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56여관◆zAR16hM8he(61fdb885)2026-05-12 (화) 01:19:49
6막

불탄 성문 —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의 문패

막이 올랐다.

그곳은 더 이상 마을길이 아니었다.

집 앞의 낮은 담장도, 창가의 불빛도, 술잔과 식탁도 사라졌다.
대신 무대 위에는 성문이 있었다.

아니, 성문이었던 것이 있었다.

검게 그을린 아치.
반쯤 무너진 석벽.
불에 타 휘어진 쇠장식.
문짝은 한쪽이 떨어져 있었고, 다른 한쪽은 아직 매달려 있었지만 더는 문이라고 부르기 어려웠다.

성문 아래에는 수레바퀴 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나.
둘.
셋.

마지막 수레가 지나간 자리는 깊게 패여 있었다.
그 자국은 무대 뒤 어둠으로 이어졌고, 그 어둠 너머에는 사람들이 살아남았을지도 모르는 길이 있었다.

성문 위에는 문패들이 걸려 있었다.

너무 많았다.

처음에는 글자가 보이지 않았다.
그저 작은 나무 조각들이 불탄 성벽에 줄줄이 매달려 있을 뿐이었다.

만인은 성문 앞에 멈춰 섰다.

그는 품속의 편지를 만지고 있었다.
손에는 아직 관청에서 받은 작은 열쇠가 있었다.
허리에는 재물이 있었고, 어깨 근처에는 명성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서자, 모두가 조용해졌다.

재물은 짤랑거리지 않았다.
명성은 노래하지 않았다.
권력은 명령하지 않았다.

불탄 성문 앞에서는, 모든 것이 먼저 입을 다물었다.

만인은 낮게 물었다.

“여긴 무엇이오?”

여관 주인은 성문 옆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빗자루도, 찻주전자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는 손수건 하나를 들고 있었다.

문패를 닦기 위한 손수건이었다.

“문입니다.”

만인은 그을린 아치를 보았다.

“문이라기엔 부서졌소.”

“그렇습니다.”

“여관 문도 아니고, 집 문도 아니고, 관청 문도 아니오.”

“예.”

“그런데 왜 여기까지 와야 했소?”

여관 주인은 문패들을 올려다보았다.

“문 앞에서 멈춘 손님들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만인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때 성문 위에 걸린 문패들이 하나씩 빛을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름은 아직 없었다.

첫 번째 문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미확인 사망자.



그 옆 문패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 남쪽 성문 손실.



또 다른 문패에는.

> 후위대 전사.



또 다른 문패에는.

> 피난민 보호 중 사망.



다음 문패에는.

> 기록 불명.



만인은 그것들을 읽었다.

하나하나가 사실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하나도 사람 같지 않았다.

“이건 이름이 아니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왜 문패에 걸려 있소?”

“아직 이름이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대본대로였다.

불탄 성문.
이름 없는 문패들.
만인의 질문.
여관 주인의 대답.

이 장면은 원래부터 준비되어 있었다.

누구 한 사람의 실제 이름이 아니라, 수많은 전쟁과 피난과 붕괴 속에서 이름을 잃은 이들을 위한 상징.

푸리나는 이 장면을 통해 관객들에게 묻고 싶었다.

이름이 없는 사람도 마지막 여관에 들어갈 수 있는가.
장부 속 숫자로 묶인 사람도 손님인가.
문패가 비어 있다면, 남은 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만인은 대본대로 물었다.

“이름이 없는 사람도 마지막 여관에 들어갈 수 있습니까?”

여관 주인은 문패들을 보았다.

“예. 손님께서 이름을 잃으셨다고 해서, 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푸리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여기까지는 정확해.

이제 여관 주인은 다음 대사를 해야 했다.

이름을 찾는 일은 산 자의 몫이라고.
문패가 비어 있다고 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문패를 되찾아주는 일은 남은 자의 책임이라고.
그리고 만인을 다음 정류장, 전언의 방으로 보내야 했다.

그런데 여관 주인은 다음 대사를 하지 않았다.

그는 멈춰 섰다.

불탄 성문 왼쪽 아래, 그을음이 가장 짙게 낀 문패 하나 앞에서.

푸리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저 동작은 없는데?”

레이튼이 낮게 물었다.

“배우의 즉흥입니까?”

푸리나는 대본을 훑었다.

그런 동선은 없었다.
그런 침묵도 없었다.
그런 문패에 별도의 표식도 없었다.

“아니. 즉흥이라기엔…… 너무 조용해.”

그레이가 장부를 들고 한 걸음 가까이 다가왔다.

“아닙니다.”

푸리나가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

그레이의 눈은 문패를 보고 있었다.

“저건 연기하는 손이 아닙니다.”

그녀는 아주 낮게 말했다.

“확인하는 손입니다.”

여관 주인이 손수건을 꺼냈다.

그 손수건은 하얗지 않았다.
많은 문을 닦고, 많은 찻잔을 닦고, 많은 손님이 흘린 비와 먼지를 받아낸 것처럼 낡은 색이었다.

그가 문패를 닦았다.

쓱.

그을음이 조금 벗겨졌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다시.

쓱.

글자 하나가 드러났다.

> 사.



그 순간, 객석의 공기가 바뀌었다.

웃음도, 숨소리도, 옷자락이 스치는 소리도 모두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푸리나는 그것을 느꼈다.

무대가 더 넓어진 것이 아니었다.
조명이 바뀐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공간이 깊어졌다.

마치 극장 뒤쪽에 없던 복도가 열리고, 그 복도 끝에서 누군가가 오래 기다렸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든 것 같았다.

아카식은 기록장을 펼쳤다.

그의 얼굴에는 놀람보다 반가움이 먼저 있었다.
그리고 그 반가움 아래에는 오래된 존중이 있었다.

“아.”

그는 아주 작게 말했다.

“문을 여는구나.”

알토는 바로 펜을 들지 않았다.

그는 먼저 무대를 보았다.

명단에 없는 이름.
대본에 없는 문패.
그러나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

알토는 낮게 말했다.

“아직 이름 붙이면 안 되겠습니다.”

아카식이 그를 보았다.

알토는 문패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지금 일어난 일을 ‘연출’이라고 부르면 너무 좁습니다. ‘기적’이라고 부르면 너무 빠르고, ‘소환’이라고 부르면 위험합니다.”

아카식은 조용히 웃었다.

“그럼?”

알토는 잠시 침묵했다.

