지는, 아마 따라갈지도 모르지.”

그는 동전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누군가에게 빵을 사주었는지. 누군가의 약값을 냈는지. 아니면 끝까지 움켜쥐었는지.”

만인은 동전을 바라보았다.

재산은 망토를 밟고 휘청거리다가, 과장되게 퇴장했다.

객석에서 다시 웃음이 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몇몇 사람이 자기 주머니를 만졌다.

무대 구석에서 남자가 다가왔다.

그는 탁자 위의 동전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을 가져가지 않았다.

대신 작은 접시 하나를 꺼내 동전 옆에 놓았다.

만인이 물었다.

“왜 가져가지 않소?”

남자가 답했다.

“이건 손님께서 들고 가실 물건이 아니라, 이곳에 남겨두신 흔적에 가깝습니다.”

“흔적?”

“예.”

남자는 접시를 바로 놓았다.

“흔적은 가끔 물건보다 오래 남습니다.”

그는 다시 물러났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저거 좋아.”

레이튼이 조용히 말했다.

“훌륭한 수정입니다. 재산이 함께 가지 못한다는 교훈보다, 재산이 남긴 방향을 묻는 쪽이 더 부드럽군요.”

푸리나는 팔짱을 꼈다.

“내 대본에도 있었어.”

죠니가 말했다.

“없었잖아.”

“마음속에는 있었어.”

“그건 보통 없었다는 뜻이야.”

다음으로 명성이 등장했다.

명성은 온몸에 종이 꽃과 리본을 달고 있었다. 그는 무대에 나오자마자 관객에게 손을 흔들었다.

“박수! 박수 부탁드립니다!”

관객들은 기꺼이 박수를 쳤다.

명성은 만인이 부르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명성아!”

“더 크게!”

“명성아!”

“왼쪽 객석 반응 좋습니다! 오른쪽 객석도 힘내주세요!”

푸리나는 뒤에서 배를 잡고 웃었다.

“잘한다!”

만인은 명성의 소매를 붙잡았다.

“나와 함께 마지막 여관까지 가자.”

명성은 드디어 만인을 보았다.

“마지막 여관? 거긴 관객이 있나?”

만인은 당황했다.

“그건…… 모르겠는데.”

“기록자는? 악사는? 찬사는? 후대의 노래는?”

“아마 없을지도.”

명성은 즉시 소매를 뺐다.

“그럼 안 간다.”

“너도?”

“나는 사람이 나를 불러줄 때만 살아 있다. 문이 닫히고 이름이 불리지 않으면, 나는 바람보다 가볍지.”

명성은 객석을 향해 다시 인사했다.

“그러니 여러분, 제 이름을 잊지 말아 주세요!”

관객들이 웃었다.

그러나 명성은 퇴장하기 직전, 갑자기 멈춰 섰다.

“하지만 이상하군.”

만인이 고개를 들었다.

명성은 무대 구석의 남자를 보았다.

“저 여관에는 이름이 정말로 사라지나?”

남자는 잠시 생각했다.

“사라지는 이름도 있습니다. 내려놓는 이름도 있습니다. 그러나 잊히지 않아야 할 이름은 문패에 적어둡니다.”

객석 뒤에서 그레이의 손이 멈췄다.

명성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조금 전보다 조용히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못 가도, 이름 하나쯤은 맡길 수 있겠군.”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예. 두고 오신 이름이 있으시다면.”

명성은 품에서 찢어진 포스터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아무도 읽을 수 없을 만큼 번진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는 그것을 남자에게 건넸다.

“이 이름은 내 것이 아니다. 내 박수 아래 묻힌 사람의 것이다.”

남자는 포스터를 두 손으로 받았다.

“맡아두겠습니다.”

객석이 조용해졌다.

그레이는 숨을 삼켰다.

그 대사는 대본에 없었다.

푸리나도 알았다.

그녀는 천천히 무대 구석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저건 애드리브가 아니다.

저건…… 응답이다.

무대와 객석 사이의 경계가 아주 얇아지고 있었다.

명성이 퇴장하자, 남자는 무대 뒤편에 작은 문패 하나를 걸었다.

문패에는 아직 글자가 없었다.

그러나 그 빈 문패를 보는 순간, 객석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울기 시작했다.

소리는 작았다.

푸리나는 박수를 유도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다음 배우에게 손짓했다.

이번에는 권력이 등장했다.

권력은 지나치게 큰 왕관을 쓰고 나왔다. 왕관이 자꾸 눈을 가려, 그는 앞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이들이 웃었다.

권력은 위엄 있게 외쳤다.

“길을 비켜라! 나는 명령하는 자다!”

그러고는 의자에 걸려 넘어질 뻔했다.

객석이 웃음으로 터졌다.

만인은 권력에게 말했다.

