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53여관◆zAR16hM8he(61fdb885)2026-05-12 (화) 00:03:19
좋아. 그러면 3막은 명성 vs 이름의 희극적 구조는 유지하되, 후반부에 초혼적인 정서, 즉 “이름을 부르는 일은 붙잡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길을 잃지 않게 문패를 걸어주는 일이기도 하다”는 감각을 더 강하게 넣을게.
그리고 6막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의 문패 장면에서는 이걸 반드시 이어받아서, 이름을 되찾는 장면을 초혼처럼 처리하면 돼.
---
3막
광장 — 명성은 멀리 가지만 길을 자주 잃는다
막이 오르자, 시장의 냄새는 사라지고 광장의 소음이 밀려왔다.
노점의 빵 냄새 대신 잉크 냄새가 났다.
동전 소리 대신 종소리와 북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높은 단상에는 깃발이 걸려 있었고, 벽에는 포스터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그 포스터들에는 모두 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만인의 얼굴이었다.
아니, 비슷했다.
어떤 포스터의 만인은 지나치게 턱이 강했고,
어떤 포스터의 만인은 눈이 세 개였고,
어떤 포스터의 만인은 실제보다 훨씬 더 영웅적으로 생겼으며,
어떤 포스터의 만인은 이상하게 생선 장수처럼 보였다.
만인은 자기 얼굴을 보고 멈췄다.
“……저건 누구요?”
광장 한복판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시인이 외쳤다.
“위대한 만인!”
다른 전령이 외쳤다.
“용감한 만두!”
만인이 즉시 고개를 돌렸다.
“만두?”
광대가 춤추며 소리쳤다.
“성스러운 만…… 만…… 음, 아무튼 훌륭한 분!”
“이름을 모르면 부르지 마시오!”
그러자 북을 치던 사람이 말했다.
“이름이 틀려도 일단 퍼지면 이긴 겁니다!”
만인은 경악했다.
“이기는 문제가 아니잖소!”
그때 광장 단상 위로 은빛 옷을 입은 배우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한 명이 아니었다.
시인, 전령, 광대, 서기관, 노래꾼, 험담꾼,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군중까지.
그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명성.”
한 사람이 속삭였다.
“우리는 소문.”
다른 사람이 노래했다.
“우리는 이름보다 빠르고, 진실보다 가볍고, 바람보다 넓지.”
광대가 만인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제 유명합니다!”
만인은 경계했다.
“무엇으로?”
명성은 웃었다.
“그건 아직 정하는 중입니다.”
“정하는 중?”
“그렇습니다. 어떤 분은 당신을 자선가라고 부르고, 어떤 분은 야심가라고 부르며, 어떤 분은 돈주머니가 작아진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건 방금 시장에서 한 닢 쓴 것뿐이오!”
“소문은 작은 것을 좋아합니다. 키우기 쉽거든요.”
전령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오늘의 속보! 위대한 만인, 전 재산을 털어 굶주린 아이를 구하다!”
만인은 비명을 질렀다.
“전 재산 아니오! 한 닢이오!”
다른 전령이 또 외쳤다.
“수정 속보! 만인, 한 닢만 쓰고도 위대한 척하다!”
“그건 또 아니지!”
시인이 감동적인 표정으로 낭송했다.
“그는 빵을 나누었다네.
그 빵은 태양이었고, 아이는 봄이었으며, 만인의 손은—”
만인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그만! 손이 뭘 했는데!”
시인은 눈을 반짝였다.
“황금빛 구원의 손.”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소!”
험담꾼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구원이라기엔 빵이 좀 작았지.”
만인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명성 막은 웃음이 먼저야. 아주 좋아.”
레이튼은 말했다.
“이 막은 웃기지만 꽤 위험합니다. 이름과 소문이 갈라지는 지점이니까요.”
푸리나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맞아. 웃기게 시작해서, 나중에 목을 콱 조이는 거지.”
죠니가 중얼거렸다.
“극장주들이 제일 무섭다니까.”
무대 위에서 명성은 만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 단상 위로 올라가십시오.”
“왜?”
“보여야 하니까요.”
“누구에게?”
“모두에게.”
“왜 모두에게 보여야 하는데?”
명성은 진심으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유명해져야 하니까요.”
“왜 유명해져야 하오?”
이번에는 광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명성의 배우들이 서로를 보았다.
시인이 전령에게 물었다.
“왜지?”
전령이 광대에게 물었다.
“왜였지?”
광대가 험담꾼에게 물었다.
“왜더라?”
험담꾼은 어깨를 으쓱했다.
“남들이 알아주면 덜 외롭잖아?”
시인이 감탄했다.
“오, 그럴듯하군!”
명성은 다시 만인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남들이 알아주면 덜 외롭습니다!”
만인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이상하게 우스웠고, 이상하게 아팠다.
그는 포스터들을 다시 보았다.
턱이 과장된 만인.
영웅 같은 만인.
우스꽝스러운 만인.
생선 장수처럼 그려진 만인.
그 모두가 자신이 아니었다.
그런데 완전히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가 시장에서 빵을 산 것은 사실이었다.
돈주머니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었다.
아이의 손에 빵이 건너간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광장에 걸린 이야기들은 그 사실을 각자 다른 옷으로 갈아입혀 놓고 있었다.
만인은 단상 아래에서 물었다.
“내가 저 안에 있기는 한 거요?”
명성은 즉시 답했다.
“물론입니다!”
험담꾼이 말했다.
“조금씩.”
시인이 말했다.
“아주 아름답게.”
전령이 말했다.
“빠르게.”
광대가 말했다.
“가끔은 엉뚱하게.”
만인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저것들을 마지막 여관까지 가져갈 수 있소?”
명성은 활짝 웃었다.
“저희는 아주 멀리 갑니다.”
만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말, 아까 재물도 했소.”
재물은 만인의 곁에서 짤랑거리며 헛기침했다.
“저는 ‘상당히 멀리까지’라고 정정했습니다.”
명성은 우아하게 웃었다.
