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44여관◆zAR16hM8he(7ce028f3)2026-05-11 (월) 09:11:24
4막. 객석 뒤의 문패
아이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원래라면 무대까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야전 여관의 마당에는 아직 박수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친구의 마지막 농담 때문에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가족이 남긴 포대기와 편지와 나무 말을 보며 눈을 훔치고 있었다. 악사의 현은 아직 가늘게 떨렸고, 천막 위의 저녁빛은 점점 푸른색으로 식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목소리는 들렸다.
“아버지.”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 한마디는 박수보다 작았고, 울음보다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극장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린 종소리처럼 그녀에게 닿았다.
그 아이는 객석 뒤쪽에 앉아 있었다.
아까 입장할 때 울던 아이였다.
여관 주인이 담요를 건네주었던 아이.
무서운 소리가 나면 담요 끝을 잡으라고 배웠던 아이.
지금도 아이는 담요 끝을 잡고 있었다.
너무 세게 잡아서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놀라 아이를 끌어안으려 했다.
“쉿, 괜찮아.”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공연 중이야.”
“아버지 이름…… 말해도 된댔어.”
아이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또렷했다.
“문패에 적어준댔어.”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푸리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는 다음 장면을 준비하던 배우들이 그녀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인 역의 배우는 아직 퇴장하지 않은 채 막 뒤에 서 있었고, 친구 역의 악사는 술잔을 들고 멈춰 있었다. 가족 역 배우들도 서로를 보았다.
원래대로라면 다음 장면은 “선행”이 등장할 차례였다.
만인이 돌아간 뒤,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장면.
푸리나는 이 장면을 조금 밝게 만들 생각이었다.
우물 고치기, 빵 나누기, 편지 읽기, 화해하기 같은 작은 장면들을 이어 붙여 관객들이 “아직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게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객석 뒤에서 다른 장면이 시작되고 있었다.
푸리나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배우들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움직임을 멈췄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멈추는 거야?”
푸리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괜찮겠어?”
“좋은 즉흥은 받아야지.”
죠니는 아이가 있는 쪽을 보았다.
“이번 건 즉흥이라기보단…… 다른 쪽에서 들어온 장면 같은데.”
“그래도 무대에 올라왔어.”
푸리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럼 받아야 해.”
그레이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객석 뒤쪽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갑작스러운 소란이 나지 않도록 손짓으로 주변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아이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굽혔다.
“괜찮습니다.”
그레이의 목소리는 작았다.
“천천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어머니는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공연을 방해하려던 게 아니라—”
“방해가 아닙니다.”
그레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짧았지만, 이상하게 단단했다.
어머니는 입술을 떨었다.
아이의 손은 여전히 담요 끝을 붙잡고 있었다.
무대 구석에 서 있던 여관 주인이 천천히 객석 뒤편으로 걸어왔다.
그의 걸음은 빠르지 않았다.
누구도 밀어내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비키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조금씩 길을 열었다.
마치 여관 복도에서 주인이 손님 방으로 가는 것을 본 사람들처럼.
그는 아이 앞에 섰다.
그리고 낮게 물었다.
“두고 온 이름이 있으십니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요.”
“성함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아이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름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아버지는 이름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등에 업혀 보았던 높이였다.
손바닥에 남은 굳은살이었다.
밤에 돌아오면 나는 땀과 흙 냄새였다.
목재를 자르던 소리였고, 수프를 식혀주던 입김이었고, 잘못을 했을 때 크게 혼내다가도 나중에 빵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을 남겨주던 사람이었다.
아이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을 말하는 순간, 아버지가 정말로 죽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는 담요 끝을 더 세게 잡았다.
“말하면…… 진짜 가버려요?”
여관 주인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쉽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미 먼 길을 가신 분도 계십니다.”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여관 주인은 아주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름을 말한다고 해서 더 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길을 잃지 않도록 등불을 드는 일에 가깝지요.”
“등불?”
“예.”
여관 주인은 손에 든 빈 문패를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이름이 없는 문은 열리기 어렵습니다. 이름을 적으면, 손님께서 쉬실 방을 찾기가 조금 쉬워집니다.”
아이는 문패를 보았다.
그것은 아주 평범한 나무 조각이었다.
왕궁의 금패도 아니었고, 성당의 비석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오히려 아이를 조금 안심시켰다.
아이는 작게 말했다.
“사르키스.”
그레이가 곧바로 품에서 작은 장부를 꺼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성은요?”
어머니가 조용히 대답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레이는 이름을 적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획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숫자 하나를 적는 손이 아니었다.
사람 하나를 다시 세상에 세우는 손이었다.
그레이가 물었다.
“확인된 사망 장소는……?”
