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49여관◆zAR16hM8he(61fdb885)2026-05-11 (월) 23:32:00
좋아. 그러면 프롤로그는 해학적 군상 소개 + 푸리나의 극 소개 + 여관좌의 자연스러운 잠입 + 호흐마이스터의 위화감 보강으로 가면 돼.
아래는 바로 본문용으로 쓸 수 있는 형태야.
---
프롤로그
관객 여러분, 아직 극은 시작도 안 했답니다!
막은 아직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객석은 이미 한 편의 극이었다.
아니, 푸리나 헤툼의 기준으로는 재앙이었다.
“좋아. 침착하자. 아직 시작 전이야. 아무도 울지 않았고, 아무도 죽지 않았고, 아무도 마지막 여관에 들어가지 않았어.”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대본을 움켜쥐고 중얼거렸다.
오늘 밤의 극은 《만인》.
그녀가 직접 각색하고, 연출하고, 배우들의 동선을 짜고, 조명을 고르고, 중간에 울면 안 되는 지점을 표시하고, 울어도 되는 지점은 더 크게 동그라미 친 극이었다.
제목은 단순했다.
《만인》.
한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모든 사람의 이야기.
마지막 여관으로 가는 길 위에서, 한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들고 갈 수 있는지 찾는 극.
처음에는 돈주머니를 붙잡고,
다음에는 이름과 명성을 붙잡고,
그다음에는 왕관과 권력을 붙잡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지 못한 말과 고통과 꿈과 방황을 차례로 붙잡는다.
그리고 끝내 알게 되는 극.
마지막 여관에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소유물이 아니라, 별빛 아래 방황하며 살아낸 삶의 궤적뿐이라는 것.
푸리나는 그 대목을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
“완벽해. 웃기게 시작해서, 울리다가, 마지막에는 박수로 보내는 거야. 좋아. 아주 좋아.”
그레이가 옆에서 장부를 들고 말했다.
“이미 좌석 배치 항의가 세 건 들어왔습니다.”
푸리나는 굳었다.
“그건 죽음보다 빠르네!”
레이튼이 모자를 만지며 덧붙였다.
“정확히는 항의 둘, 철학적 이의 하나입니다.”
“철학적 이의는 또 뭔데?”
“‘배우와 관객의 경계는 어디서 성립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푸리나는 잠시 침묵했다.
“누가 했는지 알 것 같아서 더 싫어.”
죠니 죠스타는 의자에 걸터앉아 창밖을 보았다. 극장 뒤편 마구간 쪽에서 말이 한 번 울었다.
“그냥 시작하면 안 돼?”
“죠니, 극장주는 문을 닫는 사람이 아니라 열어주는 사람이야!”
“그럼 빨리 열든가.”
푸리나는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짜증났다.
그녀는 커튼 틈으로 객석을 훔쳐보았다.
왕들이 있었다.
성직자들이 있었다.
기록자, 기사, 재상, 장인, 마법사, 고통을 아는 자, 고통을 오독하는 자, 별을 보는 자, 별을 믿지 않으면서도 밤길에서는 쓸모 있다고 인정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연극을 보러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푸리나는 알았다.
저 사람들은 연극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질문을 들고 온 것이었다.
다만 아직 그 질문이 무엇인지 모를 뿐이었다.
푸리나는 대본 첫 장을 다시 펼쳤다.
첫 문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한 사람은 길 위에 섰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고 믿었다.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며 씩 웃었다.
“좋아. 관객 여러분. 오늘의 극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녀는 아직 막도 오르지 않은 무대 뒤에서, 혼자 예행연습하듯 속삭였다.
“한 사람이 길을 걷습니다. 그는 마지막 여관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을 찾습니다. 돈, 명성, 권력, 사랑, 선행, 고통, 꿈, 방황. 전부 붙잡아보죠. 하지만 결국 깨닫습니다.”
푸리나는 손가락으로 대본의 마지막 문장을 톡 두드렸다.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손에 든 짐이 아니라, 길을 걸으며 자신에게 묻은 흔적이라는 걸.”
그녀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말하는 거야.”
그녀는 아주 작게,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막은 닫혔으니, 별빛 아래 남은 궤적에 박수를.”
그 순간, 무대 뒤 어딘가에서 찻잔이 내려놓이는 소리가 났다.
달칵.
푸리나는 고개를 돌렸다.
“응?”
그레이도 장부에서 눈을 들었다.
“방금 누가 차를 놓았습니까?”
레이튼이 말했다.
“그 질문은 의외로 중요할 수 있습니다.”
죠니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차 놓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니야?”
푸리나는 잠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곧 객석 쪽에서 더 큰 소음이 올라왔다.
니케아의 객석에서는 미하일라 두카이나 앙겔리나 콤니니 팔라이올로기나가 극장 내부를 훑고 있었다.
