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03 향림당 참치어장 지부 (145)
작성자:여관◆zAR16hM8he
작성일:2026-05-08 (금) 01:04:15
갱신일:2026-05-13 (수) 19:12:03
#0여관◆zAR16hM8he(75f5da9d)2026-05-08 (금) 01:04:16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에는, 군사 회의실보다 더 자주 전쟁이 벌어지는 장소가 있었다. 그곳은 대회의실도, 성벽 위도, 기사단 훈련장도 아니었다. 왕궁 뒤뜰의 작은 분수대였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좋아!”
푸리나 헤툼은 분수대 가장자리 위에 올라섰다.
그레이는 들고 있던 장부를 떨어뜨릴 뻔했다.
“군주님.”
“즉흥극!”
“군주님.”
“오늘의 주제는—”
“군주님.”
그레이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한마디에는 성벽의 쇠문이 닫히는 듯한 무게가 있었다.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한쪽 발을 들고 멈췄다.
“왜?!”
“분수대는 무대가 아닙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가잖아. 관객이 있어. 물도 있어. 햇빛도 완벽해. 그러면 무대지!”
“무대 하중 계산서가 없습니다.”
푸리나는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아주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레이. 인류의 예술사는 하중 계산서보다 오래되었어.”
그레이는 조용히 대답했다.
“하지만 무너진 무대 아래에 깔리는 사람은 보통 예술사가 아닙니다.”
분수대 아래에서 죠니 죠스타가 웃었다.
그는 말고삐를 한 손에 쥔 채, 성벽 순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말은 분수대 옆에서 물 냄새를 맡고 있었고, 죠니는 그 모습을 보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레이 말이 맞네. 떨어지면 아프긴 하지.”
“죠니!”
푸리나가 항의했다.
“너는 이 찬란한 순간을 이해해줄 줄 알았는데!”
죠니는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았다.
“이해해. 지금 올라가고 싶은 거잖아.”
“그렇지!”
“근데 떨어지는 것도 지금이야.”
푸리나는 입을 삐죽였다.
그때 레이튼이 뒤뜰로 들어왔다. 손에는 작은 찻잔이 들려 있었고, 마치 전쟁 소식이 아니라 오후 산책을 들은 사람처럼 온화하게 웃고 있었다.
“후후, 아주 흥미로운 문제로군요.”
그레이가 그를 보자마자 작게 한숨을 쉬었다.
“레이튼 님. 제발 수수께끼로 만들지 말아주십시오.”
“그레이 양, 모든 문제는 수수께끼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렇지요.”
레이튼은 푸리나와 분수대, 그레이의 장부, 죠니의 말, 그리고 지나가던 시종들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군주님께서는 분수대를 무대라 부르십니다. 그레이 양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문입니다. 무대란 무엇일까요?”
푸리나가 즉시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펼칠 수 있는 곳!”
죠니가 말했다.
“발 디딜 데.”
그레이가 말했다.
“안전 검사가 끝난 구조물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레이튼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합니다. 세 답 모두 틀리지 않았군요.”
“결론은요?”
그레이가 물었다.
레이튼은 웃으며 찻잔을 내려놓았다.
“그러므로 이 분수대는 아직 이름 붙여지지 않은 별입니다.”
“레이튼 님.”
“아직 무대도 아니고, 무대가 아니라고 단정할 수도 없습니다. 다만 올바른 질문은 이것이지요. ‘어떻게 하면 이곳이 사람들을 다치게 하지 않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푸리나의 눈이 반짝였다.
그레이는 그 반짝임을 보고 불길함을 느꼈다.
“안 됩니다.”
“아직 아무 말도 안 했어!”
“눈이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그때까지 조용히 뒤편 처마 밑에 서 있던 하융이 입을 열었다.
“이상한 일이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하융은 분수대 물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햇빛이 물결에 부서지며 수십 개의 작은 창문처럼 흔들렸다.
“내 눈에는 방금 여러 가능성이 보였소. 군주님께서 분수대에서 미끄러지는 세계. 그레이 양이 그 전에 붙잡는 세계. 죠니 경이 웃다가 물을 뒤집어쓰는 세계. 레이튼 님이 그 상황조차 수수께끼로 만드는 세계.”
죠니가 말했다.
“마지막 건 가능성이 아니라 확정 같은데.”
레이튼은 부정하지 않았다.
하융은 희미하게 웃었다.
“허나 그중 하나가 조금 밝았소.”
푸리나는 분수대 위에서 몸을 낮췄다.
“어떤 가능성?”
“분수대 위가 아니라, 분수대 아래에 작은 무대를 놓는 가능성이오. 군주님은 그 위에 서고, 아이들은 물가에 앉고, 그레이 양은 기둥을 확인하고, 죠니 경은 말로 길을 막아 군중이 밀리지 않게 하고, 레이튼 님은 지나가는 이들에게 수수께끼를 내오.”
“그리고 나는?”
푸리나가 물었다.
하융은 잠시 생각했다.
“군주님은 웃고 있었소.”
푸리나는 그 말을 듣고 분수대 위에서 내려왔다.
그레이가 놀란 눈으로 그녀를 보았다.
“군주님?”
“좋아. 분수대 위는 포기.”
그레이는 아주 작게 안도했다.
“대신 분수대 아래에 무대를 만들자!”
“역시나.”
그레이는 장부를 다시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막지는 않았다.
“작은 무대라면 가능합니다. 목재는 창고에 있고, 인부들은 오후에 쉴 예정이니 강제로 부르면 안 됩니다. 자원자를 모집하고, 관객 동선은 죠니 경께 부탁하고, 응급 인력은 두 명 배치하겠습니다. 그리고 군주님.”
“응?”
“분수대 위에는 올라가지 마십시오.”
푸리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다시 말했다.
“군주님.”
“……알겠어.”
“‘아마도’는 안 됩니다.”
“알겠어!”
죠니가 말고삐를 잡아끌며 웃었다.
“그럼 난 길 막는 역할인가.”
“정확히는 군중 통제입니다.”
“뭐, 비슷하네. 말이 길을 막으면 사람들이 돌아가겠지. 멀리 돌아가는 길도 길이고.”
레이튼은 박수를 한 번 쳤다.
“좋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준비하지요. 첫 문제는 이겁니다. ‘왕이 분수대에 올라가지 않고도 모두를 올려다보게 만드는 방법은?’”
푸리나가 손을 번쩍 들었다.
“내가 왕이라서!”
“틀리지는 않지만, 더 우아한 답이 있습니다.”
“뭔데?”
레이튼은 웃었다.
“사람들이 스스로 고개를 들 만큼 즐거운 일을 만드는 것입니다.”
푸리나는 잠시 멈췄다.
평소라면 바로 웃으며 다음 장난을 말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 그녀는 분수대 주변을 보았다. 물을 길어 가던 하녀, 수레를 밀던 하인, 멀리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는 병사들, 창가에서 몰래 구경하던 아이들.
그들 모두가 조금씩 웃고 있었다.
아직 몽골의 군세는 동쪽에서 다가오고 있었다.
아나톨리아의 길은 불안했고, 사신들은 나쁜 소식을 가져왔으며, 성벽 위 병사들의 잠은 짧았다.
그래도 지금, 왕궁 뒤뜰의 분수대 앞에서, 사람들은 웃고 있었다.
푸리나는 양손을 허리에 얹었다.
“좋아. 오늘 목표!”
그레이가 즉시 물었다.
“또 무엇입니까?”
푸리나는 활짝 웃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고, 모두가 한 번씩 웃기!”
그레이는 잠시 침묵했다.
그러고는 장부 한쪽에 짧게 적었다.
뒤뜰 소규모 공연. 목적: 사기 진작. 안전 인력 배치 필요.
그리고 그 아래에 조금 망설이다가 한 줄을 더 적었다.
웃음도 필요함.
하융은 그 글자를 보았다.
그의 눈에는 잠시 다른 가능성들이 스쳤다. 웃지 않는 왕궁. 침묵하는 병사들. 장부에 사망자 수만 늘어나는 나라. 분수대가 말라붙은 세계.
그러나 그는 그 가능성들을 오래 바라보지 않았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푸리나가 무대 아래로 내려와 있었다.
그레이는 기둥을 확인하고 있었다.
레이튼은 아이들에게 낼 수수께끼를 고르고 있었다.
죠니는 말에게 “오늘은 얌전히 있어라” 하고 말하고 있었다.
하융은 조용히 말했다.
“이 현실을 선택한 보람이 있구려.”
푸리나가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하융은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아니오.”
죠니가 피식 웃었다.
“거짓말 못하네.”
레이튼은 부드럽게 덧붙였다.
“아직 이름 붙이지 않은 감정일 수도 있지요.”
그레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건 나중에 붙이셔도 됩니다. 우선 기둥부터 세워야 합니다.”
푸리나는 크게 웃었다.