“방문 절차가 시작된 것 같습니다.”

아카식의 웃음이 조금 깊어졌다.

“말투는 딱딱한데, 정확하네.”

“정확해야 합니다.”

알토는 그제야 펜을 들었다.

“이번 기록은 이름을 너무 빨리 닫으면 안 됩니다.”

아카식은 기록장 위에 손을 얹었다.

“응. 오늘은 장면이 먼저야.”

그리고 그는 아주 작게 덧붙였다.

“기록은 그 뒤를 따라가면 돼.”

객석 끝에서 타마르 여왕은 찻잔을 내려놓았다.

달칵.

그 소리는 작았지만, 이상하게도 몇몇 사람에게는 종처럼 들렸다.

타마르는 황혼빛 같은 미소를 지었다.

“이제 문턱이 짙어졌군요.”

그녀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죽음을 부르는 자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잘 익은 포도를 수확할 시간을 아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아직 거두러 온 것은 아니고…… 문밖에 앉아 있던 손님에게 이름을 돌려주는 일이군요.”

그녀는 무대 위 여관 주인을 바라보았다.

“예의가 좋으십니다.”

그 한마디에 푸리나는 이상하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타마르가 “예의가 좋다”고 말한 상대가 단순한 배우일 리 없었다.

아레는 조용히 숨을 들이마셨다.

그녀의 눈은 문패와 여관 주인의 손에 고정되어 있었다.

죽은 이를 다시 파내어 움직이는 것.
기억으로 부르는 것.
죽지 않은 것과 살아 있는 것의 차이.
소환과 작별의 차이.

마가트로이드가의 소환술이라면 그녀는 잘 알았다.
죽은 형상을 세울 수 있고, 기억의 잔향을 움직이게 할 수 있으며, 전장과 대전략 속에서 망자의 형태를 이용하는 기술도 없지 않다.

하지만 지금 눈앞의 것은 달랐다.

실을 건 것이 아니었다.
명령한 것도 아니었다.
대가를 걸고 끌어낸 것도 아니었다.

문패를 닦았다.

그뿐이었다.

그런데 그 단순한 행위가 성문 아래의 죽음을 다시 정렬하고 있었다.

아레는 낮게 말했다.

“여기서 선을 잘못 넘으면 안 됩니다.”

푸리나는 그녀를 보았다.

아레의 목소리에는 놀람보다 경계가 많았다.
하지만 적의는 없었다.

“부활이면 안 됩니다.”

아레는 계속 말했다.

“소환이어도 안 됩니다. 죽은 자를 전력으로 삼는 것도 아니고, 산 자의 미련으로 묶는 것도 아니어야 합니다.”

그녀는 문패를 보았다.

“하지만 저건…… 끌어내는 게 아닙니다.”

그녀의 눈이 여관 주인의 손을 따라갔다.

“방향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루나리아 아누아도 손을 모았다.

“생명으로 돌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 말에 아스트리트 나흐트로제가 거의 동시에 고개를 들었다.

“예. 생명이 다시 피어난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의 신앙은 달랐다.

루나리아는 달빛과 치유와 성지의 질서 속에서 보았고, 아스트리트는 생명의 긍정이라는 시원성좌의 교리 속에서 보았다.

그러나 결론은 같았다.

저것은 죽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아스트리트는 아주 천천히 말했다.

“죽은 자를 산 자로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죽은 자의 길이 어디에 닿아 있었는지 확인하는 일입니다.”

루나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산 자가 그 길을 오해하지 않게 해주는 일이기도 하겠지요.”

아스트리트는 무대 위 여관 주인을 보았다.

“생명을 긍정한다는 것은 죽음을 지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저분은…… 죽음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죽은 자를 이름 없는 어둠에 두지 않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그건 제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입니다.”

레플리카는 사르키스가 아직 이름을 완전히 되찾기 전의 문패를 보고 있었다.

그녀가 본 것은 기적의 크기가 아니었다.

고통의 흐름이었다.

미확인자.
후위대 손실.
피난민 보호 중 사망.

그런 말들은 사람을 덜 아프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을 아무도 붙잡지 못하게 만들어, 산 자의 안쪽에서 계속 썩게 한다.

레플리카는 낮게 말했다.

“이름 없는 고통은 오래 남습니다.”

가브리엘라가 그녀를 보았다.

레플리카는 이어 말했다.

“누구 때문에 아픈지 모르면, 사람은 모든 것을 미워하게 됩니다. 어디서 다쳤는지 모르면, 상처는 몸 전체가 됩니다.”

그녀는 여관 주인의 손을 보았다.

“저분은 상처를 아름답게 만들고 있는 게 아닙니다.”

가브리엘라는 부드럽게 답했다.

“상처의 자리를 확인하고 계시는군요.”

“예.”

레플리카는 눈을 내렸다.

“그래야 싸맬 수 있습니다.”

스토얀카는 그 옆에서 문패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눈은 위험하게 고요했다.

“죽은 이름이 다시 결을 얻는군요.”

레플리카가 바로 불렀다.

“스토얀카.”

스토얀카는 고개를 살짝 숙였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감상도 조심하십시오.”

스토얀카는 여관 주인의 손을 보았다.

“조심하고 있습니다. 정말로요.”

그녀의 미소가 아주 조금 깊어졌다.

“저 손은 사람을 찢어서 안쪽을 보지 않네요. 그저 겉에 눌어붙은 그을음을 닦아낼 뿐입니다. 그런데도 안쪽의 이름이 드러납니다.”

레플리카의 눈이 차가워졌다.

스토얀카는 부드럽게 덧붙였다.

“그래서 더 무섭다는 뜻입니다.”

레플리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도 그 말의 절반은 부정하지 못했다.

미하일라는 푸리나를 보았다.

푸리나는 당황하고 있었다.

그 표정을 보고, 미하일라는 곧바로 결론을 내렸다.

이건 푸리나의 계산이 아니다.

푸리나 헤툼이 아무리 훌륭한 극장주라도, 죽은 자의 실제 이름이 대본 밖에서 돌아오는 장면을 정치적 장치로 계산해 넣지는 못한다.
넣었다면 지금 저 얼굴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미하일라는 다시 무대 위 여관 주인을 보았다.

죽은 자의 이름을 되찾아 세울 수 있는 힘.

그것을 군중의 환호로 만들지 않고, 문패 하나를 닦는 일로 처리하는 절제.