어머니는 대답하려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가 대신 말했다.
“남쪽 성문.”
그레이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남쪽 성문.
지난 공성전에서 마지막 피난민 수레가 들어올 때, 성문을 닫지 않고 버틴 병사들이 있었다.
문을 닫으면 살 수 있었고, 조금 더 열어두면 죽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들은 열어두었다.
그 명단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불타버린 기록소에서 일부 서류가 사라졌고, 시신을 찾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장부에는 아직 빈칸이 있었다.
「남쪽 성문 방어조. 미확인 사망자 3명.」
그레이는 그 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찾았습니다.”
어머니가 숨을 멈췄다.
그레이는 장부를 펼쳐 보여주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너무 날것이었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남쪽 성문 방어조 미확인자 중 한 명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이름을 채우겠습니다.”
아이는 물었다.
“그럼 아버지는 이제 한 명이에요?”
그레이의 눈이 흔들렸다.
그 말은 너무 정확했다.
그 아이는 숫자의 잔인함을 배우기에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이 이름 없이 적히면, 한 명이라는 말조차 얼마나 멀어지는지를.
그레이는 대답했다.
“네.”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그녀는 끝까지 말했다.
“이제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입니다.”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아이를 끌어안았다.
객석은 조용했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
누구도 울음을 말리지 않았다.
푸리나는 그 침묵을 끊지 않았다.
이 방은 조용해야 한다.
그녀는 그렇게 느꼈다.
무대는 잠시 극장이 아니라 방이 되었다.
울고 싶은 사람이 울 수 있는 방.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 방.
이름이 숫자에서 빠져나와 문패가 되는 방.
여관 주인은 빈 문패를 들었다.
“적어도 되겠습니까?”
아이가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도 고개를 숙였다.
그레이는 장부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다시 읽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여관 주인이 문패에 손가락을 얹었다.
잉크도 칼도 없었다.
그러나 나무 위에 글자가 천천히 떠올랐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 글자는 빛나지 않았다.
천둥도 없었다.
신성한 음악도 울리지 않았다.
그냥 오래된 여관 문패처럼, 거기에 이름이 생겼다.
그 순간, 객석 뒤쪽의 등불 하나가 흔들렸다.
하융이 고개를 들었다.
회색빛 창호 너머에서 닫힌 줄 알았던 가능성 하나가 아주 천천히 열렸다.
아버지가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한 세계.
아이가 마지막 기억을 자기 잘못으로만 품고 자라는 세계.
어머니가 남쪽 성문이라는 말만 들으면 평생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세계.
그 창의 유리가 금이 갔다.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창이 보였다.
아이가 언젠가 아버지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세계.
그레이의 장부에 빈칸이 줄어드는 세계.
남쪽 성문에서 죽은 이들이 “미확인자 3명”이 아니라,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세계.
하융은 낮게 중얼거렸다.
“창이…… 열렸소.”
레이튼이 곁에서 물었다.
“닫힌 결론이 질문으로 돌아간 겁니까?”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이번에는 이름이 돌아왔소.”
레이튼은 조용히 수첩을 덮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잠시 쉬어도 되겠군요.”
문패가 완성되자, 여관 주인은 그것을 무대 뒤편의 작은 문 옆에 걸었다.
그 문은 아까부터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모두가 그것을 보았다.
극 중 마지막 여관으로 이어지는 문.
그러나 동시에, 마당 어딘가에 실제로 있는 것 같은 문.
그레이는 그것을 보며 숨을 죽였다.
푸리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조명을 낮춰.”
그녀는 작게 말했다.
악사가 손을 멈췄다.
등불을 든 시종들이 천천히 빛을 낮추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조금 더 흐려졌다.
푸리나는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관객들이 그녀를 보았다.
원래대로라면 그녀는 해설자로 등장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푸리나는 군주이자 극작가였다.
그리고 지금, 자기 극장에 실제 손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 이름이 마당에 울렸다.
한 번.
왕의 목소리로.
푸리나는 말을 이었다.
“남쪽 성문을 지킨 사람.”
두 번.
극작가의 목소리로.
“마지막 수레가 지나갈 때까지 문을 닫지 않은 사람.”
세 번.
여관좌의 휴식의 별로서.
“오늘 이 무대에, 당신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 순간 푸리나의 [여관:극장]이 조용히 숨을 쉬었다.
화려한 조명은 없었다.
박수도 없었다.
커튼콜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당의 모든 사람이 느꼈다.
의자 하나가 더 놓였다.
비어 있지만 비어 있지 않은 의자.
죽은 자를 끌어내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망자를 병력으로 부르기 위한 자리도 아니었다.
그저 이름이 없는 채 떠돌지 않도록, 잠깐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여관 주인은 그 의자를 보았다.
