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46여관◆zAR16hM8he(7ce028f3)2026-05-11 (월) 09:18:00
6막. 도착하지 못한 편지들

늙은 여인이 무대 위로 올라오는 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녀의 걸음이 느려서만은 아니었다.
편지 묶음이 무거워서만도 아니었다.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객석의 사람들은 아주 조심스럽게 몸을 비켰다. 부상병은 다리를 당겼고, 아이들은 무릎 위의 담요를 끌어안은 채 고개를 숙였다. 누군가는 여인의 팔을 잡아주려 손을 내밀었다가, 그녀가 괜찮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이자 손을 거두었다.

그녀는 스스로 걸었다.

그렇게 해야 하는 길이라는 듯이.

무대 위의 긴 탁자 앞에 도착했을 때, 여인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의 손에는 오래된 끈으로 묶인 편지들이 있었다. 종이는 눅눅했고, 모서리는 닳아 있었으며, 몇몇 봉투에는 여러 번 지웠다가 다시 쓴 주소가 남아 있었다.

그레이가 그녀 앞에 섰다.

“성함을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여인은 고개를 들었다.

“마리암입니다. 마리암 토로시안.”

그레이는 장부를 펼쳤다.

“피난민 명단에 있습니다. 북쪽 마을 출신, 맞습니까?”

“예.”

“가족은…….”

그레이의 목소리가 아주 조금 낮아졌다.

마리암은 먼저 대답했다.

“아들 둘이 있었습니다.”

있었습니다.

그 한 단어가 무대 위에 작게 놓였다.

푸리나는 그 말을 바로잡지 않았다.
그레이도 바로잡지 않았다.
여관 주인도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이 지금 그 여인이 들고 온 짐의 무게였기 때문이다.

마리암은 편지 묶음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큰아이는 전사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름은 하코브. 남쪽 산길에서 후퇴하는 피난민들을 지키다가 죽었다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그레이는 장부를 넘겼다.

“하코브 토로시안.”

그녀는 손가락으로 줄을 찾았다.

“확인되어 있습니다. 남쪽 산길 후위대. 전사자 명단에 있습니다. 유해는…….”

그레이는 잠깐 멈췄다.

마리암이 조용히 말했다.

“없지요?”

그레이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예. 아직 찾지 못했습니다.”

마리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알고 있었다는 얼굴이었다.

“둘째는요?”

그레이가 물었다.

마리암의 손이 편지 묶음 위에서 떨렸다.

“아람.”

그레이는 장부를 넘겼다.

넘겼다.

또 넘겼다.

그녀의 눈이 점점 좁아졌다.

“아람 토로시안…… 북쪽 연락로 전령 보조. 마지막 확인 지점은 카르미르 고개.”

마리암은 숨을 죽였다.

그레이는 천천히 말했다.

“사망 확인은 없습니다.”

마리암의 손이 멈췄다.

“그 말은…….”

“실종입니다.”

그레이는 고개를 들었다.

“확정된 사망자가 아닙니다.”

마당이 술렁였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금방 퍼졌다. 사람들은 희망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었다. 전쟁 중 실종이라는 말은 때로 죽음보다 잔인했다. 죽었다고 믿으면 울 수 있다. 살아 있다고 믿으면 기다려야 한다. 기다림은 사람을 아주 천천히 말린다.

마리암은 그 사실을 가장 잘 아는 얼굴이었다.

“그럼…… 이 편지들은 어디로 보내야 합니까?”

그녀는 묶음을 풀었다.

편지들이 탁자 위에 펼쳐졌다.

하코브에게 보낸 편지.
아람에게 보낸 편지.
하코브가 전쟁 전 남긴 편지.
아람이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
받는 사람의 주소가 불타 사라진 편지.
수신인이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 알 수 없어, 끝내 보내지 못한 편지.

편지들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그 안에는 몇 해의 아침과 저녁이 들어 있었다.

“큰아이는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편지는…… 마지막 여관으로 보내야 합니까?”

