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50여관◆zAR16hM8he(61fdb885)2026-05-11 (월) 23:40:49
1막
길목의 여관 — 아직 쉴 때가 아닙니다
무대 위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장엄하지 않았다.
아니, 장엄하기는커녕 어깨에는 짐이 너무 많았고, 양손에는 더 많았고, 등에는 누가 봐도 필요 없어 보이는 항아리 하나가 묶여 있었다.
항아리에는 큼직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언젠가 쓸 것
그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냄비가 울렸다.
달그락.
다시 한 걸음.
덜그럭.
그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누구냐!”
아무도 없었다.
그는 잠시 자신의 등 뒤에 묶인 항아리와 냄비들을 보았다.
“……아. 나였군.”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흘렀다.
만인은 괜히 헛기침을 했다.
“사람이 짐을 많이 들고 다닌다고 해서 우스운 건 아니오. 현명한 사람은 미래에 대비하는 법이니까.”
그는 항아리를 두드렸다.
덜그럭.
“예를 들면 이 항아리. 언젠가 반드시 쓸 데가 있을 것이오.”
무대 한쪽에서, 아직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뭘 담는데요?”
만인은 즉시 대답하려 했다.
그리고 멈췄다.
“……중요한 것을.”
“무슨 중요한 거요?”
만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그때 가서 알게 되겠지.”
객석에서 웃음이 더 커졌다.
소피아 베아트리체는 객석에서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돼요.”
벨라 4세가 그녀를 보았다.
“정말이냐.”
“네. 언젠가 쓸 것이라고 적힌 물건은 보통 정말 언젠가 쓸 일이 있어요. 단지 그 언젠가가 생각보다 멀 뿐이지.”
벨라는 무대 위 항아리를 보았다.
“쓸모가 늦게 도착하는 물건이군.”
소피아는 눈을 반짝였다.
“맞아요. 저 항아리, 좀 마음에 드는데요.”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작게 속삭였다.
“소피아, 저거 소품이야. 가져가면 안 돼.”
무대 위 만인은 품속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자, 오늘 할 일.”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읽기 시작했다.
“첫째, 돈을 조금 더 번다. 둘째, 이름을 조금 더 남긴다. 셋째, 언젠가 위대해진다. 넷째, 미룬 사과를 한다. 다섯째, 미룬 사과 중 일부는 계속 미룬다. 여섯째, 꿈을 이룬다. 일곱째, 오래 산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계획이군.”
그러다가 종이 뒷면에 무언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음?”
만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쉬어라.’”
그는 얼굴을 굳혔다.
“이건 내 글씨가 아니군. 나는 이렇게 불길한 말을 적지 않는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만인은 품속에 종이를 다시 넣었다. 그러나 뒷면의 글씨가 마음에 걸리는 듯 몇 번이고 품을 눌렀다.
그는 길 위에 서 있었다.
길은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익숙하지도 않았다.
한쪽은 아직 해가 남아 있는 듯 밝았고, 다른 한쪽은 저녁이 깊어지는 듯 어두웠다. 길가에는 비를 맞은 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발밑의 흙은 방금까지 누군가가 지나간 것처럼 젖어 있었다.
만인은 흙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먼저 지나갔나?”
대답은 없었다.
“뭐, 당연하지. 길이란 원래 누군가 먼저 지나가라고 있는 법이니까.”
그는 자신 있게 걸으려 했다.
그때 길가에 작은 여관 하나가 보였다.
그 여관은 화려하지 않았다.
낡은 나무 문.
삐걱일 것 같지만 잘 기름칠된 손잡이.
창가에 걸린 따뜻한 빛.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문 옆에는 젖은 신발을 털 수 있는 작은 돌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누가 보아도 오래된 여관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빗자루를 들고 문 앞을 쓸고 있었다.
싹.
싹.
빗자루 소리는 이상하게 고요했다.
시끄러운 객석의 숨소리도, 무대 뒤에서 푸리나가 조용히 지시를 내리는 소리도, 그 소리 위에서는 잠시 느려지는 듯했다.
여관 주인은 만인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먼 길이셨습니다. 잠깐 쉬어 가시겠습니까?”
만인은 짐을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지금 아주 중요한 길을 가는 중입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만인은 자신 있게 대답하려 했다.
그리고 멈췄다.
“……중요한 곳입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중요한 곳으로 가시는 분들은 대개 처음에는 그렇게 말씀하시지요.”