“출입구 셋. 높은 좌석 둘. 조명은 활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무대 뒤에서 푸리나가 외쳤다.
“활시야 보지 마! 연극 보라고!”
카를로타는 무대 장식용으로 걸린 활을 보고 눈썹을 아주 조금 찌푸렸다.
“저 활은 폐하께 맞지 않습니다.”
라플리가 옆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걸 왜 지금 봐?”
카를로타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활이 있으니까 봅니다.”
“소품이잖아.”
“소품이라도 활입니다.”
“그 논리면 극장에 칼 모양 장식 있으면 전부 검수할 거야?”
“필요하면요.”
라플리는 잠시 카를로타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니케아는 무섭다니까.”
루나리아 아누아는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오늘은 치료 도구가 필요하지 않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미하일라는 짧게 웃었다.
“그 말은 대체로 필요하게 된다는 뜻이더군.”
루나리아는 부드럽게 답했다.
“폐하께서 얌전히 관람하시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짐은 늘 얌전히 관람한다.”
카를로타가 즉시 말했다.
“지난번에는 박수치실 때 오른손 장력이 과했습니다.”
미하일라는 카를로타를 보았다.
“공연 감상에도 검진이 따르는가?”
“폐하의 손이 폐하의 활을 당깁니다. 감상도 자료입니다.”
라플리가 작게 웃었다.
“황제 손목 가지고 보고서 쓰는 인간은 처음 봤네.”
미하일라가 무심히 받았다.
“너는 하늘을 떨어뜨리고 보고서를 안 쓰지 않나.”
“그건 예술이야.”
“그렇다면 내 박수도 예술로 처리해라.”
요안나는 프로그램을 품에 안고 눈을 빛냈다.
“제목이 《만인》이면, 정말 모두가 나오는 건가요?”
슈샤니크 파흘라부니는 아무 표정 없이 객석과 무대를 번갈아 보았다.
“외교적으로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요안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모두가 나온다는 말은, 모두가 자기 해석을 주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경우 공연이 끝나기 전에 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절규했다.
“회의 금지! 오늘은 회의 금지!”
니케아 쪽의 웃음은 작았지만, 분명히 있었다.
리투아니아 쪽에서는 민다우가스가 크게 웃었다.
“하하! 좋은 극장이군. 문도 넓고, 불도 밝고,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딱 좋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출입구, 호위의 위치, 관객들의 호흡, 푸리나 헤툼의 영향력을 차갑게 분류하고 있었다.
문은 셋.
비상 퇴로는 둘.
군중의 시선은 무대 중앙과 좌측 발코니에 몰린다.
푸리나 헤툼의 극은 웃음으로 방어를 낮추고, 마지막에는 박수로 결속을 만든다.
위험하다.
좋은 극이다.
그러니 위험하다.
아스테르다스가 그 옆에서 부드럽게 말했다.
“각하, 오늘만큼은 별을 보듯 무대를 보시면 어떻습니까?”
민다우가스는 호방하게 웃었다.
“별도 길을 알려주면 쓸모가 있다.”
“그 대답, 오늘 극에 어울리네요.”
“그렇다면 이 극은 이미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군.”
그의 웃음은 넓었다.
그러나 그 웃음 안쪽에는 언제든 문을 닫을 수 있는 손이 있었다.
헝가리의 벨라 4세는 극장 천장을 보았다.
“기둥이 약하다.”
소피아 베아트리체가 눈을 깜빡였다.
“연극 보러 와서 기둥부터 보세요?”
“무너지는 것은 대개 사람들이 올려다보지 않을 때 시작된다.”
소피아는 이번에는 무대 위 조명 장치를 보았다.
“저 조명 장치, 조금만 바꾸면 색이 바뀔 것 같은데요.”
벨라가 말했다.
“보이느냐.”
“조명 장치요?”
“아니. 언젠가 네 것이 될 수리비다.”
소피아는 잠깐 침묵했다.
“전부 다요?”
벨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소피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음. 이것도 언젠간 쓸 데가 있겠지.”
벨라는 그 말을 들었지만, 꾸짖지 않았다.
불가리아 쪽에서는 알렉산드리나 아센이 아직 내려진 막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막은 닫혀 있군요. 좋습니다. 새벽도 처음에는 닫힌 밤에서 시작하니까요.”
레플리카는 객석의 숨을 보고 있었다.
“오늘 누군가는 아플 겁니다.”
가브리엘라 둘로스크룸이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너무 빨리 새벽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군요.”
스토얀카 아센은 의자 등받이의 곡선을 손끝으로 쓸었다.
“재미있는 곡선이네요. 사람의 척추를 닮았습니다.”
레플리카가 조용히 불렀다.
“스토얀카.”
스토얀카는 순하게 웃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리 부른 겁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그 대화를 듣고 낮게 웃었다.