“좋아! 그럼 막을 올리자!”
“아직 아닙니다.”
“왜?!”
“무대가 아직 없습니다.”
뒤뜰에 웃음이 퍼졌다.
그 웃음은 성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몽골의 정찰병에게 들리지도 않았고, 역사서에 적히지도 않았다.
어떤 성좌도 그 장면을 계시로 새기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오후, 킬리키아 아르메니아의 왕궁 뒤뜰에는 작은 무대가 하나 세워졌다.
그 무대는 화려하지 않았다.
그레이가 확인한 기둥 위에 서 있었고, 죠니가 지킨 길 옆에 놓였으며, 레이튼의 수수께끼와 하융의 조용한 시선 사이에서, 푸리나가 두 팔을 벌리고 올라섰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자, 그대들! 오늘의 주인공은 나 혼자가 아니야!”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럼 누구예요?”
푸리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웃고 싶은 사람 전부!”
그레이는 뒤에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말리지 않았다.
#58여관◆zAR16hM8he(61fdb885)2026-05-12 (화) 01:31:20
7막
전언의 방 —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말들
막이 올랐다.
불탄 성문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무대 가장자리에는 아직 그을린 돌가루가 남아 있었고, 문패들이 흔들리던 소리도 아주 멀리서 들려왔다.
쓱.
쓱.
여관 주인이 문패를 닦던 손수건 소리.
그 소리는 이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만인은 그 소리를 등 뒤에 두고 걸었다.
그의 신발에는 시장의 흙과 빵가루가 묻어 있었고, 광장의 먼지와 관청의 돌가루도 묻어 있었다.
손바닥에는 아이의 손을 놓은 감각이 남아 있었고, 목소리에는 방금 부른 이름 하나가 아직 젖어 있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 이름은 이제 만인의 안쪽에서 조용히 흔들렸다.
그는 품속의 편지를 만졌다.
“다음은 전언의 방이라고 하셨소.”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예.”
“말들이 머무는 방이라고.”
“그렇습니다.”
“말도 방이 필요하오?”
“도착하지 못한 말은 대체로 길에서 헤맵니다.”
만인은 그 말을 듣고 품속의 편지를 더 세게 눌렀다.
편지는 작았다.
종이 몇 장.
봉투 하나.
아직 봉하지 못한 말들.
그런데 갑자기 항아리보다, 돈주머니보다, 왕관보다 무거워진 것 같았다.
“말은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니오?”
여관 주인은 곧장 답하지 않았다.
길 끝에 문 하나가 보였다.
그 문은 여관방 문 같기도 했고, 우편실 문 같기도 했고, 고해실 문 같기도 했다.
문 위에는 작은 팻말이 걸려 있었다.
>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말들.
문은 닫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함부로 들어가고 싶지 않게 생겼다.
만인은 문 앞에 멈췄다.
“……여긴 시장보다 무섭군.”
여관 주인이 물었다.
“왜 그렇게 느끼십니까?”
“모르겠소.”
만인은 문손잡이를 보았다.
“시장에는 돈이 있었고, 광장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관청에는 왕관이 있었고, 성문에는 죽은 사람이 있었소.”
“예.”
“그런데 여긴 말뿐이지 않소.”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제일 들어가기 싫은지 모르겠소.”
여관 주인은 부드럽게 말했다.
“말은, 때로 이미 일어난 일보다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만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문이 열렸다.
끼익.
그 안에는 방이 있었다.
하지만 방이라기에는 너무 넓었다.
천장에서는 봉투들이 매달려 있었다.
벽에는 찢어진 편지들이 붙어 있었다.
바닥에는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 접히지 못한 종이처럼 흩어져 있었다.
어떤 말은 봉인되어 있었다.
어떤 말은 반쯤 불타 있었다.
어떤 말은 잉크가 번져 알아볼 수 없었다.
어떤 말은 너무 오래 품어졌는지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말들이 낮게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늦었습니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은 자에게 가야 합니다.”
“나는 산 자를 찾아야 합니다.”
“나는 사과였는데, 변명이 되었습니다.”
“나는 사랑이었는데, 명령이 되었습니다.”
“나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나는 기다리지 말라는 말이었어야 했습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끝내 쓰이지 못했습니다.”
만인은 한 걸음 물러났다.
“이 방은 너무 시끄럽소.”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못한 말들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 편입니다.”
무대 위 방 안쪽에서 배우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한 배우는 봉투를 얼굴 앞에 들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늦은 편지.”
다른 배우는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목에 걸린 팻말을 들어 보였다.
> 말하지 못한 사과.
세 번째 배우는 아름다운 붉은 끈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
그는 낮게 말했다.
“나는 전하지 못한 사랑.”
네 번째 배우는 찢어진 군령서를 들고 있었다.
“나는 도착하지 못한 명령.”
다섯 번째 배우는 어린아이의 글씨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나는 보내지 못한 안부.”
마지막 배우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는 빈손이었다.
만인이 물었다.
“당신은?”
빈손의 배우가 대답했다.
“나는 해야 했지만 하지 않은 말.”
방 전체가 조용해졌다.
만인은 그 배우를 오래 보았다.
“그게 제일 많겠군.”
빈손의 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체로 그렇습니다.”
객석에서 작게 웃음이 났다.
하지만 웃음은 길게 가지 않았다.
만인은 품속의 편지를 꺼냈다.
봉투는 아직 봉해져 있지 않았다.
그는 여관 주인에게 물었다.
“이런 말들은 마지막 여관에 가져갈 수 있소?”
여관 주인은 방 안의 말들을 둘러보았다.
“어떤 말은 손님과 함께 옵니다.”
“어떤 말?”
“이미 전했지만, 아직 손님 안에 남아 있는 말. 듣고도 오래 품은 말. 용서가 되지 않았지만 자기 길에 묻어버린 말. 사랑한다는 말처럼, 사라지지 않고 살아온 말.”
만인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하지 못한 말은?”
여관 주인은 대답했다.
“어떤 말은 죽은 자의 문패에 맡겨야 합니다.”
사르키스의 문패가 무대 뒤쪽에서 희미하게 떠올랐다.
만인은 그쪽을 돌아보았다.
“사르키스의 이름처럼?”
“예. 그 이름에 맡겨야 하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관 주인은 만인의 손에 든 편지를 보았다.
“어떤 말은 아직 산 자에게 가야 합니다.”
그 순간 편지가 아주 작게 떨렸다.
만인은 편지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게?”
“손님께서 아실 겁니다.”
“나는 모른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 말도 자주 듣습니다.”
만인은 여관 주인을 노려보았다.
“주인장께서는 사람을 너무 잘 아시오.”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손님들이 많이 오셨으니까요.”
무대 뒤에서 푸리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6막이 너무 깊은 문을 열어버렸기 때문에, 7막은 원래대로 진행되어도 다르게 보였다.
전언의 방은 푸리나가 준비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방의 문장 하나하나가 가벼운 우화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르키스가 아이에게 다녀와라는 말을 되돌려받은 직후였다.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말 하나가 죽은 이를 살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산 자의 길을 바꿀 수는 있다.
푸리나는 대본을 넘겼다.
“좋아. 여기서부터는 죠니야.”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왜 나를 보는데.”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래서 더 싫어.”
레이튼은 조용히 웃었다.
“죠니 씨, 편지는 대체로 말을 타거나, 말을 탄 사람을 필요로 하지요.”
죠니는 창밖의 말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진짜 싫어지는데.”
그레이는 장부를 보고 있었다.
“전언의 방은 기록과 다릅니다.”
푸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기록은 남기기 위한 거고, 전언은 도착하기 위한 거니까.”
그레이는 그 말을 장부 한쪽에 적었다.
> 기록: 남기기 위한 것.
전언: 도착하기 위한 것.
단, 전언이 도착하지 못하면 기록이 되어버릴 수 있음.
레이튼은 그 문장을 보고 말했다.
“좋은 구분입니다. 다만 슬픈 구분이기도 하군요.”
무대 위 만인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한 걸음 내딛자, 바닥의 편지들이 바람 없이 흔들렸다.
늦은 편지가 다가왔다.
그는 오래된 봉투를 들고 있었다.
“저는 너무 늦었습니다.”
만인이 물었다.
“얼마나 늦었소?”
늦은 편지는 대답했다.
“받을 사람이 이미 문패가 되었습니다.”
만인은 입을 다물었다.
말하지 못한 사과가 다가왔다.
그녀는 목소리가 없었지만, 손짓으로 자기 가슴을 두드렸다.
빈손의 배우가 대신 읽어주었다.
“그녀는 사과입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품어져 변명이 되었습니다.”
만인은 고개를 숙였다.
전하지 못한 사랑이 붉은 끈을 들었다.
“저는 한 번도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왜?”
“보내면 거절당할까 봐.”
만인은 조금 안도한 듯 말했다.
“그건 이해하오.”
