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48여관◆zAR16hM8he(7ce028f3)2026-05-11 (월) 09:22:18
종막. 식지 않은 차와 새벽길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마당은 한동안 극장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그랬다.
뒤집은 상자와 나무 의자들은 아직 객석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고, 천 조각으로 만든 막은 밤바람에 느리게 흔들렸다. 무대 옆 긴 탁자에는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고, 편지를 묶었던 끈 몇 가닥이 등불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의 문패는 더 이상 무대 장치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작은 나무 조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나무 조각 하나가, 그날 밤 마당 전체를 여관으로 바꾸어놓았다.
아이들은 담요를 안고 돌아갔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부상병들은 서로의 어깨를 빌려 막사를 향했다.
마리암 토로시안은 편지 묶음이 사라진 빈손을 자꾸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 빈손은 조금 전보다 덜 무거워 보였다.
편지들은 분류되었다.
죽은 자에게 갈 편지는 문 앞의 작은 상자에 놓였다.
산 자에게 갈 편지는 그레이의 장부와 함께 묶였다.
확인해야 할 편지는 레이튼의 메모와 함께 접혔다.
새벽길을 타야 할 편지는 죠니의 안장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푸리나 헤툼은 아직 무대에 남아 있었다.
“폐하.”
그레이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 중앙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관객을 위해 놓인 의자였다.
아니, 만인을 위해 놓인 의자였고, 사르키스를 위해 놓인 의자였고, 두고 온 말들을 위해 놓인 의자였다.
이제 그 의자에는 푸리나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찻잔을 감싸고 있었다.
여관 주인이 남기고 간 찻잔.
차는 아직 식지 않았다.
그레이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푸리나는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응.”
“정말로요?”
“응.”
“그러면…… 정산을—”
“그레이.”
“예.”
“지금?”
그레이는 입을 다물었다.
죠니가 뒤쪽에서 낮게 웃었다.
“너도 참 대단하다. 방금 신이 다녀간 자리에서 예산 이야기를 꺼내네.”
그레이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신이 다녀갔기 때문에 더더욱 정산해야 합니다. 증빙이 어려운 지출이 많습니다.”
레이튼이 흥미로운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성좌 특별출연에 따른 차 비용’ 같은 항목은 어떻습니까?”
“불허합니다.”
“그럼 ‘객석 안정화용 환대 비용’은?”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건 검토 가능합니다.”
푸리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은 작았다.
공연 중의 웃음처럼 높고 빛나는 웃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 서 있던 사람이 마침내 앉아, 신발을 벗기 직전에 짓는 웃음이었다.
하융은 무대 뒤의 문을 보고 있었다.
문은 아직 조금 열려 있었다.
복도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방도, 문패도, 창도, 등불도 사라졌다.
하지만 문틈으로 아주 약한 차 냄새가 남아 있었다.
하융은 낮게 말했다.
“닫히지 않았소.”
레이튼이 물었다.
“문이 말입니까, 아니면 길이 말입니까?”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둘 다인 듯하오.”
죠니는 안장 끈을 손에 감아쥔 채 마구간 쪽을 보았다.
“그럼 됐어. 길이 열려 있으면 나가면 되지.”
푸리나는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한 모금.
따뜻했다.
차의 맛은 이상할 정도로 평범했다.
꿀도 많이 들어가지 않았고, 향신료도 과하지 않았다. 왕궁에서 마시는 고급 차처럼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냥 따뜻했다.
그래서 좋았다.
푸리나는 눈을 감았다.
그날 밤의 모든 장면이 천천히 지나갔다.
만인이 초대장을 받던 순간.
재산이 남긴 동전.
명성이 맡긴 빈 이름.
권력이 벗어놓은 왕관.
친구가 문 앞까지 잡아준 손.
가족이 남긴 포대기와 편지와 나무 말.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의 문패.
아이의 “다녀와.”
늙은 여인의 편지 묶음.
선행의 빈 바구니.
여관좌의 복도.
그리고 자신의 극장 안쪽에 생긴, 이상한 문패.