만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손님이 길을 알고 계신지 여쭈었을 뿐입니다.”
“압니다.”
“어디인지도요?”
만인은 침묵했다.
객석에서 작게 웃음이 났다.
만인은 그 웃음을 들은 듯 허리를 곧게 폈다.
“길이란 원래 걸으면서 아는 법이오.”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만인은 당황했다.
“어, 그렇습니까?”
“예. 다만 너무 오래 걸으셨다면 잠시 쉬어가셔도 됩니다.”
“아직 오래 걷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오늘 막 시작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제 신발을 보십니까?”
여관 주인은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흙이 많이 묻어 있어서요.”
만인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신발에는 정말로 흙이 많이 묻어 있었다.
그는 잠깐 당황했다.
“……길이 더러웠습니다.”
“예. 대체로 그렇습니다.”
“제가 게으르게 걸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렇겠지요.”
“무슨 뜻이오?”
“길이 길었다는 뜻입니다.”
만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여관 주인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따뜻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빵 냄새였다.
젖은 외투가 마르는 냄새였다.
낡은 나무 바닥에 스며든 차의 냄새였다.
누군가 울다 지쳐 잠든 방의 조용한 냄새였다.
만인의 코끝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아직 여관에 들어갈 나이는 아닙니다.”
여관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여관에는 나이 제한이 없습니다.”
“그 말이 더 불길한데요.”
“그렇다면 오늘은 차만 권하겠습니다.”
“차를 마시면 오래 머물게 되지 않습니까?”
“좋은 차는 대체로 그렇습니다.”
“역시 위험한 곳이군요.”
만인은 한 걸음 물러났다. 짐들이 달그락거렸다.
여관 주인은 웃지 않았다.
비웃지도 않았다.
그저 너무 오래 서 있던 사람에게 의자를 권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러면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만인은 그 말이 의외였는지 눈을 깜빡였다.
“붙잡지 않으십니까?”
“여관은 붙잡는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장사를 하려면 손님을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손님께서 쉬고 싶으실 때 머무시면 됩니다.”
“이상한 여관이군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인은 다시 짐을 고쳐 멨다.
“아무튼 저는 바쁩니다.”
“예. 가져가야 할 것이 많아 보이십니다.”
만인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많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돈도 있고, 이름도 있고, 해야 할 말도 있고, 언젠가 이룰 꿈도 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훌륭한 결말도 있습니다.”
“그 훌륭한 결말도 짐입니까?”
만인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질문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무대 전체에 길게 남았다.
객석에서 레이튼이 아주 작게 고개를 들었다.
“좋은 질문이군요.”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속삭였다.
“좋아. 좋아. 아직 웃고 있어. 아직은.”
그레이는 장부에 짧게 적었다.
> 만인의 소지품: 돈, 이름, 미완성 사과, 꿈, 결말.
결말이 짐인지 여부는 미확정.
죠니가 그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런 것도 적어?”
그레이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나중에 필요할 수 있습니다.”
“너도 항아리랑 비슷하네.”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대 위 여관 주인은 빗자루를 문 옆에 세워두었다.
“손님.”
“예?”
“마지막 여관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을 찾고 계신다면, 길을 걸어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만인은 멈췄다.
“마지막 여관?”
여관 주인은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길 끝에는 대체로 여관이 하나쯤 있습니다.”
“그 말도 불길한데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태연하십니까?”
“손님께서 아직 길 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인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조금 안심했다.
아직 길 위에 있다.
그 말이 어째서 안심이 되는지 그는 몰랐다.
객석의 몇몇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각자 다른 표정을 지었다.
요안나는 무릎 위의 프로그램을 살짝 쥐었다.
“아직 길 위에 있다면…… 아직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뜻일까요?”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선은 무대 위 길을 보고 있었다.
루나리아는 조용히 말했다.
“아직 돌아갈 수 있는 이에게는, 너무 빨리 마지막 방을 보여주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타마르는 황혼빛 같은 눈으로 여관 주인을 보았다.
“맞는 말이지요. 산 자에게는 길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주변의 공기가 아주 잠깐 낮아졌다.
여관 주인은 길을 가리켰다.
길은 여관 옆으로 이어져 있었다.
먼저 시장이 보였다.
깃발과 노점과 사람들의 소리.
빵 냄새.
동전 소리.
흥정하는 목소리.