전하지 못한 사랑은 만인을 보았다.
“그런데 이제 받을 사람이 기억을 잃었습니다.”
만인은 다시 입을 닫았다.
도착하지 못한 명령이 군령서를 펼쳤다.
“저는 하루 늦었습니다.”
“하루?”
“예.”
“하루 정도면—”
명령서가 말했다.
“성문이 이미 불탄 뒤였습니다.”
만인은 더 말하지 못했다.
보내지 못한 안부는 작은 종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저는 너무 사소해서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만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말이었소?”
안부는 종이를 펼쳤다.
거기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 밥 먹었어?
만인은 한참 그것을 보았다.
집 앞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밥은 먹었느냐.
그는 작게 말했다.
“사소하지 않군.”
보내지 못한 안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보낸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받을 사람은?”
“기다렸습니다.”
방 안이 다시 낮게 속삭였다.
“나는 너무 늦었습니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은 자에게 가야 합니다.”
“나는 산 자를 찾아야 합니다.”
만인은 귀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막지 않았다.
그 말들을 듣는 것도 이 길의 일부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객석의 아스테리아 오르노비치가 조용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녀에게 편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도로.
상단.
봉인.
암호.
외교문서.
정찰 보고.
어느 시장의 소문.
어느 항구의 풍문.
어느 사절이 일부러 늦게 보낸 답장.
제국의 길은 돌로만 놓이지 않는다.
말이 가는 길도 길이다.
아스테리아는 낮게 말했다.
“도착하지 못한 편지는 기록보다 더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
옆의 누군가가 물었다.
“왜 그렇습니까?”
아스테리아는 무대 위 전언들을 보았다.
“기록은 남습니다. 너무 차갑게라도, 누군가가 찾을 수 있지요. 하지만 전언은 도착하지 않으면,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사건을 만듭니다.”
그녀의 눈은 북방의 별빛처럼 차분했다.
“하루 늦은 군령, 한 계절 늦은 사절, 봉인이 깨진 혼인 서약, 일부러 잃어버린 평화 제안. 이런 것들은 모두 전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반대로, 제때 도착한 한 줄이 성을 열 수도 있습니다. ‘기다려라.’ ‘도망쳐라.’ ‘살아 있다.’ ‘용서한다.’ 그런 말들.”
아스테리아는 무대 위 만인의 편지를 보았다.
“편지는 기록 보관소에 누워 있으려고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도착하기 위해 쓰입니다.”
알토는 그 말을 들었다.
그는 아카식을 보았다.
아카식은 웃고 있었다.
“왜 봐?”
알토는 말했다.
“동의합니다.”
“오, 귀한 순간인데.”
“놀리지 마십시오.”
아카식은 웃음을 삼켰다.
알토는 무대 위 전언의 방을 보았다.
“기록은 남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전언은 보내는 일입니다. 남기기만 하면 되는 말과, 도착해야 하는 말은 다릅니다.”
아카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기록은 종종 기다릴 수 있지만, 전언은 시간이 붙어 있지.”
알토는 잠시 생각했다.
“그래서 전언은 더 책임이 큽니다. 말이 늦었다는 사실도 기록되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늦은 말이 도착하지 않습니다.”
아카식은 기록장에 적었다.
> 남긴 말과 도착한 말은 다르다.
알토는 그 문장을 보고 말했다.
“좋은 문장입니다.”
아카식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 왜 이렇게 관대해?”
“정확한 문장이니까요.”
“진짜 귀한 날이네.”
알토는 시선을 무대에서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렇게 기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마음속에 남겼어.”
“그것도 기록의 일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무대 위에서 늦은 편지가 만인에게 다가왔다.
“당신의 편지도 이 방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만인은 편지를 품에 감추려 했다.
“아니오. 이건 아직 내 것이오.”
빈손의 배우가 말했다.
“말은 오래 품으면 자기 것처럼 느껴집니다.”
말하지 못한 사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지 못한 사랑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내지 못한 안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말은 원래 상대가 있습니다.”
만인은 편지를 꺼냈다.
봉투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그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멈췄다.
여관 주인이 물었다.
“누구에게 보내려던 말입니까?”
만인은 대답하려 했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누구에게였을까.
집 앞의 여인?
아이?
친구?
어머니?
시장 아이?
사르키스의 아람?
아니면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누군가?
그는 편지를 열었다.
안쪽은 비어 있었다.
만인은 당황했다.
“아무것도 안 썼군.”
늦은 편지가 말했다.
“자주 있는 일입니다.”
만인은 화를 냈다.
“아니, 이건 내가 일부러 빈 편지를 들고 다닌 게 아니오!”
빈손의 배우가 말했다.
“쓰지 않은 말은 대체로 그렇게 항변합니다.”
객석에서 작게 웃음이 났다.
만인은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빈 종이.
그 빈칸이 너무 커 보였다.
“나는 뭘 쓰려고 했던 거지?”
여관 주인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방 안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작은 책상이 있었다.
잉크와 펜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의자는 하나뿐이었다.
만인은 책상을 보았다.
“저기 앉으라는 뜻이오?”
“쓰시려면요.”
“무엇을?”
“아직 늦지 않은 말을.”
만인은 책상 앞으로 갔다.
그는 앉았다.
방 안의 모든 전언이 그를 바라보았다.
늦은 편지.
말하지 못한 사과.
전하지 못한 사랑.
도착하지 못한 명령.
보내지 못한 안부.
해야 했지만 하지 않은 말.
그는 펜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시장에서는 빵을 살 때 떨렸다.
관청에서는 왕관을 벗을 때 떨렸다.
성문에서는 사르키스의 이름을 부를 때 떨렸다.
하지만 지금의 떨림은 달랐다.
이번에는 누군가를 향해 말해야 했다.
만인은 첫 줄을 쓰려 했다.
> 미안……
그는 멈췄다.
“이 말은 너무 흔하오.”
여관 주인이 말했다.
“흔하다고 해서 가볍지는 않습니다.”
만인은 다시 쓰려 했다.
> 사랑……
그는 다시 멈췄다.
“이건 너무 늦은 것 같소.”
여관 주인이 말했다.
“늦은 말과 늦지 않은 말은, 손님 혼자 정하실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정하오?”
“도착할 사람도 함께 정합니다.”
만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편지에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객석의 레이튼이 조용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 막은 그에게 잘 맞았다.
말이 길을 잃는 방.
답이 성급히 닫히는 위험.
아직 늦었다고 이름 붙이지 말아야 하는 말들.
레이튼은 낮게 말했다.
“흥미로운 문제군요.”
푸리나가 옆에서 물었다.
“무슨 문제?”
레이튼은 무대 위 빈 편지를 보았다.
“말이 늦었는지 아닌지는 언제 결정됩니까?”
푸리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레이튼은 계속했다.
“보내지 않았을 때 이미 늦은 것일까요? 받는 사람이 사라졌을 때 늦은 것일까요? 아니면, 말하는 이가 스스로 늦었다고 결론짓는 순간 늦은 것이 될까요?”
죠니가 말했다.
“질문이 너무 많아.”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전언의 방에서는 질문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성급한 결론이 가장 위험하니까요.”
그는 무대 위 만인을 향해, 마치 들릴 리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늦었다고 이름 붙이지 마십시오.”
그 순간 무대 위 만인이 고개를 들었다.
정말 들은 것처럼.
여관 주인은 레이튼 쪽을 한 번 보았다.
아주 짧게.
레이튼은 모자를 살짝 기울였다.
“이런.”
푸리나가 그를 보았다.
“설마 들린 거야?”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질문은 가끔 문틈으로 새어나가는 법입니다.”
죠니가 중얼거렸다.
“오늘 진짜 다 이상해.”
무대 위 만인은 펜을 다시 들었다.
그는 빈 종이에 천천히 썼다.
> 아직 늦지 않았다면.
그는 멈췄다.
“이건 시작으로 괜찮소?”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좋은 시작입니다.”
만인은 이어 썼다.
> 아직 늦지 않았다면,
이 말을 받는 사람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썼다.
> 나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집 앞 아이의 손이 떠올랐다.
사르키스의 아이가 떠올랐다.
돌아오겠다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썼다.
> 그러니 돌아오겠다는 말 대신,
오늘 내가 어디까지 걸었는지 남긴다.
펜 끝이 떨렸다.
방 안의 전언들이 조용해졌다.
만인은 계속 썼다.
> 시장에서 빵을 샀다.
한 닢은 줄었지만, 손에는 온기가 남았다.
광장에서는 이름이 엉망이 되었다.
그래서 정확히 불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관청에서는 왕관을 써보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집 앞에서는 손을 놓았다.
놓은 뒤에도 손이 무거웠다.
불탄 성문에서는 이름을 불렀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 이름은 아직 내 목소리에 남아 있다.
만인은 펜을 멈췄다.
“이건 누구에게 쓰는 말이지?”
여관 주인은 조용히 답했다.