마리암은 편지 하나를 집었다.

“둘째는 죽었다는 말도, 살았다는 말도 없습니다. 그러면 이 편지는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녀는 또 다른 편지를 들었다.

“그리고 이것은…….”

그녀의 손이 세 번째 편지 위에서 멈췄다.

봉투는 다른 것보다 덜 낡아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 더 많이 만져진 흔적이 있었다.

“이것은 아람이 보낸 편지입니다. 그런데 도착한 날짜가 이상합니다.”

레이튼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

푸리나는 그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레이튼?”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레이튼은 마리암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편지를 보아도 되겠습니까?”

마리암은 망설였다.

그레이가 부드럽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레이튼 경은 답을 빼앗는 분이 아닙니다. 질문을 정리해주는 분입니다.”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과찬입니다만, 오늘은 그 정도 역할이 적당하겠군요.”

마리암은 편지를 내밀었다.

레이튼은 봉투를 받았다.

그는 편지를 펼치기 전에 먼저 봉투를 보았다.
주소.
날짜.
봉인.
흙.
접힌 방향.
다시 붙인 흔적.
잉크가 번진 부분.

그는 편지를 천천히 열었다.

마당은 조용했다.

레이튼이 읽기 시작했다.

“어머니께. 저는 아직 괜찮습니다.”

마리암의 입술이 떨렸다.

“그 아이 글씨입니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필체는 이전 편지와 이어집니다.”

그는 계속 읽었다.

“카르미르 고개는 생각보다 춥습니다. 형은 여기 없습니다. 형이 남쪽 산길로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어머니께는 괜찮다고 쓰라고 했겠지만, 형은 늘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었으니 믿지는 마십시오.”

객석에서 작게 웃음이 새었다.

마리암도 울면서 웃었다.

“맞습니다. 하코브는 늘 그랬습니다.”

레이튼은 편지를 조금 내려다보았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합니다.”

그는 다시 읽었다.

“저희 연락대는 내일 새 길로 이동합니다. 본래 길은 막혔습니다. 하지만 기사단장 쪽 기병대가 산길을 한 번 열어준다면, 편지는 늦어도 닿을 겁니다. 어머니, 제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이 편지는 먼저 도착할 겁니다.”

죠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레이튼은 편지를 접지 않았다.

“날짜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봉투를 보았다.

“마지막 확인 지점 이후입니다.”

무대 뒤쪽이 조용해졌다.

마리암은 이해하지 못한 듯 물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레이튼은 그녀를 보았다.

“부인, 이 편지는 아람 님이 실종 처리된 이후에 쓰였습니다.”

그레이의 손이 장부 위에서 멈췄다.

마리암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럼…… 살아 있었다는 뜻입니까?”

레이튼은 곧장 답하지 않았다.

그것이 레이튼이었다.

그는 희망을 성급하게 이름 붙이지 않았다.
절망도 성급하게 확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마리암의 얼굴이 흔들렸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하지만 죽었다고 단정하기에도 이릅니다.”

그 말에 마당의 공기가 달라졌다.

희망이 환호처럼 터지지는 않았다.

다만 닫힌 문 아래로 아주 얇은 빛이 새어 들어오는 것 같았다.

레이튼은 편지를 탁자 위에 놓았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편지는 왜 늦게 도착했는가. 누가 가지고 있었는가. 그리고 아람 님은 편지를 쓴 뒤 어느 길로 향했는가.”

그는 여관 주인을 보았다.

“그리고 또 하나.”

여관 주인이 조용히 시선을 맞추었다.

레이튼은 물었다.

“이 편지는 가장 끝의 여관으로 가야 할 편지입니까?”

마당 전체가 여관 주인을 보았다.

여관 주인은 편지 위에 손을 얹지 않았다.

그는 마치 아직 손댈 때가 아니라는 듯, 아주 조금 거리를 두고 섰다.

“아직은 아닙니다.”

마리암이 숨을 멈췄다.

푸리나가 작게 물었다.