“고통도, 새벽도, 꽃도. 오늘 밤은 아주 바쁜 극이 되겠군요.”
가브리엘라는 조용히 답했다.
“바쁜 극일수록, 관객에게 숨 쉴 자리가 필요합니다.”
레플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에서 극장주는 제법 현명해 보입니다.”
스토얀카는 무대의 닫힌 막을 보며 말했다.
“혹은 위험하지요. 숨 쉴 자리를 주는 극은, 사람이 어디서 숨이 막혔는지도 보여주니까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은 불편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리보니아 쪽에서 아스트리트 나흐트로제가 통로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군요. 넘어지는 사람이 없게 통로를 비워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푸리나가 무대 뒤에서 머리를 감쌌다.
“왜 다들 안전 점검부터 해?!”
튜튼의 호흐마이스터는 정중히 말했다.
“좋은 극은 질서 있는 입장과 질서 있는 퇴장을 전제로 합니다.”
옆자리의 아카식 단말이 웃었다.
“그 말, 오늘 극 끝나면 조금 다르게 들릴걸.”
호흐마이스터는 시선을 돌렸다.
“이미 알고 계십니까?”
“응.”
“말하지 않으실 겁니까?”
아카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재미없잖아.”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기록의 성좌께서는 의외로 극장 예절을 아시는군요.”
아카식은 그 말에 기분 좋게 웃었다.
“좋은 기록자는 좋은 관객이어야 할 때가 있거든.”
그 옆에서 알토는 배우 명단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멈췄다.
“배우 명단과 실제 배치가 다릅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응.”
“정정해야 합니까?”
“아니. 오늘은 그냥 봐.”
“기록 오류를 방치하라는 뜻입니까?”
“장면이 아직 자기 이름을 얻기 전이라는 뜻이야.”
알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록장을 덮지는 않았다.
그때 객석 사이로 한 남자가 지나갔다.
오래된 여관 주인 같은 차림이었다.
차분한 눈.
낡은 앞치마.
손때 묻은 찻주전자.
누구의 시선도 빼앗지 않는 걸음.
그는 너무 자연스럽게 극장 안에 있었다.
젖은 외투를 받아 걸어주었다.
삐걱이는 의자 다리를 바로잡았다.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아 몸을 기울이던 아이에게 방석 하나를 건넸다.
손을 떨던 늙은 병사 앞에는 따뜻한 차를 놓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남자는 낮게 말했다.
“막이 오르기 전까지, 잠깐 쉬어 가시죠.”
아무도 그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극장에는 원래 그런 사람이 하나쯤 있는 법이라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몇 사람은 달랐다.
아카식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기록장을 펼쳤다.
> 「오늘 밤, 극장에 여관이 들었다. 아직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타마르 여왕은 객석 끝에서 황혼빛 같은 미소를 지었다.
“문턱의 냄새가 나는군요.”
알토는 배우 명단과 남자의 동선을 번갈아 보았다.
“등록되지 않은 인물입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기록 밖에 있는 게 아니라, 기록되기 전인 거야.”
알토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 차이는 실무상 중요합니까?”
“오늘은 아주 중요해.”
호흐마이스터는 찻잔을 내려놓는 남자의 손을 보았다.
극장 스태프의 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사나 성직자의 손도 아니었다.
문을 열어본 적이 많은 손.
닫아야 할 때 닫아본 적도 있는 손.
들여야 할 자와 막아야 할 자를 혼동하지 않는 손.
찻잔을 놓는 손인데, 문빗장을 아는 손이었다.
호흐마이스터는 그 점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이름은 아직 몰랐다.
그러나 저 사람은 입장과 퇴장의 예법을 아는 자였다.
그녀는 정중히 물었다.
“극장 측에서 오셨습니까?”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극장 쪽에서 잠시 돕고 있습니다.”
“입장과 퇴장의 정리가 훌륭하군요.”
“과찬이십니다. 손님께서 길을 잃지 않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남자를 보았다.
“손님이라.”
“예.”
남자는 부드럽게 답했다.
“극장에 들어오신 분은, 막이 오르기 전까지 모두 손님이지요.”
호흐마이스터는 웃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좋은 예법입니다.”
남자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보아주신다면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나갔다.
아카식은 그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알토가 낮게 물었다.
“이미 알고 계십니까?”
“응.”
“말하지 않으실 겁니까?”
“말하면 장면이 바뀌잖아.”
알토는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의도적 침묵으로 기록합니다.”
“좋은 기록이네.”
무대 뒤에서 푸리나는 여전히 대본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가 객석 사이를 지나가며 차를 놓는 모습을 커튼 틈으로 보았다.
“저 사람, 우리 스태프였나?”
그레이가 장부를 확인했다.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누구야?”
레이튼은 조용히 말했다.
“배우 명단에는 없지만, 극의 구조에는 이미 들어와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푸리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레이튼, 그런 말은 시작 전에 하지 마. 무서워.”