“아마도 산 자에게.”
“누구?”
“아직 걸어야 할 사람에게.”
만인은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그 말은 누군가 특정한 사람에게 가는 것 같기도 했고, 모두에게 가는 것 같기도 했다.
만인이라는 이름처럼.
그때 전언의 방 안쪽에서 작은 바람이 불었다.
봉투들이 흔들렸다.
말하지 못한 사과가 손을 들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나왔다.
아주 희미하게.
“미안하다고 쓰세요.”
만인은 그녀를 보았다.
전하지 못한 사랑이 말했다.
“사랑한다고 쓰세요.”
보내지 못한 안부가 말했다.
“밥은 먹었느냐고 쓰세요.”
도착하지 못한 명령은 말했다.
“늦지 말라고 쓰세요.”
늦은 편지는 말했다.
“늦었다고 해도 보내라고 쓰세요.”
빈손의 배우가 말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고칠 수 없다고 쓰세요.”
만인은 그 모든 말을 들었다.
그리고 웃었다.
조금 지친 웃음이었다.
“말들이 너무 많소.”
여관 주인은 말했다.
“그래서 편지는 접어야 합니다.”
만인은 고개를 들었다.
“다 쓸 수 없으니까?”
“예.”
“그럼 무엇을 골라야 하오?”
“도착해야 하는 말을요.”
만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썼다.
> 미안하다.
사랑한다.
밥은 먹었느냐.
늦었다고 생각해도, 보내라.
아직 늦지 않은 말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전언의 방이 조용해졌다.
만인은 편지를 접었다.
이번에는 봉투에 이름을 적지 않았다.
대신 봉투 겉면에 이렇게 적었다.
> 아직 걸어야 할 사람에게.
그러자 방 안의 전언들이 일제히 숨을 내쉬었다.
만인은 여관 주인을 보았다.
“이걸 어떻게 보내오?”
여관 주인은 대답하기 전에 객석 쪽을 보았다.
푸리나도 같은 방향을 보았다.
죠니가 얼굴을 찌푸렸다.
“왜 다들 나를 봐.”
레이튼은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죠니 씨.”
“싫어.”
“아직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더 싫어.”
그레이가 장부를 펼쳤다.
“전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입니다.”
죠니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왜?”
그레이는 침착하게 답했다.
“기동성. 개인 행동 가능. 무대와 현실 사이의 경계에 대한 저항성.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계속 나가고 싶어 하셨습니다.”
푸리나가 밝게 말했다.
“봤지? 딱 맞아!”
죠니는 푸리나를 노려보았다.
“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지.”
“아니. 6막부터 대본이 좀 흔들려서 나도 확신은 없어.”
“최악의 대답이네.”
그때 무대 위 여관 주인이 편지를 들고 객석 쪽으로 걸어왔다.
정확히는 무대와 객석 사이의 경계까지.
그는 경계를 넘지 않았다.
다만 그곳에 서서 죠니를 보았다.
“손님.”
죠니는 말없이 그를 보았다.
여관 주인은 편지를 내밀었다.
“혹시 길을 조금 아십니까?”
죠니는 한참 동안 그 편지를 보았다.
“나는 우편배달부가 아니야.”
“예.”
“내가 가면 돌아오는 데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그럴 수 있습니다.”
“편지가 도착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지도 모르고.”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보내라고?”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아직 산 자에게 가야 할 말이라면요.”
죠니는 이를 악물었다.
그 말이 싫었다.
너무 정중해서 더 싫었다.
명령이면 거절하기 쉬웠다.
기적이라면 비웃기 쉬웠다.
감동을 강요했다면 돌아서기 쉬웠다.
그런데 저 여관 주인은 부탁하지도, 명령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편지를 내밀었다.
길을 아느냐고 물었다.
죠니는 손을 뻗지 않았다.
푸리나는 숨을 죽였다.
그레이는 이미 장부에 “전달자: 미정”이라고 적어두었다.
레이튼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 순간에는 질문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뒤, 죠니가 말했다.
“받을 사람 이름도 없잖아.”
여관 주인은 답했다.
“그래서 길을 아는 분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죠니는 낮게 웃었다.
“진짜 말이 다 빠져나가네.”
그는 편지를 받았다.
객석의 몇몇 사람이 숨을 내쉬었다.
죠니는 편지를 품에 넣었다.
“아직 걸어야 할 사람에게, 라.”
그는 무대 위 만인을 보았다.
“그럼 산 사람 중 아무한테나 줘도 되는 건가?”
만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여관 주인이 말했다.
“아마도, 편지가 알아볼 겁니다.”
죠니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 제일 수상해.”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죠니는 한숨을 쉬었다.
“좋아. 하지만 조건이 있어.”
푸리나가 물었다.
“뭔데?”
“말은 내가 고른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달자는 길을 고르는 손님이니까요.”
죠니는 편지를 품에 넣은 채 일어섰다.
“말 준비해.”
무대 뒤편, 아니 극장 바깥 마구간 쪽에서 말이 한 번 낮게 울었다.
죠니가 멈췄다.
“방금 너무 타이밍 좋지 않았어?”
푸리나가 시선을 피했다.
“극장이잖아.”
“이제 여관이라며.”
“둘 다야.”
죠니는 짧게 웃었다.
“편리하네.”
그는 객석 사이를 지나갔다.
느리지도, 서두르지도 않는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 걸음에는 이미 길을 고른 사람의 고집이 있었다.
문이 열리고, 밤공기가 들어왔다.
죠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늦은 말이라도, 달리기 시작하면 아직 늦지 않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는 문밖의 밤으로 나갔다.
아스테리아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좋은 전령이군요.”
알토가 말했다.
“공식 임명 절차는 없어 보입니다.”
아카식이 웃었다.
“그래서 더 정확할 때도 있어.”
아스테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은 종종 비공식적인 발을 좋아합니다. 공식로는 막히고, 봉인은 늦고, 사절은 붙잡힙니다. 하지만 어떤 말은 한 사람이 자기 고집으로 들고 가야 도착하지요.”
민다우가스가 그 말을 듣고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고집 센 전령이라. 전쟁터에선 꽤 쓸 만하지.”
아스테르다스가 말했다.
“다만 길을 잃을 수도 있지요.”
민다우가스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길을 한 번도 잃지 않는 전령은 대체로 거짓말쟁이다. 중요한 건 잃은 뒤에도 가는가다.”
죠니는 그 말을 들은 듯 뒤돌아보지 않고 손을 들어 보였다.
“왕님, 내 욕이야 칭찬이야?”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둘 다다!”
죠니는 중얼거렸다.
“역시 왕들은 귀찮아.”
무대 위 만인은 죠니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내 편지가 정말 도착할까?”
여관 주인은 말했다.
“모릅니다.”
“모른다고?”
“예.”
만인은 당황했다.
“주인장은 이런 때 안심시키는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니오?”
“도착한다고 약속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럼 왜 보낸 거요?”
여관 주인은 부드럽게 답했다.
“보내지 않으면 도착하지 않습니다.”
만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너무 단순했다.
그래서 반박할 수 없었다.
전언의 방 안쪽에서 말하지 못한 사과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전하지 못한 사랑은 붉은 끈을 조금 풀었다.
보내지 못한 안부는 작은 종이를 접었다.
도착하지 못한 명령은 자기 군령서를 내려놓았다.
늦은 편지는 방 한쪽에 앉았다.
빈손의 배우는 처음으로 손바닥을 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완전히 빈손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관 주인은 만인에게 말했다.
“이제 가실 수 있습니다.”
만인은 방을 둘러보았다.
“이 말들은 어떻게 되오?”
“각자의 때를 기다립니다.”
“모두 도착할 수 있소?”
“아닙니다.”
만인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럼 너무 슬프군.”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말은 오늘 한 통 나갔습니다.”
만인은 문밖으로 나간 죠니를 떠올렸다.
“그것으로 충분하오?”
여관 주인은 잠시 생각했다.
“오늘은, 그 정도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만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주인장은 참 작은 충분함을 말하는군.”
“길 위에서는 작은 충분함이 다음 걸음을 만듭니다.”
그 말에 만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언의 방을 나가려다가, 다시 뒤돌아보았다.
말하지 못한 사과가 그를 보고 있었다.
만인은 그녀에게 말했다.
“미안하오.”
그녀는 목소리 없이 웃었다.
전하지 못한 사랑에게는 말했다.
“늦었다고 혼자 정하지 마시오.”
그 배우는 붉은 끈을 조금 더 풀었다.
보내지 못한 안부에게는 말했다.
“밥 먹었냐는 말은 보내시오.”
안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도착하지 못한 명령에게는 말했다.
“다음에는…… 빨리 가시오.”
명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늦은 편지에게는 말했다.
“너무 늦었더라도, 문패는 찾을 수 있더군.”
늦은 편지는 봉투를 가슴에 안았다.