“저는 재물보다 더 멀리 갑니다. 재물이 묻힌 뒤에도 제 노래는 남을 수 있지요.”
만인은 조금 혹했다.
“정말?”
“그럼요. 이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벽에 붙고, 노래가 되고, 이야기 속에 살아남습니다. 마지막 여관이라도 제 소리를 막을 수는—”
그때 여관 주인이 광장 한쪽에서 포스터 하나를 조용히 떼어냈다.
명성이 멈췄다.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여관 주인은 포스터를 보았다.
그 포스터에는 만인의 이름이 틀리게 적혀 있었다.
> 위대한 만두.
여관 주인은 정중히 말했다.
“이름이 틀렸습니다.”
광대가 웃었다.
“그래도 재밌잖아요!”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재미있는 것과, 손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그는 포스터를 접어 한쪽에 놓고, 대신 작은 나무 문패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만인은 문패를 보았다.
“그건 무엇이오?”
“문패입니다.”
“내 명성보다 작군.”
“예.”
“내 포스터보다 초라하고.”
“그렇습니다.”
“노래도 없고?”
“없습니다.”
“그럼 왜 필요하오?”
여관 주인은 문패의 빈 표면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길을 잃은 손님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명성은 팔짱을 꼈다.
“노래가 더 멀리 갑니다.”
“예.”
“포스터가 더 눈에 띕니다.”
“그렇습니다.”
“소문은 더 빠릅니다.”
“맞습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손님을 방으로 안내할 때, 저는 소문을 부르지 않습니다.”
광장의 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여관 주인은 빈 문패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름을 부릅니다.”
만인은 입을 닫았다.
객석에서도 웃음이 잦아들었다.
그레이의 손이 장부 위에서 멈췄다.
그녀는 무대 위 문패를 보았다.
문패.
작았다.
화려하지 않았다.
포스터처럼 군중을 모으지도 못하고, 노래처럼 멀리 퍼지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름이 틀리면, 방을 찾을 수 없다.
그레이는 천천히 펜을 들었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 위 만인을 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름들을 보고 있었다.
전투 뒤 확인되지 못한 이름.
피난 행렬에서 아이가 울며 부르던 이름.
장부 속 숫자로 들어갔다가 다시 불러내야 했던 이름.
죽은 자의 사망 원인을 적어야만,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름.
그레이는 낮게 말했다.
“명성은 사람을 크게 만들지만, 이름은 사람을 찾게 합니다.”
죠니가 옆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는 계속 말했다.
“크게 만드는 것보다, 찾게 하는 쪽이 먼저입니다.”
레이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구분입니다.”
그레이는 장부에 적었다.
> 명성: 멀리 간다. 왜곡된다.
이름: 방을 찾게 한다.
확인 필요: 마지막 여관의 문패.
그리고 잠시 후 덧붙였다.
> 이름 없는 죽음은 반복된다.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객석의 알토는 무대 위 빈 문패를 보고 있었다.
그는 배우 명단을 다시 펼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자기 무릎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카식이 물었다.
“무슨 생각?”
알토는 조금 뒤에 답했다.
“명성은 기록과 자주 혼동됩니다.”
“응.”
“하지만 명성은 목소리입니다. 기록은 책임에 가깝습니다.”
아카식은 미소 지었다.
“계속해봐.”
알토는 무대 위 명성의 배우들을 보았다.
“목소리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만으로는 사람이 돌아올 방을 찾기 어렵습니다. 기록은 그 사람의 선택과 결과가 아무렇게나 흩어지지 않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
“붙잡되, 가두지는 않고.”
아카식은 기록장에 펜을 얹었다.
“그 말 남겨도 돼?”
알토는 무심하게 말했다.
“이미 말씀드린 이상 막을 수는 없겠지요.”
“싫으면 안 적을게.”
알토는 아주 짧게 아카식을 보았다.
그 시선에는 불신이 없었다. 약간의 피로와, 아주 건조한 농담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럴 리 없지 않습니까.”
아카식은 웃었다.
“너도 나를 꽤 아네.”
“오래 보았습니다.”
아카식은 그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무대 위 문패를 보았다.
“저 주인장은 역시 사람을 잘 찾아.”
알토는 조용히 답했다.
“찾는다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잊지 않는다는 건?”
알토는 잠시 생각했다.
“선택을 존중하되, 책임을 흐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아카식은 이번에는 기록했다.
> 선택은 존중하되, 책임은 흐리지 않는다.
알토는 그것을 보아도 말리지 않았다.
그 무렵 무대 위 만인은 명성과 문패 사이에서 당황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명성을 버려야 하오?”
명성은 비명을 질렀다.
“버리다니요! 너무 극단적입니다!”
여관 주인도 고개를 저었다.
“버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인은 안도했다.
“그렇지?”
여관 주인은 말했다.
“다만 명성을 손님이라고 생각하셔야지, 이름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명성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아주 좋은 손님입니다!”
여관 주인은 정중하게 말했다.
“소란스러운 손님이십니다.”
광대가 박수를 쳤다.
“맞는 말이네요!”
명성은 광대를 노려보았다.
“너도 나잖아!”
“그래서 더 잘 알지!”
객석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만인은 조금 마음이 놓인 듯했다.
“그러니까 명성은 데려가도 되지만, 마지막까지 믿으면 안 된다?”
명성은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그 표현도 너무합니다.”
여관 주인은 말했다.
“명성은 길 위에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손님을 찾는 이에게 단서가 될 수도 있고, 손님이 한 일을 멀리 전할 수도 있습니다.”
명성은 다시 기운을 차렸다.
“그렇죠! 제가 없으면 누가 이야기합니까?”
“다만 명성이 이름을 대신하면, 손님은 어느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만인은 벽의 포스터를 보았다.
그 포스터 속 만인은 자신보다 더 크고, 더 빛나고, 더 우스웠다.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건…… 나쁜 일이오?”
여관 주인은 잠시 만인을 바라보았다.