그녀는 낮게 말했다.

“위험한 힘이다.”

요안나가 흠칫했다.

“나쁜 뜻인가요?”

“아니.”

미하일라는 시선을 떼지 않았다.

“힘은 위험하다. 특히 사람의 죽음과 이름을 다루는 힘은.”

루나리아가 조용히 말했다.

“그래서 저렇게 조용히 쓰는 것이겠지요.”

미하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 이는 군중을 부르지 않는다. 죽은 자를 내세워 명령하지도 않는다. 살아 있는 자들의 감정을 흔들 수 있는데도, 흔드는 대신 닦고 있다.”

카를로타는 무대 위 손의 움직임을 보았다.

“동작이 작습니다.”

라플리가 낮게 말했다.

“저 정도 권능이면 더 크게 보여줄 수도 있을 텐데.”

카를로타는 말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 자의 동작입니다.”

미하일라는 그 말에 아주 작게 웃었다.

“그 평은 정확하군.”

요안나는 무대 위 여관 주인을 바라보았다.

“그러면 저분은…… 아주 높은 분인가요?”

미하일라는 잠시 생각했다.

“높다고만 부르기에는 이상하군.”

“그럼요?”

“깊다.”

미하일라는 말했다.

“저런 존재는 높이에서 내려다보지 않는다. 문턱에 서 있다.”

호흐마이스터도 같은 장면을 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가 본 것은 신비의 규모가 아니었다.

예법이었다.

문패를 닦는 손.
이름을 확인하는 손.
문을 열기 전에 손님을 확인하는 손.

저것은 권능이었다.

그러나 과시가 아니었다.

명령이 아니었다.
정복도 아니었다.
기적을 선포하는 것도 아니었다.

입장 절차였다.

그 사실이 호흐마이스터를 가장 크게 흔들었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

“주인장이군요.”

아스트리트가 그녀를 보았다.

호흐마이스터는 정중하게, 그러나 평소보다 훨씬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문을 열 자격과, 다시 닫을 책임을 함께 아는 자입니다.”

그녀는 자기 장갑 낀 손을 보았다.

자신은 문을 닫아본 적이 많다.
누군가를 막아본 적도 많다.
질서라는 이름으로, 기사단이라는 이름으로, 사랑하는 땅을 지키겠다는 이름으로.

하지만 문을 여는 일은 언제나 더 어려웠다.

문을 열면 위험이 들어온다.
문을 닫으면 사람이 남겨진다.

저 주인장은 그 둘을 모두 안다는 듯 손수건 하나로 문패를 닦고 있었다.

호흐마이스터는 아주 작게 말했다.

“무례하게 이름을 물어서는 안 되겠군요.”

아스트리트가 물었다.

“왜입니까?”

“저분은 먼저 손님의 이름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호흐마이스터는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예법을 지키는 자에게, 이쪽이 먼저 무례하게 이름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스트리트는 그 대답을 듣고 여관 주인을 다시 보았다.

그녀도 이제 알 수 있었다.

저 이는 단순히 죽은 자를 부르는 사람이 아니다.

죽은 자의 이름을 먼저 확인하는 사람이다.

민다우가스는 웃고 있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여전히 호방한 왕의 얼굴이었지만, 눈 안쪽은 아주 차갑게 계산하고 있었다.

죽은 자의 이름이 돌아온다.
대본에 없는 사람이 무대 위로 선다.
관객들이 그 사실을 본다.
왕과 성직자와 신술사와 기록자가 동시에 목격한다.

이건 나라 하나를 흔들 수 있다.

민다우가스는 낮게 말했다.

“큰 기적은 사람을 놀라게 한다.”

아스테르다스가 그를 보았다.

민다우가스는 계속 말했다.

“조용한 기적은 사람의 상식을 바꾼다.”

아스테르다스는 부드럽게 물었다.

“경계하십니까?”

“한다.”

민다우가스는 즉답했다.

그리고 아주 낮게, 그러나 호방한 말투의 껍질을 잃지 않은 채 덧붙였다.

“하지만 무례하게 굴 생각은 없다. 저런 문을 다루는 자에게 무례한 왕은 오래 살지 못한다.”

아스테르다스는 무대 위 문패를 보았다.

“그럼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민다우가스의 입가에 다시 웃음이 돌아왔다.

“여관에 들어가면 먼저 신발의 흙을 털어야지.”

그 말은 농담처럼 들렸다.

하지만 아스테르다스는 그 말 안쪽의 계산을 읽었다.

무례하지 않는다.
너무 가까이 가지도 않는다.
예를 갖춘다.
그리고 문이 어느 방향으로 열리는지 본다.

민다우가스다운 판단이었다.

벨라는 소피아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피아는 무대 위 갑자기 깊어진 문패를 멍하니 보고 있었다.

“저건…… 무대 장치가 아니죠?”

벨라는 짧게 답했다.

“아니다.”

“그럼 진짜예요?”

벨라는 잠시 침묵했다.

“진짜라는 말도 부족하다.”

소피아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진짜보다 더한 게 있어요?”

벨라는 불탄 성문을 보았다.

“사람이 죽으면, 남은 자는 흔적을 붙잡는다. 이름, 물건, 마지막 말, 고장 난 나무 말 같은 것.”

소피아의 손이 움찔했다.

벨라는 계속 말했다.

“대개 그 흔적은 고칠 수 없다. 다만 보존한다.”

“그런데요?”

“저 이는 지금 보존된 흔적을 문으로 만들고 있다.”

소피아는 무대 위 문패를 보았다.

“문으로……”

그녀는 아직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죽은 사람을 무대 위로 세우는 일이 아니었다.
남은 흔적이, 아주 잠깐, 누군가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되는 일이었다.

소피아는 아주 작게 말했다.

“그럼 나무 말도……”

벨라는 그녀를 보았다.

소피아는 입을 다물었다.

아직은 너무 이른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생각은 이미 그녀 안에 들어왔다.

여관 주인은 다시 손수건을 움직였다.

쓱.

글자가 더 드러났다.

> 사르……



그레이의 장부가 열렸다.

정말로 열렸다.

마치 누군가가 장부 속에서 문을 두드린 것처럼, 오래된 장들이 스스로 넘어갔다.

그레이는 놀라지 않았다.

놀랄 틈이 없었다.

그녀는 해야 할 일을 알았다.

“미확인 사망자.”

그녀가 낮게 말했다.