마지막으로 빈손의 배우에게 만인은 물었다.
“당신은?”
빈손의 배우는 대답했다.
“저는 아직 너무 많습니다.”
만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하나씩 하시오.”
빈손의 배우는 처음으로 아주 작게 웃었다.
“그것도 좋은 시작이군요.”
만인은 방을 나섰다.
그의 품속은 가벼워졌다.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완전히 가벼워지지 않았다.
그는 여관 주인에게 말했다.
“말을 보내면 시원할 줄 알았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왜?”
“말이 도착할 때까지, 길을 걱정하게 되니까요.”
만인은 한숨을 쉬었다.
“말은 보내도 문제고, 안 보내도 문제군.”
여관 주인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침묵합니다.”
“좋은 해결책은 아닌 것 같소.”
“예.”
“그런데 왜 자주 그러오?”
여관 주인은 대답했다.
“침묵은 당장은 안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인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오래 두면?”
“방 하나가 필요해집니다.”
만인은 뒤의 전언의 방을 돌아보았다.
닫히지 않은 문 안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말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길은 다시 이어졌다.
전언의 방 너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검은 구름.
젖은 바위.
진흙길.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
골짜기였다.
만인은 그곳을 보았다.
“저긴 또 무슨 곳이오?”
여관 주인은 말했다.
“비 오는 골짜기입니다.”
“왜 가야 하오?”
“손님께서 이미 젖어 계시니까요.”
만인은 자기 외투를 보았다.
시장에서는 몰랐다.
광장에서도, 관청에서도, 집 앞에서도, 성문에서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 보니 외투는 오래전부터 젖어 있었다.
말하지 못한 말들이 마치 비처럼 스며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작게 말했다.
“고통이군.”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예.”
만인은 비 오는 골짜기를 보았다.
“거기는 차가 있소?”
“있습니다.”
“따뜻하오?”
“예.”
“그럼 조금 낫겠군.”
여관 주인은 잠시 침묵했다.
“비가 멎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인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주인장은 안심시키는 데 재능이 없소.”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정확한 환대를 하려다 보니 그렇습니다.”
만인은 어쩐지 웃음이 났다.
그는 비 오는 골짜기를 향해 걸었다.
무대 뒤편, 죠니는 이미 극장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밤공기가 들어왔다.
그는 편지를 품에 넣은 채 말 쪽으로 향했다.
푸리나는 그 뒷모습을 보았다.
“정말 가네.”
그레이는 장부에 적었다.
> 전언 전달자: 죠니 죠스타.
수신자: 아직 걸어야 할 사람.
상태: 발송됨.
도착 여부: 미확정.
레이튼은 그 문장을 보고 말했다.
“좋습니다. 도착 여부를 아직 닫지 않았군요.”
그레이는 대답했다.
“닫을 수 없습니다.”
푸리나는 무대 위 만인을 보았다.
그리고 극장 밖으로 사라지는 죠니를 보았다.
극과 현실의 경계가 또 한 번 흔들렸다.
하지만 이제 푸리나는 덜 놀랐다.
오늘 밤의 극장은 이미 여관이었다.
여관에서는, 손님이 가끔 문밖으로 나간다.
잠깐의 나들이를 위해.
혹은 아직 산 자에게 가야 할 말을 전하기 위해.
막이 내려오기 직전, 전언의 방 안에서 작은 합창이 들렸다.
“나는 너무 늦었습니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은 자에게 가야 합니다.”
“나는 산 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작은 목소리.
“보내지 않으면 도착하지 않습니다.”
막이 내려왔다.
7막이 끝났다.
전언의 방 —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말들
막이 올랐다.
불탄 성문은 뒤로 물러나 있었다.
그러나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무대 가장자리에는 아직 그을린 돌가루가 남아 있었고, 문패들이 흔들리던 소리도 아주 멀리서 들려왔다.
쓱.
쓱.
여관 주인이 문패를 닦던 손수건 소리.
그 소리는 이제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만인은 그 소리를 등 뒤에 두고 걸었다.
그의 신발에는 시장의 흙과 빵가루가 묻어 있었고, 광장의 먼지와 관청의 돌가루도 묻어 있었다.
손바닥에는 아이의 손을 놓은 감각이 남아 있었고, 목소리에는 방금 부른 이름 하나가 아직 젖어 있었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 이름은 이제 만인의 안쪽에서 조용히 흔들렸다.
그는 품속의 편지를 만졌다.
“다음은 전언의 방이라고 하셨소.”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예.”
“말들이 머무는 방이라고.”
“그렇습니다.”
“말도 방이 필요하오?”
“도착하지 못한 말은 대체로 길에서 헤맵니다.”
만인은 그 말을 듣고 품속의 편지를 더 세게 눌렀다.
편지는 작았다.
종이 몇 장.
봉투 하나.
아직 봉하지 못한 말들.
그런데 갑자기 항아리보다, 돈주머니보다, 왕관보다 무거워진 것 같았다.
“말은 그냥 하면 되는 것 아니오?”
여관 주인은 곧장 답하지 않았다.
길 끝에 문 하나가 보였다.
그 문은 여관방 문 같기도 했고, 우편실 문 같기도 했고, 고해실 문 같기도 했다.
문 위에는 작은 팻말이 걸려 있었다.
>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말들.
문은 닫혀 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도 함부로 들어가고 싶지 않게 생겼다.
만인은 문 앞에 멈췄다.
“……여긴 시장보다 무섭군.”
여관 주인이 물었다.
“왜 그렇게 느끼십니까?”
“모르겠소.”
만인은 문손잡이를 보았다.
“시장에는 돈이 있었고, 광장에는 사람들이 있었고, 관청에는 왕관이 있었고, 성문에는 죽은 사람이 있었소.”
“예.”
“그런데 여긴 말뿐이지 않소.”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제일 들어가기 싫은지 모르겠소.”
여관 주인은 부드럽게 말했다.
“말은, 때로 이미 일어난 일보다 오래 남기 때문입니다.”
만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문이 열렸다.
끼익.
그 안에는 방이 있었다.
하지만 방이라기에는 너무 넓었다.
천장에서는 봉투들이 매달려 있었다.
벽에는 찢어진 편지들이 붙어 있었다.
바닥에는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 접히지 못한 종이처럼 흩어져 있었다.
어떤 말은 봉인되어 있었다.
어떤 말은 반쯤 불타 있었다.
어떤 말은 잉크가 번져 알아볼 수 없었다.
어떤 말은 너무 오래 품어졌는지 돌처럼 굳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말들이 낮게 속삭이고 있었다.
“나는 너무 늦었습니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은 자에게 가야 합니다.”
“나는 산 자를 찾아야 합니다.”
“나는 사과였는데, 변명이 되었습니다.”
“나는 사랑이었는데, 명령이 되었습니다.”
“나는 돌아오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나는 기다리지 말라는 말이었어야 했습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미안하다는 말이었습니다.”
“나는 끝내 쓰이지 못했습니다.”
만인은 한 걸음 물러났다.
“이 방은 너무 시끄럽소.”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말하지 못한 말들은 조용히 사라지지 않는 편입니다.”
무대 위 방 안쪽에서 배우들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한 배우는 봉투를 얼굴 앞에 들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늦은 편지.”
다른 배우는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목에 걸린 팻말을 들어 보였다.
> 말하지 못한 사과.
세 번째 배우는 아름다운 붉은 끈으로 봉인된 두루마리를 들고 있었다.
그는 낮게 말했다.
“나는 전하지 못한 사랑.”
네 번째 배우는 찢어진 군령서를 들고 있었다.
“나는 도착하지 못한 명령.”
다섯 번째 배우는 어린아이의 글씨가 적힌 종이를 들고 있었다.
“나는 보내지 못한 안부.”
마지막 배우는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다.
그는 빈손이었다.
만인이 물었다.
“당신은?”
빈손의 배우가 대답했다.
“나는 해야 했지만 하지 않은 말.”
방 전체가 조용해졌다.
만인은 그 배우를 오래 보았다.
“그게 제일 많겠군.”
빈손의 배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대체로 그렇습니다.”
객석에서 작게 웃음이 났다.
하지만 웃음은 길게 가지 않았다.
만인은 품속의 편지를 꺼냈다.
봉투는 아직 봉해져 있지 않았다.
그는 여관 주인에게 물었다.
“이런 말들은 마지막 여관에 가져갈 수 있소?”
여관 주인은 방 안의 말들을 둘러보았다.
“어떤 말은 손님과 함께 옵니다.”
“어떤 말?”
“이미 전했지만, 아직 손님 안에 남아 있는 말. 듣고도 오래 품은 말. 용서가 되지 않았지만 자기 길에 묻어버린 말. 사랑한다는 말처럼, 사라지지 않고 살아온 말.”
만인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하지 못한 말은?”
여관 주인은 대답했다.