“손님께서 그렇게 살고 싶으시다면, 제가 말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다만 마지막 여관에 오실 때, 방을 찾는 데 조금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만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왜?”
“문패와 포스터가 다른 이름을 가리키면, 주인장도 잠시 확인이 필요하니까요.”
명성이 슬쩍 말했다.
“확인 절차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주 틀리시는 겁니다.”
“주인장, 오늘 따라 날카로우시군요.”
“손님들이 길을 잃지 않으셨으면 해서요.”
이때 광장의 단상 위에서 시인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진짜 이름을 묻자!”
전령이 북을 쳤다.
둥.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만인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멈췄다.
객석이 조용해졌다.
만인은 무대 위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인.”
광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이름이 아니라 역할 같은데요.”
전령이 말했다.
“혹은 너무 많은 이름의 합계입니다!”
시인이 말했다.
“아름답군!”
험담꾼이 말했다.
“애매하군.”
명성은 흥미롭다는 듯 만인을 빙글 돌았다.
“만인. 모두의 이름이라. 아주 좋습니다. 팔리기 쉽겠어요.”
만인은 그 말에 불편해졌다.
여관 주인은 문패를 들고 있었다.
그는 빈 문패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만인이 물었다.
“왜 쓰지 않소?”
여관 주인이 답했다.
“아직 손님께서 찾는 중이시니까요.”
“무엇을?”
“자기 이름이 무엇인지. 혹은 이름보다 먼저 남겨야 할 길이 무엇인지.”
만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는 이름이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아들.
누군가에게는 아버지.
누군가에게는 빚진 사람.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누군가에게는 너무 늦은 사람.
누군가에게는 잊힌 사람.
누군가에게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
그 모든 이름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그는 갑자기 너무 시끄러운 광장 한가운데 혼자 남은 기분이 들었다.
명성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대신 불러드리겠습니다. 더 크고, 더 멀리, 더 오래.”
만인은 흔들렸다.
그때 여관 주인이 말했다.
“크게 불리는 것과, 정확히 불리는 것은 다릅니다.”
그 말은 광장 전체를 지나 객석까지 닿았다.
그리고 그 말이 닿은 곳에서, 아주 오래된 시의 그림자처럼 무언가가 일어났다.
광장 위의 소문들은 서로 다른 이름을 불렀다.
만인.
만두.
영웅.
자선가.
허풍쟁이.
선한 사람.
운 좋은 사람.
아무튼 훌륭한 사람.
이름들이 날아다녔다.
크고, 빠르고, 밝고, 엉망인 이름들.
그런데 여관 주인의 손에 든 빈 문패 앞에서는, 그 모든 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푸리나는 그 침묵을 느꼈다.
이름을 부르는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크게 외치는 이름.
그리고 너무 멀리 가버린 사람이 길을 잃지 않도록, 문 앞에 조용히 적어두는 이름.
하나는 박수를 부른다.
하나는 돌아갈 방을 찾게 한다.
푸리나는 커튼 뒤에서 문패를 보며,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나중에 필요해.”
레이튼이 물었다.
“어느 부분이 말입니까?”
“이름을 부르는 게, 붙잡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레이튼은 잠시 침묵했다.
“좋은 문장입니다. 다만 지금은 아직 닫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6막에서 열 거야.”
죠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또 우리만 모르는 계획이지?”
푸리나는 웃었다.
“관객도 모르는 게 극이야.”
그레이는 조용히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푸리나의 말을 들었다.
6막.
아직 오지 않은 문패.
아직 불리지 않은 이름.
그녀는 펜 끝으로 빈칸을 두드렸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이름이여.”
그 말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그러나 여관 주인은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다.
마치 그 작은 부름을 들은 것처럼.
슈샤니크는 그 장면에서 미세하게 눈꺼풀을 내렸다.
그녀는 이름을 많이 다루었다.
가문명.
정통성.
시민권.
세금 장부.
노예 명부.
사라진 왕국의 귀족 명단.
살아남기 위해 바꿔야 했던 이름.
살아남았기 때문에 결코 바꾸지 못한 이름.
그녀는 푸리나의 극장을 보며 처음에는 계산했다.
이 극은 민심 안정에 유효하다.
피난민들에게 좋다.
외교적으로 유용하다.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그런데 지금, 빈 문패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그렇게 느꼈다.
명성은 멀리 간다.
이름은 방을 찾게 한다.
슈샤니크는 자기 안쪽 어딘가의 닫힌 문을 떠올렸다.
그 문패에는 어떤 이름이 적혀 있었을까.
파흘라부니.
아즈나부르.
아르샤쿠니.
노예.
재상.
대서기관.
배신자.
생존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손끝이 아주 조금 굳었다.
곁에 앉은 게오르기아 아크로폴리티사는 그 움직임을 보았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이름은 교육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슈샤니크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왜입니까?”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학생도, 시민도, 병사도, 망자도 모두 추상입니다. 이름을 부른 뒤에야 책임이 시작됩니다.”
슈샤니크는 아주 작게 말했다.
“책임은 때때로 사치입니다.”
게오르기아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도가 필요하지요. 사치가 아니라 의무가 되도록.”
슈샤니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여전히 빈 문패에 머물러 있었다.
무대 위에서 만인은 명성의 배우들과 함께 광장 한가운데 섰다.
시인들이 노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스운 노래였다.
> 만인은 빵을 샀다네,
한 닢을 쓰고 영웅이 됐다네,
이름은 조금 틀렸지만,
박수는 정확히 받았다네!
객석이 웃었다.
만인은 얼굴을 감싸쥐었다.
“제발 그 노래는 멈추시오!”
그러자 두 번째 노래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 만인은 빵을 샀다네,
아이는 빵을 나눴다네,
동전은 줄었고,
손의 온기는 길에 남았다네.
만인은 고개를 들었다.
광장도 조금 조용해졌다.
명성은 어깨를 으쓱했다.
“보셨습니까? 저도 가끔은 쓸 만합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을 완전히 잃지 않는다면요.”
명성은 손을 가슴에 얹었다.