“남쪽 성문. 후위대. 피난민 수레. 마지막 개방 유지. 성문 손잡이 고열 손상 가능성.”

푸리나가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 너 이 이름 알아?”

“아직 모릅니다.”

그레이는 대답했다.

“하지만 단서가 맞춰지고 있습니다.”

그녀의 펜이 장부 위를 미끄러졌다.

“이름이 오고 있습니다.”

그 말에 푸리나는 숨을 멈췄다.

이름이 오고 있다.

사람이 오는 것이 아니라, 이름이 먼저 온다.

그것이 여관좌의 예법인가.

여관 주인이 다시 문패를 닦았다.

쓱.

이번에는 이름이 보였다.

> 사르키스.



객석의 공기가 한 번 더 깊어졌다.

그레이는 거의 동시에 말했다.

“사르키스.”

그 목소리는 작았다.

그러나 정확했다.

여관 주인은 마지막으로 손수건을 움직였다.

쓱.

성씨가 드러났다.

> 바르다니안.



그레이의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 이름은 대본에 없었다.

그러나 무대 위 문패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

푸리나는 대본을 내려다보았다.

그런 이름은 없었다.
그런 배우도 없었다.
그런 전환도 없었다.

그런데 극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지고 있었다.

푸리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이름 없는 죽음을 위한 상징을 세웠다.

그러나 오늘 밤, 그 상징의 문을 통해 진짜 손님 하나가 들어왔다.

그녀의 손이 대본을 꽉 쥐었다.

순간, 무대 전체가 자기 손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극장주에게 그보다 무서운 감각은 드물다.

하지만 동시에, 푸리나는 이상하게도 분노하지 않았다.

이것은 자기 극을 빼앗는 손이 아니었다.

오히려 자기 극이 진짜로 말하고 싶었던 것을, 너무 깊은 곳에서 밀어 올리는 손이었다.

푸리나는 아주 작게 말했다.

“이건 내 연출이 아니야.”

레이튼이 곁에서 답했다.

“하지만 폐하의 극장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말은 무거웠다.

내 연출은 아니다.
하지만 내 극장 안에서 일어난다.

그렇다면 이것은 침범인가.

아니면 손님인가.

푸리나는 무대 위 여관 주인을 보았다.

그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자기 이름을 알리지도 않았다.
자기 권능을 드러내며 관객의 시선을 빼앗지도 않았다.

그저 문패를 닦았고, 이름을 돌려주었다.

푸리나는 숨을 들이마셨다.

“좋아.”

레이튼이 그녀를 보았다.

“괜찮으십니까?”

푸리나는 아직 떨리는 손으로 대본을 붙잡고 있었다.

“괜찮진 않아.”

죠니가 말했다.

“솔직하네.”

푸리나는 웃지 않았다.

“하지만 받아야지.”

그녀는 무대 위 문패를 보았다.

“극장주잖아. 갑자기 온 손님도 자리를 만들어줘야지.”

레이튼은 아주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

“훌륭한 판단입니다.”

그레이는 장부를 펼친 채 말했다.

“그럼 기록을 계속합니다.”

푸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계속해.”

그 순간, 이름이 불린 그림자가 사람의 윤곽을 되찾기 시작했다.

불탄 성문 위의 검은 그림자 하나가 떨렸다.

그것은 배우의 등장이라기보다, 오래된 장부에서 마른 잉크가 다시 젖어드는 일에 가까웠다.

갑옷.
그을린 손.
성문 손잡이.
마지막 수레를 바라보던 눈.

사르키스 바르다니안은 그렇게 무대 위에 섰다.

객석은 완전히 조용해졌다.

아무도 박수치지 않았다.

박수칠 장면이 아니었다.

사르키스는 자기 문패를 보았다.

그리고 여관 주인을 보았다.

“제 이름입니까?”

그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아주 오래 말을 하지 못한 사람의 목소리였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예.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님.”

사르키스는 그 이름을 듣고 눈을 감았다.

“오래 걸렸군요.”

여관 주인은 부드럽게 말했다.

“길이 많이 막혀 있었습니다.”

사르키스는 작은 웃음을 흘렸다.

“문은 열어두었는데.”

그 말에 객석 어디선가 숨이 막히는 소리가 났다.

성문 위쪽에 그림자가 더 선명해졌다.

그림자 병사들이 있었다.

그들은 얼굴이 흐렸다.
갑옷은 먼지에 덮여 있었고, 손에는 창과 방패가 들려 있었다.

성문 너머에서는 수레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피난민들.

아이를 업은 어머니.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노인.
짐을 절반만 실은 수레.
한 손으로 닭장을 붙잡은 소년.
울지 않으려 입술을 깨문 어린아이.

그리고 그 뒤에서 먼지구름이 올라오고 있었다.

적이 오고 있었다.

무대 위 권력이 조용히 말했다.

“성문을 닫으면, 안쪽은 산다.”

만인은 성문 아래의 피난민들을 보았다.

“바깥은?”

권력은 대답하지 않았다.

명성이 아주 작게 말했다.

“성문을 열어두면 영웅이 됩니다.”

재물이 더 작게 말했다.

“그리고 성문이 무너지면, 모든 창고가 불탑니다.”

만인은 그 둘을 노려보았다.

그들은 즉시 입을 다물었다.

성문 위 사르키스는 성문 손잡이를 붙잡고 있었다.

불에 그을린 손잡이.
이미 너무 뜨거워졌을 손잡이.
그러나 그는 놓지 않았다.

그는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마지막 수레!”

무대 뒤에서 누군가 대답했다.

“아직입니다!”

그는 다시 성문 밖을 보았다.

먼지구름이 더 가까워졌다.

그림자 병사들이 쓰러졌다.
한 명.
또 한 명.

그러나 성문은 아직 열려 있었다.

만인은 숨을 삼켰다.

“닫지 않았군.”

여관 주인은 말했다.

“예.”

“왜?”

여관 주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 대신, 성문 위의 장면이 조금 더 선명해졌다.

사르키스의 손이 떨렸다.

손바닥은 벗겨졌고, 손가락은 굳어가고 있었다.
성문 손잡이는 뜨거웠다.
창상이 어깨를 적셨고, 피가 팔을 타고 내려왔다.

카를로타는 그 손을 보고 있었다.

활을 보는 눈과 달랐다.

무기를 보는 눈도 아니었다.

손잡이를 놓지 못한 손.
성문을 열어둔 손.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자기 이름을 남기지 못하고, 문의 기능으로만 남을 뻔한 손.