누군가 크게 웃고, 누군가 작게 속이는 곳.
그 너머에는 광장이 있었고, 더 멀리 관청의 지붕이 보였다. 길은 마을의 집 앞을 지나, 불탄 성문으로 이어지고, 다시 안개와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만인은 그 길을 바라보았다.
“저 길을 가면 알 수 있습니까?”
“무엇을 말씀이신지요?”
“제가 마지막 여관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 말입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가져갈 수 있는 것과, 남겨두어야 할 것은 길 위에서 구분되는 법입니다.”
만인은 자기 짐을 보았다.
돈주머니.
낡은 컵.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챙긴 항아리.
아직 쓰지 않은 편지.
나무 말.
목록.
이름.
계획.
미룬 사과들.
미룬 변명들.
너무 늦은 감사들.
그는 다시 여관 주인을 보았다.
“그럼 잠깐만 다녀오겠습니다.”
여관 주인이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예. 차는 식지 않게 해두겠습니다.”
만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제가 돌아온다는 전제 아닙니까?”
“여관 주인은 대체로 방을 비워두는 편입니다.”
“무서운 직업이군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길을 향해 걸어갔다.
짐들이 달그락거렸다.
객석의 웃음은 아직 가벼웠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이미 웃지 않고 있었다.
아카식은 기록장에 한 줄을 적었다.
> 「만인은 아직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 모른다.」
알토가 그 문장을 보았다.
“불완전한 기록입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그래서 좋은 시작이지.”
“기록은 완전해야 합니다.”
“기록은 완성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해.”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그 말은 아카식께서 하시는 것치고는 낭만적입니다.”
“가끔은 나도 관객이거든.”
알토는 무대 위 여관 주인을 보았다.
그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저 인물은 아직 기록상 위치가 불명확합니다.”
아카식은 기록장을 덮지 않은 채 말했다.
“응. 그래서 오늘은 더 재미있어.”
객석 끝에서 타마르는 찻잔을 들었다.
“처음 포도송이는 늘 조금 시답지 않지요. 그래도 익으면 달라진답니다.”
슈샤니크는 무대 위 여관 문을 오래 보았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 문은 닫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비어 있었지만, 아주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문턱 앞에 멈춘 것처럼 보였다.
곁에 앉은 게오르기아가 조용히 물었다.
“무언가 걸리십니까?”
슈샤니크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닫히지 않는 문은 유용합니다.”
“정치적 의미입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가끔은, 너무 늦게 닫힌 문보다 너무 일찍 닫힌 문이 더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게오르기아는 더 묻지 않았다.
무대 위 만인은 시장 쪽으로 걸어가다가 뒤돌아보았다.
여관 주인은 아직 문 앞에 서 있었다.
만인은 괜히 크게 외쳤다.
“저는 정말 바쁩니다!”
여관 주인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쉬러 돌아오는 건 아닙니다!”
“예. 길을 확인하러 돌아오셔도 됩니다.”
“말이 묘하게 다 빠져나가는군요!”
객석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만인은 씩씩하게 걸어갔다.
덜그럭.
달그락.
덜그럭.
그 우스운 소리가 무대 위 길을 따라 멀어졌다.
그리고 여관 주인은 아주 조용히, 관객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은 누구도 직접 겨냥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객석의 몇몇 사람은 자신이 방금 문 앞에 선 것처럼 느꼈다.
호흐마이스터는 찻잔을 든 손을 멈추었다.
그 시선은 요구하지 않았다.
판결하지도 않았다.
문을 열어두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문을 여는 자보다, 문을 닫을 줄 아는 자를 더 신뢰했다.
그런데 저 남자는 둘 다 알고 있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고, 동시에 경계할 이유가 되었다.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하. 좋은 주인장이군. 붙잡지 않는다라.”
아스테르다스가 물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손님을 붙잡는 집은 약한 집이다. 손님이 떠난 뒤에도 다시 찾게 만드는 집이 강한 집이지.”
그는 무대 위 여관 문을 보았다.
“다만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자에게도 저렇게 말한다면, 그 집은 오래 못 간다.”
아스테르다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오늘 그 답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더 볼 만하군.”
벨라는 소피아에게 낮게 말했다.
“기억해라.”
“무엇을요?”
“여관은 쉬는 곳이다. 그러나 길이 있어야 여관도 있다.”