그리고 푸리나에게 아주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허락도 아니고, 칭찬도 아니었다.
오히려 주인이 다른 주인장에게 건네는 조용한 인사 같았다.
“좋은 자리입니다.”
푸리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기묘하게도, 그 한마디가 어떤 박수보다 크게 느껴졌다.
그때 아이가 물었다.
“아버지는…… 저기 앉아요?”
여관 주인은 아이를 보았다.
“오실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숨을 삼켰다.
“오신다고요?”
“손님께서 원하신다면.”
여관 주인은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곳에 큰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푸리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아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그녀의 극이 아니다.
아니, 극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 장면은 누군가의 실제 마지막 말과 닿아 있었다.
여관은 감옥이 아니다.
손님이 잠깐 바깥 공기를 쐬러 나가겠다면, 주인은 문을 잠그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부활이 아니었다.
소환도 아니었다.
푸리나가 자기 예술을 위해 망자를 무대 위로 끌어내는 일도 아니었다.
그것은 손님이 잠시 나들이를 다녀오는 일.
그 정도로 부드럽고, 그 정도로 위험한 일.
여관 주인은 문패 아래에 손을 얹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님.”
마당의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두고 온 말이 있으십니까?”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기다렸다.
여관 주인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레이는 장부를 닫지 않았다.
하융은 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레이튼은 질문하지 않았다.
죠니는 아이들 쪽으로 몸을 돌려, 혹시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으면 바로 밖으로 데려갈 수 있게 섰다.
푸리나는 무대 중앙에서 손을 내린 채 기다렸다.
기다림.
그것도 여관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 순간 같기도 했고, 긴 밤 같기도 했다.
그러다 의자 위에 그림자가 생겼다.
처음에는 등불이 흔들린 탓처럼 보였다.
그림자가 조금 짙어졌다.
그리고 사람의 형태가 되었다.
갑옷은 없었다.
화려한 무기도 없었다.
남쪽 성문을 지킨 영웅처럼 꾸미지도 않았다.
그는 피곤한 남자처럼 보였다.
어깨가 넓고, 손이 거칠고, 머리카락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옷자락은 성문 근처의 흙과 재를 머금은 것처럼 어두웠다. 얼굴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바로 알아보았다.
“아버지.”
그림자는 아이를 보았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은 일어서지 않았다.
그는 잠깐 바깥에 나온 손님이었다.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관 주인이 조용히 말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으실 겁니다.”
사르키스는 고개를 숙였다.
“압니다.”
그 목소리는 먼 곳에서 온 것 같았지만, 동시에 너무 가까웠다.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어머니가 붙잡았다.
푸리나는 손을 들었다.
“괜찮아.”
그 말은 왕의 허락이 아니었다.
극장주의 안내였다.
“무대 위로 올라오지 않아도 돼. 말은 닿을 거야.”
아이는 그 자리에 선 채 울었다.
“아버지.”
사르키스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 한마디에 아이가 무너졌다.
아이는 그동안 품고 있던 말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나 화냈어. 아버지한테 화냈어.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갔잖아. 거짓말했잖아. 금방 온다고 했잖아. 내가 미워한다고 했어.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했어.”
객석의 어른들이 눈을 감았다.
아이의 말은 너무 작고, 너무 어린 원망이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사르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한다.”
아이가 숨을 멈췄다.
“화났어?”
“아니.”
“왜?”
“무서웠던 거잖아.”
아이는 울음을 삼키지 못했다.
사르키스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도 무서웠다.”
그 말에 객석이 흔들렸다.
영웅은 보통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서워할 수 있었다.
병사는 무서워할 수 있었다.
성문을 열어두고 죽은 사람도 무서워할 수 있었다.
사르키스는 말했다.
“문을 닫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닫고 싶었다.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졌고, 손은 떨렸고, 뒤에서는 빨리 닫으라고 소리쳤다.”
그는 아이가 들고 있는 담요를 보았다.
“그런데 마지막 수레에 네 또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숨을 죽였다.
“그래서 조금만 더 열어두기로 했다.”
“그래서 죽었어?”
사르키스는 잠시 침묵했다.
여관 주인은 그 침묵을 막지 않았다.
마침내 사르키스가 말했다.
“그래.”
아이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그 아이가 미워.”
사르키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라.”
“왜?”
“내가 선택한 일이야.”
아이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사르키스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너를 버리고 간 게 아니다. 그 아이를 살리려고 한 것도, 네가 사는 세상이 그런 문이 닫히지 않는 곳이었으면 해서였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그것은 대사라기보다 유언이었다.
사르키스는 어머니를 보았다.
“미안해.”
어머니는 입을 막았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하나면 충분한 일이 있다.