카를로타는 낮게 말했다.

“손가락이 망가졌겠군요.”

라플리가 곁에서 그녀를 보았다.

“그걸 지금 봐?”

카를로타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입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담담했다.

“손잡이를 오래 잡았습니다. 뜨거웠을 겁니다. 힘줄이 굳고, 손바닥은 벗겨졌을 겁니다. 그래도 놓지 않았습니다.”

미하일라가 카를로타를 보았다.

카를로타는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활을 잘 쏘는 손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놓지 않는 손이 더 많은 사람을 살립니다.”

그 말에 미하일라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왕관과 활.

그리고 성문 손잡이.

세 가지는 모두 다른 물건이었다.

그러나 모두 손의 책임이었다.

무대 위 만인은 사르키스의 문패를 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마지막 여관에 무엇을 들고 갔소?”

여관 주인은 답했다.

“손잡이의 열기.”

만인은 눈을 깜빡였다.

“그런 것도?”

“예.”

“그리고?”

“마지막 수레가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닫히지 않은 문.”

만인은 사르키스를 보았다.

“그럼 이 사람은 영웅이오?”

명성이 조심스럽게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 질문이라면 제가—”

여관 주인이 명성을 보았다.

명성은 입을 닫았다.

만인은 다시 물었다.

“영웅이오?”

여관 주인은 잠시 침묵했다.

“사람입니다.”

만인은 그 대답을 예상하지 못했다.

“사람?”

“예.”

“성문을 열어두고 죽었는데?”

“예.”

“그런데도 먼저 사람이라고 부르오?”

여관 주인은 사르키스의 문패를 보았다.

“영웅이라고 부르면, 때때로 그의 죽음이 너무 빨리 아름다워집니다.”

객석의 레플리카가 눈을 내렸다.

그 말은 그녀의 안쪽을 정확히 지나갔다.

여관 주인은 계속 말했다.

“하지만 사람이라고 부르면, 그가 아팠다는 사실도, 두려웠다는 사실도, 돌아가고 싶었다는 사실도 함께 남습니다.”

만인은 사르키스를 보았다.

그의 얼굴은 영웅의 조각상처럼 고요하지 않았다.

지쳤다.
무서웠다.
그리고 끝까지 버텼다.

만인은 아주 낮게 말했다.

“그러면 더 무겁군.”

“예.”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이름은 대체로 그렇습니다.”

객석의 그레이가 장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조용했다.

하지만 푸리나는 알고 있었다.

그레이는 무대 위 사르키스만 보는 것이 아니었다.

비슷한 이름들을 보고 있었다.

“미확인자”라고 적혀 있던 사람.
“후위대 손실”로 묶였던 사람.
“피난민 보호 중 사망”이라는 말로 충분하다고 처리될 뻔한 사람.

그레이는 낮게 말했다.

“영웅으로 쓰면 편합니다.”

푸리나는 그녀를 보았다.

그레이는 계속 말했다.

“하지만 편하면 안 됩니다.”

레이튼이 물었다.

“왜 그렇습니까?”

그레이는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영웅이라고 쓰는 순간, 같은 죽음이 반복되어도 견딜 수 있는 이야기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다.

그러나 분명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남쪽 성문 방어조. 마지막 피난민 수레 통과 시까지 성문 개방 유지. 고열 손상, 창상, 과다출혈 추정.”

푸리나는 숨을 삼켰다.

그레이는 펜을 내려놓지 않았다.

“그리고 원인. 후퇴로 확보 미비. 성문 교대 실패. 피난민 수레 이동 지연. 예비대 배치 부족.”

죠니가 낮게 말했다.

“그레이.”

그레이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기록해야 합니다.”

“알아.”

“같은 이유로 다시 죽지 않도록.”

객석의 몇몇 사람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숙였다.

아카식은 기록장에 펜을 올렸다.

그러나 쓰기 전에 알토를 보았다.

알토는 잠시 무대와 그레이를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이름을 남긴다는 건, 죽음을 장식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카식은 조용히 들었다.

알토는 이어 말했다.

“그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무엇이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지를 함께 남기는 일입니다.”

아카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는 기록했다.

> 이름은 장식이 아니라, 반복을 막는 문패다.



알토는 그 문장을 보고 아주 조금 눈을 내렸다.

“그 표현은 괜찮습니다.”

아카식은 작게 웃었다.

“허락받았다.”

알토는 건조하게 답했다.

“정확히는 묵인입니다.”

무대 위 사르키스는 아직 완전히 떠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문패를 보았다.

그리고 여관 주인을 보았다.

“두고 온 이름이 있습니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말씀하시지요.”

사르키스의 손이 성문 손잡이를 찾듯 허공에서 잠시 굳었다.

“아이가 있습니다.”

무대 위 만인이 고개를 들었다.

사르키스는 말했다.

“나무 말을 만들어주었습니다. 바퀴가 잘 굴러가지 않습니다.”

소피아가 객석에서 숨을 삼켰다.

라이자는 손을 가슴에 얹었다.

사르키스는 계속 말했다.

“돌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여관 주인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르키스는 고개를 숙였다.

“못 지켰습니다.”

그 말은 성문 아래의 검은 돌 위로 떨어졌다.

어디선가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리서.

“거짓말쟁이.”

사르키스의 얼굴이 무너졌다.

레플리카는 그 순간 몸을 아주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고통이 움직였다.

비명을 지르지 않는 고통.
울지도 못한 채 굳어버린 고통.
아이의 마지막 말이 가시처럼 박혀, 죽은 자와 산 자 양쪽을 동시에 찌르는 고통.

레플리카는 낮게 말했다.

“저 말은 아이에게도 남아 있습니다.”

가브리엘라가 조용히 답했다.

“예. 밤처럼.”

레플리카는 무대 위 보이지 않는 아이를 보았다.

“고통은 쉽게 떠나지 않습니다. 저 아이는 앞으로도 아버지가 앉던 자리를 볼 때마다 아플 겁니다.”

알렉산드리나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이 장면은 무엇을 바꾸는 겁니까?”

레플리카는 잠시 침묵했다.

“고통을 없애지는 못합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지만 고통이 아이의 마지막 말이 되지는 않게 할 수 있습니다.”

스토얀카는 미소 지었다.

“말 하나로 고통의 결이 바뀌는군요. 아름답습니다.”

레플리카가 즉시 그녀를 불렀다.