소피아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길을 잘 만드는 것도 여관을 돕는 거네요?”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은 많은 여관을 필요로 한다.”
소피아는 다시 무대의 길을 보았다.
“그럼 작은 공방도요?”
벨라는 답했다.
“비가 오는 날, 젖은 신발을 고치는 곳도 왕국이다.”
소피아는 조금 기뻐 보였다.
불가리아 쪽에서는 레플리카가 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웃을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밤을 말하면, 사람은 창문을 찾기도 전에 눈을 감지요.”
알렉산드리나는 무대 위 멀어지는 만인의 뒷모습을 보았다.
“저 사람, 짐이 많군요.”
스토얀카가 부드럽게 웃었다.
“짐이 많을수록 등이 잘 보입니다.”
레플리카가 다시 불렀다.
“스토얀카.”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니까요.”
알렉산드리나는 작게 웃었다.
“등이 보인다는 것과, 등을 꺾는 것은 다르겠지요.”
스토얀카는 알렉산드리나를 보았다.
“그 차이를 지키기 위해 왕이 되시려는 건가요?”
알렉산드리나의 미소가 조금 깊어졌다.
“아니요. 그 차이를 잊은 자들에게 새벽을 보이기 위해 왕이 되려는 겁니다.”
그 말에 가브리엘라는 조용히 눈을 내렸다.
“새벽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무대 위 길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어둠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말하는 자에게, 저쪽에 빛이 있다고 말하는 일은 필요하지요.”
레플리카는 작게 말했다.
“너무 빨리 말하지 않는다면요.”
알렉산드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주교가 곁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브리엘라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무대 뒤에서 푸리나는 그 반응들을 전부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웃음이 있었다.
긴장이 있었다.
누군가 이미 자기 안쪽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리나는 대본을 꼭 쥐었다.
“좋아.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시장도 안 갔어.”
레이튼이 말했다.
“그 말은 앞으로 괜찮지 않을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이튼.”
“예.”
“가끔은 그냥 응원해줘.”
레이튼은 잠시 생각했다.
“현재까지는 극의 도입이 효과적입니다.”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거 응원이야?”
“제 방식으로는 그렇습니다.”
죠니가 말했다.
“칭찬이 너무 멀리 돌아오네.”
그레이는 장부를 닫지 않고 있었다.
“아직 주요 이름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푸리나는 무대 위 여관 주인을 보았다.
“그렇지. 아직 만인은 이름이 없어.”
레이튼이 조용히 말했다.
“혹은 너무 많습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미소 지었다.
“좋아. 그게 이 극의 시작이야.”
무대 위, 길목의 여관은 아직 그대로 있었다.
만인은 시장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그의 짐은 여전히 우스꽝스럽게 울렸다.
달그락.
덜그럭.
그 소리는 아직 웃겼다.
하지만 여관 문 앞의 남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웃음 사이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말은 만인에게 한 말인지, 관객에게 한 말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잠깐 쉬어 가시죠.”
그 순간 시장의 소리가 커졌다.
노점상들의 외침.
동전 소리.
빵 굽는 냄새.
흥정과 속임수와 허세와 배고픔.
만인이 환하게 외쳤다.
“드디어 제대로 된 곳이군! 여기라면 내가 가져갈 것을 찾을 수 있겠지!”
등 뒤의 항아리가 한 번 더 울렸다.
덜그럭.
막이 천천히 내려왔다.
1막이 끝났다.
길목의 여관 — 아직 쉴 때가 아닙니다
무대 위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장엄하지 않았다.
아니, 장엄하기는커녕 어깨에는 짐이 너무 많았고, 양손에는 더 많았고, 등에는 누가 봐도 필요 없어 보이는 항아리 하나가 묶여 있었다.
항아리에는 큼직한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 언젠가 쓸 것
그가 한 걸음 걸을 때마다 냄비가 울렸다.
달그락.
다시 한 걸음.
덜그럭.
그는 깜짝 놀라 뒤돌아보았다.
“누구냐!”
아무도 없었다.
그는 잠시 자신의 등 뒤에 묶인 항아리와 냄비들을 보았다.
“……아. 나였군.”
객석 여기저기서 웃음이 흘렀다.
만인은 괜히 헛기침을 했다.
“사람이 짐을 많이 들고 다닌다고 해서 우스운 건 아니오. 현명한 사람은 미래에 대비하는 법이니까.”