그 말을 너무 길게 늘이면, 오히려 견딜 수 없게 되는 일이 있다.
그는 다시 아이를 보았다.
“밥 먹어라.”
아이가 울다가 멈췄다.
“뭐?”
“밥 먹어. 네 어머니 말 듣고. 자라라. 그리고 나를 너무 멋진 사람으로 기억하지 마라.”
객석에서 아주 작은 웃음이 흘렀다.
사르키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많이 무서웠고, 발도 느렸고, 네가 싫어하는 콩수프를 좋아했다.”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콩수프 싫어.”
“안다.”
“진짜 싫어.”
“그것도 안다.”
“아버지도 싫어했잖아. 엄마한테만 좋아한다고 했잖아.”
어머니가 울다가 웃었다.
사르키스의 그림자가 아주 조금 밝아진 듯했다.
“들켰군.”
그 순간 마당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푸리나는 그 작은 웃음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박수로 만들지는 않았다.
이건 웃어도 되는 방이었다.
그러나 환호할 방은 아니었다.
사르키스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 마지막 말이 네 원망이면,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으냐.”
아이는 코를 훌쩍였다.
사르키스는 말했다.
“그러니 바꿔두자.”
“뭐로?”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못한 채 물었다.
“그건 아버지가 하는 말이잖아.”
“그래.”
사르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네가 대답해주는 말이 있다.”
아이는 입술을 떨었다.
오래전, 사르키스가 일하러 나갈 때마다 아이가 하던 말.
너무 평범해서 마지막 말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말.
아이는 한참 뒤에야 말했다.
“다녀와.”
사르키스는 눈을 감았다.
그 말이 닿았다.
무대 위의 의자가 아주 조용히 삐걱거렸다.
사르키스는 여관 주인을 보았다.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차는 아직 따뜻합니다.”
사르키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의 그림자가 천천히 옅어졌다.
아이는 달려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멈췄다.
아버지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관은 감옥이 아니었다.
하지만 산 자의 집도 아니었다.
사르키스는 마지막으로 아이와 어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문패 아래의 작은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다만 등불빛이 조금 낮아졌다.
아이의 손에서 담요 끝이 풀렸다.
어머니가 아이를 끌어안았다.
마당에는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 속에서 푸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먼저 박수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숙였다.
병사들도.
피난민들도.
아이들도.
배우들도.
죠니는 창을 세워두고 고개를 숙였다.
레이튼은 모자를 벗었다.
하융은 닫히는 창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그레이는 장부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여관 주인은 문패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더 걷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은 사르키스에게 한 말이었다.
그러나 객석의 모두가 들었다.
푸리나는 그 침묵이 충분히 머물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늘의 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하지만 이 장면은 여기서 쉬어갈 거야.”
그녀는 아이를 보았다.
“괜찮다면, 다음 막은 네가 울음을 다 울고 난 뒤에 시작할게.”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담요를 품에 안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푸리나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손을 내려 무대 뒤의 배우들에게 신호했다.
기다리자.
극장은 기다렸다.
여관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알았다.
죽은 자가 돌아온다는 것은, 기적처럼 환호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아주 조심스럽게 열리는 문이었다.
다녀오라는 말을 되돌려주기 위해, 잠깐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문.
그 문 앞에서 산 자들은 울었고, 죽은 자는 쉬러 돌아갔다.
그리고 푸리나 헤툼의 극장은 그날 밤, 처음으로 무대가 아니라 여관이 되었다.
아이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원래라면 무대까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야전 여관의 마당에는 아직 박수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는 친구의 마지막 농담 때문에 웃고 있었고, 누군가는 가족이 남긴 포대기와 편지와 나무 말을 보며 눈을 훔치고 있었다. 악사의 현은 아직 가늘게 떨렸고, 천막 위의 저녁빛은 점점 푸른색으로 식어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 목소리는 들렸다.
“아버지.”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고개를 들었다.
그 한마디는 박수보다 작았고, 울음보다 조심스러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극장의 가장 깊은 곳에서 울린 종소리처럼 그녀에게 닿았다.
그 아이는 객석 뒤쪽에 앉아 있었다.
아까 입장할 때 울던 아이였다.
여관 주인이 담요를 건네주었던 아이.
무서운 소리가 나면 담요 끝을 잡으라고 배웠던 아이.
지금도 아이는 담요 끝을 잡고 있었다.
너무 세게 잡아서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려 있었다.
아이의 어머니가 놀라 아이를 끌어안으려 했다.
“쉿, 괜찮아.”
아이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공연 중이야.”
“아버지 이름…… 말해도 된댔어.”
아이의 목소리는 떨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또렷했다.
“문패에 적어준댔어.”