“스토얀카.”

스토얀카는 고개를 기울였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감상도 때로는 칼입니다.”

스토얀카는 그 말을 듣고 더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기에 조심히 들어야겠군요.”

그러나 그녀의 눈은 여전히 무대 위 고통의 결을 보고 있었다.

사르키스는 여관 주인을 보았다.

“만날 수 있습니까?”

객석은 다시 흔들렸다.

그러나 이번에는 처음처럼 술렁이지 않았다.

이미 모두가 알았다.

이 극은 대본의 바깥으로 한 걸음 나갔다.
그리고 그 바깥에는 무질서가 아니라, 이상할 만큼 정중한 문턱이 있었다.

여관 주인은 사르키스를 불쌍히 여기는 얼굴을 하지도 않았고, 기적을 베푸는 신처럼 손을 들지도 않았다.

그저 오래된 여관 주인처럼 물었다.

“다녀오시겠습니까?”

사르키스는 숨을 멈춘 듯했다.

여관 주인은 덧붙였다.

“오래 걸리지는 않으실 겁니다. 길은 제가 밝혀두겠습니다.”

그는 잠시 멈췄다.

“다만 손님, 돌아오셔야 합니다. 그곳은 이제 머무실 방이 아니니까요.”

타마르 여왕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좋은 나들이군요.”

아레는 그 말에 조금 긴장을 풀었다.

“나들이.”

그녀는 낮게 되뇌었다.

“부활이 아니고, 소환도 아니고, 병력도 아니다. 손님이 잠시 문밖으로 나가는 것.”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선은 넘지 않았습니다.”

푸리나는 대본을 꼭 쥐었다.

내 연출은 아니다.
하지만 내 극장 안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지금 이 극장은, 손님을 문전박대할 수 없는 곳이 되어 있었다.

“계속해.”

그녀가 말했다.

“길을 비춰줘.”

여관 주인이 등불을 들었다.

등불은 무대를 비추지 않았다.

길을 비추었다.
#57여관◆zAR16hM8he(61fdb885)2026-05-12 (화) 01:19:58
그 순간 불탄 성문 너머에 작은 집 앞이 겹쳐 보였다.

그것은 푸리나가 만든 세트가 아니었다.
사르키스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보았던 길, 돌아오겠다고 말하고 떠났던 문 앞, 그리고 아직 그 말을 붙잡고 있는 아이의 기억이었다.

무대가 바뀐 것이 아니었다.

여관이, 잠시 다른 방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작은 집 앞에는 아이가 앉아 있었다.

아이의 손에는 나무 말이 있었다.

바퀴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 나무 말.

아이는 그 나무 말을 바닥에 밀었다.

말은 삐걱거리며 조금 가다가 옆으로 쓰러졌다.

아이는 그것을 다시 세웠다.

또 밀었다.

또 쓰러졌다.

아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울음이 오래되어 말라붙은 얼굴이었다.

그때 사르키스가 문 앞에 섰다.

아이는 처음에는 보지 못했다.

사르키스도 부르지 못했다.

그는 전장에서는 성문을 잡고 버텼지만, 자기 아이 앞에서는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관 주인의 등불이 멀리서 희미하게 빛났다.

사르키스는 겨우 입을 열었다.

“아람.”

아이의 손이 멈췄다.

객석의 그레이가 즉시 펜을 움직였다.

> 자녀명: 아람 바르다니안.



푸리나는 그걸 보았다.

그레이는 이제 무대 위 대사를 단순히 감상하지 않고 있었다.

그녀는 이름이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다.

아이, 아람은 고개를 들었다.

그는 사르키스를 보았다.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그다음에는 화가 났다.

“거짓말쟁이.”

사르키스는 눈을 감았다.

“그래.”

“돌아온다고 했잖아.”

“그래.”

“나무 말 고쳐준다고 했잖아.”

사르키스는 아이의 손에 든 나무 말을 보았다.

“그래.”

“왜 안 왔어?”

사르키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성문을 열어두었기 때문에.
마지막 수레가 늦었기 때문에.
적이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후퇴로가 끊겼기 때문에.
자신이 놓지 않았기 때문에.

그 어떤 말도 아이에게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르키스는 말했다.

“미안하다.”

아이는 나무 말을 꼭 쥐었다.

“미안하면 돌아와.”

사르키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건 못 한다.”

“왜?”

“나는 이제 다른 방의 손님이 되었다.”

아이에게는 어려운 말이었다.

그래서 아이는 더 화난 얼굴이 되었다.

“싫어.”

사르키스는 무릎을 꿇었다.

그가 전장에서 꿇지 않았던 무릎이었다.

“나도 싫다.”

그 말은 아이를 울렸다.

아이는 울지 않으려 했지만,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그럼 왜 갔어.”

사르키스는 아이를 보았다.

“너에게 오려고.”

아이는 이해하지 못했다.

사르키스는 천천히 말했다.

“성문을 열어두지 않으면, 다른 아이들이 집에 못 갔다.”

“나는?”

그 질문은 칼보다 날카로웠다.

사르키스는 대답했다.

“너에게는 못 갔다.”

아이는 울었다.

사르키스는 손을 뻗으려 했다.

하지만 그의 손은 아이에게 닿기 직전에 멈췄다.

그는 이제 그 집에 머무를 사람이 아니었다.

여관 주인의 말이 있었다.

그곳은 이제 머무실 방이 아니니까요.

사르키스는 손을 거두었다.

대신 나무 말을 보았다.

“그 말, 바퀴가 안 굴러가지.”

아이는 훌쩍이며 말했다.

“응.”

“미안하다. 내가 대충 만들었다.”

“알아.”

사르키스는 아주 작게 웃었다.

“너는 나중에 더 잘 만들 수 있을 거다.”

“싫어. 아빠가 고쳐줘.”

사르키스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이의 손이 떨렸다.

그리고 그 순간, 객석의 소피아가 자기 무릎 위에서 손을 꼭 쥐었다.

“제가 고칠 수 있는데.”

벨라가 그녀를 보았다.

소피아는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아, 아니, 무대 소품인데…… 그래도 구조가 단순하니까. 바퀴 축만 바꾸면……”

벨라는 무대 위 아이를 보았다.

“저 말은 고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소피아는 고개를 숙였다.

“알아요.”

잠시 뒤, 그녀는 아주 작게 말했다.

“그래도 고칠 수 있는 건 고쳐야 하잖아요.”