“그건 어렵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실보다 좋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예.”
“나쁜 이야기도 좋아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끔은 사실을 견디지 못합니다.”
여관 주인은 명성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 이름이 필요합니다.”
명성은 처음으로 조용해졌다.
여관 주인은 빈 문패를 만인에게 내밀었다.
“아직 이름을 쓰지 않겠습니다.”
만인이 물었다.
“왜?”
“손님께서 길을 더 걸으셔야 하니까요.”
“그럼 언제 쓰는 거요?”
“손님께서 길 끝에 오셨을 때, 혹은 손님께서 길을 잃지 않도록 누군가가 불러야 할 때.”
“그때까지 나는 만인이오?”
“예.”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이름도 나쁘지 않습니다. 모두의 이름을 잠시 입고 걷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요.”
만인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
명성은 다시 만인의 곁에 섰다.
“그럼 저도 함께 갑니까?”
만인은 명성을 보았다.
시끄럽고, 유용하고, 위험하고, 외로운 배우.
“당신은 마지막 여관까지 갈 수 있소?”
명성은 이번에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제 노래는 문밖까지 울릴 수 있습니다. 때로는 문 뒤에서도 들리는 척할 수 있지요. 하지만 방 안까지 들어가는 것은…… 이름 쪽의 일입니다.”
만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갑시다. 단, 내 이름을 너무 멋대로 바꾸지 마시오.”
명성은 밝게 웃었다.
“노력하겠습니다.”
여관 주인이 조용히 덧붙였다.
“그 약속은 기록해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명성이 헛기침했다.
“주인장, 오늘 따라 정말 까다로우십니다.”
“손님들이 많아서요.”
그때 객석의 그레이가 아주 작게 말했다.
“그 약속은 기록하겠습니다.”
명성은 들을 수 없었겠지만, 어쩐지 무대 위에서 잠시 어깨를 움찔했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는 장부에 적었다.
> 명성: 문밖까지 울림.
이름: 방 안으로 안내함.
주의: 크게 불리는 것과 정확히 불리는 것은 다르다.
그레이는 펜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오늘 이 극에는 나중에 문패가 필요합니다.”
푸리나는 답했다.
“응. 아주 중요한 문패가.”
그레이는 알고 있었다.
아직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장부의 빈칸은 이미 생겨 있었다.
무대 위 만인은 광장을 지나려 했다.
그때 시인 하나가 그를 불렀다.
“만인!”
만인은 뒤돌아보았다.
시인은 물었다.
“당신은 위대한 사람입니까?”
만인은 잠시 생각했다.
“아직 모르겠소.”
전령이 물었다.
“착한 사람입니까?”
“그것도 모르겠소.”
광대가 물었다.
“유명해지고 싶습니까?”
만인은 조금 부끄럽게 말했다.
“조금은.”
험담꾼이 씩 웃었다.
“솔직하군.”
만인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틀린 이름으로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소.”
명성의 배우들이 잠시 조용해졌다.
여관 주인은 문패를 품에 넣었다.
“좋은 시작입니다.”
만인이 물었다.
“무엇의 시작이오?”
“손님께서 자신을 남의 입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시작입니다.”
만인은 그 말이 어려웠다.
그러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광장 끝에는 다음 길이 보였다.
관청이었다.
석조 계단.
높은 문.
탁자 위에 놓인 왕관.
그리고 아직 아무도 쓰지 않은 명령서.
명성이 눈을 빛냈다.
“아, 저 친구도 유명합니다.”
재물이 짤랑거리며 말했다.
“권력 말인가?”
명성은 웃었다.
“우리는 자주 함께 다니지.”
재물도 웃었다.
“그러다 가끔 서로를 잡아먹고.”
만인은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둘 다 너무 친한 것 같은데.”
여관 주인은 조용히 말했다.
“길 위에서 자주 만나는 손님들입니다.”
“좋은 손님들이오?”
여관 주인은 잠시 생각했다.
“자리에 맞게 앉으면요.”
만인은 그 말을 듣고 관청 쪽을 보았다.
광장의 소음은 아직 뒤에서 그를 불렀다.
“위대한 만인!”
“용감한 만두!”
“정확히 불러! 만인!”
“만인!”
“만인!”
그 소리들은 조금씩 뒤섞이다가, 결국 하나의 흐릿한 합창이 되었다.
하지만 그 합창 아래, 아주 작은 다른 소리가 남았다.
빈 문패를 닦던 손수건의 소리.
쓱.
쓱.
마치 아직 불리지 않은 이름을 위해 자리를 비워두는 소리였다.
만인은 걸었다.
그의 신발에는 시장의 흙과 빵가루가 묻어 있었고, 품속에는 아이가 돌려준 천 조각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쓰이지 않은 빈 문패의 그림자가,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막이 내려오기 직전, 여관 주인은 객석 쪽으로 아주 잠깐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 침묵을 문장처럼 들었다.
> 이름을 잃지 마십시오.
그러나 이름을 포스터에 맡기지도 마십시오.
막이 내려왔다.
3막이 끝났다.
그리고 6막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의 문패 장면에서는 이걸 반드시 이어받아서, 이름을 되찾는 장면을 초혼처럼 처리하면 돼.
---
3막
광장 — 명성은 멀리 가지만 길을 자주 잃는다
막이 오르자, 시장의 냄새는 사라지고 광장의 소음이 밀려왔다.
노점의 빵 냄새 대신 잉크 냄새가 났다.
동전 소리 대신 종소리와 북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외침이 들렸다.
높은 단상에는 깃발이 걸려 있었고, 벽에는 포스터들이 빽빽하게 붙어 있었다.
그 포스터들에는 모두 한 사람의 얼굴이 그려져 있었다.
만인의 얼굴이었다.
아니, 비슷했다.
어떤 포스터의 만인은 지나치게 턱이 강했고,
어떤 포스터의 만인은 눈이 세 개였고,
어떤 포스터의 만인은 실제보다 훨씬 더 영웅적으로 생겼으며,
어떤 포스터의 만인은 이상하게 생선 장수처럼 보였다.