어머니의 얼굴이 굳었다.
푸리나는 움직이지 않았다.
무대 위에서는 다음 장면을 준비하던 배우들이 그녀의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만인 역의 배우는 아직 퇴장하지 않은 채 막 뒤에 서 있었고, 친구 역의 악사는 술잔을 들고 멈춰 있었다. 가족 역 배우들도 서로를 보았다.
원래대로라면 다음 장면은 “선행”이 등장할 차례였다.
만인이 돌아간 뒤, 살아 있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지 보여주는 장면.
푸리나는 이 장면을 조금 밝게 만들 생각이었다.
우물 고치기, 빵 나누기, 편지 읽기, 화해하기 같은 작은 장면들을 이어 붙여 관객들이 “아직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리게 만들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객석 뒤에서 다른 장면이 시작되고 있었다.
푸리나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배우들이 그 뜻을 알아차리고 움직임을 멈췄다.
죠니가 낮게 말했다.
“멈추는 거야?”
푸리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응.”
“괜찮겠어?”
“좋은 즉흥은 받아야지.”
죠니는 아이가 있는 쪽을 보았다.
“이번 건 즉흥이라기보단…… 다른 쪽에서 들어온 장면 같은데.”
“그래도 무대에 올라왔어.”
푸리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럼 받아야 해.”
그레이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객석 뒤쪽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갑작스러운 소란이 나지 않도록 손짓으로 주변 사람들을 진정시키며, 아이와 어머니 앞에 무릎을 굽혔다.
“괜찮습니다.”
그레이의 목소리는 작았다.
“천천히 말씀하셔도 됩니다.”
어머니는 당황했다.
“죄송합니다, 공연을 방해하려던 게 아니라—”
“방해가 아닙니다.”
그레이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은 짧았지만, 이상하게 단단했다.
어머니는 입술을 떨었다.
아이의 손은 여전히 담요 끝을 붙잡고 있었다.
무대 구석에 서 있던 여관 주인이 천천히 객석 뒤편으로 걸어왔다.
그의 걸음은 빠르지 않았다.
누구도 밀어내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비키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조금씩 길을 열었다.
마치 여관 복도에서 주인이 손님 방으로 가는 것을 본 사람들처럼.
그는 아이 앞에 섰다.
그리고 낮게 물었다.
“두고 온 이름이 있으십니까?”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요.”
“성함을 말씀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아이는 입을 열었다.
하지만 이름은 바로 나오지 않았다.
그 아이에게 아버지는 이름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등에 업혀 보았던 높이였다.
손바닥에 남은 굳은살이었다.
밤에 돌아오면 나는 땀과 흙 냄새였다.
목재를 자르던 소리였고, 수프를 식혀주던 입김이었고, 잘못을 했을 때 크게 혼내다가도 나중에 빵의 가장 부드러운 부분을 남겨주던 사람이었다.
아이는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름을 말하는 순간, 아버지가 정말로 죽은 사람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는 담요 끝을 더 세게 잡았다.
“말하면…… 진짜 가버려요?”
여관 주인은 잠시 침묵했다.
그는 쉽게 괜찮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미 먼 길을 가신 분도 계십니다.”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여관 주인은 아주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름을 말한다고 해서 더 멀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길을 잃지 않도록 등불을 드는 일에 가깝지요.”
“등불?”
“예.”
여관 주인은 손에 든 빈 문패를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이름이 없는 문은 열리기 어렵습니다. 이름을 적으면, 손님께서 쉬실 방을 찾기가 조금 쉬워집니다.”
아이는 문패를 보았다.
그것은 아주 평범한 나무 조각이었다.
왕궁의 금패도 아니었고, 성당의 비석도 아니었다.
그러나 그 평범함이 오히려 아이를 조금 안심시켰다.
아이는 작게 말했다.
“사르키스.”
그레이가 곧바로 품에서 작은 장부를 꺼냈다.
손이 조금 떨렸다.
“성은요?”
어머니가 조용히 대답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레이는 이름을 적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획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숫자 하나를 적는 손이 아니었다.
사람 하나를 다시 세상에 세우는 손이었다.
그레이가 물었다.
“확인된 사망 장소는……?”
어머니는 대답하려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아이가 대신 말했다.
“남쪽 성문.”
그레이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남쪽 성문.
지난 공성전에서 마지막 피난민 수레가 들어올 때, 성문을 닫지 않고 버틴 병사들이 있었다.
문을 닫으면 살 수 있었고, 조금 더 열어두면 죽을 가능성이 커졌다.
그들은 열어두었다.
그 명단은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았다.
불타버린 기록소에서 일부 서류가 사라졌고, 시신을 찾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그래서 장부에는 아직 빈칸이 있었다.