“너라면 마지막 여관의 문도 열 수 있겠지. 함께 가자.”

권력은 왕관을 바로잡았다.

“내가 왜 가야 하지?”

“넌 힘이 있잖아.”

“그래서 더 못 간다. 내가 떠나면 내 자리를 누가 차지하겠느냐?”

권력은 객석을 향해 팔을 벌렸다.

“왕좌는 빈자리를 싫어한다. 인장은 손을 찾아가고, 명령은 입을 찾아가며, 병사들은 새로운 깃발 아래 선다.”

푸리나의 표정이 조금 바뀌었다.

그 말은 그녀 자신에게도 닿았다.

권력은 만인을 내려다보았다.

“나는 너와 함께 가는 것이 아니라, 네가 없는 뒤에도 남아 다른 사람을 시험한다.”

만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권력은 아무 의미가 없단 말이냐?”

권력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왕관을 벗었다.

배우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킬리키아 병사였다. 실제로 성문 전투에서 살아남은 젊은 장교였다.

그가 낮게 말했다.

“아니다. 네가 권력으로 누구를 눌렀는지, 누구를 일으켰는지는 남는다.”

그는 왕관을 탁자 위에 놓았다.

“권력은 같이 못 간다. 하지만 명령의 결과는 문 앞까지 따라올 것이다.”

그레이는 장부를 품에 안았다.

죠니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살짝 숙였다.

레이튼은 눈을 감고 있었다.

하융은 다른 창을 보았다.

권력이 오직 억압으로만 쓰인 가능성.
권력이 도망치기 위해 쓰인 가능성.
권력이 마지막 성문을 열기 위해 쓰인 가능성.

그 모든 창이 잠시 무대 위에서 겹쳤다.

남자는 왕관을 가져가지 않았다.

그는 왕관 옆에 손수건 하나를 놓았다.

만인이 물었다.

“그건 왜요?”

“왕관은 무겁습니다.”

남자가 말했다.

“벗으셨다면, 이마의 땀은 닦으셔야지요.”

그 한마디에 객석에서 묘한 웃음이 났다.

왕도, 병사도, 장사꾼도, 어머니도, 아이도 잠깐 같은 얼굴이 되었다.

무거운 것을 쓴 사람의 얼굴.

푸리나는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녀는 이제 확실히 알았다.

이 극은 자기 손 안에만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분하지 않았다.

오히려 무대가 넓어지고 있었다.

자신이 쓴 대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극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는 낮게 중얼거렸다.

“좋아.”

죠니가 물었다.

“뭐가 좋아?”

“무대가 커졌어.”

“위험하다는 뜻이기도 하지.”

“응.”

푸리나는 웃었다.

“그래서 재밌잖아.”

죠니는 한숨을 쉬었다.

“또 그 말이네.”

무대 위에서 만인은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재산은 함께 가지 못했다.
명성도 함께 가지 못했다.
권력도 함께 가지 못했다.

그는 탁자 위에 남은 것들을 보았다.

동전.
찢어진 포스터.
왕관.
손수건.
찻잔.

그리고 아직 받지 않은 초대장.

남자는 여전히 쟁반 위에 봉투를 올려두고 있었다.

만인은 물었다.

“정말 지금 가야 하오?”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은 아직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럼 왜 왔소?”

“손님께서 너무 바쁘게만 사시는 듯하여.”

만인은 화를 내려다가 멈췄다.

남자는 부드럽게 말했다.

“바쁜 길에도 가끔은 쉬는 곳이 필요합니다. 마지막 여관에 도착해서야 처음으로 쉬는 법을 배우려 하면, 조금 서툴 수 있으니까요.”

객석이 조용해졌다.

그 말은 죽은 자에게 하는 말이 아니었다.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었다.

푸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이건 여관극이다.

이제 그녀는 그 말을 처음보다 더 깊게 이해하고 있었다.

죽음을 보여주는 극이 아니다.
삶을 잠깐 앉히는 극이다.

만인은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받았다.

봉투는 열리지 않았다.

그 안의 날짜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남자는 말했다.

“서두르지 않으셔도 됩니다.”

만인이 물었다.

“정말?”

“예.”

남자는 찻잔을 다시 채웠다.

“다만 오늘은, 무엇을 들고 가실지 생각해보시지요.”

막 뒤에서 푸리나는 다음 장면의 신호를 보냈다.

이제 친구와 가족이 나올 차례였다.

웃음은 줄어들고 있었다.

대신 마당에는 이상한 따뜻함이 생겼다.

마치 모두가 각자의 주머니와 이름과 명령과 후회를 잠깐 내려놓고, 같은 여관의 긴 탁자에 앉은 것처럼.

무대 구석의 문은 아직 열려 있었다.

그리고 그 안쪽에서 새어나오는 등불빛은, 저녁이 깊어질수록 조금 더 분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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