벨라는 그녀를 오래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그렇다.”

그 말은 짧았지만, 소피아에게는 허락처럼 들렸다.

무대 위 사르키스는 아이에게 말했다.

“아람.”

아이는 고개를 들었다.

“나는 돌아오지 못한다.”

아이의 얼굴이 무너졌다.

사르키스도 무너졌다.

그러나 그는 말을 끝까지 해야 했다.

“하지만 네 마지막 말이 ‘거짓말쟁이’로 남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는 울면서 말했다.

“거짓말쟁이 맞잖아.”

“그래.”

사르키스는 고개를 숙였다.

“맞다.”

그는 그 말을 피하지 않았다.

“나는 약속을 못 지켰다. 네 말은 틀리지 않았다.”

아이의 울음이 조금 달라졌다.

사르키스는 계속 말했다.

“하지만 네가 앞으로 나를 부를 때, 그 말 하나만 남지 않았으면 한다.”

아이는 나무 말을 안고 있었다.

“그럼 뭐라고 해.”

사르키스는 오래 침묵했다.

전장에서 성문을 열어두던 사람도, 이 말 앞에서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다녀오라고.”

아이는 멈췄다.

사르키스는 말했다.

“그날 아침, 네가 그렇게 말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녀와?”

“그래.”

“그럼 돌아와야 하잖아.”

“그래.”

사르키스는 눈을 감았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아이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객석도 숨을 멈추었다.

이 장면은 기적이 아니었다.

죽은 아버지가 살아 돌아와 아이를 안아주는 장면도 아니었다.
상처가 한순간에 사라지는 장면도 아니었다.
아이의 삶이 이제 괜찮아진다는 약속도 아니었다.

그저 마지막 말 하나가 바뀔 수 있는지 묻는 장면이었다.

레플리카는 그 사실 때문에 더 아팠다.

그녀는 낮게 말했다.

“좋은 위로는 고통을 없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가브리엘라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무엇입니까?”

레플리카는 무대 위 아이를 보았다.

“고통이 전부가 아니게 해주는 것입니다.”

스토얀카는 이번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여전히 빛나고 있었다.

알렉산드리나는 사르키스가 무릎을 꿇은 모습을 보았다.

“왕도는 저런 곳에서도 시작되는군요.”

가브리엘라가 그녀를 보았다.

알렉산드리나는 말했다.

“왕관도 없고, 칙령도 없고, 새벽도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마지막 말을 바꾼다면, 그건 어둠에 무릎 꿇지 않는 일입니다.”

가브리엘라는 조용히 답했다.

“예. 다만 새벽이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너무 밤입니다.”

알렉산드리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더 조심히 말해야겠지요.”

무대 위 아이가 입을 열었다.

“다녀와.”

아주 작은 말이었다.

사르키스는 숨을 멈추었다.

아이는 울면서 다시 말했다.

“다녀와.”

사르키스는 고개를 숙였다.

“다녀오마.”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거짓말이잖아.”

사르키스는 눈물처럼 보이는 것을 흘리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은 자였으므로.

그러나 목소리는 젖었다.

“그래.”

그는 말했다.

“그래도 이번엔, 네가 나를 미워하라고 남겨두고 싶지 않다.”

아이는 나무 말을 품에 안았다.

“나중에 혼낼 거야.”

“그래.”

“많이.”

“그래.”

“나무 말도 고쳐야 해.”

사르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누군가 도와줄 거다.”

객석의 소피아가 무심코 말했다.

“제가요.”

벨라가 그녀를 보았다.

소피아는 얼굴이 빨개졌다.

“아니, 그러니까, 극이 끝나고 소품을…… 아니, 이건 극이고……”

벨라는 조용히 말했다.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쳐라.”

소피아는 고개를 숙였다.

“네.”

무대 위 사르키스는 더 머물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등불이 조금 낮아졌다.

그는 아이를 마지막으로 보았다.

손을 뻗지 않았다.

붙잡지 않았다.

다만 아주 작게 고개를 숙였다.

“수고해라.”

아이에게 하기에는 이상한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사르키스가 여관 문 앞에서 들은 말이기도 했다.

아이는 울면서 나무 말을 꼭 안았다.

“다녀와.”

사르키스는 돌아섰다.

그는 집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성문 쪽으로 돌아갔다.

여관 주인의 등불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은 짧았다.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길게 느껴졌다.

사르키스가 다시 불탄 성문 아래에 섰을 때, 그의 문패는 이미 걸려 있었다.

>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남쪽 성문 방어조.
마지막 피난민 수레 통과 시까지 성문 개방 유지.



여관 주인은 말했다.

“다녀오셨습니까?”

사르키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길은 잃지 않으셨는지요?”

“등불이 있었습니다.”

“다행입니다.”

사르키스는 문패를 보았다.

“제 방은 어디입니까?”

여관 주인은 손을 내밀지 않았다.

그저 성문 너머, 무대 뒤쪽의 깊은 어둠 속에 열린 작은 문을 가리켰다.

그 문은 불탄 성문과 달랐다.

낡았지만 온전했고, 작았지만 충분했다.

사르키스는 그 문으로 향했다.

만인이 그를 불렀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사르키스가 돌아보았다.

만인은 자신도 왜 불렀는지 몰랐다.

다만 이름을 부르고 싶었다.

그 이름이 문패에만 남지 않고, 누군가의 입에서도 정확히 불리기를 바랐다.

사르키스는 만인을 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예.”

그 한마디가 대답이었다.

이름이 닿았다.

여관 주인은 조용히 말했다.

“이름을 부르는 일이 늘 붙잡기 위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문패를 한 번 더 바라보았다.

“때로는 길을 잃지 말라고 등불을 걸어두는 일이기도 하지요.”

사르키스는 문 너머로 사라졌다.

문은 닫혔다.

하지만 잠기지는 않았다.

객석의 그레이는 펜을 내려놓았다.

그녀는 한참 동안 장부를 보았다.

푸리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레이.”

그레이는 대답했다.

“기록 완료.”

그 목소리는 평소처럼 차분했다.

그러나 그 뒤에 따라붙은 말은 조금 달랐다.

“아직 조치가 남았습니다.”

“조치?”

“성문 교대 체계. 피난민 수레 통과 절차. 후퇴로 확보. 전사자 신원 확인 체계. 유족 전달. 나무 말.”

푸리나는 조용히 웃었다.

“나무 말도?”