“왜?”

여관 주인은 그녀를 보았다.

“수신인이 아직 방을 잡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 말은 기적의 선언이 아니었다.

“살아 있다”는 말도 아니었다.
“반드시 찾을 수 있다”는 약속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문패에 아직 이름을 새기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마리암은 무너졌다.

그녀는 편지들을 끌어안고 주저앉을 뻔했다. 그레이가 한 걸음 다가가 팔을 받쳤다.

“앉으십시오.”

그레이는 의자를 가져오지 않았다.

여관 주인이 이미 가져오고 있었다.

언제 가져왔는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그는 마리암 뒤에 의자를 놓았다.

“잠시 앉으시지요.”

마리암은 앉았다.

그녀는 울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울었다.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극이 다시 깊어지고 있었다.

아니, 깊어진다기보다 넓어지고 있었다.

하나의 가족.
하나의 이름.
하나의 편지.

그리고 그 뒤로 따라오는 수많은 미도착의 말들.

푸리나는 손을 들었다.

“좋아.”

이번의 “좋아”는 평소처럼 튀어 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시작의 말이었다.

“오늘 이 극장은 우체국이야.”

객석이 그녀를 보았다.

푸리나는 무대 위의 긴 탁자를 가리켰다.

“평범한 우체국은 아니야. 여기는 도착하지 못한 말들이, 적어도 길 위에 올라설 수 있는 곳이야.”

그녀는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

그레이는 이미 장부를 펼치고 있었다.

“수신자, 발신자, 마지막 확인 위치, 생사 확인 여부, 전달 경로를 분류하겠습니다.”

푸리나는 웃었다.

“내가 말하기 전에 준비했네.”

“필요해 보였습니다.”

“좋아. 최고.”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귀끝이 조금 붉어졌다.

푸리나는 레이튼을 보았다.

“레이튼.”

레이튼은 모자를 살짝 들어 올렸다.

“날짜, 봉인, 경유지, 문장의 모순을 확인하겠습니다. 편지는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지만, 종종 침묵합니다. 그 침묵을 묻겠습니다.”

“멋있어!”

죠니가 낮게 말했다.

“좀 재수 없게 멋있긴 하네.”

레이튼은 웃었다.

“찬사로 듣겠습니다.”

푸리나는 하융을 보았다.

“하융.”

하융은 무대 뒤의 회색빛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착하지 못한 길이 많소.”

그는 천천히 말했다.

“불탄 우편마차. 강에 빠진 전령. 길을 잃은 봉투. 수신자가 죽었다고 오해되어 창고에 묻힌 편지. 적이 일부러 늦춘 길. 그리고…….”

하융의 눈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아주 희미하지만, 닿는 길도 있소.”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끊긴 길은 피하고, 남은 길을 보자.”

하융은 짧게 답했다.

“그리하겠소.”

마지막으로 푸리나는 죠니를 보았다.

“죠니.”

죠니는 이미 표정이 불길했다.

“나한테 편지 읽으라고 하지 마라.”

“아닌데?”

“그럼 뭔데.”

푸리나는 환하게 웃었다.

“배달.”

죠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럴 줄 알았다.”

“길은 네가 제일 잘 뚫잖아.”

“좋은 말이네. 그런데 길이 없으면 편지는 못 가.”

“그래서?”

죠니는 마리암의 편지를 힐끗 보았다.

그리고 무대 바깥, 어두워지는 산길 쪽을 보았다.

“길은 내가 뚫을게. 대신 주소는 정확히 적어. 죽은 사람한테 닿을 편지와 산 사람한테 닿을 편지는 구분해야 해. 둘 다 중요하지만, 가는 길이 달라.”

그 말에 여관 주인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확한 말씀입니다.”

죠니는 그를 보았다.

“칭찬받으려고 한 말은 아닌데.”

“그렇기에 더 좋습니다.”

죠니는 대답하지 않고 고개를 돌렸다.

푸리나는 양손을 펼쳤다.