죠니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차 맛은 좋아 보이는데.”
푸리나는 대본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분명 극장은 그녀의 것이었다.
대본도, 조명도, 입장 순서도, 배우의 호흡도 전부 그녀가 준비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 밤의 극장은 조금 더 깊어져 있었다.
무대 뒤에는 없던 복도가 생긴 것 같았고, 객석의 어둠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쉬어갈 방처럼 느껴졌다.
푸리나는 그것을 불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대본을 가슴에 끌어안고 조용히 웃었다.
“좋아.”
그녀는 속삭였다.
“그럼 오늘 밤은 정말 여관이 되겠네.”
그레이가 그녀를 보았다.
“그 표현은 의도된 연출입니까?”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방금부터 의도한 걸로 하자.”
레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후 정당화군요.”
“연출이라고 불러줘.”
죠니가 말했다.
“둘 다 비슷하지 않아?”
“죠니!”
그 순간, 종이 울렸다.
첫 번째 종은 관객에게 자리를 알렸다.
니케아의 활시야 점검이 멈췄다.
리투아니아의 계산이 잠시 객석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헝가리의 기둥 평가가 중단되었다.
불가리아의 고통과 새벽과 백화는 말없이 막을 보았다.
리보니아의 통로는 비워졌고, 튜튼의 질서는 정돈되었다.
아카식은 기록장을 펼쳤고, 알토는 펜을 들었다.
타마르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두 번째 종은 배우에게 숨을 고르게 했다.
푸리나는 눈을 감고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 밤 그녀는 사람들을 울릴 것이다.
하지만 울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너무 자주 자기 삶을 남의 기록에 빼앗긴다.
왕은 왕관으로, 병사는 사망자 수로, 아이는 유족으로, 죄인은 죄명으로, 성자는 성스럽다는 말로, 실패자는 실패라는 결론으로.
푸리나는 그게 싫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다시 자기 무대 위로 올라오길 바랐다.
그러니 오늘 밤의 극은 죽음의 극이 아니었다.
마지막 여관을 향해 가는 극이지만, 죽음을 위해 사는 법을 말하는 극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죽음이 있기에 오늘의 술잔이 각별하고,
여정이 있기에 비를 피할 여관이 필요하며,
막이 닫히기에 지금의 장면이 빛난다.
그래서.
“조명.”
그녀가 말했다.
무대 뒤의 조명이 하나씩 낮아졌다.
“음악.”
작은 선율이 깔렸다.
“문.”
무대 중앙에 길이 열렸다.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객석을 보았다.
“관객 여러분.”
그녀는 아직 닫힌 막을 향해, 그러나 사실은 그 너머의 모두를 향해 말했다.
“오늘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객석이 조용해졌다.
푸리나는 미소 지었다.
“그는 마지막 여관에 가져갈 것을 찾으러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꽤 바보 같거든요.”
몇몇 관객이 웃었다.
푸리나는 그 웃음을 기다렸다는 듯 받아냈다.
“그는 돈을 믿고, 명성을 믿고, 왕관을 믿고, 자기가 미룬 사과는 영원히 미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평범한 사람이죠.”
웃음이 조금 더 커졌다.
푸리나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길을 걷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마지막 여관까지 손에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그리고 손에 들고 갈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걸.”
그녀는 잠시 멈췄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그러니 부디, 끝까지 보아주세요. 그가 무엇을 잃는지보다, 무엇이 그에게 남는지를.”
푸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세 번째 종이 울렸다.
그 종은 길 위의 사람들에게 문이 열렸음을 알렸다.
막이 천천히 올랐다.
무대 위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혹은 너무 많았다.
왕이기도 했고, 병사이기도 했고,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고, 장부 속 숫자이기도 했으며,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자기 자신이 꽤 바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가 한 걸음 내딛자, 등에 묶인 항아리가 덜그럭 울렸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작게 주먹을 쥐었다.
“좋아. 시작은 잡았어.”
객석 사이 어딘가에서, 오래된 여관 주인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달칵.
그리고 길이 시작되었다.
아래는 바로 본문용으로 쓸 수 있는 형태야.
---
프롤로그
관객 여러분, 아직 극은 시작도 안 했답니다!
막은 아직 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객석은 이미 한 편의 극이었다.
아니, 푸리나 헤툼의 기준으로는 재앙이었다.
“좋아. 침착하자. 아직 시작 전이야. 아무도 울지 않았고, 아무도 죽지 않았고, 아무도 마지막 여관에 들어가지 않았어.”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대본을 움켜쥐고 중얼거렸다.
오늘 밤의 극은 《만인》.
그녀가 직접 각색하고, 연출하고, 배우들의 동선을 짜고, 조명을 고르고, 중간에 울면 안 되는 지점을 표시하고, 울어도 되는 지점은 더 크게 동그라미 친 극이었다.