“어떤 말은 죽은 자의 문패에 맡겨야 합니다.”
사르키스의 문패가 무대 뒤쪽에서 희미하게 떠올랐다.
만인은 그쪽을 돌아보았다.
“사르키스의 이름처럼?”
“예. 그 이름에 맡겨야 하는 말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관 주인은 만인의 손에 든 편지를 보았다.
“어떤 말은 아직 산 자에게 가야 합니다.”
그 순간 편지가 아주 작게 떨렸다.
만인은 편지를 떨어뜨릴 뻔했다.
“이게?”
“손님께서 아실 겁니다.”
“나는 모른다고 말하고 싶은데.”
“그 말도 자주 듣습니다.”
만인은 여관 주인을 노려보았다.
“주인장께서는 사람을 너무 잘 아시오.”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손님들이 많이 오셨으니까요.”
무대 뒤에서 푸리나는 숨을 가다듬었다.
6막이 너무 깊은 문을 열어버렸기 때문에, 7막은 원래대로 진행되어도 다르게 보였다.
전언의 방은 푸리나가 준비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방의 문장 하나하나가 가벼운 우화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르키스가 아이에게 다녀와라는 말을 되돌려받은 직후였다.
관객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말 하나가 죽은 이를 살리지는 못한다.
그러나 산 자의 길을 바꿀 수는 있다.
푸리나는 대본을 넘겼다.
“좋아. 여기서부터는 죠니야.”
죠니가 그녀를 보았다.
“왜 나를 보는데.”
“아직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그래서 더 싫어.”
레이튼은 조용히 웃었다.
“죠니 씨, 편지는 대체로 말을 타거나, 말을 탄 사람을 필요로 하지요.”
죠니는 창밖의 말이 우는 소리를 들었다.
“진짜 싫어지는데.”
그레이는 장부를 보고 있었다.
“전언의 방은 기록과 다릅니다.”
푸리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기록은 남기기 위한 거고, 전언은 도착하기 위한 거니까.”
그레이는 그 말을 장부 한쪽에 적었다.
> 기록: 남기기 위한 것.
전언: 도착하기 위한 것.
단, 전언이 도착하지 못하면 기록이 되어버릴 수 있음.
레이튼은 그 문장을 보고 말했다.
“좋은 구분입니다. 다만 슬픈 구분이기도 하군요.”
무대 위 만인은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한 걸음 내딛자, 바닥의 편지들이 바람 없이 흔들렸다.
늦은 편지가 다가왔다.
그는 오래된 봉투를 들고 있었다.
“저는 너무 늦었습니다.”
만인이 물었다.
“얼마나 늦었소?”
늦은 편지는 대답했다.
“받을 사람이 이미 문패가 되었습니다.”
만인은 입을 다물었다.
말하지 못한 사과가 다가왔다.
그녀는 목소리가 없었지만, 손짓으로 자기 가슴을 두드렸다.
빈손의 배우가 대신 읽어주었다.
“그녀는 사과입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품어져 변명이 되었습니다.”
만인은 고개를 숙였다.
전하지 못한 사랑이 붉은 끈을 들었다.
“저는 한 번도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왜?”
“보내면 거절당할까 봐.”
만인은 조금 안도한 듯 말했다.
“그건 이해하오.”
전하지 못한 사랑은 만인을 보았다.
“그런데 이제 받을 사람이 기억을 잃었습니다.”
만인은 다시 입을 닫았다.
도착하지 못한 명령이 군령서를 펼쳤다.
“저는 하루 늦었습니다.”
“하루?”
“예.”
“하루 정도면—”
명령서가 말했다.
“성문이 이미 불탄 뒤였습니다.”
만인은 더 말하지 못했다.
보내지 못한 안부는 작은 종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저는 너무 사소해서 보내지지 않았습니다.”
만인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말이었소?”
안부는 종이를 펼쳤다.
거기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
> 밥 먹었어?
만인은 한참 그것을 보았다.
집 앞에서 들었던 어머니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밥은 먹었느냐.
그는 작게 말했다.
“사소하지 않군.”
보내지 못한 안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보낸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받을 사람은?”
“기다렸습니다.”
방 안이 다시 낮게 속삭였다.
“나는 너무 늦었습니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은 자에게 가야 합니다.”
“나는 산 자를 찾아야 합니다.”
만인은 귀를 막으려 했다.
그러나 막지 않았다.
그 말들을 듣는 것도 이 길의 일부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객석의 아스테리아 오르노비치가 조용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녀에게 편지는 단순한 종이가 아니었다.
도로.
상단.
봉인.
암호.
외교문서.
정찰 보고.
어느 시장의 소문.
어느 항구의 풍문.
어느 사절이 일부러 늦게 보낸 답장.
제국의 길은 돌로만 놓이지 않는다.
말이 가는 길도 길이다.
아스테리아는 낮게 말했다.
“도착하지 못한 편지는 기록보다 더 위험할 때가 있습니다.”
옆의 누군가가 물었다.
“왜 그렇습니까?”
아스테리아는 무대 위 전언들을 보았다.
“기록은 남습니다. 너무 차갑게라도, 누군가가 찾을 수 있지요. 하지만 전언은 도착하지 않으면,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가 사건을 만듭니다.”
그녀의 눈은 북방의 별빛처럼 차분했다.
“하루 늦은 군령, 한 계절 늦은 사절, 봉인이 깨진 혼인 서약, 일부러 잃어버린 평화 제안. 이런 것들은 모두 전쟁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반대로, 제때 도착한 한 줄이 성을 열 수도 있습니다. ‘기다려라.’ ‘도망쳐라.’ ‘살아 있다.’ ‘용서한다.’ 그런 말들.”
아스테리아는 무대 위 만인의 편지를 보았다.
“편지는 기록 보관소에 누워 있으려고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도착하기 위해 쓰입니다.”
알토는 그 말을 들었다.
그는 아카식을 보았다.
아카식은 웃고 있었다.
“왜 봐?”
알토는 말했다.
“동의합니다.”
“오, 귀한 순간인데.”
“놀리지 마십시오.”
아카식은 웃음을 삼켰다.
알토는 무대 위 전언의 방을 보았다.
“기록은 남기는 일입니다. 그러나 전언은 보내는 일입니다. 남기기만 하면 되는 말과, 도착해야 하는 말은 다릅니다.”
아카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기록은 종종 기다릴 수 있지만, 전언은 시간이 붙어 있지.”
알토는 잠시 생각했다.
“그래서 전언은 더 책임이 큽니다. 말이 늦었다는 사실도 기록되어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늦은 말이 도착하지 않습니다.”
아카식은 기록장에 적었다.
> 남긴 말과 도착한 말은 다르다.
알토는 그 문장을 보고 말했다.
“좋은 문장입니다.”
아카식이 눈을 가늘게 떴다.
“오늘 왜 이렇게 관대해?”
“정확한 문장이니까요.”
“진짜 귀한 날이네.”
알토는 시선을 무대에서 떼지 않은 채 말했다.
“그렇게 기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마음속에 남겼어.”
“그것도 기록의 일종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아카식은 웃었다.
무대 위에서 늦은 편지가 만인에게 다가왔다.
“당신의 편지도 이 방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만인은 편지를 품에 감추려 했다.
“아니오. 이건 아직 내 것이오.”
빈손의 배우가 말했다.
“말은 오래 품으면 자기 것처럼 느껴집니다.”
말하지 못한 사과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지 못한 사랑도 고개를 끄덕였다.
보내지 못한 안부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말은 원래 상대가 있습니다.”
만인은 편지를 꺼냈다.
봉투에는 이름이 적혀 있지 않았다.
그는 그 사실을 이제야 깨달은 것처럼 멈췄다.
여관 주인이 물었다.
“누구에게 보내려던 말입니까?”
만인은 대답하려 했다.
그리고 입을 닫았다.
누구에게였을까.
집 앞의 여인?
아이?
친구?
어머니?
시장 아이?
사르키스의 아람?
아니면 아직 이름조차 붙이지 못한 누군가?
그는 편지를 열었다.
안쪽은 비어 있었다.
만인은 당황했다.
“아무것도 안 썼군.”
늦은 편지가 말했다.
“자주 있는 일입니다.”
만인은 화를 냈다.
“아니, 이건 내가 일부러 빈 편지를 들고 다닌 게 아니오!”
빈손의 배우가 말했다.
“쓰지 않은 말은 대체로 그렇게 항변합니다.”
객석에서 작게 웃음이 났다.
만인은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빈 종이.
그 빈칸이 너무 커 보였다.
“나는 뭘 쓰려고 했던 거지?”
여관 주인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방 안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작은 책상이 있었다.
잉크와 펜이 놓여 있었다.
그러나 의자는 하나뿐이었다.
만인은 책상을 보았다.
“저기 앉으라는 뜻이오?”
“쓰시려면요.”
“무엇을?”
“아직 늦지 않은 말을.”