“자, 그러면 시작하자.”

무대 위의 긴 탁자가 정리되었다.

왼쪽에는 산 자에게 보낼 편지.
오른쪽에는 죽은 자의 문패에 맡길 편지.
가운데에는 수신자를 확인해야 할 편지.
그리고 탁자 끝에는 보내는 사람이 먼저 읽어야 할 편지가 놓였다.

여관 주인이 그 분류를 제안했다.

푸리나는 처음에 의아해했다.

“보내는 사람이 먼저 읽어야 할 편지?”

여관 주인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가끔 편지는 상대에게 가기 전에, 쓴 사람에게 먼저 도착해야 합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이해하자마자 조용해졌다.

그런 편지가 있다는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말하지 못한 사과.
상대가 아니라 자기 죄책감을 덜기 위해 쓴 편지.
죽은 사람에게 보내려 하지만, 사실은 살아 있는 자신에게 허락을 구하는 편지.
읽어야 할 사람은 이미 떠났지만,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그 문장을 읽어야만 앞으로 걸을 수 있는 편지.

푸리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 탁자는…… 방이네.”

여관 주인은 미소 지었다.

“예. 아주 조용한 방입니다.”

사람들이 하나씩 일어났다.

처음에는 마리암뿐이었다.

그 다음은 남쪽 성문의 아이 어머니였다.
그녀는 사르키스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겠다고 했다. 길지 않아도 된다고, 그저 “그 아이는 밥을 먹었다”고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레이가 편지지를 내주었다.

그 다음은 부상병이었다.

그는 죽은 전우의 가족에게 보내야 했던 편지를 아직 쓰지 못했다고 했다.

“뭐라고 써야 할지 몰랐습니다.”

그레이가 물었다.

“사실을 쓰실 수 있습니까?”

“너무 초라합니다.”

레이튼이 부드럽게 말했다.

“초라한 사실이 거짓 위로보다 나을 때가 있습니다.”

부상병은 한참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편지지 위에 첫 문장을 썼다.

「그는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그 한 문장을 쓰고, 그는 한동안 펜을 놓지 못했다.

여관 주인은 그 옆에 차를 놓았다.

“천천히 쓰셔도 됩니다.”

다음은 항구의 여인이었다.

남편이 실종되었고, 그녀는 화가 난 편지를 썼다고 했다. 그러나 보내지 못했다. 편지를 보여주기 부끄럽다고 했다.

푸리나는 물었다.

“욕이 많아?”

여인이 울다가 웃었다.

“예.”

푸리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은 편지일 수도 있어.”

그레이가 작게 말했다.

“폐하.”

“왜? 화도 말이야. 도착해야 할 때가 있어.”

여관 주인은 부드럽게 말했다.

“다만 칼처럼 보내실지, 손수건처럼 접어 보내실지는 고르셔야 합니다.”

여인은 편지를 다시 읽었다.

그리고 몇 줄을 지웠다.

몇 줄은 남겼다.

그 다음은 어린 소년이었다.

그는 자기 자신에게 편지를 쓰고 싶다고 했다.

“왜?”

푸리나가 물었다.

소년은 대답했다.

“나중에 제가 아버지 얼굴을 잊을까 봐요.”

푸리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레이가 조용히 편지지를 밀어주었다.

“그럼 적어두세요.”

소년은 삐뚤삐뚤한 글씨로 썼다.

「아버지는 콩수프를 싫어했다.」

죠니는 그 문장을 보고 아주 작게 웃었다.

“중요하지.”

하융은 그 말을 들으며 회색 창호 너머를 보았다.

소년이 아버지를 영웅상으로만 기억하다가, 어느 날 그 거대한 그림자에 눌리는 세계.
소년이 아버지를 원망만 하다, 자신의 웃음을 부끄러워하는 세계.
그리고 콩수프를 싫어했다는 사소한 문장 하나 때문에, 아버지가 사람으로 남는 세계.

하융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작은 문장이 길을 바꾸는군.”