제목은 단순했다.
《만인》.
한 사람의 이야기이면서, 모든 사람의 이야기.
마지막 여관으로 가는 길 위에서, 한 사람이 자신이 무엇을 들고 갈 수 있는지 찾는 극.
처음에는 돈주머니를 붙잡고,
다음에는 이름과 명성을 붙잡고,
그다음에는 왕관과 권력을 붙잡고,
사랑하는 사람과 하지 못한 말과 고통과 꿈과 방황을 차례로 붙잡는다.
그리고 끝내 알게 되는 극.
마지막 여관에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소유물이 아니라, 별빛 아래 방황하며 살아낸 삶의 궤적뿐이라는 것.
푸리나는 그 대목을 떠올리며 작게 웃었다.
“완벽해. 웃기게 시작해서, 울리다가, 마지막에는 박수로 보내는 거야. 좋아. 아주 좋아.”
그레이가 옆에서 장부를 들고 말했다.
“이미 좌석 배치 항의가 세 건 들어왔습니다.”
푸리나는 굳었다.
“그건 죽음보다 빠르네!”
레이튼이 모자를 만지며 덧붙였다.
“정확히는 항의 둘, 철학적 이의 하나입니다.”
“철학적 이의는 또 뭔데?”
“‘배우와 관객의 경계는 어디서 성립하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푸리나는 잠시 침묵했다.
“누가 했는지 알 것 같아서 더 싫어.”
죠니 죠스타는 의자에 걸터앉아 창밖을 보았다. 극장 뒤편 마구간 쪽에서 말이 한 번 울었다.
“그냥 시작하면 안 돼?”
“죠니, 극장주는 문을 닫는 사람이 아니라 열어주는 사람이야!”
“그럼 빨리 열든가.”
푸리나는 대답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맞는 말이었다.
그래서 더 짜증났다.
그녀는 커튼 틈으로 객석을 훔쳐보았다.
왕들이 있었다.
성직자들이 있었다.
기록자, 기사, 재상, 장인, 마법사, 고통을 아는 자, 고통을 오독하는 자, 별을 보는 자, 별을 믿지 않으면서도 밤길에서는 쓸모 있다고 인정하는 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연극을 보러 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푸리나는 알았다.
저 사람들은 연극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다.
각자의 질문을 들고 온 것이었다.
다만 아직 그 질문이 무엇인지 모를 뿐이었다.
푸리나는 대본 첫 장을 다시 펼쳤다.
첫 문장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한 사람은 길 위에 섰다.
그는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다고 믿었다.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며 씩 웃었다.
“좋아. 관객 여러분. 오늘의 극은 아주 단순합니다.”
그녀는 아직 막도 오르지 않은 무대 뒤에서, 혼자 예행연습하듯 속삭였다.
“한 사람이 길을 걷습니다. 그는 마지막 여관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을 찾습니다. 돈, 명성, 권력, 사랑, 선행, 고통, 꿈, 방황. 전부 붙잡아보죠. 하지만 결국 깨닫습니다.”
푸리나는 손가락으로 대본의 마지막 문장을 톡 두드렸다.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손에 든 짐이 아니라, 길을 걸으며 자신에게 묻은 흔적이라는 걸.”
그녀는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마지막에 말하는 거야.”
그녀는 아주 작게, 그러나 또렷하게 말했다.
“막은 닫혔으니, 별빛 아래 남은 궤적에 박수를.”
그 순간, 무대 뒤 어딘가에서 찻잔이 내려놓이는 소리가 났다.
달칵.
푸리나는 고개를 돌렸다.
“응?”
그레이도 장부에서 눈을 들었다.
“방금 누가 차를 놓았습니까?”
레이튼이 말했다.
“그 질문은 의외로 중요할 수 있습니다.”
죠니는 시큰둥하게 말했다.
“차 놓는 사람이 있으면 좋은 거 아니야?”
푸리나는 잠깐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곧 객석 쪽에서 더 큰 소음이 올라왔다.
니케아의 객석에서는 미하일라 두카이나 앙겔리나 콤니니 팔라이올로기나가 극장 내부를 훑고 있었다.
“출입구 셋. 높은 좌석 둘. 조명은 활시야를 방해하지 않는다.”
무대 뒤에서 푸리나가 외쳤다.
“활시야 보지 마! 연극 보라고!”
카를로타는 무대 장식용으로 걸린 활을 보고 눈썹을 아주 조금 찌푸렸다.
“저 활은 폐하께 맞지 않습니다.”
라플리가 옆에서 고개를 돌렸다.
“그걸 왜 지금 봐?”
카를로타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활이 있으니까 봅니다.”
“소품이잖아.”
“소품이라도 활입니다.”
“그 논리면 극장에 칼 모양 장식 있으면 전부 검수할 거야?”