만인은 자기 얼굴을 보고 멈췄다.
“……저건 누구요?”
광장 한복판에서 화려한 옷을 입은 시인이 외쳤다.
“위대한 만인!”
다른 전령이 외쳤다.
“용감한 만두!”
만인이 즉시 고개를 돌렸다.
“만두?”
광대가 춤추며 소리쳤다.
“성스러운 만…… 만…… 음, 아무튼 훌륭한 분!”
“이름을 모르면 부르지 마시오!”
그러자 북을 치던 사람이 말했다.
“이름이 틀려도 일단 퍼지면 이긴 겁니다!”
만인은 경악했다.
“이기는 문제가 아니잖소!”
그때 광장 단상 위로 은빛 옷을 입은 배우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한 명이 아니었다.
시인, 전령, 광대, 서기관, 노래꾼, 험담꾼, 그리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군중까지.
그들이 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는 명성.”
한 사람이 속삭였다.
“우리는 소문.”
다른 사람이 노래했다.
“우리는 이름보다 빠르고, 진실보다 가볍고, 바람보다 넓지.”
광대가 만인의 어깨에 팔을 걸었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이제 유명합니다!”
만인은 경계했다.
“무엇으로?”
명성은 웃었다.
“그건 아직 정하는 중입니다.”
“정하는 중?”
“그렇습니다. 어떤 분은 당신을 자선가라고 부르고, 어떤 분은 야심가라고 부르며, 어떤 분은 돈주머니가 작아진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건 방금 시장에서 한 닢 쓴 것뿐이오!”
“소문은 작은 것을 좋아합니다. 키우기 쉽거든요.”
전령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오늘의 속보! 위대한 만인, 전 재산을 털어 굶주린 아이를 구하다!”
만인은 비명을 질렀다.
“전 재산 아니오! 한 닢이오!”
다른 전령이 또 외쳤다.
“수정 속보! 만인, 한 닢만 쓰고도 위대한 척하다!”
“그건 또 아니지!”
시인이 감동적인 표정으로 낭송했다.
“그는 빵을 나누었다네.
그 빵은 태양이었고, 아이는 봄이었으며, 만인의 손은—”
만인이 다급히 끼어들었다.
“그만! 손이 뭘 했는데!”
시인은 눈을 반짝였다.
“황금빛 구원의 손.”
“그렇게까지는 아니었소!”
험담꾼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구원이라기엔 빵이 좀 작았지.”
만인은 머리를 감싸쥐었다.
객석에서 웃음이 터졌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명성 막은 웃음이 먼저야. 아주 좋아.”
레이튼은 말했다.
“이 막은 웃기지만 꽤 위험합니다. 이름과 소문이 갈라지는 지점이니까요.”
푸리나는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맞아. 웃기게 시작해서, 나중에 목을 콱 조이는 거지.”
죠니가 중얼거렸다.
“극장주들이 제일 무섭다니까.”
무대 위에서 명성은 만인의 손을 잡아끌었다.
“자, 단상 위로 올라가십시오.”
“왜?”
“보여야 하니까요.”
“누구에게?”
“모두에게.”
“왜 모두에게 보여야 하는데?”
명성은 진심으로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유명해져야 하니까요.”
“왜 유명해져야 하오?”
이번에는 광장 전체가 조용해졌다.
명성의 배우들이 서로를 보았다.
시인이 전령에게 물었다.
“왜지?”
전령이 광대에게 물었다.
“왜였지?”
광대가 험담꾼에게 물었다.
“왜더라?”
험담꾼은 어깨를 으쓱했다.
“남들이 알아주면 덜 외롭잖아?”
시인이 감탄했다.
“오, 그럴듯하군!”
명성은 다시 만인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남들이 알아주면 덜 외롭습니다!”
만인은 잠깐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이상하게 우스웠고, 이상하게 아팠다.
그는 포스터들을 다시 보았다.
턱이 과장된 만인.
영웅 같은 만인.
우스꽝스러운 만인.
생선 장수처럼 그려진 만인.
그 모두가 자신이 아니었다.
그런데 완전히 자신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어려웠다.
그가 시장에서 빵을 산 것은 사실이었다.
돈주머니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었다.
아이의 손에 빵이 건너간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광장에 걸린 이야기들은 그 사실을 각자 다른 옷으로 갈아입혀 놓고 있었다.
만인은 단상 아래에서 물었다.
“내가 저 안에 있기는 한 거요?”
명성은 즉시 답했다.
“물론입니다!”
험담꾼이 말했다.
“조금씩.”
시인이 말했다.
“아주 아름답게.”
전령이 말했다.
“빠르게.”
광대가 말했다.
“가끔은 엉뚱하게.”
만인은 한숨을 쉬었다.
“그럼 저것들을 마지막 여관까지 가져갈 수 있소?”
명성은 활짝 웃었다.
“저희는 아주 멀리 갑니다.”
만인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 말, 아까 재물도 했소.”
재물은 만인의 곁에서 짤랑거리며 헛기침했다.
“저는 ‘상당히 멀리까지’라고 정정했습니다.”
명성은 우아하게 웃었다.
“저는 재물보다 더 멀리 갑니다. 재물이 묻힌 뒤에도 제 노래는 남을 수 있지요.”
만인은 조금 혹했다.
“정말?”
“그럼요. 이름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집니다. 벽에 붙고, 노래가 되고, 이야기 속에 살아남습니다. 마지막 여관이라도 제 소리를 막을 수는—”
그때 여관 주인이 광장 한쪽에서 포스터 하나를 조용히 떼어냈다.
명성이 멈췄다.
“무엇을 하시는 겁니까?”
여관 주인은 포스터를 보았다.
그 포스터에는 만인의 이름이 틀리게 적혀 있었다.
> 위대한 만두.
여관 주인은 정중히 말했다.
“이름이 틀렸습니다.”
광대가 웃었다.