「주인장 휴식실」
푸리나는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치사해.”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그 사람. 아니, 그분. 아니…… 뭐라고 불러야 하지?”
레이튼이 말했다.
“오늘 밤의 배역으로는 ‘여관 주인’이 가장 적합해 보입니다.”
죠니가 덧붙였다.
“신이라고 부르면 본인이 좀 불편해할 것 같고.”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주인장.”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래. 주인장.”
그녀는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주인장, 치사해.”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차는 아직 따뜻했다.
푸리나는 계속 말했다.
“내 극장에 멋대로 들어와서 의자 닦고, 차 내고, 문 열고, 마지막에는 내 극장을 자기 여관이랑 연결해버리고.”
죠니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불법 침입 같네.”
“실제로 불법 침입 아니야?”
그레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성좌에게 현행법상 침입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는 검토가 필요합니다.”
레이튼이 눈을 빛냈다.
“흥미로운 법률 문제군요.”
“검토하지 마!”
푸리나가 외쳤다.
그 외침에 모두가 잠깐 웃었다.
그러나 웃음이 가라앉은 뒤, 푸리나는 다시 찻잔을 보았다.
“그래도…… 좋은 손님이었어.”
그레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레이튼이 말했다.
“그리고 좋은 주인장이었지요.”
하융은 덧붙였다.
“좋은 길이었소.”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아직 판단 보류. 새벽길까지 편지가 제대로 가면 그때 좋았다고 하지.”
푸리나는 죠니를 보았다.
“정말 갈 거야?”
죠니는 그녀를 이상하다는 듯 보았다.
“가야지. 장부에 적혔잖아.”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예. 공식 업무입니다.”
“봐라.”
죠니는 안장가방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편지 배달 하나에 왕이 직접 배웅이라니, 과하네.”
푸리나는 찻잔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과하지 않아!”
그레이가 놀라 말했다.
“폐하, 차—”
푸리나는 한 손으로 찻잔을 단단히 잡고, 다른 손으로 죠니를 가리켰다.
“편지가 주인공인 장면도 있는 법이야!”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럼 받아들여!”
“받아들였어. 그러니까 가잖아.”
푸리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리고 다시 앉았다.
그레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폐하, 갑자기 일어나시면 차가 쏟아집니다.”
“안 쏟았어!”
“쏟을 뻔했습니다.”
“안 쏟은 게 중요하지!”
죠니는 마구간으로 향했다.
그레이가 뒤따라가며 편지 묶음과 작은 장부를 건넸다.
“산 자에게 갈 편지입니다. 우선순위는 위에서부터입니다. 첫 번째는 마리암 토로시안 부인의 아들, 아람 토로시안 관련 확인입니다. 카르미르 고개 방향. 마지막 확인 지점은 여기입니다.”
그레이는 지도를 펼쳐 짚었다.
죠니는 고개를 숙여 보았다.
“길이 애매하네.”
하융이 다가와 지도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쪽 길은 가지 않는 게 좋소.”
죠니가 물었다.
“무너졌나?”
“무너지는 가능성이 많소. 실제로 무너졌는지는 모르나, 그 길로 간 전령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소.”
“그럼 제외.”
하융은 다른 길을 짚었다.
“이쪽은 늦소. 하지만 말이 다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소.”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늦어도 도착하는 쪽이 낫지.”
레이튼이 편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 봉인 말입니다.”
죠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또 뭐가 있어?”
“봉인에 묻은 흙이 카르미르 고개 남쪽의 붉은 점토와는 조금 다릅니다. 아마 중간에 한 번 더 경유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디?”
레이튼은 지도 한쪽을 가리켰다.
“이 작은 여관 터입니다. 지금은 폐쇄되었다고 되어 있지만, 편지가 그곳을 지나왔을 수 있습니다.”
그레이가 장부를 확인했다.
“폐쇄 여관. 전쟁 중 기능 상실. 생존 직원 미확인.”
죠니는 지도와 편지를 번갈아 보았다.
“그럼 첫 목적지는 거기네.”