“필요하면요.”
라플리는 잠시 카를로타를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니케아는 무섭다니까.”
루나리아 아누아는 조용히 성호를 그었다.
“오늘은 치료 도구가 필요하지 않기를 기도하겠습니다.”
미하일라는 짧게 웃었다.
“그 말은 대체로 필요하게 된다는 뜻이더군.”
루나리아는 부드럽게 답했다.
“폐하께서 얌전히 관람하시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짐은 늘 얌전히 관람한다.”
카를로타가 즉시 말했다.
“지난번에는 박수치실 때 오른손 장력이 과했습니다.”
미하일라는 카를로타를 보았다.
“공연 감상에도 검진이 따르는가?”
“폐하의 손이 폐하의 활을 당깁니다. 감상도 자료입니다.”
라플리가 작게 웃었다.
“황제 손목 가지고 보고서 쓰는 인간은 처음 봤네.”
미하일라가 무심히 받았다.
“너는 하늘을 떨어뜨리고 보고서를 안 쓰지 않나.”
“그건 예술이야.”
“그렇다면 내 박수도 예술로 처리해라.”
요안나는 프로그램을 품에 안고 눈을 빛냈다.
“제목이 《만인》이면, 정말 모두가 나오는 건가요?”
슈샤니크 파흘라부니는 아무 표정 없이 객석과 무대를 번갈아 보았다.
“외교적으로는 그러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요안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왜요?”
“모두가 나온다는 말은, 모두가 자기 해석을 주장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 경우 공연이 끝나기 전에 회의가 열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절규했다.
“회의 금지! 오늘은 회의 금지!”
니케아 쪽의 웃음은 작았지만, 분명히 있었다.
리투아니아 쪽에서는 민다우가스가 크게 웃었다.
“하하! 좋은 극장이군. 문도 넓고, 불도 밝고, 사람의 마음을 흔들기에 딱 좋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이미 출입구, 호위의 위치, 관객들의 호흡, 푸리나 헤툼의 영향력을 차갑게 분류하고 있었다.
문은 셋.
비상 퇴로는 둘.
군중의 시선은 무대 중앙과 좌측 발코니에 몰린다.
푸리나 헤툼의 극은 웃음으로 방어를 낮추고, 마지막에는 박수로 결속을 만든다.
위험하다.
좋은 극이다.
그러니 위험하다.
아스테르다스가 그 옆에서 부드럽게 말했다.
“각하, 오늘만큼은 별을 보듯 무대를 보시면 어떻습니까?”
민다우가스는 호방하게 웃었다.
“별도 길을 알려주면 쓸모가 있다.”
“그 대답, 오늘 극에 어울리네요.”
“그렇다면 이 극은 이미 나를 조금 불편하게 만들었군.”
그의 웃음은 넓었다.
그러나 그 웃음 안쪽에는 언제든 문을 닫을 수 있는 손이 있었다.
헝가리의 벨라 4세는 극장 천장을 보았다.
“기둥이 약하다.”
소피아 베아트리체가 눈을 깜빡였다.
“연극 보러 와서 기둥부터 보세요?”
“무너지는 것은 대개 사람들이 올려다보지 않을 때 시작된다.”
소피아는 이번에는 무대 위 조명 장치를 보았다.
“저 조명 장치, 조금만 바꾸면 색이 바뀔 것 같은데요.”
벨라가 말했다.
“보이느냐.”
“조명 장치요?”
“아니. 언젠가 네 것이 될 수리비다.”
소피아는 잠깐 침묵했다.
“전부 다요?”
벨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대답이었다.
소피아는 작게 중얼거렸다.
“음. 이것도 언젠간 쓸 데가 있겠지.”
벨라는 그 말을 들었지만, 꾸짖지 않았다.
불가리아 쪽에서는 알렉산드리나 아센이 아직 내려진 막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막은 닫혀 있군요. 좋습니다. 새벽도 처음에는 닫힌 밤에서 시작하니까요.”
레플리카는 객석의 숨을 보고 있었다.
“오늘 누군가는 아플 겁니다.”
가브리엘라 둘로스크룸이 낮게 말했다.
“그렇다면 너무 빨리 새벽을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군요.”
스토얀카 아센은 의자 등받이의 곡선을 손끝으로 쓸었다.
“재미있는 곡선이네요. 사람의 척추를 닮았습니다.”
레플리카가 조용히 불렀다.
“스토얀카.”
스토얀카는 순하게 웃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미리 부른 겁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그 대화를 듣고 낮게 웃었다.
“고통도, 새벽도, 꽃도. 오늘 밤은 아주 바쁜 극이 되겠군요.”
가브리엘라는 조용히 답했다.
“바쁜 극일수록, 관객에게 숨 쉴 자리가 필요합니다.”
레플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점에서 극장주는 제법 현명해 보입니다.”