레이튼은 옆에서 말했다.

“좋은 질문과 좋은 문장은 닮았습니다. 둘 다 결론을 너무 빨리 닫지 않지요.”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대다운 말이오.”

레이튼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그 사이 그레이의 탁자는 점점 바빠졌다.

이름.
주소.
소속.
마지막 확인지.
전달 가능성.
분류.

그레이는 편지를 감동적인 물건으로만 다루지 않았다.

그녀는 편지가 실제로 도착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적었다.

길이 끊겼는지.
수신자가 이동했는지.
동명이인이 있는지.
해당 부대가 어느 방향으로 후퇴했는지.
어떤 여관망을 통해 전달할 수 있는지.
죽은 자의 문패에 맡길 경우, 어느 장례 기록과 연결해야 하는지.

푸리나는 그 모습을 보며 웃었다.

그레이는 정말로 이상한 사람이었다.

조용하고, 소심하고, 자기 말이 길어지면 금방 부끄러워하면서도, 누군가의 말이 길을 잃지 않게 하려면 전쟁보다 집요해졌다.

그레이가 한 편지를 들고 멈췄다.

“이 편지는…… 수신자가 이미 사망 확인되었습니다.”

편지를 가져온 청년이 고개를 숙였다.

“압니다.”

“그럼 이쪽입니다.”

그레이는 오른쪽 탁자를 가리켰다.

죽은 자의 문패에 맡길 편지.

청년은 그쪽으로 가려다가 멈췄다.

여관 주인이 물었다.

“망설이십니까?”

청년은 편지를 꽉 쥐었다.

“이걸 보내면, 정말 끝나는 것 같아서요.”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럼 안 보내도 됩니까?”

“예.”

청년이 놀라 그를 보았다.

여관 주인은 말했다.

“여관은 편지를 빼앗지 않습니다. 아직 품고 있어야 하는 말도 있습니다.”

청년의 눈이 흔들렸다.

“하지만 언젠가는 보내야겠지요?”

“아마도요.”

“언제가 좋습니까?”

여관 주인은 찻잔을 바라보았다.

“편지를 품고 있는 일이 그분을 기억하는 방식이 아니라, 손님을 멈춰 세우는 사슬이 되었을 때.”

청년은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한참 뒤, 그는 오른쪽 탁자에 편지를 올려놓았다.

“그럼 오늘 보내겠습니다.”

여관 주인은 두 손으로 편지를 받았다.

“맡겠습니다.”

푸리나는 그 장면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에 담았다.

그때 레이튼이 다시 마리암의 편지를 펼쳤다.

“죠니 경.”

죠니가 고개를 돌렸다.

“왜.”

“아람 님의 편지에는 ‘기사단장 쪽 기병대가 산길을 한 번 열어준다면’이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사단장이 귀하일 가능성이 있습니까?”

죠니는 편지를 받았다.

그는 글을 읽고 미간을 찌푸렸다.

“내 부대가 그쪽을 지나간 건 맞아. 근데 카르미르 고개 쪽은 길이 무너졌다고 보고받았다.”

레이튼은 말했다.

“보고받았다는 것과 실제로 무너졌다는 것은 다릅니다.”

죠니가 그를 보았다.

“네 질문은 늘 귀찮은데, 가끔 쓸모가 있어.”

“감사합니다.”

“칭찬 아니야.”

“그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하융이 다가왔다.

“그 길은 두 번 무너졌소.”

죠니가 물었다.

“두 번?”

“하나는 실제 산사태. 하나는 무너졌다고 믿은 길.”

하융은 편지의 날짜를 보았다.

“죽은 가능성들 속에서 전령들은 대부분 산사태 앞에서 돌아섰소. 그러나 어떤 가능성에서는…….”

그는 눈을 감았다.

회색빛 창호가 떠올랐다.

눈 덮인 고개.
반쯤 무너진 길.
말을 버리고 걸어가는 전령.
품 안에 편지를 넣고, 바위틈으로 몸을 밀어 넣는 소년.
그 소년은 아람일 수도, 아닐 수도 있었다.