푸리나는 의자에서 말했다.
“거기서 단서를 찾고, 단서가 있으면 따라가고, 없으면?”
죠니가 답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돌아와서 말해야지. 희망을 팔러 가는 게 아니니까.”
마리암은 아직 마당 한쪽에 서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돌아가지 못했다.
돌아가도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죠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살아 있다고 말하러 가는 건 아닙니다.”
마리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죽었다고 닫으러 가는 것도 아닙니다.”
“……압니다.”
죠니는 잠시 말이 없다가, 안장가방을 가볍게 두드렸다.
“편지는 길 위에 올려놓겠습니다.”
마리암은 양손을 모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죠니는 조금 불편한 얼굴을 했다.
“충분하진 않을 겁니다.”
마리암의 눈이 흔들렸다.
죠니는 낮게 말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게 만들겠습니다.”
그 말은 다정한 위로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리암은 오히려 그 말에 깊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죠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말에게 안장을 얹었다.
말은 밤새 쉬었지만, 새벽길을 앞두고 낮게 숨을 뿜었다.
하늘은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다. 동쪽 끝이 잿빛으로 풀리고 있었고, 산등성이 위로 첫 새소리가 아주 조심스럽게 울렸다.
푸리나는 찻잔을 들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폐하, 아직 쉬셔야—”
“배웅만.”
“……배웅만입니다.”
“응!”
그레이는 믿지 않는 눈으로 보았지만, 더 말리지는 않았다.
푸리나는 마구간 앞에 섰다.
죠니는 말 위에 올랐다.
안장가방 안에는 편지들이 있었다.
아직 답을 모르는 편지.
아직 수신자를 찾지 못한 편지.
죽음인지 생존인지 알 수 없는 길 위에 놓인 편지.
푸리나는 그 편지들을 보며 말했다.
“죠니.”
“왜.”
“이것도 다음 막이야.”
죠니는 고삐를 잡았다.
“알아.”
“알아?”
“네가 말할 것 같아서 미리 생각해봤어.”
푸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죠니가 예습을?!”
“그렇게 놀랄 일이냐.”
“응!”
죠니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아주 희미한 웃음이 있었다.
푸리나는 조금 진지하게 말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그건 평범한 말이네.”
“좋은 말은 원래 평범해.”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지.”
그 말을 들은 순간, 푸리나는 문득 사르키스를 떠올렸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와.
그 짧은 말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를 건넜던 밤.
푸리나는 찻잔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죠니는 그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차 마셔. 식기 전에.”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방금 엄청 주인장 같았어.”
“그건 좀 싫은데.”
“왜? 멋있었는데.”
“난 여관 주인보다 배달부가 낫다.”
레이튼이 옆에서 말했다.
“오늘의 죠니 경은 기사단장이자 배달부이며, 동시에 다음 막의 첫 배우군요.”
죠니는 그를 보았다.
“그런 말 붙이면 말이 느려져.”
하융이 조용히 웃었다.
“말은 아직 가볍소. 편지의 무게를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오.”
죠니는 하융을 흘끗 보았다.
“너까지 그러냐.”
그레이는 마지막으로 안장가방의 끈을 확인했다.
“단단히 묶였습니다.”
“고마워.”
그레이는 잠시 멈췄다.
죠니도 자신이 자연스럽게 고맙다고 말한 것을 깨달은 듯 잠깐 눈을 돌렸다.
그레이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죠니는 대답했다.
“가능하면.”
푸리나가 즉시 말했다.
“가능하면이 아니라 반드시!”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반드시 가능하게 해보지.”
그는 고삐를 당겼다.
말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느렸다.
마당을 지나고, 여관 문을 지나고, 아직 밤의 냄새가 남은 길 위로 나아갔다.
그리고 성문 바깥의 새벽길에 닿자, 말발굽 소리가 조금씩 빨라졌다.
탁.
탁.
탁.
마침내 죠니와 전령대는 잿빛 새벽 속으로 달려 나갔다.
편지들이 길 위에 올랐다.
푸리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 보았다.