그는 항아리를 두드렸다.
덜그럭.
“예를 들면 이 항아리. 언젠가 반드시 쓸 데가 있을 것이오.”
무대 한쪽에서, 아직 누군지 알 수 없는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뭘 담는데요?”
만인은 즉시 대답하려 했다.
그리고 멈췄다.
“……중요한 것을.”
“무슨 중요한 거요?”
만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건 그때 가서 알게 되겠지.”
객석에서 웃음이 더 커졌다.
소피아 베아트리체는 객석에서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돼요.”
벨라 4세가 그녀를 보았다.
“정말이냐.”
“네. 언젠가 쓸 것이라고 적힌 물건은 보통 정말 언젠가 쓸 일이 있어요. 단지 그 언젠가가 생각보다 멀 뿐이지.”
벨라는 무대 위 항아리를 보았다.
“쓸모가 늦게 도착하는 물건이군.”
소피아는 눈을 반짝였다.
“맞아요. 저 항아리, 좀 마음에 드는데요.”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그 말을 듣고 작게 속삭였다.
“소피아, 저거 소품이야. 가져가면 안 돼.”
무대 위 만인은 품속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자, 오늘 할 일.”
그는 목청을 가다듬고 읽기 시작했다.
“첫째, 돈을 조금 더 번다. 둘째, 이름을 조금 더 남긴다. 셋째, 언젠가 위대해진다. 넷째, 미룬 사과를 한다. 다섯째, 미룬 사과 중 일부는 계속 미룬다. 여섯째, 꿈을 이룬다. 일곱째, 오래 산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완벽한 계획이군.”
그러다가 종이 뒷면에 무언가 적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음?”
만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쉬어라.’”
그는 얼굴을 굳혔다.
“이건 내 글씨가 아니군. 나는 이렇게 불길한 말을 적지 않는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만인은 품속에 종이를 다시 넣었다. 그러나 뒷면의 글씨가 마음에 걸리는 듯 몇 번이고 품을 눌렀다.
그는 길 위에 서 있었다.
길은 낯설지 않았다.
그렇다고 익숙하지도 않았다.
한쪽은 아직 해가 남아 있는 듯 밝았고, 다른 한쪽은 저녁이 깊어지는 듯 어두웠다. 길가에는 비를 맞은 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발밑의 흙은 방금까지 누군가가 지나간 것처럼 젖어 있었다.
만인은 흙을 내려다보았다.
“누가 먼저 지나갔나?”
대답은 없었다.
“뭐, 당연하지. 길이란 원래 누군가 먼저 지나가라고 있는 법이니까.”
그는 자신 있게 걸으려 했다.
그때 길가에 작은 여관 하나가 보였다.
그 여관은 화려하지 않았다.
낡은 나무 문.
삐걱일 것 같지만 잘 기름칠된 손잡이.
창가에 걸린 따뜻한 빛.
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방울.
문 옆에는 젖은 신발을 털 수 있는 작은 돌이 놓여 있었다.
그곳에는 누가 보아도 오래된 여관 주인처럼 보이는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빗자루를 들고 문 앞을 쓸고 있었다.
싹.
싹.
빗자루 소리는 이상하게 고요했다.
시끄러운 객석의 숨소리도, 무대 뒤에서 푸리나가 조용히 지시를 내리는 소리도, 그 소리 위에서는 잠시 느려지는 듯했다.
여관 주인은 만인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먼 길이셨습니다. 잠깐 쉬어 가시겠습니까?”
만인은 짐을 더 단단히 끌어안았다.
“아니요, 아닙니다. 저는 지금 아주 중요한 길을 가는 중입니다.”
“어디로 가시는 길입니까?”
만인은 자신 있게 대답하려 했다.
그리고 멈췄다.
“……중요한 곳입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중요한 곳으로 가시는 분들은 대개 처음에는 그렇게 말씀하시지요.”
만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혹시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아닙니다. 손님이 길을 알고 계신지 여쭈었을 뿐입니다.”
“압니다.”
“어디인지도요?”
만인은 침묵했다.
객석에서 작게 웃음이 났다.
만인은 그 웃음을 들은 듯 허리를 곧게 폈다.
“길이란 원래 걸으면서 아는 법이오.”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좋은 말씀입니다.”
만인은 당황했다.
“어, 그렇습니까?”
“예. 다만 너무 오래 걸으셨다면 잠시 쉬어가셔도 됩니다.”