스토얀카는 무대의 닫힌 막을 보며 말했다.
“혹은 위험하지요. 숨 쉴 자리를 주는 극은, 사람이 어디서 숨이 막혔는지도 보여주니까요.”
잠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침묵은 불편했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리보니아 쪽에서 아스트리트 나흐트로제가 통로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많군요. 넘어지는 사람이 없게 통로를 비워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푸리나가 무대 뒤에서 머리를 감쌌다.
“왜 다들 안전 점검부터 해?!”
튜튼의 호흐마이스터는 정중히 말했다.
“좋은 극은 질서 있는 입장과 질서 있는 퇴장을 전제로 합니다.”
옆자리의 아카식 단말이 웃었다.
“그 말, 오늘 극 끝나면 조금 다르게 들릴걸.”
호흐마이스터는 시선을 돌렸다.
“이미 알고 계십니까?”
“응.”
“말하지 않으실 겁니까?”
아카식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럼 재미없잖아.”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침묵했다.
“기록의 성좌께서는 의외로 극장 예절을 아시는군요.”
아카식은 그 말에 기분 좋게 웃었다.
“좋은 기록자는 좋은 관객이어야 할 때가 있거든.”
그 옆에서 알토는 배우 명단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멈췄다.
“배우 명단과 실제 배치가 다릅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응.”
“정정해야 합니까?”
“아니. 오늘은 그냥 봐.”
“기록 오류를 방치하라는 뜻입니까?”
“장면이 아직 자기 이름을 얻기 전이라는 뜻이야.”
알토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기록장을 덮지는 않았다.
그때 객석 사이로 한 남자가 지나갔다.
오래된 여관 주인 같은 차림이었다.
차분한 눈.
낡은 앞치마.
손때 묻은 찻주전자.
누구의 시선도 빼앗지 않는 걸음.
그는 너무 자연스럽게 극장 안에 있었다.
젖은 외투를 받아 걸어주었다.
삐걱이는 의자 다리를 바로잡았다.
무대가 잘 보이지 않아 몸을 기울이던 아이에게 방석 하나를 건넸다.
손을 떨던 늙은 병사 앞에는 따뜻한 차를 놓았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남자는 낮게 말했다.
“막이 오르기 전까지, 잠깐 쉬어 가시죠.”
아무도 그 말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극장에는 원래 그런 사람이 하나쯤 있는 법이라고,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그러나 몇 사람은 달랐다.
아카식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는 기록장을 펼쳤다.
> 「오늘 밤, 극장에 여관이 들었다. 아직 아무도 그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타마르 여왕은 객석 끝에서 황혼빛 같은 미소를 지었다.
“문턱의 냄새가 나는군요.”
알토는 배우 명단과 남자의 동선을 번갈아 보았다.
“등록되지 않은 인물입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기록 밖에 있는 게 아니라, 기록되기 전인 거야.”
알토는 그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그 차이는 실무상 중요합니까?”
“오늘은 아주 중요해.”
호흐마이스터는 찻잔을 내려놓는 남자의 손을 보았다.
극장 스태프의 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기사나 성직자의 손도 아니었다.
문을 열어본 적이 많은 손.
닫아야 할 때 닫아본 적도 있는 손.
들여야 할 자와 막아야 할 자를 혼동하지 않는 손.
찻잔을 놓는 손인데, 문빗장을 아는 손이었다.
호흐마이스터는 그 점이 조금 마음에 들었다.
이름은 아직 몰랐다.
그러나 저 사람은 입장과 퇴장의 예법을 아는 자였다.
그녀는 정중히 물었다.
“극장 측에서 오셨습니까?”
남자는 고개를 숙였다.
“오늘은 극장 쪽에서 잠시 돕고 있습니다.”
“입장과 퇴장의 정리가 훌륭하군요.”
“과찬이십니다. 손님께서 길을 잃지 않으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호흐마이스터는 잠시 남자를 보았다.
“손님이라.”
“예.”
남자는 부드럽게 답했다.
“극장에 들어오신 분은, 막이 오르기 전까지 모두 손님이지요.”
호흐마이스터는 웃지 않았다.
그러나 고개를 아주 조금 끄덕였다.
“좋은 예법입니다.”
남자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보아주신다면 다행입니다.”
그리고 그는 지나갔다.
아카식은 그 뒷모습을 보며 웃었다.
알토가 낮게 물었다.
“이미 알고 계십니까?”
“응.”
“말하지 않으실 겁니까?”
“말하면 장면이 바뀌잖아.”
알토는 무대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의도적 침묵으로 기록합니다.”
“좋은 기록이네.”
무대 뒤에서 푸리나는 여전히 대본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남자가 객석 사이를 지나가며 차를 놓는 모습을 커튼 틈으로 보았다.
“저 사람, 우리 스태프였나?”