“그래도 재밌잖아요!”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재미있는 것과, 손님을 찾을 수 있는 것은 다릅니다.”
그는 포스터를 접어 한쪽에 놓고, 대신 작은 나무 문패 하나를 꺼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만인은 문패를 보았다.
“그건 무엇이오?”
“문패입니다.”
“내 명성보다 작군.”
“예.”
“내 포스터보다 초라하고.”
“그렇습니다.”
“노래도 없고?”
“없습니다.”
“그럼 왜 필요하오?”
여관 주인은 문패의 빈 표면을 손수건으로 닦았다.
“길을 잃은 손님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명성은 팔짱을 꼈다.
“노래가 더 멀리 갑니다.”
“예.”
“포스터가 더 눈에 띕니다.”
“그렇습니다.”
“소문은 더 빠릅니다.”
“맞습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마지막에 손님을 방으로 안내할 때, 저는 소문을 부르지 않습니다.”
광장의 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여관 주인은 빈 문패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름을 부릅니다.”
만인은 입을 닫았다.
객석에서도 웃음이 잦아들었다.
그레이의 손이 장부 위에서 멈췄다.
그녀는 무대 위 문패를 보았다.
문패.
작았다.
화려하지 않았다.
포스터처럼 군중을 모으지도 못하고, 노래처럼 멀리 퍼지지도 못한다.
하지만 이름이 틀리면, 방을 찾을 수 없다.
그레이는 천천히 펜을 들었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
그레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무대 위 만인을 보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름들을 보고 있었다.
전투 뒤 확인되지 못한 이름.
피난 행렬에서 아이가 울며 부르던 이름.
장부 속 숫자로 들어갔다가 다시 불러내야 했던 이름.
죽은 자의 사망 원인을 적어야만, 같은 죽음이 반복되지 않을 수 있었던 이름.
그레이는 낮게 말했다.
“명성은 사람을 크게 만들지만, 이름은 사람을 찾게 합니다.”
죠니가 옆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는 계속 말했다.
“크게 만드는 것보다, 찾게 하는 쪽이 먼저입니다.”
레이튼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구분입니다.”
그레이는 장부에 적었다.
> 명성: 멀리 간다. 왜곡된다.
이름: 방을 찾게 한다.
확인 필요: 마지막 여관의 문패.
그리고 잠시 후 덧붙였다.
> 이름 없는 죽음은 반복된다.
푸리나는 그 문장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객석의 알토는 무대 위 빈 문패를 보고 있었다.
그는 배우 명단을 다시 펼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자기 무릎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카식이 물었다.
“무슨 생각?”
알토는 조금 뒤에 답했다.
“명성은 기록과 자주 혼동됩니다.”
“응.”
“하지만 명성은 목소리입니다. 기록은 책임에 가깝습니다.”
아카식은 미소 지었다.
“계속해봐.”
알토는 무대 위 명성의 배우들을 보았다.
“목소리는 멀리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소리만으로는 사람이 돌아올 방을 찾기 어렵습니다. 기록은 그 사람의 선택과 결과가 아무렇게나 흩어지지 않게 붙잡아야 합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
“붙잡되, 가두지는 않고.”
아카식은 기록장에 펜을 얹었다.
“그 말 남겨도 돼?”
알토는 무심하게 말했다.
“이미 말씀드린 이상 막을 수는 없겠지요.”
“싫으면 안 적을게.”
알토는 아주 짧게 아카식을 보았다.
그 시선에는 불신이 없었다. 약간의 피로와, 아주 건조한 농담 같은 것이 있었다.
“그럴 리 없지 않습니까.”
아카식은 웃었다.
“너도 나를 꽤 아네.”
“오래 보았습니다.”
아카식은 그 말을 기록하지 않았다.
대신 무대 위 문패를 보았다.
“저 주인장은 역시 사람을 잘 찾아.”
알토는 조용히 답했다.
“찾는다는 것은, 잊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잊지 않는다는 건?”
알토는 잠시 생각했다.
“선택을 존중하되, 책임을 흐리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아카식은 이번에는 기록했다.
> 선택은 존중하되, 책임은 흐리지 않는다.
알토는 그것을 보아도 말리지 않았다.
그 무렵 무대 위 만인은 명성과 문패 사이에서 당황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명성을 버려야 하오?”
명성은 비명을 질렀다.
“버리다니요! 너무 극단적입니다!”
여관 주인도 고개를 저었다.
“버리실 필요는 없습니다.”
만인은 안도했다.
“그렇지?”
여관 주인은 말했다.
“다만 명성을 손님이라고 생각하셔야지, 이름이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명성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는 아주 좋은 손님입니다!”
여관 주인은 정중하게 말했다.
“소란스러운 손님이십니다.”
광대가 박수를 쳤다.
“맞는 말이네요!”
명성은 광대를 노려보았다.
“너도 나잖아!”
“그래서 더 잘 알지!”
객석에서 다시 웃음이 터졌다.
만인은 조금 마음이 놓인 듯했다.
“그러니까 명성은 데려가도 되지만, 마지막까지 믿으면 안 된다?”
명성은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그 표현도 너무합니다.”
여관 주인은 말했다.
“명성은 길 위에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손님을 찾는 이에게 단서가 될 수도 있고, 손님이 한 일을 멀리 전할 수도 있습니다.”
명성은 다시 기운을 차렸다.
“그렇죠! 제가 없으면 누가 이야기합니까?”
“다만 명성이 이름을 대신하면, 손님은 어느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립니다.”
만인은 벽의 포스터를 보았다.
그 포스터 속 만인은 자신보다 더 크고, 더 빛나고, 더 우스웠다.
“다른 사람이 된다는 건…… 나쁜 일이오?”
여관 주인은 잠시 만인을 바라보았다.
“손님께서 그렇게 살고 싶으시다면, 제가 말릴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다만 마지막 여관에 오실 때, 방을 찾는 데 조금 오래 걸릴 수 있습니다.”
만인은 얼굴을 찌푸렸다.
“왜?”