하늘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그레이는 장부를 품에 안았다.
레이튼은 수첩을 덮었다.
하융은 새벽빛 속에서 닫히지 않은 길을 보았다.
마리암은 손을 모은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푸리나는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차는 아직 따뜻했다.
그녀는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다녀와.”
그 말은 죠니에게 한 말이기도 했고, 편지들에게 한 말이기도 했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
새벽에는 박수보다 말발굽 소리가 어울렸다.
조금 뒤, 푸리나는 다시 무대를 보았다.
빈 객석.
흔들리는 막.
사르키스의 문패.
긴 탁자 위의 잉크 자국.
그리고 자신이 앉았던 의자.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 그 의자 앞에 섰다.
여관 주인이 남긴 찻잔을 보았다.
그 찻잔은 이제 거의 비어 있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좋아.”
그녀는 낮게 말했다.
그레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이 좋으십니까?”
푸리나는 빈 객석을 보았다.
“끝났어.”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마침내?”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공연은.”
하융은 물었다.
“그럼 이야기는?”
푸리나는 성문 너머 새벽길을 보았다.
죠니의 말발굽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길은 남아 있었다.
푸리나는 웃었다.
“계속되지.”
그레이는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왜 한숨이야?”
“계속되면 예산도 계속됩니다.”
푸리나는 순간적으로 굳었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현실적인 결론입니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현실이란 대체로 가장 무거운 가능성이오.”
푸리나는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방금까지 다들 엄청 감동적이었잖아!”
그레이는 차분하게 말했다.
“감동과 정산은 양립합니다.”
푸리나는 찻잔을 들어 보였다.
“이 찻잔은 비용 처리 안 해도 되지?”
그레이는 찻잔을 바라보았다.
“……기증품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성좌 기증품?”
“항목명은 조정하겠습니다.”
레이튼이 즉시 말했다.
“‘출처 미상의 환대 물품’은 어떻습니까?”
그레이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게 낫겠습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희 정말 최고로 이상해.”
죠니는 없었지만, 그가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도 포함이야.”
푸리나는 그 말을 상상하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레이도 장부를 잠시 덮었다.
레이튼도 질문을 멈췄다.
하융도 창밖이 아니라 지금 이 마당을 보았다.
푸리나는 빈 객석을 바라보며 차의 마지막 온기를 손바닥으로 느꼈다.
그날 밤의 마지막 관객은 푸리나 헤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극장에서 처음으로 손님이 되었다.
조금 뒤 해가 떠올랐다.
햇빛은 천 조각으로 만든 막을 비추고, 삐뚤어진 의자와 잉크 묻은 탁자와 작은 문패를 차례로 지나갔다.
무대 뒤의 문은 여전히 아주 조금 열려 있었다.
그 틈새로 더 이상 복도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구도 그 문을 닫으려 하지 않았다.
여관 주인은 떠났다.
극은 끝났다.
그러나 길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길 위에는, 편지를 실은 말발굽 소리가 아직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공연이 끝난 뒤에도, 마당은 한동안 극장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떠난 뒤에도 그랬다.
뒤집은 상자와 나무 의자들은 아직 객석의 모양을 유지하고 있었고, 천 조각으로 만든 막은 밤바람에 느리게 흔들렸다. 무대 옆 긴 탁자에는 잉크 자국이 남아 있었고, 편지를 묶었던 끈 몇 가닥이 등불 아래에 떨어져 있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의 문패는 더 이상 무대 장치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작은 나무 조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 나무 조각 하나가, 그날 밤 마당 전체를 여관으로 바꾸어놓았다.
아이들은 담요를 안고 돌아갔다.
어머니들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
부상병들은 서로의 어깨를 빌려 막사를 향했다.
마리암 토로시안은 편지 묶음이 사라진 빈손을 자꾸 내려다보았다. 그러나 그 빈손은 조금 전보다 덜 무거워 보였다.
편지들은 분류되었다.
죽은 자에게 갈 편지는 문 앞의 작은 상자에 놓였다.