그레이가 장부를 확인했다.
“등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 누구야?”
레이튼은 조용히 말했다.
“배우 명단에는 없지만, 극의 구조에는 이미 들어와 있는 인물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푸리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레이튼, 그런 말은 시작 전에 하지 마. 무서워.”
죠니는 심드렁하게 말했다.
“차 맛은 좋아 보이는데.”
푸리나는 대본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분명 극장은 그녀의 것이었다.
대본도, 조명도, 입장 순서도, 배우의 호흡도 전부 그녀가 준비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오늘 밤의 극장은 조금 더 깊어져 있었다.
무대 뒤에는 없던 복도가 생긴 것 같았고, 객석의 어둠은 단순한 어둠이 아니라 쉬어갈 방처럼 느껴졌다.
푸리나는 그것을 불안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신 대본을 가슴에 끌어안고 조용히 웃었다.
“좋아.”
그녀는 속삭였다.
“그럼 오늘 밤은 정말 여관이 되겠네.”
그레이가 그녀를 보았다.
“그 표현은 의도된 연출입니까?”
푸리나는 잠시 생각했다.
“방금부터 의도한 걸로 하자.”
레이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후 정당화군요.”
“연출이라고 불러줘.”
죠니가 말했다.
“둘 다 비슷하지 않아?”
“죠니!”
그 순간, 종이 울렸다.
첫 번째 종은 관객에게 자리를 알렸다.
니케아의 활시야 점검이 멈췄다.
리투아니아의 계산이 잠시 객석의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헝가리의 기둥 평가가 중단되었다.
불가리아의 고통과 새벽과 백화는 말없이 막을 보았다.
리보니아의 통로는 비워졌고, 튜튼의 질서는 정돈되었다.
아카식은 기록장을 펼쳤고, 알토는 펜을 들었다.
타마르는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두 번째 종은 배우에게 숨을 고르게 했다.
푸리나는 눈을 감고 한 번 숨을 들이마셨다.
오늘 밤 그녀는 사람들을 울릴 것이다.
하지만 울게 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너무 자주 자기 삶을 남의 기록에 빼앗긴다.
왕은 왕관으로, 병사는 사망자 수로, 아이는 유족으로, 죄인은 죄명으로, 성자는 성스럽다는 말로, 실패자는 실패라는 결론으로.
푸리나는 그게 싫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다시 자기 무대 위로 올라오길 바랐다.
그러니 오늘 밤의 극은 죽음의 극이 아니었다.
마지막 여관을 향해 가는 극이지만, 죽음을 위해 사는 법을 말하는 극은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였다.
죽음이 있기에 오늘의 술잔이 각별하고,
여정이 있기에 비를 피할 여관이 필요하며,
막이 닫히기에 지금의 장면이 빛난다.
그래서.
“조명.”
그녀가 말했다.
무대 뒤의 조명이 하나씩 낮아졌다.
“음악.”
작은 선율이 깔렸다.
“문.”
무대 중앙에 길이 열렸다.
푸리나는 마지막으로 객석을 보았다.
“관객 여러분.”
그녀는 아직 닫힌 막을 향해, 그러나 사실은 그 너머의 모두를 향해 말했다.
“오늘의 이야기는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아마 여러분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객석이 조용해졌다.
푸리나는 미소 지었다.
“그는 마지막 여관에 가져갈 것을 찾으러 길을 걷습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처음에는 꽤 바보 같거든요.”
몇몇 관객이 웃었다.
푸리나는 그 웃음을 기다렸다는 듯 받아냈다.
“그는 돈을 믿고, 명성을 믿고, 왕관을 믿고, 자기가 미룬 사과는 영원히 미룰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아주 평범한 사람이죠.”
웃음이 조금 더 커졌다.
푸리나는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길을 걷다 보면 알게 될 겁니다. 마지막 여관까지 손에 들고 갈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걸. 그리고 손에 들고 갈 수 없다고 해서,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걸.”
그녀는 잠시 멈췄다.
이번에는 웃지 않았다.
“그러니 부디, 끝까지 보아주세요. 그가 무엇을 잃는지보다, 무엇이 그에게 남는지를.”
푸리나는 고개를 숙였다.
세 번째 종이 울렸다.
그 종은 길 위의 사람들에게 문이 열렸음을 알렸다.
막이 천천히 올랐다.
무대 위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혹은 너무 많았다.
왕이기도 했고, 병사이기도 했고,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했고, 장부 속 숫자이기도 했으며, 편지를 기다리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자기 자신이 꽤 바쁘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가 한 걸음 내딛자, 등에 묶인 항아리가 덜그럭 울렸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작게 주먹을 쥐었다.
“좋아. 시작은 잡았어.”
객석 사이 어딘가에서, 오래된 여관 주인이 조용히 찻잔을 내려놓았다.
달칵.
그리고 길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