“문패와 포스터가 다른 이름을 가리키면, 주인장도 잠시 확인이 필요하니까요.”
명성이 슬쩍 말했다.
“확인 절차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주 틀리시는 겁니다.”
“주인장, 오늘 따라 날카로우시군요.”
“손님들이 길을 잃지 않으셨으면 해서요.”
이때 광장의 단상 위에서 시인이 다시 목소리를 높였다.
“그렇다면 진짜 이름을 묻자!”
전령이 북을 쳤다.
둥.
“그대의 이름은 무엇인가!”
만인은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
그리고 멈췄다.
객석이 조용해졌다.
만인은 무대 위에서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만인.”
광대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이름이 아니라 역할 같은데요.”
전령이 말했다.
“혹은 너무 많은 이름의 합계입니다!”
시인이 말했다.
“아름답군!”
험담꾼이 말했다.
“애매하군.”
명성은 흥미롭다는 듯 만인을 빙글 돌았다.
“만인. 모두의 이름이라. 아주 좋습니다. 팔리기 쉽겠어요.”
만인은 그 말에 불편해졌다.
여관 주인은 문패를 들고 있었다.
그는 빈 문패에 아무것도 쓰지 않았다.
만인이 물었다.
“왜 쓰지 않소?”
여관 주인이 답했다.
“아직 손님께서 찾는 중이시니까요.”
“무엇을?”
“자기 이름이 무엇인지. 혹은 이름보다 먼저 남겨야 할 길이 무엇인지.”
만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는 이름이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아들.
누군가에게는 아버지.
누군가에게는 빚진 사람.
누군가에게는 좋은 사람.
누군가에게는 너무 늦은 사람.
누군가에게는 잊힌 사람.
누군가에게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
그 모든 이름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그는 갑자기 너무 시끄러운 광장 한가운데 혼자 남은 기분이 들었다.
명성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대신 불러드리겠습니다. 더 크고, 더 멀리, 더 오래.”
만인은 흔들렸다.
그때 여관 주인이 말했다.
“크게 불리는 것과, 정확히 불리는 것은 다릅니다.”
그 말은 광장 전체를 지나 객석까지 닿았다.
그리고 그 말이 닿은 곳에서, 아주 오래된 시의 그림자처럼 무언가가 일어났다.
광장 위의 소문들은 서로 다른 이름을 불렀다.
만인.
만두.
영웅.
자선가.
허풍쟁이.
선한 사람.
운 좋은 사람.
아무튼 훌륭한 사람.
이름들이 날아다녔다.
크고, 빠르고, 밝고, 엉망인 이름들.
그런데 여관 주인의 손에 든 빈 문패 앞에서는, 그 모든 소리가 잠시 멈추었다.
푸리나는 그 침묵을 느꼈다.
이름을 부르는 일에는 두 가지가 있다.
무대 위에서 관객을 향해 크게 외치는 이름.
그리고 너무 멀리 가버린 사람이 길을 잃지 않도록, 문 앞에 조용히 적어두는 이름.
하나는 박수를 부른다.
하나는 돌아갈 방을 찾게 한다.
푸리나는 커튼 뒤에서 문패를 보며,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
“이건 나중에 필요해.”
레이튼이 물었다.
“어느 부분이 말입니까?”
“이름을 부르는 게, 붙잡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
레이튼은 잠시 침묵했다.
“좋은 문장입니다. 다만 지금은 아직 닫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6막에서 열 거야.”
죠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또 우리만 모르는 계획이지?”
푸리나는 웃었다.
“관객도 모르는 게 극이야.”
그레이는 조용히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푸리나의 말을 들었다.
6막.
아직 오지 않은 문패.
아직 불리지 않은 이름.
그녀는 펜 끝으로 빈칸을 두드렸다.
그리고 아주 작게 말했다.
“이름이여.”
그 말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그러나 여관 주인은 고개를 아주 조금 돌렸다.
마치 그 작은 부름을 들은 것처럼.
슈샤니크는 그 장면에서 미세하게 눈꺼풀을 내렸다.
그녀는 이름을 많이 다루었다.
가문명.
정통성.
시민권.
세금 장부.
노예 명부.
사라진 왕국의 귀족 명단.
살아남기 위해 바꿔야 했던 이름.
살아남았기 때문에 결코 바꾸지 못한 이름.
그녀는 푸리나의 극장을 보며 처음에는 계산했다.
이 극은 민심 안정에 유효하다.
피난민들에게 좋다.
외교적으로 유용하다.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정체성을 강화한다.
그런데 지금, 빈 문패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정확히는 그녀가 그렇게 느꼈다.
명성은 멀리 간다.
이름은 방을 찾게 한다.
슈샤니크는 자기 안쪽 어딘가의 닫힌 문을 떠올렸다.
그 문패에는 어떤 이름이 적혀 있었을까.
파흘라부니.
아즈나부르.
아르샤쿠니.
노예.
재상.
대서기관.
배신자.
생존자.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손끝이 아주 조금 굳었다.
곁에 앉은 게오르기아 아크로폴리티사는 그 움직임을 보았지만, 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말했다.
“이름은 교육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슈샤니크는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물었다.
“왜입니까?”
“이름을 부르기 전에는 학생도, 시민도, 병사도, 망자도 모두 추상입니다. 이름을 부른 뒤에야 책임이 시작됩니다.”
슈샤니크는 아주 작게 말했다.
“책임은 때때로 사치입니다.”
게오르기아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래서 제도가 필요하지요. 사치가 아니라 의무가 되도록.”
슈샤니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여전히 빈 문패에 머물러 있었다.
무대 위에서 만인은 명성의 배우들과 함께 광장 한가운데 섰다.
시인들이 노래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우스운 노래였다.
> 만인은 빵을 샀다네,
한 닢을 쓰고 영웅이 됐다네,
이름은 조금 틀렸지만,
박수는 정확히 받았다네!
객석이 웃었다.
만인은 얼굴을 감싸쥐었다.
“제발 그 노래는 멈추시오!”