산 자에게 갈 편지는 그레이의 장부와 함께 묶였다.
확인해야 할 편지는 레이튼의 메모와 함께 접혔다.
새벽길을 타야 할 편지는 죠니의 안장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푸리나 헤툼은 아직 무대에 남아 있었다.
“폐하.”
그레이가 조심스럽게 불렀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 중앙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관객을 위해 놓인 의자였다.
아니, 만인을 위해 놓인 의자였고, 사르키스를 위해 놓인 의자였고, 두고 온 말들을 위해 놓인 의자였다.
이제 그 의자에는 푸리나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양손으로 찻잔을 감싸고 있었다.
여관 주인이 남기고 간 찻잔.
차는 아직 식지 않았다.
그레이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폐하, 괜찮으십니까?”
푸리나는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응.”
“정말로요?”
“응.”
“그러면…… 정산을—”
“그레이.”
“예.”
“지금?”
그레이는 입을 다물었다.
죠니가 뒤쪽에서 낮게 웃었다.
“너도 참 대단하다. 방금 신이 다녀간 자리에서 예산 이야기를 꺼내네.”
그레이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신이 다녀갔기 때문에 더더욱 정산해야 합니다. 증빙이 어려운 지출이 많습니다.”
레이튼이 흥미로운 얼굴로 고개를 기울였다.
“‘성좌 특별출연에 따른 차 비용’ 같은 항목은 어떻습니까?”
“불허합니다.”
“그럼 ‘객석 안정화용 환대 비용’은?”
그레이는 잠시 생각했다.
“그건 검토 가능합니다.”
푸리나는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은 작았다.
공연 중의 웃음처럼 높고 빛나는 웃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래 서 있던 사람이 마침내 앉아, 신발을 벗기 직전에 짓는 웃음이었다.
하융은 무대 뒤의 문을 보고 있었다.
문은 아직 조금 열려 있었다.
복도는 이제 보이지 않았다.
수많은 방도, 문패도, 창도, 등불도 사라졌다.
하지만 문틈으로 아주 약한 차 냄새가 남아 있었다.
하융은 낮게 말했다.
“닫히지 않았소.”
레이튼이 물었다.
“문이 말입니까, 아니면 길이 말입니까?”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둘 다인 듯하오.”
죠니는 안장 끈을 손에 감아쥔 채 마구간 쪽을 보았다.
“그럼 됐어. 길이 열려 있으면 나가면 되지.”
푸리나는 찻잔을 입가에 가져갔다.
한 모금.
따뜻했다.
차의 맛은 이상할 정도로 평범했다.
꿀도 많이 들어가지 않았고, 향신료도 과하지 않았다. 왕궁에서 마시는 고급 차처럼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냥 따뜻했다.
그래서 좋았다.
푸리나는 눈을 감았다.
그날 밤의 모든 장면이 천천히 지나갔다.
만인이 초대장을 받던 순간.
재산이 남긴 동전.
명성이 맡긴 빈 이름.
권력이 벗어놓은 왕관.
친구가 문 앞까지 잡아준 손.
가족이 남긴 포대기와 편지와 나무 말.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의 문패.
아이의 “다녀와.”
늙은 여인의 편지 묶음.
선행의 빈 바구니.
여관좌의 복도.
그리고 자신의 극장 안쪽에 생긴, 이상한 문패.
「주인장 휴식실」
푸리나는 눈을 뜨고 중얼거렸다.
“치사해.”
그레이가 고개를 들었다.
“무엇이 말입니까?”
“그 사람. 아니, 그분. 아니…… 뭐라고 불러야 하지?”
레이튼이 말했다.
“오늘 밤의 배역으로는 ‘여관 주인’이 가장 적합해 보입니다.”
죠니가 덧붙였다.
“신이라고 부르면 본인이 좀 불편해할 것 같고.”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주인장.”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래. 주인장.”
그녀는 찻잔을 내려다보았다.
“주인장, 치사해.”
아무 대답도 없었다.
그러나 차는 아직 따뜻했다.
푸리나는 계속 말했다.