그레이는 진지하게 답했다.

“예. 나무 말도.”

죠니가 낮게 말했다.

“그건 소피아가 할 것 같은데.”

그레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담당자를 기재하겠습니다.”

소피아는 객석에서 작게 움찔했다.

벨라가 말했다.

“맡아라.”

“네?”

“고칠 수 있다며.”

소피아는 무대 위 아이를 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대답했다.

“네.”

그레이는 장부에 적었다.

> 나무 말 수리: 소피아 베아트리체.
목적: 유품 보존이 아니라, 산 자의 다음 걸음 보조.



아카식은 그 문장을 보며 미소 지었다.

알토가 말했다.

“좋은 분류입니다.”

아카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죽은 자의 기록이 산 자의 행동으로 이어졌으니까.”

알토는 무대 위 닫히지 않은 문을 보았다.

“기록이 거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좋은 기록입니다.”

아카식은 잠시 알토를 보았다.

“오늘 네 말투 마음에 드네.”

“평소와 같습니다.”

“아닌데.”

알토는 아주 건조하게 답했다.

“그렇게 기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알았어. 마음속에만 둘게.”

“그것도 기록의 일종입니다.”

“그러네.”

무대 위 만인은 불탄 성문 앞에 남아 있었다.

사르키스는 떠났다.

하지만 문패는 남았다.

만인은 그 문패를 보며 물었다.

“그는 마지막 여관에 무엇을 가져갔소?”

여관 주인은 답했다.

“성문 손잡이의 열기. 아이의 ‘다녀와’. 이름을 되찾은 문패. 그리고 열어둔 문으로 지나간 사람들의 발소리.”

“그 많은 것을 어떻게 들고 갑니까?”

여관 주인은 조용히 말했다.

“들고 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인은 그를 보았다.

“그럼?”

“묻어 있는 것입니다.”

만인은 자신의 손을 보았다.

시장 아이에게 빵을 건넨 온기.
집 앞 아이의 손을 놓은 감각.
관청의 열쇠.
광장의 소문.
그리고 지금, 사르키스의 이름을 부른 목소리.

그것들은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라지지도 않았다.

무대 위 불탄 성문에 바람이 불었다.

문패들이 조용히 흔들렸다.

거기에는 아직 이름이 돌아오지 않은 문패들이 많았다.

미확인자.
기록 불명.
후위대 손실.
피난민 보호 중 사망.

그레이는 그 문패들을 보았다.

아레도 보았다.

타마르도 보았다.

푸리나는 무대 뒤에서 입술을 깨물었다.

하나의 이름을 되찾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극은 이제 그 사실을 관객에게 보여주었다.

명성은 크게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이름은 하나씩 되찾아야 한다.

여관 주인은 만인을 향해 말했다.

“가시겠습니까?”

만인은 성문 너머를 보았다.

그 길은 다음 정류장으로 이어졌다.

불탄 성문 뒤편에는 작은 방이 있었다.

우편방도 아니고, 관청도 아니고, 집도 아닌 곳.

수많은 봉투와 접히지 못한 말들이 천장에 매달린 방.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말들이 머무는 방.

만인은 품속의 편지를 만졌다.

“다음은 무엇이오?”

여관 주인은 답했다.

“전언의 방입니다.”

“전언?”

“하지 못한 말들이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만인은 손가락으로 편지의 모서리를 눌렀다.

갑자기 그것이 뜨거워진 것 같았다.

“모든 말이 거기로 갑니까?”

여관 주인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어떤 말은 죽은 자의 문패에 맡겨야 하고, 어떤 말은 산 자의 손에 도착해야 합니다.”

만인은 잠시 사르키스의 문패를 돌아보았다.

“늦은 말도 있소?”

“예.”

“아직 늦지 않은 말도?”

“예.”

여관 주인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 구분이 어려운 손님들이 많습니다.”

만인은 품속의 편지를 움켜쥐었다.

재물은 조용했다.
명성도 조용했다.
권력도 말하지 않았다.

불탄 성문 아래에서는, 이름을 되찾은 문패 하나가 조용히 흔들리고 있었다.

>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 이름은 이제 광장의 노래처럼 멀리 퍼지지 않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길을 잃지는 않을 것이다.

객석의 레플리카는 눈을 감았다.

“고통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가브리엘라가 말했다.

“하지만 밤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알렉산드리나는 낮게 말했다.

“새벽은 아직 아닙니다.”

레플리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직은 아닙니다.”

가브리엘라가 조용히 덧붙였다.

“그래도 창문이 하나 생겼습니다.”

스토얀카는 무대 위 문패를 보며 미소 지었다.

“이름을 되찾은 상처라.”

레플리카가 눈을 떴다.

“스토얀카.”

“예.”

“그건 감상할 꽃이 아닙니다.”

스토얀카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은 꽃이라고 부르지 않겠습니다.”

레플리카는 그 대답을 믿지 않았지만, 지금은 무대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타마르 여왕은 찻잔을 다시 들었다.

“잘 다녀오셨군요.”

그녀는 사르키스가 사라진 문을 보았다.

“좋은 나들이였습니다.”

아레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예. 나들이였습니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안도와 경계가 함께 있었다.

“망자를 붙잡지 않았고, 산 자를 묶지도 않았습니다. 문을 열었고, 다시 닫지 않았습니다. 길을 밝혔고, 돌아오게 했습니다.”

그녀는 무대 위 여관 주인을 보았다.

“여관좌답군요.”

푸리나는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아주 작게 숨을 내쉬었다.

자기 극은 위험한 문턱을 지나왔다.

하지만 넘어지지 않았다.

무대 위 여관 주인은 아무것도 자랑하지 않았다.

기적을 일으킨 자처럼 서 있지 않았다.

그저 아직 이름을 기다리는 문패 하나를 다시 닦았다.

쓱.

쓱.

그 손수건 소리는 작았다.

하지만 이제 모두가 알았다.

저 손이 닦고 있는 것은 단순한 그을음이 아니었다.

망각이었다.

만인은 전언의 방을 향해 걸었다.

막이 내려오기 직전, 여관 주인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렸다.

“이름을 크게 부르는 일은 쉬울 수 있습니다.”

그는 문패들을 보았다.

“정확히 부르는 일은 더 어렵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거의 속삭임처럼 덧붙였다.

“그러나 손님께서 길을 잃지 않으시려면, 누군가는 끝내 그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막이 내려왔다.

6막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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