“아직 오래 걷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오늘 막 시작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제 신발을 보십니까?”
여관 주인은 아주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흙이 많이 묻어 있어서요.”
만인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신발에는 정말로 흙이 많이 묻어 있었다.
그는 잠깐 당황했다.
“……길이 더러웠습니다.”
“예. 대체로 그렇습니다.”
“제가 게으르게 걸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그렇겠지요.”
“무슨 뜻이오?”
“길이 길었다는 뜻입니다.”
만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여관 주인은 문을 조금 더 열었다.
따뜻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빵 냄새였다.
젖은 외투가 마르는 냄새였다.
낡은 나무 바닥에 스며든 차의 냄새였다.
누군가 울다 지쳐 잠든 방의 조용한 냄새였다.
만인의 코끝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는 얼른 고개를 돌렸다.
“아직 여관에 들어갈 나이는 아닙니다.”
여관 주인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여관에는 나이 제한이 없습니다.”
“그 말이 더 불길한데요.”
“그렇다면 오늘은 차만 권하겠습니다.”
“차를 마시면 오래 머물게 되지 않습니까?”
“좋은 차는 대체로 그렇습니다.”
“역시 위험한 곳이군요.”
만인은 한 걸음 물러났다. 짐들이 달그락거렸다.
여관 주인은 웃지 않았다.
비웃지도 않았다.
그저 너무 오래 서 있던 사람에게 의자를 권하는 사람처럼 말했다.
“그러면 지나가셔도 좋습니다.”
만인은 그 말이 의외였는지 눈을 깜빡였다.
“붙잡지 않으십니까?”
“여관은 붙잡는 곳이 아닙니다.”
“하지만 장사를 하려면 손님을 잡아야 하지 않습니까?”
“손님께서 쉬고 싶으실 때 머무시면 됩니다.”
“이상한 여관이군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인은 다시 짐을 고쳐 멨다.
“아무튼 저는 바쁩니다.”
“예. 가져가야 할 것이 많아 보이십니다.”
만인은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많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돈도 있고, 이름도 있고, 해야 할 말도 있고, 언젠가 이룰 꿈도 있고, 누군가에게 보여줄 훌륭한 결말도 있습니다.”
“그 훌륭한 결말도 짐입니까?”
만인은 입을 열었다가 닫았다.
그 질문은 너무 조용해서, 오히려 무대 전체에 길게 남았다.
객석에서 레이튼이 아주 작게 고개를 들었다.
“좋은 질문이군요.”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속삭였다.
“좋아. 좋아. 아직 웃고 있어. 아직은.”
그레이는 장부에 짧게 적었다.
> 만인의 소지품: 돈, 이름, 미완성 사과, 꿈, 결말.
결말이 짐인지 여부는 미확정.
죠니가 그것을 보고 중얼거렸다.
“그런 것도 적어?”
그레이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나중에 필요할 수 있습니다.”
“너도 항아리랑 비슷하네.”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무대 위 여관 주인은 빗자루를 문 옆에 세워두었다.
“손님.”
“예?”
“마지막 여관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을 찾고 계신다면, 길을 걸어보시는 편이 좋겠습니다.”
만인은 멈췄다.
“마지막 여관?”
여관 주인은 너무 자연스럽게 말했다.
“길 끝에는 대체로 여관이 하나쯤 있습니다.”
“그 말도 불길한데요.”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태연하십니까?”
“손님께서 아직 길 위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인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조금 안심했다.
아직 길 위에 있다.
그 말이 어째서 안심이 되는지 그는 몰랐다.
객석의 몇몇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각자 다른 표정을 지었다.
요안나는 무릎 위의 프로그램을 살짝 쥐었다.
“아직 길 위에 있다면…… 아직 집을 지을 수 있다는 뜻일까요?”
미하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선은 무대 위 길을 보고 있었다.
루나리아는 조용히 말했다.
“아직 돌아갈 수 있는 이에게는, 너무 빨리 마지막 방을 보여주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타마르는 황혼빛 같은 눈으로 여관 주인을 보았다.
“맞는 말이지요. 산 자에게는 길이 남아 있으니까요.”
그녀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주변의 공기가 아주 잠깐 낮아졌다.
여관 주인은 길을 가리켰다.
길은 여관 옆으로 이어져 있었다.
먼저 시장이 보였다.