만인은 책상 앞으로 갔다.
그는 앉았다.
방 안의 모든 전언이 그를 바라보았다.
늦은 편지.
말하지 못한 사과.
전하지 못한 사랑.
도착하지 못한 명령.
보내지 못한 안부.
해야 했지만 하지 않은 말.
그는 펜을 들었다.
손이 떨렸다.
시장에서는 빵을 살 때 떨렸다.
관청에서는 왕관을 벗을 때 떨렸다.
성문에서는 사르키스의 이름을 부를 때 떨렸다.
하지만 지금의 떨림은 달랐다.
이번에는 누군가를 향해 말해야 했다.
만인은 첫 줄을 쓰려 했다.
> 미안……
그는 멈췄다.
“이 말은 너무 흔하오.”
여관 주인이 말했다.
“흔하다고 해서 가볍지는 않습니다.”
만인은 다시 쓰려 했다.
> 사랑……
그는 다시 멈췄다.
“이건 너무 늦은 것 같소.”
여관 주인이 말했다.
“늦은 말과 늦지 않은 말은, 손님 혼자 정하실 수 없습니다.”
“그럼 누가 정하오?”
“도착할 사람도 함께 정합니다.”
만인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편지에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객석의 레이튼이 조용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이 막은 그에게 잘 맞았다.
말이 길을 잃는 방.
답이 성급히 닫히는 위험.
아직 늦었다고 이름 붙이지 말아야 하는 말들.
레이튼은 낮게 말했다.
“흥미로운 문제군요.”
푸리나가 옆에서 물었다.
“무슨 문제?”
레이튼은 무대 위 빈 편지를 보았다.
“말이 늦었는지 아닌지는 언제 결정됩니까?”
푸리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레이튼은 계속했다.
“보내지 않았을 때 이미 늦은 것일까요? 받는 사람이 사라졌을 때 늦은 것일까요? 아니면, 말하는 이가 스스로 늦었다고 결론짓는 순간 늦은 것이 될까요?”
죠니가 말했다.
“질문이 너무 많아.”
레이튼은 미소 지었다.
“전언의 방에서는 질문이 많을수록 좋습니다. 성급한 결론이 가장 위험하니까요.”
그는 무대 위 만인을 향해, 마치 들릴 리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늦었다고 이름 붙이지 마십시오.”
그 순간 무대 위 만인이 고개를 들었다.
정말 들은 것처럼.
여관 주인은 레이튼 쪽을 한 번 보았다.
아주 짧게.
레이튼은 모자를 살짝 기울였다.
“이런.”
푸리나가 그를 보았다.
“설마 들린 거야?”
레이튼은 부드럽게 웃었다.
“질문은 가끔 문틈으로 새어나가는 법입니다.”
죠니가 중얼거렸다.
“오늘 진짜 다 이상해.”
무대 위 만인은 펜을 다시 들었다.
그는 빈 종이에 천천히 썼다.
> 아직 늦지 않았다면.
그는 멈췄다.
“이건 시작으로 괜찮소?”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좋은 시작입니다.”
만인은 이어 썼다.
> 아직 늦지 않았다면,
이 말을 받는 사람에게 닿기를 바란다.
그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문장을 썼다.
> 나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
집 앞 아이의 손이 떠올랐다.
사르키스의 아이가 떠올랐다.
돌아오겠다는 말이 얼마나 무거운지, 그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는 다시 썼다.
> 그러니 돌아오겠다는 말 대신,
오늘 내가 어디까지 걸었는지 남긴다.
펜 끝이 떨렸다.
방 안의 전언들이 조용해졌다.
만인은 계속 썼다.
> 시장에서 빵을 샀다.
한 닢은 줄었지만, 손에는 온기가 남았다.
광장에서는 이름이 엉망이 되었다.
그래서 정확히 불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았다.
관청에서는 왕관을 써보았다.
앞이 보이지 않았다.
집 앞에서는 손을 놓았다.
놓은 뒤에도 손이 무거웠다.
불탄 성문에서는 이름을 불렀다.
사르키스 바르다니안.
그 이름은 아직 내 목소리에 남아 있다.
만인은 펜을 멈췄다.
“이건 누구에게 쓰는 말이지?”
여관 주인은 조용히 답했다.
“아마도 산 자에게.”
“누구?”
“아직 걸어야 할 사람에게.”
만인은 편지를 내려다보았다.
그 말은 누군가 특정한 사람에게 가는 것 같기도 했고, 모두에게 가는 것 같기도 했다.
만인이라는 이름처럼.
그때 전언의 방 안쪽에서 작은 바람이 불었다.
봉투들이 흔들렸다.
말하지 못한 사과가 손을 들었다.
이번에는 목소리가 조금 나왔다.
아주 희미하게.
“미안하다고 쓰세요.”
만인은 그녀를 보았다.
전하지 못한 사랑이 말했다.
“사랑한다고 쓰세요.”
보내지 못한 안부가 말했다.
“밥은 먹었느냐고 쓰세요.”
도착하지 못한 명령은 말했다.
“늦지 말라고 쓰세요.”
늦은 편지는 말했다.
“늦었다고 해도 보내라고 쓰세요.”
빈손의 배우가 말했다.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고칠 수 없다고 쓰세요.”
만인은 그 모든 말을 들었다.
그리고 웃었다.
조금 지친 웃음이었다.
“말들이 너무 많소.”
여관 주인은 말했다.
“그래서 편지는 접어야 합니다.”
만인은 고개를 들었다.
“다 쓸 수 없으니까?”
“예.”
“그럼 무엇을 골라야 하오?”
“도착해야 하는 말을요.”
만인은 생각했다.
그리고 천천히 썼다.
> 미안하다.
사랑한다.
밥은 먹었느냐.
늦었다고 생각해도, 보내라.
아직 늦지 않은 말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는 펜을 내려놓았다.
전언의 방이 조용해졌다.
만인은 편지를 접었다.
이번에는 봉투에 이름을 적지 않았다.
대신 봉투 겉면에 이렇게 적었다.
> 아직 걸어야 할 사람에게.
그러자 방 안의 전언들이 일제히 숨을 내쉬었다.
만인은 여관 주인을 보았다.
“이걸 어떻게 보내오?”
여관 주인은 대답하기 전에 객석 쪽을 보았다.
푸리나도 같은 방향을 보았다.
죠니가 얼굴을 찌푸렸다.
“왜 다들 나를 봐.”
레이튼은 아주 정중하게 말했다.
“죠니 씨.”
“싫어.”
“아직 부탁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더 싫어.”
그레이가 장부를 펼쳤다.
“전달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입니다.”
죠니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왜?”
그레이는 침착하게 답했다.
“기동성. 개인 행동 가능. 무대와 현실 사이의 경계에 대한 저항성.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계속 나가고 싶어 하셨습니다.”
푸리나가 밝게 말했다.
“봤지? 딱 맞아!”
죠니는 푸리나를 노려보았다.
“너 처음부터 이럴 생각이었지.”
“아니. 6막부터 대본이 좀 흔들려서 나도 확신은 없어.”
“최악의 대답이네.”
그때 무대 위 여관 주인이 편지를 들고 객석 쪽으로 걸어왔다.
정확히는 무대와 객석 사이의 경계까지.
그는 경계를 넘지 않았다.
다만 그곳에 서서 죠니를 보았다.
“손님.”
죠니는 말없이 그를 보았다.
여관 주인은 편지를 내밀었다.
“혹시 길을 조금 아십니까?”
죠니는 한참 동안 그 편지를 보았다.
“나는 우편배달부가 아니야.”
“예.”
“내가 가면 돌아오는 데 오래 걸릴 수도 있고.”
“그럴 수 있습니다.”
“편지가 도착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지도 모르고.”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보내라고?”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아직 산 자에게 가야 할 말이라면요.”
죠니는 이를 악물었다.
그 말이 싫었다.
너무 정중해서 더 싫었다.
명령이면 거절하기 쉬웠다.
기적이라면 비웃기 쉬웠다.
감동을 강요했다면 돌아서기 쉬웠다.
그런데 저 여관 주인은 부탁하지도, 명령하지도, 강요하지도 않았다.
그저 편지를 내밀었다.
길을 아느냐고 물었다.
죠니는 손을 뻗지 않았다.
푸리나는 숨을 죽였다.
그레이는 이미 장부에 “전달자: 미정”이라고 적어두었다.
레이튼은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이 순간에는 질문도 문을 닫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 뒤, 죠니가 말했다.
“받을 사람 이름도 없잖아.”
여관 주인은 답했다.
“그래서 길을 아는 분께 부탁드리는 겁니다.”
죠니는 낮게 웃었다.
“진짜 말이 다 빠져나가네.”
그는 편지를 받았다.
객석의 몇몇 사람이 숨을 내쉬었다.
죠니는 편지를 품에 넣었다.
“아직 걸어야 할 사람에게, 라.”