그러자 두 번째 노래가 시작됐다.
이번에는 조금 달랐다.
> 만인은 빵을 샀다네,
아이는 빵을 나눴다네,
동전은 줄었고,
손의 온기는 길에 남았다네.
만인은 고개를 들었다.
광장도 조금 조용해졌다.
명성은 어깨를 으쓱했다.
“보셨습니까? 저도 가끔은 쓸 만합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사실을 완전히 잃지 않는다면요.”
명성은 손을 가슴에 얹었다.
“그건 어렵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사실보다 좋은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예.”
“나쁜 이야기도 좋아합니다.”
“그렇습니다.”
“가끔은 사실을 견디지 못합니다.”
여관 주인은 명성을 바라보았다.
“그럴 때 이름이 필요합니다.”
명성은 처음으로 조용해졌다.
여관 주인은 빈 문패를 만인에게 내밀었다.
“아직 이름을 쓰지 않겠습니다.”
만인이 물었다.
“왜?”
“손님께서 길을 더 걸으셔야 하니까요.”
“그럼 언제 쓰는 거요?”
“손님께서 길 끝에 오셨을 때, 혹은 손님께서 길을 잃지 않도록 누군가가 불러야 할 때.”
“그때까지 나는 만인이오?”
“예.”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그 이름도 나쁘지 않습니다. 모두의 이름을 잠시 입고 걷는 일은 쉽지 않으니까요.”
만인은 그 말을 오래 들었다.
명성은 다시 만인의 곁에 섰다.
“그럼 저도 함께 갑니까?”
만인은 명성을 보았다.
시끄럽고, 유용하고, 위험하고, 외로운 배우.
“당신은 마지막 여관까지 갈 수 있소?”
명성은 이번에는 거짓말하지 않았다.
“제 노래는 문밖까지 울릴 수 있습니다. 때로는 문 뒤에서도 들리는 척할 수 있지요. 하지만 방 안까지 들어가는 것은…… 이름 쪽의 일입니다.”
만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같이 갑시다. 단, 내 이름을 너무 멋대로 바꾸지 마시오.”
명성은 밝게 웃었다.
“노력하겠습니다.”
여관 주인이 조용히 덧붙였다.
“그 약속은 기록해두는 편이 좋겠습니다.”
명성이 헛기침했다.
“주인장, 오늘 따라 정말 까다로우십니다.”
“손님들이 많아서요.”
그때 객석의 그레이가 아주 작게 말했다.
“그 약속은 기록하겠습니다.”
명성은 들을 수 없었겠지만, 어쩐지 무대 위에서 잠시 어깨를 움찔했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그레이를 보았다.
그레이는 장부에 적었다.
> 명성: 문밖까지 울림.
이름: 방 안으로 안내함.
주의: 크게 불리는 것과 정확히 불리는 것은 다르다.
그레이는 펜을 멈추었다.
그리고 아주 조용히 말했다.
“오늘 이 극에는 나중에 문패가 필요합니다.”
푸리나는 답했다.
“응. 아주 중요한 문패가.”
그레이는 알고 있었다.
아직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이라는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장부의 빈칸은 이미 생겨 있었다.
무대 위 만인은 광장을 지나려 했다.
그때 시인 하나가 그를 불렀다.
“만인!”
만인은 뒤돌아보았다.
시인은 물었다.
“당신은 위대한 사람입니까?”
만인은 잠시 생각했다.
“아직 모르겠소.”
전령이 물었다.
“착한 사람입니까?”
“그것도 모르겠소.”
광대가 물었다.
“유명해지고 싶습니까?”
만인은 조금 부끄럽게 말했다.
“조금은.”
험담꾼이 씩 웃었다.
“솔직하군.”
만인은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틀린 이름으로 유명해지고 싶지는 않소.”
명성의 배우들이 잠시 조용해졌다.
여관 주인은 문패를 품에 넣었다.
“좋은 시작입니다.”
만인이 물었다.
“무엇의 시작이오?”
“손님께서 자신을 남의 입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시작입니다.”
만인은 그 말이 어려웠다.
그러나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광장 끝에는 다음 길이 보였다.
관청이었다.
석조 계단.
높은 문.
탁자 위에 놓인 왕관.
그리고 아직 아무도 쓰지 않은 명령서.
명성이 눈을 빛냈다.
“아, 저 친구도 유명합니다.”
재물이 짤랑거리며 말했다.
“권력 말인가?”
명성은 웃었다.
“우리는 자주 함께 다니지.”
재물도 웃었다.
“그러다 가끔 서로를 잡아먹고.”
만인은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둘 다 너무 친한 것 같은데.”
여관 주인은 조용히 말했다.
“길 위에서 자주 만나는 손님들입니다.”
“좋은 손님들이오?”
여관 주인은 잠시 생각했다.
“자리에 맞게 앉으면요.”
만인은 그 말을 듣고 관청 쪽을 보았다.
광장의 소음은 아직 뒤에서 그를 불렀다.
“위대한 만인!”
“용감한 만두!”
“정확히 불러! 만인!”
“만인!”
“만인!”
그 소리들은 조금씩 뒤섞이다가, 결국 하나의 흐릿한 합창이 되었다.
하지만 그 합창 아래, 아주 작은 다른 소리가 남았다.
빈 문패를 닦던 손수건의 소리.
쓱.
쓱.
마치 아직 불리지 않은 이름을 위해 자리를 비워두는 소리였다.
만인은 걸었다.
그의 신발에는 시장의 흙과 빵가루가 묻어 있었고, 품속에는 아이가 돌려준 천 조각이 있었다.
그리고 아직 쓰이지 않은 빈 문패의 그림자가, 그의 뒤를 조용히 따라왔다.
막이 내려오기 직전, 여관 주인은 객석 쪽으로 아주 잠깐 시선을 돌렸다.
그는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그 침묵을 문장처럼 들었다.
> 이름을 잃지 마십시오.
그러나 이름을 포스터에 맡기지도 마십시오.
막이 내려왔다.
3막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