깃발과 노점과 사람들의 소리.
빵 냄새.
동전 소리.
흥정하는 목소리.
누군가 크게 웃고, 누군가 작게 속이는 곳.
그 너머에는 광장이 있었고, 더 멀리 관청의 지붕이 보였다. 길은 마을의 집 앞을 지나, 불탄 성문으로 이어지고, 다시 안개와 언덕 너머로 사라졌다.
만인은 그 길을 바라보았다.
“저 길을 가면 알 수 있습니까?”
“무엇을 말씀이신지요?”
“제가 마지막 여관까지 가져갈 수 있는 것 말입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가져갈 수 있는 것과, 남겨두어야 할 것은 길 위에서 구분되는 법입니다.”
만인은 자기 짐을 보았다.
돈주머니.
낡은 컵.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챙긴 항아리.
아직 쓰지 않은 편지.
나무 말.
목록.
이름.
계획.
미룬 사과들.
미룬 변명들.
너무 늦은 감사들.
그는 다시 여관 주인을 보았다.
“그럼 잠깐만 다녀오겠습니다.”
여관 주인이 문을 조금 더 열었다.
“예. 차는 식지 않게 해두겠습니다.”
만인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제가 돌아온다는 전제 아닙니까?”
“여관 주인은 대체로 방을 비워두는 편입니다.”
“무서운 직업이군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길을 향해 걸어갔다.
짐들이 달그락거렸다.
객석의 웃음은 아직 가벼웠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은 이미 웃지 않고 있었다.
아카식은 기록장에 한 줄을 적었다.
> 「만인은 아직 자신이 무엇을 찾는지 모른다.」
알토가 그 문장을 보았다.
“불완전한 기록입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그래서 좋은 시작이지.”
“기록은 완전해야 합니다.”
“기록은 완성을 기다릴 줄도 알아야 해.”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그 말은 아카식께서 하시는 것치고는 낭만적입니다.”
“가끔은 나도 관객이거든.”
알토는 무대 위 여관 주인을 보았다.
그의 눈이 조금 가늘어졌다.
“저 인물은 아직 기록상 위치가 불명확합니다.”
아카식은 기록장을 덮지 않은 채 말했다.
“응. 그래서 오늘은 더 재미있어.”
객석 끝에서 타마르는 찻잔을 들었다.
“처음 포도송이는 늘 조금 시답지 않지요. 그래도 익으면 달라진답니다.”
슈샤니크는 무대 위 여관 문을 오래 보았다.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 문은 닫히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비어 있었지만, 아주 깊은 곳에서 무언가가 문턱 앞에 멈춘 것처럼 보였다.
곁에 앉은 게오르기아가 조용히 물었다.
“무언가 걸리십니까?”
슈샤니크는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답했다.
“닫히지 않는 문은 유용합니다.”
“정치적 의미입니까?”
“그럴 수도 있지요.”
그녀는 잠시 침묵했다.
“하지만 가끔은, 너무 늦게 닫힌 문보다 너무 일찍 닫힌 문이 더 많은 사람을 죽입니다.”
게오르기아는 더 묻지 않았다.
무대 위 만인은 시장 쪽으로 걸어가다가 뒤돌아보았다.
여관 주인은 아직 문 앞에 서 있었다.
만인은 괜히 크게 외쳤다.
“저는 정말 바쁩니다!”
여관 주인은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쉬러 돌아오는 건 아닙니다!”
“예. 길을 확인하러 돌아오셔도 됩니다.”
“말이 묘하게 다 빠져나가는군요!”
객석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만인은 씩씩하게 걸어갔다.
덜그럭.
달그락.
덜그럭.
그 우스운 소리가 무대 위 길을 따라 멀어졌다.
그리고 여관 주인은 아주 조용히, 관객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 시선은 누구도 직접 겨냥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객석의 몇몇 사람은 자신이 방금 문 앞에 선 것처럼 느꼈다.
호흐마이스터는 찻잔을 든 손을 멈추었다.
그 시선은 요구하지 않았다.
판결하지도 않았다.
문을 열어두었을 뿐이었다.
그녀는 문을 여는 자보다, 문을 닫을 줄 아는 자를 더 신뢰했다.
그런데 저 남자는 둘 다 알고 있었다.
그 점이 마음에 들었고, 동시에 경계할 이유가 되었다.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하하. 좋은 주인장이군. 붙잡지 않는다라.”