하융은 확정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지나갔소. 길이 완전히 끊긴 것은 아니었소.”

죠니는 짧게 말했다.

“그럼 갈 수 있겠네.”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위험합니다.”

“알아.”

“지금 밤입니다.”

“알아.”

“피난민 호위도 필요합니다.”

“그것도 알아.”

죠니는 편지를 접어 그레이에게 돌려주었다.

“그러니까 지금 바로 달리지는 않아. 새벽에 간다. 말 두 필, 기수 넷. 길 확인이 우선이고, 편지 배달은 그 다음. 생존자 수색 가능성도 열어둬.”

그레이는 잠깐 그를 보았다.

그리고 장부에 적었다.

“새벽 정찰 및 우편 호송. 카르미르 고개 방향. 지휘 죠니 죠스타.”

죠니가 미간을 찌푸렸다.

“벌써 공식 업무로 박은 거냐?”

“필요해 보였습니다.”

푸리나는 웃음을 참았다.

죠니는 한숨을 쉬었다.

“그레이가 장부에 쓰면 빼기도 어렵지.”

마리암은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었다.

아람이 살아 있는지 모른다.
하코브의 유해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편지가 정말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금 전까지 모든 편지는 죽은 방 안에 갇혀 있었다.

이제 적어도 하나의 편지는 새벽 길 위에 올라설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녀의 어깨가 아주 조금 내려갔다.

여관 주인은 편지들을 분류했다.

산 자에게 갈 편지는 그레이의 장부 옆에 놓였다.
죽은 자에게 갈 편지는 문패 아래 작은 상자에 놓였다.
확인해야 할 편지는 레이튼의 수첩과 함께 묶였다.
보내는 사람이 먼저 읽어야 할 편지는 조용한 의자 옆에 놓였다.

그 의자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 많은 사람이 그 의자를 보았다.

푸리나는 무대 중앙으로 돌아왔다.

“좋아.”

이번에는 목소리에 조금 힘이 돌아와 있었다.

“오늘 우리는 편지를 다 배달하지 못했어.”

그녀는 마리암을 보았다.

“아람을 찾았다고 말할 수도 없어.”

그녀는 사르키스의 문패를 보았다.

“하코브를 바로 데려올 수도 없어.”

마리암은 고개를 숙였다.

푸리나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늘, 말들은 길 위에 올라섰어.”

그녀는 객석 전체를 보았다.

“누군가에게 가야 할 말. 문패에 맡겨야 할 말. 아직 주소를 찾아야 할 말. 그리고 자기 자신이 먼저 읽어야 할 말.”

그녀는 손을 펼쳤다.

“이 극장은 오늘 우체국이었고, 여관이었고, 장부였고, 길이었어.”

죠니가 낮게 말했다.

“점점 많아지네.”

푸리나는 못 들은 척했다.

“하지만 괜찮아. 좋은 무대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

그녀는 잠시 멈췄다.

그리고 조금 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만, 모든 말을 오늘 끝내려고 하지는 않을 거야.”

마당이 조용해졌다.

푸리나는 여관 주인을 보았다.

“그건 여관 주인에게 배웠어.”

여관 주인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푸리나는 관객을 향해 웃었다.

“그러니까 오늘 맡길 말이 있는 사람은 맡겨도 좋아. 하지만 아직 품고 있어야 할 말은 품고 있어도 돼. 여관은 빼앗는 곳이 아니니까.”

그 말에 몇몇 사람이 편지를 다시 품에 넣었다.

몇몇 사람은 반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레이는 그 모두를 기록했다.

레이튼은 모순을 묻고, 봉인의 날짜를 확인했다.
하융은 끊긴 길과 남은 길을 가만히 보았다.
죠니는 새벽에 나갈 길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푸리나는 그 모든 장면을 한 편의 군상극처럼 바라보았다.