「남쪽 성문 방어조. 미확인 사망자 3명.」
그레이는 그 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찾았습니다.”
어머니가 숨을 멈췄다.
그레이는 장부를 펼쳐 보여주지 않았다.
그것은 아직 너무 날것이었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남쪽 성문 방어조 미확인자 중 한 명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지금 이름을 채우겠습니다.”
아이는 물었다.
“그럼 아버지는 이제 한 명이에요?”
그레이의 눈이 흔들렸다.
그 말은 너무 정확했다.
그 아이는 숫자의 잔인함을 배우기에는 너무 어렸다.
하지만 이미 알고 있었다.
사람이 이름 없이 적히면, 한 명이라는 말조차 얼마나 멀어지는지를.
그레이는 대답했다.
“네.”
목소리가 조금 떨렸지만, 그녀는 끝까지 말했다.
“이제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입니다.”
아이는 울기 시작했다.
어머니도 아이를 끌어안았다.
객석은 조용했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
누구도 울음을 말리지 않았다.
푸리나는 그 침묵을 끊지 않았다.
이 방은 조용해야 한다.
그녀는 그렇게 느꼈다.
무대는 잠시 극장이 아니라 방이 되었다.
울고 싶은 사람이 울 수 있는 방.
누구도 재촉하지 않는 방.
이름이 숫자에서 빠져나와 문패가 되는 방.
여관 주인은 빈 문패를 들었다.
“적어도 되겠습니까?”
아이가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어머니도 고개를 숙였다.
그레이는 장부의 이름을 조심스럽게 다시 읽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여관 주인이 문패에 손가락을 얹었다.
잉크도 칼도 없었다.
그러나 나무 위에 글자가 천천히 떠올랐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 글자는 빛나지 않았다.
천둥도 없었다.
신성한 음악도 울리지 않았다.
그냥 오래된 여관 문패처럼, 거기에 이름이 생겼다.
그 순간, 객석 뒤쪽의 등불 하나가 흔들렸다.
하융이 고개를 들었다.
회색빛 창호 너머에서 닫힌 줄 알았던 가능성 하나가 아주 천천히 열렸다.
아버지가 아무 말도 남기지 못한 세계.
아이가 마지막 기억을 자기 잘못으로만 품고 자라는 세계.
어머니가 남쪽 성문이라는 말만 들으면 평생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세계.
그 창의 유리가 금이 갔다.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른 창이 보였다.
아이가 언젠가 아버지의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세계.
그레이의 장부에 빈칸이 줄어드는 세계.
남쪽 성문에서 죽은 이들이 “미확인자 3명”이 아니라,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세계.
하융은 낮게 중얼거렸다.
“창이…… 열렸소.”
레이튼이 곁에서 물었다.
“닫힌 결론이 질문으로 돌아간 겁니까?”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오. 이번에는 이름이 돌아왔소.”
레이튼은 조용히 수첩을 덮었다.
“그렇다면 질문은 잠시 쉬어도 되겠군요.”
문패가 완성되자, 여관 주인은 그것을 무대 뒤편의 작은 문 옆에 걸었다.
그 문은 아까부터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모두가 그것을 보았다.
극 중 마지막 여관으로 이어지는 문.
그러나 동시에, 마당 어딘가에 실제로 있는 것 같은 문.
그레이는 그것을 보며 숨을 죽였다.
푸리나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조명을 낮춰.”
그녀는 작게 말했다.
악사가 손을 멈췄다.
등불을 든 시종들이 천천히 빛을 낮추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조금 더 흐려졌다.
푸리나는 무대 위로 걸어 나왔다.
관객들이 그녀를 보았다.
원래대로라면 그녀는 해설자로 등장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푸리나는 군주이자 극작가였다.
그리고 지금, 자기 극장에 실제 손님이 들어왔다.
그녀는 고개를 숙였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 이름이 마당에 울렸다.
한 번.
왕의 목소리로.
푸리나는 말을 이었다.
“남쪽 성문을 지킨 사람.”
두 번.
극작가의 목소리로.
“마지막 수레가 지나갈 때까지 문을 닫지 않은 사람.”
세 번.
여관좌의 휴식의 별로서.
“오늘 이 무대에, 당신의 자리를 마련합니다.”
그 순간 푸리나의 [여관:극장]이 조용히 숨을 쉬었다.
화려한 조명은 없었다.
박수도 없었다.
커튼콜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당의 모든 사람이 느꼈다.
의자 하나가 더 놓였다.
비어 있지만 비어 있지 않은 의자.
죽은 자를 끌어내기 위한 자리가 아니었다.
망자를 병력으로 부르기 위한 자리도 아니었다.