“내 극장에 멋대로 들어와서 의자 닦고, 차 내고, 문 열고, 마지막에는 내 극장을 자기 여관이랑 연결해버리고.”
죠니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니까 불법 침입 같네.”
“실제로 불법 침입 아니야?”
그레이가 진지하게 말했다.
“성좌에게 현행법상 침입죄를 적용할 수 있는지는 검토가 필요합니다.”
레이튼이 눈을 빛냈다.
“흥미로운 법률 문제군요.”
“검토하지 마!”
푸리나가 외쳤다.
그 외침에 모두가 잠깐 웃었다.
그러나 웃음이 가라앉은 뒤, 푸리나는 다시 찻잔을 보았다.
“그래도…… 좋은 손님이었어.”
그레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레이튼이 말했다.
“그리고 좋은 주인장이었지요.”
하융은 덧붙였다.
“좋은 길이었소.”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아직 판단 보류. 새벽길까지 편지가 제대로 가면 그때 좋았다고 하지.”
푸리나는 죠니를 보았다.
“정말 갈 거야?”
죠니는 그녀를 이상하다는 듯 보았다.
“가야지. 장부에 적혔잖아.”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예. 공식 업무입니다.”
“봐라.”
죠니는 안장가방을 가볍게 들어 보였다.
“편지 배달 하나에 왕이 직접 배웅이라니, 과하네.”
푸리나는 찻잔을 무릎 위에 내려놓고 벌떡 일어났다.
“과하지 않아!”
그레이가 놀라 말했다.
“폐하, 차—”
푸리나는 한 손으로 찻잔을 단단히 잡고, 다른 손으로 죠니를 가리켰다.
“편지가 주인공인 장면도 있는 법이야!”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할 줄 알았다.”
“그럼 받아들여!”
“받아들였어. 그러니까 가잖아.”
푸리나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리고 다시 앉았다.
그레이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폐하, 갑자기 일어나시면 차가 쏟아집니다.”
“안 쏟았어!”
“쏟을 뻔했습니다.”
“안 쏟은 게 중요하지!”
죠니는 마구간으로 향했다.
그레이가 뒤따라가며 편지 묶음과 작은 장부를 건넸다.
“산 자에게 갈 편지입니다. 우선순위는 위에서부터입니다. 첫 번째는 마리암 토로시안 부인의 아들, 아람 토로시안 관련 확인입니다. 카르미르 고개 방향. 마지막 확인 지점은 여기입니다.”
그레이는 지도를 펼쳐 짚었다.
죠니는 고개를 숙여 보았다.
“길이 애매하네.”
하융이 다가와 지도의 한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쪽 길은 가지 않는 게 좋소.”
죠니가 물었다.
“무너졌나?”
“무너지는 가능성이 많소. 실제로 무너졌는지는 모르나, 그 길로 간 전령들은 대부분 돌아오지 못했소.”
“그럼 제외.”
하융은 다른 길을 짚었다.
“이쪽은 늦소. 하지만 말이 다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소.”
죠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늦어도 도착하는 쪽이 낫지.”
레이튼이 편지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이 봉인 말입니다.”
죠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또 뭐가 있어?”
“봉인에 묻은 흙이 카르미르 고개 남쪽의 붉은 점토와는 조금 다릅니다. 아마 중간에 한 번 더 경유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어디?”
레이튼은 지도 한쪽을 가리켰다.
“이 작은 여관 터입니다. 지금은 폐쇄되었다고 되어 있지만, 편지가 그곳을 지나왔을 수 있습니다.”
그레이가 장부를 확인했다.
“폐쇄 여관. 전쟁 중 기능 상실. 생존 직원 미확인.”
죠니는 지도와 편지를 번갈아 보았다.
“그럼 첫 목적지는 거기네.”
푸리나는 의자에서 말했다.
“거기서 단서를 찾고, 단서가 있으면 따라가고, 없으면?”
죠니가 답했다.
“없으면 없는 대로 돌아와서 말해야지. 희망을 팔러 가는 게 아니니까.”