그리고 여관 주인은, 죽은 자에게 갈 편지들이 담긴 작은 상자를 들었다.

그는 마리암에게 다가갔다.

“하코브 님께 보내는 편지는 이쪽 길로 맡아도 되겠습니까?”

마리암은 떨리는 손으로 편지 하나를 내밀었다.

“답장은…….”

그녀는 말끝을 흐렸다.

여관 주인은 조용히 말했다.

“약속드릴 수 없습니다.”

마리암의 눈이 젖었다.

“그렇겠지요.”

“다만 전하지 못한 말이 문 앞에서 헤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마리암은 편지를 놓았다.

여관 주인은 두 손으로 받았다.

“맡겠습니다.”

마리암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아람의 편지는…….”

그레이가 말했다.

“새벽에 출발합니다.”

죠니가 덧붙였다.

“길부터 확인한다. 살아 있다는 말은 안 해. 하지만 죽었다고 닫지도 않아.”

마리암은 그를 바라보았다.

“부탁드립니다.”

죠니는 조금 불편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부탁까지는 됐어. 할 일이니까 하는 거야.”

푸리나는 작게 웃었다.

“죠니식 다정함.”

“시끄러워.”

“맞잖아.”

“아니야.”

“맞아.”

죠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편지 묶음을 받아들었다.

그 손길은 생각보다 조심스러웠다.

무대의 등불이 하나둘 낮아졌다.

긴 탁자 위에는 아직 많은 편지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것들은 방치된 짐처럼 보이지 않았다.

각각의 편지는 작은 방향을 얻었다.

산 자의 길.
죽은 자의 문.
확인해야 할 길목.
자기 자신에게 돌아가는 방.

푸리나는 그것을 보며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무대가 다시 조금 무거워졌다.

하지만 이번 무게는 사람을 짓누르는 무게가 아니었다.

길을 떠나기 전, 배낭 안에 필요한 것을 챙긴 무게.

여관 주인은 죽은 자에게 갈 편지 상자를 들고 무대 뒤의 문 앞으로 갔다.

그는 문을 열지 않았다.

그저 문 앞에 상자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이쪽 길은 제가 맡겠습니다.”

푸리나는 그 뒷모습을 보았다.

그 순간 그녀는 다시 느꼈다.

저 사람은 극을 빼앗지 않는다.

하지만 극이 닿을 수 없는 문 앞에 서 있다.

푸리나는 관객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자.”

그녀는 웃었다.

조금 지쳤지만, 아직 빛나는 웃음이었다.

“편지는 맡겼고, 길은 정해졌고, 새벽에는 누군가 달릴 거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이제 끝나요?”

푸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끝?”

그녀는 과장되게 손을 가슴에 얹었다.

“아직 주인공이 자기 짐을 정리하지도 않았는데?”

객석에서 작은 웃음이 번졌다.

만인 역의 배우가 무대 중앙으로 돌아왔다.

그의 품에는 이제 많은 것이 있었다.

초대장.
포대기.
읽은 편지.
나무 말.
빈 바구니.
그리고 새로 받은 편지 한 통.

그 편지는 자기 자신에게 쓰는 편지였다.

푸리나는 만인을 바라보았다.

“다음 막은 다시 만인의 이야기야.”

그녀는 관객을 보았다.

“그가 무엇을 들고 마지막 여관에 갈 수 있는지, 이제 정말로 물어볼 시간이야.”

여관 주인은 문 앞에서 돌아보았다.

그의 시선이 아주 잠깐 푸리나에게 닿았다.

푸리나는 그 시선을 받고, 이번에는 먼저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 중앙에 섰다.

극장주처럼.

군주처럼.

그리고 조금은, 여관 주인처럼.

“막은 아직 닫히지 않았어.”

그 말과 함께 6막의 등불이 천천히 낮아졌다.

무대 뒤편에서는 죽은 자에게 가는 편지 상자가 조용히 놓여 있었고, 객석 바깥 마구간에서는 새벽에 달릴 말들이 낮게 숨을 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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