그저 이름이 없는 채 떠돌지 않도록, 잠깐 앉을 수 있는 자리였다.
여관 주인은 그 의자를 보았다.
그리고 푸리나에게 아주 작게 고개를 숙였다.
그것은 허락도 아니고, 칭찬도 아니었다.
오히려 주인이 다른 주인장에게 건네는 조용한 인사 같았다.
“좋은 자리입니다.”
푸리나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기묘하게도, 그 한마디가 어떤 박수보다 크게 느껴졌다.
그때 아이가 물었다.
“아버지는…… 저기 앉아요?”
여관 주인은 아이를 보았다.
“오실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가 숨을 삼켰다.
“오신다고요?”
“손님께서 원하신다면.”
여관 주인은 천천히 말했다.
“그리고 그것이 이곳에 큰 소란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푸리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자신이 아주 조심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것은 그녀의 극이 아니다.
아니, 극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이 장면은 누군가의 실제 마지막 말과 닿아 있었다.
여관은 감옥이 아니다.
손님이 잠깐 바깥 공기를 쐬러 나가겠다면, 주인은 문을 잠그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부활이 아니었다.
소환도 아니었다.
푸리나가 자기 예술을 위해 망자를 무대 위로 끌어내는 일도 아니었다.
그것은 손님이 잠시 나들이를 다녀오는 일.
그 정도로 부드럽고, 그 정도로 위험한 일.
여관 주인은 문패 아래에 손을 얹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님.”
마당의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았다.
“두고 온 말이 있으십니까?”
대답은 없었다.
그러나 모두가 기다렸다.
여관 주인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레이는 장부를 닫지 않았다.
하융은 창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레이튼은 질문하지 않았다.
죠니는 아이들 쪽으로 몸을 돌려, 혹시 무서워하는 아이가 있으면 바로 밖으로 데려갈 수 있게 섰다.
푸리나는 무대 중앙에서 손을 내린 채 기다렸다.
기다림.
그것도 여관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한 순간 같기도 했고, 긴 밤 같기도 했다.
그러다 의자 위에 그림자가 생겼다.
처음에는 등불이 흔들린 탓처럼 보였다.
그림자가 조금 짙어졌다.
그리고 사람의 형태가 되었다.
갑옷은 없었다.
화려한 무기도 없었다.
남쪽 성문을 지킨 영웅처럼 꾸미지도 않았다.
그는 피곤한 남자처럼 보였다.
어깨가 넓고, 손이 거칠고, 머리카락에는 먼지가 묻어 있었다. 옷자락은 성문 근처의 흙과 재를 머금은 것처럼 어두웠다. 얼굴은 뚜렷하지 않았지만, 아이는 바로 알아보았다.
“아버지.”
그림자는 아이를 보았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은 일어서지 않았다.
그는 잠깐 바깥에 나온 손님이었다.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여관 주인이 조용히 말했다.
“오래 걸리지는 않으실 겁니다.”
사르키스는 고개를 숙였다.
“압니다.”
그 목소리는 먼 곳에서 온 것 같았지만, 동시에 너무 가까웠다.
아이는 어머니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다.
어머니가 붙잡았다.
푸리나는 손을 들었다.
“괜찮아.”
그 말은 왕의 허락이 아니었다.
극장주의 안내였다.
“무대 위로 올라오지 않아도 돼. 말은 닿을 거야.”
아이는 그 자리에 선 채 울었다.
“아버지.”
사르키스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 한마디에 아이가 무너졌다.
아이는 그동안 품고 있던 말을 한꺼번에 토해냈다.
“나 화냈어. 아버지한테 화냈어. 가지 말라고 했는데 갔잖아. 거짓말했잖아. 금방 온다고 했잖아. 내가 미워한다고 했어. 마지막으로 그렇게 말했어.”
객석의 어른들이 눈을 감았다.
아이의 말은 너무 작고, 너무 어린 원망이었다.
그래서 더 아팠다.
사르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한다.”
아이가 숨을 멈췄다.
“화났어?”
“아니.”
“왜?”
“무서웠던 거잖아.”
아이는 울음을 삼키지 못했다.
사르키스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나도 무서웠다.”
그 말에 객석이 흔들렸다.
영웅은 보통 무서워하지 않는다.
하지만 아버지는 무서워할 수 있었다.
병사는 무서워할 수 있었다.
성문을 열어두고 죽은 사람도 무서워할 수 있었다.
사르키스는 말했다.
“문을 닫고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닫고 싶었다. 말발굽 소리가 가까워졌고, 손은 떨렸고, 뒤에서는 빨리 닫으라고 소리쳤다.”
그는 아이가 들고 있는 담요를 보았다.
“그런데 마지막 수레에 네 또래 아이가 있었다.”