마리암은 아직 마당 한쪽에 서 있었다.
그녀는 완전히 돌아가지 못했다.
돌아가도 잠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모두가 알았다.
죠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살아 있다고 말하러 가는 건 아닙니다.”
마리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압니다.”
“죽었다고 닫으러 가는 것도 아닙니다.”
“……압니다.”
죠니는 잠시 말이 없다가, 안장가방을 가볍게 두드렸다.
“편지는 길 위에 올려놓겠습니다.”
마리암은 양손을 모았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죠니는 조금 불편한 얼굴을 했다.
“충분하진 않을 겁니다.”
마리암의 눈이 흔들렸다.
죠니는 낮게 말했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낫게 만들겠습니다.”
그 말은 다정한 위로가 아니었다.
하지만 마리암은 오히려 그 말에 깊게 고개를 숙였다.
“부탁드립니다.”
죠니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말에게 안장을 얹었다.
말은 밤새 쉬었지만, 새벽길을 앞두고 낮게 숨을 뿜었다.
하늘은 아직 완전히 밝지 않았다. 동쪽 끝이 잿빛으로 풀리고 있었고, 산등성이 위로 첫 새소리가 아주 조심스럽게 울렸다.
푸리나는 찻잔을 들고 무대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즉시 말했다.
“폐하, 아직 쉬셔야—”
“배웅만.”
“……배웅만입니다.”
“응!”
그레이는 믿지 않는 눈으로 보았지만, 더 말리지는 않았다.
푸리나는 마구간 앞에 섰다.
죠니는 말 위에 올랐다.
안장가방 안에는 편지들이 있었다.
아직 답을 모르는 편지.
아직 수신자를 찾지 못한 편지.
죽음인지 생존인지 알 수 없는 길 위에 놓인 편지.
푸리나는 그 편지들을 보며 말했다.
“죠니.”
“왜.”
“이것도 다음 막이야.”
죠니는 고삐를 잡았다.
“알아.”
“알아?”
“네가 말할 것 같아서 미리 생각해봤어.”
푸리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죠니가 예습을?!”
“그렇게 놀랄 일이냐.”
“응!”
죠니는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입가에는 아주 희미한 웃음이 있었다.
푸리나는 조금 진지하게 말했다.
“조심해서 다녀와.”
“그건 평범한 말이네.”
“좋은 말은 원래 평범해.”
죠니는 잠시 그녀를 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녀오지.”
그 말을 들은 순간, 푸리나는 문득 사르키스를 떠올렸다.
다녀오겠습니다.
다녀와.
그 짧은 말이 죽은 자와 산 자 사이를 건넜던 밤.
푸리나는 찻잔을 조금 더 세게 쥐었다.
죠니는 그것을 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이렇게 말했다.
“차 마셔. 식기 전에.”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방금 엄청 주인장 같았어.”
“그건 좀 싫은데.”
“왜? 멋있었는데.”
“난 여관 주인보다 배달부가 낫다.”
레이튼이 옆에서 말했다.
“오늘의 죠니 경은 기사단장이자 배달부이며, 동시에 다음 막의 첫 배우군요.”
죠니는 그를 보았다.
“그런 말 붙이면 말이 느려져.”
하융이 조용히 웃었다.
“말은 아직 가볍소. 편지의 무게를 모르는 척하고 있을 뿐이오.”
죠니는 하융을 흘끗 보았다.
“너까지 그러냐.”
그레이는 마지막으로 안장가방의 끈을 확인했다.
“단단히 묶였습니다.”
“고마워.”
그레이는 잠시 멈췄다.
죠니도 자신이 자연스럽게 고맙다고 말한 것을 깨달은 듯 잠깐 눈을 돌렸다.
그레이는 작게 고개를 숙였다.
“무사히 다녀오십시오.”
죠니는 대답했다.
“가능하면.”
푸리나가 즉시 말했다.
“가능하면이 아니라 반드시!”
죠니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반드시 가능하게 해보지.”
그는 고삐를 당겼다.
말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처음에는 느렸다.