아스테르다스가 물었다.
“마음에 드십니까?”
“손님을 붙잡는 집은 약한 집이다. 손님이 떠난 뒤에도 다시 찾게 만드는 집이 강한 집이지.”
그는 무대 위 여관 문을 보았다.
“다만 문을 부수고 들어오는 자에게도 저렇게 말한다면, 그 집은 오래 못 간다.”
아스테르다스는 희미하게 웃었다.
“오늘 그 답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면 더 볼 만하군.”
벨라는 소피아에게 낮게 말했다.
“기억해라.”
“무엇을요?”
“여관은 쉬는 곳이다. 그러나 길이 있어야 여관도 있다.”
소피아는 잠시 생각했다.
“그럼 길을 잘 만드는 것도 여관을 돕는 거네요?”
벨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왕국은 많은 여관을 필요로 한다.”
소피아는 다시 무대의 길을 보았다.
“그럼 작은 공방도요?”
벨라는 답했다.
“비가 오는 날, 젖은 신발을 고치는 곳도 왕국이다.”
소피아는 조금 기뻐 보였다.
불가리아 쪽에서는 레플리카가 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웃을 수 있습니다.”
가브리엘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부터 밤을 말하면, 사람은 창문을 찾기도 전에 눈을 감지요.”
알렉산드리나는 무대 위 멀어지는 만인의 뒷모습을 보았다.
“저 사람, 짐이 많군요.”
스토얀카가 부드럽게 웃었다.
“짐이 많을수록 등이 잘 보입니다.”
레플리카가 다시 불렀다.
“스토얀카.”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니까요.”
알렉산드리나는 작게 웃었다.
“등이 보인다는 것과, 등을 꺾는 것은 다르겠지요.”
스토얀카는 알렉산드리나를 보았다.
“그 차이를 지키기 위해 왕이 되시려는 건가요?”
알렉산드리나의 미소가 조금 깊어졌다.
“아니요. 그 차이를 잊은 자들에게 새벽을 보이기 위해 왕이 되려는 겁니다.”
그 말에 가브리엘라는 조용히 눈을 내렸다.
“새벽은 강요할 수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무대 위 길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어둠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말하는 자에게, 저쪽에 빛이 있다고 말하는 일은 필요하지요.”
레플리카는 작게 말했다.
“너무 빨리 말하지 않는다면요.”
알렉산드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주교가 곁에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브리엘라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무대 뒤에서 푸리나는 그 반응들을 전부 볼 수는 없었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웃음이 있었다.
긴장이 있었다.
누군가 이미 자기 안쪽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푸리나는 대본을 꼭 쥐었다.
“좋아. 아직은 괜찮아. 아직은 시장도 안 갔어.”
레이튼이 말했다.
“그 말은 앞으로 괜찮지 않을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레이튼.”
“예.”
“가끔은 그냥 응원해줘.”
레이튼은 잠시 생각했다.
“현재까지는 극의 도입이 효과적입니다.”
푸리나는 눈을 깜빡였다.
“그거 응원이야?”
“제 방식으로는 그렇습니다.”
죠니가 말했다.
“칭찬이 너무 멀리 돌아오네.”
그레이는 장부를 닫지 않고 있었다.
“아직 주요 이름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푸리나는 무대 위 여관 주인을 보았다.
“그렇지. 아직 만인은 이름이 없어.”
레이튼이 조용히 말했다.
“혹은 너무 많습니다.”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미소 지었다.
“좋아. 그게 이 극의 시작이야.”
무대 위, 길목의 여관은 아직 그대로 있었다.
만인은 시장으로 걸어가고 있었고, 그의 짐은 여전히 우스꽝스럽게 울렸다.
달그락.
덜그럭.
그 소리는 아직 웃겼다.
하지만 여관 문 앞의 남자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웃음 사이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그 말은 만인에게 한 말인지, 관객에게 한 말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잠깐 쉬어 가시죠.”
그 순간 시장의 소리가 커졌다.
노점상들의 외침.
동전 소리.
빵 굽는 냄새.
흥정과 속임수와 허세와 배고픔.
만인이 환하게 외쳤다.
“드디어 제대로 된 곳이군! 여기라면 내가 가져갈 것을 찾을 수 있겠지!”
등 뒤의 항아리가 한 번 더 울렸다.
덜그럭.
막이 천천히 내려왔다.
1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