아이는 숨을 죽였다.
“그래서 조금만 더 열어두기로 했다.”
“그래서 죽었어?”
사르키스는 잠시 침묵했다.
여관 주인은 그 침묵을 막지 않았다.
마침내 사르키스가 말했다.
“그래.”
아이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그 아이가 미워.”
사르키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지 마라.”
“왜?”
“내가 선택한 일이야.”
아이의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사르키스는 아주 조용히 말했다.
“너를 버리고 간 게 아니다. 그 아이를 살리려고 한 것도, 네가 사는 세상이 그런 문이 닫히지 않는 곳이었으면 해서였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눈을 감았다.
그것은 대사라기보다 유언이었다.
사르키스는 어머니를 보았다.
“미안해.”
어머니는 입을 막았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하나면 충분한 일이 있다.
그 말을 너무 길게 늘이면, 오히려 견딜 수 없게 되는 일이 있다.
그는 다시 아이를 보았다.
“밥 먹어라.”
아이가 울다가 멈췄다.
“뭐?”
“밥 먹어. 네 어머니 말 듣고. 자라라. 그리고 나를 너무 멋진 사람으로 기억하지 마라.”
객석에서 아주 작은 웃음이 흘렀다.
사르키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나는 많이 무서웠고, 발도 느렸고, 네가 싫어하는 콩수프를 좋아했다.”
아이가 울면서 말했다.
“콩수프 싫어.”
“안다.”
“진짜 싫어.”
“그것도 안다.”
“아버지도 싫어했잖아. 엄마한테만 좋아한다고 했잖아.”
어머니가 울다가 웃었다.
사르키스의 그림자가 아주 조금 밝아진 듯했다.
“들켰군.”
그 순간 마당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
푸리나는 그 작은 웃음을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박수로 만들지는 않았다.
이건 웃어도 되는 방이었다.
그러나 환호할 방은 아니었다.
사르키스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내 마지막 말이 네 원망이면, 그건 너무 억울하지 않으냐.”
아이는 코를 훌쩍였다.
사르키스는 말했다.
“그러니 바꿔두자.”
“뭐로?”
“다녀오겠습니다.”
아이는 울음을 멈추지 못한 채 물었다.
“그건 아버지가 하는 말이잖아.”
“그래.”
사르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네가 대답해주는 말이 있다.”
아이는 입술을 떨었다.
오래전, 사르키스가 일하러 나갈 때마다 아이가 하던 말.
너무 평범해서 마지막 말이 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던 말.
아이는 한참 뒤에야 말했다.
“다녀와.”
사르키스는 눈을 감았다.
그 말이 닿았다.
무대 위의 의자가 아주 조용히 삐걱거렸다.
사르키스는 여관 주인을 보았다.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차는 아직 따뜻합니다.”
사르키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그의 그림자가 천천히 옅어졌다.
아이는 달려가려 했지만, 이번에는 멈췄다.
아버지가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여관은 감옥이 아니었다.
하지만 산 자의 집도 아니었다.
사르키스는 마지막으로 아이와 어머니를 보았다.
그리고 문패 아래의 작은 문 안쪽으로 사라졌다.
문은 닫히지 않았다.
다만 등불빛이 조금 낮아졌다.
아이의 손에서 담요 끝이 풀렸다.
어머니가 아이를 끌어안았다.
마당에는 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 속에서 푸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가 먼저 박수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이 하나둘 고개를 숙였다.
병사들도.
피난민들도.
아이들도.
배우들도.
죠니는 창을 세워두고 고개를 숙였다.
레이튼은 모자를 벗었다.
하융은 닫히는 창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
그레이는 장부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여관 주인은 문패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더 걷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은 사르키스에게 한 말이었다.
그러나 객석의 모두가 들었다.
푸리나는 그 침묵이 충분히 머물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늘의 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
“하지만 이 장면은 여기서 쉬어갈 거야.”
그녀는 아이를 보았다.
“괜찮다면, 다음 막은 네가 울음을 다 울고 난 뒤에 시작할게.”
아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담요를 품에 안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푸리나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손을 내려 무대 뒤의 배우들에게 신호했다.
기다리자.
극장은 기다렸다.
여관도 기다렸다.
그리고 그 기다림 속에서, 사람들은 처음으로 알았다.
죽은 자가 돌아온다는 것은, 기적처럼 환호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아주 조심스럽게 열리는 문이었다.
다녀오라는 말을 되돌려주기 위해, 잠깐 열렸다가 다시 닫히는 문.
그 문 앞에서 산 자들은 울었고, 죽은 자는 쉬러 돌아갔다.
그리고 푸리나 헤툼의 극장은 그날 밤, 처음으로 무대가 아니라 여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