마당을 지나고, 여관 문을 지나고, 아직 밤의 냄새가 남은 길 위로 나아갔다.
그리고 성문 바깥의 새벽길에 닿자, 말발굽 소리가 조금씩 빨라졌다.
탁.
탁.
탁.
마침내 죠니와 전령대는 잿빛 새벽 속으로 달려 나갔다.
편지들이 길 위에 올랐다.
푸리나는 그 뒷모습을 오래 보았다.
하늘은 조금씩 밝아지고 있었다.
그레이는 장부를 품에 안았다.
레이튼은 수첩을 덮었다.
하융은 새벽빛 속에서 닫히지 않은 길을 보았다.
마리암은 손을 모은 채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푸리나는 찻잔을 입가로 가져갔다.
차는 아직 따뜻했다.
그녀는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다녀와.”
그 말은 죠니에게 한 말이기도 했고, 편지들에게 한 말이기도 했고, 아직 돌아오지 못한 이름들에게 한 말이기도 했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
새벽에는 박수보다 말발굽 소리가 어울렸다.
조금 뒤, 푸리나는 다시 무대를 보았다.
빈 객석.
흔들리는 막.
사르키스의 문패.
긴 탁자 위의 잉크 자국.
그리고 자신이 앉았던 의자.
그녀는 천천히 걸어가 그 의자 앞에 섰다.
여관 주인이 남긴 찻잔을 보았다.
그 찻잔은 이제 거의 비어 있었다.
푸리나는 그것을 조심스럽게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좋아.”
그녀는 낮게 말했다.
그레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엇이 좋으십니까?”
푸리나는 빈 객석을 보았다.
“끝났어.”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마침내?”
푸리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공연은.”
하융은 물었다.
“그럼 이야기는?”
푸리나는 성문 너머 새벽길을 보았다.
죠니의 말발굽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길은 남아 있었다.
푸리나는 웃었다.
“계속되지.”
그레이는 아주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럴 줄 알았습니다.”
“왜 한숨이야?”
“계속되면 예산도 계속됩니다.”
푸리나는 순간적으로 굳었다.
레이튼은 고개를 끄덕였다.
“매우 현실적인 결론입니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현실이란 대체로 가장 무거운 가능성이오.”
푸리나는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방금까지 다들 엄청 감동적이었잖아!”
그레이는 차분하게 말했다.
“감동과 정산은 양립합니다.”
푸리나는 찻잔을 들어 보였다.
“이 찻잔은 비용 처리 안 해도 되지?”
그레이는 찻잔을 바라보았다.
“……기증품으로 처리하겠습니다.”
“성좌 기증품?”
“항목명은 조정하겠습니다.”
레이튼이 즉시 말했다.
“‘출처 미상의 환대 물품’은 어떻습니까?”
그레이는 진지하게 생각했다.
“그게 낫겠습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너희 정말 최고로 이상해.”
죠니는 없었지만, 그가 있었다면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너도 포함이야.”
푸리나는 그 말을 상상하고 웃었다.
그리고 다시 의자에 앉았다.
아무도 그녀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레이도 장부를 잠시 덮었다.
레이튼도 질문을 멈췄다.
하융도 창밖이 아니라 지금 이 마당을 보았다.
푸리나는 빈 객석을 바라보며 차의 마지막 온기를 손바닥으로 느꼈다.
그날 밤의 마지막 관객은 푸리나 헤툼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극장에서 처음으로 손님이 되었다.
조금 뒤 해가 떠올랐다.
햇빛은 천 조각으로 만든 막을 비추고, 삐뚤어진 의자와 잉크 묻은 탁자와 작은 문패를 차례로 지나갔다.
무대 뒤의 문은 여전히 아주 조금 열려 있었다.
그 틈새로 더 이상 복도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누구도 그 문을 닫으려 하지 않았다.
여관 주인은 떠났다.
극은 끝났다.
그러나 길은 열려 있었다.
그리고 길 위에는, 편지를 실은 말발굽 소리가 아직 어딘가에서 계속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