그는 무대 위 만인을 보았다.
“그럼 산 사람 중 아무한테나 줘도 되는 건가?”
만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여관 주인이 말했다.
“아마도, 편지가 알아볼 겁니다.”
죠니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 말 제일 수상해.”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죠니는 한숨을 쉬었다.
“좋아. 하지만 조건이 있어.”
푸리나가 물었다.
“뭔데?”
“말은 내가 고른다.”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달자는 길을 고르는 손님이니까요.”
죠니는 편지를 품에 넣은 채 일어섰다.
“말 준비해.”
무대 뒤편, 아니 극장 바깥 마구간 쪽에서 말이 한 번 낮게 울었다.
죠니가 멈췄다.
“방금 너무 타이밍 좋지 않았어?”
푸리나가 시선을 피했다.
“극장이잖아.”
“이제 여관이라며.”
“둘 다야.”
죠니는 짧게 웃었다.
“편리하네.”
그는 객석 사이를 지나갔다.
느리지도, 서두르지도 않는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 걸음에는 이미 길을 고른 사람의 고집이 있었다.
문이 열리고, 밤공기가 들어왔다.
죠니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늦은 말이라도, 달리기 시작하면 아직 늦지 않을 수 있겠지.”
그리고 그는 문밖의 밤으로 나갔다.
아스테리아는 그 모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좋은 전령이군요.”
알토가 말했다.
“공식 임명 절차는 없어 보입니다.”
아카식이 웃었다.
“그래서 더 정확할 때도 있어.”
아스테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은 종종 비공식적인 발을 좋아합니다. 공식로는 막히고, 봉인은 늦고, 사절은 붙잡힙니다. 하지만 어떤 말은 한 사람이 자기 고집으로 들고 가야 도착하지요.”
민다우가스가 그 말을 듣고 호탕하게 웃었다.
“하하! 고집 센 전령이라. 전쟁터에선 꽤 쓸 만하지.”
아스테르다스가 말했다.
“다만 길을 잃을 수도 있지요.”
민다우가스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길을 한 번도 잃지 않는 전령은 대체로 거짓말쟁이다. 중요한 건 잃은 뒤에도 가는가다.”
죠니는 그 말을 들은 듯 뒤돌아보지 않고 손을 들어 보였다.
“왕님, 내 욕이야 칭찬이야?”
민다우가스는 크게 웃었다.
“둘 다다!”
죠니는 중얼거렸다.
“역시 왕들은 귀찮아.”
무대 위 만인은 죠니가 멀어지는 모습을 보았다.
“내 편지가 정말 도착할까?”
여관 주인은 말했다.
“모릅니다.”
“모른다고?”
“예.”
만인은 당황했다.
“주인장은 이런 때 안심시키는 말을 해야 하는 것 아니오?”
“도착한다고 약속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럼 왜 보낸 거요?”
여관 주인은 부드럽게 답했다.
“보내지 않으면 도착하지 않습니다.”
만인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은 너무 단순했다.
그래서 반박할 수 없었다.
전언의 방 안쪽에서 말하지 못한 사과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전하지 못한 사랑은 붉은 끈을 조금 풀었다.
보내지 못한 안부는 작은 종이를 접었다.
도착하지 못한 명령은 자기 군령서를 내려놓았다.
늦은 편지는 방 한쪽에 앉았다.
빈손의 배우는 처음으로 손바닥을 폈다.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더 이상 완전히 빈손처럼 보이지 않았다.
여관 주인은 만인에게 말했다.
“이제 가실 수 있습니다.”
만인은 방을 둘러보았다.
“이 말들은 어떻게 되오?”
“각자의 때를 기다립니다.”
“모두 도착할 수 있소?”
“아닙니다.”
만인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럼 너무 슬프군.”
여관 주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떤 말은 오늘 한 통 나갔습니다.”
만인은 문밖으로 나간 죠니를 떠올렸다.
“그것으로 충분하오?”
여관 주인은 잠시 생각했다.
“오늘은, 그 정도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만인은 쓴웃음을 지었다.
“주인장은 참 작은 충분함을 말하는군.”
“길 위에서는 작은 충분함이 다음 걸음을 만듭니다.”
그 말에 만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전언의 방을 나가려다가, 다시 뒤돌아보았다.
말하지 못한 사과가 그를 보고 있었다.
만인은 그녀에게 말했다.
“미안하오.”
그녀는 목소리 없이 웃었다.
전하지 못한 사랑에게는 말했다.
“늦었다고 혼자 정하지 마시오.”
그 배우는 붉은 끈을 조금 더 풀었다.
보내지 못한 안부에게는 말했다.
“밥 먹었냐는 말은 보내시오.”
안부는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도착하지 못한 명령에게는 말했다.
“다음에는…… 빨리 가시오.”
명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늦은 편지에게는 말했다.
“너무 늦었더라도, 문패는 찾을 수 있더군.”
늦은 편지는 봉투를 가슴에 안았다.
마지막으로 빈손의 배우에게 만인은 물었다.
“당신은?”
빈손의 배우는 대답했다.
“저는 아직 너무 많습니다.”
만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지.”
그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그럼 하나씩 하시오.”
빈손의 배우는 처음으로 아주 작게 웃었다.
“그것도 좋은 시작이군요.”
만인은 방을 나섰다.
그의 품속은 가벼워졌다.
편지를 보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완전히 가벼워지지 않았다.
그는 여관 주인에게 말했다.
“말을 보내면 시원할 줄 알았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왜?”
“말이 도착할 때까지, 길을 걱정하게 되니까요.”
만인은 한숨을 쉬었다.
“말은 보내도 문제고, 안 보내도 문제군.”
여관 주인은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주 침묵합니다.”
“좋은 해결책은 아닌 것 같소.”
“예.”
“그런데 왜 자주 그러오?”
여관 주인은 대답했다.
“침묵은 당장은 안전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만인은 조용히 말했다.
“하지만 오래 두면?”
“방 하나가 필요해집니다.”
만인은 뒤의 전언의 방을 돌아보았다.
닫히지 않은 문 안에서 아직 도착하지 않은 말들이 속삭이고 있었다.
그는 더 묻지 않았다.
길은 다시 이어졌다.
전언의 방 너머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검은 구름.
젖은 바위.
진흙길.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
골짜기였다.
만인은 그곳을 보았다.
“저긴 또 무슨 곳이오?”
여관 주인은 말했다.
“비 오는 골짜기입니다.”
“왜 가야 하오?”
“손님께서 이미 젖어 계시니까요.”
만인은 자기 외투를 보았다.
시장에서는 몰랐다.
광장에서도, 관청에서도, 집 앞에서도, 성문에서도 몰랐다.
그런데 이제 보니 외투는 오래전부터 젖어 있었다.
말하지 못한 말들이 마치 비처럼 스며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작게 말했다.
“고통이군.”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예.”
만인은 비 오는 골짜기를 보았다.
“거기는 차가 있소?”
“있습니다.”
“따뜻하오?”
“예.”
“그럼 조금 낫겠군.”
여관 주인은 잠시 침묵했다.
“비가 멎는다는 뜻은 아닙니다.”
만인은 한숨을 쉬었다.
“역시 주인장은 안심시키는 데 재능이 없소.”
여관 주인은 고개를 숙였다.
“정확한 환대를 하려다 보니 그렇습니다.”
만인은 어쩐지 웃음이 났다.
그는 비 오는 골짜기를 향해 걸었다.
무대 뒤편, 죠니는 이미 극장 밖으로 나가고 있었다.
문이 열리고, 밤공기가 들어왔다.
그는 편지를 품에 넣은 채 말 쪽으로 향했다.
푸리나는 그 뒷모습을 보았다.
“정말 가네.”
그레이는 장부에 적었다.
> 전언 전달자: 죠니 죠스타.
수신자: 아직 걸어야 할 사람.
상태: 발송됨.
도착 여부: 미확정.
레이튼은 그 문장을 보고 말했다.
“좋습니다. 도착 여부를 아직 닫지 않았군요.”
그레이는 대답했다.
“닫을 수 없습니다.”
푸리나는 무대 위 만인을 보았다.
그리고 극장 밖으로 사라지는 죠니를 보았다.
극과 현실의 경계가 또 한 번 흔들렸다.
하지만 이제 푸리나는 덜 놀랐다.
오늘 밤의 극장은 이미 여관이었다.
여관에서는, 손님이 가끔 문밖으로 나간다.
잠깐의 나들이를 위해.
혹은 아직 산 자에게 가야 할 말을 전하기 위해.
막이 내려오기 직전, 전언의 방 안에서 작은 합창이 들렸다.
“나는 너무 늦었습니다.”
“나는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나는 죽은 자에게 가야 합니다.”
“나는 산 자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작은 목소리.
“보내지 않으면 도착하지 않습니다.”
막이 내려왔다.
7막이 끝났다.